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화 〉 마족 길드
* * *
카오스력 4323년 적흑의 월 냉암의 주 질투의 요일.
중간계 기준. 아델렌력 1441년 4월 23일.
파릴케와 2주일의 시간을 보내고 공방에 복귀한 다음 날.
나는 군도 헬유레이아를 재방문했다.
마평원 제르디아에서 토벌한 헬 오우거의 소재들을 매각하기 위해서다.
바르스트 상업구의 카펠레테 6번가.
다크 하트.
헬유레이아에 속한 32개의 모험가 길드에서 540명 정도의 멤버들을 지닌 중간 규모의 길드다.
마족들은 한없이 개인적인 성향이 가하며, 조직을 이루더라도 가급적 작은 규모를 선호하는 성향을 지닌다.
자신들이 제멋대로이고 이기적인 것을 잘 알고 있으며, 그런 경향들이 모인 집단에서는 인원이 많을수록 필히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드높은 것을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고로 지상의 비슷한 규모의 커뮤니티들보다는, 인구 대비로 훨씬 많은 수의 길드들과 기타 온갖 그룹들을 지니는 경향이 있다.
모든 마족들을 사실상 반강제적으로 출생과 동시에 묶어 강제적인 결속력을 구사하는 마왕군이 특이한 구조인 것이다.
마족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도무지 모이지 않는 존재들이기에.
나의 여자들의 비용들을 부담하는 위주이기에 의외로 이런저런 지출들이 좀 있었다.
소재들의 매각과 동시에 재정의 그래프는 다시 급격한 상향세를 띄겠지만.
나는 굳게 닫힌 마족 길드의 성문처럼이나 드높고 거대한 나무문을 손바닥으로 젖혔다.
“끄하하하핫! 헤~에에에엣~!!!”
“게하하하하핫!!! 그화화화화홧!!!”
“아화화화화화홧!!! 하와와와와와왓!!!”
진입과 동시에 시끌벅적하게 덮쳐드는 소음.
뒤로 문이 닫히며 내부의 혼란에 노출된다.
“크아학! 이런 빌어먹을 놈!”
“이리 와! 다음은 왼쪽 손가락들을 잘라내야지!”
“어이, 어이! 싸우려거든 나가서들 싸움질하라고! 마족이 건물 안에서 싸우면 무조건 부서진다!”
죄다 머리에 다양한 형태들과 개수들의 뿔이 돋거나, 눈에서 안광이 빛나거나 타오르는 눈꼬리가 흐를 정도는 아무것도 아닐 수준의 온갖 악마적인 면전들이 모여 떠들썩한 소음을 자아낸다.
전투종족이자 군대민족인 마족은 태생과 동시에 전사의 자질을 감별해, 200세인 성마가 되면 마왕군에 편입되어 각자의 적성에 맞는 보직에 배치.
이곳에 있는 자들은 현재 군무자들이 아닌 휴가자들로, 1년의 반수에 해당하는 여가를 모험가들로서 기나긴 마생을 보내려는 자들.
휴가자들인 마족들은 마왕군에서 모은 급료를 흥청망청 쓰며 복귀 때까지 노니는 자들도 많아, 사회에서는 모험가로도 활동하는 비율들이 그리 높지는 않다.
보다 전투적이며 호전적인 본능을 추구하는 자들은 용병단, 혼돈 악의 사고방식들만이 모인 민족에서도 더한 배덕감을 느끼고 싶은 자들은 철저히 정체를 숨기고 도적단이나 암살단에 투신하는 자들도 있다.
마족들에 비해서는 적은 비율들이지만 저악마들과 악마들도 제법 보인다.
“더 부어! 새끼야! 주량이 그 정도밖에 안 돼!?”
“감히 이 몸의 주량을 비웃은 대가를 치르게 해주지!”
“역류한 술이 눈알에서도 쏟아질 때까지 처마시는 거라구!?”
술을 즐기는 자들이 많은 마족들의 성향답게 병설 술집이 개설되어 있다.
고로 이곳이 모험가들의 업무를 처리하는 공간인지, 주정꾼들이 농지거리를 날리며 떠드는 곳인지 구분이 안 가는 수준이다.
모험가들은 직업상 거친 성향들이 많을 수밖에 없는 직업군.
그런 자들이 술을 입에 대면 하도 싸움이 잦아지는 경우가 많아, 지상에서는 병설 술집을 분리된 건물에 따로 운영하거나 아예 두지 않는 경우들도 많다더만.
바닥에 마구 더럽게 낙하한 음식물들의 찌꺼기들과, 그 흔적들을 무릎걸음들로 기어다니며 치우는 폐마족들과 지상의 다종족 노예들.
“흐아, 읏! 이, 이러지 마셔요! 주인님!”
“크핫! 네년이 뒈져도 또 노예를 사면 되지! 직접 지상에서 골라 오든가~!”
측면의 구석에서는 낄낄대는 마족들의 그룹이, 팔목들과 발목들이 나이프들에 꿰여 벽면에 고정된 여자 노예 수인족을 상대로 다트를 즐기고 있다.
계속 날아드는 나이프들에 울부짖으며 세차게 고개를 내젓는, 이미 치맛단을 황금빛으로 물들인 여우 귀와 여우 꼬리를 가진 인간 여자와 같은 얼굴.
목울대에 이식된 마계의 자욱한 마기를 억제하는 마도구인 데몬 서프레서.
중간계의 종족인 아인족의 분류이자, 수인족의 유형인 폭스 오버 비스트맨으로부터 고개를 돌렸다.
좌측의 거대하게 트인 공간에 서고 앉은 마족들과 빽빽한 테이블들로 더한 난장판이 펼쳐지는 곳은 병설 술집.
블랙 베히모스의 박제된 머리가 카운터 안쪽 벽면 상단의 정중앙에 장식된 전방을 본다.
마족 접수원들이 분주히 일들을 하고 있는 너머를 향해 복도를 가로질렀다.
병설 술집의 테이블들이 아닌 길드의 테이블들에도 밀려나와 서서 술을 마시며 일방적으로 길을 가로막는 마족들이 많아, 헤치면서 지나가는데 상당한 노고가 든다.
들어온 순간부터 나를 이채롭게 보는 몇몇 눈길들이 있었으나, 이내 자신들의 주변에 펼쳐진 난장판으로 다시 주의를 돌렸다.
곁의 카드들이 흩어지고 술병들이 엎어진 원형 테이블에는 떠들썩한 무용담이 펼쳐지고 있었다.
가죽 쫄바지를 입고는 탈의한 상체에 요란한 문신으로 뒤덮은 퇴폐적 용모의 남마족이 양팔을 떨쳤다.
“…그래, 서! 인족의 젊은 애엄마가 자신의 아기만이라도 살려 달라는 이야기에 이 몸께서 어떻게 했게~!?”
답변들이 쏟아진다.
“애부터 빼앗아 죽였다에 한 표.”
“뭐야아, 설마 자비를 베푼 거냐!?“
“아니, 둘 다 소각해 버렸어.”
“푸하하하하학!!!”
“게헤헤헤헤헷!!!”
“캬캬캬캬캭!!!”
“끅끅끅끅!!!”
“훗.”
마족들이 눈물들을 흘리며 테이블을 내려치고 대폭소를 터뜨렸다.
“통구이가 되는 와중에도 지 애새끼는 꼭 끌어안고 죽더라구!? 함께 붙어 있으면 더욱 화력이 증가된다는 것도 끝까지 깨닫지 못하는 멍청이! 진실된 빡대가리 년이었어! 큭키키키킷!”
“그러니까 인간은 멍청하다는 거야. 수명 50년의 단명종에, 힘도 약하고, 지능조차 한없이 뒤떨어지는 열등종들. 우리 마족의 영원한 전용 장난감.”
전신을 시커먼 붕대로 휘감은 마검사 마족이 원탁에 늘어놓은 단검들을 느른하게 다듬으며 시니컬하게 내뱉었다.
어찌나 웃겼던지, 엎어져 배어 나온 눈물을 손등으로 훔치던 곁의 산발 여마족이 덧붙였다.
“그러고 보니, 사냥할 지상의 벌레들이 너무나도 많을 때는 어떻게 처리해? 최적의 방안이 있나? 역시 하나하나 직접 해체하고 도살하는 것만 못하지?”
“바보입니까? 그냥 마물들을 부려서 휩쓸면 되지 않습니까. 구태여 어렵게 일을 처리하네요.”
곁에 착석한 안면 아래를 핏빛 전신갑으로 휩싼 마기사 악마가 한없이 싸늘한 냉소로 지적했다.
“아화화화홧! 역시 마물들과 마수들로 휩쓰는 것만큼 짜릿한 쾌감이 없사와요! 마족은 마물과 마수의 검이, 마물과 마수는 마족의 방패가 되리라는 마신의 맹약! 우리 마족들의 진실로 듬직한 손발이와요!”
얼굴에 분칠을 하고 입술에 검은 루주까지 처바른 근골질 남마족이 느끼하게 거들었다.
“뜨헛!? 정녕 몬스터 웨이브가 최선이란 말입니까아!? 저는 팔다리가 너덜해져 더 이상 제대로 붙지도 않을 지경까지는 최대한 가지고 놀다가, 파손되면 마물들에게 조각조각 찢어낸 파편들을 하나씩 던져 주는 식으로 노는데.”
“그것도 주변에 복속령으로 부릴 마물들과 마수들이 있을 경우가 아님? 없다면 결국 혼자 몸으로 뛰어야 하잖음. 그러다 이따금 지상의 강한 모험가들과 맞닥뜨리는 것일 텐데. 그리고 마족들도 죽는 경우가 발생하구.”
잔악한 인상의 레오타드 여마족의 경악에, 헐벗은 본디지 차림의 서큐버스가 반문하듯 대꾸했다.
“에에에에엣……! 그건 좀 무섭군요.”
“그럴 때는 유희고 뭐고 튀어라.”
“에에에에엣……? 정말입니까?”
“목숨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음침한 인상의 바디슈트를 입은 마석궁사 임프의 다소 얼빠진 반응에, 전신을 널널한 넝마로 두르고도 모자라 안면을 두른 두건에서도 형형한 핏빛 안광을 빛내는 마궁사 데블이 거들었다.
“아! 결국 위험할 것 같은 적들과는 교섭을 시도해야겠네요! 그리고 빈틈을 노린다! 그것도 훌륭한 유희겠네요!”
“그건 그닥 재미없는 주제인 듯하네. 너는 아직 마왕군에 입대한 성마도 아니기에 이 자리에 낄 수도 없단다.”
“피이~! 저도 이제 50년만 있으면 어른이라구요? 200살이 되는 12학년까지 딱 50년 남은 150살. 금방이에요!”
마족이 200세의 성마가 되어, 마왕군에 입대하기 전까지 필요한 지식과 정보와 전투술을 습득하는 교육 기관.
꽤나 앳되 보이는 제6악마통합학원 이블 시드의 교복을 입은 마족 소녀가, 곁에 착석한 로브의 마술사 인큐버스의 손길에 북북 쓰다듬어졌다.
뒤이어 인큐버스가 느른한 뒷손을 스커트에 삽입해 엉덩이를 주물대는데, 입을 살긋이 벌리며 볼을 붉히는 것이 보통 관계가 아니다.
서서 술을 퍼마시느라 도무지 비킬 기색을 비치지 않는, 늑대 레서 데몬과 다완의 데몬을 강제로 떠밀치다시피 하며 다음 테이블로 나아갔다.
전방의 원형 테이블에서는 완벽히 정반대의 대화가 연출되고 있었다.
“이런 머저리 자식! 투귀급과 암영급의 마족 하나는 최소한 마을 하나! 적혈급의 마족 하나는 최소한 도시 하나! 전율적이고도 공포스러운 마족의 위용에 먹칠한 거냐!”
“네놈은 허구헌날 마계에 짱박혀 있으니 보다 다양한 곳들에서의 전황을 보는 판단력이 뒤떨어져! 결론적으로 나의 결단은 훌륭했다! 제멋대로 지껄여도 알고 해라!”
“투귀급 넷과 암영급 셋의 파티를 데리고 있었으면서도, 1천에 달하는 마물들을 모조리 잃고 고작 지상의 모험가 수십에 밀려 후퇴하다니! 애초 전술에 근본적으로 하자가 있었던 것 아니냐!? 그건 파티 리더이던 네놈의 전반적인 실책이다!”
“애초 보통인 놈들이 아니었다! 어쨌든 제일 약하던 파티의 한 놈을 제물 삼아 일방적으로 희생시키는 것만으로, 남은 모두가 마계로 튈 수 있었지! 살아남은 녀석들은 눈물과 콧물을 짜고 자금까지 상납하며 오늘날까지도 무진장 감사해 한다구!”
“그하하하핫! 리더라 해도 네놈의 실력은 암영급의 중상급 정도에나 머무니 결국 그런 자찬으로 자위하는 거야!”
“300년째 암영급의 끄트머리에서 체류하며 평생 적혈급도 못 뚫을 녀석이 대신 뚫린 입으로 지껄이기는.”
격렬히 성토하던 적발 마족과 까칠하게 반박하던 모히칸 마족이 동시에 자리를 박찼다.
“네노오오옴! 죽고 싶나아아아!”
“뭐야아아아!? 겁대가리가 상실된 새끼!”
카앙, 카가각! 즉각 자리를 이탈한 두 마족들의 롱소드와 너클들이 맞부딪히며 주변에 세찬 돌풍을 방출했다.
피가 튀며 터진 살점들과 잘린 손가락들이 휘날리고 깨진 이빨들이 흩뿌려진다.
그럼에도 결코 마족 사이의 결투 행위인 마투를 멈추지 않는다.
“이 개자식! 기필코 네놈을 죽여 버리겠다아! 내장을 모조리 쏟게 해주마아아! 뽑힌 공허한 안와에서 피눈물을 철철 솟구치게 해주겠다아아아!”
“내뱉은 개소리들을 싸그리 아가리로 처먹게 해주마! 공포와 절규가 영혼의 단위로 새겨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혹독하게 알 것이다!”
신기하게도 주변의 마족들 역시 어느 누구도 개입하지도, 신경 쓰지도 않으며 시끌벅적할 뿐이다.
기묘하게도 진로의 다른 마족들이 결코 휘말리지는 않게 피해 가며 싸운다.
조금이라도 건드리는 순간 주변으로부터 집중포화를 받을 테니까.
나의 양옆으로 갈라지며 싸우는 마족들을 스치며 나아갔다.
곁의 테이블의 베레모를 꾹 눌러쓴 여마족이 짜증난다는 듯이 운을 떼었다.
“놔둬도 돼? 심각하게 거슬리는데.”
“놔둬어. 같은 마족끼리 서로 살해하는 것은 당연하잖아? 찬양하라! 마계의 척박하고도 거친 삶을! 하고 싶은 대로 한다! 마음에 안 들면 아비와 어미도 목을 따고, 자식도 숨통을 끊는다! 그것이 강인하고도 냉혹하기에, 아름답고도 자랑스러운 마족이다!”
“예이이이이!!!”
여자 마족들만이 동석한 테이블에서, 드높은 노출도에 반다나가 인상적인 도적으로 추정되는 쌍둥이 여마족들이 환희하며 높게 들춘 맥주잔들을 맞부딪쳤다.
너머의 테이블의 외뿔 여마족이 사납게 상어이빨을 드러냈다.
“우리 마족은 천하무적이야! 가이아의 15신조물들에서 가장 강하다구! 아득한 미래에 갑자기 전 종족들이 다 쳐들어온다고 해서, 마계가 멸망하고 우리도 멸족하는 일 따위는 결코 있을 수도, 절대 벌어질 리도 없어!”
“그런데 만약 미래에 진짜 그런 일이 벌어지면?”
“지상의 나약하고도 하찮은 버러지 새끼들이? 마계의 문턱도 넘기 전에, 순도 그대로의 마기에 벌레처럼 뒈져 나갈걸? 대다수 떨거지들은 체내의 장기가 모조리 녹아내리며 전신이 시커멓게 변색되어 죽어 버릴 테구.”
“마혈이 흐르지 않는 지상의 열등한 머저리들에게는 이 땅의 공기조차도 재앙이다. 일부 적합한 체질인 놈들만 마인으로 변이가 시작될 텐데, 마인들이 대거 양산되어 가족들의 증가……라고 보기엔 빌어먹을 식충이들이 느는 셈인가. 역시 그냥 별로군.”
“저기 테이블에서 기어다니는 지상에서 납치한 노예 녀석들이야, 노예주들이 마도구를 착용시키거나 정기적으로 약을 먹이던가 해서 알아서 버티게 된 상태라지만! 크히히히힛!”
괴물체들을 억지로 인간형들에 유지한 것에 불과한 악마들이 서로들 주고받으며 키득댔다.
“적당한 진출은 필요해. 지상의 노예들로 하여금 마족이라는 이름도 아까운 수치, 열등한 폐마족 놈들이 못하는 남은 잡일들을 시켜야 되니까. 뒈져도 다시 사면 되니까 상관없구.”
“아아! 지상을 침공하는 거야 언제나 우리의 입장이었으니까. 침공해도 우리가 하지, 결코 우리가 침공당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침략당한다는 것 자체가 기분이 더럽잖아아아!?!? 공격하는 것은, 언제까지나 우리가 되어야만 해애애애! 그헤하하하학!!!”
“괜히 지상이 우리가 휴가를 나가면 노니는 전용 놀이터겠냐!? 무슨 짓을 저질러도, 이곳 마계와는 달리 뻑뻑한 규정도 존재하지 않는 마의 일족의 천국! 갸하하하하핫!!!”
마족, 저악마, 악마의 혼성 테이블에서 떠들썩한 광소들이 터졌다.
돌연 한 명이 술잔을 들췄다.
그를 기점으로, 떠들썩하던 점내의 혼돈에 차분한 통일이 자아내졌다.
한 명을 시작으로, 서서히 술잔들이나 각자들의 무기들이나 맨손들마저 들춘다.
일제히 남는 손들로는 테이블들을 두드리며 열창한다.
“트하하하핫! 어둠의 다크니스!”
“암흑의 다크니스!”
“칠흑의 다크니스!”
“순흑의 다크니스!”
“다크니스으으으!!!!!!”
길드의 모든 마족들이 떠들썩한 광소를 터뜨렸다.
“크, 하핫핫핫핫핫!!!!!!!!!!!!!!!!!!!!!!!!”
“다크 하트! 길드 네임은 그거라구!”
나에게는 아직도 아득한 접수대의 누군가 접수원이 덧붙였다.
“다크! 다크! 다크! 다크! 다크!”
“하트! 하트! 하트! 하트! 하트!”
그 틈을 타서 사악한 중2병들의 외침이 잔뜩 들어찬 한복판으로 지나갔다.
몇몇 마족들이 나를 흘긋대며 귓속말을 나누고 인상이 굳거나 피식댄다.
일부는 알아보거나, 내가 뿔과 날개와 꼬리가 없는 유형의 마의 일족인지 기웃대며 파악하려는 모습.
접수대에 거의 도달한 나의 앞의 테이블에는 거구의 황소 레서 데몬 형제와 그에 비해 아이처럼 작은 남마족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덩치로 인해 바닥에 가부좌로 착석한 레서 데몬들과,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꼬아 의자에 착석한 데블의 모습이 기묘한 대조를 선사한다.
“무오오오옷! 마혈이 끓어오른다아아아!”
“음무우우우웃! 이슬라트의 용혈과도 같은, 마혈이 타오른다아아아! 이 몸에 흐르는, 어둡고도 사악한 악마의 피가아아!”
“그래, 강한 적의 예감에 피가 끓어오르는 것은 당연하지. 극히 당연한 반응인데에…… 엥? 거기 너 검은 머리, 뭘 꼬라보냐?”
남마족의 적의를 담은 시비가 가득한 눈길에 즉각 시선을 돌렸다.
그닥 놀랄 것도, 당황할 것도 없다.
이게 이쪽 세계의 거주민들의 모습이다.
마신을 위해 피어난, 순수하면서도 미치도록 호전적인 악의 꽃들.
나는 남자 마족으로부터 시선을 돌리고, 주변의 모든 소음이 음소거된 홀로만의 세계에 돌입해 접수대를 향해 나아갔다.
그러던 중 나의 어깨를 낚아채는 손아귀가 있었다.
“어이, 내가 뭘 꼬라보냐 물었을 텐데. 그리고 너어, 마족이야? 생긴 건 인족인데? 얼굴이 조금 기묘한? 노예면 모가지나 다른 부위에 차야 되는 구속구도 안 보이고? 뭐 이딴 게 다 있어?”
“…….”
굴에 잠겨 울리는 듯한 투박하고도 걸걸한 음성.
어깨를 으스러질 듯이 움켜쥐는 손아귀에 고개를 돌려 곁눈질로 본다.
조금 전 눈이 마주쳤던 남마족.
“혹시 정말 인간? 데몬 서프레서도 착용하지 않은 인간이 대체 어떻게 마계에서 나돌아다니지?”
가시처럼 비죽한 머리칼에 안대. 조소와 악랄함이 가득한 면상. 표독스러운 상어이빨이 싱글댄다.
나를 이리저리 휘적대는 손길에 몸을 돌리자 그제서야 떼어낸다.
나는 한참을 위로 고개를 꺾었다.
2미터도 아득히 넘어 한참을 치솟은 다부진 근육질의 거체.
위로부터 진한 술 냄새가 후욱 풍겼다.
나는 일말의 감정을 제거한 싸늘한 음성으로 경고했다.
“시비 걸지 말고 놔두시지?”
“응? 뭐냐구. 그냥 단지 궁금해서 그래.”
거구의 안대 남마족이 남은 흑자위를 번득댔다.
“시비 걸지 말고 갈 길 가시지?”
“정말 궁금하기 때문인데, 가르쳐 주기 곤란하신가? 크하하하핫!”
안대 남마족이 입꼬리를 끌어올려 뾰족한 상어이빨들을 활짝 드러냈다.
“시비 걸지 말고 다치지 마시지?”
그에 안대 남마족이 들춘 쌍수를 황급히 휘저었다.
“응? 오! 아냐, 아냐아! 나는 단지, 우리 길드에 신참인 뉴페이스 같아, 안면이나 트고 서로 잘 지내 보자구! 그런 의도였어! 어허허허헛! 여러모로 할 말을 많이 나눠야겠지만…… 읏차! 일단 처먹어!!!”
찢어지는 비소의 마족이 대뜸 주먹을 날렸다.
마력을 듬뿍 머금어 권면으로부터 미약한 풍압마저 발생시키는 마족의 정권이 날아든다.
방심시키고 공격하기, 마족의 질리도록 아는 수법.
“쯧.”
나는 날아오는 주먹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주변에는 여파가 미치지 않게, 풍압의 방향을 나에게만 고도로 압축한 운용.
관통력을 타점에 고도로 집중한 송곳과도 같은 일격.
적혈급에 거의 도달한 암영급 강자의 일격이다.
최근 마경을 들리기 전까지의 나와 대등한 힘, 최소 부상이나 최대 중상을 면치 못할 치명타다.
하지만, 이제 나는 진일보했다.
나는 왼손만을 들춰 마족의 오른쪽 주먹을 받아냈다.
“뭣!?”
경악에 크게 뜨이는 안대에 감싸이지 않은 남은 눈.
나는 왼손을 힘껏 움켜쥐어 버렸다.
“끅!? 컥, 가아아아악!?!?!?”
안대 남마족의 우렁찬 비명성이 길드를 울렸다.
보통 형질의 비명이 아니었기에, 그토록이나 떠들썩하던 소음이 서서히 가라앉는다.
나는 포탄이 포구에서 터져 꽃잎처럼 갈라진 형상이 된 마족의 손아귀를 주물럭거렸다.
적절한 반죽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타이밍에 주먹을 놓치며 디딤발을 힘껏 박찼다.
“흣!?”
경악으로 부릅뜨이는 외눈의 검은 눈자위와 누런 눈동자의 세로 동공.
나는 독수리의 발톱과도 같이 갈고리처럼 구부린 오른손의 손가락들을 마족의 남은 눈알에 박아 넣어 버렸다.
“갹!!!”
터진 눈알에서 거뭇한 실혈들이 질끈 치솟았다.
완벽한 장님이 되어 버린 마족이 눈을 싸쥐고 몸을 구부리며 고통에 가득한 비명성과 절규성을 내질렀다.
“그, 햐아아아악!!! 오가가가가각!!! 구아하아아아악!!!”
허공에서 그대로 몸을 돌린 나는 돌려차기를 날렸다.
“갸, 아아아아악!!! 게헤에에에엑!!!”
오른뺨을 강타당한 거구의 마족이 짐짝처럼 날았다.
콰아하아앙!
길드를 쩌렁하게 울리는 폭성.
침묵에 빠져들며 이쪽을 보는 마족들이 늘어난다.
후방의 접수대에서 분주하던 접수원들과 마족들도 조용해졌다.
마침내 시끌벅적하던 마족들의 길드에 완연한 침묵이 찾아들었다.
사뿐히 지면에 착지한 나는 고개를 오른쪽으로 꺾었다.
“끄이힛! 아그그그긋!!!”
오른쪽 벽면으로 미사일처럼 날아가, 남은 눈알도 완전히 터져 버린 안대 마족이 고통스럽게 면전을 붙잡고 다리를 퍼덕대며 나뒹굴었다.
마강계는 단 한 단계만으로도 하늘과 땅과 같은 차이.
딱히 기력이나 마력도 쓰지 않는 평타만으로 잡았다.
“마족은 재생술의 사용이 가능하고 발달했으면서 왜 안대를 꼈어? 저것도 고질적인 중2병인가? 아니면 재생 불가의 영구적 마력계 상흔?”
완전한 고요가 찾아든 마족들의 길드에 나만의 목소리가 울렸다.
“마의를 보러 가서 그걸 고칠 돈과 능력도 없었거나, 지독한 허세로 남겼거나. 셋 중 하나군. 하긴, 여기에 있는 너네의 재산들을 싸그리 합쳐도 내가 부자니까. 저축의 개념도 모르는 거지새끼들아.”
나의 오른손에 가득한 마족의 피가 느껴졌다.
손을 머금어 핏물을 빨아 보았다.
일순간 나의 심장으로부터 미약한 두근거림이 느껴졌다.
잔잔한 수면에, 깊은 파문이 자아내지는 듯한 고동.
명백히, 체내로 들어온 혈액을 환영하는 듯한 반응.
가동하기 시작하는 체내 심장의 마력회로의 재배치와 재배열.
이미 만충 상태였기에 더 오를 것도 없는 마력의 한계치를 싱그럽게 넘치는 기분으로 살랑인다.
그리고, 아주 미세하지만 슬쩍이나마 그 한계치를 상승시킨다.
하지만 흡혈된 정기가 모조리 쌓이는 것이 아닌, 최소 5할 이상으로 느껴지는 방대한 손실의 비율.
나는 이 신비하고도 친숙하지 않은 느낌을 이미 체험했다.
서큐버스 리나 씨가 아닌, 데블 파릴케의 애액을 처음으로 흡정했을 때.
“유사흡혈…….”
결국 나의 추론은 정확했다.
나는, 뱀파이어와 비슷한 유사흡혈도 가능했다.
순수한 흡혈귀들만큼 흡혈한 정기 모두를 강화로 돌릴 수는 없지만, 그래도 여전히 강화가 발생한다.
추측되었던 다른 가능성의 확인.
이제 나는 마물들이나 마수들이나 마족들의 피를 흡혈해도, 나의 구성품인 뱀파이어의 혈액이 발동해 미약한 회복과 강화가 일어난다.
나를 이루는 구성품들의 최종적인 핵심체인 와일드 데몬의 심장의 기능을 밝히는 것만 남았다.
홀가분함을 느낀 나는 손을 툭툭 털었다.
침묵에 잠긴 마족들에게 싸늘하게 내뱉었다.
“또 덤빌 새끼들 있냐?”
이제 나는 시비에 털리면 참지 않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