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화 〉 다크 솔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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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스트 상업구 벨드라스 사거리.
위크 위크엔드.
그닥 요란하지 않은 데코레이션과, 적당한 인테리어의 구조가 안정적인 분위기의 카페다.
“레피스라 약초… 50그라그. 큘킨 향초… 37그라그. 리시네 영양초… 72그라그. 큐리아 해독초… 100그라그.”
분주히 깃펜을 놀려 나갔다.
누런 양피지는 어느새 내가 끄적인 글귀들로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잉크가 흘러나오는 깃촉의 촉감이 제법 꺼끌꺼끌해지자, 테이블의 우측 테두리에 위치시킨 잉크통을 콕 찍는다.
그러고는 재차 깃펜을 놀려 나간다.
포켓 디멘션에 어디에서든 작성하기 위한 필기구 세트를 상시 완비하고 있기에 문제는 없었다.
“슬리피니아 수면초 69그라그에, 메탈로니아 금속초의 줄기 여섯 가닥을 철분으로 빻은 분말과, 라이트니아 발광초의 광초근을 적출한 것에, 광월야의 때에 따낸 칠색화의 화편 일곱 장을 한시적 매개로써 약 5분의 부여식을 가미하면…… 이러면 최소가 4급과 동일한 약효로의 일시적인 진입이…… 아니, 역시 무리겠군. 도중 금속초와의 연성을 견디지 못한 칠색화 화편들이 산멸의 가능성이 있어.”
슥슥, 틀린 배합식이 검게 긁히고는 옆에 새로운 공식이 다시금 적혀 나갔다.
자주 찾는 공간에서 나만의 세계에 돌입해, 평시에 머릿속에 떠올리고만 있던 배합식을 끄적인다.
길드에서 소재를 매각하는 업무도 마쳤고, 이제 심리적 및 물질적 여유가 넘쳐나고 있었기에.
이 마철강처럼이나 투박하게 굳고, 마설원만큼이나 상시 냉랭한 한풍이 휘몰아치던 마음에.
돌연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마화원의 요화들만큼이나 요사스럽게 피어나고 있었기에.
“아비카.”
규리스가 상시 불어오던 순풍이었다면, 아비카는 별안간 불어닥친 돌풍이었다.
연보랏빛 꽃줄기를 지니고, 붉고 푸른 꽃잎으로 피어난 화사한 활력소.
내게 늘 인사를 건네던 존재인 이름도 모르던 그녀와 드디어 만났다.
나름의 인연이었다고 할 수 있는 그녀들을, 한자리에서 보게 되었다.
이것을 운명이라고 하는 걸까?
그녀들은, 나와 어떠한 형태로 이어질 수 있다는 미래의 암시인 걸까?
“레인보우 플라워, 이름하여 칠색화는 관리와 취급에 있어 실로 각별한 주의 사항이 요구된다…. 주변의 온도에 맞춰 쉬이 꽃잎의 색상을 변화하기에, 관리자가 원치 않는 형질의 색을 띌 수 있기 때문이다…….”
두근대는 심장을 가라앉히며, 본업에 집중한다.
연금술이란 실로 흥미로운 학문이라, 파면 팔수록 깊게 빠져드는 매혹의 수렁과도 같다.
연금공방 에우포리아의 공방주, 나의 적법한 여주인 리나 녹스 에파네 페를렌데의 연금술사로서의 급수는 5급.
도합 7등급제에서 아래에서 두 번째인 5등급에 불과하지만, 자택을 공방으로 운용하며 상시 필요한 소재들 및 소모성 물품들과 비품들을 자가로 수급한다는 가정하에는 대략 먹고살 수 있는 적당한 수준이다.
보다 급수가 높은 연금술사들은 자신들을 위해 결성된 이익 단체인 연금협회를 통해, 정기적인 회비의 납부가 필요하지만 소재들 및 물품들과 비품들을 보다 빠른 유통으로 수급하는 루트를 공유한다.
야망과 야심에 불타오르는 그녀는 보다 더한 비상을 원한다.
내가 그녀를 물심양면으로 전격 지원하고는 있다 하나, 결국 한계란 존재한다.
우리 역시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기에, 편법과 우회책을 통한 상승을 꾀한다.
내가 생각한 것은, 남들도 생각할 수 있거나 이미 생각한 가능성이 있기에.
상승을 꾀한다면, 통상적인 마족들의 사고방식들로는 생각할 수 없는 변칙의 진수를 구사해야만 했다.
“혁신이 생명.”
정오가 훌쩍 지난 오후, 헬유레이아의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카페의 2층에 앉은 나는 주문한 카오스 레모네이드를 들이켰다.
혼돈스럽고도 강렬한 탄산이 알싸한 맛.
당연히 중간계 남방 원산의 마계산 레몬수.
그러고는 계속 양피지에 깃펜을 놀려 나간다.
발견이란 일상에서의 인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에서 발견된다.
전생에서도 그랬다시피, 어떤 판이한 이세계라도 결국 그런 식이다.
늘상 인식하는 요소에서, 여지껏 인식하지 못한 특이점을 파악해야 한다.
“크림슨 그래스. 마계의 초지에 자생하는 완연한 핏빛의 야생초. 두터운 군화마저 투과할 정도의 예리도를 지녀, 철화나 마력을 두른 발길로 딛지 않으면 필히 본연에 자신을 짓밟은 존재의 핏기를 더한다. 이례적으로, 마계의 대지에 광대하게 흐르는 마신혈의 혈천으로부터 추출한 마신의 핏방울을 풀잎에 떨굴 때만, 경질화를 해제해 비로소 유연성을 띄는 특성을 지닐 터인데…….”
하지만 나는 좀처럼 집중할 수 없었다.
주변의 마족들이 나누는 잡담이 심히 거슬렸기 때문이다.
“크핫핫핫핫!!! 그래, 서어~!? 이번의 원정에서는 재미 좀 보셨슴까!?”
천박하고 드높은 목소리.
주변에 대한 의식이라고는 전혀 없는 쩌렁한 고성이 높게 울려 퍼졌다.
나는 미약하게 미간을 찌푸리며 깃펜을 놀렸다.
“뭐어, 그럭저럭이란 것이다. 모처럼 얻은 휴가로 지상에 나간 건데, 생각보다는 소득이 영 시원찮았다고밖에.”
간드러지고도 나긋한 남자의 미성.
“녀석들을 어떻게 조지셨습니까!?”
“혹시 돌발적 상황은 없으셨는지요!”
주변으로부터 여러 목소리들이 더 터진다.
“당연히 녀석들의 씨족을 이끌던 우두머리인 고블린 샤먼과 밑의 홉고블린들이 격렬히 반항하더군. 그렇게 저항하던 몇 놈을 본보기로 죽이고는, 기세가 꺾여 복속된 고블린들을 소굴로부터 데리고 나와 이리저리 몰고 다녔지. 약 300마리 규모를 이끌고는 적당한 규모의 농촌으로 흘러들어 갔다. 마물들과 마수들을 더 끌어모으려 했지만, 근처에는 더 이상 보이지가 않았다. 너무 많으면 이미 멀리서부터 지레 겁을 먹어 도망칠 우려도 있었지. 어쩌면 막아낼 수도 있을 것이라며, 적절한 자신감과 방심을 유도하는 것이 몬스터 웨이브의 관건이다.”
시선을 돌렸다.
맨몸의 상체에 열어젖힌 롱코트를 걸치고, 착 달라붙는 가죽 쫄바지에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롱부츠.
주황색 피부에 피처럼 붉은 진홍색 중단발머리의 마족이었다.
“엣? 지상의 고블린들은 엄청 약하지 않슴까? 그런 녀석들로 마을의 함락을?”
너머의 안면 아래로 시커먼 전신갑을 걸친 마족이 맹한 얼굴로 물었다.
덥수룩한 하얀 산발에 보라색 피부를 지닌 마왕군 정규병 다크 솔저.
각자의 곁으로는 투구로부터 형형한 붉은 안광과 눈꼬리를 흩날리는 다크 솔저들이 둘이 더 착석했다.
잠깐 외출을 나온 후임들이, 먼저 휴가를 나간 선임과 만나는 형상이다.
전원이 데블, 레서 데몬이나 데몬은 없다.
순수한 마족들만의 모임.
“형식상 나름 민병대란 게 있었지만, 마족에 복속되어 공포의 감정이 제거되고, 고통의 감각마저 상실하며 대폭 강화된 고블린들에게는 먹잇감이었을 뿐이다.”
“허어, 그랬습니까?”
사복 마족이 팔짱을 끼고는 다리를 꼰 채 붉은 눈빛을 번득이며 간드러지게 답변했다.
“최후에는 그나마 모험가 출신들로 마법들을 쓸 줄 아는 녀석들이 모여, 최후의 방비를 굳힌 촌장의 집으로 몰려들었다. 이 몸의 흑마술에 의해 흉폭성마저 극대화된 녀석들의 물량으로 가볍게 학살해 주었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촌장의 일가를 확보했는데…… 촌장이라 해서 오늘내일하는 늙은이인 줄 알았더니, 새파랗게 젊은 놈이더군?”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음 이야기가 몹시 궁금합니다!”
사복 마족과 투구를 벗은 다크 솔저의 곁에 착석한 다크 솔저들이 동시에 목소리를 드높였다.
“뻔하다. 유희를 즐긴다. 나는 촌장의 방의 진열대에 거치되어 있던 나름 잘 숙성된 고급스러운 와인병을 발견했다. 그것을 낚아채서는 거실의 흔들의자에 걸터앉아 홀짝였다. 대략 자정부터 시작되고는, 동이 트고도 한참이 지난 아침까지 촌장의 아내와 딸에게 모든 수백 마리 고블린들의 욕구가 해소될 때까지의 현장을 끝까지 지켜보았지. 흑마술의 강화된 여파라지만, 고블린들의 성욕은 실로 폭발적이며 끝이 없더군. 이날만을 위해 살아온 발정난 녀석들 같았어.”
사복 마족의 적안이 요악스럽게 빛났다.
“촌장과 아들은 재갈을 물리고 밧줄도 묶어 벽에 박아 지켜보게 했다. 극도로 발정난 고블린들에 사랑하는 아내와 딸이 격렬히 따먹히는 광경을! 지상의 고블린들은 이곳 마계의 고블린들과 다르게 굉장히 작고 웃기게 생겼다. 나름 귀엽고도 추한 버러지들이란 말이지. 그런 난쟁이 마물들에게, 아내와 딸이 보지와 똥구멍에 동시에 사정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애비 새끼와 아들 새끼의 표정이 어찌나 가관이던지!”
“우하하하하하학!!!!!!”
“푸하하하하하!!!!!!”
“큭핫핫핫핫!!!!!!”
“끼햐햐햑!!!!!!”
쾅! 콰당! 마족들 사이에 폭발할 듯이 떠들썩한 폭소가 자아내졌다.
죄다 테이블에 엎어져서는 마구 두드리고 무릎을 박찬다.
폭소하다가 배를 붙들고는 뒤로 넘어가 쓰러지는 녀석마저 속출했다.
“흑! 허윽! 아, 웃겨어어어어!!! 큭, 하하하하핫!!!”
“수, 숨! 숨이이이이! 우, 허어어어억!?”
“크헤햐햐햐햑!!! 갸아아아아악!!!”
“후, 아하아!!! 원, 세상에!”
사복 마족은 여전히 팔짱을 끼고 고고히 상체를 곧추세우고 있다.
“분기를 못 참아서인지, 죽을 생각들이었는지, 물린 재갈을 흥건히 적실 정도로 선혈이 철철 흘러나오더군? 유감스럽지만 그렇게는 죽을 수 없어. 스스로들의 눈알조차 파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채, 현장을 끝까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는 거지. 아내와 딸의 너덜한 조갯살과 파열된 똥구멍에서, 고블린들의 씨앗이 가득 담겨 버글버글 헤엄치는 우유 거품이 끊임없이 두둑하게 터져 나오는 광경을. 아마 지금쯤은 분명 고블린 새끼들을 출산했을 거다! 씨앗을 떨어트리지 않았다면!”
자지러지는 비소를 머금은 사복 마족이 쓰게 덧붙였다.
“아깝고만! 현장에서 그 명장면을 지켜봤어야 되는데! 애비랑 아들의 절규하는 찌질한 표정!”
투구를 벗은 다크 솔저가 테이블에 콰당 소리를 나게 머리를 박았다.
“세기의 명장면을 놓쳤네요! 사죄합니다아아아아악!!!”
“자신의 사랑하는 여자들이 눈앞에서 고블린들의 씨앗 사정은 못 참죠. 고결한 성자조차도 추악한 악마가 되어 영혼까지 무너질 겁니다. 트헤헤헤헷!”
투구를 벗은 다크 솔저 곁의 전신을 칠흑빛 전신갑으로 감싼 다크 솔저가 잔혹하게 이죽댔다.
사복 마족이 그윽하게 눈매를 내리감으며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마무리했다. 마을의 헛간에 재갈을 물리고 줄로 묶어 포박한 마을의 소녀들과 처녀들과 여인들을 고블린들에게 선물로 던져 주고는, 이 몸은 마계로 복귀했다. 뭐어, 제법 웃긴 여흥이었다. 지상의 무구류들이나 마도구들은 품질이 떨어지고 조악하나, 일부 모험가 녀석들은 마계의 기준으로도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값비싼 것들을 갖췄더군. 모조리 노획해서는, 적절히 쏠쏠한 용돈벌이는 되었다는 거지. 가치가 떨어지는 것들은 떨이로 팔아 치우는 형식으로 처분하고는, 제법 두둑한 수익을 얻었다. 일전의 도박장에서 판돈을 모조리 잃느라 발생했던 빚도 모조리 탕감할 수 있었다는 거지. 오늘 이 자리에서 네놈들에게 군것질거리를 쏴주고 있는 것처럼.”
“크, 핫핫핫핫핫!!! 과여언! 도살자 갈레인! 선풍의 마염! 흑검귀! 10성기사 베기! 나이트 트롤 킬러! 도합 다섯의 이명을 갖추신 갈레인 님이십니다!”
“으하하하핫!”
“푸후후훗!”
마족들의 천박하면서도 거슬리는 웃음소리가 빗발쳤다.
돌연 나는 주의를 완벽히 빼앗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벽면의 모서리에 등지고 앉았고, 녀석들은 창가에 앉았다.
사람이라고 해야 2층에는 나와 녀석들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따금은 호문쿨루스의 발달된 오감이 곤혹일 때가 있다.
이런 식으로, 주변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을 꼼작없이 들을 수밖에 없다는 때가 있다는 것.
청각 차단 기능은 없으며, 그렇게 되면 불의의 사태에 대비할 수가 없어 곤란하다.
청력을 한계까지 떨어트려도, 이 정도의 지근거리는 불가능하다.
그것은 스스로의 고막을 터뜨리는 자해에 비견되므로.
그렇다고 두뇌를 차단해 기절할 수도 없다.
“짜증나는 상황이군.”
나는 멈추고 말았던 깃펜을 다시금 놀려 배합식을 써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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