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화 〉 알케믹 퀘스트
* * *
“사악한 중2병들.”
진입이 깊어질수록 인간이 아닌 것들이 펼치던 아수라장의 소음도 잦아든다.
마경의 밤이 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힘자랑을 좋아하는 마족들조차 밤에는 마경에 머무는 것을 기피한다.
마족도 버틸 수 없을 정도의 진정한 인외마경으로 돌변해 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참 살벌한 악마들의 고향.”
마대륙 이블리오스.
마족 300만, 마수 1,250만, 마물 1억 5천만이 살아가는 마계라 불리는 세계.
아계라 불리는 고유의 천체와 대륙과 해양을 구축한 독립적인 세계다.
전생의 유럽 대륙과 놀라울 정도로 흡사한 크기인, 서방이라 불리는 아스테르 대륙과 맞먹는 크기를 자랑한다.
전생의 유럽과 비슷한 크기의 세계에, 전생의 인도와 비슷한 크기의 육지는 오직 3할.
중앙에 본래는 갈라졌던 땅들을 하나로 뭉친 듯한 형상의 마대륙이 존재하며, 마신의 등뼈라 불리는 가가브 산맥이 여섯 갈래로 대지를 분할한다.
대륙 정중앙에 우뚝 솟은 마신의 혀라 불리는 이슬라트 화설산, 대륙 서부와 대륙 동부에 마신의 눈알이라 불리는 블리엘 적혈 호수와 슬레인 흑혈 호수가 이 세계의 창조주를 상징하는 가운데, 지상과는 한없이 이질적인 독자적 생태계가 구성되어 있다.
나머지 7할을 석유처럼 시커멓고도 질척한 칠흑해 아드리안이 둘러싼다.
블랙 시 서펜트를 비롯한 온갖 다양한 해마수들이 서식. 마계에서도 식용되는 어류를 찾거나, 강함을 시험하기 원하지 않는다면 딱히 갈 필요가 없다.
전생의 흰수염고래는 티끌처럼 귀엽게 보일 정도의, 터무니없이 거대한 포식자들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원리인지도 모르게 해마수들은 끝없이 발생한다.
녀석들은 마대륙의 심연에 위치한 세계 15대 크리스탈들의 하나인 크림슨 크리스탈에 공포를 느껴 내륙은 영역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하지만 밤이 되면 폭풍우가 치며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는 끈적한 타르 같은 칠흑해에서 무수히 치솟아 올라, 대륙 외곽의 땅이라기엔 애매한 멋대로 상승했다가 침몰하고는 하는 섬들에 거체들을 뉘이려는 상륙전을 벌인다.
폭풍우와 소용돌이가 소멸하는 아침이 올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마대륙 외곽의 섬들은 불특정하게 떠오르거나 가라앉는 특성에 더해, 밤이 되면 해마수들의 난동에 정착지나 선착장도 모조리 부서져 나갈 테니 영토로서의 의미가 없다.
당연히 마계의 바다 밑바닥에 무엇이 있는지 탐사하는 것도 의미가 없다.
무언가 마왕과 악마들의 이해마저 뛰어넘는 터무니없는 것이 도사리고 있을지도.
전대의 수많은 마왕들이 치적으로 삼기 위해 토벌에 나섰으나, 결국은 마왕들조차 포기한 노답 친구들.
어찌 보면 이 세계의 진정한 승리자들이라 불러야 될 어마무시하고도 끔찍한 녀석들.
“생각하니 지옥 그 자체네…….”
마계는 완벽한 구체를 이루어, 마대륙의 서쪽에서 출발한다면 칠흑해를 가로지르고 언젠가 다시 마대륙의 동쪽으로 도달하게 된다.
진짜 독립적인 세계 그 자체다.
유럽만한 세계에 인도만한 대륙이 마계의 전부이기에 혹자는 그리 크지 않다 할 수 있겠다.
서방 대륙과 필적한 규모를 가지고도 어쨌든 거주 가능한 면적은 3할에 불과하니까.
그렇기에 답답함을 견디다 못한 마왕군의 휴가자들이 지상으로 나가는 것이겠지.
좁은 공간의 탁한 수질에서 벗어나, 제멋대로 날뛰어 보고 싶기에.
그 피해는 지상의 저항할 힘이 없는 약자들이 고스란히 입고.
“강자들의 세계.”
검은 구름들을 품은 마계의 하늘과 동일한 색상.
피처럼 붉은 잔디를 마력을 두른 구둣발로 밟아 깨부수면서, 숲과 냇물과 호수가 너른 들판에 펼쳐진 마경을 나아간다.
크림슨 그래스. 자신을 밟은 대상의 발바닥을 꿰어, 본연의 핏빛에 더욱 핏기를 첨가하는 마계의 흔한 금속성 잡초.
칼날처럼 날카로운 풀잎은 그냥 밟으면 질긴 가죽 군화를 찢고 상처를 입힐 정도이나, 마계에는 척박한 고원이나 메마른 황무지의 비율이 높아 자생지가 그리 많지는 않다.
야생에 살아가는 것들은 아예 가급적 밟지 않거나, 마력을 두른 발길들로 깨부수거나, 지면과 연결된 비교적 절삭력이 미약한 뿌리 부위를 짓밟는 식으로 대처한다.
금속성의 가시밭길을 밟아 부수며 나아가자, 마신의 핏물과 작열하는 용암이 흐르는 냇물들이 대지로 줄기줄기 갈라지며 본격적인 마경의 경관이 펼쳐진다.
화염의 타오르는 갈기를 휘날리며 불길의 숨결을 토하는 시커먼 지옥마, 야생의 나이트메어들 한 무리가 내달리며 잔디들을 밟아 깨부수는 우렁찬 금속성을 울린다.
딱히 참가하지 않는 무리들이 불길에 타오르는 말의 꼬리들을 여유롭게 흔들대며, 푸르륵대면서 호수에 고이거나 냇물들에 흐르는 용암을 들이킨다.
나이트메어들 너머의 적토가 깔린 흙바닥에는 지옥마들만큼이나 보편화된 대표 탈것이자, 용차로 애용되는 검붉거나 검푸르거나 검누렇거나 한 검은 색상 계열의 주룡(??) 드라코들이 키켁대며 서로 뛰놀고 장난질을 친다.
지상과 지저와 해저에서 천공까지 아우르며, 아계들까지 포함하는 지구와 유사한 청성 테라.
푸른 별에서 첫 번째로 탄생한 수백만에 달하는 숱한 신들이 나서 별의 피조물들을 창조한 신창세기(??世?) 당시, 대지를 부수고 창공을 할퀴며 용족을 창조하던 용신 바하무트의 떨어져 나간 발톱들에서 최초의 진화를 이룬 용들.
세계에 최초로 생겨난 용들의 모습에서, 그 어떤 진화도 이루지 않고 도태된 원형을 보존한 모습의 원시룡들.
공룡 벨로시랩터를 연상시키는 형상. 마계에 독자적인 적응을 이룬 아종들.
용족의 분류라고는 하나 서식지가 매우 폭넓어, 중간계가 아닌 아계들에서도 발견된다.
주룡들이 뛰노는 현장 곁의 용암이 흐르는 냇가에서는, 마그마 피시들이 간헐적으로 치솟아 지나가는 존재들에게 용암탄과 용암줄기를 내쏜다.
그런 용암어들을 낚기 위해, 칠색의 환경에 완벽한 은닉이 가능한 레인보우 카멜레온이 오색으로 발광하며 혀를 날름대면서 후방에서 슬금슬금 포복한다.
시끄러운 포효가 울리는 측면의 언덕에서는, 뿔이 달린 헬 래빗들이 세 갈래로 갈라지는 입에서 산성혈을 내뿜으며 주둥이에서 불길을 내쏘는 헬하운드들에 버글버글 달라붙으며 맞서 싸우고 있다.
지옥토들과 지옥견들이 사투를 벌이는 현장 너머에는 말 그대로 개만한 쥐들인 메가 래트들이 지축을 들썩대면서 질주한다.
대지를 메울 만큼 거대하게 질주하는 군체의 한가운데에 돌연 싱크홀이 생겨나 질주하는 쥐떼를 모조리 빨아들인다.
사냥감을 자신의 영역으로 포식하는 대지형 마수. 메이즈 이터.
곁의 핏물의 늪지인 혈소(血?)로부터 기어나온 블라드 슬라임이, 옆에서 벌어지는 학살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부정형의 몸체를 진동해 치명적인 산성의 핏방울들을 흩뿌린다.
돌연 쩌렁한 폭성이 대지에 치솟는다. 지표를 솟구치며 거대하게 상승한 직경 3미터에 전장 30미터도 넘어갈 듯한 헬 웜이 땅울림을 자아내며 질주한다.
불타는 궤적을 생성하며 내달리던 마계의 들소들인 블레이즈 버펄로들이 치닫는 포식자에 놀라 뿔뿔이 흩어진다.
해산의 기회를 노렸다는 듯이 코끼리만한 초대형 늑대, 메갈로 와그가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한 마리 불소를 잽싸게 낚아챈다.
허벅지처럼 커다란 송곳니를 숨통에 박으려는 순간, 억세고 거뭇한 손아귀가 먹잇감을 낚아챈다.
대랑의 송곳니에 스친 자상이 순식간에 재생되는 통나무처럼 두껍고 굵은 팔뚝, 메갈로 와그의 동공에 반사되는 나이트 트롤의 비웃음, 두 포식자들이 이를 맞대고 사납게 포효한다.
흑요석처럼 빛나는 눈이 여섯 개나 돋은 섀도 디어가 숲가에서 포식자들의 싸움을 주의 깊게 흘겨본다.
나무들에 드리워진 그림자마다 거뭇하게 몸을 일렁이며 이동, 주변에 포식자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상어이빨로 발치에 자라난 금속성의 잔디를 짓씹는다.
그나마 조용한 숲과 인접한 풀덤불에는, 강철조차 종잇장처럼 꿰뚫는 쇠가시들을 곤두세운 말과 비슷한 크기의 데스 헤지호그가 가시투성이의 몸을 위용 넘치게 철커덕대며 덤불과 수풀의 사이를 지나친다.
돌연 숲이 쓰러지며 둘레 2미터는 될 듯한 철구의 박력적인 도탄이 일어난다. 자그마한 숲 하나를 철거할 충격력.
전봇대처럼 딱딱한 마계의 강목을 수십 개나 연이어 쓰러뜨린 곰만한 메탈 아르마딜로가 말았던 몸을 편다. 그러고는 앞발로 나무들을 하나하나 짚으며 제 보금자리에 쓸 적당한 재목을 신중하게 골라낸다.
쇳소리들이 울려 퍼지는 다른 숲가에는 대기를 헤엄치는 육상어들인 어비스 샤크와 딥 피라냐들이 트럭만한 멧돼지인 점보 워트호그를 습격하고 있다.
숲의 깊숙한 공간에는 인면에 커다란 귓바퀴들이 달린 촌촌들이 귀를 맞부딪치며 요사스럽게 날아다닌다.
바로 위의 숲머리에서 뱀파이어 배트들을 가신처럼 휘감은 자이언트 배트가 밤의 군주처럼 우아하게 휘가른다.
보다 아득한 상공에는 마계 자생종인 다크 와이번들이 쇠처럼 날카로운 파열음을 내지르며 붉은 창공을 횡단한다.
마지막으로 모든 풍광들로부터 까마득한 언덕에는, 밤의 요정인 밴시가 하늘로 기나긴 토사혈을 내뿜는 카랑한 하울링으로 마경의 대미를 장식한다.
마경의 역동적으로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에 대한 찬사였다.
“모두 금일의 타겟이 아니지.”
마계는 세계의 모든 마물들과 마수들의 원종들이 집결한 원산지.
이쪽에 있는 마물들과 마수들이 원래 모습이며, 지상에 있는 마물들과 마수들은 엄청난 약화판이라 보면 되겠다.
나의 목표는 킹 코카트리스.
눈에서 석화광선을 내쏘거나 석화광을 방사해, 시력이 노출되면 즉각적으로 석화시키고 피부가 노출되면 노출부부터 점차적으로 석화시키는 마수.
녀석은 석안(??)보다 더욱 흉악한 화석안(火??)을 지닌 강종으로, 눈이 마주친 존재들을 돌로 굳힌 것도 모자라 불태워 숯덩이로 만든다.
당연히 주변에는 먼저 조각상이 된 뒤에 초고열의 화염에 터진 화석들과 사그라진 숯가루들이 가득하다.
석화와 동시에 방화까지 저지르는 녀석에 대비가 없다면 엄두도 내서는 안 되지만, 내게는 신체는 물론이거니와 눈까지 덮을 수 있는 능력이 있기에 통하지 않는다.
볏은 허접한 살조각이 아니라 진짜 찬란한 금속성의 왕관이며, 훌륭한 마력성을 띄고 있기에 최소가 1천 골디아를 호가.
수천 개도 넘어갈 깃털은 개당 1실키아, 한화로 1천 원씩 쳐주기에 매우 쏠쏠하다.
석화에 면역이 있는 일족이 아닌 이상 어지간히 강한 마족들조차 피한다.
내게는 훌륭한 금전 공급원일 뿐인 닭대가리다.
특이하게도 킹 코카트리스는 왕관에 박힌 마석에 염파를 담아 울음소리로 발하는 특성을 지녔는데, 대략 ‘이 새끼 약함!’이라는 울음소리를 발하면 주변의 킹 코카트리스들이 모조리 몰려와 다굴을 놓는 상황이 벌어지고, ‘씨발! 좆됐다!’라는 울음소리를 발하면 싸그리 귀신같이 도망가서 아예 마경의 외곽까지 달아날 정도.
참 강약약강의 골때리는 닭대가리 새끼들이 아니라 할 수 없다.
살고자 하는 본능이라지만.
만약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면 수렵은 종친 셈이다.
차라리 몇 놈을 동시에 상대하는 경우보다도 최악이다.
킹 코카트리스를 사냥할 정도로 깡 좋은 마물이나 마수가 노리기 전에, 내가 먼저 잡아 버리는 수밖에.
결국 킹 코카트리스를 못 찾는다면 엠퍼러 바실리스크.
지상의 아종들은 장난처럼 우습게 보일 정도로 흉악하고 위험한 마수들이다.
“이제 곧 때인가…….”
고개를 들춰 하늘을 보았다.
검은 해가 색을 바꾸어 가며 붉은 달이 된다.
두근대는 심장처럼 어서 보고 싶다는 듯.
밤이 되면 한없이 붉은 적월이 발광하며, 칠흑처럼 시커먼 밤하늘에 핏빛처럼 진한 별빛들이 점멸한다.
루나 루브라가 타오르며 안티 스텔라가 반짝이는 마계의 요악스러운 밤이 온다.
가뭄에 콩 나듯이 드문드문 띄던 마족들도 부쩍 줄어들었다.
정말 밤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내가 나아가는 곳과 반대편으로 빠져나가는 박쥐 날개의 인영들이 끊임없이 스친다.
개중 몇은 아득한 음성으로 지상에서 걸어가는 나를 향해 저게 뭐지 식으로 손가락짓도 한다.
저놈 뭐야? 어이, 그 앞은 지옥이다. 혹시 자살하러 가나요!?
온갖 호기심과 우려를 담은 소리들이 들려오나 우직하게 나아간다.
큰 몫을 잡으려면 위험한 곳에 들어가야 하는 법이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호랑이를 잡을 수 있다.
리스크가 있어야 리워드도 있는 법이다.
얻고자 한다면, 나아갈 수밖에.
어차피 오늘 수렵과 채집은 글렀다.
이제 겨우 마경의 초입에 들어섰을 뿐이다.
오늘은 밤을 지새우고, 여명과 동시에 마술로 중부까지 이동해 채집과 수렵을 실시하는 편이 용이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그저 걸어온 이유는 여러 이유가 있다.
혹시나 금일의 마경에는 변수의 요소가 있을지 대략적인 분위기를 살피기 위해.
간만에 나온 외출이라 좀 느긋하게 걷고 싶어서.
이제 고향이 된 곳의 대자연을 느끼고 싶어서.
“정말 빠르네…….”
주변이 매우 빠르게 어둑해지고 있다.
컴컴한 땅거미가 내려앉았다.
마치 하늘의 붉은 달로 대체되고 있는 천구가 사위에 어둠을 흩뿌리기라도 하듯.
밤의 마경에서 발산되고 있는 마기의 기운이 엄청나게 강해지고 있다.
여기저기에서 붉은 안광들이 번득이기 시작한다.
그 모습이 흡사 빨간 반딧불들이 대지라는 이름의 조명들에 아득히 켜져 나가는 것 같다.
어둠에의 진입과 동시에 나의 눈동자에서도 붉은 눈꼬리들이 타올라 핏빛 비전을 제공했다.
낮에는 포착되지 않던 기묘한 움직임들이 땅과 하늘에서 조금씩 일렁이기 시작한다.
“서둘러야겠군…….”
기묘한 이형체들이 숲에서 걸어 나오고, 기괴한 괴물체들이 물에서 흘러나오며 땅에서 기어나온다.
초 단위로 어두워지고 있는 것 같다.
거의 흑색에 가까울 정도로 천지가 어두워진 상황에서 나는 재빠르게 행동했다.
지면을 디딘 디딤발에 즉각 마력을 주입.
지반에의 선명한 마력의 관통과 함께 거칠게 후려찬 구둣발로 흙바닥을 파헤쳤다.
파워 부츠와 마찬가지의 발길질에 파헤쳐진 흙더미가 쑥쑥 치솟는다.
단 몇 번만의 발길질에 삽으로 가득 퍼도 부족할 흙덩어리들을 퍼내고는 들어갈 크기의 참호의 확보.
포대에 미리 챙긴 시험관들을 꺼내 코르크 마개를 따고는 마물향을 구덩이의 내부와 입구 주변에 둥글게 흩뿌렸다.
용액의 투여를 마치고는 나의 키에 딱 맞는 구덩이의 내부에 뛰어들어 지반에 손바닥을 대고 고정화의 마력을 발동.
주변이 돌처럼 딱딱한 경화 현상을 일으키는 것을 보며, 구덩이 너머로 고개만 내밀고는 주변의 흩어진 흙덩이들을 염동력으로 도로 끌어당겨 위장을 실시한다.
마찬가지로 고정화가 적용된 흙덩이들이 가느다란 숨구멍만 남기고 밤하늘을 몽땅 가리는 것을 보며, 안에서 고정화를 구덩이 전체에 한 번 더 발동.
이것으로 내외부 지반의 강화 작업이 완료되었다.
아무리 무수한 발길들이 짓밟고 지나가도 절대 무너지지 않고 버티게 고정한다.
순식간에 어둑해진 구덩이에서 붉은 야간시만이 번득이는 속에, 포대는 등허리에 받치며 팔짱을 끼고는 몸을 웅크린다.
그러고는 맥박을 떨어트려 옅게 호흡하는 동면 상태에 돌입했다.
어차피 호문쿨루스는 숙주가 된 육체를 본래의 형질에서 한계까지 개변해 새롭게 거듭난 존재라, 육체의 신진대사도 매우 다르며 조절도 자유롭다.
7일 정도는 자지 않고 굶어도 끄떡없다.나는 한때 인간의 흔적만 남은 형태일 뿐이다.
어딘가에서 육중한 발걸음들이 내달려 오고는 나의 은신처에 콧잔등들을 드민다.
한참을 거칠게 콧김을 내뿜으며 들이키고는, 이내 볼일이 없다는 듯이 크릉대고는 멀리 뛰어가 버렸다.
이미 세계의 주인들의 것이 아니게 되어 버린 마경에, 끔찍한 비명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캬아아아아아아악────────!!!!!!”
“크르르르르르르───────!!!!!!”
“쿠허어어어어──────!!!!!!”
나의 위로 수천, 수만도 넘어가는 인간 아닌 것들의 발소리들이 마구 질주했다.
지축이 들썩인다. 정확히는 마평원 전체가 들썩이고 있었다.
세계의 폭주에 짓눌리는 나의 심장도 들썩이는 것 같았다.
따스한 피가 흐르며 뛰는 심장을 가진 존재들이라면, 기필코 심혼을 찢어발기는 끔찍한 흉성들이 빗발친다.
몇십 번이 넘게 경청했어도 결코 익숙해질 수 없을 지옥의 멜로디였다.
이것이 마족들마저 마경의 밤을 기피하는 이유다.
끝없이 폭주하는 물량에는 강자라도 장사가 없으니까.
비선공 성향의 마물들과 마수들도 외부의 모든 것들에 살의를 드러내는 흉물들과 흉수들로 돌변하기에 버틸 수가 없다.
몇십, 몇백, 몇천을 복속해 봐야 복속되지 않은 수만, 수십만, 수백만의 녀석들이 날뛰는 앞에는 아주 짧은 보호막을 제공하고는 함께 찢길 뿐이다.
오직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잔혹하면서도 아름다운 마계의 생태였다.
“리나 씨…….”
밤이 되면 발생하는 몬스터 웨이브에 날뛰는 지옥의 피조물들의 끝도 없는 스크림이 빗발친다.
진정한 생지옥이 된 마경에서 홀로 보내는 밤.
하지만 외롭지는 않다. 당연히 무섭지도 않다.
수없는 사선을 넘어서는 돌파를 통해 나는 완전히 익숙화되었기에.
한 걸음만 나가도 즉각 죽음이 기다리는 이 요새가 아늑한 안마당처럼 느껴진다.
전생 당시에 내게 주어진 것은 얄팍한 치트 하나와, 이쪽에서 그럭저럭 통하는 유창한 언어.
내가 왜 이런 세계에 전생해서, 생고생을 사서 해야 하나 참 많이 좌절했었다.
마족들은 뿔과 날개와 꼬리에 다양한 피부색을 지닌 인간형들에, 온갖 비인간형들도 있다곤 해도, 기본적인 얼굴들의 베이스는 서양인들.
전생 초기에는 흄의 생김새를, 그것도 서방인과는 확연히 틀린 동방인의 외형을 했으니 참으로 해코지를 많이 당했다.
재미있는 동네북으로 전락해 가는 곳마다 손가락질과 폭언 및 욕설은 일쑤에, 이유조차 없이 직접 손찌검마저 가해 오는 녀석들로부터 피해 다니고 숨어 사는 것이 일상.
아마 전국 찐따 궐기회를 벌여 누가 가장 찌질했는가 해도 경합을 벌여도 내가 가볍게 대상은 먹지 않았을까.
기구하고도 비참했다.
반죽음 상태의 육체를 짓끌고 복귀하면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것이 일상.
나를 무릎에 눕히고, 내가 너를 더 강하게 만들어 주지 못했다고 사과하는 리나 씨를 보며 나는 다짐했다.
온갖 귀한 포션들을 내게 아낌없이 쏟아붓는 그녀의 눈물을 맞으며.
제발 죽으면 안 돼라며 서럽게 흐느끼는 그녀의 호소를 들으며.
무슨 일이 생겨도 강해지기로. 다시는 그녀를 울리지 않기로.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나를 위해 울어 주는 그녀를 위해 강해지기로.
무조건 살아남고 강해지기로.
그렇게 현재의 내가 탄생했다.
통상적인 마족은 몇이 덤비더라도 가볍게 상대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그간의 피나는 노력과 분투의 쟁취였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피눈물을 흘리며 분투했는지는, 이 세상에서 나와 마신만이 안다.아마 미친 폭발 젖통 여신까지 포함해서.
나는 등에 기대고 있던 포대를 앞으로 빼내 끌어안았다.
이게 지금 공방에서 날 생각하며 홀로 자고 있을 리나 씨라고 생각하며.
나를 생각하며 제대로 잠도 이루고 있지 못할 그녀를 진심으로 우려하며.
“곧, 돌아갑니다…….”
나는 편안히 눈을 감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