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화 〉 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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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력 4323년 적흑의 월 음암의 주 색욕의 요일.
중간계 기준. 아델렌력 1441년 4월 7일.
나는 마족 파릴케와 데이트에 나섰다.
어젯밤엔 이 길을 나 홀로 걸었는데, 지금은 나의 곁에 파릴케가 찰싹 달라붙어 있다.
출발 이후부터 도무지 떨어질 생각을 안 한다.
“있지, 지크. 무엇을 하고 싶어? 마계는 낮에도 아름다운 원석이지만, 밤이 되어야 진정한 빛을 발하는 보석이라구?”
“그야 나도 모르지. 그저 너가 나를 무작정 이끄는 대로 끌려 나왔을 뿐이니까.”
“피이. 재미없어.”
파릴케가 입술을 삐죽대며 눈매를 곱게 흘겼다.
그러고는 팔짱을 낀 나의 오른팔에 바짝 밀착시킨 너무도 뭉클한 양감들을 비벼댄다.
그녀와 함께 제6마군도 룩스리아의 중심지이자 가장 거대한 제1마도시, 군도 헬유레이아로 향하는 외길을 터벅대며 걷는다.
“거의 다 왔다구?”
파릴케가 잡아끄는 대로 훌쩍 떠나, 그저 하염없이 걷기를 한 시간 반 가량.
마법으로 달려오거나 날아오는 빠른 방법도 있었으나, 그녀가 나와의 이야기를 원했기에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걸어왔다.
느린 걸음으로는 2시간, 빠른 걸음으로는 1시간인 거리를 적당한 속도로 걷다 보니 저편의 지평에 돌연 커다란 형체가 모습을 드러낸다.
지평선을 메울 정도로 터무니없이 드넓은 성곽에 둘러싸인, 굳건하고도 견고한 초대형 성채 도시.
룩스리아의 지배자이자, 6마군장의 일원인 릴리스가 직접 기거하며 통치하는 곳.
나이트메어들이 모는 마차들, 드라코들이 모는 용차들, 드레이크들이 이끄는 지룡차들, 메갈로 와그들이 이끄는 대랑차들이 제각기 내달리는 여러 가도들이 헬유레이아로 향한 단 하나의 가도로 합쳐지고 있다.
주변에서 보행하며 함께 걷거나 낮게 떠다니는 떠들썩한 마족들의 무리에 합류했다.
눈에서 붉은 눈꼬리를 흩날리는 파릴케가 하늘을 싱그럽게 올려보았다.
“지크와 이야기하면서 오다 보니, 어느새 밤이 되었어.”
내가 기상한 시각은 15시 40분.
파릴케가 공방에 찾아와서 1시간을 좀 넘게 대화하고는, 또 1시간 반 정도를 걸어오니 벌써 까마득한 땅거미가 지고 있다.
마계의 해가 매우 빨리 떨어지는 어스름 속에, 주변에는 이곳 거주민들과 생물들이 눈에서 발하는 안광들과, 불야성을 띄기 시작하는 헬유레이아로부터 점등되는 불빛들이 가득했다.
검은 해인 솔 녹스가 붉은 달인 루나 루브라로 교체되고, 칠흑처럼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시커먼 밤하늘에는 핏빛처럼 진한 별빛들이 루비 알갱이들처럼 점멸하기 시작한다.
붉게 반짝이는 안티 스텔라가 깔리는 속에, 남문을 방비하는 제8군단 칠흑의 절규 소속 군단병들에게 검문을 받았다.
“크아하아악!? 또 저놈이다아!!!”
“제길! 이곳에서 벗어나야만!”
“다, 다들 어디 가십니까!?”
바로 어젯밤에 거하게 깽판을 친 나를 알아보는 다크 솔저들이 너무도 많았다.
저들과 똑같은 소속이자 병과이지만, 현재는 휴가인지라 군무의 사명을 이행하는 상태가 아닌 파릴케와 함께 신분증을 검사받았다.
같은 소속이며 사복일 뿐인 자신들의 전우가 나와 동행하고 있는 모습에, 다크 솔저들의 흑투구들 속에서 복잡한 심경일 것이 명백한 붉은 눈꼬리들이 휘돌았다.
데블들로 이루어지는 다크 솔저들의 분대장 포지션인 마두 크레나와, 라드리스 패거리는 금일은 비번인 듯해 딱히 보이지 않는 속에 무난하게 통과되었다.
“…나의 전우들과,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거야?”
“엄청나게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었지.”
내게 팔짱을 낀 파릴케로부터 의아한 시선을 받으며, 어지간한 장벽처럼 거대하게 치솟은 남문으로 들어섰다.
온갖 다색들을 입혀 발광하는 광마석들이 현란히 거리를 밝히는 풍광이 우리를 맞이한다.
아주 휘황찬란한 마석등들이 이루어내는 빛의 질주 속으로 그녀와 함께 파묻혔다.
전생으로 치면 미국의 라스베이거의 입지인 환락의 대도시에, 온갖 외형과 형상의 마의 일족들이 주변의 대로와 사거리를 가득하게 활보한다.
“좀 걸을까?”
“응! 지크!”
일단 그저 거리를 거닐었다.
이 즉흥적으로 벌어진 데이트에서, 도대체 무엇을 할지 생각하기 위해.
마족들이라면 필수적으로 좋아하는 무구점부터 들려서, 대체 이딴 걸 쓰는 놈도 있나 싶은 온갖 괴기한 병기들과, 최근에 나온 신무기들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나?
그러고는 다음으로 마도구점을 들려, 최근 핫한 아주 강력하고도 강렬한 위력의, 생명 수십과 수백을 먼지처럼 날리고도 남아도는 위험한 마도구들을 확인해야 하려나?
그리고 도구점을 들려, 마경에서 살아남기에 필수인 서바이벌 세트들을 초심자부터 숙련자까지 일일이 확인하는 절차를 의례상 걸쳐야 하나?
박물관이나 도서관, 극장도 나쁘지는 않으나, 전생의 기준으로도 확연히 개인차에 따른 취향이 갈리기에 아니다.
“대체 무엇을 해야 되지……?”
마족 여자와의 데이트에서는 대체 무엇을 하더라?
아니, 생각해 보니까 나는 지금 마족 여자와의 데이트는 전생 이후 최초다.
리나 씨와 함께 이따금 시내로 나와 거닌 것을 데이트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고.
설마 선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갑자기 공격을 가해, 격렬한 전투로 전환될 가능성도 있을까?
아니면 이 모든 게 절묘한 방심을 유도해, 완벽한 기습을 가하기 위한 목적인가?
과도한 걱정병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기에 그렇다.
마족들은 그러고도 능히 남을 놈들이니까.
나는 그런 마족에 대해 확연히 꿰뚫어 보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왜 이렇게 무엇을 해야 될지 갈피를 못 잡을까?
이런 날이 오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역시 이론과 실전은 다르네.
확연히 느껴진다.
“지, 크~? 지크는, 무엇을 좋아해?”
“일단 밥부터 먹을까?”
“응! 좋아! 마침 배고팠어!”
주변의 모든 배경을 삭제시켜 버릴 듯이 화사하게 웃는 파릴케가, 더욱 강하고 자연스럽게 팔짱을 조였다.
천만다행스럽게도 이건 먹혔네.
가장 무난한 코드니까.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흘리며 바르스트 상업구로 방향을 틀었다.
내게 찰떡처럼 찰싹 달라붙은 파릴케가 무엇이 그리 좋은지 연신 싱긋댄다.
전형적인 연인들의 특징, 이따금은 의식적으로 발걸음도 함께 맞추며 걸으려 하는 노력이 두드러진다.
여기저기에 마족들의 연인들도 거닌다.
마족, 저악마, 악마를 통틀어 수천이 넘어가는 마의 일족은 그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면면들도 많으니, 그 또한 볼거리다.
이따금 완벽한 괴물의 면전과 형상에 가까운 연인들이 지날 때는, 식겁한 티를 내지 않으며 태연하게 발걸음을 옮긴다.
벨드라스 사거리.
인구 12만의 룩스리아에서 평일 유동인구 3만의 여관, 식당, 주점, 상점이 밀집한 번화가에 접어들었다.
프랜차이즈로 마군도마다 하나씩 운영되며, 진정한 지옥의 맛으로 악명이 드높은 명소인 헬스 키친을 방문했다.
얼추 100미터도 넘어가는 줄을 한 시간 가량 기다리자, 말쑥한 외모와 정장의 인큐버스 종업원으로부터 자리를 안내받았다.
안내받은 어두침침한 조명의 실내에는 둘레 50미터는 될 듯한 시커먼 솥단지가 바닥에 설치되어 있었다.
내부에는 겉보기에도 위험해 보이는 온갖 정체불명의 식재료들이 시뻘건 용암 같은 수프에서 동동 떠다닌다.
그 주변의 1층에서 5층까지 단계별로 테이블들이 빙 둘러져, 몇백도 넘어가는 손님들이 모두 중앙을 볼 수 있게 원형으로 배열됐다.
검은 흑연이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특대형 가마솥의 내부에는, 10미터도 넘어갈 거대한 형체가 서서히 거닐고 있었다.
헬보이를 연상시키는 피처럼 시뻘건 피부에 거구의 우람한 근육질 악마가 하반신까지를 담그고 있었다.
자신에게는 그저 배까지만 잠길 뿐인 온천의 탕내를 거닐 듯하던 정중앙에서 돌연 걸음을 멈춘다.
양팔에 기둥들만큼이나 거대한 국자들을 쥔 악마가 돌연 상체를 뒤젖히며 쩌렁히 포효했다.
[헬스 키친!!! 크아하아아악!!!!!!]
붉은 악마의 쩍 벌어진 입에서 불길이 토해졌다.
아마도 기합, 혹은 광고의 목적.
이따금 점원들이 일본어들로 뜬금없이 소리들을 질러대곤 하는 일식당과 같이.
마술적으로 증폭된 원리의 쩌렁한 고함을 날린 악마가 냅다 국자들을 수프 속으로 떨궜다.
그러고는 엄청 빠른 말투와 경박한 목소리로 찡긋 윙크하며 손가락 하트를 날렸다.
[식사 맛있게들 하십쑈우~!]
붉은 악마의 음성이 점내에 울림과 함께, 솥단지의 밑바닥에 가라앉았던 보다 작은 솥단지들이 허공 이곳저곳에 둥실둥실 떠올랐다.
그와 함께 테이블들의 외곽 테두리에서 대기하던 인영들의 날갯짓들이 일제히 휙 일어났다.
북미의 유명 프랜차이즈, 후터스의 심화판을 연상시키는 진한 화장에 자그마한 브라탑과 팽팽한 T팬티의 데블 여점원들이 분주히 날갯짓한다.
커다란 가마솥의 허공에 떠오른 작은 가마솥들로부터, 각자들이 가진 국자들로 마찬가지들로 지녔던 접시와 대접에 퍼낸 스튜를 날랐다.
“식사 맛있게 하세요.”
나와 파릴케의 테이블에 요리를 놓고는, 검은 눈자위와 파란 눈동자를 찡긋 윙크하고 팽팽한 히프를 내보이며 날아가는 보라색 피부의 마족 여점원.
나는 입을 벌렸다.
진짜 마족 여자들은 어떻게 하면 저렇게들 이쁘냐. 대체 왜 저딴 복장들로 서빙하고 있고.
밥 먹으러 왔는데 명치에 뭔가 얹힌 느낌이 들고 목이 메며 성욕이 확 올라오게.
서큐버스들보다 급수 아래라도, 미녀들과 미소녀들이 아닌 게 되는 게 아니다.
얼굴들은 서양 여자들인데, 일곱 빛깔을 망라하는 다채로운 피부색들과 제각기 형상과 개수도 다른 뿔들이 어우러져 한없이 극상의 악마적 미를 선사한다.
하지만 나의 앞에는 그녀 못지않게 아름다운 파릴케가 있다.
자기 여자를 앞에 둔 남자는 다른 여자에 눈을 돌려서는 안 되겠지.
파릴케가 저 복장이면 어떨까…….
조신하게 포크와 나이프, 스푼을 놀리던 파릴케가 의문의 시선을 던졌다.
“왜 그래? 지크?”
“아니, 아무것도…….”
나는 고개를 기울이며 음흉하게 물들었던 시선을 황급히 관리했다.
아니지, 아니야. 대체 무슨?
스푼을 대접에 그득하게 담긴 겉보기에도 그로테스크해 보이는 온갖 식재료의 조합인 스튜에 박았다.
무녀님께서 주신 똥경단, 아니, 악마님이 빚으신 바디 스튜를 여러 혼재된 감정들로 떴다.
왜 요리를 하는 놈이 같이 들어가 있는지, 온도로부터 어떻게 멀쩡한지 신경 쓰면 지는 거다.
마계는 불가능이 가능한 곳이며, 나는 그냥 3년을 살다 보니 포기했다.
“역시 끝내 주지 않아? 지크? 괜히 마계의 6대 미식이 아니야.”
기가 막히게 맛이 좋았다. 먹다가 그냥 죽어도 좋을 정도로.
중국인의 알몸 김치 따위와는 비교가 불가하며, 눈물이 흐르고 심장이 터질 정도로 차원이 다른 현격한 진미.
아마도 가호 보유자이며 악마기의 복합적 작용. 이걸 지상인들이 먹으면 그대로 즉사할 거다.
악마가 들어 있었던 스튜를 떴을 뿐인데, 엄청난 취기까지 올라온다.
최소 50도 이상의 보드카나 고량주를 스트레이트로 음용한 느낌.
벌써 여기저기에서 취객들이 흥청망청하는 소음들이 떠들썩하게 들려왔다.
[크, 핫핫핫핫!!! 어떻습니까!? 지옥의 맛이!!!]
솥단지의 붉은 악마가 솥의 테두리에 양팔을 걸치고는 걸걸한 웃음을 쩌렁하게 터뜨렸다.
악마가 담긴 가마솥의 위에서는 데블과 동류로 취급되며 사역에 능한 일족, 그렘린들이 주변을 날아다니며 몸 전체로 끌어안은 후추와 소금, 설탕과 같은 조미료들을 끼얹고 이따금은 통째로 투하한다.
그걸 하나하나 세심히 관찰하는 악마가, 조금이라도 투여량이 잘못되었다 싶으면 크아하악! 크하윽! 소리를 질러 경고했다.
겁에 질린 그렘린들이 부들대면서도 바짝 군기가 돋은 훈련도들을 선보였다.
헬스 스튜는 그 자체가 음식이자 주류이기에 딱히 술을 마실 필요가 없다.
“으, 으응……! 나, 조금. 벌써 취한 걸지도? 지, 크?”
파릴케가 진한 자줏빛으로 달아오른 안색을 내게 바짝 들이대며 기웃댔다.
나까지 그녀와 똑같이 해롱대는 상태면 대략 좋지 않을 것 같아, 약간의 마력을 발휘해서 취기를 몰아냈다.
적당한 취기만을 즐기며 마계의 대표 미식을 그녀와 즐겼다.
[행여나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있으시면 말씀하십시오!!! 즉각 시정하겠습니다!!!]
헬보이를 연상시키는 초대형 붉은 악마가 너무도 싹싹하고도 정중하게 굴어댔다.
볼 때마다 느끼지만 마의 일족들은 사회에서의 본인들이 속한 본업에는 참 착실하다.
도발이 지나쳐 임계점을 건드리는 순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흉폭한 본성들이 튀어나오겠지만.
수많은 시선들이 꽂힌 곳이기에 비교적 건전해 보여도, 주방의 뒤에서는 아마 데블들과 그렘린들이 빈번하게 살해당하거나 저 붉은 악마의 위장 속으로 매일같이 사라질지도.
얼추 느껴지는 힘도 최소한이 마왕군의 상급전사이자 전사장의 자격인 칠흑급으로, 적혈급인 나와 암영급인 파릴케를 포함한 현재 점내의 모든 존재들을 마음만 먹으면 단박에 학살할 수 있을 정도고.
나는 쓰게 웃었다.
“확실히 닮았어.”
“뭐가? 지크?”
마족은 종특적으로 이중적이기에 자신의 본업에 싹싹하면서도, 많은 눈들이 없는 곳에서는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할 것이다.
그렇게 무언가의 폭풍이 끝나면, 자신들끼리의 힘과 본업에서의 서열로 최말단까지 내리갈굼이 줄줄 이어진다.
모두가 군대에 속해, 죽을 때까지 평생 군복무를 이행하는 마계의 사회는 작은 군대의 축소판인 것이다.
군복무를 했던 한국인들은 마계에서 적응을 잘하지 않을까? 아마 그래서 내가 나름 성공한 걸까?
“적당히 먹었으면 일어날까?”
“응……. 그, 그래.”
나의 즉전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파릴케가 일어서며 마력을 일으켜 취기를 몰아냈다.
완연한 자줏빛으로 달아올랐던 그녀의 홍조가 다시 희푸르게 가라앉는다.
미중년풍의 늙은 노악마가 지배인으로 있는 카운터에 가자, 파릴케가 품에서 지갑을 꺼내 꼼지락댔다.
“아니, 내가 계산할게.”
“뭐……? 그, 그렇다고 해도─”
“나의 여자들의 먹을 것과 마실 것은 내가 계산하는 위주야. 그것이 나의 철칙이다. 이상.”
파릴케의 형언할 수 없이 촉촉한 눈매를 보며, 나는 서로의 식사비를 치렀다.
그렇게 밖으로 나와서는, 다시 팔짱을 끼는 파릴케의 안내로 카페에 갔다.
미드나이트 걸즈가 즐겨 가는 장소인, 벨드라스 사거리에 위치한 카페인 이블 버진.
소품과 장식이 실로 앙증맞은 내부에 들어가서는, 함께 시킨 메뉴를 기다렸다.
이윽고 밀크커피가 서빙되었다.
마계에서 딱히 드물지도 않은, 본래 중간계 남방 원산의 마계산으로 현지화된 브랜드.
뱃길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남방에서, 다시 육로를 걸쳐 서방으로 돌아오던 상단을 마족의 원정대가 약탈하고는 반입시킨 것.
주로 가가브 산맥 남서부에서 재배되며, 여마족들과 여악마들의 사이에 불변의 아이템으로 인기가 드높다.
“귀엽지… 않아? 지, 크? 푸훗!”
파릴케가 나와 그녀의 커피들의 표면들에 앙증맞게 그려진 소악마의 라떼 아트를 티스푼으로 톡톡 건드려댔다.
마족들은 잔혹한 성향이지만 이런 것에서는 의외의 큐티함을 낼 줄 안다.
“후, 아아아……! 달, 다아.”
단것에 환장하는 것은 종족이 달라도 여자들은 똑같다.
양손으로 들춘 커피잔을 조신히 홀짝대는 파릴케가 그윽하게 웃었다.
“…지크는, 어딘가…… 달라.”
“내가 뭐가 다른데?”
“…통상적인 남자 마족들은, 엄청 강압적이거나, 전혀 속을 안 보이는데…… 지크는 무언가, 조금씩 알 것 같으면서도 보여……. 흐리게 물들었을 뿐인, 맑은 유리알 같다고 할까?”
그녀는 또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그러고는 오직 현숙한 미소만 지을 뿐인 침묵에 빠져들었다.
속을 알 수가 없는 이런 유형은 정말 꺼려진다.
그녀가 돌연 싱그러운 미소를 품었다.
“지크를, 처음 본 순간부터 묻고 싶었는데… 호문쿨루스가 되기 이전에… 지크는…… 어디의 흄이야?”
“리나 씨는 동방인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야.”
“동……방?”
머리에 물음표를 띄운 여마족의 고개가 아리송하게 기울어진다.
그야 마계에서 통상적으로 칭하는 지상은 오직 서방뿐이니까 그런 거다.
나는 본디 동양인이기도 했기에, 이쪽 세계에서는 영 머나먼 타향으로 치부되는 동방에 대해 매우 희소한 지식으로나마 알고 있는 거니까.
자신이 던진 의문을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 듯한 파릴케가 무릎들을 바짝 오므렸다.
“그렇구나.”
이후에도 가벼운 담소를 곁들이는 디저트를 즐겼다.
그렇게 단란하다고 볼 수 있는 시간을 즐기고는 밖으로 나와 다시금 거리를 거닐었다.
“후후…… 지, 크.”
나의 어깨에 꼬옥 밀착한 파릴케가 팔짱을 끼고 걸었다.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확연하게 시간이 지나 버렸다는 감각이 엄습했다.
문득 얼마나 시간이 되었는지 궁금해 리얼 타이머를 발동해 현시각을 확인했다.
그러고는 그만 놀라 입이 슬쩍 벌어지고 말았다.
“딱 자정이네.”
정말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 버렸다.
내가 진심으로 그녀와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는 말일까?
어제이던 오늘이 끝나고, 내일이었던 오늘로 들어가는 속에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이것이 그녀가 바라던 걸까?
이걸로,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내게서 얻어낸 걸까?
파릴케는 그저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손톱들을 톡톡 튕겨대며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가, 무언가 한참이나 고심하는 듯한 기색으로 입술을 달싹였다.
“나… 마지막으로, 하나 하고 싶은 게 있는데…….”
“뭔데?”
진한 와인색의 눈동자를 깜빡이며, 한참이나 주저하고 뜸을 들였다.
이내 그녀가 폭탄성 발언처럼 고백했다.
“지크와 함께 하늘을 날고 싶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