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서큐버스-43화 (43/80)

〈 43화 〉 데이트

* * *

“지크, 누가 너를 찾아왔는걸?”

늦은 오후, 나의 방의 침대에서 눈을 떴다.

“으음……. 대체, 누구랍니까…?”

나는 이불 속에서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호문쿨루스는 숙주가 된 육체를 본래의 형질에서 한계까지 개변해 새롭게 거듭난 존재.

아무리 7일 정도는 자지 않고 굶어도 끄떡없다라도, 그게 피곤조차 느끼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되려 매우 강화된 육체의 내구도와 정신의 인내심을 바탕으로, 여파와 후유증이 엄청날 피로를 참고 있다는 말이 걸맞기에.

정상적인 생리 활동을 지니고, 식사와 수면의 행위를 통해 에너지를 얻는 일반적인 생물이라면 먹는 것과 자는 것은 필수다.

먹고 자지 못하면 천사도, 악마도, 용도, 거인도 답이 없다.

육체와 정신이 꽤나 개변된 상황에 도달해, 그런 것들을 일체 필요로 하지 않는 경지에 진입한 것이 아닌 이상.

아무리 나라도 여마족 하나와 여악마 둘과 동시에 치르는 4P는 힘들었다.

마경에서 밤을 보내며 마물들과 마수들을 사냥하는 것과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다른 의미로 정말 힘들었기에.

곧장 공방에 복귀해서는 대강 씻고 내내 눈을 붙이고 있었는데…….

“마족인데?”

나를 찾아올 마족이 있던가?

애초 이 세계 출신도 아니며, 갑자기 흘러든 겉도는 떠돌이 같은 존재인 나를?

나의 귀를 의심하며, 조금 시큰둥한 목소리로 매혹적인 꿈의 악마의 미성에 반문했다.

“이름이, 뭐랍니까……?”

“파릴케라는데?”

털거덕, 대충 일어났던 상태로 허리춤에 채우려던 벨트를 그만 떨궈 버렸다.

나의 서큐버스의 잔잔한 발소리가 다시 복도를 향해 멀어져 갔다.

하려던 것보다 훨씬 빠른 급속으로 착의를 실시했다.

사복을 대충 입는 둥 마는 둥하며 복도로 튀어나왔다.

곧장 나오는 거실.

현관문의 왼편으로는, 매직 셔터를 올려 개방한 매대에서 외부에 보이는 뿔을 단 인영들을 상대로 접객하며 장사 중인 리나 씨.

섀도 디어의 가죽을 가공한 소파에 앉은, 좌우로 뿔들을 솟구친 후드를 눌러쓴 희푸른 피부의 여마족.

“파릴케…….”

“안녕, 지크?”

평온한 표정과 단아한 미소의 파릴케가 내게 인사를 건넸다.

파릴케 녹스 스티에 카이시안.

어젯밤, 아니, 오늘 새벽까지 이어진 헌팅의 현장에서 가장 먼저 만났던 그녀가 나를 찾아왔다.

“5급 체력 포션이 150브리아면 엄청 저렴한 특가라구요! 기력 포션도! 마력 포션도! 지력 포션도! 기타 다른 포션들을 우리처럼 이렇게 싸게 파는 곳이 없어! 마평원에 진입하는 입지에 위치해서, 웨이브 및 헌팅 시즌마다 엄청난 특혜를 누리기에 감사의 의미로 훨씬 싼 특별가로 상시 다루고 있는 거니까! 시내의 다른 5급 연금술사들은 최소가 평균가인 200브리아는 받거나, 적게는 250에서 많게는 300까지도 후려칠 걸요!? 우리 같은 곳은 마계에 없다구!”

“그렇다 해도 나처럼 자주 오는 고객들한테는 더더욱 깎아 줘야지! 결국 단골이 안 오게 된다면 이쪽이 손해 아닌가!? 장사란 손님이 원하는 가격까지 계속해서 깎아 주는 거라구! 뭘 한참 모르네!”

리나 씨가 최대로 조제할 수 있는 포션의 수준인 5급, 한화로 1만 5천 원에 평균가인 2만 원보다도 훨씬 싼 가격으로 어떻게든 팔려는 분투의 함성.

도합 7급수의 분류에서, 통상적으로 시중에 유통되는 수준이라 볼 수 있는 5급 포션을 훨씬 더 싸게 후려치려 시도하는 마족의 흥정이 침묵을 깬다.

나에게 싱그럽게 웃는 파릴케가 고개를 기울였다.

나는 그녀의 시선을 받으며 맞은편의 소파에 마주 앉았다.

서로의 사이의 티 테이블에는 김을 모락모락 피우는 녹차가 담긴 찻잔 둘이 놓여 있었다.

리나 씨가 막 탄 것.

마족의 격렬한 흥정 시도로부터 힐끔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돌리는 리나 씨의 시선 속에, 알 수 없는 눈빛과 미소로 나를 응시하는 여마족 파릴케를 마주했다.

마족 여자 헌팅에서, 최초이자 본래의 목적이었던 그녀.

대체, 어떤, 무엇의 목적으로 찾아온 걸까?

그녀가 먼저 웃었다.

“잘… 지냈어? 단 하루밖에 안 된 상황의, 어색한 인삿말이긴 한데….”

“음……. 잠깐 눈을 붙이고 있었어. 카티샤랑 트노시아는?”

“우리는… 그대로 퇴실 시간까지 머무르다가 헤어진 참이야. 카티샤 님은 신상품의 마도구들과 장구류들을 확인하신다며 시내를 돌고 계셔. 트노시아 님은 카티샤 님과 잠깐 동행하시다가, 한동안 본가에 들린다고 하셨어. 원래 출신이시자 본가인 저택이 헬유레이아에 있으시거든. 모두와 헤어지고 나서, 나는… 잠시 카페에 가서 앉아 있다가 여기로 날아왔어.”

느긋한 암여우를 연상시키는 인상, 왼쪽 눈매에서 왼뺨까지를 뒤덮는 검은 불줄기를 형상화한 마족의 문신을 얼굴에 가진 그녀가 싱그럽게 웃었다.

나는 진중하고도 깊은 음색으로 그녀에 내뱉었다.

“실내에서는 후드를 벗어. 너의 연푸른 사파이어와도 같은 찬란함이, 그 후드가 제공하는 덧없는 어둠에 애써 가려지고 있어. 제공되어야만 하는 빛이 바래지고 있다구. 결코 아름답지 않아.”

“풋. 그 한없이 인큐버스다운 멘트는 뭔데?”

손등으로 입을 가리고 싱긋 눈웃음을 짓는 파릴케가 남은 손으로 뿔들에 끼워진 후드를 벗었다.

일순간 미약한 연보라색이 첨가된 은빛 물결이 일어나, 후드에 갇혔던 산발이 등허리까지 찰랑대며 늘어진다.

실내에 백색에 가까운 희푸른 봄날이 화창히 찾아드는 것 같다.

매우 옅은 연청색이라 해야 할지, 아주 연한 하늘색이라 해야 할지.

리나 씨와는 사뭇 다른 느낌인 마족의 미인.

리나 씨의 안쪽으로 부드럽게 굽어진 뿔의 형태와는 다르게, 물소나 누처럼 중앙에 약간의 완곡도를 가지고 바깥으로 다소 치솟으며 휘어진 산양, 염소, 황소일지 모를 동물성의 뿔이 이질적 마성을 선사한다.

마족이나 지상의 수인족은 뿔도 엄연히 근접전에서의 무기다.

각도로 인해 전투용으로 사용할 수는 없는 리나 씨와는 다르게, 걸기나 박치기로 엄연한 무기처럼 사용할 수도 있겠지.

딱히 물어볼 필요는 없겠지만.

“벗었어. 인큐버스…….”

파릴케가 요염히 꼰 다리의 무릎에 느른히 깍지를 끼웠다.

순간적으로 놀라 손등으로 입을 가렸다.

대체 어째서 이런 느끼한 멘트를? 나의 구성품인 인큐버스의 정액의 영향인가?

전생과는 상당히 다르게 성관념과 성격도 변화했는데, 정말 나는 무언가 다른 존재가 되고 있는 중인가?

이러다가 정말 인큐버스가 되고 만다면…….

“그럴 리가.”

나는 뇌리를 잠식하듯이 떠오른 가능성조차 없는 상념을 고개를 떨어 내쳤다.

그럴 일은 없다. 나를 구성하는 극히 일부의 구성품일 뿐이니까.

애초 나는 호문쿨루스.

제작자가 이런저런 잡다한 재료를 뒤섞어 제조하는 합성 생물체.

창조자의 본래 의도 이상으로, 종의 추가적인 개변이 이루어지는 것은 통상적으로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

“…어디가, 안 좋아?”

내게 슬그머니 고개를 들이대는 파릴케가 근심이 맺힌 눈길을 흘렸다.

“…아, 니. 갑자기 덧없는 잡념이 떠올라서.”

그녀의 의아한 시선을 흘리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내 연푸른 피부에 탁한 핏빛인 여마족의 눈동자가 측면으로 돌아간다.

고개까지를 완전히 돌려 매대에서 빡센 고객들을 열심히 응접하는 리나 씨를 쏘아봤다.

“뭐야, 저 여자는……?”

어쩐지 파릴케가 까칠하게 물었다.

“나의 적법한 여주인. 연금공방 에우포리아의 공방주이자, 5급 연금술사인 리나 녹스 에파네 페를렌데.”

“저 서큐버스가…? 마경에 들어갈 때 봤기에, 이미 얼굴이야 알고 있었지만….”

파릴케가 바위처럼 고개를 리나 씨에 굳게 고정하며 심유한 눈길을 흘렸다.

나의 적법한 여주인이라고 밝힌 서큐버스, 리나 씨를 명백히 인식한 눈길.

현재 나와 그녀가 어떠한 관계인지 예상하고 헤아리고 있는 걸까.

잠시 서로에 어색한 침묵이 찾아들었다.

리나 씨가 파릴케의 시선을 인식했는지 이쪽으로 흘끔 고개를 돌린다.

그러고는 한없이 화사한 미소를 날리며 다시 고개를 홱 돌린다.

일반적인 여자들은 악귀 나찰녀가 되어 남자와 외도녀를 갈기갈기 찢어발기고도 남을 상황에, 그녀는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이쪽으로 눈길을 흘기며 이죽댄다.

음마인 그녀는 통상적인 여자와는 사고방식이 달라, 되려 반려가 되는 자의 외도를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기제를 갖추고 있다.

그렇게 해야 밤의 즐거움에서 함께 몸을 뒤섞을, 자신의 쾌락도 아득하게 증폭되니까.

이미 그녀의 머릿속에는 나, 그녀, 파릴케의 질척한 3P의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고 있다.

어떤 남자가 저런 습성의 남성들을 위한 환상종들, 서큐버스들을 싫어할 수 있을까?

잠시 호문쿨루스의 후각을 최대로 발휘해 검수해 보았다.

다행스럽게도 나나 파릴케의 찻잔에 미약이나 발정제를 탄 것 같지는 않다.

그건 선을 넘어도 씨게 넘는 거지.

침묵을 먼저 깬 것은 파릴케였다.

“지크는…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거야……?”

“응. 보면 알잖아. 지금은 근무복이 아니지만.”

파릴케의 도무지 돌리려 하지 않는 옆얼굴에 쓰게 일렀다.

“…마시자.”

“…으, 응.”

잠시 잊고 있던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파릴케가 급히 고개를 돌렸다.

동시에 찻잔을 들었다.

파릴케가 양손으로 든 찻잔을 조신하게 홀짝였다.

“차향이 좋네…?”

“에스피라 허브를 리큐아 정화초와 뒤섞어 중불에서 달인 것. 전반적인 효능은 발열, 두통, 근육통의 완화 및 억제. 여성의 생리통에도 좋아. 출산 후의 산후 조리까지.”

“지크는, 아는 게 많네….”

“연금술사니까. 약제사이고.”

내게는 특별할 것도 없는 단아한 맛의 차를 내려놓았다.

여전히 찻잔을 양손으로 쥔 파릴케가, 그윽한 와인색 눈동자로 나를 뚫어지게 응시하며 들이켰다.

솔직히 나의 심장은 아직도 아주 살짝 쫄깃하다.

마족의 성향과 습성을 손바닥을 꿰뚫어 보듯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나는 태연을 가장하며, 필사적으로 말을 떨지 않으려 노력하며 물었다.

“…음, 그래서? 어떤 일로?”

파릴케가 뭐 그런 것을 묻느냐는 듯이 그윽하게 웃으며, 소파의 하단에 걸친 다리들을 까닥댔다.

“지크가, 오라고 했잖아……? 그래서, 왔어.”

“잠은 잤고?”

“아니? 그냥 모두 밤을 새웠는데? 그 상황에서 어떻게들 자?”

가슴에 묵직한 추가 쿵 떨어지며 바닥에 균열을 가르는 착각이 일어났다.

찾아오라고 했는데 단 한숨도 자지 않고 바로 다음 날 찾아올 줄이야.

마족 여자들에 얀데레와 펨돔은 아주 흔한 패시브 성향이더라도, 이런 것은 정말 예상 밖이다.

얘 설마 얀데레나 스토커 같은 건가?

한 번 관계한 이상, 사사건건 간섭하고 감시하며 혼신의 레벨로 잠식하려 드는?

생긴 거나 표정은 전혀 안 그런데. 마족을 외모로 오판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지만.

행여나 불온한 목적이 아닌가 싶지만, 느껴지는 기운도 그건 아닌 것 같고.

살의와 적의를 형상화한 듯한 민족인 마족은 그런 감정을 품으면 바로 드러나니까.

“도합 35골디아! 받았습니다! 네에! 감사합니다! 또 오셔요! 금장미의 문장이 상시 찬란히 반짝이는, 사랑스러운 서큐버스 리나의 연금공방 에우포리아에! 다음 분~!”

씩씩한 함성으로 응대하는 리나 씨가 황소 머리의 레서 데몬에 금액을 건네받고 포션들을 건네주었다.

다음으로 오는 불도그 얼굴의 다른 레서 데몬을 접객하기 전, 잽싸게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되돌린다.

“지크는, 어떤 모습으로 있는지. 어떻게 일하는지 궁금했어…. 그래서 찾아온 거야….”

찻잔을 내려놓은 파릴케가 허벅지 사이에 포갠 손들을 슬금슬금 어루만져댔다.

정강이는 낭창하나, 허벅지는 참으로 탄실한 희푸른 각선미를 꼭 맞붙인다.

“나의 모습이, 궁금했다라….”

솔직히 나는 정말 마음을 비우고 있었다.

언제 한 번 놀러 오라는 말이야 정말 의례적 인사이자 흔한 허례허식에 불과하고.

만약 그녀들로부터 연락이 두절되어도, 나는 그냥 그럴 그릇이라 생각하고 체념, 혹은 아련한 추억으로 묻을 생각이었다.

그러다 마계의 어딘가에서 다시 서로를 마주친다면,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며 함께 술들이나 곁들일 생각으로.

그런데.

이렇게, 그녀가 바로 나를 불쑥 찾아와 버렸다.

뭐지, 가슴속의 이 두근거리는 감정은?

“지크는, 함께 일하지 않아도 괜찮은 거야…?”

그녀가 연신 사근사근한 미소로 속삭이듯이 다소곳하게 말했다.

“우리는 꽤나 유동적인 근무 체계라, 상관은 없지만….”

카티샤는 화대가 아니냐고 의심했지만, 내가 그녀들에게 1,000골디아나 되는 거금을 건넨 것도 솔직히 어떤 특정한 이유가 없다고는 말 못한다.

죄책감으로 미안하기도 했기에.

내가 마족들에게 당한 게 하도 많아 진성의 혐오자가 되어 버렸다고는 해도, 하룻밤만에 교묘하게 구워삶은 여자 셋의 처녀성을 한 번에 따버리고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쓰레기는 아니다.

이런 상념이 들다가도, 마족들이 지상에서 자신들이 저지른 악행을 무용담처럼 늘어놓는 것을 듣다 보면 역변한다.

잠시나마 품었던, 한때는 지녔던 것이 명백한 온화한 마음이 싹 들어가, 나도 이쪽 세계의 아무에게나 똑같은 짓을 저질러 볼까 하고 악념들이 떠오르는 게 정말 아이러니지만.

파릴케가 두터운 속눈썹의 눈매를 그윽하게 내깔았다.

“지크의, 일하는 모습이 궁금했는데….”

전생도 그랬지만, 나는 사적이든 비즈니스든 속을 알 수가 없는 유형을 참 싫어한다.

싫어한다기엔 꺼리고 피하고 싶어 한다는 비유가 맞다.

말 그대로 도무지 예상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눈앞의 파릴케가 딱 그런 유형이다.

마족들처럼 이중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는 성격.

“나의 모습이, 궁금했다고…….”

내가 인큐버스들처럼 종특적으로 여자들을 따먹어야 하는 강간마도 아니고.

사실 리나 씨만 있으면 딱히 여자들이 고픈 것도 아니고.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싫다는 여자들을 어쩔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했건만.

이건 이제부터 내게 자아내지려는 변화의 전조인가?

“응, 궁금하면 안 돼……?”

파릴케가 크림처럼 녹아들 듯이 잔잔한 특유의 미성을 내뱉으며 달게 웃었다.

그녀는 속을 알 수가 없는 유형이어서 그저 불안하다.

솔직히 그녀가 복수의 목적, 공방의 파괴, 혹은 나의 살해의 의도로 찾아왔을 가능성도 염두해 두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녀가 나, 혹은 리나 씨를 급작스럽게 공격할 때를 지금도 대비는 해두고 있지만.

그녀를 보면, 이 마음속에 느껴지는 무언가 아련한 감각은 무엇일까…….

나는 다른 화두를 던졌다.

“…혹시, 공방에 오는 길에 헬하운드의 무리를 마주치지 않았어? 그 녀석들은 마족들을 두려워해서, 영업일과 영업 시간대에는 근처에 머무르고 있거든.”

“마주쳤는데?”

“무섭지 않았어?”

“응? 귀엽던데?”

여유로운 암여우를 연상시키는 인상, 파릴케가 순수하고 싱그럽게 미소 지었다.

역시 마족이네. 말만한 검은 지옥견들이 귀엽다면.

지상의 귀부인들이나 영애들이 키우는 소형 애완견들에는 어떤 반응일까?

마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관점적으로 드넓은 시선이 필요할 듯하다.

돌연 파릴케가 녹아들 듯한 애성을 흘렸다.

“나는, 귀여운 것들이 좋아…….”

들춘 손으로는 한쪽 뺨까지 짚어 황홀의 얀데레를 연출하며, 연푸른 피부에 미약한 홍조마저 떠올려 자줏빛으로 만들며 얼굴을 붉힌다.

“귀여운 것들은 찢어 죽일 때에, 생의 최후로 울리는 비명이 달콤한 노랫소리처럼 감미로우며 달콤하거든…….”

결국 역시 마족이네.

파릴케가 연신 자줏빛으로 발그레해진 자신의 뺨을 어루만져댄다.

“아니, 귀여우면 예뻐해 주거나 쓰다듬어 줘야지, 왜 찢어 죽이는데…….”

“귀여우면, 그럴 때에 특성이 더욱 극대화되니까……. 트노시아 님은 죽인 적의 생고기를 그 자리에서 섭취하는 것을 즐기시고, 카티샤 님은 적수의 피를 추출하고 뼈를 박리하는 것을 즐기시는데?”

괜히 물어봤나? 급격한 후회가 몰려들었다.

파릴케도, 트노시아도, 카티샤도 결국은 마족.

그녀들이 내게 당한 것도 자신들이 익숙하지 않은 분야였기 때문이지, 전투였다면 이야기와 결과도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얘가 한참이나 엇나간 이 가학성을 내게 드러낼 리는 없어 보여 천만다행이다.

리나 씨도 전투할 때는 놀라울 정도의 호전성이 발휘되고는 하는데, 아직 이렇게까지 엇나가지도 않아 다행이다.

그녀가 나와 계속 무언가 만남을 가지고자 한다면, 이거야 정신 교육으로 추후 차차 교정하거나, 딱히 내게 피해가 없다면 방치해도 되고.

아니, 저 살의의 칼날이 나에게만 향하지 않으면 딱히 상관없는 건가?

나는 고개를 세차게 털어 묵직한 상념들도 함께 털어 버렸다.

“내가 엄청난 여자들을 헌팅했구나…….”

이후로도 어떤 의미인지 아직 완전히는 모를 그녀와의 담소는 계속되었다.

대화의 맥이 끊어질 것 같다 싶으면, 연신 이런저런 잡담을 늘어놓아 나의 의식을 붙잡는다.

그러다 돌연 침묵에 빠져들어 그윽히 바라보기만 한다.

그때마다 대체 뭐지 싶어 불안하다.

벌써 1시간도 족히 넘은 것 같은데, 나의 신변이나 기타 잡담에 대해 꾸준히 이야기를 늘어놓는 그녀.

이런 수다나 떨려고 찾아온 걸까?

나는 생각보다 바쁜 사람인데.

“아니! 그나저나, 오늘 왜 이렇게 날씨가 좋은 건데에!?”

접객으로 바쁜 와중에도 리나 씨가 기막히게도 언질을 줬다.

“날씨도 좋은데 함께 나갔다 오지 그래? 지크!?”

혀를 비죽 내밀고는, 잽싸게 고객에의 응대 모드에 들어가 버리는 나의 서큐버스.

노리셨군요.

파릴케가 기다렸다는 듯이 소파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정말 그러네! 지크! 나와 같이 나가자!”

“뭐……?”

나는 이해할 수도 없는 상황의 연속에, 그저 그녀가 팔을 짓끌며 일으키는 움직임에 함께 이끌릴 수밖에 없었다.

“후훗!”

화창한 푸른 봄날처럼 화사히 웃는 그녀가 내게 바짝 맞붙으며 팔짱을 끼워 버렸다.

어깨에 느껴지는 묵직하고도 풍만한 질감의 후끈한 살덩어리들.

나를 힘차게 이끄는 그녀가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마족과의 데이트가 시작되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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