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 〉 알케믹 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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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집사(???).
검은 머리와 검은 눈동자에, 복장도 검기에 내게 붙은 첫 번째 이명이다.
마계에서 시초부터, 지금까지도 언제나 유행의 트렌드인 올 블랙.
완벽한 칼각을 맞춘 슈트는 완연한 집사의 자세.
그 어떤 불결, 일말의 오점도 허용하지 않는다.
상의의 왼쪽 윗주머니에는 에우포리아의 간판인 금장미가 자수되어 있다.
좌측 라펠과 윗주머니의 사이에도 마찬가지로 금줄을 늘어트렸다.
셔츠와 타이는 화이트 앤드 블랙.
전생 다음 날에 리나 씨가 나의 손목을 잡아끌며 시내의 의류점에 데려가고는, 나의 핏에 완전히 세팅한 맞춤 정장.
악마 재봉사가 악마기를 주입한 마술실로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재봉한 옷감은, 어둠 속에서 더욱 검게 빛난다.
명망 드높은 악마 재봉사가 정성으로 제작한 명품이기에, 강철이 두부처럼 물러 보일 정도의 방호력을 지녔다.
부가적으로 걸린 경화의 술식과 강화의 술식이 마력적인 공격들에 대해서도 지대한 방어력을 제공.
방어력과 신축성이라는 서로 양립할 수 없는 특성을 지닌다.
방호되지 못하는 머리로 떨어지는 공격은 팔목이 받아낸다.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
“아다마스.”
폰스어로 단단한 강철, 무적, 길들일 수 없음, 정복할 수 없음의 의미.
4,500골디아. 한화로 4,500만 원.
현재 에우포리아의 월수입과 연수입의 기준으로도, 전생의 기준으로도, 결코 적지 않은 거금을 즉석으로 지불하며 나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한 가격.
통이 커야 너에게 통이 크게 사랑받지 않겠냐고.
당시 그녀가 내게 했던 대답.
“저는 당신의 기사입니다.”
나의 무장이며 복장이자, 근무복이며 전투복이다.
한 치의 구겨짐도 없다.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다.한 치의 빈틈도 없다.
처음 봤을 뿐인 일방적인 관계였다고는 해도.
어디까지나 주인과 집사의 한없이 수직적인 관계를 암시했어도.
아낌없이 거금을 지른 그녀.
그것이 내가 그녀에게 급격히 빠져든 이유였다.영혼까지 산산이 불살라져도 좋을.
그대로 침대를 누벼도 될 정도로 감각이 한없이 편안해서.내게 이 옷을 선사한 당사자의 사랑이 느껴져서.
이따금은 휴일에도 착용하고는 하던 버릇이, 따로 환복할 필요도 없는 탁월한 선택이 되었다.
“곧 도착인가….”
새하얀 예식용 장갑을 낀 왼손으로 왼쪽 눈의 모노클을 올려 쓰며 마력을 주입했다.
정장과 세트를 이루는 악력 강화가 부여된 파워 글러브.
쭉 걸어오던 좁은 숲길이 본격적으로 트이며 좌우로 드넓어지는 광경을, 아득한 고배율의 망원경을 장착하고 보는 것처럼 선명한 시선을 제공한다.
평시에는 아무 시력도 없는 평범한 유리알이지만, 시력을 집중해 안력을 돋우면 착용자의 마력에 감응해 아득한 원거리까지 볼 수 있는 원견(??)의 마도구.
“매직 모노클.”
카오스력 4323년 적흑의 월 창암의 주 오만의 요일.
중간계 기준. 아델렌력 1441년 4월 1일.
나는 35회째의 여정에 올랐다.
약 3시간 정도 걸어왔다.
붉은 하늘의 검은 구름들 사이에서, 시커멓게 타오르던 태양이 새빨갛게 물들고 있다.
마계의 밤은 매우 빨리 찾아온다.
힘이 없는 나약한 존재들은 조금도 버틸 수 없을 정도로, 더없이 잔혹하고도 끔찍한 밤이.
도착과 동시에 얼마 되지 않아 야영을 준비해야 될 것이다.
마계에서는 생존이라는 의미에 가까운 야영을.
매우 뒤늦게 시작한 오후의 퀘스트이기에, 투철하고도 민첩한 준비가 필요했다.
정장과 최후의 세트를 이루는 플레인 토는 굴강과 질주의 효과가 걸려 있다.
하루 종일 행군해도 결코 피로하지 않고 발에 비단결을 감은 것처럼 가볍다.
스피드 부츠를 신은 것처럼 초고속의 질주도 가능하다.
파워 부츠와 마찬가지로 강력한 도약과 물체의 파쇄도 가능하다.
오른쪽 어깨에 걸메여 터덜대는 포대의 감각을 느끼며 조금 구둣발을 빨리했다.
“곧 도달인가….”
아득한 목소리들과 함께 홰치는 소성에 고개를 올렸다.
약 100미터 정도 상공에 마족 대여섯의 무리가 편대를 이루어 날아가고 있었다.
박쥐 날개들을 자유롭게 펄럭이며 다양한 곡예 비행들을 선보이다 까마득한 하늘선으로 이내 멀어진다.
하늘을 날 수도 있는 이쪽 세계의 주민들.
그닥 부럽지는 않다.
나의 근본은 인간이며 저들과 육체와 정신도 다를 뿐이니까.
스스로는 땅개라 자조하는 게 아니라, 마음만 먹으면 마법으로 얼마든지 날아오를 수도 있고.
진즉에 숲길이 끝난 본격적인 돌입과 함께 전방의 시선이 확 펼쳐진다.
좌우로 시선을 돌리고, 전방을 최대한 주시해도, 너무도 드넓어 차마 담을 수 없는 붉은 평원의 정경이 시야를 압도한다.
마평원 제르디아.
제6마군도 룩스리아. 마계 북부에 위치한 몽마여왕 릴리스의 권역.
수천 종의 마물들과 수백 종의 마수들이 살아가는 마경.
범람 방지와 개체수 조절을 빌미로 학살이 남발하는 마계에서도, 보기 드문 독자적인 생태계를 구축한 천혜의 보고다.
외곽일수록 내부에서의 경쟁에 밀린 약자들이 머무르고, 안으로 들어갈수록 힘을 증명하는 강자들이 서식하는 구조이다.
대지와 천공과 세계에 충만한 마기가, 마물과 마수의 끝없는 증식을 이루는 마경의 전형.
핏빛처럼 붉은 잔디가 깔린 대지 한복판으로 들어서는 나의 주변으로는, 인간이 아닌 것들이 격전을 벌이는 지옥과 같은 메아리가 빗발쳤다.
뿔과 날개와 꼬리를 지닌 인영들. 혹은 완전히 동떨어진 이형들.
박쥐 날개들을 펄럭이며 활강하고 질주하는 마족들이, 천지를 집어삼킬 듯이 밀려드는 마물들과 마수들과 싸우고 있었다.
“햐햐햐햐햣!!! 죽엇! 죽엇! 죽엇! 죽어어어엇!!!”
“으라아아아압! 500마리째 돌파!”
“놓치지 말고 구석으로 몰아! 부모고 새끼고 싸그리 몰살해 공포를 각인시켜 주잔 말이다!”
“이 몸의 어둡고도 타오르는 마검의 제물로 삼아 주마! 비천하고 하찮은 마물이여!”
“꺄하하핫!!! 남은 떨거지들도 정리 들어갈게염~!”
인간이 아닌 것들이 내지르는 비명들 속에, 거칠고 사나운 함성들이 포성처럼 떠들썩하게 터져 나온다.
마족들과 악마들의 마기사, 마검사, 마창술사, 마부사, 마편사, 마투사들이 현란한 움직임을 휘가른다.
마궁사, 마석궁사, 온갖 마술사들의 난사가 인간을 아득할 정도로 뛰어넘는 존재들의 윤무를 더했다.
소드, 스피어, 액스, 위프, 너클, 클로, 할버드, 해머, 사이드의 온갖 장병기들이 인지를 초월한 속도와 운동성으로 빗발치며, 마물들과 마수들의 피와 살을 가르고 절명을 안겨 줬다.
화살들과 마탄들과 마법들이 날뛰는 것들을 공통된 고슴도치들로 만들며, 죽음으로 들어가기 싫어 발악하는 것들의 명줄을 정지시킨다.
상공과 지상에 거리를 벌리고 부유한 마족들이 아득하게 쏟아내는 마탄들과 마력파들이, 해일처럼 거대한 마물들과 마수들의 무리를 끊임없이 갈아 버리고 또 갈아 버렸다.
5급에서 7급 사이의 마법 무기들이 발하는 형형색색의 마력광에 눈부신 빛의 폭풍이 찾아든 것 같았다.
마족들만이 다룰 수 있는 고유의 기운.
특정한 형태를 이룬 마기가 마족들의 의지에 발해 끓어오르면서 넘쳐오르고, 보다 드높으면서도 심대한 악마들의 악마기들이 파괴력을 더했다.
하나하나가 지상에 나가면 마물을 그러모아 군림하는 재앙적 존재들이, 무리가 되어 집단적인 재해를 선사한다.
지상과 마계의 파워 밸런스 차이는 어린이와 어른과 같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이는 현장이었다.
“크르으! 마수 주제에 건방져엇!”
“누가 이 푸른 청염귀! 슈레이칼의 화마창의 청염에 감히 대적하겠는가! 용기가 있는 쓰레기들은 나서라!”
“나의 흑염룡에 불타올라라! 트루 다크니스 파이어!”
“발끝부터 머리끝까지의 전신을 조각조각 박살내 주마!”
“더욱 처절한 고통의 비명을 내지르거라! 그것이 이 몸의 유희일지어니!”
태생과 동시에 선천적인 악의 꽃들.
답이 없는 나쁜 놈들. 기저 깊은 곳에서 오글거리며 흘러나오며 감출 수가 없는 중2병들. 그리고 유해 조수들.
영락없는 악과 악의 싸움이다.
힘세고 강한 땅이다 보니, 살아가는 거주민들과 생물들도 죄다 저 모양이다.
이젠 완전히 익숙해져서 짜증난다기엔 지루하기만 할 뿐이다.
지상에서의 마물과 마수는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존재들에 있어 크나큰 위협.
마족은 정반대다.
마족은 마물과 마수의 검이, 마물과 마수는 마족의 방패가 되리라는 마신의 맹약에 의거해, 마물과 마수를 복속해 수족처럼 부릴 수까지 있다.
그럼에도 마기가 넘쳐나는 이곳에는 폭발적인 번식을 통해서나 자연적인 발생으로 변종과 신종이 끝없이 탄생하며, 적절한 개체수 조절은 필요하다.
금침의 풀려 나오는 실낱만큼이나 기나긴 마계사에서, 수많은 마왕들을 거치며 개편을 불사하는 마왕군이 상시 직면하는 가장 커다란 과업이기도 하다.
토끼는 인간에 위협이 되지 못하나, 전생의 어느 국가에서는 국토를 잠식한 재해로 돌변한 것처럼.
이런 정기적인 토벌전이 아닌 방대한 규모의 몬스터 웨이브는 필히 마왕군이 나설 수밖에 없다.
사실상 조련사들이 애완견들을 격렬히 줘패고 있는 장면이다.
힘세고 강한 나날이 일상인 마계의 흔한 풍경이었다.
“어엇!? 당신은!? 안녀어어엉~! 집사! 오랜만이야아아아~!!!”
지옥 한복판과도 같은 흉성들을 꿰뚫고 귓전을 간지럽히는 청아한 미성.
격동적으로 움직이는 몸부림들 속에서 홀로 정지한 움직임.
산양이나 염소나 황소처럼 동물성이 느껴지는 마족들의 뿔과 달리, 아크릴처럼 한없이 매끈한 질감의 붉은 뿔들.
투기를 두른 손으로 가냘픈 제 몸의 몇 곱절은 될 메갈로 와그를 갓 잡았다.
코끼리만한 초대형 늑대를 가벼운 인형처럼 훌쩍 떠넘긴 적각의 임프.
활짝 웃는 여자 임프가 나에게 팔이 어깨에서 뽑힐 지경으로 세차게 휘둘러댔다.
나는 마족들을 그닥 좋아하지 않기에 무뚝뚝한 고갯짓으로 답례했다.
전생 이후 끝없는 좌절과 한없는 절망을 내게 안긴 주범들.
녀석들과의 악연을 하나하나 열거하자면, 두툼한 공책을 몽땅 채우고도 넘어갈 정도로 많다.
하지만 이제는 좌절에서 벗어났다.
어엿한 마계인으로서, 우뚝 설 수 있을 정도로 강해졌기 때문이다.
모든 전투의 동작을 멈춘 그녀는 격렬함의 한가운데에서 한동안이나 그대로 나를 빤히 바라봤다.
“에헤헤헤헷~! 피와 내장은 언제나 뒤덮여도 따스하네에!”
“큰 것들은 별로예요! 작은 것들의 앙증맞은 비명으으으을!!!”
“뜨허엉~! 저기에 쫄은 것들이 집단으로 탈주극을 벌이고 있엉!”
“단 한 마리도 놓치지 말고 몰살하십시오! 그것이 학살의 쾌락입니다!”
“이렇게 시시해야 길드에 가져가도 돈이 될 게 없잖아아아아아아아악!!!”
현장의 전원이 마왕군이다.
다양한 사복들을 입고, 제멋대로의 무장들을 갖췄을 뿐이다.
현재는 유희와 소일거리인 모험가들의 신분들로서.
마계의 어디에서나 마주치는 마족도 마왕군이다.
마족은 출생과 동시에 전사의 자질을 감평해, 죽음의 순간까지 군복무를 이행하는 전투종족이자 군대민족이기에.
마계에서 천시받는 직종인 농부, 상인, 청소부, 기술자, 요리사, 대장장이, 학자 등을 도맡으며, 마계의 인프라와 시스템의 유지를 위한 생산 활동에 종사하는 기형이나 장애를 지닌 장애마족.
폐마족들이 아닌 이상.
정신병동을 돌파하는 전문의가 된 느낌이다.
폭력과 학살이 빗발치는 아수라장의 한복판을 홀가분한 도인처럼 가로지르는 내게 몇몇 시선들이 꽂혔다.
의아함의 고갯짓들이나 손가락질들이 뒤따랐으나, 이내 광소들을 터뜨리며 주변에 가득한 광기의 현장에 뛰어들었다.
나는 알케미스트의 퀘스트를 향해 오로지 곧게 나아갔다.
아직까지도 나를 응시하고 있는 임프의 시선이 뒤통수에 뚫어지게 꽂히고 있었다.
아마도 한동안이나 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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