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서큐버스-56화 (56/80)

〈 56화 〉 마족 길드

* * *

“하아…… 이따금 이런 걸 보면, 저도 확 때려치고 모험가나 할까 봐요……. 하지만, 현직은 모험가들을 담당하는 접수원으로서 그런 불충한 발언을 해서는 아니 되겠죠!”

흠흠, 눈매를 내깔고는 윗주먹으로 입술을 짚은 규리스가 확 양팔을 떨쳤다.

“와아~! 정말 축하드려요! 이것이야말로 모험가들의 짜릿한 고난과 역경을 지원하며 응원하는 접수원들로서의 보람! 축, 하! 축, 하! 합니다아아앙~!!! 트호호호홋!!! 트홋홋홋홋!!!”

순식간에 페이스를 뒤바꾼 규리스가 엄청난 바스트의 모핑과 함께 위에서 굽어봤다.

나는 수박통만큼이나 거대하지 않을까 싶은 대폭발 초유로부터 애써 시선을 내렸다.

“그러니까 답은 생각해 봤어? 여자가 노력을 통해 남자로부터 쟁취하는 음료?”

“응? 그러니까 그게 대체 뭔데요? 무슨 우유 같은 걸 끼얹나?”

검지로 아랫입술을 짚은 규리스가 검은 눈자위에 핑크빛 홍채를 깜빡이며 진심으로 깊은 고심에 빠져들었다.

이따금 얘를 보면 가슴이 큰 여자는 멍청하다는 풍문을 정말 믿고 싶어져 버린다.

한없이 지식과 상식이 순수한 천연.

전투에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발군의 센스를 겸비한다지만.

에우포리아의 몇 개월분 수입에 해당하는 이익이 원큐에 들어왔다.

갑자기 거금이 들어오니, 마음에도 여유가 흘러넘친다.

역시 사람은 돈을 벌어야 한다.

아라크라는 중간 이름으로, 퀸만이 갖출 수 있는 여왕성을 지닌 그녀에게 꾸준히 말을 건넸다.

“규리스도 지상으로 나가면 능히 수백도 넘을 아라크네들을 이끌고 호령할 여왕님인데, 여기서는 말단에 불과하니 아쉽네.”

“중간계에서는 능히 군체를 이끌 퀸의 칭호라지만, 마계에서는 엠프레스가 있으니 여왕보다 더 높은 여황을 섬겨야죠!”

규리스가 팔까지 덮는 오페라 글러브에 감싸인 손을 들춰 손가락들을 달게 빨아들였다.

“수마군에도 아라크네 엠프레스들이 대마장급 이상의 계급들로, 아라크네 퀸이자 소마장인 저보다 훨씬 높은 지휘자들이라시지만…… 밑에 다른 마물들과 마수들도 많으니 마냥 말단이라고 억울한 것도 아니랍니다~! 원하면 스스로 산란도 할 수 있구요! 트호호호홋!!!”

그러고는 어쩐지 짠하며 쓸쓸한 어투로 덧붙였다.

“마경의 자매들은 자유를 추구한다는 일념하에 아직 마왕군의 복속을 거부하는 성향들이 널렸으니까……. 정말 다들 먹여 주고 재워 주는 숙소의 편안함을 몰라요. 저악마들이나 악마들은 무리라도, 마족들의 복속령들에 그럭저럭 저항할 수 있는 자매들은 적극적으로 덫을 치고 마족들을 사냥해 잡아먹기도 하니까요. 지금도 협곡과 같은 매복하기 좋은 곳에서는, 몇십 겹이나 되는 지주사의 그물망을 펼친 야생의 자매들과 모험가 마족들의 사투가 벌어지고 있을걸요!? 참으로 아름다운 마경! 트호호호홋!!! 트홋홋홋홋!!!”

전형적인 말뚝 박은 군인의 발언을 일삼는 규리스.

“그것도 마왕군에 입대할 때 디스카운트 요소가 되기에, 저는 딱히 마족을 잡아먹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마안~! 대신 다른 마물들이나 마수들이라거나, 구입한 지상의 노예들은 꽤나 잡아먹었어도! 트홋홋홋홋!!! 트홋홋홋홋!!!”

“여자는 남자를 잡아먹을 생각이 아니라, 남자로부터 마실 생각을 해야 해.”

“지크 씨가 자꾸 그렇게 강요하시니, 대체 무슨 의미인지 궁금해지는 걸요? 저기, 리피키나 씨~! 그게 뭐예요?”

“……묻지 마세요.”

한없는 순수함을 담은 아라크네 퀸의 질문에 곁의 여마족 접수원이 싸늘히 응대했다.

더한 깊은 의문의 수렁에 빠져드는 규리스.

나는 검지로 입술을 짚고 순수한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기웃대는 그녀의 주의를 환기했다.

“우리 무언가 중요한 조건을 잊은 것 같은데.”

“아…….”

규리스가 여트막한 탄식성을 흘렸다.

텅텅 빈 것만 같은 골을, 망치로 세게 얻어맞아 데엥 울리기라도 하는 듯한 표정.

규리스가 상큼히 웃으며 톱니처럼 뾰족한 상어이빨들을 내보였다.

“어, 어떤 말씀이신지……? 트, 호홋!!!”

손등을 들춰 턱밑을 맞붙이고는, 애써 시치미를 떼는 천연의 아라크네 퀸.

“규리스는 나의 거미줄에 걸렸어.”

언질을 잡을 때였다.

“다음의 마경 지리 및 생태 조사는 언제야? 길드의 접수원들이 정기적으로 나가는 것. 모험가들의 안전 확보와, 길드의 퀘스트 난도 지정과 새로운 리스트 갱신을 위해 필수적으로 시행하는 업무.”

규리스의 여덟 눈들이 서서히 동그랗게 뜨였다.

“왜, 왜요……?”

나는 스트레이트로 돌직구를 내던졌다.

“서로 데이트나 하자.”

“히잇!?”

소스라치게 놀란 규리스가 양눈과 여섯 홑눈들을 부릅떴다.

뽀얀 우윳빛 피부의 안색에 피가 확 올라, 터질 듯이 후끈대는 화통이 되어 버린다.

검은 눈자위에 갇힌 핑크빛 홍채들이 각자들의 위치들에서 튀어나올 듯이 바삐 구른다.

엄청나게 자아내지는 안구 운동에 가뜩이나 많은 눈알들로 구슬을 치는 것 같네.

규리스가 느른하게 왼손을 들춰 오른팔의 어깻죽지를 슬며시 붙잡았다.

입술을 삐쭉 내밀고는, 어쩐지 쑥스럽게 쭈뼛댄다.

“2주 뒤에요……. 본디는 1개월에 1회의 정기 파견을 원칙으로, 2회도 많은 축에 속하지만…… 최근 변경의 야만마족들과 야생악마들이 복용하는 광마약(??藥)의 여파가 아닌가 싶은 사례들이 보고되고 있거든요. 지옥림 클레오르에서나 보이는 광화종들이 포착되었다는 목격담도 있고… 그런 마왕군의 군부와도 직접적으로 얽힐 가능성이 있는 중대 사안은, 직접 파견되어 육안으로 확인할 필요성도 있고요…. 애초 여기의 모험가들이나 접수원들이나, 모두 본업들은 같은 마왕군들이라지만… 적절히 리스크도 있는 만큼 혜택도 보장되기에, 이걸 확실히 해내면, 다음 진급 심사에서는 후하게 평가를 받아 확실하게 4급으로 올라갈지도….”

빠르게 사안을 정리한 규리스가 자신의 손익이 걸린 사담을 늘어놓았다.

업무와도 관련이 되었으니, 약간은 초연하기도 한 태도와 말투.

“아라크네의 스파이더 웹은 같은 두께와 길이로 뽑았을 때에, 강철의 20배에 이르는 인장 강도와 탄력을 보유하니까… 거기다 마력마저 입히면 마철강으로도 끊어내기가 불가능할 수준의 초강도가 되니깐…. 그에 더해 저는 그런 아라크네 아이들과 궤를 달리하는 강도와 탄성의 실을 뽑아내는 훨씬 상위종의 퀸이기도 하고….”

유수처럼 언변을 쏟아내는 규리스가 끊임없이 사족을 덧붙였다.

“마경 출신의 마수로서, 지리와 생태에 밝기도 하기에 파견은 제가 전담하고 있으니깐……. 능력으로 인해 저만큼 봉쇄와 포박에 특화된 인원도 없기에, 길드에서도 다들 안전하게 실내 근무에 임할 수 있는 거니…. 정마알~! 다들 몸 하나는 기가 막히게 사린다니까! 무리를 이루어서는 헬 웜조차 능히 덮치지만, 혼자서는 반경 100미르타부터 이미 땅을 파고 쥐꼬리를 숨기는 메가 래트급이야!”

여왕처럼 도도히 호령하는 규리스가 엄청난 바스트의 모핑을 흉부에 자아내며 양팔로 옆구리를 짚었다.

어쩐지 그녀 주변에 들으라고 하는 듯한 소리에, 마족 접수원들이 어깨들을 움찔대거나 고개들을 찔끔댔다.

이상할 것도 없다.

자신에 큰 이득도 없거니와, 확실한 해가 될 만한 것들로부터 철저하게 몸을 사리는 것은 마족들의 특성이니까.

규리스 곁의 마족 접수원들은 단지 그게 자신들의 성향에 맞기에 죄다 제식의 근무복들만을 갖췄을 뿐이지, 옷을 벗겨 사복을 입혀 놓으면 거리에 나돌아다니는 마족들과 똑같다.

극히 당연한 일.

“그럼 규리스와의 데이트를 위해서는, 나도 적절한 퀘스트를 받아 함께 진행해야겠네.”

“같이, 퀘스트를 수행할 생각이셔요……?”

“규리스가 일하고 있는데, 나는 잡담만 늘어놓으며 우두커니 거닐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여자 뒤꽁무니나 쫓아다니는 놈팽이도 아니고. 그때도 일할 수 있는 거라면 당연히 해야지.”

중간계 및 다른 아계들의 길드들과 그닥 다르지 않은 영업 이념을 지닌 마계의 길드도 몇 가지 특성들을 지닌다.

퀘스트를 완료한 모험가의 무사 귀환이 이루어졌을 때는, 접수원에도 마찬가지로 제공되는 부여되는 성과급인 보너스, 소위 인센티브가 주어지게 된다.

퀘스트의 성공률이 드높은 모험가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접수원들의 수익 역시 눈덩이가 불어나듯 급격히 뛰게 된다.

고로 진급에 생각이 있는 접수원들이라면, 자신의 담당 모험가들을 하나라도 더 영입하려 하며 실적에 목을 메게 된다.

해당 모험가의 수준과 적성을 고려한, 최대한의 성공 확률을 보장할 적당한 퀘스트의 제안은 필수.

금등급. 은등급. 흑등급. 백등급. 청등급. 홍등급. 녹등급. 황등급.

마강계와는 조금 다른 기준의, 금, 은, 흑, 백, 청, 홍, 녹, 황의 팔색으로 나뉘는 마계 길드 등급제의 홍등급 모험가인 나는 성공률 8할 이상의 우수 모험가다.

그녀는 엄연한 나의 담당 접수원이긴 하나, 그렇다고 보기에는 조금 애매모호한 상황이었다.

기묘하게도 내가 길드를 방문할 때는 항상 그녀가 비번일 때나, 군무로 부대에 복귀했을 때였기에 얼굴을 보기조차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를 다크 하트 길드에 영입한 게 그녀이기는 해도, 그녀가 과연 나의 담당 접수원으로 볼 수 있을지는 실로 모호하던 상태.

애초 마경 출신인 그녀는 마경의 지리에 밝기에 나의 입장에서도 매우 이득이다.

또한 내가 함께 협력하면, 그녀의 마경 지리 및 생태 조사 업무도 한결 수월하게 이루어지게 되니까.

그녀의 입장에서도 딱히 꺼릴 것이 없는 제안이다.

또한 이 김에, 그녀는 확실하게 나의 담당 접수원으로 거듭나게 된다.

“저와…… 함께 퀘스트를 진행하시겠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래, 간만에 마경에서 서로 데이트나 하자구.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밀린 이야기들도 할 겸. 나의 여자가 되라 운운은 농담이었으니까 딱히 신경 쓰지 마. 우리 사이에 무슨?”

“…….”

다른 팔로 반대편의 어깻죽지를 바꿔 잡으며, 새빨갛게 안색으로 아랫입술을 질끈 씹는 규리스.

우윳빛의 요염하고도 뇌쇄적인 미모를 홍조로 달군 채, 백옥처럼 새하얀 상어이빨을 드러낸 입새를 달싹댔다.

현재의 그녀는 어떤 감정일까.

“나와 같이 시간을 보내기 싫어?”

규리스가 여덟 눈들을 동시에 감았다.

꾹 깊게 감겨서는, 제각기 가파르게 파르르 떨리는 눈매들.

한참의 고민을 마친 그녀가, 핑크빛 홍채들을 살긋이 치켜떴다.

“……좋아요. 간만에 남동생의 안부나 들을 겸.”

“음, 규리스가 나의 누나였던 걸까?”

한때 흄이었던 호문쿨루스와, 길드에서 일하는 아라크네 퀸의 파티가 결성되었다.

“저, 저는! 따, 딱히! 지크 씨에게, 아무 감정도 느끼지 않아요! 그, 저……! 잡아먹고 싶을 정도로 깜찍한 남동생! 그 감정뿐이니까! 우리 아라크네들은 죄다 여성으로만 구성되어 있기에, 이따금 남성들은 어떻게 대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으니까! 다, 단지 지크 씨가, 저의 최초의, 길고도 진솔할 대화를 나눈 남성이었으니깐! 트흣!”

어마어마한 규격의 흉부 밑으로 팔짱을 낀 규리스가 상체와 고개를 홱 돌려 시선을 외면해 버렸다.

이윽고 꾹 감긴 여덟 눈들을 살며시 치켜뜨고는, 무언가 애틋하게 떨리는 곁눈질들.

“모험가와 접수원이 함께 파티를 이루는 것을 제약하는 규정이 있는 것도 아니지?”

“…그런 건 없어요. 애초 접수원들도 마경의 공기와 흙먼지를 들이마시며 마물과 마수의 피에 끼얹히는 것보다는, 적성에 여러모로 맞는 실내 근무를 택한 것뿐이니까. 바꿔 말하면 딱히 밖에서 모험가들로 뛰어도 상관없을 유형들이었다는 거죠. 마족은 접수원들도 죄다 전투가 가능하니까…. 마족 모험가들은 밖에서 직접 뛰는 것을 선택한 아웃도어 유형들이고, 마족 접수원들은 안에서 계산과 숫자에 시달리는 사무업을 택한 인도어 유형들이니까요…. 주변의 몇몇 길드들은, 그런 모험가와 접수원이 협력을 이루는 협업 퀘스트도 이벤트성으로 진행한다고는 하는데…….”

나는 곧장 이야기를 진행했다.

“규리스, 지금 길드가 진행 중인 퀘스트들을 확인해 줘. 이제는 손톱 등급 퀘스트들도 노릴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길드 보드로부터 2주 뒤에도 여전히 진행되거나, 그때부터 개시될 퀘스트들을 확인해 보고 올게.”

“네! 그러시길! 저는 지크 씨가 수행할 적당할 퀘스트가 있을지 리스트를 찾아보고 있을게요! 먼저 살펴보고 오시기를!”

갑자기 톤이 드높아진 규리스가 발랄히 응대하며 고개를 수그렸다.

상체를 숙이며 거미의 몸체도 함께 밑으로 푹 구부린 그녀가 밑의 서랍으로부터 두터운 서류철을 꺼냈다.

첫 장부터 페이지들을 촤라락 넘기며 내용을 확인한다.

나는 방향을 꺾어 길드 측면의 벽면으로 걸어갔다.

한쪽 벽면 전체를 차지할 정도로 크게 부착된 게시판에서, 어지럽게 덕지덕지 나붙은 여러 의뢰들을 팔짱을 끼고는 훑어봤다.

이따금 흥미가 동하는 것들은 직접 손을 뻗어 낱장들을 넘기며 내용들을 면밀히 확인했다.

내가 자아낸 이변의 연속들이 너무도 기상천외했기에, 이제 주변에는 어떠한 마족들이나 저악마들이나 악마들도 얼씬대려 하지 않았다.

졸지에 결코 접촉해서는 안 되는 불가촉의 아이콘이 되어 버렸네.

“언제나 한결같네…….”

※ 마왕이 되겠다고 선언하고 마경에 나가 10년째 실종된 형 찾기.

※ 투기장의 마수 먹이장으로부터 탈출한 수인족 노예를 붙잡아 고문하고 참살하기. (시체 제출 및 영상 기록 필수.)

※ 포획한 천족과의 천마융합 실험체 지원하기. (사망 시에 가족들 및 주변인들에 보수의 10배 위로금 지급.)

※ 헬 하피 둥지의 헬 하피들과 교접하고 산란시킨 결과물인 알 30개 제출하기.

※ 매드 오크의 발기 상태의 음경 50개 수집하기.

실로 마계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온갖 기상천외하고도 아스트랄한 의뢰들이 가득하다.

애초 길드의 규정에서 벗어나지 않는 어떤 의뢰도 자유로이 게시할 수 있는 용도라지만, 그렇다 해도 지상의 길드의 게시판들에서 볼 수 있는 의뢰서들과는 차원이 다르겠지.

보다 노골적인 욕망이 원색 그대로 표출된 느낌.

최소한의 필터링조차 없이.

“파티 플레이는…… 스킵.”

파티원들을 구하는 홍보성의 쪽지들이 잔뜩 나붙은 구석으로부터 시선을 돌려 다시금 게시판을 응시했다.

지독히도 모이지 않는 성질의 마족들로 하여금 이례적으로 결집하게 만드는 요소지만, 철저한 솔로 플레이어인 나에게는 짐일 뿐이다.

철저히 본심을 숨기고 초전에는 친근하게 굴더라도, 언제 돌변해 뒤통수에 독니를 드밀지 모를 녀석들과는 도무지 같이 일하고 싶지 않다.

마족의 음흉하며 음험한 태생적 및 선천적 성질은 모험가들이 되어서도 결코 변화하지 않는다.

마경에서 위험한 마물들과 마수들과의 교전에서 사망하는 게 아닌, 같은 마족 모험가에게 살해당하거나 실종 처리를 당하는 마족들의 비율이 배수를 넘어가니 말 다했지.

군대에서는 같은 마왕군들에 같은 군복을 입었을 전우들끼리 서로 그런 짓들을 저지른다.

그럼에도 군무가 아닐 때의 한가로움을 죽이기 위해 지원하는 녀석들은 언제나 있다.

그게 마계의 길드들이 망하지 않는 이유겠지.

또한 이제 나의 수준에서는 거뜬히 넘겨도 될 의뢰들을 보니 새삼스럽기도 하고 싱숭생숭하다.

이게 자꾸 상승하며 자신을 초월하는 것에서 발생하는 보상 심리려나.

결국 원하는 퀘스트를 찾지 못한 나는 별 소득 없이 규리스에게 돌아갔다.

“퀘스트를 찾으셨나요!?”

“그냥 그래.”

“하아앙~!”

그에 규리스가 발랄한 낭성을 외치며 높게 들춘 종이짝을 접수대에 쾅 내찍었다.

“그럼, 이건 어떠시겠나요!?”

접수대에 놓인,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비교적 싱싱한 양피지의 의뢰서.

게시판에 붙이는 형식의 싱글 퀘스트가 아닌, 접수원을 통해 직접적으로 의뢰하는 길드 퀘스트는 보다 드높은 수준으로써 훨씬 좋은 보상이 약조될 경우도 있다.

몬스터 웨이브의 개체수 조절처럼 길드가 자체적으로 상시 제공하는 퀘스트들도 있다.

“나이트 트롤 12마리의 수렵…… 나머지 소재는 상관없으나, 혈액과 심장을 제출할 것……. 의뢰주는 다클라디온 연금공방의 공방주, 자르길 녹스 슐크 겔티스가…. 몇 번 들어본 이름이군.”

리나 씨의 연금공방 에우포리아에 근무하기에, 몇 번 업무나 사업이 겹치거나 해서 알 수 밖에 없는 이름이었다.

“손톱 등급 퀘스트! 제가 마경에 파견을 나가는 정확한 2주일 후와, 이 날이 딱 겹치는 의외랍니다앙~!”

끼운 깍지를 볼에 맞붙인 규리스가 목청을 드높여 환희했다.

뿔. 날개. 송곳니. 손톱. 발톱. 꼬리.

마계의 길드에서의 퀘스트는 6단계로, 마신을 상징하는 6마성체에서 착안해 구성.

지상의 마신을 숭배하고 마족을 추종하는 집단인 마신교도들의 구성과 동일하며, 동원이 예상되는 마족, 저악마, 악마들의 전력을 길드가 자체적으로 판단해서 난이도를 추산한 등급별 퀘스트.

뿔 등급은 길드에서 더 나아가 인근의 길드들, 마왕군의 군단들마저 동원되어야 할 정도로 최상.

꼬리 등급은 전투에 미쳐 사는 마족의 성향답지 않게, 대청소나 탐색이나 채집과 관련된 한없이 비전투적인 의뢰들도 존재.

발톱 등급은 암영급까지가 중점적으로 투신하며, 손톱 등급은 적혈급부터 본격적으로 도전할 만하다.

나는 발톱 등급까지는 솔로잉으로도 무난히 헤쳐 왔으며, 손톱 등급은 아주 이따금 여러 파티들에 의해 진행되는 퀘스트에 끼어들어, 토벌이 완료되면 소재와 보상금만 분배받고는 어떤 뒤풀이에도 참가하지 않고 즉각 해산하는 식으로 해왔다.

마족들을 극히 꺼리며 불신하기에, 사실상 협업 자체가 없었다고 보는 편이 좋다.

길드의 랭크는 홍등급에, 마강계의 랭크는 적혈급인 나는 이제 솔로잉으로도 손톱 등급에 도전할 만하다.

물론 마군도나 마도시들이나 마촌들을 위협할 규모의 문제가 발생하면, 길드의 모험가들이 동원되기 전에 군단장 및 부군단장과 전사장들이 지휘하는 마왕군이 나서서 원천을 박살낸다.

그 시점이 되면, 소일거리 알바에 투신하고 있는 것에 불과한 마족 모험가들은 사실상 자신들의 본업들인 마왕군들로서 토벌하는 신세나 마찬가지가 된다.

“어차피 진로가 겹치면 상관없으려나? 그때 규리스는 잠시 휴식하거나, 원한다면 조금 거들어 줘도 좋겠고. 물론 그렇게 되면 소재는 분배할게.”

“네에! 접수원이 모험가와 함께 행동한다는 게 어색하지만, 나름 재미있을 거예요!”

“그럼…… 역시 이 퀘스트가 좋겠네.”

“이걸로 할까요? 그럼 진행할게요!”

나와 규리스가 퀘스트를 진행하려는 그때였다.

쿠르릉, 돌연 길드의 성문처럼 드높고도 굳게 닫혔던 나무문이 열렸다.

내가 자아낸 소란에 꽤나 주의를 빼앗겼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던 길드의 시선이 일제히 입구로 쏠린다.

마계의 빨간 하늘의 색상을 등으로 받아내며 들어오는 존재.

문이 닫히고는, 검던 여체의 인영이 내부의 조명에 발해 화사한 색상을 되찾았다.

산양이나 염소나 황소처럼 동물성이 느껴지는 마족들의 뿔과 달리, 아크릴처럼 한없이 매끈한 질감의 붉은 뿔들.

브레스트 플레이트를 껴입은 단아한 여체의 사뿐대는 보폭에 맞춰, 발목까지 늘어진 치렁한 드레스가 감미로운 일렁임으로 살랑대고 풀럭댄다.

철커덕, 철커덕. 사바톤과 그리브의 조합인 철화가 울리는 규칙적인 금속성.

투박한 흉갑에 나풀대는 치마라는 실로 이색적인 조합.

일순간, 실내의 모든 요소를 삭제시킬 정도의 존재감.

그녀가 자신에게 일제히 휙 쏠린 시선에 발길을 우두커니 멈췄다.

고개를 기울이는 그녀가 더없이 순수한 표정으로 물었다.

“응? 어쩐지 분위기가 조금 어수선하네? 무슨 일 있었어?”

귓전에 순결한 물방울과도 같이 스며들어, 영혼마저 간지럽히는 듯한 청아하고도 맑은 미성.

마경에서, 몇 번이고, 몇십 번이고 서로를 보았던 존재.

나는 이미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구면.

“그녀는……!”

나에게 늘 말을 걸던 여자 임프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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