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화 〉 데이트
* * *
“나와 함께… 하늘을 날고 싶다고?”
“응, 지크와 함께 하늘을 날기를 원해.”
파릴케가 촉촉하게 속삭였다.
나는 그녀의 저의를 몰라 눈을 깜빡였다.
이내 파릴케가 상체를 나의 앞가슴에 바짝 맞붙였다.
진한 와인색의 세로로 갈라진 동공이, 더없이 뭉클하고도 풍염한 질감과 함께 나를 압박하며 올려본다.
“가자…….”
파릴케가 나의 손목을 잡아 이끌었다.
나는 그녀에게 손목이 붙잡혀, 그저 그녀가 잡아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내게 일시적으로 투영되었던 그녀의 눈빛은, 타오를 듯이 강렬한 염원과 소망을 동시에 품고 있었으므로.
벨드라스 사거리의 바로 너머에 위치한 다른 번화가인 틸로에 교차로에 들어선다.
이윽고 틸로에 교차로와 가드리아트 사거리가 접하는 여관과 식당, 주점이 밀집한 구역, 루에나 교차로에 들어선다.
우연스럽게도 내가 그녀를 만났던 곳.
그녀와 꽤나 난잡한 만남을 가졌던 장소를 벗어나, 웬 으슥한 뒷골목으로 들어선다.
나를 막다른 벽면을 향해 바짝 밀어붙인다.
나는 벽을 등지고, 몸으로 천천히 밀어붙일 뿐인 그녀를 마주하는 형태가 되었다.
모를 영문이었다.
도대체 그녀가 무엇을 원하는지, 왜 이런 형태의 밀회를 구사하는지.
설마, 기습을 가하기 위한 목적으로……?
나는 여러 상념들이 동시에 휘몰아쳐 복잡한 실타래처럼 뒤엉키는 것을 삼키며, 전신의 긴장을 바짝 굳혔다.
결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갈, 까……?”
그녀가 감미로운 푸른 봄날처럼 싱그럽게 웃으며, 나의 가슴에 맞붙인 턱밑을 바짝 뒤젖혀 올려보았다.
달달한 허브 아로마의 향내가 물씬 풍기고는, 나를 남긴 그녀가 그대로 나의 뒤로 훌쩍 넘어갔다.
나는 뒷골목의 막다른 벽면을 향해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등을 돌려 돌아봤다.
벽면을 향해 그저 잠깐 걸을 뿐이던 그녀가 돌연 멈췄다.
오른손을 들춰 검지로 벽면을 향해 삿대질한다.
검지의 안쪽 지문 부위는 엄지손톱에 따여 검붉은 핏방울이 흐르고 있었다.
검지를 고아하게 들춘 그녀가, 그대로 허공에 특정한 수식을 덧그렸다.
먼저 원의 표식부터 잡고는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모서리들을 내찍어 오망성의 형상을 그렸다.
그녀의 마혈은 결코 바닥으로 흐르지 않으며 마족의 피로 이루어진 마법진을 허공에 굳게 각인했다.
그러고는 조용히 소곤대는 잔잔한 미성으로 영창에 돌입했다.
나는 그녀의 좌우로 뿔들을 솟구친 후드를 눌러쓴 뒤통수를 그저 말없이 지켜보았다.
이윽고, 허공에 묵직한 마기와 마력이 합산된 파장과 함께 여파가 자아내졌다.
검붉고도 불길한 폭발이, 그녀가 피의 오망성을 덧그린 형상 내부에 휘몰아친다.
차츰차츰 테두리가 주변 공간을 집어삼킬 듯이 벌어지고 넓어져, 둘레의 직경은 거진 2미터에 달한다.
이내, 테두리는 고속으로 회전하며 흩뿌려지는 붉은 불꽃들로 새빨갛게 타들어 가고, 내부는 시커먼 먹물처럼 울렁대며 끊임없이 꿀렁대는 형상이 생성되었다.
내부에는 검붉은 오망성이 선명하게 새겨져, 주변의 공간을 어그러트리며 요악스럽게 빛을 발하고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나는, 옅게 탄식성을 내뱉었다.
“데몬 로드…….”
마족들이 마계에서 중간계로 나갈 시에 개통하는 게이트.
신창세기 당시의 중간계와 마계는 서로를 분리하는 결속력이 미약해 완벽한 이격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당시에는 지상에도 일부 거주하던 마의 일족들은 중간계와 마계를 자유로이 오갈 수 있는 술식을 개발했다.
그것이 마의 일족이 자신의 마혈로 중간계로 향하는 길을 낼 수 있는 데몬 로드의 시초.
마군주(???), 혹은 마군장(???)들의 영문명인 데몬 로드(Demon Lord)와는 말 그대로 마도(??)나 마로(??)의 의미인 데몬 로드(Demon Road)로써 틀리다.
마족 개인의 마혈을 매개로, 마족이 지상에 침투할 때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흑마술.
이따금 지상에 이질적인 공간이 생성되어, 마계산의 마물들이 비집어져 나오는 마물 범람으로 주변과 일대에 극심한 혼란과 피해를 초래하는 현상도 죄다 데몬 로드의 개방에 의한 후폭풍이다.
당연히 마족이 초래한 일.
마족들이 지정한 그 위치들은 실로 다양해, 설산 꼭대기, 유적 공터, 버려진 교회의 예배당, 폐건물의 으슥한 밀실과 같은 곳들이 애용된다.
오직 개방자의 허가에 따라 마의 일족들만이 진입할 수 있으며, 보다 대규모의 목적으로 사용되는 술식인 지옥문 헬 게이트와는 달리 오직 개인용 혹은 소규모 그룹에 의해 쓰이는 전이로.
공방의 리나 씨도 당연히 지상으로 통하는 데몬 로드를 갖추고 있다.
나 역시 리나 씨를 따라 지상에 나가 보았기에 어색할 것도 없다.
다만 그녀가 의도한 상공의 데이트가, 마계의 상공이 아닌 지상의 상공임이 의외로 다가왔을 뿐.
“갈까?”
싱그럽게 웃는 파릴케가 힐끗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뒷짐을 진 채 그녀의 전방으로 생성된 공간의 내부에 성큼성큼 발길을 내디뎠다.
그와 함께 내부의 검붉은 오망성이 새겨진 시커먼 먹물 같은 울렁임이 그녀의 형체를 흔적도 없이 삼켜 버렸다.
나도 즉각 그녀를 뒤따랐다.
곧장 나를 꿀렁대며 집어삼키는 검붉은 마법진이 새겨진 시커먼 울렁임.
우리의 뒤로 벌려졌던 공간이 꼭 닫혀지며 사라지는 여파가 느껴졌다.
돌연 주변으로 형형색색의 픽셀들과 같은 빛줄기들이 무수히 스친다.
검붉은 배경색에, 표면에 무수한 빛의 줄기들이 내달리는 원통형의 기나긴 통로에 들어온 듯한 풍광.
체내에 마혈이 흐르는 존재들만이 체험하며, 다른 세계를 뛰어넘을 때 육신에 자아내지는 일시적 섬망 현상이다.
이것으로 본격적인 중간계로의 진입이 이루어지게 된다.
지상이라고 불리는, 훨씬 다양한 종족들이 살아가며 환경과 풍토와 경관도 완벽히 다른 세계.
그리 멀지 않은 저편에는 새하얀 빛의 출구가 일렁이고 있다.
파릴케는 이미 빠져나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다급하기는….”
나는 중간계로 향하는 출구를 향해 묵묵히 걸었다.
도달과 함께 빛의 일렁임이 기나길게 뻗어져 나와 나를 휘감나 싶더니, 나는 눈부신 빛의 폭발에 휩싸였다.
의식과 정신마저 멀어 버릴 듯한 성대한 빛의 폭발이 한동안 휩쌌다.
대체 얼마나 이 현상에 휩싸여 있어야 하나 의문이 들었을 때, 일순간 나타난 것은 검푸르고도 찬란한 세계.
나는 돌연 푸르른 들판이 지평선까지 끝없이 뻗은 밤의 세계에 서 있었다.
검푸른 야공으로부터는 세계를 집어삼킬 듯이 거대한 푸른 만월이 대지를 아늑하게 비추며, 탁 트인 모든 시야에 밤하늘로부터의 아득한 흰빛 별들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반짝이는 별빛과 찬란한 달빛에, 무성히 자라난 수풀과 이따금 외딴섬처럼 위치한 숲들이 검푸른 녹음을 뽐낸다.
어둑한 하늘선에서부터는 초목을 일렁이며 불어오는 밤바람이, 발목까지 자라난 잔디들을 흔들고 싱그럽게 볼을 간지럽힌다.
콧잔등을 가득 메우는 상큼한 풀내와 풋풋한 흙내가 이루어내는 원천의 자연향.
찌륵대고 시익대는 감미로운 풀벌레들의 소리가 요란히 울리며 귓전을 때렸다.
뒤로 벌려졌던 공간이 꼭 닫혀지며 사라지는 여파가 다시 느껴졌다.
파릴케가 지상으로 통하는 자신의 데몬 로드를 지정한 곳.
“지상이로군…….”
나는 고개를 들춰 밤하늘의 청아한 푸른 만월을 망연히 올려보았다.
달과 별이 붉은색 일색이 아닌 청색과 백색이다.
폐부로 넘실대며 스며드는 자연의 공기가 더없이 싱그럽다.
마계의 무언가 뻑뻑하면서도 한없이 투박한 느낌에, 미묘하게 가슴을 짓누르는 듯한 중압감의 대기와는 확연히 다르고 가볍다.
이곳의 산소에는 지상의 생물들이 적절한 대비 없이 한 모금이라도 들이킬 시에 치명적인 독성인 마기가 없기 때문이다.
“무엇을 새삼스럽게…….”
아마 지상의 어느 왕국 근처의 평야일까.
파릴케가 데몬 로드를 지정해 놓은 경로가 어디 즈음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제 우리는 지상에 있다는 것.
중간계라 불리며, 마족과는 다른 수많은 다종족들이 살아가는 곳.
“이제 왔어, 지크?”
뒤로부터 들려오는 싱그러운 목소리.
나는 천천히 등을 돌렸다.
등을 돌린 곳에서는 검푸른 야공으로부터 쏟아지는 푸르른 만월을 후드와 전신으로 받아내는 파릴케가, 느긋하게 뒷짐을 진 요염하고도 청초한 자태로 서 있었다.
“마계의 달과 별천지는 모조리 빨갛기만 해서 재미가 없으니깐!”
파릴케가 마족 특유의 짐승적인 뾰족한 송곳니들을 드러내며 섹시하게 웃으면서 걸어왔다.
“지금 왔어. 파릴케.”
나는 양발을 들췄다 낮췄다 해보았다.
잔디를 그냥 밟아도 발이 베이거나 다치지 않는다는 사실이 퍽 신기하다.
본래 그것이 지극히 당연한 것임에도.
“이게 진짜 정상의 감각인 것을…….”
나는 쓰게 탄식하며 이리저리 발을 굴리고 놀려 보았다.
본디 이게 정상이다.
마력을 휘감거나 튼튼한 철화로 딛지 않으면, 기어코 자신을 짓밟은 존재의 발길을 찢어 놓아 피를 추가적으로 덧칠하는 핏빛의 금속성 잔디가 아닌.
파릴케가 바짝 다가와서는 눈앞에 멈춰 섰다.
마계의 크림슨 그래스가 아닌 중간계의 잔디를 연신 밟아대는 내가 신기하다는 듯이 물끄러미 바라본다.
“신기해……?”
“아니, 잠시 잊었던 소중한 감각이 떠올랐을 뿐이야…….”
그녀가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의아하다는 듯이 고개를 기울였다.
나는 속에서 치솟는 뭉클한 감정을 억누르며 얼굴을 저었다.
이제 나는 마계인이다. 그녀와 똑같은 피가 흐르고 있는 동일한 존재.
더없이 산뜻하게 웃는 파릴케가 내게 손톱들이 비죽한 마족의 왼손을 내밀었다.
“지크와 함께, 지상의 저 아름다운 밤하늘을 날 수 있다면! 매우 기분이 좋을 것만 같아!”
어떤 굳게 닫히고 내걸린 남심조차, 단박에 부숴 버릴 정도로 상큼하게 웃는 파릴케.
그녀가 공방을 방문했을 때부터, 함께 거리를 내걷고는 식사를 하고 지금까지도 내내 풀지 않았던 긴장.
어떤 적의도 없이, 그저 한없는 호의만을 발산하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완전히 무너졌다.
“그런 거겠지…….”
결국 어떤 모습에 어떠한 세상이라도, 각기 다양한 감정을 발산하는 생명들은 살아간다.
누구도 미래는 모른다.
미래시의 능력을 지닌 존재라도, 필사적으로 자신의 운명을 극복하고 역전하려 하는 존재에 의해서는 깨지고 마는 것이 미래의 예지다.
어떻게든, 어떤 모습을 취했든, 결국은 살아간다는 것이 어찌 보면 세상과 생명의 진정한 아름다움이 아닐까.
과거의 내가 누구였고, 현재의 내가 누구인지 상관없이.
결국 현재의 순간에 충실하면 된 것이 아닐까.
한없이 싱그럽게 웃는 파릴케가 내게 내민 왼손의 고운 손가락들을 꼼지락댔다.
나는 오른손을 내뻗어 반장갑에 끼워진 그녀의 고운 손을 굳게 움켜잡았다.
피붓빛은 다르더라도, 결국은 생명의 따스하게 느껴지는 온기.
“가자, 지크!”
“그래.”
그를 기점으로 나는 그녀와 떠올랐다.
우리는 함께 밤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