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서큐버스-32화 (32/80)

〈 32화 〉 악의 꽃들

* * *

“소마두님! 소마장님! 어떻게 이곳에!?”

몸을 벌떡 일으킨 파릴케가 방향까지 틀며 황급히 외쳤다.

소마두와 소마장은 마왕군 계급의 말단으로 하사와 소대장에 해당.

데블들은 병사 포지션. 레서 데몬들은 부사관 포지션. 데몬들은 장교 포지션.

파릴케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머무르고 있는 대상, 검은 롱코트의 악마가 검지를 들춰 짙은 분홍빛의 입술을 짚었다.

“쉿! 부대 밖에서도 그렇게 티를 내고 싶어!? 사회 안에서는 트노시아와 카티샤! 그것이 우리 파티의 약조였잖아!? 트히히히힛!”

새카만 흑자위에서 새빨간 눈동자를 반짝이는 그녀가, 새하얀 상어이빨을 드러내며 경박스럽게 깔깔 웃었다.

독특한 웃음소리가 매우 특색으로 느껴지는, 백색에 가까운 아주 미약한 분홍빛 피부의 악마 소녀.

여악마의 정신이 나갈 정도로 아찔한 코스튬을 살폈다.

그녀의 컬러 역시 올 블랙.

별이 중앙에 박힌 정모를 핑크와 퍼플의 투톤으로 뒤얽힌 머릿결들이 곱슬곱슬한 중단발에 걸쳤다.

앞이마 좌우와 옆머리 좌우에 중단이 꺾여 밖으로 굽어진 도합 네 개의 뿔이 돋았다.

오른쪽 눈매에는 앙증맞은 별이 문신되어, 오른뺨까지도 크고 작은 쏟아지는 별들로 거뭇하게 뒤덮었다.

마족답게 요란한 장식들이 붙고 복잡한 문양들이 그려진 검은 롱코트.

목울대의 벨트 초커로 시작해서, 활짝 열어젖힌 내부에는 그닥 발육하지 않은 알몸이 여기저기에 벨트들을 붕대처럼 칭칭 휘감고 있었다.

적당히 봉긋한 흉부를 브라처럼 횡으로 휘감는 벨트 하나.

배꼽의 루비 피어싱.

비부를 가파르게 좁히는 가리개에 가까운 T팬티만이 유일한 옷가지다.

하체에는 그나마 무릎 밑까지 올라오는 아미 부츠를 신었다.

아찔한 벨트 본디지 패션의 바바리우먼, 아니 바바리걸.

마의 일족의 여자답게 남자의 육욕을 극한까지 자극하는 정신 이탈 패션을 선사했다.

“차음도 빵빵하게 지원되는 특실이라 마법들로 힘겹게 도청하니, 아주 신음 소리가 장난이 아니더라구!? 파릴케 너의 것이었어!”

똥꼬발랄한 강아지를 연상시키는 악마 소녀.

카티샤라는 악마가 스파이크들이 솟은 글러브를 낀 손으로 당차게 삿대질했다.

이윽고 활짝 젖혀진 문에 손짓하자, 문이 보이지 않는 자석에 이끌린 듯이 스르륵 홀로 닫혔다.

잠금장치조차 스스로 혼자 걸리며 내부에서 잠기는 속에 카티샤가 내세운 검지를 까닥댔다.

그러자 복잡한 문자들이 새겨져 발광하는 원통형의 파문이 생겨나, 그녀의 내세운 검지를 중심으로 서서히 공전했다.

“예비 열쇠도 받았지만 이걸로 땄지롱~! 5급까지의 마술식 자물쇠를 문제없이 해제할 수 있는 나 카티샤 님의 특술의 하나! 매직 마스터키! 그래야 깜짝 놀래킬 수 있으니깐!”

“카티샤… 니임.”

허벅지로 꿇어앉아 나지막하게 신음한 파릴케가 힘없이 고개를 떨궜다.

낭패한 눈빛과 본래 있던 동행들의 존재를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태도.

“남의 정사나 훔쳐보기 위해 들이닥치는 녀석들에 어울릴 법한 특술이네.”

“엑!? 기분 나빠! 당장 사과햇!!!”

카티샤가 발끈해 손가락을 두른 파문을 거두며 앙칼진 소리를 내질렀다.

나의 무대응에 한참을 씩씩댄다.

이윽고 짜증을 툭 내뱉었다.

“그 눈알들이 전염병 레벨로 증식한 게이저 녀석! 내가 제8군단 칠흑의 절규의 소마장이며 파릴케가 휘하의 전사라 밝혀도, 쓸데없이 까다롭게 굴기는! 마혈증이 부착된 악마의 등록증과 마군도의 시민권을 보기 전까지는 믿을 수 없다구 학을 떼며! 녀석 정도라면 애초 마혈의 감도로 감지할 수도 있으면서! 거대한 눈깔의 면전에 내보이고 나서야, 애초 준비했던 듯한 여벌의 열쇠를 던져 주면서 통과시키더군! 대체 악마를 뭘로 보는 거야!”

툭 내뱉은 카티샤가 새카만 롱코트의 품을 뒤져 지갑을 꺼냈다.

그러고는 내부를 펼쳐 자신의 초상화가 그려진 신분증을 내보인다.

하단에 추가적으로 부착된 증명서가 늘어진다.

선명한 진홍색과 뚜렷한 칠흑색의 뿔들이 엑스자로 교차된 마력적 직인이 찍힌 스티커.

희미한 마족의 신분증과 흐릿한 저악마의 신분증과 달리, 완연한 악마로서의 상징.

그녀의 동행들이 온다는 것을 내게 인지한 게이저가 일부러 심술을 부린 걸까?

쉬운 통과가 일어나지는 않았던 듯했다.

“…여하튼. 생각도 못한 난관이 있었다는 거야. 그래서? 파릴케, 기분 좋았어어어~?”

손을 휘둘러 지갑을 갈무리하고는, 다시 순식간에 품에 집어넣은 카티샤가 으스대며 은근히 물었다.

“힉! 모, 모르겠어요!”

“그 파릴케가 저런 표정을 짓다니! 실로 냉엄한 이명! 철벽의 빙공주가 맞나!? 어떤 마족 남자들이 찝쩍대도, 죄다 매몰차게 내차며 척살까지 가하는 그 쌀쌀하고 싸늘한 파릴케가 말이야!”

“아, 아니여요! 카티샤 님! 저는 그저, 오늘 처음 만난 이 남자에게 여관으로 강제로 끌려온 것밖에는…….”

“흐흥, 그 상황부터 모두 보고 있었지. 그런데, 너가 너무도 즐기고 있는 것 같아 개입을 하지 않았다! 즐거워 하는데 어떻게 방해해!? 그건 악마가 아니지! 트히히히힛!!!”

“꺄아아아악! 나빠욧!!! 몰라욧!!!”

다급히 손을 내저으며 완강한 부인을 표하는 여마족과, 다 이해한다는 듯이 은근한 투로 어르고 놀리는 여악마.

흐릿한 잿빛 눈자위에서 싯누런 호박빛 눈동자를 흘기는 커다란 여인, 여지껏 바위처럼 침묵을 지키던 존재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냄새가 견디기 힘듭니다. 정말 하실 겁니까?”

모든 치아가 짐승의 송곳니처럼 비죽한 새하얀 치열을 드러내며, 냄새의 근원인 내게 싸늘한 시선을 내꽂았다.

“음흉한 눈길로 나를 훑지 말아라, 흄.”

상체는 아름다운 여인이나 하체는 수북하고 곱슬곱슬한 적갈색 터럭에 뒤덮인 반인반양.

끄트머리 터럭이 수북한 황소와 같은 꼬리가 종아리 사이로 늘어져서 살랑댄다.

육중하고 탄실한 산양의 하체를 장식하는 마무리는 명확한 짐승의 발굽이다.

초콜릿처럼 진한 구릿빛의 피부가 육감적인 건강미를 과시하는 상체.

옆구리까지와 흉부에는 하체와 마찬가지로 자라난 산양모가 피부를 남기며 간헐적으로 뒤덮었다.

단정한 브라의 형태로 모피에 감싸인 곳은, 파릴케의 사이즈가 위축될 정도로 박력적인 바스트가 돋보인다.

앞이마의 번개의 문신을 중심으로 전류를 형상화한 마족의 표식이 나머지 이마를 거뭇하게 채웠다.

상단 이마선에는 유니콘처럼 뿔이 곧게 솟았고, 좌우 이마선에 돋은 뿔들은 중단이 꺾여 직각으로 치솟았다.

체모와 동일한 웨이브가 진 검붉은 곱슬머리가 허리춤까지 풍성하게 흘러내린다.

적갈색 털가죽과 갈빛 피부의 강인한 짐승녀.

“저는 여전히 명백한 반대를 표합니다. 소마대의 대원인 파릴케만을 구하고 저것을 족치시지요.”

황야의 암반에 눌러앉은 고고한 짐승을 연상시키는 저악마 여인.

진한 잿빛 물안개를 머금은 듯한 퇴폐적인 눈자위를 흘기며, 여지껏 양손으로 들고 있던 물체를 허리를 굽혀 자신의 발치에 내려놓았다.

손잡이가 매달린 은빛 금속 양동이에, 내부로부터는 한기를 풀풀 뿜어내는 것.

나는 가늘게 눈을 치켜뜰 수밖에 없었다.

“트노시아는 키가 너무 커서 불편해서 말이지이~! 게이저가 호문쿨루스의 일행이냐고 물었잖아? 그럼 녀석은 흄이 아니라 호문쿨루스겠지.”

“기묘하게 생긴 인족이군요. 서방의 흄은 결코 아니며, 북방이나 남방도 아닌 것 같습니다.”

“호문…쿨루스?”

나의 앞에 꿇어앉은 마족, 저편에 선 저악마와 악마.

각기 다른 눈자위의 색상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색상의 세로 동공들이 이채로운 매력들을 발산하며 동시에 나를 주시했다.

새하얀 백자위. 흐릿한 회자위. 새카만 흑자위.

공교롭게 모두가 한자리에 모였다.

마침 뿔도 2개, 3개, 4개다.

마혈증을 제외하고도 마족과 저악마와 악마의 구분법이 있다.

통상적으로 마족은 둘, 저악마는 셋, 악마는 넷 이상의 뿔들을 지닌 외형으로 구별할 수 있다.

뿔의 개수가 강함을 상징한다고 보기에는 굉장히 어렵지만, 강할수록 뿔들이 많은 경향은 있다.

다만 부모의 특성으로부터 이어받은 유전의 불특정한 발현에 불과한 뿔의 개수로 판단하는 것은 조잡한 방식이며, 마족이 뿔을 여섯이나 가졌거나, 악마가 뿔을 단둘만 가졌거나, 뿔과 날개와 꼬리가 없는 일족도 있기에 보다 정확한 것은 마혈의 농도.

100퍼센트의 순혈에 가까운 악마혈은 체내에 마혈이 흐르는 대상들에 존재적 단위로 경고하며, 본능적인 압박감으로 체내의 혈류에 맹렬한 경종을 울린다.

마기보다도 더한 원천 그 자체이며 순도에 가까운 힘의 발산.

악마기의 사용을 가능하게 하는 권한.

설령 마족의 힘이 저악마나 악마보다 강하더라도, 거부할 수 없는 압도감으로 작용한다.

마혈이 흐르는 존재들은 상대에 흐르는 피의 농도로 마족인지, 저악마인지, 악마인지 구분할 수 있다는 말이다.

다만 마물들과 마수들은 마혈만이 아닌, 잡다한 형질들의 인자들도 뒤섞인 경우가 있어 마혈의 농도로의 구분이 매우 어렵다.

육각을 지녔다 해 강자가 아니고, 외뿔이라 해 약골이 아닌 것이다.

트노시아라는 고트 레서 데몬을 흥미롭게 올려보던 카티샤가 돌연 오른손을 들췄다.

그러자 돌연 검붉은 파동이 휘몰아치며 특정한 기운이 불러일으켜졌다.

“호오~! 트노시아! 그것이 그대의 염원인가? 여기서 녀석을 한 줌의 잿더미로 소각하기를 원하는가? 이 몸의 어둡고도 타오르는 악마기로 말이지? 콱! 화르르르르~! 하고!?”

“갈망하옵니다. 녀석은 저의 휘하인 파릴케를 범했나이다. 녀석은 악마들을 면전에 영접하고도, 아직까지도 벌거숭이 상태로 고약한 음취를 풍기며 흉한 추태를 보이고 있나이다.”

마기의 적색과 흑색을 넘어, 선명한 진홍색과 뚜렷한 칠흑색이 나선을 이루어 심오한 파문을 일으킨다.

작지만 매우 맹렬한 기운의 압축.

마족과 마족으로 분류되는 수많은 일족들은 다루지 못하는, 저악마와 악마에만 허가된 악마들의 상징.

“서둘러 이행해 주소서. 저희는 해야 할 매우 중요한 일이 있었사옵니다.”

카티샤의 질문에 경건하게 대답한 트노시아가 심유한 눈길로 악마기를 바라보았다.

절반의 위력이긴 하지만 레서 데몬도 악마라서 당연히 사용이 가능하기에, 딱히 대수롭지도 않다는 느낌.

허나 나로부터 방향을 돌려 꿇어앉은 파릴케는 마른침을 삼키며 꼿꼿이 주시하고 있었다.

마기와 악마기의 비유는 불꽃과 불덩이와 같아 단순한 위력적 측면에서라면 비교가 불가능하다.

데블이 레서 데몬이나 데몬보다 강하더라도, 압도적 실력차가 아닌 이상 상성의 벽은 넘을 수 없다.

지상의 치유사들이나 성직자들, 백마법사들이 사용하는 성력과 성자들 및 성녀들, 천족들이 사용하는 신성력은 현격한 차이점이 존재하는 비교와 같다.

“하지만 안 해.”

그렇게 말한 카티샤가 손에 활활 타오르던 악마기를 허망하게 픽 꺼트려 버렸다.

손을 거두고는 팔짱을 낀 카티샤를 어이가 없어진 트노시아가 황망히 바라보았다.

“엑!? 어째서…….”

“나는 지금 굉장히 흥미가 이끌렸거든. 남자와 여자, 수컷과 암컷이 저지르는 교미란 것에 대해서.”

“또…… 그 말씀을.”

당황해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입을 가리는 트노시아가 짐짓 고개를 수그렸다.

선명한 이목구비의, 강인한 미인의 인상을 투영한 구릿빛 안색이 달아올랐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아야겠다.”

그렇게 말을 마친 악마 소녀의 새카만 흑자위에 갇힌 새빨간 눈동자가 다소 이채를 띈다.

“지금까지의 이 몸들의 여정을 설명해 주겠다! 단 1회만 말하니 잘 듣도록! 도중의 질문은 받지 않는다! 끝나고 해라! 하찮고도 저열한 호문쿨루스여!”

내게 삿대질을 고정한 카티샤가 입을 쩍 벌렸다.

“간만에 휴가를 나온 우리는 본디 오붓하게 시간을 보낼 예정이었다아~! 벨드라스 사거리에 위치한 카페인 이블 버진! 오직 그곳에서만 한정으로 판매하는 최근 마족 여자들 사이에 핫한 아이템! 헬스 슈크림 파르페를 함께 사먹을 예정이었다아~! 무려 30분 가량 줄을 서야 겨우 대기표를 받을 수 있는 초인기 메뉴!”

“힉!?”

나는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옆으로 돌아앉은 파릴케를 유도의 메치기로 홀라당 뒤집어 버렸다.

기성을 내지른 파릴케와 나를 음마의 청결술 브리즈가 은은하게 감싸며, 정액에 물바다가 되어 버린 침대와 주변 벽면과 밑바닥까지 완벽히 보송하게 정화했다.

트노시아가 가늘게 인상을 찌푸렸다.

눈을 지긋이 감고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은 카티샤가 그런 것도 모른 채 재잘재잘 떠들어댔다.

“…그러고는 무구점들을 들러, 신상품의 마도구들과 장구류들을 확인해서 모조리 신품으로 갱신할 예정이었지! 헌데! 나와 트노시아가 루에나 교차로에 도달했을 때, 막 목도한 게 자네에게 한참 추행을 당하던 파릴케였어! 먼저 기다리고 있던 그녀가, 아주 엉망진창으로 수많은 마족들의 시선들 속에서 자네에게 당하고 있더군!?”

“히, 그으으읏……!”

나는 양손으로 활짝 젖힌 파릴케의 엉덩이골에 고개를 묻어 음렬과 항문을 질척하게 핧아 올렸다.

어딜 빨고 핥아도 사탕처럼 맛난 아찔한 연푸른 피부의 마족 미녀.

파들파들 떨리는 뒤집힌 몸의 발가락들이 질척한 리킹에 버티지 못해 연신 꼼질댄다.

트노시아가 과도할 정도로 융기한 흉부 밑으로 부자연스럽게 팔짱을 꼈다.

노골적으로 못마땅하게 바라보던 트노시아가 한쪽 볼을 부풀리고는 새초롬한 말투로 싸늘하게 일렀다.

“어이, 대화 중에 추접한 짓은 멈추거라.”

“이게 남자야. 모든 남자는 다 이래.”

분노한 트노시아가 송곳니들로만 이루어진 치열을 악물었다.

“이, 녀석이……!”

반인반양 형상인 산양녀의 마혈문들이 가득 새겨진 이마에 혈관들이 불룩불룩 치솟는다.

주변에 무슨 일이 일어나건 말건 오직 해설에만 정신이 팔린 카티샤가 이야기의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그리하여. 한참을 도청하다가, 끝난 듯한 순간에 들어왔다는 거야! 대체 무엇이 파릴케로 하여금 그렇게나 기분 좋은 비명을 계속 지르게 할 수 있었는지! 한없이 악마적인 호기심이 심중 깊숙한 곳으로부터 치솟았거든! 이것은 순수한 흥미의 발현이다!”

마침내 이야기를 마친 카티샤가 눈을 떴다.

내가 파릴케에게 하고 있는 행위를 보고 입꼬리를 느른히 치켜올린다.

나는 트노시아에게 강렬한 도발을 던졌다.

“원하면 너도 뒷구멍과 앞구멍을 핥아 줄까?”

“뭐가 어째!”

트노시아가 격노하며 팔짱을 낀 손가락들의 비죽한 손톱들을 젓가락만큼이나 길게 늘렸다.

“그마안~! 트노시아!? 우리는 싸우러 온 게 아니잖아? 재미있는 것을 체험하러 왔지!”

“카티샤 님의 명령이기에 참는다.”

다시 손톱들을 줄인 트노시아가 쌀쌀맞게 경고했다.

발랄하게 제지한 카티샤가 측면으로 몸을 틀어 트노시아의 발치에 놓인 버킷에 허리를 굽혔다.

으슬한 한기를 내뿜는 빙마석들이 담긴 내부를 헤친 손짓에 붙잡혀 나오는 와인병.

카티샤가 염동력을 머금은 검지를 솟구쳐 병목으로부터 코르크를 퐁 뽑아냈다.

그러고는 쭉 들이켰다.

한참을 목울대를 꿀렁이며 와인을 음미한 카티샤가 탄성을 내뱉었다.

“헤에~! 이런 지방의 구닥다리 여관에서 파는 것이라도, 역시 와인은 좋군!”

“제3마군도 아케디아의 세 번째 규모의 마도시인 괄피아도산. 라벨에 기입된 정보로 미루어 보면 중상급인 듯해요. 훌륭하다고 보기는 힘드나, 분위기에 어울리는 적절한 풍미는 갖췄군요.”

어느새 손톱을 놀려 병목과 코르크를 함께 날려 버린 트노시아가 와인을 같이 들이키고 있었다.

이따금 재잘대는 담소를 곁들이며, 함께 와인병을 마주쳐 소소한 건배까지 하고는 나란히 들이킨다.

파릴케의 뒤태를 탐닉하던 나는 하도 어이가 없어 쳐다보았다.

“내가 끝나고 얘랑 마시려고 한 걸 왜 니들이 마시냐?”

“으응~? 악마들의 일을 방해한 죗값치고는 아주 싼값 아닌가? 네놈의 육체와 영혼의 대가로 지불하지 않고 봐준다 치면 말이야! 트히히히힛!”

“웃기는 년들이네. 내가 산 술을 왜 니들이 마시냐고.”

나는 음주를 즐기는 둘을 외면하며 파릴케의 미끈하게 잘 빠진 뒤태에 다시 집중했다.

양손으로 엉덩살들을 활짝 젖힌 사이의 비부들을 질척하게 할짝이며 탐닉했다.

꼼짝도 못하고 붙들린 신세인 파릴케가 그저 신음하며 후반신을 파들댔다.

둘 역시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이제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이따금 트노시아가 고개를 돌려 못마땅하게 쳐다보았을 뿐.

와인 쿨러에 담긴 와인들이 계속 여악마들의 손들에 자그락대다 뽑혀 나간다.

다 마신 공병들이 그녀들의 발치 뒤로 장난감처럼 쌓여 갔다.

잠시의 시간이 경과했다.

이내 육안적으로도 취기에 발갛게 달아오른 것이 명확한 악마 소녀가 비틀댔다.

아직은 멀쩡해 보이는 산양녀에 비해, 취한 것이 분명한 악마 소녀가 흔들대는 손짓으로 느른히 삿대질했다.

“끄어억~! 히끅! 너! 우리가, 네놈의 술을 마셔서 기분 나쁘냐아아!?”

“남의 술이나 훔쳐먹는 녀석들과 나눌 이야기는 없어.”

가늘게 눈을 치켜뜨고 바라보는 카티샤가 입술을 오물대며 와인병을 들이켰다.

입술로부터 병을 뽑아낸 변태 바바리걸이 재차 삿대질했다.

“일단 내 얘기를 듣거라!”

좀처럼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그녀가, 뭔가 짠한 눈빛으로 나와 파릴케를 번갈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몇백 년 수명 이하의, 단명종들이 벌이는 생식 활동 말이지……. 이따금 마경에서, 비천한 마물들이나 하등한 마수들의 암수가 격렬한 짝짓기를 벌이는 것을 보았지. 그때마다 저런 무의미한 짓거리들을 도대체 왜 하나 싶었다만? 참으로 단조롭고도 무료한 행위를 즐기는구나. 길고도 창대한 장생에서는 완벽한 낭비로 보일 뿐이다. 시간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결과적으로나. 여러 면모들로. 저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가뜩이나 짧은 생의 종을 유지할 수가 없어 그런 것이겠지. 그런 생각뿐이었다. 여태까지는.”

그윽한 눈매가 된 카티샤가 다시 와인병을 들어 홀짝였다.

입가를 할짝인 그녀가 움켜쥔 병으로 파릴케를 가리켰다.

“…그런 의미에서, 묻겠다. 파릴케. 기분이 좋았느냐……?”

“흣, 끄읏……!”

대뜸 일어난 지목에 파릴케가 다시 식은땀에 번들대며 촉촉해지기 시작한 뒤태를 질끈 떨었다.

데블의 수명은 1,000년. 레서 데몬의 수명은 2,000년. 데몬의 수명은 3,000년.

사고 치지 않고 보낼 시에 제각기에 부여된 최소한의 마생.

여악마가 물으며 답을 요하는 것은 아주 원초적인 차원에서의 질문이었다.

아주 오랜 삶을 살아가는 존재가, 기나긴 시간을 보내는 요소로써 한 번 품어 볼 수 있는 호기심.

고개만을 아주 힘겹게 돌린 파릴케가, 카티샤를 보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모르겠어요.”

“내가 묻는 주제는 그것이 아니야. 재미있나? 이 기나길고도 따분한 삶에 첨가할 약간의 유흥, 혹은 소일거리는 되는가?”

“……솔직히. 정말 모르겠어요.”

“모르겠다는 것 치고는, 신음과 비명이 엄청나게 격렬하던데? 그야말로, 이 기나길고도 지루한 삶을 순간적으로 잊을 수 있지 않나 싶을 정도로?”

“힉!? 겨, 결코 아닙니다……!”

“녀석이 침대와 벽면과 밑바닥에 잔뜩 흩뿌려진 흔적을 치워 버리기 전까지, 너도 얼마나 흘렸는지 확인했을 테다! 육체가 쾌락에 도달한 순간만이 진정으로 나오는, 애욕과 열락의 흔적을!”

“히이이이잇!?”

할 말을 잃은 파릴케가 침묵에 빠져들었다.

카티샤로부터 황급히 시선을 돌리고는 말없이 베개를 끌어안아 다시 고개를 묻는다.

나의 끝없이 연이어지는 커닐링구스와 리밍을 묵묵히 받았다.

그것을 그윽한 눈매로 지켜보는 카티샤가 조용히 입술을 열었다.

“녀석의 상관으로서, 좌시할 수 없다 이 말이지! 영광스럽고도 강인한 마왕군이자, 아름답고도 잔혹한 마전사를 건드린 사안을 쉬이 넘길 수 없지! 파릴케에게 배상할 1,000골디아! 그리고 나와 트노시아에게 인당 500골디아! 뇌물이라도 내보실 텐가~? 흐응~?”

찡긋 윙크하는 카티샤가 와인병을 쥐지 않은 손가락들을 내밀어 까닥댄다.

팔짱을 낀 트노시아가 다시금 바위처럼 굳은 침묵에 빠져들었다.

“마계인들은 거칠고 호전적이지만, 답안이 나오면 상황을 빠르게 정리해! 자네는 얼마 살지도 못할 흄 베이스의 호문쿨루스! 성욕을 하나도 통제하지 못해 허덕이는 가련한 남자! 하는 일도 아마 그닥 보잘것도 없겠지! 그냥 돈으로 무마하고 봐줄 수도 있다는 거야! 어떻게 할 텐가!?”

연령 무시. 성별 무시. 능력 무시.

나는 세 가지 카운트를 속으로 헤아렸다.

카티샤가 다시금 보다 깊고, 진한 윙크를 날렸다.

“…그게 아니면~? 자네에게 딱 한 가지 선택이 있지!”

그녀가 손가락을 번쩍 들춰 선언하듯 삿대질했다.

“나와 트노시아도 기분 좋게 해보거라! 단명종들의 하찮은 유희에 어울려 주는 것도, 기나긴 마생의 유희겠지! 매우 궁금하고 기대가 되는구나! 트히히히힛!!! 트하하하핫!!!”

마력을 일으켜 순식간에 체내를 잠식한 술기운을 몰아낸 악마 소녀가 양팔을 떨치고 떠들썩하게 광소했다.

“흐힉!?”

경악한 트노시아가 다리가 엇갈려 주저앉을 뻔했다.

이윽고 발굽을 동동 굴리며 안색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하, 하지만! 카티샤 니임!?”

“궁금하지 않느냐!? 대체 어떻게 하면, 그렇게나 기분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는지! 그것은 고작 천 년을 조금 넘게 산 나지만, 전혀 느껴 보지도 못한 진심의 감정이었어! 그 쾌감과 신비함을 함께 느껴 보자꾸나!”

“시, 싫어요오오오!”

상관의 결정에 강인한 모습을 완전히 상실한 트노시아가 소녀처럼 애원하며 카티샤에 매달렸다.

현장에서 가장 도도하고도 호전적인 그녀가 완전히 무너졌다.

커다란 여자가 작은 여자에 매달리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이식술을 통해 존재를 호문쿨루스로 개변했다고는 해도, 결국 베이스는 흄이란 말이다. 가련하고도, 가여운 존재들. 수십 년의 단명만으로, 대체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삶에 희망은 있는지조차 모를 불쌍한 아이들! 수십 년의 짧은 생으로 대체 무엇을 이룩할 수 있나!? 말도 안 되고 터무니없이 짧은 삶이야! 내가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당장 자살했어! 하지만 녀석은 그것과 상관없이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 쾌락과 신기함을 함께 즐겨 보자꾸나아~!”

“흐, 으으으응! 히, 이이이잉!”

위신을 완전히 상실한 트노시아가 소녀처럼 울부짖었다.

“어, 어찌! 남녀가 몸을 뒤섞는, 비천한 일 따위를 하시려는지……!”

“빨리 벗겨낼 부위의 털을 벗겨내. 어디 녀석을 시험해 보자꾸나. 안 될 것을 알면서, 펼치는 비천한 발악을 지켜보는 것도! 악마들의 즐거움이다!”

“하, 그으으읏……!”

할 말을 완전히 잃은 트노시아가 고개를 푹 떨구며 엑스자로 맞물린 다리를 오들댔다.

어디에 시선을 둘지 모르며 손톱들을 톡톡 마주치며 쭈뼛댔다.

직접 실행에 들어간다고 하니까, 완전히 기세가 죽어 버린 태세였다.

카티샤가 딱히 볼륨이랄 것도 없는 흉부를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며 당차게 호령했다.

“무엇하느냐!? 어서 이 몸도 기분 좋게 해보라구!? 참고로 나와 이 녀석도, 전혀 남자를 모르는 처녀의 상태라구!? 그런 쓸데없는 것 따위는 평생 흥미를 끄고 살아갈 예정이었다만! 혹시 싫은 게냐!?”

저런 파격적인 복장과, 몽마를 제외한 마족은 성욕이 희박하다는 특성이 도저히 결부되지 않았다.

전생이나 현생의 여자들이 본다면, 쇼크에 휩싸일 정도의 파격적이고 풀어헤친 옷차림을 하는 이유가 뭘까?

여러 상황이 웃기게 돌아가는 것을 참지 못한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애초 너가 내건 조건들에 죄다 당위성은 있고? 너가 뭔데 조건들을 멋대로 내고 말고 하냐.”

“악마에 당위성이 필요한가!? 파멸시키고 싶다면 파멸시킨다! 사랑받고 싶다면 사랑받는다! 그것이 마의 일족의 가장 으뜸되는 존재의 행동 원리를 결정하는, 단순하고도 명확한 기제인 것이다!”

“단순하셔서 좋겠네. 복잡한 생각이 필요 없어서.”

“흐히익~! 또 뭔가 기분 나쁜 말을! 당장 사과햇!!!”

머리를 감싸쥐고 박박 쥐어뜯는 카티샤가 진심으로 절규했다.

“내가 왜 니들의 호기심 해결사가 되어야 하냐. 궁금하면 인큐버스 창관에 찾아가지.”

“녀석들은 태생적인 변태들이니까! 어떤 스타일로 포장했어도, 결국 인큐버스들은 다 똑같다! 음마는 남몽마고 여몽마고 모두가 음마야! 화대도 든다! 그리고… 매우 신비하게 생긴 흄에, 호기심도 들어서 말이야……?”

카티샤가 마지막에 은근히 강조를 주어 말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그녀의 페이스대로 흘러가게 된다.

하지만 나는 상황을 그렇게 조장할 생각이 없었다.

나는 파릴케에게 가하던 농밀한 애무를 마치고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어……?”

갑자기 휑하니 남겨져 버림받은 신세가 된 파릴케가 황당한 신음을 흘렸다.

알몸의 상태인 나는 고간의 물건을 달랑대며 저악마와 악마를 향해 의연한 걸음걸이로 다가갔다.

2미터도 거뜬하게 넘어갈 육덕진 여인과, 160센티미터도 되지 않을 듯한 낭창한 소녀.

다양한 감정들이 담겼을 것이 명확한 여자들의 시선들이 나의 고간에 뚫어지게 꽂혔다.

그녀들을 마주한 나는 팔짱을 꼈다.

“하찮고도 저열한 호문쿨루스, 한때 흄이었던 존재가 간단한 제안 하나 할까? 마전사에 성추행을 가하고, 여관으로 데려가 화간까지 저지른 나를, 마왕군의 위신을 실추시킨 혐의로 마회에 회부해도 좋아. 배상이 더 필요하다면 나의 개인적인 수납 공간도 열어 원하는 모든 것을 주도록 하지. 너희가 내거는 어떤 조건들과, 그것들에서 수반되는 어떠한 결과들도 받아들인다는 거다. 다만.”

나는 카티샤와 트노시아를 번갈아 가리켰다.

“너희가 결국 느껴 버려 굴복할 시에. 니네도 내 여자다. 쟤랑 마찬가지로.”

카티샤와 트노시아가 경악에 입을 벌렸다.

나는 싸늘히 명령했다.

“입고 있는 옷가지들이랑 털가죽들 싸그리 다 벗어.”

흥미로 섹스를 생각하는 여악마들에 본때를 보일 때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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