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 연금공방 에우포리아
* * *
“있을 수가 없는 일이 일어났다.”
물품들을 가득 담은 상자를 들고 2층으로 올라가는 나는 조용히 뇌까렸다.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을까?
재료가 바닥났다고?
공방의 물품들과 비품들 및 소재들과 재료들을 담당하는 것은 나의 역할이다.
여러 사소한 잡무들 역시 조수인 내가 도맡으며, 공방주 리나 씨는 공방의 전반적인 운영과 함께 전적으로 연금술에 집중하는 역할.
그것이 우수한 연금술사가 되고 싶다는 그녀의 염원이었기에.
이건 명백히 누군가 까먹은 것이다. 매우 커다란 쥐.
어딘가에 서식하는 너무도 사랑스럽고 깜찍한 쥐가, 근래 집중적으로 날려 먹지 않은 이상.
복도에 올라서서 나아가자 앞에 위치하는 방.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함께 뒤얽히고 있던 그녀의 침실을 지나 왼쪽으로 튼다.
좌편의 문이 닫힌 화장실을 지나치고, 바로 곁의 촉촉한 습기와 기분 좋은 향내가 녹아들고 있는 빈 욕실을 패스.
마침내 복도의 끝에 도달해, 좌측의 약초실이 아닌 우측의 연구실의 문고리를 살짝 낮춘 한 손으로 젖힌다.
곧장 밀려드는 마석등의 아늑한 광량. 몇백, 몇천 번을 맡아도, 평생 적응이 될 것 같지 않은 아찔한 화향.
나의 연구실과 그닥 다를 것도 없으나, 보다 난잡하고 복잡한 카오스의 도가니.
창가에 위치한 작업 책상 앞에 앉은 아찔한 향기의 주인이, 내게 혼이 녹아들 듯한 미소를 지었다.
“아아, 어서 와요~! 지크!”
“리나 씨, 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응? 뭐가?”
바닥에마저 널린 온갖 잡동사니들을 밟지 않게 조심스럽게 나아가며, 치명적인 복장으로 동그랗게 뜬 천진난만한 핑크빛 눈에 일침을 날렸다.
“바닥이 났다구요. 재료가. 나머지 잡다한 소재들도 간당간당하고.”
“……그래?”
순간 동공에 미약하게 발생하는 지진.
천진난만함을 가장하는 훌륭한 포장 스킬을 갖추고 있었으나, 함께 산 남녀는 결코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불가능할 어색함이었다.
내게 의자를 돌린 그녀의 앞에 도달해 곁으로 상자를 내려놓았다.
그녀가 짐짓 생각하는 표정으로 턱밑을 검지로 짚었다.
“왜…… 바닥났지? 흐음, 흠흠……!”
“무엇을 조제하고 계셨습니까?”
그녀의 책상으로 시선을 내렸다.
감압의 술식이 걸려 진공 상태의 플라스크 속에는, 파쇄된 약초의 알갱이들이 둥둥 떠다닌다.
“체력, 포션…….”
“또 그것을 시도하셨습니까? 제12배합식을 요청하신 이유도 그거겠구요.”
나는 잔잔하나 많은 감정을 담아 그녀를 바라보았다.
벚꽃처럼이나 달콤한 분홍안이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 방황하며 잘게 떨린다.
“어, 그… 아! 이, 이번에야말로, 새롭게 생각한 조합을 맞추면, 훨씬 우수한 녀석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서. 최근 며칠은, 너한테 매번 부탁하기도 그래서… 조금, 직접 꺼내 쓰긴 했는데……. 버, 벌써, 다 떨어졌나? 미안! 에헷!”
그냥 시원하게 항복 선언하며 뒷목을 짚는 그녀.
나는 조목조목 따지고 들었다.
“마소(??)를 소재가 될 대상으로부터 추출. 마소를 약초수와 뒤섞어 끓인 용액을 증류하고는, 잔여한 결정에서 다시금 마소를 추출. 거듭되는 가열과 연마에서 마소가 파열하지 않게 유지하다가, 최대한의 농도로 항진시킨 마소만을 잔여시키며 순수한 정제수와 배합. 최종적으로 술자의 마력의 부여식. 여기까지의 모든 공정을, 올바른 시간과 정확한 과정을 엄수하며 제대로 지키셨는지요?”
“다, 당연하잖아!? 그런 너무도 기초적이고 간단한 것 따위는, 눈 감고도 해낼 정도로……!”
“지켰는데? 그렇다는 것은, 아직도 본인의 욕심이 과도하다는 것이지요?”
“읏……!”
표정을 관리하려 해도 피할 수 없는 분심에 아랫입술을 질끈 깨무는 그녀.
나는 엄중히 설교했다.
“연금술사에 있어 재료의 낭비는, 군인의 총탄의 낭비와 같습니다! 총구를 보고 피하면 끝이라며, 마족들이 그렇게나 깔보는 최근 지상의 무기! 원시적인 수석식 권총이라도, 마력을 전혀 두르지 않은 맨몸에 맞으면 위험한 것인데도 말이죠! 강철처럼 튼튼한 내구도의 마족이라도, 전신을 두드려 맞으면 필히 관통당하거나 심각한 내상이 옵니다!”
“…나는 아직도 왜 총기가 위협적인지 모르겠는데. 엘프들이 쏟아붓는 화살에 비하면 굼벵이처럼 느리잖아? 비가 와도 못 쓰는 멍텅구리 무기고.”
그녀가 짐짓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말을 흐렸다.
“솔직히 모르겠어. 총에 맞아 본 적이 없어서 말이지. 인간들의 그런 원시적인 무기가 마족에 상처를 입힐 경지에 도달했다니. 드워프들의 크고 아름다운 핸드 캐논이라면 모를까? 대포에 직격하면 마족도 죽을지도 모르겠고.”
“주제가 그것이 아닙니다. 리나 씨는 현재 본인의 기량 이상으로 과도한 욕심을 부린다는 것. 이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논했을 텐데요. 결코 해서는 안 된다고. 그러다가 탈이 난다면 본인만 손해라고.”
“지크가 여러 번 해줬던 말이네…….”
“공생과 상생이라는 논리의 도모 이전에! 자신의 생존이 무엇보다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미 죽었는데 무슨 장사입니까!? 겉으로는 포장하나 속으로는 비웃어대는 들개 새끼들이 남은 자산을 뜯어 갈 뿐이겠지! 힘겹게 쌓은 업적을! 장사하는 입장에서 그렇게나 억울한 일도 없다는 겁니다!”
과연 그녀는 조금 핼쑥해 보였다.
최근 과도하게 마력을 사용하며 마력을 조제하며 보냈다는 증거였다.
나와 진득한 충전의 시간을 가지면 회복된다지만.
그래서 그녀는 마력 소진에의 염려 없이 매우 정력적으로 일에 매달릴 수 있었던 것이고.
“히, 히이익……! 좀 봐줘, 지크. 나는 그저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을 뿐이라구!?”
“압니다. 하지만 그러다 리나 씨가 탈이 나는 건 더더욱 안 됩니다. 그날 이후 몇십 번, 몇백 번을 맹세했다시피, 저와 당신은 영원의 진리를 탐구하며 함께 나아갈 운명 공동체이기 때문에.”
“으, 으으으응…….”
돌연 홍조가 양옆 뺨에 시뻘겋게 차오르는 그녀.
상징과도 같은 트윈테일도 함께 축 늘어진다.
날개와 꼬리가 한없이 가냘프고도 가파르게 떨린다.
몇 번을 봐도, 언제나 속을 알기 쉬운 여자.
마계에 살아가는 마족은 약 300만.
마왕의 통치권에 속한 마족은 약 200만.
마계의 합법적으로 개업한 연금술사들의 공방들은 대략 1만 2,068개로 추산.
야지나 으슥한 뒷골목 등지에서 불법적으로 영업되는 업소들을 감안하면 최소 3만이나 5만 이상도 헤아린다 추산된다.
모든 마족은 출생과 동시에 전사의 자질을 엄격하게 감별.
농업과 상공업을 비롯한 사회 기능 유지에 종사하며, 마계의 인프라를 유지하는 비마족 취급이자 장애마족들인 폐마족들을 제외하면, 마족의 1퍼센트 이상인 것이다.
태생적으로 마력적 소양이 너무도 우수하기 때문이다.
연금술사로서의 적성을 갖춘 비율을 추정하면 수십만도 넘게 나오겠고.
“연구자들은 도전이 생애의 과업이라고는 해도, 그게 혼신을 불살라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몇십 번도 넘게 말했지만, 어떤 일도 죽으면 무소용입니다.”
“알고 있어……. 나는, 어서 공방을 쑥쑥 키워 지크 너와 행복하게 살고 싶은 거니까.”
풀이 죽은 그녀의 뒤에서 축 늘어진 악마의 꼬리가 힘없이 살랑댔다.
약제학에서의 연금술은 배합이 완료된 산물에 사용자가 마력을 주입함으로 비로소 발현하는 원리다.
자신이 평가해서의 최선의 배합으로 섞은 산물에, 술자의 마력의 부여식을 기폭제로 포션이 탄생하는 것이다.
물론 온갖 약초들을 뒤섞었으니 약수 자체로도 충분히 효능은 있지만, 제작자의 마력이 빠진 포션은 그야말로 앙꼬 없는 찐빵이자 팥 없는 붕어빵이다.
지상에서는 신성력이 드높은 성자와 성녀가 빚은 성수가 걸출한 기적을 발휘하는 것처럼.
대연금술사라는 존재가 조제한 포션은 한 방울만으로 불치병에 죽어 가던 반송장도 번쩍 일으킬 테니까.
마력이 없으면 안 되는 세계이다.
그녀가 그토록 아쉬워하는 것이, 몽마라는 결코 강하지 못한 그릇을 타고난 한계였고.
“내가…… 지크, 너를 빨리 만났더라면. 100살 즈음의 유마였더라도.”
“흄의 기준으로는 리나 씨가 10살의 여자아이였을 때 말이죠? 위험한 말씀을 하시네요.”
그녀가 나의 정액에 환장하며 과도할 정도로 탐닉하는 이유가 달리 있는 게 아니다.
빨리 강해져야 더 강한 포션을 만드니까.
실제 그녀는 나를 만난 지난 3년 이후 비교도 못하게 강해졌다.
약하게 치부되는 몽마치고는 현격한 수준의.
그렇다고 해야 통상적인 마족과 엇비슷하거나 여전히 조금 밀리는 정도다.
태생적인 한계는 어쩔 수 없었다.
나와 섹스하면 강해진다고 해서, 서로 침식을 잊은 민달팽이가 되어 내내 뒤얽힐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연금술사의 승급 기준은 업적과 실적. 혹은 뇌물을 먹이던가.
방대한 마력을 갖춘 연금술사가 너무도 우수한 포션을 만드는 위업이 가능하던가, 마력은 부족해도 공장화와 자동화에 필적하는 대량 생산으로 많은 매출을 올렸던가.
안타깝게도 그녀는 여전히 그릇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에 나와 그녀가 택하려는 방법은 후자다.
질량으로 안 되면 물량이다.
“나는…… 지금보다도, 더욱, 보다 강해지고 싶어. 그래서, 역사에 이름을 날릴 연금술사가 되고 싶어.”
한없는 좌절의 구덩이에 빠져들며 헤어나려 들지 않는 그녀.
너무 몰아붙인 걸까? 이 정도면 충분히 전한 것 같다.
과한 교정은 심신에 상처를 입히고 독이 될 뿐이다.
나는 시무룩하게 호소했다.
“그래서 저의 캠비온은 언제 낳아 주실 겁니까?”
“아! 또 그 소리네! 나는 아직 엄마가 되고 싶지 않다구! 1천 년은 완전히 몰입해서 보낼 거고! 이후로는 조금 여유롭게! 앞으로도 최소한 2천 년은 더 살 거야! 너와 함께 갈 수 있도록! 연금술사들의 궁극적인 비원은, 불로불사인 거 몰라!?”
“아, 그러세요.”
완전히 발끈해 학을 떼는 그녀. 허나 모든 기운이 기적처럼 되살아났다.
나와 섹스하며 격렬히 날뛰는 것처럼.
“몇천 년을 매달려 몰두해도 턱없이 부족할 것을, 아이처럼 버거운 짐에 매달릴까봐! 그건 서로에게 비극이라구! 안 해! 아직은 아냐! 지크 너와의 아이는! 까마득하고도 아득한 미래가 되어서나!”
그녀의 역린을 건드리면 이렇게 방방 뜨고 만다.
감정을 추스리지 못해 날뛰는 모습이 풋풋한 소녀 아닌가?
그녀와 나의 관계는 미묘하다.
실질적인 연인이기는 하나, 표면적으로는 고용주 및 고용인.
언젠가를 기점으로, 나와 그녀의 사이는 급격히 가까워졌다.
그러던 어느 순간 그녀로부터 제의가 왔다.
서로 평등한 관계가 되는 것이 어떠냐고.
그녀가 먼저 제안하기는 했다.
내가 거절했다.
그녀는 나의 주인. 나는 그녀의 집사.
표면적으로는 상하 관계가 유지되는 것이 편하다.
일에서 감정이 앞서면, 실수가 남발하고 오류가 발생하기에.
언젠가 정식으로 혼인해, 진정한 부부로 거듭나기 전까지는.
“저는 그것을 제 생애의 중대 과업으로 삼고 있습니다만. 충격으로 3년 전 접합해 주신 두개골에 균열이 찾아들고 있습니다.”
“변태 같은 소리 지껄이지 마! 뭐 그렇게 나한테 애를 낳게 하려 그래!?”
마계의 서큐버스의 반려가 흄, 그것도 서방의 인간들과는 다르게 생긴 동방인이라는 풍문이 퍼지면 귀찮음이 폭발한다.
도움도 되지 않는 놈들의 쓸데없는 관심은 사절이었다.
확실한 기반도 쌓기 전에.
“왜 그렇게 매번 본심을 숨기실까.”
“내…… 내가 언제 속을 숨겼다구!? 지, 지크…! 너나 숨기지 마! 이따금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으니까! 크흥!”
순금빛과도 같은 양 갈래 머릿결이 박력적으로 왕복한다.
고갯짓마다 저러는 게 참으로 강렬한 감정의 발산이 가능하다.
시간이 날 때는 도시로 나가 의류상의 의상점들에서 웨딩 드레스를 알아보는 취미까지 가지고 있다.
생각하면 할수록 심장이 아프게 하는 여자다.
분위기의 전환은 이 정도로 되었겠지.
아직은 밀프가 되기를 거부하는 서큐버스에 캠비온 드립을 멈췄다.
“그리하여, 다녀올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모든 동작이 시간이 정지하듯 멈추는 그녀.
끝없이 보아도 익숙해질 수 없을 것만 같은 핑크빛 홍채가 이채를 띈다.
다리를 꼬고 앉은 그녀가 우측의 트윈테일을 손가락들에 꼬아댔다.
“…어디로?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건데?”
연금술사가 가장 눈부시게 타오르는 순간.
“퀘스트의 때입니다. 알케미스트가 필드로 나아가, 원하는 재료들과 소재들을 확보하는 사명.”
알케믹 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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