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 데이트
* * *
“계속, 자꾸! 함께 올라가니깐!?”
파릴케의 발랄한 미성이 검푸른 야공에 빗발쳤다.
그녀의 내밀어진 왼손을 마찬가지로 내밀어진 나의 오른손으로 굳게 움켜잡고 있다.
서로의 주변을 두르고 있는 지상의 밤의 세계의 풍광이 자꾸자꾸, 계속해서 낮아져만 간다.
구체적으로는 우리의 고도가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추 50미터.
“지크, 여태껏! 하늘을 얼마나 많이 날아올라 봤어!? 낮과 밤은 무엇이 좋아!? 비행하는 취미는 갖추고 있어!?”
그녀 특유의 기조와 태도를 완벽히 역변한 파릴케가, 부모의 손에 이끌려 놀이동산을 찾은 아이처럼 해맑게 떠들어댄다.
의외성이라면 의외성, 생각보다 엉뚱한 면에서 순수성을 갖추고 있는 걸까?
“그냥, 그럭저럭…….”
리나 씨와 상공의 데이트를 즐긴 적이 나름 있어,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솟았으나 그냥 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무언가 리나 씨를 의식하고 있는 듯했으므로.
“그래~!? 잘 모르는 듯해 아쉽네에! 하늘을 난다는 것은 말이지, 쌓였던 모든 걱정과 근심을 한 방에 날려 버릴, 엄청나게 짜릿하고도 최고의 기분이라구우~!?”
하늘을 난다니까 완벽하게 하이 스피릿이 된 그녀를 보는 것이 흥미로웠으므로, 굳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필요는 없겠지.
마족의 피가 흐르는 나와 그녀의 눈동자들에서 붉은 눈꼬리들이 일렁대며 밤의 세계를 휘가른다.
지상은 달밤이라면 풍광이 매우 훤하기에, 굳이 밤의 일족의 야간시를 발동할 필요가 없다.
나는 야간시의 발동을 끄고 맨눈으로 지상의 밤의 천연의 색상들을 관조했다.
나를 확연하게 의식하고 있는 듯한 그녀가 뒤따라 암시의 발동을 해제했다.
원색을 되찾은 한때 인간이었던 것과 마족의 눈동자가 서로를 교차한다.
계속해서 하늘로 올라가고 있다.
대략 100미터.
“지, 크~!? 지금부터 나와 함께 숨바꼭질을 하자! 아늑하게 펼쳐진 구름바다와, 찬란하게 깔린 별하늘을 배경으로 누가 서로를 먼저 잡는지 내기를 펼치는 거야! 그리고, 붙잡힌 사람이 잡은 사람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기! 으음, 보상은 무엇으로 하지……?”
진한 와인색 눈동자의 여마족이, 짐짓 고민하는 표정으로 입술을 검지로 짚었다.
잔혹하고도 아름답기에 한없이 아찔한 마계인이, 한때 다른 세계의 지상인었던 것과의 내기에 내심 고민에 빠져든다.
대강 200미터, 주변의 너른 들판과 듬성한 숲과 아늑한 강줄기들이 벌써 눈높이에서 꽤나 낮아졌다.
마족들의 기준으로써는 꽤나 낮은 비행 고도에의 진입에, 마력의 운용만의 부유에서 본격적인 마법의 발동으로 전환했다.
풍마법 레비테이션, 부유술의 발동과 함께 전신에서 산뜻한 연녹빛의 풍결정들이 일렁이며 줄이 끊긴 풍선처럼 나를 허공으로 띄운다.
단순한 마력만의 운용보다는, 해당의 용도에 특화된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훨씬 소모가 적고 보다 효율이 좋다.
나는 본격적인 비행의 돌입에 준비하며 파릴케에게 조건을 내걸었다.
“나는 비행에 특화되지도, 익숙하지도 않으니까 내가 술래가 되는 것이 어떨까?”
“음~ 적당히 봐주면서 해달라는 이야기야?”
“파릴케가 원할 시에는 전력을 사용해도 돼. 다만 그렇게 할 시에는 나로부터 동떨어져 혼자 즐기는 셈이 되겠지.”
“아핫! 결국 적당히 실력을 쓰면서 하라는 교묘한 이야기잖아!”
마력의 운용만으로 날아오르던 파릴케의 등판에서 돌연 검은 한 쌍의 일렁임이 자아내졌다.
날개 발톱이 상단에 돋은 사람만큼이나 커다란 박쥐 날개가 좌우로 돋아 나왔다.
거친 질감의 외피와는 달리 부드러운 비막의 좌익과 우익을 제각기 펄럭이며 자세를 잡았다.
등허리에서도 악마의 꼬리가 스르륵 돋아져 나와 그녀의 발밑까지 늘어져서는 넘실댔다.
“그럼, 먼저 갈게~!”
내게 붙잡은 손을 놓은 파릴케가 그대로 뒤로 돌았다.
콰아아아앙, 일순간 어마어마한 충격파를 동반하는 폭음이 지상의 밤하늘의 상공에 울려 퍼졌다.
새하얀 충격파가 줄기줄기 휘몰아치는 세찬 파공성을 일으키고는, 믿을 수 없을 속도로 가속한 파릴케가 순식간에 점만하게 작아져 버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상공의 티끌에 수렴된 파릴케의 형상을 올려보며 다른 마법을 발동했다.
풍마법 플라이트, 비행술의 발동과 함께 본디는 땅에서 떠날 수 없는 존재를 본격적으로 날아오르게 하는 은총이 개시된다.
전신에서 은은하게 일렁이는 연녹빛의 풍결정과 드세게 휘몰아치는 진녹빛의 바람줄기들이, 나의 동체를 중력이 역류하듯 상공으로 세차게 떠올린다.
나는 즉각 파릴케를 뒤쫓았다.
그렇게 지상에서의 밤하늘 데이트가 시작되었다.
“지크~! 빨리 와아아아~!!!”
본격적인 비행의 개시와 함께, 밤하늘에서 내려다보던 세계를 구성하던 주변의 풍광이 급격히 축소되어 간다.
푸르른 달빛이 은은히 비치는, 검푸른 세상에 깔렸던 들판과 숲과 강줄기들이 벌써 알아볼 수도 없게 작아지고 있다.
하늘선과 지평선의 사이인 까마득한 저편에는, 직사각형으로 윤곽이 잡힌 형체 속에서 무수한 불빛들이 중앙의 커다란 빛을 중심으로 점멸하고 있었다.
아마도 어떤 왕국의 마석등들이 찬란한 불야성을 이루어내는 야경.
전생의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야경에 비해서는 꽤나 휑하다고 볼 수밖에 없지만, 현대와 같은 문명에 전혀 오염되지 않고 드넓게 펼쳐진 자연을 관망할 수 있어 나름 색다른 맛이 있다.
고도가 급속하게 드높아진다.
나는 더욱 비행력을 발휘해 파릴케의 까마득한 목소리를 바짝 뒤쫓았다.
“지크~! 이쪽이야!!!”
고도 1,000미터.
마족들에 있어서는 딱히 드높지도 않은 높이다.
지상에서 보이는 자연의 윤곽이 이제 꽤나 흐려졌다.
보다 높아졌기에 멀리 볼 수 있지만, 그만큼 자세한 형태로 보는 것과는 까마득히 멀어진다.
쐐애액, 쐐애애액! 훨씬 아득한 상공으로부터는 파릴케가 홰치는 날갯짓 소리가 울려 퍼지며 비상을 알린다.
더욱 속도를 드높여서 그녀를 바짝 추격한다.
티끌 크기에 불과하던 그녀가 이따금은 바짝 다가와 콩알만해지기도 한다.
그렇게 파릴케가 이내 붙잡힐 듯이 가까워졌다가, 점차 다시 순식간에 멀어지기를 반복한다.
주변을 둘러싸는 환경의 공기가 급격하게 차가워지기 시작한다.
“깔깔깔! 여기야~! 지크으~!”
고도 5,000미터.
이 정도에서는 슬슬 비행에 능숙하지 않은 마족들은 서로의 격차가 나타나는 구간이다.
하지만 통상적인 마족들이 날아오를 수 있는 고도까지는 아직 멀었다.
고개를 바짝 뒤젖힌 나의 아득한 시야 저편에는 날갯짓하는 파릴케가 층운과 적운을 꿰뚫고 거세게 헤치며 나아간다.
간헐적으로 꿰뚫고는 푹 처박히는 구름에서 새하얗고도 차디찬 수증기가 얼굴과 전신을 때리며 뒤로 지나갔다.
세찬 돌파 이후에는, 다시 검푸른 밤하늘에서 짙푸른 만월이 세상에 아늑한 빛의 은총을 내쬐는 모습이 드러나는 야공을 주파해 나갔다.
대략 1킬로미터를 상승할 때마다 5도씩 온도가 하강하며, 상공으로 갈수록 기온이 더욱 낮아진다.
극심할 정도로 추운 온도와 희박한 산소의 환경에 노출되며, 체질이 본격적으로 개변되기 시작한다.
고막이 터질 듯이 웅웅대며 급상승하는 기압에 뒷골이 바짝 조여드는 압박감이 후두부에 엄습한다.
공중의 솜사탕들처럼 내깔린 구름들을 폭 뚫고 나아가는 추격전이 펼쳐졌다.
“하하하하핫! 지크으~! 여기라구!?”
구름을 꿰뚫고 울리는 발랄한 미성이 주변의 구름들에 맞부딪혀 메아리가 된다.
급격한 비상에 맞춰 안구를 때리는 상공풍이 제법 따갑기에, 눈매는 가늘게 반개하고 눈동자는 동공을 제외한 나머지를 거의 닫는 시선을 유지한다.
안구는 체외로 노출된 장기이기에 충격에 의외로 취약하며, 소위 실눈이 되지 않으면 급격한 비상으로부터 발생하는 압력과 따갑게 쏟아지는 상공풍의 반발에 눈이 매우 피로하다.
종족마다 제각기 이루는 내구도에 따라 다르지만, 딱히 내구도가 강하지 않은 종족들이라면 방풍 고글을 착용하는 것은 필수다.
현재의 내게 그런 것은 있지도 않다.
이참에 행여나 추후 마족과의 공중전이 벌어질 것을 대비해 방풍 고글을 차원구에 구비해야겠군.
더더욱 세차게 고도를 드높였다.
“깔깔깔! 여기라구~! 지크!?”
그녀의 발랄한 미성이 어느 순간 잔잔한 수면의 파문처럼 몽롱하게 퍼진다고 느껴지는 순간.
“후우우…….”
고도 1만 미터.
통상적인 마족들이 최대로 날아오를 수 있는 높이다.
그렇게나 거센 폭풍과 파도와도 같은 격정의 연속이 한바탕 휘몰아치고는, 거짓말과도 같은 고요가 찾아들었다.
나의 위를 둘러싸는 검푸른 상공의 한복판에는 푸르른 만월이 은혜와도 같은 아늑한 빛을 세상에 내리비추며, 나의 밑에는 짙푸른 구름의 바다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눈이 멀 정도로 찬란한 빛의 별무리가 눈에도 닿지 않을 하늘선의 저편까지 끝없이 깔려 반짝인다.
흡사 조류와도 비슷하게 완벽히 변화한 체질이 산소 부족과 극저온의 환경에 적응한다.
혈액 온도가 떨어져서 더 많은 산소의 흡수가 발생하며, 떨어진 혈액 온도에 옅어진 산소 농도의 보상이 실시된다.
“흡……! 하……!”
나의 내뱉고 들이키는 들숨과 날숨마다 입김의 결정이 대기 중에 꽁꽁 얼어붙었다.
영하 50도는 격심할 정도로 춥고도 매서운 극한의 환경이다.
전생의 한파의 기준인 영하 20도와 북극 지방의 평균 기온인 영하 35도마저 뛰어넘어, 남극 지방의 평균 기온인 영하 55도에 비교될 수준이다.
상공풍과 난기류와 같은 여러 변수가 버무려져 더욱 추운 상공의 혹한.
전생의 제트기가 날거나, 이따금 극소수로 도달한 조류들이 버드 스트라이크를 일으키는 고도.
하지만 그리 춥지는 않는다. 그저 으슬하게 제법 서늘하다 정도.
체질적으로 비행의 은총을 타고난 마혈이 흐르는 마족과 최대한 비슷하게 육체가 개조되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수 분 이내로 신체의 대부분 기능이 정지 수준까지 저하되고, 10분 이내에 동사에 도달했겠지.
폐부에 넘실대는 상공의 벼려진 얼음칼처럼 차가운 대기가 더없이 청량하고 싱그럽게 느껴진다.
“흡……! 흡……!”
나와 리나 씨가 상공의 데이트를 진행한 최대 고도 역시 이 정도.
마계의 1만 미터 이상의 상공에는, 마왕조차 존재력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의 초강력한 마기가 차단선을 생성하기에 결코 그 이상으로 올라가서는 안 된다는 암묵적 규약이 있다.
다만 아무리 지상이라도, 이 이상 올라가게 되면 개별적인 기량과 능력에 따라 극명히 갈리게 된다.
하지만 이 정도 고도는 통상적이라 불릴 존재들에게는 거뜬하다.
천족, 마족, 용족, 거인족의 4권족, 네 권능의 종족이라는 위명을 짊어지면서 더위나 추위에 약하다면 엄청나게 웃긴 그림이면서 모양새가 빠지기에.
네 종족들은 태생적으로 체질이 엄청나게 강건하기에, 지상인들의 기준으로는 폭염이나 한파에도 매우 강인한 내성을 지닌다.
영상 몇십 도의 더위나 영하 몇십 도의 추위에도 그저 좀 덥거나 약간 춥다 수준이다.
물론 각 종족들을 이루는 일족들마다 훨씬 강하거나 조금 약한 개별차는 있더라도, 종특 자체적으로 내성이 더 강하기에 가능한 현상이었다.
다만 이는 고공에서 이루어지는 체질의 일시적 변환이며, 마력으로 사용하는 빙마술에 냉해를 입거나 할 때는 여전히 유효하다.
나는 서서히 뒤로 등을 돌리며 급격히 끌어안았다.
“꺄아핫핫핫~!? 지, 크으~!?”
그러고는 그녀의 터질 듯한 용적의 가슴골에 얼굴을 파묻어 버렸다.
“아핫! 아하하하핫! 알고 있었던 거야!?”
브라탑에 파묻힌 나의 얼굴에 세차게 비벼지는 파릴케가 발랄한 낭성을 터뜨렸다.
“얼마 날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벌써 붙잡아 버리면 어떻게 해~!?”
“이런 경우에는 누가 잡은 거지? 나를 먼저 발견한 것을 파릴케인데, 파릴케의 접근을 발견해 먼저 붙잡은 것은 나니까.”
“으음~! 그럼 다시 경주하자! 이 드넓고도 화려하게 펼쳐진, 지상의 아름다운 구름바다를 배경으로!”
화사하게 웃는 파릴케가 검지로 입술을 짚었다.
그러고는 그윽하게 눈매를 감으며 내게 고개를 낮췄다.
“자아, 지크! 나를 붙잡은 선물이야!”
쪽, 상공에서 여마족의 입맞춤 소리가 울렸다.
나의 이마에 키스한 파릴케가 양발로 사뿐히 허공을 박차 멀어져 갔다.
“자아~! 또 나를 잡아 봐! 지크! 그럼 또 입맞춤해 줄게!”
뒷짐을 지고 뒤로 날갯짓하며 점차 멀어져 가는 파릴케가 까마득한 거리까지 도달했다.
그러고는 등을 돌려 방대한 충격파를 발생하며 급격히 쏘아졌다.
나는 발랄히 멀어져 가는 파릴케를 뒤쫓았다.
“지크~! 어서! 빨리이!”
짙푸른 비단결처럼 밑으로 아득하게 펼쳐진 구름바다의 위에서, 여마족의 낭랑한 미성이 아련한 꿈결처럼 울려 퍼진다.
내게 몸체를 푹 웅크린 뒷모습을 내보이며 박쥐 날개를 펄럭이는 앙증맞은 뒤태가 연신 커졌다가 작아진다.
그녀가 흘끔 위를 올려보았다가는 황급히 다시 몸을 낮추는 모습에 웃음이 나와 버렸다.
1만 미터 이상으로 올라가서는 안 되는 마계에서의 비행에 너무도 적응되어 버렸기에.
비슷한 비행 고도를 보유하는 천족과 마족과 달리, 창공의 제왕의 이명인 용족은 이보다 몇 배는 되는 고도를 날아오를 수가 있다.
비행에 관해서는 15신조물들의 어떤 종족도 용족을 뛰어넘을 수 없다.
지상에 평생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붙박이들은 결코 모를, 날아오를 수 있는 존재들에만 허가된 극상의 유희였다.
“이쪽이라구~! 아하핫!”
우리는 검푸른 구름의 바다가 깔린 상공을 끝없이 가르고 날았다.
이따금은 둘둘 휘말린 솜사탕 같은 형태의 적란운을 푹 꿰뚫어, 내부에서 휘몰아치는 전격을 꿰뚫고 반대편으로 헤치고 날았다.
다양한 구름들을 배경으로 한, 연인 같은 숨바꼭질이 계속되었다.
나는 두터운 구름의 바다 아래로 더 이상 내려다보이지도 않는 지상을 내려보았다.
“환상적이군…….”
전생의 나였다면 이렇게 밤하늘을 날 수 있었을까?
황홀하다. 낭만적이다. 이보다 로맨틱할 수는 없다.
과학이 발달했다고는 해도, 아직까지도 비행기가 없으면 홀로 맨몸으로는 제대로 날아오르지도 못하던 게 전생의 인류다.
날개가 있는 그녀는 사용자의 마력을 날개에 전달해서 날거나, 행글라이더처럼 자연스럽게 바람을 타거나, 마력이나 마법으로 나는 실로 다양한 방법들을 보유한다.
하지만 나는 날개가 없기에 이렇게 마력이나 마법으로 날 수밖에 없다.
날개가 없는 마의 일족들도 이런 식으로 난다. 날개가 없으니깐 기력이나 마력이나 기술이나 마술로 나는 수밖에.
대신 그들은 태생적으로 마력통이 방대하나, 나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기에 장시간과 장거리의 비행에는 심히 불리해진다는 차이점이 있지만.
“사실 마력만 방대하면 궂이 날개도 필요는 없지만…….”
지상의 용사나 대마법사 정도만 되면 날개가 없어도 4권족 못지않게 마음껏 하늘을 날 수 있다.
이 세계의 역사에서 혼자 대기권이나 우주까지 나갔다가 온 괴짜 초강자가 단 한 명도 없진 않겠지.
이 별의 외부의 우주는 과연 어떤 형상일지, 한때 우주에 참으로 관심이 많았던 입장으로 심히 궁금해진다.
“아, 하하핫! 잡았다아! 지크!”
“서로가 동시에 발견했는데 어떻게 잡은 거야?”
“그럼 또 경주! 시작!”
“콜.”
본래는 내가 술래 아니었던가?
여하튼 나는 나를 잡으려 들며 도망도 치는 그녀를 붙잡기 위해 온갖 전술을 구사했다.
구름에 숨었다가 튀어나와 그녀를 노리면, 순식간에 급상승한 그녀가 모습을 감춘다.
아마 본업인 연금술에서 배합식을 구하는 것만큼 두뇌를 풀가동한 것 같았다.
이후로도 달을 위에 두고 구름바다를 아래에 둔, 심장이 멎을 만큼 황홀한 밤하늘의 데이트가 진행되었다.
심장이 녹을 만큼 달콤했다고 비유해도 족할.
얼추 3시간 이상 수십 킬로미터도 넘게 나는 상공의 데이트를 진행한 것 같다.
도중 차원구를 개방해 상시 구비하는 마력 포션들을 음용하고, 체력과 마력이 이루는 적절한 순환과 운용을 통해 낭비를 철저히 막고는 있다지만, 바람도 타며 날 수 있는 그녀와는 달리 순수하게 마법만으로 비행하는 나는 이 이상으로 진행하면 무리가 온다.
“에이~! 즐거웠는데에~!”
“200살도 훌쩍 넘어가는 아가씨가 왜 아이처럼 그래?”
“피이~! 나, 흄의 기준으로 치면 26세밖에 안 됐다!?”
“중요한 것은 육체적 연령이 아니라 정신적 연령이야.”
“한때 흄이었던 존재가 그런 말하는 건 안 어울리는 거 알지!?”
“멋대로 생각하십시오, 흄의 기준으로 고조할머니 2배.”
“이익~! 뭐라고 그랬어~!”
지상으로 함께 속도를 맞춰 하강하는 우리의 주변으로는 잔잔한 소성만이 울렸다.
어디의 어느 지점까지 온 것일까?
최초로 비행을 한 시점부터는 어느새 꽤나 먼 지점까지 와버렸다.
“흠, 흐흥~!”
나의 곁에서 뒷짐을 진 파릴케가 잔잔히 날갯짓하며 체공했다.
아름다운 여마족의 그만큼이나 아름다운 미성의 콧노래 소리가 밤하늘에 퍼져 나간다.
“나, 나나……!”
약 수백 미터 상공.
파릴케의 감미로운 비음 속에, 지상의 어떤 왕국일지 모를 성채에 둘러싸인 도시를 내려봤다.
동화와도 같이 아기자기한 유럽풍 성채 도시의 풍광이, 실로 감미로운 오색 빛무리 속에서 잔잔히 반짝인다.
국가와 지역, 수도이냐 지방에 따라 부와 기술력의 차이가 격심하다고는 해도, 어지간한 왕도급들은 마계의 마군도들과 마도시들과 다르지 않게 광마석들을 끼운 마석등들을 거침없이 풍부하게 사용.
전생의 상공에서 내려다보는 어지간한 도시들의 야경 못지않다.
물론 진짜 스케일은 비교도 안 되며, 어디까지나 비유가 그렇다는 거지만.
“있지, 지상은 참 신기해. 밤하늘의 천체를 둘러싼 공기와, 별과 달의 색상마저 완벽하게 다르다는 점이. 무언가? 마계에 비해 모든 것이 한없이 가벼운 기분? 그저 이곳에 육신이고 영혼이고 맡기고 있으면, 그만 모든 것이 훨훨 날아가 나조차도 훌쩍 잊어버릴 것만 같은 기부운~!?”
소녀처럼 싱그러운 감성을 발산한 파릴케가 환희하며 양팔을 활짝 펼쳤다.
바람 한 점 없는 허공에서 마력을 양익에 전환하며 잔잔히 날갯짓한다.
“파릴케는 지상이 좋아?”
“우음~! 글쎄, 뭐랄까? 나는 지상도 좋고 마계도 좋아! 각기 다른 매력들이 있다고 생각하거든!”
해맑은 미소로 검지로 입술을 짚은 파릴케가 고민하듯 눈동자를 굴렸다.
그러고는, 혹시 내게 무언가 은근히 더 바라지 않느냐는 듯한 눈길로 그윽하게 응시한다.
“아니면… 무언가 다른 것을 더 원해? 지상의 도시로 같이 들어갈까? 나는 모습을 인간으로 위장해야겠지만.”
파릴케가 녹아들 듯한 매혹적인 미소를 잔잔하게 지었다.
돌연 아득한 지평선 저편을 향해 넌지시 손짓했다.
바로 밑에서 찬란한 빛을 흩뿌리는 왕도와는 대조적으로, 칠흑처럼 깜깜한 어둠 속에서 아주 미약한 불빛들만이 점멸하는 곳을 가리킨다.
“저기에 보이는 마을을 습격하거나, 지상의 모험가들을 사냥할까? 내가 내려가서 돌아다니며 마물들을 끌어모을까? 나는 수백 정도는 간단히 모을 수 있어. 나와 함께 잠시 생성한 몬스터 레어에서 군림하며 머물래? 즐거운 몬스터 웨이브가 자아내는 여파와 파괴력을 함께 감상할까? 지크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할게.”
지상의 마물들과 마수들은 약하지만. 그렇게 덧붙인 그녀가 은근히 바라는 눈치로 고개를 기웃댄다.
그녀는 내가 원한다면, 남녀노소로 분류한 인간 수백의 시체도 산처럼 쌓으리라.
나는 완곡하게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
“아니……. 이곳은 우리 세계가 아니야. 돌아가자.”
누구도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이상의, 너무도 압도적인 외력에 의해 자신의 행복이 유린당할 권리는 없다.
그것은 마계에서 통용되는 일방적 힘의 순리다.
중간계인들은 사고방식부터가 다른 마계인들로부터 유린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힘이 보다 약하다고 해서, 힘이 보다 강한 자들로부터 반드시 유린당해야 할 권리는 어디에도 없으므로.
이곳은 약육강식의 마계가 아닌 중간계다.
우리와는 다른 존재들이 다른 색상들로 살아가는 세계.
그녀가 확연히 실망한 듯한 기색으로 낮게 덧붙였다.
“그래…? …알았어. 그것이, 지크가 원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근처의 잔디가 깔리고 풀덤불과 숲이 우거진 동산에 착지했다.
착지와 동시에 날개와 꼬리를 소거한 파릴케가 나무들이 우거진 조금 으슥한 곳까지 이동했다.
엄지손톱으로 검지의 안쪽 지문 부위를 따고는, 방울져 흐르는 마혈이 허공에 특정한 마법진의 형상을 수식한다.
“데몬 로드의 위치가 바뀌었지만… 상관없어. 이 근방은 전혀 모르겠지만, 그것이 이후에 펼쳐지는 나름의 모험의 요소가 되겠지!”
기존의 좌표를 해제하고 다시 새로운 좌표를 설정한 파릴케가 싱그럽게 영창했다.
“그럼, 다음에 지상에 나올 때에~!”
그녀의 종언을 기점으로 우리를 중간계로 전송한 데몬 로드가 재개방되었다.
파릴케가 내민 손을 붙잡고는 함께 동시에 진입, 초기와 같은 도약에 의한 기묘한 여파가 자아내지고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의 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한다.
“자아~! 돌아왔어요!”
무언가 뻑뻑하면서도 한없이 투박한 느낌에, 미묘하게 가슴을 짓누르는 듯한 중압감의 대기.
지상의 생물들이 적절한 대비 없이 한 모금이라도 들이킬 시에, 치명적인 독성이 산소에 감도는 마기의 원산.
마계. 제6마군도 룩스리아의 군도인 헬유레이아에 위치한, 바르스트 상업구의 루에나 교차로에 복귀했다.
“후훗! 지상의 상공에서 펼친 심야의 데이트는…… 즐거웠어?”
뒷짐을 지고 싱그러운 눈웃음으로 고개를 까닥대는 파릴케.
그래, 그런 것이다. 결국 나는 그녀와 똑같은 마계인.
“아주 즐거웠어.”
“다행……이야. 지크가, 즐거웠다면.”
어떤 굳게 걸어 잠긴 남심조차 깡그리 파쇄해 산산이 흩날릴 정도로, 아찔하고도 아련하게 웃는 아름다운 마족의 아가씨.
그를 기점으로 나의 내면에서 가득 억누르고 있던 무언가가 확 올라왔다.
현재의 나의 정신과 의식을 날릴 정도로 강렬한 욕정이었다.
“나와 함께 자러 가자.”
“으, 응……?”
자신이 들은 말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그녀.
이윽고, 떡 벌어지는 입과 함께 탁한 핏빛의 홍채가 놀라움에 크게 뜨인다.
“자러, 가자구…….”
“응. 어차피 시간도 늦었잖아?”
나는 결심했다.
그녀의 꽃의 색상을, 나의 색상으로 물들이기로.
살긋이 입을 벌린 파릴케가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 이리저리 곁눈질했다.
입술을 달싹대며, 비죽한 손톱들을 톡톡대며 맞부딪친다.
“싫어?”
“그, 그런…….”
“어차피 그렇고 그런 것도 한 사이잖아? 바로 어젯밤에?”
“…….”
“지금은 서로 아찔한 낭만적인 데이트마저 즐겼고.”
“그렇긴 하지만…….”
“나는 지금 파릴케를 원해. 혼신이 으스러지도록, 아주 격렬히.”
파릴케가 요염한 세로 동공을 멍하니 치켜떴다.
이윽고 희푸른 특유의 안색에 홍조가 올라와 자줏빛으로 확 피어난다.
얼마나 고심의 시간을 지녔을까.
이내 그녀의 입술이 서서히 벌어졌다.
“좋아…….”
“가자.”
나는 즉각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다.
뒷골목으로부터 나와서는, 버글대는 마계인들의 인파와 오색 마석등들의 불빛이 찬란한 거리를 헤친다.
특정한 장소로 나아간다.
사실 그녀는 이미 각오하고 있던 게 아니었을까?
만약 그녀가 거부했다면, 그냥 헤어져서 공방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어차피 각오하고 있었다면, 딱히 특정한 수단과 술수를 동원해 강제할 필요도 없겠지.
이건 내가 마계인임을 확인하기 위한 절차이다. 그녀와 나는 같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잠시 지상에 나가, 흔들리고 말았던 마음을 되잡기 위한 절차.
아마 자주 찾게 될 듯한 목적지에 도달한다.
탐욕의 적월.
웃는 입꼬리가 달린 붉은 보름달의 간판이 인상적인, 다층 구조의 제법 큼직한 규모인 여관.
카운터의 공중에 떠오른 고동빛의 사람만한 둥근 몸체, 주인장 그랄이 몸통 한가운데에 박힌 커다란 핏빛 세로 동공으로 내게 심유한 시선을 준다.
“하루만에 복귀인가? 왕성하군…. 흄 베이스의 호문쿨루스는.”
“그랄, 같은 방으로 괜찮을까? 참고로 나는 지크인데 안 밝혔네.”
“그냥 올라가라. 요금은 나중에 내고. 그곳은 상시 빼두기로 했다.”
단도처럼 얼기설기 치솟은 치열들의 사이에서 중후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이내 카운터의 혼자 스르륵 열린 특정한 서랍으로부터, 염동력에 휩싸인 507호의 키가 내게 스르륵 날아들었다.
지성으로는 악마만큼이나 뛰어난 마수족인 게이저의 눈치 빠른 응대 속에, 허공의 열쇠를 낚아채고는 5층으로 직행했다.
여관에 진입한 순간부터, 딱히 손목을 붙잡지 않아도 스스로 따르는 파릴케가 쭈뼛대며 비죽한 손톱들을 톡톡 맞부딪쳐댄다.
“너, 너무…… 거칠지는, 않게. 부탁해…….”
바로 어젯밤의 건이 느껴졌는지, 내심 우려를 감추지 못하는 투로 말한다.
확실히 내가 좀 지나치게 하드하긴 했지.
이건 추후라도 슬쩍 미안했다고 말하거나 어필을 해야 하려나.
507호에 들어선 나는 파릴케를 앞세우며 뒷손으로 문을 닫았다.
객실의 천장에 부착된 광마석들로부터 내리쬐는 아늑한 광량.
특실에 걸맞게 꽤나 드넓고 호사스러운 방.
전방으로 위치한 헬유레이아의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통유리를 가린 커튼.
좌우에 보이는 큼직한 더블베드.
입구 우측에 위치한 화장실 겸 샤워실.
이젠 나의 전용실이 되어 버렸다.
“또, 와버렸어…….”
후드를 눌러쓴, 희푸른 피부의 드높은 노출도인 여마족이 서서히 발걸음을 내딛는다.
“…지크와, 모두가 함께 밤을 보낸 곳…….”
그녀가 전방으로 곧게 걸어가 통유리를 가린 커튼을 천천히 걷었다.
다색의 광마석들이 만들어내는 불빛이 실로 찬란한, 헬유레이아의 시내를 그저 망연히 내려다본다.
어째서 갑자기 야경이 보고 싶었던 걸까.
그녀는 그저 덧없이, 객실의 외부로 비치는 바깥만을 바라보고만 있었을 뿐이다.
데이트 뒤의 섹스.
터질 듯한 욕망이 불끈대며 치솟았다.
나는 앞섶을 끌렀다.
통유리로 비치는 헬유레이아의 야경을 망연히 내다보고 있는 파릴케의 뒤태를 향해 다가갔다.
나의 눈높이보다 낮은, 좌우로 뿔을 솟구친 후드를 눌러쓴 폭발적으로 육덕진 여체.
내가 그녀의 뒤까지 바짝 접근했음에도, 딱히 뒤를 돌아보려는 움직임조차 없다.
그녀의 뒤에서 어깨를 바짝 끌어안으며, 양손은 그녀의 젖가슴들로 늘어뜨렸다.
“아…….”
파릴케가 나지막한 탄성을 내뱉었다.
그녀가 서서히 시선을 내린다.
자신의 맞붙인 허벅지 사이에 바짝 끼워진, 허벅다리를 넘어 한참 전방까지 우뚝 치솟은 형체.
이미 단단하다 못해 터질 듯이 발기한 나의 양물이, 그녀의 허벅지 사이에 내질러졌다.
악의 꽃을, 나의 꽃으로 만든다.
녹아드는 밤의 시작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