소설리스트

나의 서큐버스-62화 (62/80)

〈 62화 〉 다크 솔저

* * *

“네놈이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 알고 있나? 인족.”

“무슨 짓을 하는지 아니까 현피를 걸었지. 마족.”

갈레인이 붓으로 그린 듯한 눈썹을 가늘게 솟구쳤다.

“아무리 보아도 모르는 듯한데.”

“너가 아무것도 모르는 거 아니냐?”

어느새 일정 간격을 두고 돌기 시작했다.

시계 방향으로 천천히 돌아간다.

견제와 경계가 개시되었다.

“호오……? 꽤나 많이들 모였지 않은가.”

갈레인이 느른한 시선으로 주변을 훑었다.

주변을 둘러싼 온갖 마의 일족들의 다채로운 면전들이 요악스러운 만화경처럼 지나간다.

“힘내라! 힘! 빨간 머리 마족!”

“녀석의 코부터 베어내라!”

“기대를 저버리지 말라구요!”

“너한테 걸었다! 지면 뒈질 줄 알아!”

“혹시 후달리시면, 합세할까!? 크키킥!”

갈레인이 만족스러운 눈빛으로 지긋이 눈을 내리감았다.

“그래…. 관객들이 이리 많이 모인 김에, 다시 아량을 베풀도록 할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목숨이 아까운 줄을 안다면, 내게 무릎을 꿇어라. 이마가 터지도록 바닥에 처박으며 나를 경배해라. 즉전에 저지른 대죄를 사죄하며 생명을 구걸해라. 그러면, 티끌만큼 미약한 확률이나마 그 하찮은 명줄의 구제를 고려하지. 허세를 버리고 변심하고 싶다면 어서 서두르거라.”

적발과 적안의 마족이 간드러지면서도 딱딱 끊기는 느끼한 미성으로 제안했다.

“너네는 진짜 종특적 자만심 레벨이 맥스로 천중을 꿰뚫는 거 아니냐? 내가 여지껏 도살한 마족이 몇 마리라 생각하냐? 무려 두 자리에 도달해. 무지 버겁기는 했지만 저악마들과 악마들도 극소수 있다구. 거기에 고작 너 따위 하나 추가된다고, 그래프의 추이에 크나큰 변동률이 자아내질까봐? 아니야. 그냥 사소한 티끌이 얹힌 거지. 착각도 작작하고 자뻑도 적당히 해.”

오른손에 차원구를 전개해 칼자루를 붙잡았다.

내부가 우주인 듯한 아공간에서 비집어져 나오는 곧게 뻗은 검신.

딱히 어떤 장식이나 치장도 없는, 무미건조한 마철강 재질의 장검.

나의 전용 애검인 5급 마법검이었다.

“흐음.”

주황빛 피부의 마족이 한없이 싸늘한 눈길로 냉시를 쏘았다.

활짝 열어젖힌 롱코트를 크게 펄럭이며 좌측 허리춤의 칼자루에 오른손을 가져다댔다.

채애앵, 청명한 도성을 울리며 발도되어 나오는 곡도.

백은색의 선명하고 옅은 은파를 형상화한 듯한 도신에, 검붉은 색상의 뒤꼬인 뱀의 형상이 폼멜에서 가드를 휘감아 마감한 장식이 꽤나 화려한 매직 세이버.

육안적으로 관측되는 총체성 및 전투력 가치는 최소 5급 이상.

“이 어둡고도 찬란한 나의 전용 마검에는, 자격이 없는 것들의 더러운 피는 묻히지 않으려는 주의였는데……. 그 맹세가, 오늘 이렇게 무던한 꿈처럼 간단히 깨질 줄이야. 마생, 참으로 덧없군.”

세이버의 칼등을 어깨에 툭툭 짚어대는 갈레인이 이죽댔다.

모두가 칼을 뽑았다.

끊임없이 서로를 마주하며 천천히 돌았다.

“호문쿨루스……. 아니, 한때 흄이었던 것. 묘비에 새겨지는 비명은 어떤 것을 원하나?”

“그딴 게 필요 있어? 오지에서 객사해 무덤조차 없을 분이 쓸데없는 걱정을 하시네.”

“그런가……. 그렇군…….”

일순간 갈레인의 기세가 광포히 일변하기 시작했다.

일렁이는 아지랑이 형태의 기력과 폭발적인 소용돌이 형상의 마력이 전신에서 휘몰아치며 전력이 상승하기 시작한다.

“네놈의 손속은, 없는 걸로.”

“아, 잠깐. 시작하기 전에 하나만 더.”

나는 생각하던 조건을 내걸었다.

“너는 나를 죽이려 드네. 그렇지?”

갈레인이 무슨 뚱딴지 소리를 내뱉냐는 듯이 싸늘한 눈매를 오연히 치켜떴다.

“먼저 마투를 걸었으면, 당연한 것 아니냐……?”

“그렇다면 나는 너를 죽이지 않고 제압만 할게. 자신이 죽이려 하는 상대를 죽이지도 못하고, 되려 제압당할 때. 그 점이 굴욕감이 극대화되니까.”

갈레인의 냉철하던 눈길에 작은 파동이 자아내졌다.

“…작작 좀 지껄여라, 어디에서 굴러다니다 스며들었을지 모를 흄.”

“아, 참고로 마왕군의 고소가 귀찮아서야. 너는 보는 눈이 없는 마경에서 마주쳤으면 무조건 죽었어. 그 몸뚱이에서 심장을 취해, 마석화하고는 온연히 나의 힘으로 삼았을 거라구. 그러니까 안심해라. 최소한 죽을 일은 없어.”

갈레인이 짐승적으로 뾰족한 송곳니들을 드러내며 사납게 이를 악물었다.

“이, 자식이이이……!”

드디어 포커페이스를 무너트려 악마적으로 추하게 일그러트린 면상을 내보였다.

도발은 성공.

먼저 선공을 노리던 듯한 갈레인이 일순 주춤하는 순간, 나는 이미 진각을 박차 쏘아진 후였다.

카아아아앙! 파카카카칵!

“크으흐으읏!”

“하아아아압!”

5급 매직 롱소드와 최소 5급 이상의 매직 세이버가 불티를 흩날리며 충돌했다.

양손으로 자루를 움켜쥔 마법검의 검신을 있는 힘껏 내리찍는다.

오른손으로는 매직 세이버의 자루를 쥐고, 왼손으로는 도신의 후면을 받친 갈레인이 이를 악물었다.

본격적인 전투의 개시와 함께 나의 전신에서 흑적색의 기운이 폭발적으로 휘몰아쳤다.

나의 고유한 기력색이자 마력색이며, 공교롭게도 마기와 동일한 색상.

“건방지구나! 흄이었던 호문쿨루스!”

일갈하는 갈레인으로부터 흑황색의 마력에 휘감긴 하이킥이 높게 차올려졌다.

나의 내리찍는 힘에 몸을 그대로 내맡겨 뒤로 넘어가는 대신, 자연스럽게 들린 오른발을 높게 들춰 나의 왼뺨을 갈긴다.

나는 왼손목을 들어 가드를 내세웠다.

까아아아앙!

“끄어하아악!?”

눈을 부듭뜨고 질겁한 갈레인이 쩍 젖혀진 입에서 침방울을 흩뿌렸다.

나의 왼손목과 갈레인의 정강이에서 울린 것은 통상적인 뼈와 뼈가 충돌하는 소리가 아니였다.

재킷의 소매에 뒤덮인 왼손목의 피부에 마석막을 옅게 코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서로 그렇게 차이가 나지 않는 수준을 고려했을 때, 일반인이 정강이로 쇠몽둥이를 부러뜨리려 시도한 격이다.

“커흑! 젠장!”

아예 몸을 뒤집어 연속적인 백 텀블링으로 물러나는 갈레인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다시 어느 정도의 거리까지 물러선 갈레인이 자세를 잡고는 식식대며 노려보았다.

나는 들추고 있던 왼손목을 다시 낮춰 양손으로 마법검의 자루를 굳게 파지했다.

“멀쩡한 팔이라고는 안 했다.”

“비, 빌어먹을! 되도 않는, 얄팍한 장난질으으을……!”

눈에 띄게 격앙한 갈레인이 짐승적인 송곳니들을 내보이며 사납게 으르렁댔다.

얼굴이 표독스럽게 일그러지는 순간, 녀석의 신형은 지척에 도달해 있었다.

“흐햐아아압! 흐라라라랍!!! 크아아아악!!!!!!”

초당 몇 회도 넘어가며 허공을 화려히 수식하는 초고속의 검격을 쏟아부었다.

전후좌우와 종횡무진으로 전신을 마구 들이치는 칼날이 범상치 않은 예기를 흩뿌린다.

유마 시절에 악마통합학원에서 필수적으로 수료하고, 성마가 되어서는 마왕군에서 상시 단련하는 제식의 검술.

특별히 전사 개인의 기량에 맞춘 맹렬한 공세를 강조하며, 빈틈을 포착하는 순간 단번에 적의 가드를 무너트리는 것에 중점을 둔 검법.

나는 딱히 누군가로부터 배운 적은 없이, 연금술을 하며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독학했던 교본으로부터 습득한 검술로 맞섰다.

검술의 숙련도와 완성도로 따지면 갈레인의 검술이 비교도 할 수 없이 우위나, 그럭저럭 검투가 성립된다.

대략적인 실력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강자는 숟가락만으로도 형편없는 약자를 단매에 때려죽일 수 있는 것처럼.

“차아압!”

현란한 공방의 와중 돌연 갈레인이 뒷발을 박차 물러섰다.

내지르던 검은 회수하며, 거뭇한 흑연이 휘감기는 왼손은 내뻗는다.

마족의 흑마술에 발한 칠흑의 예기가 줄기줄기 휘감기며 창의 형태를 취했다.

나의 마석화 능력을 어렴풋하게 간파했기에, 방어를 고려한 관통력을 고도로 집중한 창격.

“꼬챙이가 되어, 뒈졋!”

6미터도 넘어갈 듯한 칠흑의 파이크가 나의 명치를 향해 곧게 찔려져 들어왔다.

나는 오른손에 쥐인 마법검을 냅다 허공으로 내던져 버렸다.

“뭣!?”

검사가 자신의 검을 내던져 버리는 초유의 사태.

처량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나의 투검에 꼼짝없이 시선을 빼앗긴 사이.

나는 주먹을 움켜쥔 왼손목을 상체에 수평으로 맞붙여 마석화를 발현했다.

카카카카칵!

찬란히 빛나는 마석의 형태로 구현화된 원형 방패가 시커먼 창끝을 막아낸다.

라운드 실드의 형태를 취한 왼팔목이 갈레인의 섀도 포스로 생성된 파이크를 받아냈다.

주변으로 마모되고 박살나는 마석편들이 산산이 튀며 찬란한 빛의 산란처럼 흩뿌려졌다.

표면으로부터 시커먼 기운이 줄기줄기 일렁대며 피어오르는 흑장창이 마석으로 구성된 방패를 좀처럼 뚫지 못하고 버벅댔다.

맨몸으로 그냥 받았다면 나를 꿰뚫었을 충분한 관통성을 지닌 창격이나, 계속해서 마력을 주입하는 것으로 능히 방어할 수 있다.

관건은 사용자의 집중력마저도 완전히 흐트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갈레인과 관객들 대부분의 시선은 아직도 허공에 날아간 나의 마법검에 꽂혀 있었다.

행여나 무슨 트릭이 숨겨져 회심의 일격을 초래할지도 모르기에, 기묘하더라도 시선을 고정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검을 버리다니!”

“설마…? 눈속임인가?”

“어이! 앞을 보라구!”

뒤늦게 사태를 깨달은 관객들 일부가 주의를 주었으나 이미 늦었다.

나는 염동력에 휘감긴 맞붙인 검지와 중지를 내뻗었다.

일순간 허공으로 핑그르 날아가던 나의 마법검에 외력이 자아내졌다.

작대기처럼 회전하며 드높게 비상하던 나의 마법검은 섬전이 되어 갈레인에 곧게 내리찍혔다.

“큭!?”

다급히 매직 세이버를 들춘 갈레인이 나의 마법검을 받아냈다.

카앙! 카아앙! 카아아앙!

기묘한 파공성을 울리는 마법검이 전후좌우와 종횡무진으로 날아든다.

“흐어억! 무, 무슨!?”

눈짓과 양손마저 병행하며 허공에 자아내지는 검신의 선율을 연주했다.

사방팔방에서 날아드는 비검의 중앙에 꼼짝없이 노출된 형국의 마족을 들이친다.

“제길! 제엔자아앙!”

마구 욕지거리를 내뱉는 갈레인이 나의 비검을 모조리 쳐냈다.

자신의 전방으로 초고속의 검격을 흩뿌려 날아다니는 비검을 견제하고 방어한다.

주인의 완전히 상실된 집중력에 의해, 결국 왼손에 들린 칠흑의 파이크는 형태를 상실해 흑연으로 흩뿌려졌다.

서로의 허를 찌르려 한 공격은, 서로의 꼼수와 트릭에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막혀 버렸다.

갈레인이 진심으로 질색한 기색으로 혀를 내둘렀다.

“검사의 혼이 담긴 검을 이딴 식으로 쓰다니!”

“수작질은 너만 부릴 수 있는 게 아니야.”

변화무쌍하게 날아들며 교묘히 급소를 노리는 칼질에 완전히 시선을 빼앗긴 사이.

나는 진각을 박차 급격히 앞으로 내쏘아졌다.

“어이! 마족!”

“뭣!?”

구경꾼들과 갈레인이 동시에 나를 지목했다.

나는 이미 지척에 접근을 마친 후였다.

“빌어머그을!”

욕설을 내쏟는 갈레인이 매직 세이버를 후려쳐 마법검을 나에게 되돌려 보냈다.

염동력에 휘감긴 오른손을 내뻗자 나에게 날아들던 비검이 올바른 궤도를 되찾는다.

갈레인의 붉은 눈이 크게 뜨였다.

“크허헉!?”

녀석의 코앞에서 낚아챈 마법검의 자루가 손아귀에 자석처럼 달라붙었다.

나는 좌상단으로 들춘 마법검을 우하단으로 사선으로 내리그었다.

촤하악!

“컥!”

다급히 뒷발을 박찬 갈레인이 황급하게 물러섰다.

무슨 사태인지 파악하기 보다는, 그저 거리를 벌리며 물러서기에 급급하다.

이윽고, 자신의 시공이 정지한 듯한 멍한 표정을 짓는다.

황망하기 그지없게 물든 시선을 천천히 낮춘다.

“뭐……?”

좌측 쇄골의 하단에서 우측 늑골까지를 가로지르는 혈선.

내부로부터는 검붉은 핏물이 질끈대며 비집어져 나와 상체를 적신다.

맨몸의 상체에 활짝 열어젖힌 롱코트를 걸치느라, 훤히 노출된 앞가슴의 정중앙에 선명한 검흔이 새겨졌다.

“내가… 상처를……?”

갈레인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처럼 메말라 갈라진 목소리를 흘렸다.

나는 녀석의 반응에 쓰게 탄식했다.

“표정이 영 좋지 않네?”

그러고는 어조를 바꾸어 권유했다.

“웃어 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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