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화 〉 마족 길드
* * *
“싹 다 덤벼.”
나의 목소리가 침묵이 깔린 마족 길드에 울렸다.
접수원들도, 마족들도 모두가 공통된 경직의 속에서 움직이고 발성하는 존재는 나뿐이었다.
나는 보다 사납게 치뜬 눈으로 내부의 마족들을 천천히 훑었다.
시계 방향으로 천천히 돌며 전방의 모험가들, 길드 벽면을 뚫고 날아가 처박힌 배드 브로스 파티의 멤버들, 후방의 접수원들을 훑는다.
마족, 저악마, 악마의 다양한 마의 일족들의 면전들을 면면이 훑고는, 다시 완전히 한 바퀴 회전해 전방의 모험가들을 보고 섰다.
“안 덤비냐?”
몇몇 마족들이 찔끔하면서 손아귀들에 미약한 마력의 기운을 휘감았다가 즉각 꺼트린다.
옆구리에 차거나 등에 걸멘 다양한 형상들의 병장기들에 손을 댔다 이내 떼어낸다.
나는 쪼다들과도 같은 그 모습들에 헛웃음을 터뜨렸다.
“참고로 보다시피 저 새끼들 모두 멀쩡하게 살아 있어. 너무 멀쩡하지. 그런데, 그것도 철저한 의도였다?”
나는 한없이 음산하게 목소리를 내깔았다.
“또 덤빌 새끼들? 있냐고? 싸그리 짓밟아 줄게.”
마경에서 나를 몇 회나 봤다고 추측되는 마족들, 명백히 공방을 들러 몇 회 포션들을 구입한 전적이 있는 마족들은 황급히 시선들을 관리하거나 눈길들을 낮춘다.
이것은 단순한 공포 분위기 조성만이 아닌, 일취월장해 향상된 나의 실력을 과시하는 퍼포먼스의 목적도 있다.
마침 지금은 아다마스를 착용하고 있지 않은 사복이라도 얼굴은 알아볼 수 있으니까.
추후 진상손님의 비율이 어느 정도는 줄겠군.
나는 후방으로 돌아 접수원들을 마주했다.
“너희들만큼은 처음부터 뒤에서 보고 있었기에 모든 상황을 알 거다. 금일 나와 녀석들의 시비로 인해 길드에 발생한 물리적 피해에 대한 보상은, 모조리 저 녀석들에게 청구하도록. 이상.”
나는 쓰게 덧붙였다.
“참고로 저 새끼들과 혹시 관련자들이 있으면 안심해라? 적법한 마투의 조건이 성립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살상이라는 명목을 붙여, 괜히 마왕군에 고소당하고는 마회에 회부될까봐 결코 죽이지는 않았다? 여기서는 죽이기엔 보는 눈들이 너무 많아 어쩔 수 없었으니까? 나는 생각보다 매우 바쁜 사람이고, 귀찮은 일에 휘말리는 것을 엄청나게 싫어하는 성격이야.”
그에 마족들로부터 떠들썩한 폭소가 자아내졌다.
“흐햣햣햣햣! 뭐라는 거야! 저 미친 새끼!”
“어머머멋! 웃겨! 지금! 진짜 웃긴 소리!”
“헤헤헷! 무엇 하는 놈이더냐아아~?”
“훗. 더 짖어 보시기를.”
마족들이 코앞에서 벌어진 끔찍한 유혈 사태에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떠들썩하게 폭소했다.
재미난 동물원 원숭이가 생겼다는 듯이 맥주잔들과 와인잔들을 들이키며, 각자들 근처에 어깨동무를 두르거나 맞붙는다.
나는 예상된 한결같은 반응에 싸늘하게 내뱉었다.
“대체 인간들이 뭘 잘못했다고 그렇게들 괴롭혀대는 거냐? 나머지 타종족들은 무슨 죄라고 그렇게들 핍박하며 박해하고? 반드시 착하게 살라고 훈계질하는 게 아니야. 그저 가급적이면 남한테 피해 주지 않는 선에서 살라는 거지. 너네 이러다 쌓인 업보가 언젠가 되돌아오면 어쩌려 그러냐?”
가시처럼 비죽비죽하게 곤두선 머릿결, 반다나를 이마에 두른 남마족이 탐욕스럽게 혀를 빼물었다.
“에헷! 약해 빠진 쓰레기들을 좀 괴롭혀 주는 게 뭐가 어때서!”
“크, 핫핫핫핫핫!!!!!!”
“아핫핫핫핫!!!!!!”
“꺄꺄꺄꺄!!!!!!”
더욱 떠들썩한 폭성처럼 터져 나오는 폭소들의 합산.
마족들이랑 말싸움할 때마다 격렬히 마계를 탈주해 지상의 용사군에 입대하고 싶어진다.
오직 이 새끼들을 조지기 위해.
집에 기다리고 있는 여자가 있고 터전도 여기여서 무리지만.
“처웃기는…….”
이미 엎지른 물은 돌이킬 수 없다.
수틀린 상황도 되돌릴 수 없다.
나는 대화를 유지하며 상황을 지연했다.
양측 모두를 중재할 힘을 확실하게 갖춘 그녀가 오기까지를 기다리며.
“헤에, 저거 진짜 재밌는 놈이네에! 마시던 독주의 취기가 확 깨버릴 정도로~!”
“대체 뭐 하는 놈이더냐!? 서방의 흄은 아닌데!? 쓰던 능력이 기묘하던데 기력도 마력도 아니고 뭐냐!?”
“몽환의 숲 루스카의 입구에 위치한 공방의 호문쿨루스야! 거기서 포션을 살 때 얼굴을 몇 번 봐서 알고 있어!”
하나하나가 마물과 마수를 수십에서 능히 수천을 통솔하며, 지상의 커뮤니티들에 공포를 선사할 악의 화신들.
나의 주변을 빙 두른 뿔들을 달고 다양한 피부색들의 인간들의 대적들이 되는 존재들을 둘러보았다.
결코 기세에 기죽지 않고, 되려 목소리를 드높여 맞선다.
“하여간 이유 없이 시비를 터는 새끼들은, 싸그리 자지를 썰어내고 보지를 뜯어내서 죽여야 돼. 상한 구토물과 묵힌 설사의 혼합물보다 못한 것들. 단체로 상시 약빤 트랜스 상태이기라도 하냐? 무아지경의 황홀경에 접했어? 무지갯빛의 궁전이 눈앞에 번쩍이며 막 헛것이 보여?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 대체 왜 항상 시비를 털어? 그리고 도대체 왜 허구헌날 약자들을 괴롭히지 못해 안달복달하는 발정난 똥개들처럼 구냐?”
들개는 오직 깡이다.
그렇기에, 늑대들의 한복판에 둘러싸였어도 전혀 두렵지 않다.
들개는 본디 그런 존재이기에.
보랏빛 피부에 곱슬곱슬한 적갈색 고수머리, 눈동자가 결여된 백안의 마족이 밉살스럽게 이죽댔다.
“크핫! 우리를 창조하신 마신의 기제에 철저히 따르는 것뿐이다만!? 마치 배가 고프면 먹고, 배가 아프면 싸지르듯이!”
“우헤헤헤헤헷!!!!!!”
“크켈켈켈켈!!!!!!”
“집단으로 대가리 깨진 소리들을 내뱉기 전에 제발 생각이란 것들을 좀 해라. 아니면 칼이랑 풀은 가지고 있는데 두개골 봉합해 줘? 바늘과 실로 두피 박음질해 줘?”
나는 노골적인 디스로 허연 눈알만 가진 마족에 응수했다.
세로로 갈라진 동공들에 눈자위가 시커멓거나 괴물 그 자체인 온갖 면전들.
넋이 나갈 듯이 대폭소만을 터뜨리기 일쑤인 마족들에 더더욱 도발을 가미했다.
“뭔 찐따 새끼들이나 심취할 법한 이야기들을 단체 채팅으로 떠들어대냐? 나 사실은 친구 없다고 전력으로 몸 비틀며 티내냐? 하긴. 니네는 친구란 개념이 없지? 은혜를 원수로 갚을 시에 배덕감을 보상받는 배은망덕하고도 이기적인 놈들이니까. 누군가에게 생명을 구원받아 봤어, 첫날부터 엄청 비싼 옷을 선물로 받아 봤어. 쯧, 불쌍한 새끼들.”
여섯이나 되는 팔을 지니고 이마에도 외눈이 박힌 거구의 근육질 저악마가 사납게 외쳤다.
“입 닥쳐! 흄! 아무리 호문쿨루스가 되었어도 네놈은 결국 하등한 인간이다! 수명 50년의 하루살이!”
“뭘? 내가 틀린 말했나? 마물의 대군 수백, 수천 운운하지만, 강한 놈을 만나면 검격 및 마법 한 방에 수십, 수백씩 쓸려나가는 게 현실이야. 왜 알면서 외면하냐? 결국 양학용 이상의 의미는 없어.”
“아가리 처닫아라!”
“힘에 의한 절대적 법칙은 왜 누락하냐? 자신들이 지는 불리한 얘기니까? 왜 니들이 이기는 이야기만 하고 또 하냐? 사이다패스 중독 사이코패스들이냐? 니들이 이기는 스토리가 아니면 발기가 도중에 풀려 골든 주스가 찍 튀겨? 변경의 야만마족만 봐도 오줌 지리며 남자는 잡아먹히고 여자는 따먹히는 것들이 하여간 센 척은 오지게 해요.”
“크아하아악! 죽인다!”
분기에 들어차 이마에 혈관들이 터질 듯이 팽창한 다완 저악마를 보며, 신나 떠들던 마족들 누구도 언급하지 않던 맹점을 짚었다.
“용사만 떴다 하면, 동료고 가족이고 내버리고 제물로 삼아 탈주하는 놈들이 잔말이 많아. 진정 강약약강이 니네를 두고 칭하던 표현이 아니더냐? 응? 아니다, 굳이 용사만 뜰 필요 없이 지상의 길드의 그냥 그럭저럭 강한 모험가만 떠도 역으로 학살당하는 신세가 되어 도주하지? 대체적으로 강하다는 건 아는데 현실은 외면하지 말자. 차라리 약함을 인정하는 것보다 더 추하니까.”
상체는 핏물에 절은 검은 수녀복을 걸치고, 하체는 출렁대는 내장들로 구성된 수녀 형상의 악마가 나긋하게 비꼬았다.
“역시 호문쿨루스가 되었어도 저열한 흄의 근성은 버리지 못하는군요. 참으로 한심한 존재의 뿌리입니다. 이 많은 마의 일족들을 홀로 눈앞에 두고도 두렵지 않습니까?”
썩은 미소를 머금은 나는 도발의 가미에 정점을 찍었다.
“하여간. 마신이라는 새끼도 참 띨빡해. 왜 그딴 개고생을 하며 이딴 불후의 실패작 새끼들을 창조한 걸까? 대가리들이 나쁘면 차라리 좆들이랑 젖통들이나 좀 쓸 만하게 제작할 것이지. 니들을 보면 없던 자지도 오그라들어 후장으로 튀어나올 것 같다. 똥오줌을 뒤섞어서 믹스로 싸지르는 경지에 도달하게.”
그와 동시에 실내에 싸늘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감히…!”
“우리의 창조주, 마신을 모욕해…!?”
“미친, 개새끼가…… 봐주니 막 나간다?”
마족들의 세로로 갈라진 동공들이 일제히 팽창해 나를 주시했다.
백색, 회색, 흑색의 세 가지 색상에서 오가는 눈자위들이 먹물을 탄 듯이 시커멓게 물든다.
시커먼 흑자위들이 되어 버린 눈알들 속에서, 다색의 눈동자들이 형광으로 발광하기 시작한다.
어마어마한 살기가 길드 내부를 미칠 듯한 광풍이자 칼바람과도 같은 기세로 저미고 휘몰아친다.
후방의 접수원들과, 전방의 모험가들 모두로부터 폭사되어 나오는 기력, 마력, 마기의 집산이었다.
나는 쓴웃음을 머금었다.
“이제야 빡치기는…….”
신들은 신안으로 세상을 주시하며, 신감으로 자신들에 신앙을 바치는 대상들을 감지하는 신력이 있다.
가이아 세계에서는 어엿하게 실존하는 존재들.
하계의 존재들의 목소리들을 경청할 때 자신의 신위나, 자신이 선사했거나 선사할 수 있는 기적을 비난하거나, 의심하는 불경 행위에 대해서는 실로 다양한 반응들로 나뉜다.
즉각 강림하거나 현신해 불경자만이 아닌 주변의 가족 및 관련자들, 근처의 커뮤니티, 심할 경우에는 국가가 통째로 사라질 정도의 신벌을 가하기도 한다.
이따금은 한없이 지긋한 변덕으로 관대하게 넘어가 주기도 한다.
참으로 전생의 그리스 로마 신화 및 기타 신화들의 신들의 변덕스러운 행적들을 연상시키는 존재들.
고로 이 세계에서 신을 욕하는 것은 애초 불신자거나, 최소 자신의 존재의 말소나 주변까지 미칠 소멸의 신벌을 각오하는 불경으로 통한다.
하지만 나는 해당이 없다.
애초 마족도 아니며, 마계에서 그럭저럭 살아가게 체질이 개변된 존재에 불과하니까.
그리고 전생 이후 그 새끼를 여지껏 몇십 번, 몇백 번도 넘어가게 욕했지만, 신벌의 신 자조차 코빼기도 보이지 않기에.
“아아! 미안, 미안! 죄송해서 뒈지시겠네! 이쪽 세계에서는 실존하는 존재인 신을 욕한 건 좀 지나쳤네! 아무리 나라도 현장의 여기의 너희가 모조리 덤벼들면 참살당할 테니까! 하지만 생각해 봐! 조금 전의 내 말에서 틀린 구석이 조금이라도 있었는지!? 너네는 인족들 및 지상의 다종족들의 뇌 구조들로는 인식조차 불가능한, 복합적인 전용 흑마술의 각인마저 가능할 정도로 지성조차 월등하잖아!? 힘으로 말고 말로 해보자! 말로 수틀리니 힘으로 짓누르려는 거야!? 참 대단한 마신의 피조물들이시네!”
나는 황급히 손사래를 치며 여전히 교묘한 조소를 가했다.
다급히 물러서는 척을 해주니, 길드를 통째로 날릴 듯이 사납게 휘몰아치던 살기들이 가라앉는다.
그새 우위들을 느끼며 만족한 것이다.
개인적으로나 소규모 그룹으로는 철저히 털릴 존재들이.
설령 모두가 덤벼들어도 길드를 이탈해 시가지와 산야의 지형을 옮겨 다니며 각개 격파하면 된다.
군중 심리에 휩쓸리는 단체이자 집단이란 이리도 방자해지며 우매하다.
그때 중후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재미있는 논쟁이 이쪽에서 진행 중이로군.”
나와 마족들 모두의 시선이 목소리의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쏠렸다.
전원이 일어선 현장과는 달리, 여지껏 구석자리에 단 한마디 말도 없이 내내 앉아 침묵을 지키던 존재.
닳아빠지고 헤져 구멍이 숭숭 난 검붉은 색상의 낡은 로브, 푹 눌러쓴 후드의 좌우 옆머리로 셋이나 솟은 여섯 쌍의 뿔들을 지닌 노악마였다.
기묘한 형상을 나타낸 마혈문들에 뒤덮인 얼굴의 절반은, 무성하게 자라난 곱슬곱슬한 턱수염에 마찬가지로 뒤덮여 제대로 알아볼 수조차 없는 인상.
오직 경청만 하던 후드의 노악마가 묵직하게 입을 열었다.
“인간은 열등한 생물체다. 내 말에 조금이라도 틀린 구석이 있나?”
“그 열등한 생물체에서 용사만 뜨면 눈물과 오줌을 지리며 줄행랑치는 놈들이 무슨? 에라이.”
“비교 대상이 틀리다. 그건 인간이 아닌 괴물이고, 나의 예시는 더없이 평범하고도 무난한 인간들을 지칭하고 있다.”
나는 적수의 예감에 칼날을 벼렸다.
“분노한 용사는 혼자 마계를 멸망시키고도 남는 것도 누락이지? 마왕이 쓰러지는 순간 사실상 마계를 지킬 녀석이 아무것도 없는 것도 외면이고.”
“중간계와 마계와 모든 아계들을 통틀어, 마왕님을 쓰러트릴 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되려 마왕님이라면 여유롭게 용사의 수급을 취하고도 남으시지.”
“그건 주로 결국 지는 놈들한테 붙는 수식이구요.”
결코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치열한 공방이 팽팽히 맞섰다.
나도 지지 않고 박박 달라붙는 언쟁은 자부하는데, 지성은 높아도 막상 우둔하거나 몽매한 성향을 내보일 때가 있는 마족들답지 않게 만만치 않은 존재다.
나는 늙은 악마에 맹렬히 따져 들었다.
“용사가 아닌 검성만 떠도 마족 1천은 일섬마다 거뜬히 가른다. 무시하지 말고 아가리 작작 털어. 강한 인간들의 예시를 더 들어 줘?”
“마왕님이 아닌 6마군장의 일원만 강림해도 손짓마다 지상인 1만의 시신은 능히 쌓는다. 전쟁은 극소수 강자들의 무용담이 아닌, 얼마나 공포와 학살을 효율적으로 초래하느냐인 것이다.”
“모두가 인간은 아니지만 대마법사, 대연금술사, 대현자, 대성자, 대투사 같은 존재들은? 마족을 도시락 삼아 소풍을 나가 뼈다귀를 이쑤시개로 쓰고 쾌변까지 저지를 녀석들이 널렸는데?”
“어떤 예시를 들어도 비교 대상에서 벗어나는 것들일 뿐이니 대화가 성립되지 않는다.”
“끝까지 약한 대상들만 비교로 들어야만 대화가 성립되냐?”
나는 눈에서 불똥이 튀기는 느낌을 받으며 더욱 칼을 갈았다.
후드의 노악마가 침중한 음성을 흘렸다.
“너의 이야기에는 어떠한 논리성도 결여되어 있다.”
“그렇게 논리를 따지는 분들이 힘이라면 그저 껌뻑 죽어? 논리를 따지면 힘 따위에 결코 휘둘리지 말아야지? 조금이라도 강한 난관들에 자신과 자존심과 긍지를 걸고 투신할 용기들은 있구?”
“그걸 무모와 방종이라 한다.”
“그래, 그렇기에 내가 강해졌지. 리스크 없이 리워드 없다구. 도전하지 않으면, 상승할 수 없다.”
늙은 악마가 돌연 침묵에 빠져들었다.
공격의 기회라 생각한 나는 더욱 공세를 드높였다.
“힘에 철저히 지배당하는 녀석들이 논리력은 무슨. 너네는 전생자 망나니 용사가 기존의 마왕을 쳐죽이고 대신 마왕이 되어도, 충성과 보물과 어머니와 아내와 누이와 딸을 바치며 군말 없이 잘만 따를 족속이잖아. 엄청나게 잔혹하면서도 강력한 힘의 공포스러운 지도자. 거부할 수 있어? 그런 놈들은 인간들 기준으로도 꽤나 평이 갈리며, 나름 호평들도 매우 많은데? 막 내면의 마성으로부터 피어오르는 충성 본능으로 섬기고 싶어 온몸이 찌릿대지 않아?”
“…….”
답변을 찾지 못한 노악마가 바위처럼 굳건한 침묵을 지켰다.
쥐 죽은 듯한 침묵에 빠져들어 나와 노악마의 대화를 경청하는 일부 마족들이 슬쩍 몸들을 흔들거나 마른침들을 삼키고 말았다.
명백히 그런 지도자의 상상에 이끌려 버리고 만 것.
이것이 마족의 기제다.
후드를 눌러쓴 육각의 늙은 악마가 어깨를 들썩였다.
얼굴에는 문신과 수염이 뒤덮여 어떤 표정인지는 알 수 없다.
“한없이 짧은 수명의 단명종치고는 제법 이성과 논리를 굴릴 줄 아는군.”
“그놈의 수명 드립 좀 때려쳐서 싸그리 쓰레기통에 처박으면 안 되냐? 바다거북이랑 실러캔스가 일루미나티의 일원으로 암약하며 지배력 펼치는 소리 할래? 걔네는 인간보다 훨씬 오래 사는데, 그것만으로 우월성이 입증되겠네?”
“무엇인가? 그것들은?”
“몰라도 되고, 알아도 안 알려 줄 거야. 산타클로스 수염 병신 새끼야.”
여섯 뿔의 늙은 악마가 더욱 어깨를 격렬히 들썩였다.
아마도 폭소라 추정되는 감정, 다만 웃음소리는 후드 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았다.
이윽고 악마가 몸을 일으켰다.
크고 작은 형체들과, 온갖 기상천외한 면전들의 마의 일족들 속으로 유유히 파도를 헤치듯 걸어간다.
“재밌군, 재미있어……. 간만에 사회로 나와, 아주 흥미로운 체험을 했어.”
마족 길드의 굳게 닫힌 성문처럼이나 드높고 거대한 나무문으로 걸어간다.
그러고는 돌연 걸음을 멈췄다.
“이 모습으로는 카미오라고도 불린다.”
돌연 닳아빠진 검붉은 색상의 로브를 걸치고 후드를 눌러쓴 노인의 뒷모습이 불길에 휩싸여 활활 타올랐다.
진한 탄내와 아득한 숯가루가 주변으로 자욱하게 흩어지는 속에, 전위적인 변모가 가해진 노인의 모습이 드러났다.
사그라든 불꽃 속에서 황혼처럼 모습을 드러내, 옆얼굴을 돌리고 있는 그것은 보행하는 형태의 사람만한 개똥지빠귀였다.
허리춤에 바닥으로 늘어트린 칼집이 매달린 커다란 벨트를 차고는, 안쪽으로 원만하게 구부러진 도신의 곡도를 지팡이처럼 내짚은 새.
지상의 아인족의 분류인 조인족을 연상시키는 모습, 하지만 어마어마하게 내재된 폭발적인 악마기를 보유하는 존재가 부리를 벌렸다.
“72악마교단. 53위계 논리의 카임. 논리와 궤변에 있어서는 마계에 나를 따를 자가 없다. 실로 재미있는 한때 흄, 이제는 호문쿨루스로군. 워낙 즐거워졌기에, 지상에서 강렬한 절도와 악행의 열망을 내뿜는 불특정한 존재에 강림할까 생각 중이다.”
악마의 형상을 취했을 때는 카미오, 현재는 카임이라 밝힌 그가 완벽하게 변한 깊은 음색으로 부리를 딱딱대며 등팍에 솟은 날개를 펄럭댔다.
그와 함께 길드의 굳게 닫혔던 문이 보이지 않는 문에 떠밀린 듯이 절로 열렸다.
카임이 열린 외부를 향해 고개를 돌려 뒤통수를 내보였다.
“기억해 두도록. 이 좁디좁은 마계에서, 다시 한 번 이상은 마주칠 것 같으니.”
말을 마친 카임의 모습이 다시금 지반에서 솟구친 불길에 휩싸였다.
새카맣게 흩날리는 숯가루들만을 남기며, 카임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카임이 있던 곳에서는 열린 길드의 문을 통해 카펠레테 6번가의 거리만이 아련히 내비칠 뿐이었다.
“53위계…… 논리의, 카임……!”
“저 노인네, 72악마교단의 일원이셨어……!?”
“72악마가, 어째서 이런 보잘것없는 길드의 방문을……!?”
마족들로부터 경악과 탄성이 뒤얽힌 반응들이 흘러나왔다.
72악마교단.
72악마주로도 불리며 개별이자 다수인 악마.
마계의 역사와 함께 시작한 단연코 가장 오래된 악마라 볼 수 있으며, 그 모습은 미형 혹은 추형, 아니면 이형의 각양각색.
개인이자 만인이며 소수이자 다수인 악마기에, 합신술을 통한 자유로운 합체와 분체로 서로의 육신을 융합하고 분열하며 수많은 형태들을 보유한다.
저위계의 악마일수록 악마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지상인들에도 견줄 정도로 약하나, 고위계의 악마와 합체할수록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강해지며 인격들도 입체화되고 다각화된다.
불특정한 단 2체만이 융합하고 있는 상태와, 위계순으로의 50체 가까이가 합체하고 있는 상태는 그 외형과 인격, 성향도 판이하기에 게티아가 가지는 경우의 수는 5184체에 달한다.
72체 전원이 합신한 72악마주 게티아 상태에서는 6마군장 전원이 동시에 덤벼들어도 압도할 정도에 마왕조차 상회하나, 72개에 달하는 인격의 폭주 문제와 극도의 불안정성으로 평시에는 여러 규정들에 의해 완전한 합신이 엄격히 제한받는다.
암흑보다도 깊고도 칠흑보다도 어스름한 마계의 기원에서도 가장 독특한 악마들.
자신들 악마들의 심오함을 보다 깊게 아는 악마학을 연구한다는 의의로, 스스로를 내세우는 하나의 교단을 창조해 사병이나 마찬가지인 교단병을 보유하며 마족들과 악마들의 컬트로 군림할 정도.
가히 진정한 악마의 아이콘이라 볼 수 있는 존재들이다.
“의도치 않게 72악마와의 독대를 이루고 말았군…….”
나는 내심 탄식을 흘리며 몸을 돌려 길드의 접수대로 나아갔다.
내가 나아가는 방향으로 훤한 통로가 형성되었다.
흡사 모세의 기적과도 같은 형색에 나의 용무를 향해 나아갔다.
엉겁결에 72악마와 독단적인 대면마저 이루고 난 이후, 길드 내부의 마족들이 나를 보는 시선은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의외로 여러 수확들을 얻어 가는 날이다.
그렇게 도달한 접수대에는 전형적인 금태양을 투영한 거구에 근육질의 인큐버스가 까칠한 태도로 지키고 있었다.
“규리스는?”
“뭐냐, 새끼야?”
더러운 눈매의 인큐버스가 한없이 불퉁한 말투로 내뱉었다.
역시 금태양은 이래서 금태양이다.
주변에 무슨 일이 일어나던, 한없는 마이페이스가 참 착실한 좆 같은 새끼들.
아군일 때는 듬직하지만, 적군일 때는 최대한 빨리 짓밟아야 할 필요성과 전의를 마구 피어오르게 하는 불순분자들.
예상했던 한없이 불친절한 태도에 나는 눈을 가늘게 치켜떴다.
“너, 나 처음 보냐?”
“그러니까 뭐냐구. 흄인지 뭔지 모를 것.”
녀석이 명백히 위협하려는 태도로 근육이 두툼한 구릿빛 팔뚝으로 팔짱을 꼈다.
주변 접수원들의 우려스러운 시선들이 쏟아지는데도 전혀 아랑곳없는 마이웨이다.
“어여쁘고 싹싹한 규리스는 어디로 가고, 어디에서 이런 찌그러진 깡통처럼 생긴 찐따 새끼를 모셔 놨어? 면상만 봐도 항마력 수치가 맥스로 치솟게? 너의 윗대가리는 어디에 있냐.”
인큐버스의 한쪽 눈썹이 치솟았다.
“지금 뭐라고 아가리 털었냐? 개새끼야?”
나는 양손으로 카운터를 내짚으며 한없이 순수하게 눈을 치켜떴다.
“나 개 맞어! 설령 힘은 약하더라도! 늑대들의 발목들을 갈기갈기 물어뜯어 놓아, 기어이 다리 하나만큼은 무조건 못 쓰게 만드는 마계의 들개! 월월!”
나의 모습에 녀석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주변을 기웃대며 연거푸 한숨을 내쉬었다.
“나, 참. 하도 어이가 없어서. 좋은 말로 할 때 들어야지, 어디서 이딴 흄인지 뭔지도 모를 것이 시비를 털어. 야, 안 꺼질래?”
두툼하게 끼운 구릿빛 팔짱의 핏줄들이 돋아 터질 듯이 불끈댔다.
“나는 싱크홀이 아니라서 땅으로 꺼지는 능력은 없어. 삽으로 내가 꺼질 밑바닥 직접 까서 굴착해 줄래?”
“씨발놈이 자꾸 함부로 주둥이 터네. 존나게 처맞고 나가떨어지고 싶어서.”
인큐버스의 양쪽 눈썹이 동시에 치솟았다.
“너나 빨리 창관으로 꺼져서 좆물을 팔아먹어야지. 통상적으로는 씨 없는 수박이라서 그렇지, 좆물 하나만큼은 좆나게 많이 싸질러대며 수도관이고 하수도고 메워 버리는 게 니네 인큐버스잖냐?”
“너 지금 뭐라 지껄였냐?”
“너야말로 병신 아니냐, 씨발? 가입한지 2년도 훌쩍 넘어가는 고참도 못 알아보고. 아, 요즘 아랫것들 정말 안 되겠네. 창관이 싫어서 튀었으면 툴툴대지 말고 일자리에 곱게 적응해, 새끼야. 하도 구멍을 뚫고 뚫리는데 심취해 뇌까지 구멍이 뚫렸냐?”
“뭐, 가! 어째애……!?”
역린을 제대로 건드려진 인큐버스가 눈썹을 빠직 솟구치며 뾰족한 송곳니들이 모조리 드러나도록 이를 악물었다.
“두당 체중이 300키라그는 나갈 마귀족의 귀부인들에게 안겨서, 1시간 동안 플레이를 견딜 시에 통상적인 화대의 10배를 쳐준다는 풍문이 돌더라? 돈을 벌 수 있다는 소리를 들으니 사타구니가 막 근질근질대지 않니? 설마 똥구멍마저 꼼질꼼질댄다면 단연코 최악이고.”
돌연 인큐버스가 두툼한 구릿빛 근육질의 팔뚝을 번쩍 들춰 뒤로 젖혔다.
치켜들어 바짝 잡아당긴 주먹에 마력이 줄기줄기 휘감긴다.
“이, 새끼가아악!!!”
거구의 인큐버스가 그대로 주먹을 내질렀다.
주먹 주변으로 세찬 파공음이 발생하며 풍압이 휘몰아친다.
인큐버스치고는 정말 강한 암영급, 리나 씨와 엇비슷한 수준.
몽마 주제에 객기와 패기를 부릴 수준은 된다는 입증이었다.
허나 조금 전 상대한 배드 브로스에 비해서는 그저 우습다.
하품이 나올 정도.
나는 인큐버스가 정권을 내지르는 속도보다도 양팔을 빠르게 들춰 손목을 낚아챘다.
우드드드득, 손목이 완전히 기역자로 꺾이는 파골음이 울리며 인큐버스가 카운터 밖으로 날았다.
“크하아아악! 컥!?”
순식간에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믿지 못하는 비명성을 내지르는 인큐버스가 곧장 복도를 붕 날아갔다.
콰하아아앙!
“그하아아아악!!!”
요란한 충격음을 내며 입구의 나무문에 전신 박치기를 가한 인큐버스가, 길드의 한참 밖으로 튕겨져 나가 포석이 깔린 돌바닥에 나뒹굴었다.
마침 지나가던 용차의 바퀴에 엎어진 상체마저 일자로 쭉 밀렸다.
“끄하악! 으거거거걱!”
복합적인 고통의 릴레이 엄습에 인큐버스가 꼴사납게 허덕이며 나뒹굴었다.
나는 홀가분하게 손을 털며 후련히 내뱉었다.
“이번엔 수리비 안 나오겠네? 안팎으로 열리는 구조의 여닫이문이 알아서 열어젖혀졌으니까?”
마족들로부터조차 경악과 질색의 표정들을 볼 수 있었다.
다시 등을 돌아 이제 명백히 질렸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접수원들을 마주했다.
나는 양손으로 접수대를 짚으며 재차 물었다.
“자아, 규리스는 어디에 있어? 끝까지 묵비권을 행사하면, 같은 과정을 루프물처럼 질릴 때까지 반복할 수밖에? 물론 너희들이 그렇게 나온다는 가정하에─”
“어마마마맛!?!? 정, 말!? 싸움이에요!? 길드에서 철저히 엄금하는 규정인, 내부에서의 싸움으으으을!?”
돌연 카운터 안쪽의 드넓은 복도로부터 낭랑하고도 드높은 하이톤의 미성이 기나길게 울려 퍼졌다.
타타타타탁, 수많은 다리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질주하는 기묘한 소성이 울려 왔다.
“그것으으은~! 제가 막을 겁니다! 수마군 격진군단 절망의 도래! 3천의 마물들과 1천의 마수들을 지휘하는 소마장! 다크 하트 길드의 5급 접수원! 저 규리스 아라크 라크네이아가아아~!”
귀청이 터질 듯한 낭성과 함께 통로의 거대한 어둠에 불쑥 드러나는 형체.
하체는 최소 둘레 몇 미터는 될 거대한 거미의 형상이고, 상체는 폭발할 듯한 여인의 육체다.
거미의 발들로는 타타타탓 고속으로 질주하며, 여인의 상체의 양손으로는 끈적한 거미줄들을 실뜨기처럼 늘려대는 존재로부터 폭발적인 핑크빛 안광이 뿜어져 나온다.
“모두 거기까지! 저 규리스가 왔으니까요!”
뒤늦은 중재자의 등장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