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서큐버스-42화 (42/80)

〈 42화 〉 미드나이트 걸즈

* * *

“참으로 아찔한 밤이로구나…….”

카티샤가 쓰게 탄식을 내뱉었다.

“끈적하고도, 질척한 밤이야. 그렇지?”

나는 어깨동무로 끌어안은 카티샤의 자그마한 어깨뼈를 꽉 움켜쥐었다.

다리를 꼬고 앉은 카티샤가 그에 응대하듯 손에 쥔 와인병을 높게 들췄다.

“자아, 건배~!”

째앵, 청량한 소성을 울린 서로의 손에 쥐인 와인병들이 맞부딪혔다.

카티샤와 트노시아가 하도 마셔 버려 몇 병 남지 않았지만, 적절히 취기를 올릴 정도는 남아 있던 시점이었다.

마계의 주류는 지상보다도 기본적으로 도수들이 높은 편들이기도 하고.

침대의 테두리에 함께 걸터앉아 와인을 즐긴다.

전생의 대학교로 치면 MT가 끝난 이후의 뒤풀이, 혹은 회사의 성대한 회식 이후 고정 멤버들만이 만나 파장하는 느낌이랄까?

나의 뒤의 침대 정중앙에는 파릴케가 허벅지로 꿇어앉아, 알 수 없는 시선으로 나를 뚫어지게 주시하고 있다.

침대의 머리맡에는 트노시아가 무릎을 세우고 기대앉아 있다.

그녀들은 딱히 함께 참가하고 있지 않다.

달콤한 포도주를 몇 모금이나 들이키고는, 재차 카티샤와 병을 맞부딪쳤다.

“이런 음란한 몸뚱이들로, 다들 그토록이나 오래 처녀성들을 보존했네.”

“그야 당연하다! 지상의 여러 피부색들의 엘프들이라거나, 아계들의 천족, 마족, 용족, 거인족처럼 오래 사는 종족들은 성욕이 희박하니까! 대신 자신들의 종족들을 구성하는 보편적 감정들에 강렬한 욕망으로 이끌리지!”

카티샤가 손에 쥔 와인병을 요염히 기울여댔다.

“연중발정기인 몽마만을 제외한다면, 밖의 마족 누구를 잡고 물어도 강력한 힘, 적을 제압할 전투술, 맛난 술과 요리 등에 이끌릴걸!? 살의, 폭력, 고통 혹은 유혈! 아니면 파괴욕, 지배욕, 투쟁욕, 장악욕 같은 것들!”

“몽마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성욕보다는 파괴욕이나 가학애, 살의, 투쟁심과 같은 감정들에 이끌리게 설계되어 있다는 거잖아.”

“그러하다! 그것이 영광스럽고도 강인한 전투종족이자 군대민족인 마족! 순결하면서 정결하고, 고결하며 아름다운 악의 꽃! 우리를 창조하신 조물주! 마신의 의지다!”

성욕이 희박하다는 것은 동정남과 동정녀도 무수하며, 여자들에는 처녀들이 수두룩하다는 말이 된다.

모태솔로들과 만년동정들이 세상에 가득한 족속!

거기다 마족 여자들은 미녀들과 미소녀들이 즐비하니, 착하든 나쁘든 여자는 맛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호사가들에게는 천국 아닌가?

드세고 사납기로 유명한 마족 여자들을 어떻게 꼬셔서, 자빠트리기까지의 과정까지 가냐는 별개의 문제겠지만.

전생 당시 주입된 여러 지식들을 통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관계까지 치르고 난 당사자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확인받으니 묘한 기분이다.

“사악하나 높은 확률로 동정 새끼들.”

어깨를 두르고 있는 카티샤를 내게 더욱 바짝 끌어당겼다.

나의 맞붙인 허벅지들에 얹힌 카티샤의 맨발을 술병을 쥐지 않은 남은 손으로 주물댔다.

펜촉처럼 비죽하게 돋은 발톱들이 치명적인 가느다랗고 고운 소녀의 발가락들.

평시에는 글러브와 부츠를 착용하지만, 탈의 시에는 마족들의 전형답게 비죽하게 늘린 손발톱들을 유지한다.

악마인 그녀의 성정을 한없이 투영하는 듯하다.

남자의 혼을 날릴 섹시한 악마 소녀.

이 펜촉처럼 비죽한 발톱들이 돋은 앙증맞은 발가락들 사이에 풋잡을 받으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하지만, 오늘은 날이 아니겠지.

와인을 한 모금 들이킨 나는 그녀에 급격히 시선을 낮춰 키스했다.

의아함이 어리는 검은 눈자위와 붉은 눈동자에, 나는 목소리를 잔뜩 내깔며 비장하게 속삭였다.

“인간의 키스다…. 받거라….”

“왜 나의 말투를 흉내내는 것이냐? 그리고 네놈은 더 이상 인간도 아니다.”

“어째 뭔가 뉘앙스가 미묘하게 기분 나쁘다?”

“의미 그대로일 뿐이다.”

“역시 악마와의 심리전은 쉽지 않구나.”

“그러니까 악마지.”

새하얀 톱니처럼 비죽한 상어이빨을 드러내며 웃는 그녀로부터 뒤로 시선을 돌렸다.

나의 뒤에는 여전히 파릴케가 허벅지로 시트에 꿇어앉은 채, 알 수 없는 그윽한 시선으로 그저 나와 카티샤를 뚫어지게 주시하고 있다.

몇 번이나 동석을 권했으나 본인이 거부하고 계속 저러고 있다.

뭐지, 스토커인가? 혹은 얀데레 각성? 아니면 기습할 기회를 노리고 있나?

이렇게까지 온 사이에,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참 서글플 것 같은데.

파릴케로부터 시선을 돌려 침대의 머리맡으로 향했다.

모두로부터 바짝 물러난 트노시아는, 그 어떤 미동도 없이 그저 침대맡에 세운 무릎을 끌어안고 실연한 표정으로 기대앉아 있다.

마의 일족들은 체구가 몇 미터를 넘어가게 큰 자들도 있기에, 중간계의 침대 사이즈 구분보다 훨씬 크고 드넓다.

아무리 특실용의 킹사이즈보다도 곱절은 드넓은 침대라도, 이중에서 몸집으로는 가장 지분이 큰 그녀가 함께 올라와 넷이 같은 침대에 있으니 제법 비좁게 느껴진다.

누가 봐도 현장에서 제일 세게 생긴 여자가, 침대의 머리맡에 밀려나 커다란 몸집을 기대고 바짝 웅크리고 있으니 적잖은 위화감이 있다.

나는 그녀에게 뚫어지게 시선을 굳혔다.

“흐히잇!?”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흐릿한 잿빛 눈자위에 박힌 호박빛 눈동자를 휘둥그레 치켜뜬다.

“흐, 흐힉!? 내, 내게! 다가오지 마!”

“나는 꼼짝조차 안 했는데?”

반사적으로 화들짝 터져 나온 반응에, 한없이 천연덕스럽게 응수했다.

“흐, 에에엣……!”

2미터를 훌쩍 뛰어넘는 커다란 덩치의 산양녀가, 습기로 가득 찬 눈매를 그렁대며 소녀소녀하게 끌어안은 허벅지를 더욱 바짝 오므린다.

제모 테이프를 세로로 붙여 떼어낸 형상이던 그녀의 비부는, 주변으로부터 다시 밀려난 털에 감쪽같이 뒤덮여 있었다.

흉부에도 원형 브라와 같은 형태로 다시 돋아난 검붉은 산양모가 완연하게 뒤덮었다.

현장의 모두가 나체인 것과 다르게, 그녀 스스로가 가장 먼저 착의를 실시했다.

진짜 성향 돋보이네.

트노시아가 송곳니들로만 이루어진 악마의 치열을 드러내 거칠게 위협했다.

“쳐다봐도 죽일 거야! 안 쳐다봐도 죽일 거야! 움직여도 죽일 거야! 안 움직여도 죽일 거야! 숨 쉬어도 죽일 거야! 숨 쉬지 않아도 죽일 거야! 퀴쉬히이익!!! 메에에에엑!!!!!!”

“산다는 선택지가 없잖아.”

나는 쓰게 웃으며 다시 파릴케에게 고개를 돌렸다.

“네놈이 이해해라. 트노시아는 극도로 방어적인 성향이다.”

“너희들을 보고 있으면 꼭 언니랑 여동생이 뒤바뀐 것 같네.”

“내가 그녀의 마생에 비해 몇 배는 살았으니, 당연한 것 아니겠느냐?”

와인병을 순식간에 비운 카티샤가 텅 빈 공병을 그녀의 발치에 놓았다.

발치에 뒀던 트노시아의 항문에 박혔었던 와인병을 들춰 들이켰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파릴케를 빤히 보고 있자니, 돌연 그녀의 후방에서 마력적 일렁임이 자아내졌다.

등에 커다랗게 돋은 날개들과 허리춤에서 늘어졌던 꼬리가 검은 흑연으로 일렁이며 말끔히 사라졌다.

그냥 넋이 나가 있던 건가?

하는 김에 와인병을 쥐지 않은 손아귀에 염동력을 발휘해서, 여기저기에 널린 섹스토이들도 회수했다.

여마족과 여악마들의 비부들을 꿰뚫고 음탕하게 즐기느라, 그녀들의 온갖 체액들의 흔적으로 질척한 표면을 브리즈로 말끔히 정리.

클린즈를 추가적으로 발동해 확실한 청결에의 확인 사살을 가하고는, 모조리 차원구들에 수납했다.

결국은 갓 헌팅한 여자들에게 섹스토이들을 사용해 버리고 말았다.

몽마의 음마술을 사용한 나를 바라보는 카티샤의 눈빛이 이채를 띄었다.

“무엇하는 놈이냐…?”

“연금술을 하는 놈이다.”

나의 본업의 발설에, 동그랗게 뜨이는 카티샤의 시선을 즐기며 와인을 들이켰다.

중상급 퀄리티의 달콤한 포도주를 목울대로 넘기고는 내뱉었다.

“네놈, 네놈하지 말고 정식으로 통성명. 지크. 몽환의 숲 루스카의 초입에 위치한, 연금공방 에우포리아의 견습 연금술사다. 나의 적법한 여주인인 5급 연금술사, 리나 녹스 에파네 페를렌데 님을 모시고 있다.”

돌연 여자들의 사이에 이채로운 분위기가 자아내졌다.

명백한 놀라움에 새빨간 세로 동공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카티샤. 입을 벌린 파릴케와, 경악에 완전히 턱을 떨군 트노시아.

그녀들의 반응을 한 바퀴 둘러본 나는 쓴웃음을 머금었다.

“네, 놈… 연금술사, 였느냐……!?”

“계속 네놈, 네놈거리면 다 때려치우고 현장의 전원과 제2회전에 돌입해 버린다? 퇴실 순간까지?”

“흐힛!? 메, 에에에에엑!!!!!!”

얼굴을 움켜쥐고 절규하는 트노시아로부터 경기에 가까운 반응이 자아내졌다.

저 고트 레서 데몬, 오늘 종의 본질을 너무 투영하는 것 아닌가?

“도무지 믿기지가 않는구나…….”

“내가 취미로 조제한 포션들 보여 줄까? 지고하고도 현명하신 악마니까, 대략 몇몇 요소들을 보면 알겠지?”

나는 카티샤의 면전에 손을 들춰 차원구를 개방했다.

짤막하게 내보이는 나의 수납 공간에, 여악마의 눈이 동그랗게 뜨이는 것을 보며 나는 차원구를 소거했다.

“……!”

“카운트3. 능력 무시.”

어깨동무를 두르고 있는 그녀의 가녀리고 가냘픈 어깨를 힘을 주어 움켜쥐며 일렀다.

마계의 사회에서 연금술사와 같은 마술계 직업들은 중요도가 높다.

아무리 힘이 우선인 강자존의 마계이고, 급수가 낮은 마술사들은 거진 찬밥 신세라도, 결코 쉽게 무시당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당장 마계에 공급되는 모든 포션의 수요가 끊어진다면, 폭동을 넘어선 혁명이 일어나고도 남을 것이기에.

약간의 침묵을 유지하던 카티샤가, 이내 완전히 분위기를 반전하며 밝게 웃었다.

“그래! 미안하군! 이 몸이 크게 잘못 알았다! 트히히히히힛!”

상큼하게 웃는 카티샤가 고개를 돌려, 트노시아부터 파릴케를 순차적으로 훑어 눈치를 주었다.

뒤에서 흠흠 헛기침을 고르는 고운 목소리가 나더니, 파릴케부터 소개가 시작되었다.

“파릴케 녹스 스티에 카이시안…. 268세. 제8군단 칠흑의 절규의 다크 솔저. 마족. 하급전사야….”

“트노시아 말루스 고스마 아슈트리트…. 752세…. 제8군단 칠흑의 절규의 바이스 가드…. 마양의 저악마족. 소마두. 중급전사다….”

“카티샤 네파스 포엔 틸레이아크! 1524세! 제8군단 칠흑의 절규의 시니스터 키퍼! 혈골악마족! 소마장! 중급전사! 이 녀석들을 아래에 데리고 있지! 트히히히힛!”

녹스는 마족성. 말루스는 저악마성. 네파스는 악마성.

녹스는 데블과, 데블과 동렬로 분류되는 일족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마족의 성씨다.

서큐버스인 리나 씨도 몽마족은 마족과 동렬로 분류되기에 같은 녹스다.

마군도들을 제각기 지배하며 군림하는 마군장들은, 고유의 마성들을 보유한다.

마왕군 군단은 13계급제.

마두. 소마두. 소마장. 중마두. 중마장. 상마두. 대마장. 연마장. 여마장. 사마장. 전사장. 부군단장. 군단장.

마두는 분대장의 포지션.

소마두, 중마두, 상마두는 하사, 중사, 상사의 포지션.

소마장, 중마장, 대마장, 연마장, 여마장, 사마장은 소대장, 중대장, 대대장, 연대장, 여단장, 사단장의 포지션.

데블들은 병사 포지션, 레서 데몬들은 부사관 포지션, 데몬들은 장교 포지션.

대체적으로 전사의 실력과 혈통과 경력을 취합한 결과가 높을수록, 가장 적성에 이상적인 상위직에 배치된다.

다만 마의 일족을 철저히 실력으로 분류한 마강계를 통해서는 또 다르게 적용되어, 악마임에도 저악마나 마족보다 힘이 약한 경우에는 모든 요소들을 여과하고 하급자로 속하게 된다.

인맥과 연륜과 같은 끗발이 적용되는 점이 없다고는 못하나, 힘이 혈통보다도 우선적으로 결정하는 마계의 반증인 것이다.

전생의 군대 기준으로 치면 카티샤는 소대장, 트노시아는 하사, 파릴케는 병사인 것이다.

카티샤가 악마성에 대해 온갖 신념을 설파했지만, 실체는 소위 따리의 허세에 불과했던 것.

그럼에도 그랬다는 점이 참 한없이 중2혈의 악마스러움이 느껴졌다.

또한 역시 셋은 헬유레이아에 지원된 제8군단 소속의 마왕군들이었다.

성문에서 시비를 털었던 라드리스 패거리와 같은 부대라는 것.

“트햐아아앗~!!! 아, 핫핫핫핫핫!!!”

돌연 몸을 붕 띄운 카티샤가 파릴케와 트노시아의 사이로 점프했다.

번쩍 양팔을 들춰 파릴케와 트노시아의 목덜미와 어깨를 와락 끌어안는다.

“이 꼬맹이들에 비해 벌써 몇 배나 되는 삶을 살았지만, 마음만큼은 아직 파릇파릇한 소녀야! 나의 일족은 3,000년을 사는 통상적인 악마들보다도 수명이 몇 배기 때문이지! 몸이나 마음이나 인간으로 치면 15세의 소녀라 말하고 싶어! 그대가 금야에 탐한 이 몸을 보게! 아직도 한창이나 성장할 여력이 보이지 않는가!? 엉덩이는 이 파릴케보다 풍만하게 될 것이고, 가슴은 이 트노시아보다도 풍염하게 될 것이야! 트히히히히힛!!!”

“카티샤, 님……!”

“힉……!”

파릴케와 트노시아가 엇갈리는 난감한 반응들을 흘렸다.

그녀가 이상할 정도로 동안에 미성숙한 외형과 체형이었던 이유.

통상적으로 1,000년의 수명을 지닌 마족 파릴케는 인간 기준으로는 26세, 통상적으로 2,000년의 수명을 지닌 저악마 트노시아는 인간 기준으로는 35세.

어차피 마의 일족은 더 이상 마력조차 제대로 유지할 수 없을 수명의 극한기까지는 젊음을 유지하며, 노화도 더디며, 연령이 많을수록 강력해지고 마력으로 젊음을 유지하기에 외형으로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카티샤가 드높고도 발랄하게 외쳤다.

“미드나이트 걸즈! 그게 마왕군으로서의 군무를 수행하는 부대 내부가 아닌, 사회 외부에서 길드의 모험가로 활동하는 우리의 파티 네임이다! 그, 래, 서? 지, 크!? 그대의, 나이는!?”

카티샤가 말을 마치자, 내게 일제히 다색의 눈길들이 꽂혔다.

연령과 수명은 마족들과 같은 장명종들에 있어 은근한 자랑 요소.

인생 50년, 아마도 하루살이처럼 짧은 인간의 삶을 예상, 혹은 호문쿨루스가 되었더라도 고작 몇백 년을 예상하는 듯한 눈길들에 나는 확연히 선을 그었다.

“나한테 수명 드립은 치지 마라. 지금부터 최소 3천 년은 살 거니까. 자연적인 수명으로는 너희들보다 오래 살 거다.”

여자들에서도 카티샤가 가장 확연하게 놀란 반응으로 크게 입을 벌렸다.

“엥? ……뭐야, 사실 자네 마족이었나? 아니면 신종 악마?”

“이것저것이 합성된 존재지. 한때 인간이었던.”

나를 이루며 마혈을 흐르게 하는 와일드 데몬의 심장.

아직 딱히 그녀들에게 나의 구성품들을 밝힐 필요는 없겠지.

“카운트1. 연령 무시.”

“…진, 짜아! 그것들을 아직도 가슴에 담아 두고 있었단 게냐!? 하나하나 열거하면서!? 참으로 포부가 쪼잔한 사내로구나!”

“한때 하찮고도 저열한 흄이었기에 그렇습니다.”

“크흥!”

새초롬하게 고개를 외면한 카티샤가, 파릴케를 두르고 있던 어깨동무를 푼 손으로 와인병을 들이켰다.

카티샤가 뾰로통한 눈길로 나를 흘겨보았다.

“존칭의 유무에 따라 성격과 성향이 완전히 변하는군. 혹시 이중인격이었느냐?”

“알고 있던 거 아니었어? 그리고, 마족들이야말로 진정한 이중인격자들 아닌가?”

“그렇긴 하지.”

카티샤가 으스대는 손짓으로 방의 바닥 저편에 손짓했다.

그러자 내가 그녀를 탈의하는 와중에 내던져 버렸던 제복용 정모가 그녀의 손짓에 이끌려 두둥실 날아왔다.

고개를 낮춰 윗머리에 삐딱하게 걸치고는, 싱긋 이죽대며 광란의 밤을 보낸 파티피플처럼 포즈를 잡는다.

나는 특정한 의미에의 눈빛을 담아 카티샤를 한동안 진하게 응시했다.

정말 엄청나게 빠른 눈치, 그녀가 눈매를 내리깔며 낮게 탄식했다.

“알았다, 알았어……. 사귀면, 되는 것 아니더냐…….”

카티샤가 트노시아에게는 여전히 어깨동무를 유지하며 남은 팔로는 와인병을 들이켰다.

“이 몸은…… 금일로, 그대의 여자다. 트노시아나, 파릴케는…… 잘 모르겠지만.”

분주히 이리저리 시선을 외면해대는 그녀가, 자신의 연분홍 피부보다 확연히 붉은 진분홍으로 안색을 붉혔다.

여악마를 나의 여자로 만들었다.

나의 내면에서 실로 기묘한 쾌감이 자아내졌다.

참 침묵을 지키기 좋아하는 파릴케가 잘게 눈매를 떨었다.

“그, 루스카 숲의 공방…? 자줏빛이랑 보랏빛이랑 분홍빛 나뭇잎들이 우거지고, 마평원 제르디아로 진입하는 길목에 있는 곳을 말하는 거야…?”

“알고 있는 거야?”

“응….”

파릴케가 고개를 푹 떨궜다.

얘는 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상념을 떨친 나는 그녀들에게 스스럼없이 내뱉었다.

“심심하면 놀러들 와. 밥이랑 술은 얼마든지 사주지.”

“에엣!? 그럼 혹시 포션들도 원하는 만큼 공짜로 얻을 수 있느냐!?”

“그건 무리야.”

“에에~! 밥이랑 술은 사준다며어!”

연금술사의 절대적인 철칙을 깨부수지 못한 카티샤가 왠지 진심으로 아쉬워했다.

파릴케와 트노시아가 난감해하는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카티샤를 바라봤다.

나의 데블. 나의 레서 데몬. 나의 데몬.

모두를 이날 밤에 만났다.

나는 오늘 마족 여자들과 인연을 쌓았다.

어쨌든, 이렇게 이어졌다.

그녀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무조건 거둘 생각이다.

나 자신을 낮추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무조건, 함께 나아간다.

나의 아픈 상처와 흉터로 일그러진, 마계 전생의 과거도 조금은 치유될 수 있기를 바라며.

부디 서로의 관점들에 대해 처음은 미약하지만, 끝은 창대할 변화의 바람이 깃들기를 바라며.

“나의 약속을 지킬 시간이네.”

양손을 동시에 들춰 차원구를 열었다.

지상에도 편의를 위해 동화, 중동화, 대동화, 은화, 중은화, 대은화, 금화, 중금화, 대금화의 규격으로 존재하는 화폐 개념.

딱 동전 정도의 크기인 통상적인 마금화, 골디아와는 달리 손바닥에 절반 정도 들어차는 크기인 커다란 골디아, 장당 100골디아의 가치를 지닌 중마금화 10장을 카티샤의 꿇은 무릎들에 떨궜다.

악마의 옆얼굴이 그려진 동일한 마계의 금화이나, 편의를 위해 크기에 따라 높은 가치를 지닐 뿐이다.

10,000골디아의 가치인 대마금화는 손바닥에 마패처럼 가득 들어차는 실로 박력적인 위용을 과시한다.

마금화 1,000개를 구질구질하게 쏟아붓는 것보다는, 중마금화 10장을 묵직하게 떨구는 게 좀 더 쿨하기에.

카티샤가 자신의 무릎 사이에 떨어진 1,000골디아에 미묘하게 눈초리를 치켜떴다.

“화대는, 아니겠지…?”

“내가 나의 여자들에게 돈이나 주고 섹스하는 난봉꾼 새끼로 보이냐.”

“그래, 그 대답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 현장에서 그대의 육체와 영혼을 분리했을 게다….”

“받아라. 나의 약속을 지키는 의미이며, 나의 여자들인 너희가 좋아서 준 돈이다. 그것으로 맛난 것을 사 먹든지, 예쁜 옷을 사 입어. 너희의 소유권으로 넘어간 이상, 용도는 묻지 않으마. 앞으로 잘 지내 보자.”

파릴케가 한없이 깊게 치켜뜬 눈매를 잘게 떨었다. 트노시아가 눈을 질끈 감고는 꼭 깨문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카티샤가 자신의 무릎 사이의 시트에 흩뿌려진 중마금화 10장을 손바닥으로 훑어 들췄다.

“이 많은 금액으로 우리만을 순전히 치장하기는 무리고… 훨씬 남을 잔금으로 소마대 회식이나 할까…. 지휘관의 재량으로 정기적인 회식이나 포상을 베풀어 주지 않으면, 마왕군 녀석들은 뒤에서 상관들에 이런저런 험담을 늘어놓으며 훈련에 극심할 정도로 비협조적이 된단 말이지…. 엄히 문책하면 싹 잡아떼거나 서로 뒤집어씌우기에 바빠, 고문을 가하면 그제서야 실토하긴 하는데, 사기 저하와 전투력 약화로 이어져…. 같은 마의 일족이지만, 마족을 상대하기는 참 어려워….”

카티샤가 깊은 회의감에 물든 표정으로 진중한 탄식을 쏟아냈다.

말단이지만, 하급자들을 관리하는 지휘관들만이 느낄 수 있는 심경이 구구절절 흘러나왔다.

나는 그녀의 의외의 인성, 아니 마성에 주목했다.

아무리 마왕군은 회식이나 포상이 없으면 제대로 하지 않으려 들어도, 같은 말단이면서도, 자신의 밑을 챙기려는 듯한 태도.

이기적이고 편협하기 짝이 없는 마족의 유형에서 조금 벗어난다.

내가 잘못 본 것일까? 아니면 의외로 그녀의 마성은 괜찮은 것일까?

어째서 그녀로부터 순간적으로 리나 씨가 떠오른 걸까?

검은 눈자위를 깜빡이는 카티샤가 희미하게 웃었다.

“고맙다……. 지크. 이 돈은, 잘 쓰도록 하마.”

그나저나 여자 마족, 여자 저악마, 여자 악마의 처녀성들을 금전적 가치로 환산하면 얼마일까?

생각만으로도 그녀들에 대한 도리가 아닌 것 같아, 세차게 고개를 휘저어 상념을 털어 버렸다.

카티샤가 다시 방의 저만치를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마찬가지로 저편에 내팽개쳐져 있던 그녀의 검은 롱코트가 둥실 떠올라 그녀의 수중으로 날아들었다.

카티샤가 허공에서 낚아챈 롱코트의 품을 뒤져 웬 명패를 꺼냈다.

검은 흑요석 같은 표면에, 쩍 벌려져 비명을 지르는 검은 입의 얼굴을 형상화한 문양이 정면 정중앙에 박힌 모습.

카티샤가 수중의 명패에 마력을 흘리니, 마치 전도체의 표면을 전류가 타고 흐르는 것처럼 표면에 선명한 회로가 일정하게 새겨졌다.

“받아라…. 나의 마력식을 새겨 두었다. 이걸 우리 군단의 주둔지에 방문해 초소들의 초병들에게 내밀면,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이야…. 마력을 흘리면, 내게 위치를 알릴 수도 있다. 트노시아와 파릴케로부터는, 스스로 받도록…. 지금은, 내가 그것까지 그녀들에 강제할 수는 없을 것 같구나.”

말을 마친 카티샤가 그윽한 곁눈질로 슬쩍 파릴케와 트노시아를 체크했다.

도무지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는 파릴케는 그저 담백하게 눈매를 뜨고 있을 뿐이었고, 트노시아는 거부감이 명백한 감정을 여전히 표정과 온몸으로 표출하고 있었다.

역시 현장에서 가장 상처를 받은 것은 230센티미터 가량의 산양녀.

대략적인 연락처의 교환의 완료,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어디 가느냐?”

나의 뒤로 낭랑하게 꽂히는 카티샤의 목소리를 들으며, 객실의 바닥 여기저기에 내던져진 나의 옷들을 수거했다.

브리즈와 클린즈를 순차적으로 영창해 나와 여자들의 체액으로 범벅인 육신을 말끔하게 정화한다.

미드나이트 걸즈의 건너편의 텅 빈 침대에 걸터앉아 착의를 실시했다.

“임무도 완료했으니까.”

옷을 입은 나는 다시 일어섰다.

“돌아가야지. 집으로.”

“임…무?”

카티샤가 고개를 기웃대며 의아함에 물들었다.

잠시 성대한 정사가 치러진 객실을 빙 둘러보았다.

특실에 걸맞게 꽤나 드넓고 호사스러운 방.

전방으로 위치한 헬유레이아의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통유리를 가린 커튼과, 좌우에 위치한 큼직한 더블베드.

안의 구조를 확인조차 하지 않은 입구 우측에 위치한 화장실 겸 샤워실.

특정한 체액의 흔적으로 실내가 온통 더럽혀지고 백칠되었다는 것만 빼면, 몇 시간 가량의 폭풍이 지났다는 것을 체감할 수가 없다.

나는 싱숭생숭함을 느끼며 여자들을 돌아보았다.

“안녕, 카티샤.”

“그, 래……. 또, 보자꾸나.”

무언가 목이 멘 듯이, 잠긴 목소리를 내뱉는 그녀.

“안녕, 트노시아.”

“…….”

대답도 돌아오지 않고, 시선도 마주치지 않는다.

“안녕, 파릴케.”

“안……녕.”

허벅지로 꿇어앉은 파릴케가 진한 와인색의 눈동자를 깜빡이다가, 이내 힘없이 고개와 어깨를 함께 뚝 떨궈 버렸다.

저게 용맹하고도 잔혹스러운, 당당한 마족의 여전사 맞나?

여러모로 마족들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밤이었다.

“내일이라도 공방에 놀러 와. 나는 언제나 대환영이니까.”

인사를 남긴 나는 퇴실했다.

즉각 5층의 복도로 나온 나는 1층으로 향하는 층계로 걸어갔다.

이대로 놔두면 알아서 걸즈 토크들을 나누고 노닥대다가 퇴실하겠지.

청결과 관련해서 딱히 정리해 주지는 않았지만, 역시 알아서들 씻고 하겠지.

간단한 생활용 마법 몇 회면 자욱하게 찌든 냄새도 한 방에 빠지기에 문제도 없다.

1층의 카운터에는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변함없는 태도의 게이저가, 허공에 둥실 떠올라 머리칼들일 눈알들이 매달린 촉수들로 마도서의 페이지를 넘기며 한참 탐독하고 있었다.

내게 힐끔 몸체 중앙의 렌즈를 낀 커다란 눈알의 시선을 던지는 그에게 인사했다.

“여자들은 아마 퇴실 전까지 있다가 나올 거야. 게이저 선생, 성함이?”

“그랄데르스카이쉬바하트라. 마수의 이름도 마족 못지않게 기니, 그랄이라고 축약해 불러라.”

“콜.”

공중에 떠오른 사람만한 둥근 몸체와, 단도처럼 뾰족한 이빨이 커다란 입에 들어찬 형상이 인상적인 존재를 뒤로 하고 나왔다.

탐욕의 적월 여관으로부터 빠져나오자, 여관과 식당, 주점이 밀집한 구역인 루에나 교차로가 곧장 나를 반긴다.

퇴장과 동시에 전신에 마력을 일으켜 알싸하게 감도는 알코올의 기운을 모조리 날려 버렸다.

취기를 날린 몸으로 온갖 다양한 형상들의 마의 일족들이 거니는 거리에 함께 합류한다.

만취 상태로 마계의 위험할 수도 있는 밤거리를 거닐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왼쪽 손목을 오른손으로 붙들었다.

“차원과 공간을 관장하기에 언제나 흘러가는 신명인 크로노스. 상시 고정된 시간축에의 은총. 내게 현시각을 확인하는 시공의 은혜를……! 리얼 타이머.”

끼리리리릭, 태엽이 풀리는 듯한 균열음과 함께 나의 왼쪽 손목으로부터 프리즘처럼 홀로그램의 영상이 허공으로 치솟았다.

시마법 리얼 타이머.

“5시 25분.”

천천히 공전하는 반투명한 시계의 표면이 허공에서 돌아갔다.

특이하게도, 가이아 세계에서는 지상이든 아계이든 해당 지역대에 해당되는 시각을 즉각 현지 시간대의 개념으로 인식해 비춰 주는 마법이다.

전생 초기에는 이세계라 시간 개념이 개판이면 어쩌나 했으나 기우에 불과했다.

마력의 소모도 티끌에 불과하니 정말 기특한 생활용 마법이라 할 수 있겠다.

이게 있으면 격렬한 움직임에 의한 파손을 전전긍긍하며 품에 회중시계를 지니지 않아도 좋다.

세계 전역에 적용되는 시공간을 관통하는 이 은혜를 못 쓰는 존재들이나, 회중시계나 손목시계나 투박한 시계를 상시 품에 지니고 다니는 것이다.

“날밤 샜네.”

공방을 나서기 전에 1층 거실의 벽면에 붙은 괘종시계에서 확인한 시간은 20시 50분.

사실상 밤을 꼴딱 새웠다.

그렇다 해도 주변에는 여전히 활보하는 수많은 마계인들로 대낮의 번화가처럼 번잡했다.

마계의 밤은 길며, 불야성을 즐기는 야행성이자 밤의 일족들이 많기 때문이다.

밤이 되어야 진정한 활기를 찾기 시작하는 세계이기도 하다.

나는 고개를 들췄다.

루비들의 알갱이들처럼 반짝이는 붉은 별들이 무수하게 박힌, 칠흑처럼 시커먼 마계의 밤하늘을 올려보았다.

금일 겪었던 일이, 과연 내게 엄청난 터닝 포인트로 작용할까.

진성의 마족 혐오자였던 내게, 너무도 커다란 변화를 자아내기에 충분하고도 남는 걸까.

여관의 객실에 아직 있는 그녀들은, 지금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나는 휘몰아치는 여러 상념들을 거두며, 인파들로 번잡한 마계의 번화가를 다시 내려보았다.

어찌 되었든, 나는 누군가의 간청한 염원을 마침내 이뤘다는 것이다.

“임무 완료.”

나의 서큐버스.

그녀가 기다리는 공방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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