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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화 〉 서큐버스와 호문쿨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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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염한 바스트가 이지러지도록 팔짱을 낀 그녀가 그윽하게 시선을 낮췄다.
“전신의 혈액을 강제로 정액으로 변환시켜 뽑아내는 체액조종을 쓰지 않고도, 약 47초 정도……. 예측했던 오차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인큐버스들의 통상적인 사정량에 근접했네. 훌륭해.”
나의 비정상적으로 길었던 과다사정을 정확히 측정해 감평까지 하는 그녀. 대체 뭐란 말인가……?
“인간의 5미리테, 개의 15미리테, 말의 120미리테, 돼지의 500미리테를 월등히 초과하는 수량이란 거지. 너는 급수기, 구체적으로는 사정기(???)로써 완전히 재탄생했어. 나 서큐버스 리나의 안정적이자 완벽한 식량원으로써. 이제 맛없는 정기식은 이별이야. 숙원이 이루어진 거라구?”
미리테는 나의 전생의 척도로 밀리리터.
나는 언급된 예시들보다도 월등히 많은 양을 싸질렀다는 소리가 된다.
사실일 것이다.
사정이 개시되고는, 오르가슴의 끝없는 지옥이 육체와 정신을 새하얗게 불태웠으니까.
정상적인 여자가 이딴 걸 알 리가 없을 테니, 아무래도 그녀는 진짜 서큐버스가 맞는가 보다.
그리고 인큐버스들은 몇십 초가 통상적인 사정량이라고?
내가 셋업된 3단 스테이지에 살해당했다는 허무맹랑한 사실보다 더 충격적이다.
몽마들은 체액을 조종하는 악마, 나의 두뇌에 주입된 마종 대백과사전의 지식들은 명백한 사실이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놀랐어……? 남자는 사정량이지. 주먹을 쥔 팔꿈치까지에 필적할 길이도, 쇠막대기처럼 딱딱한 강도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수량이야. 절정에 도달했을 시에 홍수와 같은 수량을 뿜어내 관계를 맺던 여성에 수태력을 과시하는 것! 여자는 일단 무조건 많은 정액량에 가버리는 구조야!”
서큐버스 그녀가 한없이 음탕하게 웃으며 팔목을 교차해 거유들을 끌어안았다.
일순간 나의 음낭에 강렬한 이물감이 엄습했다.
“윽!”
무수히 잘게 분해된 무언가 알갱이들이 고환과 음낭 사이에서 널뛰는 느낌.
뷰루루룩대는 요란한 살소리와 함께 가죽 주머니에서 대진동이 일어났다.
“뭐, 뭐야아!? 이번엔 또!?”
무릎 사이에 늘어졌던 물건이 거짓말처럼 다시 부풀어 올라 전방을 향해 꼿꼿이 겨냥되었다.
눈앞의 미녀를 향해 끄트머리로부터 다시금 투명한 군침을 줄줄 흘려내기 시작했다.
“이런, 미친……!”
눈앞에서 펼쳐지는 비현실의 연속에 이성이 이탈할 것 같았다.
그렇게 과도한 수량을 봇물처럼 싸지르고는, 순식간에 강직도를 회복한 물건이 곤봉처럼 곧추섰다.
아마 또 비슷한 양을 쏟아낼 수 있다는 육감이 강렬히 뇌리를 엄습한다.
이후로도 계속.
나의 의문에 야하게 생기고 야한 차림의 서큐버스 그녀가 대신 답을 들려주었다.
“압축의 술식을 통해 초압축한 증폭의 룬, 생성의 룬, 강장의 룬 수십 개를 고환에 미세 단위로 이식했어. 사정의 여파로 인한 고환의 수축과 동시에 룬들이 발동해 본래의 상태를 복원하지. 지금과 비슷한 수량을 몇십 번 더 싸도 문제없을걸? 육체는 멀쩡한데, 정신이 마모되어 버리는 게 문제겠지만.”
나는 정말 서큐버스를 위한 사정기가 되어 버린 듯하다.
나의 음낭에 정밀 단위로 이식된 증폭의 룬과 생성의 룬, 강장의 룬 수십이 열일하는 동안은 정말 급수기 그 자체다.
온몸에 흩뿌려진 나의 정액을 번들대는 그녀가 덧붙였다.
“존재하지도 않는 인큐버스 킹 수준은 아니겠지만, 그 바로 아래 정도는 될걸? 어지간한 인큐버스들을 상회하는 수준. 걔네들은 자신들의 마력으로 소진된 정액을 회복하는 원리지만, 너는 초압축된 룬 마술들이 마법적 원리로 회복할 테니까. 추가적인 대회복 작용을 지닌 거지. 네 낭심이 날아가기 직전의 순간까지는. 그러니 관리 잘해.”
“뭐, 야……! 도대체가, 전부……!”
나의 눈앞의 이 야한 미녀는, 진실로 내 몸에 터무니없는 짓을 해놓은 듯하다.
“그럼…… 대체 이 꼴로, 어떻게 살아가라는 건지……!”
진심 걱정되었다. 이대로는 자위행위 한 번을 해도 주변이 홍수가 나버릴 테니.
의식이 탄화하고 정신이 마모되는 쾌락의 연속이야 어떻게든 버텨도, 주변 처리는 어떻게 하란 말인가?
“말했지!? 남자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사정량이야! 화이트 샤워를 전희하는 여자에게 분수처럼 퍼붓는 것! 남성의 강인한 수태력의 상징이자, 여성의 엄청난 흥분 요소라구! 쇠몽둥이 같은 딱딱함! 팔뚝 같은 두꺼움! 그거야 당연히 기본!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물량이라구!”
이 모든 일의 원흉인 그녀가 체액의 악마다운 음설을 늘어놓았다.
최소 수십 초의 쾌락 예약이라. 체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가 느른한 태도로 물러났다.
정액에 절어 떡이 된 트윈테일들과, 박쥐의 날개들을 함께 솟구치며 나른하게 기지개를 켰다.
“뭐…… 일단 잔뜩 싸줬으니깐. 잘 먹을게. 내 노력으로 뽑은 것을 취하는 거니까 문제는 없겠지? 후암~!”
그녀가 돌연 밑바닥에 생성된 정액 무더기 속에 허벅지로 철푸덕 주저앉았다.
여지껏의 행위에 그녀도 나름 지쳤다는 기색으로 크게 하품하며.
“그럼…… 먹어 볼까나.”
가늘게 눈매를 치켜뜬 그녀가 검지를 내세웠다.
그러자 주변에 소규모의 마력 반응이 일어나며 변화가 감돌았다.
그녀가 깔고앉은 정액의 물웅덩이가 보글대더니 떠올라 뭉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의 앞으로 축구공만하게 뭉치던 것이 이내 사람의 상체만하게 크기를 불린다.
천장, 벽면, 그녀의 전신 할 것 없이 정액이 튀겼던 어떤 곳에서든 방울방울 분리되어 떨어져 나와 허공에 제각기 뭉쳤다.
다른 요소들은 무시하고 의향에 따라 마력이 적용된 대상인 정액만을 그러모은다.
총량이 얼추 10리터도 넘어가는 크고 작은 정액의 물덩이들이 여기저기에 떠올랐다.
유속성 마법. 마족들이 애용하는 염동력. 사이코키네시스.
나른하게 한 번 더 기지개를 켠 그녀가 귀밑머리를 떠넘기며 눈앞의 거대하게 울렁대는 정액구에 고개를 묻는다.
눈매를 지긋이 감고는 나의 정액이 향수라도 되는 듯이 감미로운 표정으로 오똑한 코끝을 킁킁댄다.
이윽고 살긋이 벌린 입술과 비죽 내민 혀끝을 정액구에 묻었다.
“후웅…… 츄움. 웁…….”
입과 혀를 동시에 놀리는 그녀가 나의 정액을 들이키기 시작했다.
믿기지가 않는 광경이었다. 정말 정액을 먹다니.
그토록이나 질척했던 온몸이 거짓말처럼 깨끗해진 그녀가 돌연 입술을 뽑아냈다.
백탁빛에 물든 입가를 다시며 말한다.
“확실한 정기……. 흡정을 했거나 우리 서큐버스로부터 양도식을 치르기 전엔, 무정기(無??) 상태인 씨 없는 수박 인큐버스 녀석들과 달리 그득한 생명력이네……. 농도나 향기로나. 인간이 베이스였기에 어엿한 수태력을 갖췄다는 거지. 남자 인간과 동일한.”
그녀가 기나길게 빼문 혀를 정액구에 파묻어 음란하게 휘적댔다.
연신 요염한 암고양이가 샘물에 목을 축이듯 할짝인다.
“……뭐. 질보다는 양이잖아? 그저 양만 홍수처럼 쏟아낼 뿐이 아닌 어엿한 수태력도 갖췄어. 나 서큐버스 알케미스트 리나의 최상급 걸작……. 현재 너는 와일드 데몬, 뱀파이어, 인큐버스가 합성된 존재라구? 어엿한 악마 하나와 마족의 일원 둘이야. 원본들의 요리들이 아니지만, 미약하게 흩뿌려진 조미료처럼 충분한 나름의 맛이 있어……. 초기의 수정치가 그 정도야. 이후 강화에 따라 농도도 증대될 가능성이 있다면…… 으음, 기대되네. 한 방울만으로 가버릴지도? 갈수록 내게 쏘아내는 정액의 질이 향상되었으면 좋겠어.”
서큐버스 리나가 얼굴을 새빨갛게 달구면서 나의 정액구를 깊게 빨아들였다.
경건히 눈을 감고는 목울대가 끊임없이 꿀렁이며 계속 먹고 있다.
대량으로 싸질렀던 나의 정액을 모아 마시고 있다.
정말 서큐버스는 정신 나간 존재다.
전생의 매체에서나 현생의 기록에서도 어째서 요망함의 아이콘으로 기록했는지 이해가 간다.
“츄루우우웁, 츄루우우웁. 우훔, 츄우움. 훔~! 아아……!”
백탁액에 범벅이 된 손바닥을 할짝대고, 기쁜 듯이 휘돌리는 악마의 꼬리를 연신 살랑대며 신중하게 흡정했다.
음마의 위장이 맹렬히 마력적 구조로 변환하며, 현재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정기의 분해를 실시한다.
흡정할수록 강해지며 강한 대상을 흡정할수록 급강화되는 몽마의 특성이 그녀에게 가동하고 있었다.
저 작은 상체에 어떻게 저런 커다란 정액 덩어리가 몽땅 들어갈 수 있나 싶을 정도였다.
이따금 요염히 치켜뜬 눈으로는 나를 주시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너가 내게 이렇게나 많이 싸냈어의 의미.
그걸 내가 모조리 먹고 있어라는 신호.
성교 이후 단순한 음탕한 행위의 충족 이상으로, 정말 식사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미치도록 야했다.
전생에서 남자의 정액을 저렇게 맛나게 먹을 수 있는 여자들이 있을까?
없다. 서큐버스만이 가능한 플레이다.
“그래서 서큐버스는 질외사정을 선호해. 하다가도 뽑아 입에 싸는 것이 흡정에 용이하기도 하구.”
말하는 대사마저 야하다. 미친 듯이 야하다.
서큐버스는 진정 남성을 위해 창조된 환상종이었다.
서큐버스는 저런 것까지 미치도록 야한 존재라는 걸 알았다.
한동안이나 진한 애성과 축축한 수음이 어두운 지하실에 울리는 흡정이 지속되었다.
어이가 없어서. 하도 정신이 육체로부터 탈출할 정도로 너무나 야해서.
빤히 지켜보는 나에게 그녀가 뾰로통하게 쏘아붙였다.
“…뭐, 뭘 그렇게 보는데!? 이게 서큐버스의 흡정법이야! 구강 밖으로 흩뿌려진 것들도 먹어야 될 거 아니야!?”
지독히도 야한 짓으로 뽑은 주제에, 어쩐지 부끄러워하는 듯한 표정과 말투.
한없는 이율배반과 모순이었다.
정액의 생크림 케익에 끼얹힌 듯한 얼굴로 저런 호소를 외치니 설득력이 없다.
“후아……!”
그저, 한숨만 나왔다.
그런데 저걸 다 먹을 수 있나? 저 많은 수량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그녀가 팔을 길게 옆으로 내뻗어 손가락을 튕겼다.
그와 함께 다시금 감도는 마력의 흐름.
아공간을 개방하는 시마법. 포켓 디멘션.
그녀의 팔이 향한 곳에 돌연 생겨난 검푸른 공간에서, 염력에 휘감긴 수십도 넘어가는 약병들이 대열을 이루어 둥둥 흘러나온다.
“너가 내게 했던 최초의 사정……. 네게서 처음으로 짜낸 정액이니, 한 방울도 버리지 않아. 그러고 싶은 기분이 들거나. 무언가 기념할 일이 있거나. 그때마다 조금씩 먹도록 하겠어.”
달달한 애성을 흘린 그녀가 손짓하자 남은 정액들이 모조리 줄기지며 나뉘어져서 빈 공병들로 날아들었다.
짧은 찰나에 현장에는 흔적이 조금도 남지 않게 되었다.
마치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행됐던 질척한 교접은 있지도 않았다는 듯이.
밤꽃 냄새만 진동했을 뿐.
그녀가 한 번 더 손짓하자, 정액을 담은 약병들은 다시 모조리 차원구에 날아들어 울렁이는 아공간과 함께 사라졌다.
“후아! 잘 먹었다~!”
머릿결과 날개를 동시에 솟구치는 그녀가 발랄히 기상했다.
한없이 환한 미소로 입가를 할짝이며 아랫배를 쓸어내린다.
정말로 배가 부르다는 제스처다.
잠시 지하실을 둘러보던 그녀의 시선이 부동자세로 고정된 내게 꽂힌다.
잊은 것을 깨달았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아차……! 잊고 있었네?”
따악, 팔을 내뻗은 그녀가 청명한 핑거 스냅을 튕겼다.
그와 함께 수족의 움직임이 자유로워졌다.
급작스럽게 돌아온 감각에 나는 다리가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크윽!”
“꺅!? 괘, 괜찮아!?”
발끝을 띄운 그녀가 황급히 날아왔다. 나는 핏빛 마법진에 허물어져 숨을 헐떡였다.
“후우……! 흐으……!”
보이지 않은 실의 느낌처럼 칭칭 고정되어 움직일 수 없었던 팔들의 움직임도 자유로워졌다.
일종의 금제였던 듯하다.
무릎을 짚고 허리를 숙인 그녀가 걱정스럽게 나의 상태를 살폈다.
“……미, 미안. 하도 오랜만에 신선한 정액을 흡정할 생각을 하니, 조금 강압적이 되어 버렸어!”
“와아……! 진짜. 후우우우우.”
어이도 없고 기가 차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누가 현재 내게 지금 느끼는 감상을 써보라면 감상문 100장도 나올 것이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 이 자리에서 똑같은 체험을 했어도 비슷한 기분이겠지.
“……!”
앙증맞게 허벅지를 오므린 그녀가 손끝들을 마주치며 나의 눈치를 살폈다.
의외로 순진한 구석까지 있는 몽마다.
나는 하고 싶었던 일침을 날렸다.
“당신이 저의 목숨을 구한 것은 감사합니다만……. 이건 좀 아니죠. 적어도, 최소한의 동의와 상황은 설명했어야.”
“미……안.”
그녀가 고개까지 뚝 떨궜다. 상징 같던 큼직한 트윈테일들마저 기세를 잃어 함께 축 늘어진다.
혹시 내가 심하게 말한 건가? 그런 의향은 없었건만……. 나는 솔직한 단상도 덧붙였다.
“그래도…… 지리는 체험했습니다. 진짜 엄청나게 지린. 당신 덕분입니다.”
“엣!? 내, 내 덕분!?”
축 늘어진 양 갈래 머릿결이 치솟았다. 명백한 놀라움에 크게 뜨인 핑크빛 동공이 나를 본다.
이내, 그 눈빛에는 자랑과 자부심이 떠올랐다.
“후, 우후후후후! 그렇지!? 확실히 그렇지!? 당연한 거야! 세기의 천재 연금술사! 서큐버스 리나 님이시니깐!”
순식간에 하이해져 내게 찡긋 윙크하며 검지를 까닥대는 그녀.
단순한 것을 넘어 기분의 업다운도 극심한 여자다.
솔직히 조금 재미있지 않은가?
“이쪽의 천재들은…… 무단으로 남의 육체를 마구 개조하는 게 관행인가 보군요. 현재 저의 두뇌에 기입된 방대한 지식들은, 세계의 어떤 종족들도 그런 풍습은 없다 통보하고 있습니다만.”
“힉!? 히, 이이이이잉……!”
다시 반사적으로 처지는 기다란 양 갈래 머릿결.박쥐 날개도 함께 축 쳐진다.
울상의 얼굴. 참으로 기분을 알기 쉬운 여자다.
솔직히 조금 귀엽지 않은가?
“기분 푸세요. 뭐,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는 겁니다. 일어난 변화들이 나쁘다고 볼 수도 없겠고.”
“아, 그, 그래? 그렇게 생각한다면…… 다행이네……! 후, 후훗!”
그녀의 조막만한 뽀얀 얼굴에 안도의 빛이 떠올랐다.
나는 그것을 보며 피식 웃어 버렸다.
서로의 사이에 묘한 적막이 가라앉았다.
결코 정상적이지 못한 방식으로 대면을 이루고는, 성적인 교접까지 치른 상황.
슬슬 이제 자신이 저지른 것에 체감이 가는지, 그녀의 미모에 복잡한 감정들이 떠오르고 있다.
딱히 방의 풍광이 변화한 것은 없지만, 마치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듯한 고요가 있었다.
이제 육체의 자유를 찾으니 여러 상념들이 든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문제네……. 이곳은 살벌하기로 유명한 악의 소굴이며, 지상에서 지옥으로 통용되는 동네인데. 그렇다고 지상으로 나가기엔 이쪽만큼 정보가 많지는 않고…….”
정말 그렇다.
나의 입장에서는 지상이 훨씬 낫지만, 그쪽은 정보가 이곳만큼은 부족한 상황.
거기가 여기보다 나을 것이라는 보장도 확실하게는 없고.
팔짱을 끼고 깊은 생각에 잠긴 내게 그녀가 불쑥 말을 던졌다.
“그, 그래서? 넌, 이제부터 어떻게 할 건데?”
“고민입니다만.”
그녀의 눈빛에 복잡한 감정이 흘렀다.
“아니, 구체적으로 뭘 하고 싶어…? 갈 곳은…? 지낼 곳은 있는 거야……?”
나는 생각했다. 정말 이 세계에 맨몸으로 우두커니 떨어진 것이 아닌가?
완벽한 맨땅에 박치기 상황. 무언가를 해보려고 해도, 터전이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나의 눈앞의 이 여자에게 터무니없이 음탕한 짓을 당하기는 했어도, 명백한 생명의 은인이기도 하고.
내게 수립된 지식은 그녀는 통상적인 마족들과는 매우 다른 성향이라 통보하고 있기도 하다.
만약 내가 그녀를 떠나기로 판단한다면, 그게 도리적으로도 과연 옳은 행위인가?
“없는데…….”
나의 건조한 대답에 그녀의 눈빛이 빠르게 흘렀다.
여러 감정들과 언행들을 고르고 있는 상황.
이윽고, 그녀가 한없이 새침한 표정으로 손가락에 트윈테일을 비꼬았다.
“…혹시, 떠나고 싶어? 딱히 갈 곳이 있거나, 무언가에 용무가 있는 게 아니라면…… 지금부터, 나와 함께 살지 않을래?”
나는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
겉보기는 위장을 시도하고 있었으나, 한없이 진심을 말하고 있었으므로.
그러자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남은 손으로는 옆구리를 짚고 삿대질한다.
“……따, 딱히!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는 건 아니니까! 계, 계속 혼자 살았기에 딱히 외로웠던 것도 아니고! 시, 싫다는 녀석을, 억지로 붙들어 두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 크흥!”
팔짱을 낀 그녀가 고개를 외면하는 것에 맞춰 트윈테일들도 세차게 휘돌았다.
떠날 의향을 물을 사람에게, 스스로 밝혔던 것처럼 비싼 비용까지 들여 치료해 준 건가….
한없이 어색하다.
고질병으로 보이는 듯한 자랑질. 절륜한 교접의 테크닉. 실은 마음씨가 착한 허당.
환상의 삼박자 아닌가?
어떻게 한없이 마족의 성향으로부터 머나먼 이런 여자가 있는지 의문이다.
문란한 몽마들에서는 모래알에서 진주알 찾기처럼 극히 희박한 처녀 서큐버스라는 점도 신기하고.
여러모로 신비한 그녀를 헤아리고 있는데, 감정을 감추느라 체리처럼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삿대질한다.
“힉!? 며, 명심해! 내가 너를 키워 주는 거야! 홀로 마계에 뚝 떨어진 게 불쌍하기에! 너는 내 식량 공급원! 나는 결코 그 이상도! 이하도! 감정을 품지 않아! 프흥! 마신님께 맹세컨대, 결코 그 이상의 발전은 일어나지 않아! ……흐, 흥!”
팔짱을 낀 그녀가 다시 외면하는 것에 맞춰 트윈테일들이 커다랗게 휘둘렸다.
의아하게도, 나는 그녀가 귀엽다고 느껴 버렸다.
의지와 무관하게 음경이 흉기에 가깝게 마개조를 당하고, 특수강간을 뛰어넘는 레벨의 성추행을 당했음에도.
전생에서도 볼 수 없던 미인인 그녀를, 첫눈에 본 순간 이끌려 버렸기에……?
아니면…… 그녀는 나를 살린 생명의 은인이라고 외치는 내면의 메시지 때문인가?
그녀가 자신의 감정에 혼란한 것처럼, 나 역시 나의 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할 거야……?”
팔짱을 낀 손가락들을 토닥대는 그녀가 한없이 새초롬한 눈빛으로 의향을 물었다.
연신 곁눈질과 주시가 오간다. 아랫입술을 머금으며 끊임없이 달싹댄다.
내가 거절한다면, 혹시 상처라도 받는 거 아닐까?
그럴 바에는.
“괜찮을……지도.”
내게는 필요하기도 했다.
이미 살아가기에 충분한 신지식들을 습득하기는 했어도, 현재 나의 본능은 이 세계는 결코 만만하지 않다고 전력으로 외치고 있으니까.
경험은 결코 많아서 해될 것이 없는 천혜의 보험이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이 선택은 최적이다.
“……!”
그녀의 눈빛에서 순간 떠오른 상기가 사라져 버렸다.
눈빛과 표정은 재빨리 관리했어도 함께 떠오른 트윈테일은 감출 수 없었다.
“…그, 그래!? 그럼, 어쩔 수가 없네!? 밖은 이래저래 매우 험악하기도 하고, 여기서 나가 봤자 또 어딘가에 뻗어 있을 거 아냐!? 너! 복 받았어어어!? 난 마족치고 무진장 착한 거야! 바깥의 놈들과는 비교도 안 돼! 내가 쓰면 안 될 표현이지만 완전 천계의 천사님이라구!”
과도할 정도로 자신을 어필하며 선의를 강조하는 그녀.
무언가 매우 속을 알기 쉬운 것처럼 보였다.
“응! 반드시 위험할 거야! 무턱대고 나간다면 말이지! 게다가 넌 내 식량원이잖아!? 그런 주제에 어딜 가려구 해! 매일 내게 신선한 밥을 줘야지! 후훗!”
말을 하면서도 자신의 행동에 대한 자각은 있었는지 얼굴이 사과처럼 시뻘겋게 달아오른다.
소녀처럼 재잘재잘 떠드는 그녀의 모습에 제안을 받아들이길 다행이라 여겼다.
그리고…… 이런 미녀로부터 떠날 수 있는 남자가 있을까?
“그래! 그럼 오늘부터 표면적으로 너는 나 리나 님의, 조수다!? 나의 연금공방! 에우포리아의 온갖 업무들을 보조할 조수이자, 여러 잡무들을 처리할 집사! 나의 조수이자 집사! 이 험난한 마계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여러 가지를 알려 주도록 할게!”
“명심……하겠습니다.”
그녀가 화사하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리나 녹스 에파네 페를렌데! 225세! 흄의 기준으로는 22세려나!? 마계권리법령 데몬즈 코드에 의거해, 유마(??)에서부터 성장해 모든 법적 권리가 합법적으로 보장되는 연령! 200세인 성마(成?)가 된지 20년밖에 되지 않았지! 아주 젊고 싱싱하며 파릇파릇한 서큐버스! 마족의 일족인 몽마족이야!”
225세. 인족으로 치면 22세 정도이나, 이미 나의 전생의 기준으로 10배 이상의 삶을 살아온 그녀였다.
“마족은 수명의 한계까지 젊음이 유지되며 강해지고, 마생은 사고 치지 않고 보내기만 해도 최소가 1천 년! 악마들의 3천 년에 비해서는 조금 짧은 감이 있지만, 온갖 마법과 약물을 써서 노화의 둔화와 수명의 연장도 가능한 세계라구!? 나와 오래오래 함께 살며, 알케믹 라이프를 즐기자! 참고로 너의 수명도 최소가 3천 년이다!? 너의 본래의 심장을 야생악마의 심장으로 합성했으니깐!”
나는 눈을 그윽하게 깜빡였다.
이것은, 동방인으로서는 최초로 마계에 전생한 나의 모험이라는 직감이 왔으므로.
“기나긴 삶이 되겠군요……. 3천 년이라.”
“마족의 이름은 너무 기니까 리나라고 부르면 돼! 그래서!? 너의 이름은!?”
한없이 찬란하게 분홍빛 눈동자를 빛내는 그녀가 웃었다.
나는 고려했다. 그러고는 보류했다.
“제게…… 이름을.”
“응? 이름이 없어? 동방에서 쓰던 본명이 있을 거 아냐?”
이쪽 세계에서 마계인이 되기로 결정한 몸.
전생의 흔적은 불필요할 뿐이었다.
강렬한 의지를 담은 눈빛으로 그녀에 답하자, 심히 의아한 표정이 떠올랐다.
“이상하네……. 사정이 있다는 건가.”
“이쪽 세계에서 쓰일 법한 이름으로.”
턱을 매만지는 그녀가 생각에 잠긴다.
미간마저 찌푸리며 심한 고심에 빠지는 듯하다.
영 엉뚱한 이름들이 떠올랐는지 포니테일들마저 홱홱 틀며 상념을 떨친다.
한동안 고심하던 그녀가 손가락을 튕겼다.
“너의 이름은 지크! 폰스어로 ‘승리’라는 뜻이야! 이름의 의미에 걸맞게, 굳건하고 믿음직한 모습 기대할게!”
폰스어. 라틴어로 원천, 흐름, 출처라는 뜻을 지닌, 이쪽 세계에서는 뿌리어로 통용되는 고대어.
특이하게도 나의 전생의 라틴어를 중심으로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그리스어, 이탈리아어와 같은 다양한 언어들을 뿌리라는 공통된 개념으로 묶고 있었다.
현재 내가 그녀와 소통하고 있는 언어가 마족어이며, 수많은 다종족들이 살아가며 종족별로 고유한 언어들마저 있는 명백한 이세계이나, 이것들은 구어나 공용어 혹은 시동어나 인명과 지명의 이해로 공존하고 있다.
언어로서는 쓰이지 않으나, 나이스나 서비스나 젠틀이나 댄디의 의미는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개념.
동방에서는 여전히 한자가 문화권에서의 굳건한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고.
전생 당시 여신에 의해 주입된 나의 기초 지식은, 서로 떨어져 있어도 영향을 받으며 닮게 되는 여러 무수한 쌍둥이 세계의 하나, 차원을 넘는 여러 신화와 전설과 환상의 요소들이 결집한 정류장과 같은 세계이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딱히 전생의 지구와 관련은 없는데, 이쪽에서는 고유한 섭리로의 발생들로 치부된다는 것.
지상의 서방이나 마계에는 전생의 중세 유럽의 귀족 작위들이 존재하는 것이 예시.
조금은 파헤치고 싶은 호기심이 드는 기묘한 세계였다.
“물론 일한 만큼 급여도 정기적으로 지급할 생각이야! 의식주를 포함한 기타 생활에 필요한 잡다한 것들도, 기본적으로 제공될 테지만 말이야!?”
화사한 눈웃음을 지으며 옆구리를 짚고는 연신 으쓱대는 그녀.
내게 퍽이나 호감을 품은 듯하다.
전생하자마자 봉사받은 것도 모자라, 이런 미인에게 이토록이나 사랑받을 수 있다니.
“적절한 시점에는 나의 성인 페를렌데도 계승받자! 지크 페를렌데! 그때야말로 완전한 가족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꼭 그럴 생각이야!”
이건 횡재다.
아랫도리가 제대로 작동하는 남자라면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할.
그리고 정말 아름답다. 또 지리고 싶을 정도로 야하다.
어여쁜 새하얀 아랫배의 저 앙증맞은 단춧구멍에다가 다시 한 번.
아름다운 입술에나, 밑의 비부들에마저.
선천적으로 타고난 테크닉으로 저 미체의 온갖 구석구석들을 활용받으면서.
전생보다 초강화된 정력과 크기. 안전 고용. 사회 보험. 숙식 제공. 서큐버스 섹파.
솔직히 나는 간택받은 상황 아닌가?
“……아무쪼록, 잘 부탁리겠습니다.”
“네에! 신비한 연금술의 세계에 온 것을 환영합니당!”
그녀가 다시금 화사히 웃었다.
핑크빛의 가장 진한 벚꽃 같은 눈동자들.
금빛의 허벅지까지 늘어져 살랑대는 양 갈래 머릿결들. 우윳빛의 잡티 하나 없이 뽀얀 몸.
존재감만으로 자체적인 후광을 발산하며, 이 지하실의 음침한 어둠을 몰아내는 것 같다.
멍한 눈길로 바라보는 내게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순식간에 특유의 새초롬한 페이스가 회복된다.
팔뚝을 끌어안은 그녀가 날개와 꼬리를 살랑대며 등을 돌렸다.
“……뭐어, 시간도 늦었으니.”
악마의 꼬리를 흔들대며 걸어가서 지하실로 나가는 계단에 올라선다.
밖으로 나가는 문고리를 붙잡으며, 어쩐지 부끄러움이 가득한 홍조의 기색으로 슬쩍 옆얼굴을 돌렸다.
“……침실로 따라와. 자세한 것은 몸의 대화로 하도록 하자.”
나와 추가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암시하는 그녀.
몽마 주제에 그런 말을 던져 놓고도 쑥스러웠는지, 먼저 홱 몸을 돌려 열린 지하실의 문으로 나가 버렸다.
나는 그녀가 사라진 밝은 조명 속을 멍하게 올려보았다.
천국에 입성한 것이 확실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