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서큐버스-55화 (55/80)

〈 55화 〉 마족 길드

* * *

“하, 와와와왓!? 이거어어언!?”

피와 살이 허공을 날았다.

차원구에 고이 보관되어 있다가 개방된 헬 오우거의 소재들이었다.

약 3주 전에 마평원 제르디아에서 단독 토벌로 쓰러트린 녀석.

“후, 아아아앗!? 엄청 값비싼 소재들이, 마구 날아와요!?”

일부는 접수대까지 넘어가 낙하할 여파에 한복판의 규리스가 허둥대며 경악성을 내질렀다.

한참의 방출을 마친 차원구에서 최후의 소재가 핑 날아 규리스가 위치한 접수대에서 톡톡 굴렀다.

헬 오우거의 피를 담은 코르크 마개로 막힌 시험관.

충격을 대비한 강화의 술식이 표면에 걸려 망치로 내려쳐도 깨지지 않는다.

나는 전방을 향해 내뻗고 있던 오른손을 슬며시 거뒀다.

“우, 와하아아아악!?!?!?”

“끼햐아아아아악!?!?”

“이런 미친!? 진짜!? 헬 오우거냐!?”

“저 새끼가 홀로 솔플한 거라구!?”

주변의 마족 모험가들과 마족 접수원들로부터 귀청이 떨어질 반응과 비명이 연쇄를 이루어 터져 나왔다.

“투귀급과 암영급과 적혈급의 마족 수백은 있어야 하는 검은 폭군을!?”

“조사해! 무조건 협동한 모험가들을 살해하고는 혼자 소재들을 독식한 거다!”

“이 악독한 자식! 아무리 우리가 악을 투영하는 민족이어도 넘지 않을 선이 있다!”

“빨리 근래에 실종 처리가 된 모험가들이 있나 이력을 조사하라구요! 무조건 스틸이니깐!”

나는 부정적인 반응들과 의심들을 쏟아내는 마족들에 냉소로 응대했다.

“마족 수백을 쓰러트리기보다는, 헬 오우거 하나를 쓰러트리는 편이 훨씬 쉽지 않을까?”

“뭣……!?”

“알려진 평판대로, 검은 폭군은 마왕군의 중마대 규모는 결집해야 잡을 수 있어. 그런데, 그 의미는 결국 헬 오우거보다는 마족 수백이 더 강하다는 말이야. 설령 일부가 상하거나 죽을 수 있어도, 제대로 토벌이 진행된다면 대부분의 인원을 온전하게 유지할 수 있다구. 그런데 내가 헬 오우거보다도 훨씬 강하며 어려울 마족 수백을 혼자 쓰러트리고는 소재를 독식했다? 보다 훨씬 어려운 난이도를?”

“…….”

“나는 아직 그 정도까지의 강함은 되지 않는다. 아무리 지금의 나라도, 결집하면 엄청난 힘을 내는 마족 수백과 동시에 싸워 이길 자신은 없다. 여기 길드의 너희 모두가 동시에 덤벼들면, 결국 당해낼 수 없듯이. 마족 수백보다는, 그나마 훨씬 쉬운 헬 오우거를 자신을 돌파하는 역경을 통해 잡아냈다. 운과 실력의 모든 요소가 따라 주었다. 그뿐이다.”

그 어떤 군더더기나 잡설도 없는 허심탄회한 단평.

나의 발언에 길드에 침묵이 깔렸다.

자신들의 논리적 모순과, 규리스가 당도하기 전에 내가 했던 발언이 묘한 일치를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마족들은 잔꾀들과 잔머리들이 심해서 그렇지 종특적으로 두뇌들이 매우 비상하다.

이윽고, 여전히 무언가 못마땅하거나 꺼림칙한 기색들로 일제히 시선들을 외면했다.

“하, 와, 와앗……!”

고개를 기울여 바보스러운 표정을 내쬐는 규리스는, 그야말로 영혼에 망치로 한 대 얻어맞기라도 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야 당연하겠지.

자신이 접수원으로 일하게 된 이후, 이렇게나 대량과 고급의 소재를 홀로 몰고 온 모험가들이 없었을 테니까.

그녀만이 아닌 주변의 경악에 휩싸인 다른 마족 접수원들 모두 마찬가지다.

마왕군의 상급전사로서 전사장의 자격을 갖춘 칠흑급 이상이 되면, 끝없는 품평회에 자신을 올리는 것과 마찬가지인 모험가 따위로 투신하지 않는 게 전형이니까.

결국 지상도 그렇지만, 모험가들은 밑바닥들이나 전전하는 직업군이라는 것.

모험의 낭만과 보물의 기대는 그야말로 허울 좋은 수식일 뿐이고.

중간계는 진짜 그것밖에 먹고 살 길이 없는 인생들이 투신하기도 하지만, 마계는 사회에서 딱히 일하지 않아도 죽을 때까지 평생 군복을 입을 운명들이 그저 심심풀이로 뛰는 파트타임이라는 차이점은 있겠다.

“뭐 해? 판별 및 감정.”

나는 넋이 나간 규리스에 현실로 돌아올 것을 알렸다.

“아, 아아……?”

규리스가 까만 눈자위에 감싸인 핑크빛 홍채를 깜빡였다.

양눈과 여섯 홑눈들이 불규칙적으로 가파르게 꿈뻑인다.

그러고는 자신의 주변에 내깔린 엄청난 업무량들을 막연히 둘러본다.

“네에, 그래야겠지요…….”

여덟 거미발들을 타각대는 규리스가 먼저 자신의 측면에 떨궈진 거대한 고깃덩이를 믿을 수 없는 완력으로 번쩍 들췄다.

헬 오우거의 절개한 근육을 초대형 페미컨처럼 정사각형으로 꽉꽉 초압축하고는, 외부에 헬 오우거 힘줄들을 밧줄로써 칭칭 감아 포장한 것.

주변에는 헬 오우거의 골격들을 헬 오우거의 가죽으로 칭칭 휘감은 형식의 뼈다귀들이 폭격이라도 당한 듯이 난잡하게 널려 있다.

헬 오우거의 혈액을 수납한 코르크 마개에 막힌 시험관들은 수백 병도 넘게 접수대 안쪽의 모서리 구석구석까지 흩어져 나뒹군다.

아무리 사용자에게 만능의 수납 공간을 제공하는 포켓 디멘션이라도, 무분별한 공간의 낭비를 막기 위해 이런 식의 효율적 보관법은 필수다.

내부에서는 보관물들의 신선도가 유지되기에 당시 현장에서 갓 해체한 것과 마찬가지로 싱싱하다.

“흣, 차……!”

여트막한 기합성을 흘리는 규리스가 헬 오우거 근육과 힘줄의 덩어리를 끌어안고 접수대 안쪽으로 이동했다.

구석에 덩그라니 놓인 킹사이즈 침대만큼이나 커다란 금속성 측정계에 툭 떨군다.

팔꿈치들을 끌어안고는 측정계의 첨단에 치솟은 유리체의 표면에 가파르게 떠오르는 수치를 살핀다.

그러고는 잠시 다시 그녀의 본연의 자리에 돌아와 양피지와 깃펜을 잡고는 무언가를 끄적였다.

여전히 마족들과 저악마들과 악마들이 이채로운 시선들로 힐끔대는 속에, 감정이 시작되었다.

10미터가 넘어가는 거체의 녀석을 통째로 분해한 부산물이기에, 홀로 모두 처리하기에는 지대한 시간과 노력이 수반된다.

주변의 나머지 마족 접수원들도 나와서 거들었다.

나는 접수대에 얹은 손가락들을 톡톡 튕겼다.

“정신없어?”

“정신이… 없을 수밖에, 없지요…….”

미간을 찌푸리며 홑눈들과 양눈들도 함께 찌푸린 규리스가 바쁘게 양피지에 깃펜을 휘놀렸다.

접수원들이 접수대 외부와 내부의 카운터 안쪽까지 잔뜩 흩뿌려진 소재들을 바삐 세고 측정계에 무게를 달며 가치를 헤아렸다.

감정의 자격을 지닌 감정사 접수원들이 연신 유마법 아이덴티파이 및 애널라이즈와 마도구 스캔 글라스를 발동해 눈부신 휘광을 발휘하며 행여나 진품이 아닌지 판별한다.

“본래는 코카트리스 킹을 솔플할 생각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예상 못한 노다지를 만나게 되었어.”

“그렇…군요.”

나는 그저 가만히 있기도 멋쩍어 규리스에게 간헐적으로 말을 붙였다.

“언제 복귀해?”

“자흑의 월 야암의 주 오만의 요일이요. 아직 3개월 남았어요.”

“수마군 격진군단 절망의 도래에서 복무하고 있댔지?”

“넹~!”

규리스가 찡긋 화사한 눈웃음을 지으며 경례를 올려붙였다.

그러고는 분주히 깃펜을 놀려 입품된 소재 매입에 의거하는 길드의 정규 절차의 계산서를 작성해 나갔다.

직접 모험가로 뛸 정도의 강력함을 겸비했으나, 그녀는 이편이 성향이 맞다며 이렇게 접수원으로 투신하고 있다.

마왕군은 박봉은 아니지만 은근한 방면에서 이런저런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군무 동안에는 병영에서 정식적으로 제공되는 숙식, 기타 군납으로 제공되는 전투복과 장구류를 제외한 나머지 방면은 전사 개개인의 재량에 맡기는 탓에 헤프게 돈을 쓰는 마족들은 의외의 요소에서 낭패를 보게 된다.

그런 녀석들이 흑화해 중간계로 나서서는 학살과 약탈을 초래하는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중간계는 마계의 놀이터 취급이지만.

“그나저나, 원래 이 자리에 있어야 할 헬크스가 아까부터 안 보이는데요~?”

“금태양 인큐버스라면 길드 밖에서 나뒹굴고 있어.”

“오마나~! 우리 헬크스가 또 민폐를 저질렀다니! 그런 마음가짐이라면, 사회에서 일하기 힘들다고 몇 번이나 주의를 기울였는데도! 칭칭! 묶어서 팡팡! 때리는 체벌이 필요하겠네요! 시간을 들여서, 재교육할게요오옷~! 트호호호홋!!! 트홋홋홋홋!!!”

발랄히 외친 규리스가 재차 경례를 올려붙였다.

그러고는 그윽하게 내리깐 눈매로 보이지 않을 속도라 비유해도 좋을 신속으로 깃펜을 놀린다.

“그때 마경에서 보았던, 특별한 능력을 통해 엄청 강해지신 모양이에요……. 놀라워요. 이렇게나, 단기간에…….”

“명백한 적혈급의 영역이야. 의외로 규리스와 멋진 승부가 가능할 수도. 놀라운 결과가 날지도?”

“놀랍네요…….”

막막한 음성을 흘리는 규리스가 보브컷의 늘어진 양옆 머릿결을 살랑대며 후방으로 흘끗 고개를 돌렸다.

마족 접수원이 앞으로 나와 메모가 적힌 쪽지를 규리스의 접수대에 놓고는 휙 가버렸다.

규리스가 쪽지에 적힌 수식들도 분주히 합산하며 주판을 두드려 계산을 마쳐 나갔다.

“헬 오우거 혈액… 825병으로 약 37,125리리테. 헬 오우거 힘줄… 82줄로 약 325키라그. 헬 오우거 가죽… 65장으로 약 284키라그. 헬 오우거 근육 및 헬 오우거 골격… 765키라그, 582키라그… 기타 입품된 소재들의 종합적 값어치를 합산하면……! 가장 최고가의 헬 오우거 하트는 없네요?”

“먹어 버렸어.”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종합적 매입가는……!”

규리스가 양눈과 홑눈들을 게슴츠레 뜨며 고개를 번쩍 들췄다.

“6,240골디아…… 최소 5,000골디아의 가치를 지닌, 헬 오우거 하트를 빼놓고요…….”

일순간 길드에 적막한 침묵이 가라앉았다.

마족 모험가들과 마족 길드원들의 공통된 시선들이 나에게 꽂혔다.

수백 명이 동원되어야 토벌할 수 있는 거물로부터 나온 수익을, 홀로 독식하게 된 대상에 대해 감출래야 감출 수가 없는 감정을 품은 눈빛들이었다.

눈앞의 규리스도 사실상 동일한 눈이었다.

로또 당첨자를 눈앞에서 보는 농협 직원의 기분이랄까?

“축하……드려요오.”

도도하고도 고고한 아라크네 퀸의 헤벌어진 입에서 혼이 빠져나오는 착시가 느껴졌다.

규리스의 뒤쪽에서 마찬가지로 넋이 나간 눈의 마족 접수원이 빛나는 금화들이 담긴 상장함을 양손으로 받쳐들고 왔다.

악마의 옆얼굴이 그려진, 손바닥에 절반 정도 들어차는 크기인 커다란 골디아들과 딱 동전 정도인 작은 골디아들.

장당 100골디아의 가치인 중마금화 62장. 그리고 장당 1골디아의 가치 그대로인 마금화 40장.

“노력으로 쟁취한 복권이지.”

나는 접수대에 놓인 보상금에 차원구를 개방했다.

한화로 6천만 원에 달하는 수익이 입수되었다.

모험가 최대의 환희의 순간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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