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 마족 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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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까지이~! 아무리 서로 죽일 정도로 원망스럽고, 증오스럽더라도! 결국 우리는 같은 마의 일족~! 또 같은 다크 하트의 길드 가족이라는 거에요! 아, 마족에게는 전혀 설득력 없나요!? 그래서, 어찌 되었든~! 길드의 내부 규정으로도 엄격히 금지된, 서로 불미스러운 일은…… 어맛?”
길드의 거대한 아라크네가 나타났다.
양손에는 진한 핑크빛의 거미줄들이 마치 실뜨기를 구사하듯 늘어져 질척댄다.
“어맛……? 싸움이 어디? 디라츠 님이 황급히 호출하셔서, 헤이스트까지 쓰며 서둘러 달려왔는데에에에에……?”
심히 깊은 의아함에 물든 여성의 얼굴에서 8개나 되는 핑크빛 동공들이 선명하게 빛난다.
그것은 터무니없이 거대한 거미와 여인의 상체가 융합을 이룬 괴물체였다.
순은을 녹인 듯한 진한 은발 보브컷의 양옆 끝자락이 얼추 쇄골에 닿는다.
비대칭 가르마의 머릿결로 한쪽 눈을 가린 곳에서는 형형한 진분홍의 홍채가 검은 눈자위에서 반짝인다.
이마 라인을 따라 안면의 양눈과 동일한 형상과 빛깔의 여섯 홑눈들이 아치형으로 빙 둘러져 요악스레 깜빡인다.
더없이 풍만하고도 터질 듯한 우윳빛 뽀얀 피부 여인의 상체를 가리는 것은, 금빛 테두리에 칠흑빛으로 세트를 이룬 브라탑과 양어깨 아래까지 감싸는 오페라 글러브.
그토록이나 아찔한 육감적 여성의 미체와 대조되게, 하복부 아래의 하체는 둘레 3미터는 될 듯한 칠흑빛에 가까운 검보랏빛 거미의 복부.
굽어지고 꺾인 금속성 랜스처럼이나 두텁고 굵직한 여덟 다리들이 타각대며 여성의 상체를 유지한다.
“공연 끝났습니다.”
나는 왼손의 엄지를 좌로 가리켰다.
“엣……?”
본인도 스스로의 화려한 등장이 벙찌는지, 나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시선으로 함께 따라간다.
묵사발이 나서 퇴적된 쓰레기의 형상을 연출하며 허덕대는 배드 브로스.
“참고로 저쪽이 시비 걸어서 가볍게 손만 봐줬을 뿐이야. 마왕군에 고소당할 시빗거리를 결코 제공당하지 않게. 보다시피 숨통들도 멀쩡하게 붙어 있고, 저 정도 상처들이야 마의를 찾아가면 만사 해결이고.”
“엣……? 그, 그러니까? 끝난 거예요…?”
“종 쳤습니다.”
나는 뿌듯한 미소와 완곡한 어투로 상황의 종료를 알렸다.
돌연 규리스의 양손에 늘어진 핑크빛 거미줄들에 끈적한 기운이 피어오르더니, 허공으로 솜사탕처럼 녹아들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윽고 규리스가 양손으로 볼을 맞잡으며 뭉크의 절규를 연출했다.
“에, 에에에에엣~! 끄, 끝나 버렸다구요! 그렇게나 상황을 사수하려고 전력으로 질주했는데!”
그러고는 스스로도 어처구니가 없는지, 한 손으로는 입을 가리고 남은 손으로는 뒷목을 잡아 깔깔 웃음을 터뜨린다.
“트호호호홋!!! 트홋홋!!! 어, 어머! 늦어 버렸네용~! 점심 휴식 시간에 맞춰, 카펠레테 1번가에 위치한 마계 최대의 백화점인 크림슨 하트니스에서 금일만 특별 할인에 돌입하는 퍼퓸들의 신상품을 사수하려고 했다가, 그만…….”
규리스가 톱니처럼 뾰족한 상어이빨을 드러내며 환히 웃었다.
나는 딱히 근무 태만을 저지른 것도 아닌, 지상으로부터의 눈높이가 3미터에는 달할 여인체를 올려보았다.
규리스가 폭발할 듯이 융기한 흉부 아래로 팔짱을 끼고는 화사한 눈웃음을 지었다.
“지크 씨이~! 정말 오랜만이네용!? 트, 홋홋홋홋!!! 트홋홋홋홋!!!”
“안녕, 규리스.”
“오실 때마다아~! 제가 항상 비번일 때거나, 아예 군무 중이거나 할 때가 있어서! 트홋홋홋홋!!! 트홋홋홋홋!!!”
양손을 맞쥔 규리스가 4쌍의 거미발들을 진심 들뜬 듯이 제각기 따각대고 털걱댔다.
리나 씨와 파릴케보다도 명백한 한 수 위의 용적, 브라탑에 감싸인 상체의 폭발적인 융기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출렁댄다.
적게 잡아도 둘레 3미터는 될 법한 거대 거미의 몸체를 가진 여인이 튀어나와 접수대의 정중앙을 떡 차지하니, 주변의 마족 접수원들이 모조리 밀려나는 형색이 되었다.
귀청이 터질 듯이 요사스러운 웃음을 터뜨리는 규리스가 맞쥔 양손의 손등을 볼에 찰싹 맞붙였다.
“지크 씨만 보며언~! 그때의 아련하고도 애틋한 추억이 떠올라 마음이 싱숭생숭해져욧! 아직 제대로 실조차 뽑아낼 수 없던, 소녀 시절의 풋풋함이~!”
“규리스에게는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트아앗~! 그렇게 말씀하시니! 일상과 업무에 찌들어 이 칠흑해처럼 시커멓게 물들었던 여심에도, 화설산의 용혈보다 뜨거운 불줄기가 활활 피어나요! 지크 씨가 나의 마음을 마염과 지옥염으로 불살라 버렸어!”
“누가 들으면 내가 터무니없는 위계의 매료술을 시전한 줄 알겠다.”
“트, 하아아아앗~!”
규리스가 한없이 전위적이고도 잔위적인 액션으로 이마를 감싸쥐고 빈혈증처럼 고개를 어질댔다.
그녀는 원래부터 이런 성향.
나는 지긋한 미소로 아득한 눈높이의 그녀를 올려보았다.
사실 나와 그녀는 의외의 인연이 있다.
전생하고 나서 정확한 6개월째.
마계의 생각보다 가혹한 현실에 좌절한 나는 무턱대고 마경에 뛰어들며 육신을 단련하고 있었다.
비가 오면 땅이 굳고 부러진 뼈가 단단하게 붙듯, 나의 고유 능력인 창석술 파워 스톤은 사용하면 할수록 강해지며 굳건해지는 구조였다.
마경의 밤은 극도로 위험하다는 리나 씨의 주의 사항을 따라 결코 밤을 넘게까지는 마경에 체류하지 않았는데, 한 번은 몇백 규모도 넘어가는 헬 래빗 무리를 상대하며 너무 과도하게 몰입한 탓에 그만 밤에 돌입해 버렸다.
한없는 적의와 살의를 아득하게 발산하기 시작하는 세계로부터 충격에 휩싸였던 때에, 나를 극적으로 구원한 손길이 있었다.
다크 하트 길드의 6급 접수원, 규리스 아라크 라크네이아.
그녀는 당시 마경의 생태와 지리를 조사하기 위해 길드로부터 파견을 나왔던 시점이었다.
마계의 길드의 접수원들 역시 진급을 위해서는 여러 요소들로 자질을 감평받는데, 그중 하나가 마경의 지리 조사.
나와 그녀는 서로 등을 맞대며 덮쳐드는 몬스터 웨이브로부터 버텨내며 이동해서 함께 은닉할 동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 역시 마경이 고향이었기에 안마당에 대한 자신감이 넘쳤고, 진급을 위한 욕심에 너무 무리한 나머지 저지르지 않던 실수를 저질렀던 것이다.
그리고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밤을 보내고는, 일출과 동시에 함께 마경에서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다.
“그때, 지크 씨를 안 만났더라면……! 제가, 그런 식의 단련은 위험하며, 보다 효율적이며 정식적인 배상을 위해서라도 길드에 가입하라 조언해드리지 않았다면……!”
“난 어딘가에서 죽어 새하얀 해골이 되어 있겠지!”
“힉! 끔찍한 상상이여요!”
진심 질색인 듯한 표정의 규리스가 양눈과 홑눈들을 질끈 찌푸렸다.
그녀의 거미의 하복부 상단에 백장미를 형상화한 문양이 보인다.
동일한 문양이 찍힌 아라크네들을 산란하는, 아라크네 퀸만이 오롯하게 가질 수 있는 자격이자 증거의 상징.
마계는 세계의 모든 마종들과 그 원종들이 되는 존재들이 집결한 근원지.
보편적으로는 섀도, 다크, 블랙과 같은 어두운 계열의 색상들로 지상의 동종들과는 현격히 다른 수준을 나타내며, 헬리시, 헬, 킹, 퀸, 딥, 어비스, 그로스, 블러드, 데스, 메가, 메갈로, 점보, 기가, 기간틱과 같은 온갖 종의 극강임을 수식하는 미사들이 서두에 붙는다.
세계의 모든 마종들의 원산지가 되는 마계는 지상과는 한층 강렬한 힘의 피라미드를 구성한다.
중간계에서는 능히 무리를 지도할 위명의 킹과 퀸들이, 마계에서는 군체의 멤버들에 불과하다.
마계에는 킹과 퀸보다 더한 수식인 엠퍼러와 엠프레스를 계승하는 최강종들이 존재한다.
마계의 순도 그대로의 마기에 본연의 형질도 변이해서 자가번식을 능히 구사하게 되었다.
하피 퀸들과 라미아 퀸들과 같은 여성체 마물들과 마수들도 스스로 산란이 가능할 정도다.
“으음…? 규리스 씨? 너무 그렇게 거미발들을 뒤척대면 업무를 볼 수가 없어요.”
“어맛!? 미, 미안해요! 트! 홋홋홋홋홋!!! 트홋홋홋홋홋!!!”
발랄한 거미 소녀와도 같이 연신 거체를 움직여대는 규리스에 견디다 못한 곁의 여마족 접수원이 한소리를 했다.
한쪽 눈매의 눈물점이 치명적인, 여황은 아니나 여왕 그대로의 미모는 보유한 그녀.
수십 미터의 거체를 지니는 용족도 인간형으로 바꿔 몇 미터 수준으로 줄이고 있는 것처럼, 그녀 역시 폴리모프를 통해 실제 몸집에 비해 통상적인 아라크네의 크기로 축소시키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평범한 인간 여성의 상체와 비슷한 크기를 유지하고 있는 현재와 달리, 그녀의 실제 크기는 인간형 상체만 3미터에 달하고, 거미의 몸체는 6미터에 달할 정도로 거대하다.
일반적인 암거미보다 훨씬 큰 여왕거미이기 때문이다.
거미의 몸체를 변형해 인간형의 하체를 발달시키고 버젓이 거니는 것도 가능하다.
딱히 폴리모프로 크기를 축소할 필요가 없는 마경에서는 그녀의 등에 올라타서 후방을 경계하며 싸웠다.
지상에서는 능히 아라크네들의 군체를 이끄는 여왕, 하지만 마계에서는 자신이 군체의 일원에 불과하다.
마계에는 왕들과 여왕들보다 더한 상위급이자 초월종들인 황제들과 여황제들이 있기에.
아라크네 퀸들을 이끄는 아라크네 엠프레스는 인간형 상체는 6미터에 거미의 몸체는 12미터로 거인족에 필적할 몸집을 지닌다.
참 절륜하며 전율적인 밸런스의 마계다.
“지크 씨에게 누나 소리를 들으면 얼마나 좋으려나~! 정말이지! 몇십 번이나 요청해도 안 되는 조건이 있네요!”
”368세. 인간의 기준으로 고조할머니 4배인데 정말 그런 호칭으로 불려도 괜찮겠어?”
“힉!? 호, 혹시, 공방의 리나 씨를 이미 누나라고 부르고 있다던가!?”
“그녀는 나의 주인이고. 집사가 어떻게 여주인한테 누나라 불러.”
“히잉~! 리나 씨에게 누나라 부르는 지크 씨의 모습을 상상하니, 너무 귀여운 상사이 들어 확 잡아먹고 파요~!”
“나는 다른 의미로 규리스에게 잡아먹히고 싶은걸.”
“어머, 그건 어떤 의미에서 먹히고 싶다는 걸까나아~? 트호호호홋!!! 트홋홋홋홋!!!”
손등을 턱밑에 들춘 규리스가 그야말로 여왕의 웃음을 터뜨렸다.
“이거, 다아~! 농담인 거 아시죠~? 제가 깜찍하고도 귀여운 남동생과도 같은 지크 씨를 먹긴 왜 먹어요. 마왕군에 입대한 저와 같은 마수나 다른 마물은, 더 이상 마족을 잡아먹어서도 안 되는데!”
“여자가 노력을 통해서 남자로부터 먹을 음료는 따로 있어.”
“네? 무슨? 남자들이 무언가를 만들어 내나요?”
양눈과 홑눈들을 동그랗게 뜬 규리스가 고개를 기웃댔다.
주변의 여마족 접수원들이 나를 싸늘하게 흘길 정도.
바로 알아듣지 못하는 걸 보니 아마도 천연.
“마계에는 이런 유형이 정말로 참 많지…….”
“네? 그러니까 뭐가요?”
그녀는 6마군장의 일원인 수마왕 디아블로가 이끄는 수마군 격진군단 절망의 도래 소속.
군단의 대부분이 복속된 마경의 마물들과 마수들로 이루어지나, 마물들과 마수들의 자의적으로도 마왕군의 수마군에 입대할 자격을 지니며, 마족의 복속령으로부터 견뎌내는 입단식을 치르게 된다.
복속령에 버티지 못하면, 그대로 복속되어 대대로 이어질 자식들과 새끼들도 줄줄이 편입되는 구조.
시도에 어느 정도까지 버티면 상위의 지휘관급들로 배속되는 구조다.
마족은 마물과 마수의 검이, 마물과 마수는 마족의 방패의 기제를 따르는 마수인 그녀는 트노시아와 엇비슷한 적혈급의 강자.
적혈급 마족들과 저악마들과 악마들의 복속령에는 능히 버티며, 칠흑급의 복속 시도에도 어느 정도까지는 버텨내며 자아를 잃지 않고 자신을 온전하게 유지할 수 있다.
“저번보다 차거나 달거나 끼고 있는 것들이 증가했네?”
“아! 아아! 이, 이건!? 그, 그냥! 취향이랍니다아~! 우훗!”
나의 발견에 그녀가 여덟 눈들을 분주히 굴리며 할 필요도 없는 딴청을 피웠다.
목에 치렁치렁한 금목걸이의 형식으로 착용한, 마물들과 마수들의 전용 마도구인 안티 데몬 체인이 보인다.
기타 손가락들의 반지들과 팔목들의 팔찌 형식들로 주렁주렁 차인 장신구들.
마도구인 줄을 모른다면 그저 치장을 좋아하는 성격으로만 보인다.
저 정도면 칠흑급의 상급전사이자 전사장 수준인 마족들의 복속령에마저도 저항할 만하다.
마물과 마수에 있어서 자아를 잃고 마족의 수족이 되는 것은 사형과도 같은 선고.
그것에 필사적으로 저항하고자 하는 독립적인 성향이 돋보인다.
마족의 명령에 저항할 수 있는 그녀가 주변을 슬쩍 돌아보고는 발랄히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 서로를 너무 좋아하다 보니, 잡담이 길지 않았나요? 그나저나 뒤의 마족 길드원들께서 이쪽으로 영 접근을 안 하시네요?”
“우리의 존재감이 너무도 막대해서 그래.”
“트홋! 농담도오오~!”
손으로 입을 가린 규리스가 발랄한 웃음을 터뜨리며 눈웃음도 지었다.
참 기묘한 일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마족들과 직접 전투마저 치르고는, 살벌한 신경전마저 후속으로 겪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72악마교단과의 독대까지.
하지만 그녀와 이렇게 대화하고 있으니 그런 것들이 사르르 녹아드는 기분이 든다.
어째서 편안한 기분이 드는 것일까?
그녀를 보고 있으면, 리나 씨와 비슷한 느낌마저도 든다.
농으로 던진 그녀의 말대로, 정말 누나와 대화를 하는 느낌마저.
우리는 이미 함께 서로를 믿으며 마경의 밤을 보낸 인연이 있기에?
마수인 그녀 역시 기본적으로는 악의 성향이라지만, 이렇게 개인적으로 친해지면 또 한없이 친근한 게 참 종잡을 수가 없다.
그게 마의 일족의 특징이자 매력이라면 매력이겠지.
“규리스, 내가 진짜 재미있는 농담 하나 해줄까?”
문득 피어오른 장난기였을까?
나는 꿀꿀했던 기분도 죽일 겸 그녀를 놀리고 싶어졌다.
나는 인간형 육체의 양손을 다소곳이 모아 지긋한 미소를 짓는 그녀에 손짓했다.
“네? 무엇을요?”
“내가 3주 전의 마평원 제르디아에서 아주 재미있는 것을 잡았거든?”
“어, 머……! 마평원……!”
양손을 교차해 입가를 가린 규리스가 진솔한 신음성을 흘렸다.
나와 그녀의 추억이 깃든 장소이기에.
“소재들을 매각하려고 온 거야.”
“그, 그래서……? 무슨 마물이나, 마수의 소재를 가져오셨길래?”
나는 조금 뜸을 들이고는, 진중하고도 비장한 목소리로 발언했다.
“헬 오우거.”
“히이이이익!?!?”
즉각 터져 나오는 폭발적인 반응.
주변의 다른 마족들의 업무들을 처리하던 접수원들마저 일제히 눈들이 휘둥그레져 나를 바라본다.
그야 당연한 반응이다.
“저, 정말욧!? 헤, 헬 오우거를!? 아니, 잠깐! 애초 지크 씨가 최종적으로 치른 승급전에서의 전력은 암영급 아니었나요!?”
“맞아.”
“그런데 어떻게요!? 최소 지휘관급인 적혈급의 마족 네댓, 암영급의 마족 수십과 투귀급의 마족 수백은 있어야 하는 검은 폭군을……!? 다, 당연히…… 다른 마족 모험가들과, 협력하셔서?”
“나는 솔로 플레이어인 줄 알잖아.”
“히이이이잇!?”
더더욱 대경의 반응을 내보이는 규리스가 날선 기성을 내질렀다.
이젠 주변의 마족 접수원들과 마족들마저 노골적으로 신경 쓰며 힐끔대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그런 반응들을 즐기며 규리스에게 조건을 내걸었다.
“그래서 말이야, 규리스. 내가 한 가지 조건을 걸어도 돼?”
“어, 어떤……?”
“내가 그 증거들을 눈앞에 보이면, 나의 여자가 될 것.”
“아……!”
일순간 규리스가 침묵에 빠져들었다.
이윽고 양손으로 가린 입의 주변으로 홍조가 올라오더니, 안면 전체가 확 달아올라 버렸다.
“마, 말도 안 되는……! 무슨? 그런 허무맹랑한 조건을? 아니, 애초 지크 씨는 그런 것을 사냥조차 불가능하시잖아요……! 저와 최초로 만나셨을 그때도, 실력은 고작해야 투귀급 정도에, 암영급까지 올라오신 것도 기적이라 봤는데……!”
“사정이야 시간이 지날수록 변화하니까. 그래서, 내기할 거야, 안 할 거야?”
“…….”
치명적 마성과 아찔한 매력을 보유한 아라크네 퀸이 얼음장처럼 굳는다.
한동안의 고민.
풍만하다 못해 터질 듯한 육덕진 인간형 여체가 안절부절하며, 모은 팔뚝들을 비비 꼰다.
심히 깊은 고민을 담아 떨리는 얼굴과 이마의 여덟 핑크빛 눈동자들.
돌연 규리스가 과장될 정도로 목소리를 드높이며 팔을 번쩍 치켜들었다.
“좋아요! 애초 불가능하니까!”
나는 즉각 회심의 지소를 지으며 어슬렁어슬렁 물러났다.
토벌한 헬 오우거는 해체를 통해 차원구에 차곡차곡 보관했더라도, 그 용적들이 보통이 아니니까.
규리스와 마족 접수원들 마족들의 시선을 받으며 꽤나 떨어진 공간까지 물러난다.
그녀가 아예 작아지기까지 한 시점에, 나는 찢어질 듯한 미소로 발언했다.
“나의 여자가 된 것 환영해, 규리스.”
나는 헬 오우거의 소재들을 개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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