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 알케믹 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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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션이란 생명의 물.
여러 갈래로 세분화되는 연금술에서도 가장 상징되는 기적.
자연의 은혜를 머금은 풍부한 원천들과, 술자의 마나의 조합으로 방대한 용법을 지닌 물약들을 만들어낸다.
포션은 말 그대로 생명수.
궁극에 도달한 대연금술사만이 만드는 생명의 물을 한없이 지향하는 명칭.
죽은 자마저 되살리는 죽음의 물과 융화를 이루는 지고의 기적.
언젠가 그 경지에 도달할 수 있기를 꿈꾸면서.
플라스크 앞에서 밤을 새워 온갖 배합을 연구하면서.
생명이라면 필수적으로 근원이 되는 물을 이용해, 진리에 도달하겠다는 연금술사들의 집념을 옅볼 수 있는 것이다.
근원과 진리를 탐구하는 수많은 유형의 마술사들에서도, 매우 독창적이면서 과연 이질적이라고 볼 수 있겠다.
“퀘스트라… 연금술사가 필드에서 재료들과 소재들을 확보하는 사명…. 알케믹 퀘스트 말이지. 지난번에 나간 게 언제였어?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나?”
강자가 강한 포션을 만들어내는 건 우연도 아닌 그냥 법칙이다.
결코 깨질 수도 없으며 변할 수도 없는 절대적 진리.
그 간격을 넘는 것이, 누구도 아직 발견하지 못한 약초와 재료와 소재가 궁극의 융화를 이루는 배합식의 완성이다.
그래서 연금술사들이 희귀한 약초들을 물색하며, 배합식을 찾아내는 데에 목을 매는 것이고.
요리사들이 레시피에 목을 매다는 것과 비슷한 비유랄까?
절대 실력으로 뛰어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을, 기막힌 참고서로써 뛰어넘는다.
연금술사들의 사이에서는 희귀한 배합식들이 거액의 웃돈을 주고도 구하지 못하는 것이 실상이자 웃지 못할 현실이고.
당연히 배합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엉뚱한 것이 튀어나오는 엉터리이자 사기들도 판을 친다.
실력도, 재력도 갖추지 못한 연금술사가 출세하기 위해 배합식의 확보는 필승의 법칙이었다.
“그리고, 비품들의 관리에도 주의를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조금만 더 조심하면 훨씬 오래 쓸 수 있는 것을, 구태여 남들의 배를 불리는 일을 해야 하는 겁니까? 매월 도구상들과 물품상들로부터 실험 도구들과 필수 비품들의 공수에 소진되는 비용이 얼마인지 아십니까? 우리의 수익은 늘릴 기회를 만들고, 상대가 수익을 늘릴 기회는 주지 않는 것이 불변의 순이익이거늘.”
“으휴~! 이 잔소리쟁이 집사!”
“이게 다 애정이 있어서 하는 말입니다. 정녕 싫어하면 말조차 붙이지 않지요. 몸에 좋은 약은 쓴 법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약 만들고 약 팔기 아닙니까? 달콤한 꿀은 과용해봤자 이만 썩을 뿐입니다.”
귀를 틀어막은 그녀가 혀를 쭉 빼물었다.
이렇게나 말해도 며칠만 있으면 말끔하게 리셋하는 참 편한 두뇌 구조의 주인이니 어쩔 수가 없다.
생각날 때마다 뇌가 마모될 정도로 퍼붓는 수밖에.
돌연 그녀의 눈이 젖어들었다.
“또…… 위험한 곳으로 가는 거야?”
“20일 정도 공방에 틀어박혔지요. 몸을 풀 때가 되었다는 겁니다. 다녀오는 김에 필요한 재료들과 소재들을 확보하며, 기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도 싸그리 쓸어 오겠습니다. 맡겨 주시기를. 비품들에 관해서는 10일치 정도는 여유를 보이고 있으나, 알크레인의 도구상들과 물품상들에 추가적인 주문을 넣어 두고 가겠습니다.”
나는 간략적으로 마친 계산을 헤아리면서 의지를 전달했다.
그녀의 눈이 더욱 젖어들었다.
“……너가 가고 나서는, 나 혼자 밤을 외롭게 보내라구? 내가 그걸, 허가할 것 같아?”
“이전까지는 혼자 잘 사셨던 분이 왜 이러실까? 그럼 제가 공방에 틀어박혀서 연구할 테니 직접 퀘스트 뛰실래요? 여지껏 몇십 번도 넘게 했던 것을, 뭘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그렇지만 혼자 자는 것은 외로운걸. 나는 너가 없으면 못 자는 몸이 되어 버렸어.”
“옷장과 서랍장에 가득한 자위용 기구들로 스스로를 위로하시라구요. 저의 손으로 직접 그것들을 사용해 드릴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몽마면서 그것들은 또 왜 친숙하지 않으시려 들까.”
“알면서 왜 그럴까? 그것들이 너의 물건과 비교가 되리라 생각해? 함께 도달한 절정의 순간에는, 끈적한 물을 밑도 끝도 없이 콸콸 쏟아내며 가버리게 해주는 것도 아닌데. 조금 질척대도 나 혼자만 쏟아내게 생겼어.”
“아, 그러세요.”
“나가기 전에 몇 발 빼줘도 돼?”
“곤란합니다. 오늘 퀘스트 못 나갑니다.”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길이 한없이 끈덕지게 젖어들었다.
남녀가 한 집에 살면 알고 싶지 않았던 것까지 알게 되는 법이다.
어느 시점에 나는 전생자라고 겸사겸사 밝혀 두었다.
당연히 그녀는 대경했다. 하지만 점차적으로 수긍했다.
그에 그녀는 답변했다.
이세계들로부터 이쪽 세계로 넘어온 전생자들은, 각 종족들에 내려온다는 전설의 전사로 치부된다고.
어느 시대, 어떤 종족이든, 탄생했을 시에는 반드시 역사에 잊지 못할 정도로 커다란 흔적을 새겼다고.
맞는 말이긴 하다.
나는 음욕의 여신 바빌론으로부터 치트라고까지 하는 능력을 하사받았으니까.
비밀을 원하면 먼저 비밀을 꺼내야 하는 법이다.
그녀는 원체 마음에 솔직하기에, 이중적이며 속을 알 수 없는 마족들과 다르게 딱히 비밀도 없는 여자인 듯했지만.
나의 생명을 구원한 여자.
내가 사랑하는 여자. 나를 사랑하는 여자.
나의 적법한 여주인. 리나 녹스 에파네 페를렌데.
나는 확연한 감정을 담아 말했다.
“너는 그러니까 기다리고 있어. 남자는 결코 자신의 여자를 위험한 곳에 보내지 않는다. 필요한 모든 것들을 내가 구해 올 테니까.”
“떽! 어딜 집사가 주인에게 반말질인데에!? 넌 내 조수이자 집사라구우!”
발끈해서는 발등을 들춰 나의 고간을 가볍게 걷어차는 그녀.
일순간 상기에 치켜뜨이는 눈빛을 놓치지 않았다.
명백한 모순의 반응이다.
“일상에서나 침대에서나 집요하게 거기를 노리시네요? 그러다 문제가 생기면 누가 손해일 텐데?”
“아…… 그건 절대 안 되지. 어쨌든 나는 지크 너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렸거든.”
“그러니까 기다리시기를. 모든 것들을 구해 오겠습니다.”
그녀의 눈망울이 한없는 이채를 띄었다.
“호문쿨루스는 잘 크고 있구?”
“녀석이 저를 감지하는 것이 느껴지는데, 영 반응이 미약해요. 수줍어하는 건가?”
“그런데, 호문쿨루스가 호문쿨루스를 배양해서 무엇을 하겠다는 거야?”
“자동인형들도 자동인형들을 생산하는데 특이할 것이 있나요?”
“오토마타들이야 자동화 공정이 쉬운 거고…. 호문쿨루스는 비교도 안 되게 조합이 어렵잖아. 제조법부터가.”
“언젠가 쓸 일이 옵니다. 리나 씨가 저를 호문쿨루스로 만든 것처럼, 적당한 존재를 호문쿨루스로 바꿔 생명도 구할 수 있겠고요.”
그녀의 입가에 옅은 호선이 걸렸다.
더없이 깊은 추억의 의식 속으로 빠져드는 눈빛이었다.
남자와 여자의 만남.
“다녀오겠습니다. 짧으면 3일에서 길면 5일 정도 소진될 겁니다. 저의 부재중에도 업무에 하자가 없도록 처리해 놓고 가겠습니다.”
그녀가 자리를 박찼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자신의 입술로 나의 입술을 덮었다.
“…….”
동시에 벌어져 맞물리고는 서로를 뜨겁게 환영하는 움직임.
서로가 자신의 것과 마찬가지로, 너무도 익숙한 안을 드나들며 농밀한 만남을 선사한다.
달콤하고도, 촉촉한 혀가 미끄러져 각자의 것을 확인한다.
의식이 몽롱함을 향하는 속에, 너무도 자연스럽게 서로의 등을 끌어안고 쓸어내린다.
몇백, 몇천 번을 시도해도, 결코 익숙해지지 않을 황홀한 달콤함이었다.
시간이 지난다.
실로 오랜 정지와도 같은 순간 끝에, 각자의 입술에 기나긴 타액의 실선을 남기며 떨어져 나갔다.
“……사랑합니다, 리나 씨.”
“사랑해, 지크.”
그녀의 핑크빛 보석처럼 짙은 홍채 속에, 나의 검은 동공이 반사되고 있었다.
몽마는 결코 진심으로 사용하지 않으려 드는 사랑이란 단어를 내게 사용하는 그녀.
흡정의 사냥감에게 가식이나 서비스로나 내뱉는 소리가 아닌, 절절한 진심의 감정이 담겼다.
나는, 오늘도 그녀를 위해 살아간다.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으면 즉각 텔레포트 스크롤을 찢어. 나는 그까짓 것들 1천 개를 수급하지 못하는 것보다, 너 하나를 잃는 것이 무엇보다 두려워.”
“당신이 보고 싶어서라도 그깟 어리석은 일이 발생하기 전에 돌아올 겁니다. 설령 싸우는 도중에 생각이 나더라도.”
“바보……. 그러면 안 되지.”
맞댄 이마가 뜨거운 열병처럼 달궈진다.
한동안의 유지.
서로가 동시에 부드럽게 포옹을 풀어냈다.
“다녀와, 지크.”
“다녀오겠습니다.”
나는 등을 돌려 나갔다.
확연한 응원을 담은 여자의 눈길을 뒤로 가득 받으면서.
곧장 나의 방으로 직행.
문을 열면 바로 우측에 위치한 옷장을 열었다.
구석의 모서리에 박힌 방수성의 두툼한 포대.
파우치, 랜턴, 횃불, 수건, 물통, 단검, 로프, 식수, 수마석, 비상식 등이 담긴 기초 모험가 세트.
곁의 검집에 씌워져 비스듬히 세워져 있던 5급 마법검도 포대에 쑤셔 넣으며 어깨에 걸멨다.
마지막으로 다단 수납장에 걸어가 양피지 한 장과 깃펜과 잉크통을 집고는, 다시 방을 나서며 뒤로 문을 닫았다.
거실로 직행해 소파에 착석.
곧장 테이블에서 잉크통으로부터 찍은 깃펜을 끄적이며 주문서를 작성했다.
그러고는 깃펜과 잉크통은 테이블에 놔두고 양피지만을 집어 일어났다.
현관으로 나가는 길에 좌측의 외부로 셔터가 내려진 창턱을 검지로 슥 훑는다.
손가락을 슥 튕겨 신중히 체크한다.
“먼지 한 톨도 없다……. 클리어.”
공방을 나서기 전에 마지막으로 청소의 상태도 확인했다.
전생의 군대에서도 미싱질은 좀 했기에 이 정도야 식은 죽 먹기.
마법 몇 번이면 청소와 환기도 끝나는 세계지만, 역시 직접 하는 것은 색다른 맛이 있다.
여러 상념들이 떠올랐다가, 품었던 의문들이 해결되는 절묘한 사고의 순환도 이루어지고.
마지막으로 현관을 나서기 전에 흘끗 고개를 돌린다.
1층 거실의 벽면에 붙은 괘종시계에서 확인한 시간은 13시 40분.
퀘스트를 시작하기에 결코 이르다고는 할 수 없는 시간이다.
잠시 시계를 지켜보던 나는 다시 몸을 돌리며 현관문을 젖혔다.
언제나의 버릇처럼 나서면 고개를 들춘다.
핏빛처럼 붉은 하늘과 석유처럼 시커먼 구름들.
한복판에 검게 타오르는 태양. 흑일 솔 녹스.
“오늘도 마계의 날씨는 쾌청.”
무언가 뻑뻑하면서도 한없이 투박한 느낌인 마계의 대기.
미묘하게 가슴을 짓누르는 듯한 중압감.
마기의 원산지가 제공하는 산소.
지상의 생물들은 적절한 대비 없이 한 모금이라도 들이킬 시에 치명적인 독성이나, 나는 문제없다.
이 몸에는 합성을 이룬 악마의 심장이 뛰고 있으므로.
이곳에 살아가는 존재들과 동일한 피가 흐르고 있기에.
오늘은 휴무일.
그렇기에 그것을 알며 이용하는 마족들은 주변에 단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리나 씨가 홀로 살아가며 가꾸던 작은 화단이 집의 주변으로 알뜰하게 펼쳐졌을 뿐이다.
이름 모를 형형색색의 마계화들이 아름답게 봉오리를 틔운 모습들이 심금을 울린다.
다시 뒤로 돌아 현관문을 주머니에서 꺼낸 열쇠로 잠그고는 마당으로 나섰다.
“우리 집.”
연금공방 에우포리아.
나와 리나 씨가 살아가는 보금자리다.
자줏빛과 보랏빛과 분홍빛의 나뭇잎들이 아름다운 몽환의 숲 루스카의 초입에 위치.
좌편으로 야트막하게 트인 숲길로 들어가면, 점차 길이 넓어지다가 드넓은 초지가 등장.
온갖 마물들과 마수들의 보고, 마평원 제르디아가 펼쳐진다.
현관문의 곁에 세워진 우체통으로 걸어가 작성한 양피지를 밀어넣었다.
넣어 두면 마군도 우체국 소속의 정기적으로 순회하는 우체부 그렘린들이 가져간다.
우체국에서 용도에 맞춰 우편물들을 분류해, 수신자에게 전달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집 주변을 한 바퀴 돌며 뿌려 놓은 마물 퇴치용 포션의 향을 체크했다.
“문제는 없겠군.”
헬하운드. 말처럼 커다란 크기와 시커먼 털가죽. 입에서 유황의 불길을 내뿜는 지옥견.
마계의 들개 포지션에 해당되며 여러 식생지들에서 광범위하게 발견되는 마물.
루스카의 깊숙한 곳에 살아가지만,먹이를 찾지 못해 굶주리거나 서열 싸움에서 밀려난 녀석들은 이따금 여기까지 내려오곤 한다.
내가 리나 씨에게 발견되는 것이 늦었으면 녀석들의 개밥이 되었을 것이라고.
마족에 알아서 쫄기 때문에 굶주리지 않는 이상 결코 덤벼들지 않지만, 야심한 심야나 무리를 이루고 있을 때 마주치면 성가시다.
이 정도면 앞으로 5일은 간다.
내가 돌아오기 전까지도 효력은 유효할 테고.
“리나 씨도 어엿한 마족이니까.”
마족 최약체의 오명인 몽마라고는 해도 고작 헬하운드 따위에 당할 일이 없다.
되려 페로몬으로 녀석들 사이에 집단 발정기를 일으켜 성대한 능욕을 가하고도 남지.
주먹질이나 발길질로도 그럭저럭 잡을 테고.
힘세고 강한 아침의 나날인 이곳 마계에서는 쓰레기봉투를 헤집는 길고양이 취급이라, 적당히 마력을 휘감은 발길질로도 내쫓을 수 있다.
마족 어린이들도 적당히 우르르 매달려 타고 노는 것을 보면, 얄짤없는 마계의 골든 리트리버 수준이다.
파워 밸런스가 매우 낮은 편인 지상에서는 엄청 위험한 마물이라는 것 같지만.
모든 것들을 순차적으로 확인했으나 문제는 없다.
어떠한 요소도 올바른 궤도에 올려져 있다.
나는 숲으로 발길을 내디뎠다.
“퀘스트 스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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