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 마족 여자 헌팅
* * *
“마족 여자 헌팅이라, 생각조차 못했는데…….”
카오스력 4323년 적흑의 월 음암의 주 폭식의 요일.
중간계 기준. 아델렌력 1441년 4월 6일.
알케믹 퀘스트에서 복귀하자마자 다시 여정에 올랐다.
약초 채집이나 소재 확보, 재료 수급도 아닌 전혀 다른 목적이다.
“헌팅 퀘스트.”
자전과 공전도 없이 주야에 색을 바꿀 뿐인 천체.
핏빛으로 붉게 타오르는 마계의 달이 나를 내려본다.
완연한 어둠에 잠긴 세상에 울려 퍼지는 것은 외길을 터벅대는 나의 발소리와, 시커먼 밤하늘에 아득하게 펼쳐져 깜빡이는 붉은 별천지뿐이다.
빛 한 점 없는 칠흑처럼 검은 어둠 속을 걸어가고 있지만, 마혈이 흐르는 존재에 제공되는 야간시는 내게 핏빛 비전의 밤눈을 제공한다.
점차 드넓어지며 평지가 트이기 시작하는 좌우의 숲과, 잔잔히 불곤 하는 밤바람에 살랑대며 새록새록 광합성에 들어간 풀덤불들과 나무들.
모든 만물이 진홍빛의 진한 혈색으로 물든 것처럼 보인다.
느린 걸음으로는 2시간, 빠른 걸음으로는 1시간.
서두를 이유는 없다.
밤이 늦어질수록 목표들이 출몰할 가능성도 높아지니까.
기왕이면 미녀와 미소녀로.
“대체 어떻게……?”
막상 자신 있게 선언하고 집을 나섰는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니 대략 난감했다.
마족은 구체적으로는 세 분류로 나뉜다.
데블. 레서 데몬. 데몬.
마족, 저악마, 악마를 뜻하며, 통상적인 데블은 투귀급과 암영급의 사이인 것에 비해, 레서 데몬은 최소 암영급, 데몬은 최소 적혈급의 힘을 보유한다.
지상에서 빈번히 목격되는 비율은 데블이 가장 많으며, 실제 구성하는 비율도 드높기에 통틀어 마족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천족과 천사도 엄연히는 셀레스티얼과 엔젤로 각기 다른 존재들이나, 셀레스티얼이 가장 많기에 통틀어 천족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데블이 가장 수가 많은 하위층의 백성들에 해당하며, 레서 데몬이 중간 정도 수의 중위층, 데몬이 제일 극소수의 상위층을 사회적으로나 신분적으로나 생성한다.
마족은 악마혈이라 따로 지칭하는 악마의 피가 진할수록 강하며, 당연히 데몬은 100퍼센트, 반푼이인 레서 데몬은 50퍼센트, 쭉정이인 데블은 25퍼센트로 데블이 가장 악마혈의 농도가 옅다.
때문에 데블은 악마라기엔 악마인간에 가까운 존재다.
최하위 마족들과 동류로 취급되는 존재들이 소악마, 몽마, 흡혈귀, 인랑, 사신족, 충마족, 타천족과 같은 일족들이다.
데블들과 임프, 인큐버스, 서큐버스, 뱀파이어, 웨어울프, 리퍼, 인섹토데몬, 폴른 셀레스티얼, 폴른 엔젤들과 같은 일족들은 동렬이란 말.
이 복잡하기도 하고 다양하기도 한 마족이라는 종족을 구성하는 일족도 수천.
누구를 어떻게 낚을지, 어떤 방식을 사용할지조차 아직 감이 안 잡힌 상황이다.
말 그대로 이런 퀘스트는 사상 처음이기에.
경험자의 조언이 필요하다.
여자에 대해 태생적으로, 선천적으로 완벽히 꿰뚫어 보고 있는 존재.
“인큐버스.”
나는 붉은 눈꼬리가 일렁이는 눈을 밤하늘로 들췄다.
“신이 났구만, 박쥐 녀석들…….”
핏빛 별빛들이 아득히 수놓는 칠흑처럼 시커먼 밤하늘에, 현란한 형형색색 섬광의 궤적이 죽죽 이어진다.
마족들이 야간의 비행을 즐기고 있었다.
전생의 현존하던 어떤 비행기조차 불가능할 곡예 비행을 구사하며, 일렁이는 빛무리의 형태들로 흩어졌다가 단 하나의 섬광으로 합쳐지기를 반복한다.
전신에 휘감은 제각기들의 마력색들이 눈부신 빛의 궤적들로 밤하늘을 화려히 수식한다.
마계의 지상을 걷다 보면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딱히 부럽지는 않다.
나는 나고, 저들은 저들이니까.
“저 하늘에는 대체 뭐가 있을까……?”
마족들을 올려보고 있노라니, 아득하게 깔린 핏빛 은하수가 조각난 유리 파편들처럼 시선으로 쏟아진다.
그 모습이 더없이 시커먼 먹종이에 잘게 부순 루비 알갱이들을 흩뿌려 놓은 것 같다.
붉은 보름달과 빨간 별하늘이 심히 찬란하고 요악스럽다.
마족이 통상적으로 날아오를 수 있는 높이는 1만 미터.
전생의 제트기가 날거나, 이따금 극소수로 도달한 조류들이 버드 스트라이크를 일으키는 고도다.
4권족의 일원인 천족도 비슷한 비상력을 지니며, 창공의 제왕이라는 위명의 용족은 몇 배나 드높은 비행 고도를 보유.
그 이상의 고도는 마족 제각기의 기량으로 갈리나, 한계 이상으로 상승한 마족들은 누구나가 공평한 잿더미가 되었다.
마왕조차 존재력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의 초강력한 마기가 차단선을 생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유의하며 리나 씨와 몇 번 주간과 야간의 상공 데이트를 진행했으나, 꽤나 황홀하고 로맨틱함이 넘쳐나는 것밖에는 별다른 특이사항이 없었다.
검은 구름들이 바로 발밑에 걸리며, 시커먼 솜사탕과 같은 덩어리들을 꿰뚫고 치솟는 기분이 짜릿할 뿐인 정도.
무엇이 있을까?
아마도 마신의 궁전.
혹은 기어오는 혼돈을 투영한 시끄러운 은발의 여자아이가 있는 기지.
아니면 히로인을 납치한 매드 프로그래머의 천공성이 있을지도.
“하여간 이해가 안 가는 동네.”
지금 내가 하려는 것처럼, 불확실한 요소들의 끝없는 점철.
이런저런 상념을 흘리며 몇 시간을 정처없이 걷다 보니, 별안간 지평선에 무수히 반짝이는 빛무리들이 드러난다.
그와 동시에 급격히 드넓어지며 주변에서 여러 갈래들로 나타나는 가도들.
가도들에 불길로 타오르는 말, 두 발과 네 발로 달리는 파충류, 터무니없이 거대한 늑대와 같은 것들이 이끄는 짐차들이 우후죽순으로 모습들을 보인다.
그리고 주변에서 보행하며 함께 걷거나 낮게 날고 있는 버글버글한 인파들.
가도들이 단 하나로 모이는 곳에는, 마계의 칠흑처럼 검은 어둠조차 꿰뚫고 치솟은 성곽이 위용을 보이기 시작한다.
지평선을 메울 정도로 터무니없이 드넓은 성곽에 둘러싸인, 굳건하고도 견고한 초대형 성채 도시.
몽마여왕 릴리스.
6마군장의 일원이 기거하며 직접 통치를 펼치는 곳.
제6마군도 룩스리아의 중심지이자, 가장 거대한 대도시인 주도.
군도 헬유레이아.
마계 전역으로부터의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방대한 인원과 물자가, 그야말로 구름처럼 몰려들고 있었다.
몽마들의 고향이기도 한 헬유레이아는 유흥과 환락의 메카이기 때문이다.
유흥과 환락이 발달한 곳에는 여러 군상들이 모이며, 그 여러 군상들을 상대하기 위한 온갖 요소들도 모이다 보니 만물상이 펼쳐진다.
나이트메어들이 모는 마차들, 드라코들이 모는 용차들, 드레이크들이 이끄는 지룡차들, 메갈로 와그들이 이끄는 대랑차들이 보인다.
주변으로는 뿔과 날개와 꼬리를 가진 인영들이 걷거나 떠다닌다.
가로로 폭이 좁고 솟구친 귀, 다색의 눈색들과 머리색들과 피부색들을 지닌 자들이 웃거나 떠들썩함을 자아낸다.
인간형과는 동떨어진 형체들에 다양한 머리들과 눈코입들과 팔다리들의 개수를 지닌 자들도 함께 한다.
아득한 너머의 성문에는 마왕군들이 삼엄한 검문을 실시하고 있었다.
“언제나 버글버글하네.”
여러 가도들이 단 하나로 모이는 중앙에 줄을 맞춰 섰다.
눈에서 귀화가 일렁이거나, 입에서 불길이 넘실대는 것은 아무것도 아닐 정도의 다양한 형색들이 주변에 가득 들어찼다.
바로 앞의 몬스터 웨이브로부터 수확한 소재들을 집채만한 수레에 언덕처럼 잔뜩 담은 대랑차.
산더미처럼 쌓인 소재들의 위에는, 나름의 실력자이며 수렵단의 단장인 듯한 인큐버스가 나신의 서큐버스와 대면좌위를 취하고 있다.
둘러싼 여러 일족들의 여마족들에게도 안겨 전신에 진한 애무를 받는 중이다.
주변 마족들의 경멸과 환멸이 어린 시선들을 사도 아랑곳없다.
“이런 쓸모없는 녀석!”
별안간 후방에서 마구잡이로 구타하는 산발적인 타격음과 함께 탄성과 비명이 일어나 시선을 잡아끈다.
지룡차가 이끄는 거대한 짐차.
더러운 누더기들을 걸치고, 목울대에는 마기를 약화하는 구속구 형태의 특수한 마도구들을 박은 형상들.
흄. 비스트맨. 드워프. 노움. 하플링. 우드 엘프.
지상의 노예로 전락한 다양한 종족들이 화물처럼 빽빽하게 들어차 운송되고 있었다.
“크아하아악!? 살려 줘어어어!”
“꺄아아악! 싫어어어어어!”
“우아아아아앙! 엄마아!”
초췌한 몰골의 한 인간 남자에게 가해지는 무자비한 폭력에 질겁해, 피할 곳도 없는 곳에서 엉덩걸음들을 치며 필사적으로 몸들을 기울인다.
마족의 노예상들이 지상에서 왕국의 치안력이 미치지 못할 오지의 벽촌들을 주로 습격해, 병자들과 노인들은 몰살하고 젊은이들과 어린이들만 모조리 사로잡은 말로.
데몬 서프레서.
구속구, 귀걸이, 목걸이, 팔찌, 반지의 다양한 장신구의 형태로 쓰이는 마도구.
신체에 착용시키거나 영구적 형태로 이식하는 것으로, 체내의 혈액을 일시적으로 마혈화시켜 마계의 대기에 자욱한 마기의 영향을 받지 않게 이끈다.
마물들과 마수들을 수족처럼 부리는 마족에게만 허가된 은혜는 당연히 불가능.
지상에서 납치된 노예들은 주로 폐마족들과 함께 마계의 인프라를 유지하는데 투입된다.
위험한 실험을 원하는 자들의 재료, 특별한 취향의 마귀족들에 진상되는 성노리개, 방대한 미각의 마족 본인이나 투기장의 마물들과 마수들의 먹이로도 활용된다.
지옥의 노예.
차라리 지상에서 광산 노예나 창부가 되는 것보다 더한 운명과 절망이 기다리고 있다.
“개밥이 되어라!”
퍼허어어억!
거친 욕설과 함께 요란한 분쇄음이 중첩됐다.
마족 노예상의 마력을 휘감은 주먹질에 인간 남자의 머리가 폭탄처럼 터진다.
머리를 잃은 몸뚱이가 그대로 짐칸 바깥으로 홀라당 미끄러진다.
헬하운드들보다는 훨씬 작으나, 머리에 뿔이 돋고 눈에서 검붉은 귀화가 일렁이는 대형견들의 형상들.
길가 근처에서 배회하던 진짜 마계의 들개들인 헬 도그들과 지옥견 헬하운드들이 피 냄새를 맡고 달려든다.
주변의 마족들이 인상들을 찡그리며 물러나는 속에, 고기가 씹히는 파육음과 뼈가 부서지는 파골음이 울렸다.
짐칸에서 굽어보는 마족 노예상이 얼굴을 찌푸리며 주먹에 절은 혈흔을 마력을 일으켜 날려 버렸다.
“에잇! 불량품이었군!”
같은 마족끼리는 결코 노예가 되지 않는다.
어떤 형태의 결투와 전투든 서로의 살해는 자유로우나, 노예만은 되지 않는다.
마족은 전원이 전사이기에, 노예 따위로 인력을 허비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전원이 군인이기 때문에 사법이자 군법을 동시에 적용받는 독특한 특성을 지닌다.
만약 엄격한 규제에도 불구하고 적발된다면, 주인과 노예 모두가 극형에 처해진다.
그렇기에 폐마족들로도 채우지 못하는 노동력을 메꾸기 위해 노예들을 상시 지상에서 수급한다.
비공식적으로야 결투에서 패배한 숙적을 노예로 삼는 경우가 있겠지만, 같은 마족끼리 시비에 휘말렸거나, 마경이나 지상에서 죽었다거나의 확실한 실종을 입증할 수 없는 이상, 사실상 거의 없다 보는 것이 좋다.
마계의 특수한 문화성으로 인해 비롯되는 참극이었다.
순식간에 포식당한 시체가 짓씹히고 부스러진 앙상한 백골을 드러냈다.
신기한 생김새라며 허구헌날 마족들에게 둘러싸여 두드려 맞고 있던 남자.
과거의 나의 모습이 플래시백되었다.
나는 덤덤히 내뱉었다.
“나도 힘이 없었으면 저렇게 됐겠지.”
전생의 한국어라 주변의 누구도 알아듣는 이는 없다.
평범한 흰자위나 흐릿한 회자위나 시커먼 흑자위, 기타 다양한 색상들의 세로 동공들이 일순 이채를 띄었을 뿐.
줄은 부쩍 줄어들어 어느새 나의 순서 직전까지 왔다.
“신분을 증명하는 신분증은 미리미리 꺼내 둬라! 기왕이면 수월하게 일들을 처리하자구!”
“노예들의 등록증들도 모조리 꺼내! 검문에 불응할 시에는 즉각적인 무력 제재에 돌입한다!”
“화물들을 실은 방수포들은 말끔히 젖혀 놓으라구! 하나하나 확인하고 까보는 걸 원치 않지!?”
“설마 야만마족들과 관련된 녀석들은 없겠지!? 피를 보는 것 이상으로 크게 다치게 될 거니깐!”
“제8군단의 업무에 좀 적극적으로 호응해 줘! 너희들도 군생활이 고되고 힘든 것을 알고 있잖아!?”
바로 앞의 검문을 받는 용차 너머로부터 투구 속에서 울려 부딪히는 고함들이 퍼진다.
악마를 형상화한 고딕풍의 음험한 디자인. 머리끝에서 발끝까지를 완전히 감싸는 칠흑의 전신갑. 면갑 위와 투구 밑에서 붉게 일렁이는 안광들.
마왕군 정병. 다크 솔저들이 출입자들에게 빈틈없는 검문을 가하고 있다.
지상의 중상급 모험가들과 비슷하다고 칭해지는 통상적인 마족들.
저악마들이나 악마들이 아닌, 마족들만의 가장 보편적이며 마왕군의 주력인 병과.
본연의 뿔들과 투구에 추가적인 장식으로 고슴도치처럼 우수수 솟은 뿔들, 포효하는 악마의 얼굴을 형상화한 면갑은 그야말로 공포의 상징들.
수많은 종족들의 역사서들에서, 검은 갑주들에 붉은 안광들을 흘리는 삽화들로 기록된 마왕군.
질서정연하게 지평선과 하늘선을 채우고, 대지와 상공에서 진격하는 칠흑병들의 위용은 지상의 나약한 존재라면 본능적으로 전율하며 절규할 수밖에 없다.
마평원에서 봤던 다양한 사복들을 입고, 제멋대로의 무장들을 갖춘 녀석들이 복무 시에는 각자들의 배속된 병과에 맞게 저렇게 통일된다.
“뭐, 됐고……. 다음!”
앞을 가로막던 용차가 털거덕대며 쭉 나아가 활짝 젖혀진 성문을 통과한다.
다음 차례인 나는 미리 지갑에 스티커의 형식으로 부착된 헬유레이아의 시민권을 덜렁대며 갔다.
초상화에 성명, 거주구, 직업의 신상 정보가 표기된 이쪽 세계의 신분증.
전생한 다음 해의 새해 첫날에 기념과 축하의 의미로 리나 씨와 함께 시청에서 발급받은 것으로, 마력적 직인이 찍혀져 위조가 불가능하다.
그걸 보기 위해 담당인 다크 솔저가 고개를 푹 수그린다.
칠흑의 투구와 면갑의 속에서 붉은 안광들이 음험하게 일렁인다.
“지, 크……. 거주구는, 루스카 숲…… 연금공방 에우포리아의, 견습 연금술사……. 킥, 너 이런 일 하고 있었냐?”
돌연 투구 속에서 노골적으로 비웃는 남마족의 목소리가 터진다.
투구 내부의 어둠에서 붉은 눈꼬리들이 비웃음을 머금고 휘어진다.
묘하게 목소리가 귀에 익다.
“뭐야, 라드리스냐?”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이를 악물었다.
“킥킥킥킥킥! 용케 기억하시네에~? 이 몸의 이름을. 그때 신나게 네놈을 두들긴 추억이 떠올라아아~!”
“내 두뇌가 좀 특별해서 잊지 않으려 하는 것은 결코 안 잊거든.”
녀석이 오른손으로 지면에 짚은 시커먼 할버드를 파들거리며 상체를 떤다.
나의 시큰둥한 반응에 끅끅대며 터져 나오려는 폭소를 간신히 억제하고 있다.
“솔직히 어딘가에서 뒈졌는 줄 알았는데, 용케 살아 있었네에~! 그래서? 비참히 기어다니시며 목숨을 연명하셨나? 크하하하핫!!!”
결국 녀석이 상체를 꺾으며 폭소하고 만다.
녀석은 약 2년 5개월 전에 실험 도구들의 구매를 위해 시내에 나왔던 내게 패거리와 함께 대뜸 시비를 걸었다.
당시의 나는 좌절과 분노가 끔찍하게 교차하던 시점이라, 앞뒤 가리지 않고 마구 달려들어 싸웠는데 완패했다.
그때는 마석화와 마석식도 완벽하지 않았으니까.
배를 부여잡고 폭소하던 녀석이 상체를 뒤젖혔다.
“아~! 하여간! 벌레 새끼들이 목숨은 끈질기지이! 네놈을 보니 입증되었다! 입, 증, 완, 료야아아아악! 끄악하하하핫!!!”
“뭐냐, 라드리스? 왜 이렇게 시끄러워!?”
“라드리스 님! 문제 있으십니까!?”
주변에서 다크 솔저 둘이 더 넘어온다.
나는 지갑을 갈무리하며 더욱 험악하게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2미르타가 살짝 넘으며 건들대며 걷는 특유의 걸음걸이는, 시게르타… 160시르타 정도의 그 작달막한 체형은 칼리니 같고…. 얼씨구, 그때의 개새끼들이 싸그리 모였네?”
“어라!? 네놈 그때 우리한테 뒤지게 맞고 뻗은 놈 아니냐!?”
“이 새끼!? 그때 그 녀석이군요! 핫!”
남은 두 다크 솔저들도 자지러지게 웃는다.
녀석들은 제8군단 칠흑의 절규 소속의 군단병들.
본디 군도는 해당 마군장이 속한 종족들이 방위를 도맡는 게 원칙이나, 나의 여주인이 배속되기도 한 몽마들의 군단인 음몽군단 미육의 장미는 전투력이 약해 이렇게 지원을 받는다.
음몽군단의 총원 15만에, 제8군단의 총원 8만 5천에서 약 3할인 2만 5천 정도가 추가적으로 지원한다.
나머지는 마군도의 여기저기에 배치되어 주로 마경에서 발생하는 몬스터 웨이브들을 통제하며, 마왕권 변경으로부터 북부에도 이따금 모습들을 드러내는 야만마족들을 격퇴하는 방위를 수행한다.
몽마들과는 그럭저럭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는 내가, 끊임없이 온갖 마족들과 얽힐 수밖에 없었던 이유.
헬유레이아 자체가 환락의 메카로서 온갖 군상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했기에 불가피했고.
뒤쪽 줄에서 명백한 불만을 표하는 헛기침 소리에 나는 조소를 내뱉었다.
“에라이, 역시 병신들은 한자리에 모이네. 그나저나 군복을 입고 있으면 좀 똑바로 복무해. 왜 그렇게 사적인 감정들을 드러내실까? 자랑스럽고도 강인한 마전사들 맞냐? 혹시 나약하고도 허약한 인족들이 폴리모프로 위장하고 있는 거 아니야?”
“뭐, 라……?”
자지러지게 폭소하던 라드리스가 웃음을 뚝 그쳤다.
“당시 힘도 없던 사람을 두들긴 게 뭐 그리 재미있다고 폭소하는지? 대가리에 이지 모드만 설치되어 있어 아주 플레이마다 발기가 주체가 안 돼? 꼬우면 또 그때처럼 패거리랑 사복 차림으로 날 뒷골목으로 끌고 가봐라? 싸그리 허리를 반으로 접어 줄 테니까.”
라드리스가 천천히 상체를 폈다.
시게르타와 칼리니도 태세들을 고치며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라드리스가 투구 속에서 붉은 안광들을 깐깐히 흩날렸다.
“네놈……! 되려, 네 녀석이 잘못 알고 있는 것 아니냐? 지금의 나는 군무 중. 그때의 제멋대로이던 때와는 달라. 영광스럽고도 강인한 마왕군의 일원으로서 사명을 수행하고 있다는 말씀이 되겠다…. 마음만 먹으면, 이 내부로 통과시키지 않을 수도 있는데……? 이게 위조된 시민권 같다는 위증을 덧붙여서 말이야? 검문 없이 마력이나 능력으로 벽을 뛰어넘는 건, 무슨 극형이 있을지 알 테고.”
“그건 생각하지 못했지!? 멍청한 녀석! 지금은 되려 네놈이 우리의 밑에 있는 거라구! 크카카카칵!”
“그때나 지금이나 영원히 저희 마족의 밑바닥이죠! 엄청 이상하게 생긴 흄! 아핫핫핫핫!”
라드리스의 협박에 시게르타와 칼리니가 거들었다.
“그것 참! 빨랑 통과 좀 시켜 주지!? 사적인 이야기들은 끝나고 하고!”
“제8군단 녀석들 정말 빠졌네! 제대로 근무 안 하냐!?”
“저 한 새끼보다 다크 솔저들을 때려죽이고 싶네!”
나의 뒤에서 술렁이는 불만의 목소리들이 커지기 시작한다.
주변의 나머지 다크 솔저들도 소란에 몰려들며, 명백한 지체가 발생한다.
나는 상황을 판가름하며 다크 솔저들을 쭉 둘러보면서 노골적으로 코웃음을 쳤다.
“아니, 왜 이렇게들 몰려들어? 무슨 사인회 벌어졌어? 내가 너희들의 슈퍼스타야? 기뻐해야 되나? 사인해 줘? 그리고 진짜 내가 누군지도 몰라보냐? 녀석들아?”
라드리스 패거리를 비롯해, 현장의 어떤 녀석들도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나는 이미 전과가 잔뜩 있는데도, 하나도 나오는 반응이 없는 것을 보면.
대부분 이쪽 성문으로는 처음 배치된 녀석들.
“얌전히 날 안으로 들여보내라. 싸그리 대가리 터뜨려 버리기 전에.”
나는 싸늘하게 으름장을 놓았다.
“이, 놈이이이……!”
라드리스의 투구 속의 붉은 안광이 가파르게 떨린다.
오른손에 짚은 시커먼 할버드에 마력이 주입되어 거뭇한 흑연을 일렁인다.
시게르타와 칼리니의 할버드들도 제각기 각자들이 사용하던 주무기들인 검과 창의 형태들로 변형되려 한다.
섀도 포스.
어둠의 마나를 결집해 원하는 형태를 구현하는 마족의 흑마술.
마왕군들을 격앙시켜 먼저 달려들게 하는 계획, 나는 최후의 도발을 날리며 쓰게 비웃었다.
“꼬우면 덤벼, 병신들아. 지금의 너희는 이제 내게 상대가 안 돼.”
“이, 자식이이이이이!!!”
라드리스가 높게 들춘 할버드를 내질렀다.
시게르타와 칼리니의 할버드들이 검과 창으로 형태를 변환하며 좌와 우로 덮친다.
전반신의 피부에 아주 미세한 두께로 마석막을 코팅, 셋의 마력을 함유한 공격들이 나의 몸에 정통으로 내꽂힌다.
“뭣!?”
“크헉!?”
“뭐야아!?”
라드리스 패거리의 섀도 웨폰들의 끄트머리들이 소실되었다.
마치 중단이 무언가 불투과성에 막혀 끊어지기라도 하듯이.
나는 비소를 머금으며 라드리스의 면전에 마석화된 정권을 내꽂았다.
“꾸아하아아악!!!”
“컥!? 라드리스!”
“라드리스 니임!?”
우렁찬 금속성과 함께 면전이 함몰된 라드리스가 10미터는 넘게 떨어진 성벽까지 날아가 내꽂혔다.
떨거지들이 리더의 비행에 경악한 순간, 나는 마석화된 주먹들을 카누의 노를 젓듯 내지르고 있는 뒤였다.
“크하아아악!!!”
“으갸아악!!!”
왼뺨과 오른뺨이 나란히 함몰된 시게르타와 칼리니도 라드리스를 뒤따랐다.
세 다크 솔저들이 마력으로 든든히 강화된 성벽들의 표면을 꿰뚫고 꼬챙이처럼 박혀 사지들을 대롱댔다.
“크으흐으윽!? 뭐냐!? 이 녀석!?”
“아, 진짜 짜증나네에에! 니들! 적당히들 해라!”
대수롭지 않게 상황을 지켜보던 다크 솔저들과, 뒤의 마족들이 거친 불만들을 요란하게 터뜨리기 시작했다.
나는 후련해진 기분으로 손을 탁탁 털었다.
“내가 이제 와서 다크 솔저 따위에 쫄 것 같아? 적혈급인 놈들만 나오라니까?”
“적혈급……!? 통상적인 악마랑 동급인, 중급전사란 말인가!?”
“말도 안 돼! 저딴 녀석이!?”
주변을 둘러싼 다크 솔저들이 할버드들을 나란히 내밀고 경악한다.
하지만 한 명도 달려들지 않는다.
나는 순간적으로 명백한 적혈급의 마력을 발휘해서 인식시켰기 때문이다.
라드리스 패거리와 현장의 다크 솔저들은 투귀급에서 암영급으로, 완벽하게 통상적인 마족들의 수준이었다.
이제 적혈급인 내게는 아무리 덤벼 봤자 초살당할 뿐이다.
“안 덤비냐? 니들 친구가 당했는데?”
물론 심대한 블러프가 들어가 있다.
이중에 아직 힘을 드러내지 않은 중급전사들도 있을지 모른다.
나는 갓 적혈급의 초입에 진입한 극초기 단계.
최소 수십 년, 혹은 수백 년 이상의 경험치를 지닌 녀석이 나온다면, 창석술로도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
하지만 결국 싸움은 블러핑이다.
설령 상대보다 조금 약한 것 같아도, 일단 들이대는 기세.
“제기이이일! 일단 둘러싸!”
“다른 경비대의 지원은!? 아직인가!?”
“가지가지 하네! 개자식들아! 싸그리 안 비킬래!? 이제 다 죽여 버린다!”
“미친 새끼들아! 빨리 보내든지 죽이라구! 간만의 휴가라 놀러 왔단 말이다!”
아무래도 현장에 중급전사는 없는 듯하다.
나의 뒤에서는 마족들의 격렬한 격성이 터져 나왔다.
다크 솔저들이 일시적으로 망각하고 있는 지대한 사실은, 나의 뒤의 마족들도 사실은 죄다 마왕군들이며 휴가자들일 뿐이라는 것.
이대로 놔둬도 다른 군단의 다크 솔저들이거나 다른 병과들일 마족들이 밀어내겠지만.
나는 주먹을 맞물려 관절들을 풀며 나아갔다.
강하게 구는 놈들에게는 강하게 나가야 얕보이지 않는 법이다.
“그래……. 내가 이 날만을 기다려 왔다, 개새끼들아.”
마족 여자들을 따먹기 전에, 마족들을 죽이고 시작한다.
이보다 화려한 피의 개막식이 있을 수 있겠는가?
나는 기꺼이 주먹들에 마석들을 휘감으며 본격적인 전투를 준비했다.
앞이든 뒤든, 내게 덤벼드는 새끼들을 싸그리 쳐죽일 각오로.
설령 실력을 숨긴 강자가 있어 여기서 죽는다 하더라도.
“크르으으으으───!!!!!!”
“그아아아앗───!!!!!!”
나의 앞과 뒤에서 마족들이 발산하는 어마어마한 살기들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대체, 왜 이렇게들 소란이냔 말이닷!!!”
앞뒤로 거대한 충돌이 일어나기 직전, 성문 안쪽에서 앙칼진 호통이 들려왔다.
“금일은 주말이기도 하고, 신분을 위장한 마귀족들과 고용인들도 있을 수 있으니, 깐깐히 굴지 말고 적당히 넘기라 주의를 줬거늘…… 뜨히이이이익!?”
성문으로부터 걸어나온 160센티미터도 되지 않을 듯하나, 흉부의 무지막지한 볼륨에 맞춰 흉갑에도 폭발적인 융기를 갖춘 여자 다크 솔저.
화들짝 놀라 부동자세가 된 그녀에 나는 반가움에 손을 들었다.
“오! 크레나! 너는 나 아주 잘 알지!?”
“흐힛!? 흐히이이잇!? 지, 지크으으으!!!”
찾던 중급전사의 등장.
사실 나는 헬유레이아의 성문에서 몇 번이나 난동을 부린 전적이 있다.
녀석들에 저항할 힘은 없으니, 조금이라도 시비를 걸어 오면 10배에 가깝게 오버하며 온갖 사소한 요소들에 진상손님처럼 난리법석을 피웠다.
왜냐하면 나는 힘은 없어도, 결코 쉽게 죽지 않을 맷집은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마계의 사회에서 연금술사와 같은 마술계 직업들은 중요도가 높다.
아무리 힘이 우선인 강자존의 마계라도, 그리 쉽게 잡초 뽑듯 제초할 수 있는 존재도 아니라는 말.
저 크레나는 당시 현장에서 나의 꼬장을 몇 번이고 겪었던 당사자.
양측의 관계자들이 소환되며, 함께 시청에 끌려가 밤샘 조사도 받은 적이 있으니 귀찮겠지.
고개를 푹 떨구고 마왕군의 간부들에 그저 죄송합니다만 연발하던 나의 서큐버스.
리나 씨에게만 죽을 듯이 미안할 뿐이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는 미친 개새끼처럼 날뛰어야 만만하게 못 보고 안 건드린다.
마계는 관대한 군자조차 무자비한 폭군으로 돌변시킬 환장랜드였다.
“토, 통과! 통과아! 빨랑 보내애애애!”
“예!? 크레나 님!? 하지만 이 녀석은, 라드리스와 시게르타와 칼리니를─”
“몰라! 모르겠으니까 그냥 빨리 보내라고! 녀석은 무조건 귀찮아! 신분증 보였으면 그냥 보냇!!!”
책임자되는 여자 다크 솔저가 투구 속에서 붉은 눈꼬리를 연기처럼 흩날리며 황급히 손을 내젓는다.
귀찮으니 빨랑 보내라는 뜻.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래? 책임자가 저렇게 나오니 어쩔 수가 없네. 아쉽게도.”
양손의 마석화를 해제한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주변의 다크 솔저들의 살기가 좀처럼 걷히지 않는다.
이내, 분심들을 터뜨리며 무기들을 일제히 거둔다.
즉각 뒤에서 마족들의 험악한 욕설들이 다크 솔저들에게 터지며 난리가 일어났다.
나는 완전히 트인 길로 뒷머리에 깍지를 끼고 나아갔다.
“수고해~!”
“윽, 크흣……!”
부들대는 폭발 젖통의 여자 다크 솔저를 곁으로 스쳐 지나치며 패스.
잠시 측면의 성벽에 시선을 던진다.
우스꽝스러운 각도로 벽면을 허물고 처박힌 라드리스가, 투구 속에서 이글대는 붉은 안광을 내게 내쏘고 있었다.
“두고, 보자……! 빌어먹을, 호문쿨루스……!”
“네에, 네에! 멋대로들 하세요~! 지크 갈게요~!”
나는 능글맞게 웃으며 우스꽝스러운 몰골들로 쏘아보는 라드리스 패거리에 응대해 주었다.
사실 두고 보기를 바라고 있다.
그래야 거리에서 마주쳤을 때 조질 수 있으니까.
“후련하다!”
나의 진입을 환영하듯 활짝 젖혀진 성문 내부로 들어섰다.
복수의 쾌감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