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 연금공방 에우포리아
* * *
“3년이라…… 시간 참 빠르군.”
돌이켜 보니 새삼스럽다.
매우 빠르다면 빠르고, 한없이 느리다면 느린 세월이 정말 순식간에 훌쩍 지나가 버렸다.
쏘아진 화살의 비유가 무엇인지 이제서야 실감이 갈 정도로.
전생 첫날에는 곧장 리나 씨를 따라 그녀의 침실로 갔다.
그러고는 격렬하게 섹스했다.
온갖 체위들을 바꾸며, 여러 도구들을 사용하며. 꿈만 꿀 수밖에 없던 체위들도 모조리 시험하며.
시작한 시간은 늦은 오후였는데, 자정이 넘도록 계속되었다.
결국은 새벽을 넘어 동이 틀 때까지.
달라붙는 쾌락과도 같은 서큐버스 그녀.
나와 리나 씨는 교접과 동시에 끈덕지게 녹아들어 일체가 되었다.
마치 서로가 본래는 한 몸이었던 것처럼.
나는 리나 씨를 만나기 위해 살아왔던 것 같았다.
그녀는 나를 만나기 위해 살아왔던 것 같았다.
서로는, 운명과도 같이 동시에 그것을 깨달았다.
육체적 교감을 넘어 정신적 일체를 이루는 아득한 경험이었다.
“리나 씨…….”
“지, 크……!”
액체를 빨아들이는 축축한 촉음이 울리는 침실을 등지고 고개를 돌렸다.
등을 지고 선 방은 리나 씨의 침실.
전생 이전에는 리나 씨의 전용 침실이었으나, 내가 동거하게 된 이후로는 의미가 없어졌다.
서로가 원할 시에 각자의 침실을 옮겨 다니며 동침하니까.
사적 공간의 구분이 말 그대로 사라지고 말았다.
전방으로 보이는 복도.
이곳은 2층으로, 몇 발짝을 더 나아가면 왼쪽에 화장실이 있다.
바로 옆에 붙은 것은 꽤나 커다란 분리된 욕탕으로 나와 리나 씨가 혼욕을 할 때 애용.
당연히 관계를 맺을 때도 사용한다.
좀 더 나아가면 여러 생필품들이 쌓인 진열장을 기준으로 좌우에 다시 방들이 갈린다.
왼쪽에 보이는 것은 약초실.
내부에는 마계 전역에서 공수된 온갖 약초들이 각기 다양한 방법으로 절여지고 건조되어 조합을 기다리고 있다.
전생 다음 날에 그녀에게 집의 구조를 안내받을 때, 작업 공간과 휴식 공간을 가까이 두는 것이 어색하지 않냐 물었다.
그게 되려 안심이 되며 마음이 편해진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침대에 누워서 빈둥대다가도, 생각이 나면 바로 연구실로 뛰어들어 창의력과 열성을 폭발시킬 수 있다며.
한 번 일에 빠져들면 연구실에서 며칠을 두문불출할 정도의 워커홀릭. 통상적인 몽마들과는 매우 동떨어진 서큐버스.
그것이 나의 서큐버스, 리나 씨였다.
“건너편은 리나 씨의 연구실이고….”
버너, 플라스크, 비커, 피펫, 뷰렛, 드로퍼, 깔때기, 삼발이, 막자, 사발, 시험관, 유리관, 진공관, 시약병의 온갖 실험 도구들이 무질서한 질서 속에 배치를 선사하는 외경.
개중의 일부는 분주히 달그락대고 보글대며 수립된 가설에 의한 결과물을 내고 있다.
처음에 들어갔을 때는 전생의 학창 시절의 과학실을 연상시키는 풍광에 대략 정신이 아득해졌지.
인연에도 없던 온갖 도구들의 명칭과 용법과 사용상의 주의점을 숙지하느라 얼마나 애먹었던지.
이제 지금은 내게도 신체의 일부처럼 익숙하게 느껴지는 것들이라지만.
덧붙여 평시에는 한없이 둥글고 싹싹한 리나 씨가 조금 예민해지는 공간.
리나 씨의 생명이 멈추기 전까지는 저것들도 결코 동작을 멈추지 않겠지.
“결코 그런 일이 일어나게 두지 않습니다. 이 목숨이 살아 있는 한은.”
평시에도 몇 번이나 되새기고는 하는, 아련하게 휘몰아치는 각오.
그것을 생각하니 돌연 여러 상념들이 들어, 새삼스럽지만 내부를 돌아보기로 했다.
“지, 크…! 후웅, 츄우움.”
여전히 촉촉한 수음과 젖은 애성이 들리는 침실.
옅은 미소를 머금고는 지나쳐, 곧장 보이는 1층으로의 계단에 섰다.
“나의 집.”
천장에 적절히 럭셔리한 외향으로 매달린 샹들리에.
밤이 되면 내부의 유리 장식들에 삽입된 광마석들이 점화해 아늑한 광량을 내쬔다.
자연이 제공하는 은혜의 원천. 마석의 보편화를 통한 생활의 여러 편의들을 향상시킨 세계.
화장실들과 욕실도 수마석, 빙마석, 화마석, 풍마석들을 적절히 조합해, 자유로운 냉온수의 사용과 환기도 자유로운 수세식 시설을 갖춘다.
전생과 차이가 없는 수준.
밖으로 나가 시가지를 걷거나, 오지에 간다면 말도 못할 불결함의 중세풍 푸세식 화장실들이 아이러니하게 공존하지만.
“원하면 씻지 않아도 되고, 싸지 않아도 되는 세계인데, 몇 번을 생각해도 신기하단 말이지….”
의복을 포함한 전신은 유마법 클린즈 한 번에 모든 노폐물이 손끝에 모여들어 발사하는 것으로 해결.
같은 개념이자 다른 원리인 기와 마나를 다룰 줄 안다면, 기력과 마력으로 체내에 발생하는 배설물도 소거해 해결 가능.
씻지 않아도 되고, 싸지 않아도 되는 말 그대로 판타지 세계인 것이다.
“화장실을 안 가도 되는 게 이리도 편할 줄은.”
거기다가 몽마들은 몸을 써서 살아가는 종족이다 보니, 위생의 개념에 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게 발달해서 자신들만의 관리법을 지니기도 하고.
얼굴은 잘생기고 예쁜데 몸은 더러운 까마귀를 누가 품겠는가?
물론 소거법을 쓰는 누구라도 장폐색을 막기 위해 일정 주기로의 사용은 필수지만.
곁의 난간을 붙잡는다. 허벅지를 들춰 훌쩍 올라탄다.
그대로 주르르르륵, 슬라이딩.
“마이 스위트 홈.”
사뿐하게 착지해서는 양팔을 들췄다.
복도의 정중앙에서 천천히 한 바퀴를 돈다.
방 다섯. 화장실 둘. 욕실 하나. 거실과 주방. 지하실.
아늑한 분위기가 넘치는 서양식의 양옥.
위아래 합쳐서 50평 정도 될까.
사실상 가정집을 겸용하는 공방인지라 그리 크지는 않다.
하지만 나와 리나 씨가 단둘이 살아가기에는 적당하다.
리나 씨가 혼자 살아가던 집이긴 했으나, 연금술사의 공방은 필연적으로 여러 용도의 방들이 필요할 수밖에 없기에 조금 넓게 건축했다고.
“나의 집.”
엄연히는 리나 씨의 집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나의 집이라 칭하고 있다.
그녀의 집을 빼앗은 날강도라서가 아니라, 진정 이제는 가족이라고 생각하기에.
리나 씨도 딱히 이 표현에 대해 토를 단 적이 단 한 번도 없고.
그녀에게 받은 봉급을 은행에 저축한 것만으로도 리나 씨의 집은 사고도 남을 돈을 가졌다.
나는 주로 바깥에서 뛰며 여러 업무들을 처리하는 현장파이기에 당연한 것이다.
리나 씨는 모르게 차명으로 개설한 계좌에도 상당한 비상금이 모였다.
아마 알면 깜짝 놀랄 정도로.
엄연히는 떳떳하지 못하지만 비상금이란 본래 이런 개념인 거다.
알뜰하면서도 결코 허투로 수입을 쓰는 일이 없는 리나 씨도 비상금이 있다 해도 놀랄 일은 없지.
“집이 커진다면… 같이 살게 될 사람도 늘어나는 건가?”
아직은 알 수 없는 미래.
하지만 반사적으로 따라붙는 의문.
리나 씨와 같은 여자들이 계속 가족이 된단 말인가?
정말 모를 일이다.
음마인 리나 씨는 통상적인 여자들과는 사고방식이 정반대이기에, 나의 외도를 적극적으로 권장한다.
함께 즐길 파트너들이 추가되는 것이, 더욱 밤의 즐거움이 늘어난다며.
나가서 마족 여자들을 좀 꼬셔 오라고.
정말 미치도록 야하다.
얼굴이나, 옷이나, 몸매나, 성격마저 야하지 않는 점이 없다.
생각하는 것만으로 남자를 상시 발기시키는 여자다.
“현재는 그럴 생각도 없는데…….”
오직 리나 씨 바라기인 나는 그녀만을 생각하며 집요하게 귀찮게 군다.
그러니 그녀가 성가셔 하는 것도 당연지사.
하지만 너무도 사랑스럽고 귀여운 것을 어쩌란 말인가?
전방의 시선에 보이는 것은 현관.
현관의 좌측면에는 바깥으로 벽면이 트여, 주중에는 마력적으로 외부를 완전히 차단할 수 있는 매직 셔터를 올리고 물품들을 판매하는 매대의 역할을 겸하고 있다.
제멋대로들인 마족들답게 이따금은 밤이나 새벽에도 찾아와 포션을 달라 두드리는 미친놈들이 있긴 하다.
그런 곳들을 방문하면 될 텐데.
그런 녀석들을 싹 다 내쫓는 것도 당연히 내 역할이다.
주로 직거래가 이루어지는 곳.
좌측으로 완전히 고개를 돌리면 바로 보이는 것은 아담한 거실.
섀도 디어의 가죽을 가공한 소파들이 놓여, 주로 대량의 거래를 논하는 큰손들이나 대규모 매입을 원하는 마왕군의 간부들을 대접할 때 쓰이는 곳이다.
커피, 혹은 티에 비스킷을 곁들이는 스무스한 분위기하에.
복도를 지나친다.
다시 좌측으로 보이는 것은 주방.
나아가기 전에 왼쪽 밑바닥으로 꺼지는 곳은 지하실 계단.
주방에 도달하기 전의 중간 벽면에 위치한 것은 1층의 화장실.
현재 용무가 없는 것들을 쭉 지나쳐 전방으로 나아가면, 또 복도가 나타나며 좌우에 두 방들이 갈라진다.
우측의 방문을 열기 전에 잠시 왼쪽으로 시선을 흘린다.
좌측은 실험실.
문을 열면 리나 씨의 연구실보다 훨씬 드넓고 난잡한 무질서 속의 질서의 카오스가 펼쳐진다.
2층의 리나 씨의 연구실과 실험실을 떨어뜨리는 배치는 현명한 것이었다.
온갖 실험들을 감행하는 연금술사들의 실험실에는 폭발 정도는 우스울 규모의 재해가 발생해, 어느 정도의 위험이 감지되면 내부에 결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수다.
그럼에도 폭발의 여파를 못 견뎌 집이 날아가거나 하는 것도 다반사.
침실은 날려도 결과물을 내는 실험실을 포기할 수 없다는 매드 알케미스트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위험한 곳의 맞은편이 나의 보금자리.”
우측으로 몸을 틀며 부드럽게 문고리를 젖힌다.
즉각 들어오는 아늑한 조명.
리나 씨의 연구실과 별반 다르지 않게 온갖 실험 도구들이 널린 나의 공간.
그녀와는 다르게 철저한 질서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들어가자마자 바로 좌측에 위치한 책장에는 연성을 할 동안 시간을 죽이기 위해 내가 주로 보는 학술서, 기타 온갖 서적들과 서류들이 비치되어 있다.
온갖 문물들이 발달했던 전생에 비하면 이쪽 세계는 꽤나 심심하기도 하고.
결국 남는 것은 독서밖에 없다.
정보는 많을수록 생명. 결코 많아서 독이 될 것이 없으니까.
나의 연구실의 창가에 비치된 사람만한 유리관.
다른 어떤 것들보다도 현재 내가 가장 집중하는 대상에 그윽한 눈길을 흘렸다.
“마이 프레셔스.”
손톱만큼 작은 살빛의 태아가, 투명한 용액 속에서 올챙이처럼 웅크린 듯한 형체.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는 나의 방을 나아가 창가까지 다가간다.
왼손을 뻗어, 한없는 사랑을 품은 손길로 유리관을 짚는다.
보그르르르, 그와 함께 내부에서 일어나는 옅은 물거품.
나는 아직 차마 눈도 뜨지 못한 존재가, 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숱한 호문쿨루스들을 창조해 사역하는 연금술사들의 사이에서도, 보고된 예시가 있을지 불확실한 사례.
“주인님이라 해야 할지, 아빠라 해야 할지 고민이니?”
호문쿨루스가 되는 존재인 내가 배양한 호문쿨루스.
연금술의 금기를 깨서라도 비원에 도달하려는 각오.
단연코 내가 가장 흥미를 품은 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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