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서큐버스-13화 (13/80)

〈 13화 〉 알케믹 퀘스트

* * *

“기상.”

나는 땅바닥을 부수고 비상했다.

핏빛처럼 붉은 하늘. 석유처럼 검은 구름들. 시커멓게 타오르는 태양.

“오늘도 쾌청한 아침.”

박력적으로 돌덩이들을 흩날리며 10미터 가까이나 뛰어오른 나는 사뿐히 지상에 착지했다.

곧장 옆구리를 짚고는 가볍게 목 운동.

이내 어깨부터 팔꿈치와 손목, 허리와 무릎과 발목 아래까지 내려간다.

주변에 마물들과 마수들은 단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지난밤에 세상을 끝장낼 듯이 자아내지던 난리가 감쪽같은 거짓말이었다는 것처럼.

잠시 온몸을 풀어 주고는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일으키기 원하는 것은 청결과 정화의 구현. 나의 소망에 발해 지금 이 자리에 자그마한 기적을. 클린즈.”

내뻗은 검지에 흙덩이가 쭉쭉 압축된다.

온몸에 마력이 구석구석 휘몰아치는 느낌이 감돌며, 나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의 먼지를 죽죽 빨아들이고 있다.

일정한 크기 이상으로 확장을 멈춘 덩어리를 발사, 펑 쏘아진 먼지가 시선에서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밤새 웅크리고 있느라 먼지투성이가 된 집사복이 갓 드라이클리닝을 마친 것처럼 윤택해졌다.

머물고 있던 구덩이를 향해 오른손을 뻗는다.

염동력에 이끌린 포대가 휭 날아와 손잡이의 끈이 오른손에 휘감겼다.

오른손으로 포대의 입구는 조금 벌리는 반면 왼손은 포대에 겹치며 다시금 영창을 발했다.

“차원과 공간을 관장하기에 언제나 흘러가는 신명인 크로노스. 부디 당신이 미약한 존재들에 베푸신 가장 자그마한 은총을. 포켓 디멘션.”

즉각적으로 나의 왼손에 내부가 우주인 듯한 균열이 불거져 나와 포대를 집어삼킨다.

시마법 포켓 디멘션.

온갖 마법들이 존재하는 가이아 세계에서도 실로 편의를 극대화하는 수단.

말 그대로 술자가 원하는 물체를 개별로 할당된 아공간에 담아 버린다.

자동적으로 보존의 술식이 적용되어 수납된 물품을 외부와 유리된 공간 내부에서 완벽히 보관한다.

수납할 수 있는 공간의 크기는 개인의 마력통에 따라 다르며, 나는 약 30평 정도로 리나 씨의 집보다 조금 작다.

안에는 연금술사를 위한 온갖 필수 물품들이 있으며, 실험이나 해체의 목적으로 보관 중인 마물들과 마수들의 시체들도 있다.

공간의 크기는 사용자의 마력과 숙련도에 따라 달라지며, 강자가 개방하는 차원구는 연병장보다도 거대하다거나, 용이나 거인의 시체도 수납할 수 있다는 것은 허언이 아니다.

물론 각자들의 아공간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휘적거리며 찾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군용과 운송과 같은 수단들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럼 아공간의 사용자가 죽으면 어떻게 되느냐?

사용자가 최후로 사용한 현장을 여러 수단들로 탐색해 시마법의 잔향을 색출.

특수한 마도구와 장비를 사용하면 자물쇠가 잠긴 상자를 따듯 간단하게 사망자의 아공간을 개방.

아공간털이에 나서는 아주 기똥차고도 신박한 경우도 있다.

소위 타임 시프들.

보존의 술식을 유지하던 마력의 연결은 술자의 사망과 동시에 단절되어, 내부의 물품들의 부패가 서서히 시작되고, 모든 것들의 완전한 부식과 함께 해당 아공간은 소멸로 돌아가겠지만.

태곳적 이래로 사용자가 물건을 남기고 죽어 버리는 바람에 수백만, 수천만은 되는 수많은 아공간들에서 썩어 가는 물건들이 있겠지.

연금술사로서 다른 건 탐이 안 나는데 혹시 귀중한 약초는 있나 호기심은 좀 든다.

몇 번을 생각해도 이 휴대용 아공간의 편의성은 척추에 전류가 내달리는 기분이었다.

특이하게도 숨이 붙은 생물의 수납은 되지 않는다.

사용자 역시 내부의 원하는 물품을 마음대로 휘저어 꺼낼 수는 있으나, 들어가는 것은 안 된다.

아공간 자체가 어떤 생물도 격렬히 거부하며 일체의 진입을 금지하는 느낌.

아마 시신(??) 크로노스의 의지가 아닐까.

포대를 넣은 것은 방에 물건들을 흩뿌리는 것보다 물건들을 담은 가방을 던지는 것이 훨씬 말끔한 원리다.

본격적인 채집의 개시와 동시에 모든 짐을 완전히 소거한 홀몸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최후의 영창을 발했다.

“일렁이는 바람이여. 언제나 자연에 일렁이는 싱그러운 은혜를 바라오니. 내게 신속의 가호를. 헤이스트.”

콰아아아앙!

즉각 나의 후방으로 크레이터를 터뜨리며 초고속으로 쏘아졌다.

풍마법 헤이스트.

온몸에 연녹색의 일렁이는 바람줄기가 휘감겨져, 초고속으로 놀려지는 발로 오직 평원의 중부를 향해 내달렸다.

숲의 나무도. 원만하게 솟은 언덕도. 다양한 형상의 대지를 따라 펼쳐지고 흐르는 강과 호수도.

모두가 사선으로 눕혀지며 쌩쌩 스친다.

본격적인 질주가 시작되었다.

마주치는 모든 마물들과 마수들이 뭔가 기운 없이 늘어져 있거나 무기력하게 뻗어 있다.

영락없이 광란의 나이트를 보낸 꽐라들이 숙취에 꼴은 형색들이다.

모두가 기진맥진한 세상에서 움직이는 것은 나뿐이었다.

마경에서 텐트를 치고 야영한다는 것은 훌륭한 자살행위.

허나, 버텨낸다면 이런 광경이 펼쳐진다.

밤새 날뛴 몬스터 웨이브의 여파로부터 회복하지 못한 마물들과 마수들을 손쉽게 사냥할 수 있는, 마경에서 밤을 지새운 용기 있는 자들만이 취할 수 있는 골든 찬스.

하지만 연금술사인 내게 첫 번째 수급의 대상은 언제나 약초. 그 다음이 소재다.

나는 몬스터 헌터가 아니라 알케미스트이기 때문이다.

“지금이 채집의 적기니까.”

마물들과 마수들이 기운을 회복해 정상적인 사이클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녀석들의 기운이 돌아오는 것은 최소 여명에서 3시간 정도가 소진되고 나서.

여기저기에 산더미처럼 널린 자기들끼리 싸우다 죽은 것들의 시체들을 영양식으로 보충하고서야.

나를 보는 마물들과 마수들의 눈들이 완전히 맛이 갔다.

그야 이른 아침부터 웬 집사복을 입은 남자가 초원을 전력 질주하고 있으니, 자신들의 눈에도 엄청나게 보였나 보다.

마평원 제르디아에는 연금술사들만의 핫스팟들이 있다.

중앙으로 들어갈수록 터줏대감들이라 불릴 녀석들이 지내기 좋을 숲들이 드문드문 자리하는데, 해당 위치들에 마침 쓸 만한 약초들도 절묘하게 위치하고 있다.

몇몇 괴짜 마족들은 이런 곳에마저 연구소를 차려서 은둔하고, 지나가는 마족들을 납치해 위험한 실험에 써먹는다는 흉흉한 소문이 나도나, 아직까지는 소문의 실체를 확인하지도 못했으며 주의만 기울인다면 마주칠 일도 없다.

꽤나 홀가분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신나게 달렸다.

너른 평지에 드문드문 숲들과 흐르는 냇물들이 있던 지형이 더욱 다채롭고 입체적으로 펼쳐진다.

끊임없이 안력을 불어넣으며 위치를 확인하는 왼눈의 매직 모노클에 첫 번째 스팟이 들어왔다.

숲의 어귀에 급정거, 즉각 오른손에 포켓 디멘션을 열어 마력 포션들을 꺼내 몇 병을 들이킨다.

높게 휘날린 공병들을 돌려차기로 깨부숴 기세를 돋우며 만전의 상태로 숲에 진입.

자줏빛 나뭇잎들이 인상적인 숲으로 흑단처럼 시커먼 덤불을 헤치고 들어선다.

낮게 드리워져 길목을 방해할 정도의 금속성 가시 같은 나뭇가지들은 포대에서 꺼낸 단검으로 빗겨내며 들어간다.

숲에 들어서자 분위기와 대기가 변화한다.

연금술사는 직업상 예민할 수밖에 없는 냄새.시큼한 풀내와 풋풋한 흙내음이 물씬 풍긴다.

마물들과 마수들도 딱히 보이지는 않는다.성큼대며 끊임없이 발걸음을 옮긴다.

지상에서 지옥이라 불리는 곳이라고는 해도, 그래도 명목상 숲에 들어오니 심신이 안정되고 폐부에 활력소가 차오르는 기분이다.

어쨌든 이것들도 이 땅에 살아가는 것들이 들이키기 위한 충만한 산소를 생성하고 있고.

연금술사는 필수적으로 가까울 수밖에 없는 산림. 어둑해지는 시야에 맞춰 탐색하는 감각은 예민해진다.

“빙고.”

애초 이 퀘스트의 시초였던 소재, 파고니아 버섯의 군락지를 발견했다.

“제대로 찾아왔네.”

자줏빛 색상에 하얀 반점들이 영락없는 독버섯처럼 보이나, 사발에 빻은 분말은 포션의 순도를 높이는 정수제가 되는 녀석.

단검을 쥐지 않은 왼손을 크게 휘둘러 재차 포켓 디멘션을 잡아 벌렸다.

안으로부터 수납된 잭나이프들이 줄지어 둥실대며 흘러나온다.

따악, 가벼운 핑거 스냅과 함께 50개도 넘어가는 잭나이프들이 철커덕대며 펼쳐져 제각각 날아든다.

잭나이프들에 뒤이어 주둥이가 벌려진 가죽 주머니들과 그물들도 흘러나와 위치들을 잡는다.

염동력에 휘감긴 도구들이 일제히 나의 의지에 발해 채집을 개시했다.

“수월하군.”

여기저기에 슥슥대는 청량한 절삭음이 울리며 버섯들이 따인다.

결코 본연의 형태가 상하지 않게, 뿌리를 통째로 지맥으로부터 조심스럽게 박리해낸다.

그러고는 주둥이를 벌리고 있는 가죽 주머니에 날아와 채집물을 투하한다.

칼끝을 돌려 열심히 일하고 있는 나이프들에게 다시금 날아간다.

하나하나가 나의 채집의 노하우를 머금고 있기 때문에 헛방으로 칼질하는 일 따위는 없다.

직접 쥐고 있지만 않을 뿐.

이것이 이 세계에서 통용되는 채집법이다.

“싹쓸이해도 잡을 사람도 없고.”

정장의 윗주머니에서 끈을 여민 가죽 주머니를 꺼내 벌리고는, 내부로부터 물방울 형상의 은은한 녹빛 결정들을 쏟아냈다.

세이피지아의 눈물.

모든 만천하와 섭리를 통틀어 가장 드높은 반열.

지고의 창조주되는 존재들.

초신(??) 세이피지아가 일정한 주기로 빠져드는 풀잎의 여행으로, 불특정으로 강림하는 세계의 여러 환경들의 초목들을 볼 때마다 흘리고 가기에 자연에서 랜덤하게 발견되는 눈물 결정들.

지상과 아계들의 다방면으로 모든 연금술사들이 사용하는 탐지석.

현재 원하는 식물의 빻은 분말을 표면에 도포해 놓으면, 근처에 있을 시 환한 빛을 냄으로써 알려 준다.

여러 결정들을 가지고 있을수록 원하는 여러 약초들을 탐지할 수 있다.

그와 동시에 몇몇 결정들이 찬란한 빛을 내기 시작했다.

“오늘은 운이 좋군.”

즉각 펠리하르 영양초의 군락지가 발견되었다.

포션의 색소를 첨가해 확실한 분류를 가할 때 필수인 레인보우 플라워, 식용으로도 좋고 약물의 첨가제로도 훌륭한 염옥나물도 발견되었다.

따낸 파고니아 버섯들이 가죽 주머니들에 가득가득 담기고 있는 것을 눈길로 흘리며 즉각 자리를 옮겼다.

반딧불의 둥근 불빛처럼 환하게 빛을 내기 시작한 풀의 여신의 인도를 뒤따랐다.

자신과 비슷한 성질을 지닌 것에 접근할수록 반짝이는 신비한 돌멩이.

얼마 지나지 않아 칠색으로 어여쁘게 빛나고 있는 야생화, 붉은 구슬들이 표면에 우둘투둘 돋은 듯한 산나물을 발견했다.

근처에서 생각지도 못한 다른 약초들과 향초들과 영양초들도 발견되어 모조리 채집하기로 했다.

“이 숲 풀이 좋네.”

분주히 오가며 현장을 감독했다.

허공에 뜬 나이프들과 주머니들이 춤추며 흘러다니는 게 폴터가이스트들의 집단 장난질을 연상시킨다.

이따금 중점적으로 채집해야 할 포인트가 눈에 띄면 그저 그 방향으로 슥 손을 휘저었다.

그때마다 채집 도구들이 우르르 날아들어 모조리 휩쓸었다.

보이지 않는 수많은 손들을 지닌 의사가 수많은 환자들에 수술을 집도하는 장면과 같다.

나의 왼눈에 착용한 매직 모노클은 안력에 맞춰 잎사귀의 상태, 거를 것, 고를 것을 분류할 수 있도록 고배율의 시력을 제공했다.

줌인과 줌아웃으로 낱낱이 상태들을 세세히 확인하며 채집했다.

완전히 연금술사를 위한 특화 아이템이다.

딱히 손을 많이 쓰지도 아니며 그저 슥 거닌다.

일은 내가 안 하고 나이프들이 하므로.

채집물들을 받친 나이프들이 허공을 둥실둥실 흘러다니며, 여기저기에 활짝 주둥이들을 벌리고 있는 가죽 주머니들에 골인했다.

나의 아공간은 30평은 되며 현재 여유 공간은 넘쳐나므로.

이 숲의 군락지를 모조리 거덜내더라도, 주변의 필요하거나 앞으로 필요할 것 같다고 생각되는 것들은 모조리 휩쓸었다.

보호 기제를 발동해 자신을 감추려거나 꽁꽁 숨으려 드는 예민한 녀석들만 직접 손을 쓴다.

포대는 쓰지 않는다. 나의 진짜 수납장은 포켓 디멘션이다.

눈 돌아갈 것들이 참으로도 많다. 역시 마경이다.

그런 식으로 첫 번째 스팟의 채집을 마치고는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까지를 연이어 이동해 같은 공정을 반복했다.

아공간에 가득 들어찬 가죽 주머니들 모두가 완전히 들어찰 때까지.

나 혼자 마경의 숲을 거덜낸다는 일념으로.

“이 정도면 충분히 쓸어담았나?”

내용물로 잔뜩 부푼 마지막 가죽 주머니가 아공간에 쑥 빨려들었다.

채집용으로 사용하던 단검만 쥔 홀몸.

나는 싸늘한 감정을 담아 뒤로 말했다.

“너네는 대체 언제까지 뒤쫓아 다닐 생각이냐?”

그저 적막이 감돈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한 고요.

잠시, 후방의 풀덤불에서 기묘한 움직임들이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나는 천천히 뒤를 돌았다.

“크키케켓!”

“키캬악!”

인간형의 모습, 하지만 인간도, 마족도 아닌 존재.

시커멓거나 검거나 거뭇한 어두운 계통 피붓빛들이 두드러진다.

본격적인 포착과 함께 철사처럼 거친 질감의 시붉은 덤불을 헤치고 더 튀어나온다.

인간과 비슷한 크기.

과다한 도핑을 한 헤비급 보디빌더들처럼 전신에 우악스럽게 발달한 근육들에서는 혈관들이 터질 듯이 불뚝댄다.

머리에는 도깨비처럼 크고 작은 뿔들이 흉한 두드러기처럼 증식했다.

하체만 대충 넝마쪽으로 가리거나 마족들이 내버리고 간 장구류들을 조잡스럽게 걸치고 있다.

“매드 고블린.”

“키시시시시싯!”

“케캬캬캬캬캬캭!”

홉. 샤먼. 챔피언. 팔라딘. 비숍. 버서커. 세이지. 로드. 킹.

여러 고유한 분류로 나뉘는 녀석들은 마물들에서도 체계적이며 사회적인 마물족이며, 지상의 고블린들은 어린아이만한 체구에 모험가를 습격하고 여자를 납치해 번식한다고 한다.

번식이 빠르며, 퇴치는 가능하나 소탕이 불가능한 특성을 제외하면 그닥 위협이 되는 존재가 아니라고 한다.

매드 고블린은 최소가 건장한 성인 남성과 비슷한 체격.

홉은 3미터를 상회.

챔피언은 지상의 오우거와 비슷한 크기.

마계에 충만한 마기의 영향에 극한까지의 성장을 이룬 결과들.

지상에 나가 보지 않고 도감의 삽화로만 접한 나는 의아할 따름이다.

마계에서는 한낱 고블린들 따위도 이렇게나 억척스럽고도 강인한 것을.

마왕령의 변경은 남자 마족은 포식하고 여자 마족은 강간하는 야만마족들과 야생악마들의 영역.

녀석들은 마계의 가장 어둡고도 검기에 적법한 지배자, 마왕 루시퍼와 대적하는 야만마왕 불드라크에 적극적으로 협력한다.

통상적인 마족 여자들에게는 도살당하지만, 힘이 약한 폐마족 여자들이나 서큐버스들을 납치해서 능욕하고 번식한다.

한없이 자만하면서도 오만한 마족들을 드물게 당해 버리게 하는 것이 마계의 마물들인 것이다.

“내가 만만해 보이냐?”

“킥! 켁!”

“키에에엑!”

곤봉, 돌도끼, 석창과 같은 온갖 조악하지만 크기들은 하나같이 큼직한 병기들을 휘둘러댄다.

부러진 마법검과 같은 마도구들을 줄기로 대충 묶어서 붙이거나 한 몇몇 녀석들도 보인다.

“어딜 감히 고블린들 따위가 넘봐. 안 꺼질래? 버러지들아?”

악귀처럼 흉악한 면전의 녀석들에 그야말로 흉물스러운 비소들이 걸린다.

자신들을 학살하고 복속하는 무서운 마족들은 피해 다니기 바빴는데, 웬 마족도 아닌 놈이 풀이나 따고 있으니 그렇게 보일 수밖에.

그것이 지대한 오판이라는 것도 모르고.

마경에서의 녀석들은 강한 마물들과 마수들이 접근하지 않을 외곽에 군락을 이루어 살아간다.

몬스터 웨이브가 찾아드는 밤에는 마경의 모든 것들이 미쳐 날뛰기에, 광란의 밤이 끝나고 나면 이렇게 서식지가 뒤바뀌는 일이 발생한다.

약초를 캐기 위해 오지에 쏘다니는 연금술사들에 있어 가장 위험성이 높아지는 순간이라 할 수 있다.

“심마니만 골라 노리는 비겁한 늑대 새끼들도 아니고 뭐냐고. 그런데 니들은 목표가 아니다.”

그와 동시에 불쾌하게 웃어대는 녀석들이 거리를 좁힌다.

숫자는 여덟. 홉이나 샤먼도 없이 통상적인 녀석들뿐이다.

그럼에도 거침없이 접근한다. 내가 지독하게도 만만하게 보였다는 입증이다.

“니들은 목표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데? 덤비면 죽을 정도로 후회한다?”

“키시이이이잇!”

나무들의 사이와 풀덤불을 헤치며 달려드는 녀석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오른손의 단검을 회전해 역수로 쥐었다.

첫 번째로 덮쳐드는 슈퍼 헤비급 고블린의 양손으로 내리찍는 대곤봉의 일격.

나는 단검으로 대곤봉을 막아내는 듯한 얼핏 정신 나간 짓도 아닌, 그저 팔뚝을 드밀었다.

일순간 나의 팔과 고블린의 대곤봉 사이에 세찬 파공음이 일었다.

“크히이이이잇!?”

매드 고블린의 가로로 찢어진 동공이 크게 팽창했다.

믿기지 않는 듯이 흉한 상어이빨을 쩍 벌린다.

나머지 돌격하던 녀석들도 심상치 않음을 감지해 정지한다.

“내 옷이 좀 특별하거든. 그런데 그걸 떠나 맨몸으로 맞았어도 별 타격은 없었을 거야.”

“키, 이이이잇!”

2미터도 넘을 듯한 초대형 근육질 고블린이 마구 힘을 가한다.

나를 그대로 지면에 내꽂을 듯한 외압에 오직 손목 하나만으로 버텼다.

건장한 성인 장정에 필적할 듯한 그레이트 클럽이 고작 손목 하나에 막혀 정지한다.

믿을 수 없는 현실에 격앙에 휩싸인 황갈색 눈알이 파들파들 떨린다.

허벅지처럼 굵은 팔뚝들에 철사처럼 혈관들이 팽창한다.

나는 마침내 버텨낼 뿐인 단검을 대곤봉을 따라 흘렸다.

전투용도 아닌 생활용의 단검이 팔목들에 떨어진다.

“키, 햐아아악!?”

쩌렁한 흉성을 내지르는 매드 고블린의 팔이 들춰진다.

손목들이 상실되고 거뭇한 피만 흘려내는 절단면들만이 들춰진다.

나의 간단한 검격이 허벅지처럼이나 두터운 팔뚝들을 잘라냈기 때문이다.

발치에 떨어진 녀석의 곤봉을 걷어차 물러나는 몸체마저 맞춰 버렸다.

“키이이이잇! 키이이이잇!?”

“키시이잇!?”

나머지 매드 고블린들에 경악이 감돈다.

나의 행동을 명백히 포착하고도 일어난 결과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크, 르으으……!”

매드 고블린이 분기에 가득 찬 눈알들을 부라리며 물러난다.

흉한 치열이 가루가 될 듯이 갈아붙이는 녀석.

일순간 회심의 흉소가 걸린다.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쿠, 아아아아아!!!!!!”

돌연 전장이 된 숲이 떠나가라 흉성을 지른다.

그와 함께 매드 고블린의 잘린 팔뚝들에서 이변이 일어난다.

검붉은 살점들이 절단면에서 끊임없이 솟구친다.

그 형상이 검붉은 물방울들이 튀기는 것 같다.

잠시 보글대며 요란하게 육편을 튀기던 곳에서, 돌연 무언가들이 치솟았다.

매드 고블린의 재생된 팔뚝들이었다.

마기의 원산인 마계가 마혈이 흐르는 존재들을 한없이 축복하는 마의 기운.

마기가 상처를 재생해 버린 것이다.

“……크, 케케케케케켓!”

“키시이잇! 키키키킷!”

“키햐아아앗! 키잇!”

광소를 터뜨리는 녀석들에 맞춰 주변의 매드 고블린들이 덩달아 환호한다.

어김없는 현상에 나는 욕설을 내뱉었다.

“하여간 이 세계는 고블린 새끼들조차 트롤 새끼들이라니까. 좆 같은 재생충들.”

“쿡, 크르……!”

허리를 번쩍 낮춰 다시 자신의 대곤봉을 집어드는 녀석.

가뜩이나 위협스럽기 짝이 없는 안면에 혈관을 가득 세우고는, 성큼성큼 접근하기 시작한다.

이번에야말로 나를 날려 버리겠다는 듯한 기세.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분하겠지. 그런데 이번이 니들의 진짜 마지막 기회다? 도망칠 수 있을 유일한? 그리고 내가 분명히 말했는데?”

“카, 아아아아앗!”

녀석이 마경의 어떤 흉악한 맹수와도 비견될 흉성을 내지르며 지반을 박찼다.

지축이 미약하게 떨릴 정도의 돌격을 가하는 녀석을 보며 나는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오른손에 쥔 단검을 허공에 튕겨 차원구에 삼켜지게 한다.

양 주먹을 까드득대며 관절을 푼다.

그러고는 대련세를 취했다.

“쿠어어어어어!!!”

지반까지 꺼트릴 듯한 기세로 코뿔소처럼 달려드는 녀석.

나는 가볍게 진각을 박차 쏘아졌다.

현장의 누구도 가벼운 발걸음으로 대번에 접근하는 움직임을 감지하지 못했다.

머리 하나는 넘는 녀석의 면전에 순식간에 도달한 순간.

나의 주먹은 찬란한 마석에 덮여 있었다.

흉한 안면이 즉각 뒤통수까지 매몰되며 퍼거걱대는 우렁찬 파골음이 울렸다.

꺼지는 낯가죽에서 눈알들이 치솟으며 이빨들이 흩날린다.

“니들이 목표가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하냐.”

푸화아아악!

마석으로 이루어진 정권이 매드 고블린의 머리를 완전히 박살내 버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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