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서큐버스-8화 (8/80)

〈 8화 〉 연금공방 에우포리아

* * *

천장에 부착된 마석등이 아늑한 광량을 내쬐는 연구실.

나는 나의 손으로 창조한 인공 생명체와 마주하고 앉았다.

“너가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시점으로 비춰지고 있니?”

보그르르르, 유리관 속의 호문쿨루스를 중심으로 얄팍하게 터지는 기포.

한없이 투명한 배양액 속에서, 실낱만큼이나 작고 앙증맞은 사지를 까닥대는 녀석.

아마 이성은 생겼을 것이다. 목소리도 듣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나의 질문에 답변을 전하고 있으나 무슨 의미인지 알 길이 없다.

“벌써 밖으로 나오고 싶은 거야?”

나는 의자의 팔걸이에 턱을 괸 채 남은 손으로 유리관을 어루만졌다.

보그르르르, 보다 강하게 일어나는 물거품.

역동적으로 꼬물대기 시작하는 손톱만한 태아의 사지들.

말을 할 수는 없어도 참 속을 알기 쉬운 녀석이다.

이것이 나의 심장에 이식되었다.

그러고는 융화를 이루어 나를 호문쿨루스로 바꾸었다.

한없이 마력적인 성질을 가진 호문쿨루스는 유동성과 고정성이라는 모순적인 특성을 동시에 지닌다.

리나 씨가 내게 이식한 호문쿨루스는, 마계에서 살아가기에 특화된 형질들로 구성됐던 상태.

본래는 마계의 순도 그대로의 마기에 즉사하거나, 기억과 성격은 유지하나 사고방식은 뒤집히는 마인으로 변이했을 나를 전폭적인 단위로 개변해 생존시켰다.

“빚을 지었다. 그건 너가 아니었지만.”

나는 한없이 부드러운 손길로 유리관을 쓸어내렸다.

보글대며 끊임없이 무언가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녀석.

융합의 순간 지상 기준으로 중상급의 모험가에 필적하는 힘과 마력을 얻게 되었다.

일반인이 휘두르는 날붙이 따위는 맨몸으로 부러뜨릴 강철과도 같은 내구성을 지니며, 태생적으로 방대한 마력의 그릇을 지니는 마족들에도 전혀 밀리지 않을 정도로.

솔직히 사지도 않은 복권에 당첨되었다는 비유가 맞다.

나를 전생으로 인도한 여신으로부터도 매우 유용한 능력을 얻기는 했지만.

많은 감정을 담아 유리관의 녀석이 위치한 지점을 짚었다.

“갈게. 쉬고 있어.”

보그르르르. 한없이 잔잔한 떨림이 용액 속의 소인간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다녀와라고 말하는 듯하다.

녀석이 나의 목숨을 살렸다.

그렇기에, 언젠가는 나도 녀석으로 누군가를 살리는 데 사용한다.

그것이 받은 생명의 보답이자 베푸는 생명의 보답이다.

이것을 만든 의미가 그것이다.

밖만 나가면 쓰레기 같은 녀석들이 해일처럼 넘쳐나는 이 마계에서, 과연 사용할 일이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나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잠시 느른한 눈길로 주변을 둘러본다.

연성과 화학. 연금과 공학.

나의 자그마한 기적을 일궈내는 공간.

창가로 의자를 돌리고 있던 넓고 평평한 작업 책상에는 버너, 플라스크, 비커, 시험관, 시약병 등의 온갖 실험 도구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가장자리에는 크기별로 분류된 유리 접시들과 여러 재질들의 집게들이 줄줄이 보관된 특수 진열장이 붙박이의 형식으로 벽면에 고정되어 있다.

내부에는 멸균을 유지하는 술식이 반영구적으로 고정되어 있어, 포션을 조제하는 약초들의 배합비를 맞출 때 오염도와 오차율을 한도까지 떨어뜨리는 데 유용하다.

책상 우측 하단에는 상단의 한정된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지 못하는 온갖 나머지 기구들과 도구들이 단별로 담긴 서랍장.

책상의 우측에는 내부가 훤히 보이는 유리 진열장이 다층으로 들어서 온갖 시약들과 알약들과 물약들의 시용과 출품을 대기하고 있다.

책상에서 돌아서면 보이는 벽면에는 약초, 향초, 독초, 해독초, 영양초, 정화초, 수면초와 같은 온갖 형형색색의 약용 식물들이 보관된 약초함이 들어섰다.

나의 책상 가장자리의 특수 진열장처럼 내부의 약초들의 신선도를 유지하는 보존의 술식이 걸려 있는데, 여닫을 때마다 물씬 풍겨 나오는 초향이 아무리 환기해도 완전히 빠져나가지 못하고 감도는 구조이다.

세상의 색깔들만큼이나 형태와 색상도 다양한 약초들은 종별로도 향취가 다른데, 열었을 때에 뭉쳐진 형태로써 물씬 풍기는 온갖 풋풋하고도 시큼한 풀내는 묘한 중독성이 있다.

연금술사가 할 수 있는 일들은 생각보다 방대하지만, 약초로 포션을 조제해 살아가는 직업으로서 좋든 싫든 숙달되어야 할 운명.

리나 씨의 향기에는 못하지만, 나는 이 냄새가 좋다.

나의 전용 약초실은 없기에 이런 식으로 캐비닛을 두고 쓴다.

약초함 바로 좌측에 세워진 다단 수납장에는 배합식을 구하거나 떠오른 아이디어들을 끄적일 때 사용하는 파지들과 누런 양피지들, 깃펜들과 잉크통들을 포함한 비품들이 층별로 쌓여 있다.

그 좌측이 내가 자는 침대.

다시 너머가 나의 유일한 취미라 할 수 있는 온갖 서류들과 서적들이 내꽂힌 책장이고.

“들어갈 것이 들어가고도 남는 구조라는 게 신기했는데….”

본래 이 방은 온갖 비품 및 잡다한 잡동사니들을 쌓는 비품 창고의 용도였던지라 조금 큼직한 편이다.

나의 입주와 동시에 그것들은 싹 다 지하실로 내몰렸고.

바깥으로 트인 창은 채광도 퍽 좋은 편이라 아무리 박혀 있어도 전혀 답답하지 없다.

“보고 있습니까, 리나 씨? 그리고 나의 작은 호문쿨루스?”

무질서함 속에서도 질서를 추구하는 리나 씨와 달리, 나는 철저히 정렬된 질서를 추구한다.

정리가 생명이다.

작업의 오차율을 한없는 제로의 영역에 가깝게 줄이기 위해서는.

전생의 군대에서 뼈가 저릴 정도로 각인이 되었기 때문이며, 그편이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물건을 찾지 못해 허둥대는 바보 같은 일이 결코 벌어져서는 안 된다.

위에서 열심히 나의 흔적을 사랑하며 매번 덜렁대는 여주인처럼.

생각 방식과 생활 습관조차 멋대로인 연구자들에게 그런 투철한 개념을 기대하기는 무리겠지만.

“나의 요새.”

방의 주인의 마력을 담은 의사 표시와 함께 어둑해지는 방.

어둠에의 진입과 함께 눈에서 피어오르는 붉은 눈꼬리를 흩날리며 방문으로 나갔다.

언제 찾아도 열정과 휴식이 교차하는 공간.

해와 달도 좋다. 밝은 이 요새 안도 매우 편하다.

언제부터인가 그렇게 품게 된 상념을 흘리며, 뒷손으로 방문의 문고리를 당기고는 나왔다.

다시 복도를 지나쳐 거실로 나오자, 2층으로부터 아련히 흘러나오는 청아한 미성에 발길을 멈췄다.

「그대여, 사랑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대의 사랑이 계속되는 한, 언제까지나 기다리겠습니다.

그대의 꽃, 가슴에 품은 그것은 피어난 씨앗이랍니다.

손에 들고 있는 씨앗을 뿌렸습니다.

하나둘 싹이 트고, 꽃이 피어납니다.

믿었습니다, 당신은 결코 저를 버리지 않으리라는 것을.

죽음이란 아무것도 아니랍니다.

당신의 눈짓 한 번이, 수천의 괴로움을 씻어 준답니다.

그대여, 죽음보다도 사랑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선박을 침몰시키는 마수 세이렌.

그에 필적할 정도로 치명적인, 혼이 녹을 듯이 촉촉한 애성.

남자의 혼신을 불구덩이처럼 뜨겁게 달구는 서큐버스의 노래.

2층의 욕탕에서 아련하게 들려오는 물소리에, 달콤한 목소리가 녹아드는 빗줄기처럼 뒤섞이고 있었다.

나와 사랑을 나누고 나서도.욕탕에서 목욕을 즐길 때도. 이따금은 혼자 연구실에서 작업을 할 때도.

줄곧 부르고는 하는 노래다.

나와 함께 살게 되기 전까지는, 결코 이 노래를 부른 적이 없다고 한다.

“얼마나 격렬하게 사랑하실 생각이십니까.”

육욕과 애욕이라는 미혹의 늪에 태생적으로 얽히고 태어나는 존재.

몽마는 사랑을 하면 일을 할 수 없게 되는 존재라 한다.

결코 그 숙명을 벗어날 수 없으며, 생명체로부터 흡정을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밤의 장미들.

자신에게 필요한 정기가 충족되지 않는다면, 의지와 무관하든 자의이든 필연적으로 여러 존재들을 물색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문제가 발생한다.

흡정을 할 때, 자신이 사랑에 빠진 대상이 마음에 걸릴 테니까.

사랑하는 존재가 너무도 생각나기에, 도저히 흡정을 할 수가 없을 테니까.

그렇기에 몽마는 사랑의 감정을 극단적으로 경계한다.

자신들의 종의 파멸로도 이끌 수 있을, 심장이 뛰고 영혼이 흐르는 이성체라면 누구나 이끌릴 뜨거울 감정을.

“그것이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입니다.”

일순간 마음 한편으로부터 뜨겁게 치밀어 오르는 감정.

내가 사랑하는 여자. 나를 사랑하는 여자.

내게 새 생명을 선사한 그녀는, 내가 아니면 살아가지 않을 각오를 굳힌 것이다.

바쁜 일상의 도중에도 이걸 돌이키면 가슴이 너무도 뜨거워져 집중을 흐트리곤 한다.

“지크~! 지하실에서 파고니아 버섯 10개와 플라스크들이랑 시험관 여분들 좀 가져다 줄래~? 씻고 나가면 바로 재작업할 거니까!”

“네에! 지금 갑니다!”

나를 현실로 되돌리는 더없이 아늑한 미성.

“하는 김에 양피지들과 제12배합식도!”

“네! 알겠습니다!”

추가적인 요청에 대답을 마치며 나는 즉각 2층으로 올라가려던 발길을 돌렸다.

내가 누구 때문에 살아가는가? 그것은 말하지 않아도 명확하다.

명백히 꺼져 가던 심장에 다시 불길을 지핀 대상.

이 마계라는 험난한 세상에서도, 내게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 주었던 대상.

나의 서큐버스.

나는 그녀를 위해 살아가니까.

“또 도구들을 깨먹으신 겁니까…….”

거실에서 주방으로 나가기 전에 좌측으로 난 계단으로 내려선다.

몇 걸음들만 조금 내려가면 바로 보이는 철제로 된 문.

딱히 잠기지도 않은 문을 열자, 눅눅하고 퀴퀴한 공기와 함께 익숙한 어둠이 맞이한다.

“이젠 추억의 장소네…….”

갓 호문쿨루스의 이식술을 받은 내가 리나 씨와 교접을 치렀던 장소.

핏빛 비전 속에 야시경을 보는 것처럼 훤히 비치는 내부로 들어섰다.

마침 그간의 기억을 회상하며 집을 돌고 있던 참이라 감회가 새롭다.

리나 씨의 연금술사로서의 급수는 5급.

공방과 자택을 따로 갖출 정도의 실력이 검증된 연금술사라면 정식의 시술실이 있을 텐데, 안타깝게도 그녀는 그렇게 높지 않은 수준의 급수.

여기에서 호문쿨루스의 영핵을 내게 이식하는 수술을 집도했다.

그리고 결과는, 나의 사지의 동작을 봉쇄하고, 너무도 음란했던 최초의 착정…….

리나 씨와 네 자릿수에 가깝게 몸을 섞었지만, 그때의 몽롱하면서도 나른하던 분위기는 평생 못 잊을 것이다.

앞으로도 리나 씨와 가질 관계들에서도…….

본인에게 이걸 회고하면 방방 뜨는 반응이 아주 가관이다.

자신도 사실은 그때 위압적이면서도 주도적인 몽마를 연기하느라 힘들었다나?

실상은 바로 실신할 것 같았다면서. 끝나자 주저앉기는 했지.

여하튼, 생각할수록 귀여워 심장이 터질 것만 같은 여자다.

여러 추억들을 갈무리하며 어둠을 가르고 나아갔다.

이제는 비품들과 잡동사니들을 쌓는 창고가 된 곳.

본래는 내 방에 있던 잡동사니들과 비품들을 모조리 여기에 옮겼다.

반원형의 형태로 중앙은 비우고, 외곽만 잔뜩 물품들이 담긴 상자들을 차곡차곡 적재한 것이 어엿한 창고를 연상시킨다.

리나 씨가 주문한 물건들이 어디에 있는지 찾는 것도 눈 감고 식은 죽 먹기다.

한없이 가벼운 걸음걸이로 목적지까지 쭉 나아간다.

한때 나와 리나 씨가 끈덕지게 마주하고 섰던, 이제는 빛바랜 핏빛 마법진을 지나친다.

그렇게 상자들의 무더기의 한편에 서서는, 천천히 위쪽부터 내리기 시작한다.

몇 번의 몸짓으로 상자 몇 개인가를 들추고는 실험 도구들부터 빈 상자에 차곡차곡 챙긴다.

플라스크들과 시험관들은 충분.

이게 바닥나는 나는 순간 연금술사로서의 자격은 실패라 봐야 한다.

어지간한 워커홀릭이라 소진되는 것조차 몰랐던 게 아닌 이상.

“천만다행스럽게도 리나 씨는 아직 그 정도는 아니야.”

그리 되면 내가 가만히 안 있을 테니까.

아무리 일에 빠져도 그렇게 기초적인 것까지 챙기지 못하는 모습은, 그녀의 남자가 되는 존재로서 결코 봐줄 수가 없다.

“플라스크… 시험관… 양피지들도 충분히 담았고. 제12배합식의 사본도 질리도록 만들어 놨으니 확보. 마지막은, 재료인데…….”

파고니아 버섯. 사발에 곱게 빻은 분말을 약물에 첨가하면, 완성되기 이전의 시약 상태인 포션의 혼탁도를 낮추는 역할을 한다.

최대한 순도를 드높이는 정수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게 없으면 실력과 기량에 상관없이 조제하는 포션의 효능이 떨어지게 되고 만다.

포션의 조제에 필요하지 않은 나머지 소재들도 겸사겸사 모조리 지하실에 보관 중이라, 필요한 것이 있으면 여기서 찾으면 됐을 뿐이었다.

그리고 소재가 담겼음이 분명하리라 생각한 상자를 들춘 순간.

나는 치명적인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바닥났다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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