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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야짤작가-125화 (125/125)

〈 125화 〉 125, gif

* * *

물론, 티가 안 날 리가 없었다.

예상외로 시선이란 꽤나 강력한 힘이었고, 맞은편에서 자꾸 시선이 아래쪽으로 향하는데. 눈치를 못 챌 리가 없었다.

송하라 양의 힐끔거리는 시선을 따라가 보면, 어느새 종착역에 내 몸이 있는 게 보였다.

이러나저러나, 그녀 또한 똑같은 ‘여자’인 것이다.

오랜만에 받아보는 직접적인 시선이라 그런가, 나는 왠지 모를 신기함을 느꼈다.

‘재밌네.’

나는 속으로 살짝 미소 지었다.

당연히 저런 시선이 기분 나쁘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른 남성들은 몰라도 나는 애초에 다른 곳에서 온 인간이니.

오히려 저런 예쁜 여자가 성욕 섞인 시선을 보내니, 살짝 기쁜 마음도 있었다.

사람에게 받는 호감이란 언제나 기분 좋은 것이다.

“저, 편집자님?”

그래도 너무 뚫어져라 쳐다본 적도 있었기에, 적당한 때에 주의를 주긴 했다.

나쁘지 않은 시선이긴 했지만, 지금은 한창 대화중이었으니까.

가끔씩 대화가 끊기는 건 별로 좋지 않았다.

“아, 죄송합니다. 잠시 딴생각을 하느라···.”

다행히 그녀는 내 말을 듣고는 다시 대화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시선이 엉뚱한 데로 향했었다는 지적은, 굳이 하지 않았다.

이미 아까 두 번이나 당황시켰기도 했고, 여기서 더 놀렸다가는 진짜 삐져서 집에 갈지로 모르는 노릇이니 말이다.

그래도 갑자기 이런 노골적인 시선을 받고 나니, 잠시 장난기가 이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마침, 상대방은 최대한 시선을 억제하는 상태.

방금 내 주의를 받고는 어떻게든 시선을 얼굴에 고정하려 하지만, 그래도 조금씩 아래쪽으로 향하는 시선이 느껴지긴 했다.

대체 반팔 어디에 그리 꼴림 포인트가 있는 건지··· 나는 잘 모르겠다.

보통 여름에는 다른 ‘남자’들도 곧잘 반판티를 잘 입는 것 같은데.

이러다 나중에 민소매 입은 꼴이라도 보여주면 코피라도 흘리는 거 아닐까 걱정된다.

아무튼 이런 재밌는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짐짓 덥다는 듯, 손부채질을 하며 입을 열었다.

“후, 그나저나 여긴 에어컨을 틀어도 좀 덥네요. 아직 여름이라 그런가. 저녁이 돼도 기온이 내려가질 않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위쪽에 입은 반팔을 펄렁펄렁 휘두른다. 그럴 때마다 옷깃이 앞쪽으로 들리며 그 안에 숨겨진 속살을 조금씩 보여줬다.

씨발··· 사나이로 태어나서 이런 같잖은 유혹 질이나 하고 있다니.

살짝 자괴감이 들긴 했으나, 효과만큼은 확실했다.

어떻게든 내 얼굴 쪽으로 시선을 고정하려 했던 그녀의 눈이, 곧장 내 가슴팍 쪽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마치 안쪽에 숨은 속살을 보겠다는 듯 꽤나 집중하는 모습.

꿀꺽.

어디선가 목울대 움직이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이성을 되찾은 그녀는 애써 시선을 끌어올리며 맞장구를 쳐줬다.

“크, 크흠, 오늘 날씨가 특히 덥긴 했죠. 아무래도 슬슬 가을로 넘어가려 하다 보니, 마지막 기승을 부리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면서 다시금 음료수 컵을 들이키는 걸 보니, 확실히 동요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나는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상당히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 저렇게나 다채로운 반응을 보여준다는 것이.

마치 사람의 감정을 조금씩 조종하는 것 같아 일종의 정복감마저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솔직히 지금도 먹을 수 있을 거 같긴한데···.’

아마 이 상태로도 적당히 유혹하면 어렵지 않게 모텔로 데려갈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지금 약간 야스가 마렵기도 하고.

하지만 나는 굳이 그렇게까진 하지 않았다.

‘그러면 재미없지.’

이미 나는 방향성을 따먹히고 싶다,라고 정했다. 내가 모텔로 데려가봤자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최소한 그녀가 주도해서, 나를 그쪽으로 데려가게 하는 게 목적이지.

그쪽이 명분도 바로 설 테고, 무엇보다 이쪽이 더 재밌어 보였기 때문이다.

인생에 있어서 재미란 아주 중요한 항목이었다.

이 삭막한 세상에서, 일상에 가끔씩 찾아오는 소소한 즐거움은 가뭄에 단비와도 같기 때문이다.

때문에 나는, 가끔씩은 효율보다는 즐거움을 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간이었다.

나중에 먹을 음식이 더 맛있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기다려줄 수 있지.

그리고 지금 상태를 보아하니, 슬슬 얼마 안 남은 거 같긴 했다.

아마 곧, 곧 알맞은 타이밍이 나올 때가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을 이어나가고 있자, 문득 그녀가 입을 열었다.

“아, 그러고 보니.”

무언가가 방금 막 생각났다는 듯, 운을 띄우는 그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저번에 말했었던 친목 파티 있잖아요. 그 저희 측 회사에서 주최한다고 이야기했던.”

“아, 네.”

그러고 보니 그런 이야기가 오간 적이 있었지.

대충 2~3개월 뒤 정도에 파티 하나가 열릴 것이라고.

“그거 시기가 좀 더 앞당겨질 것 같아요. 아마 다음 달 말쯤으로 일정이 정해질 거 같은데.”

“네?”

나는 순간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다음 달 말이면, 거의 한 달 뒤 아닌가요? 갑자기 일정은 왜 바꿨데요.”

“그게··· 생각해 보니까 3개월 뒤는 너무 추울 것 같더라고요. 아무래도 그러면 준비하기 힘들 거 같기도 하고, 참석률도 안 좋을 거 같아서 일정을 좀 조절했습니다.”

“아하···.”

하긴, 추워지면 밖에 나가고 싶지 않지. 이해하는 부분이다.

보통 작가들은 태생 집돌이라, 회사에서 어느 행사가 열린다고 해도 귀찮으면 나가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일단은 전해줘야 할 거 같아서 얘기해 드렸어요. 혹시 다음 달에 바쁘거나 하지는 않으시죠?”

“아유 그럼요.”

솔직히 이건 나와 별로 상관없는 소식이었다. 그냥 날씨의 온도차가 달라지는 것뿐.

어차피 평소 하는 일이라고 해봤자, 집에 틀어박혀서 그림 그리는 게 다인데. 3개월 뒤든 1개월 뒤이든 상관은 없는 것이다.

물론, 기대는 되고 있었다.

나와 같은 회사를 다니고 있는 웹툰 작가들은 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나와 같은 직종인 만큼 평소 하루는 어떻게 보내는가.

이런 간단한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 시선에서 보자면 시간이 단축되었다는 것은 오히려 나에게 희소식이리라.

“아, 씁. 잠시만요.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자, 송하라 양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어쩐지, 아까부터 음료수를 그렇게 벌컥벌컥 마셔대더니. 기어코 아래쪽에 위치한 댐이 터지기 직전인 모양.

나는 아까와 같이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배웅해 줬다.

아무튼 식사 자리는 그런 식으로 흘러갔다.

*

그렇게 좌충우돌 식사 자리가 끝난 후, 송하라는 이세원을 집 근처까지 데려다줬다.

다행히 이번에는 자제력을 발휘해서 자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있었다.

“후, 덕분에 오랜만에 배불리 먹었네요. 오늘 즐거웠어요.”

“네~ 다음에 봬요.”

그렇게 이세원이 차에서 떠나고, 송하라는 이제 슬슬 퇴근하기로 했다.

시간이 꽤나 늦어서 그런지, 슬슬 피곤함이 몰려왔지만 기분만큼은 무척이나 좋았다.

그도 그럴게, 자신의 담당 작가와 이렇게나 길게 대화를 이어나간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애초에 이성과 이렇게나 대화를 한 게 오랜만인 그녀였다.

비록 돈 많고, 나름 예쁜 그녀였지만 이성과의 접점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교도 여중, 여고에 대학은 패스하고 곧장 취업전선에 뛰어들었었으니··· 이성이랑 큰 접점이 생길리가 없었다.

애초에 이성이 그리 급하진 않았으니,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있었는데.

“헤헤.”

오랜만에 한 이성과의 대화는 그녀의 생각 이상으로 재미있었다.

비록 중간중간에 어색하고 창피한 때가 있긴 했지만··· 그걸 감안해도 마찬가지였다.

상상만 해도 실실 웃음이 새어 나오는 기분. 엔도르핀이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만 같았다.

어찌 보면, 성욕이랑 엔도르핀은 동음이의어가 아닐까.

‘진짜 한 번만 먹어보면 좋을 텐데.’

꽤나 음습한 생각이었지만, 그녀도 ‘여자’인 만큼 저런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생각해 보라. 그림에서도 자신의 취향이었던 남성이, 갑자기 현실로 나타났다.

비록, 세세한 부분은 조금씩 다를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호감이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덕분에 아까 그가 옷을 펄럭일 때도 시선이 향할 수밖에 없었지.

얇은 옷자락이 흔들릴 때마다 얼핏 보이는 하얀색 속살은, 충분히 꼴림 포인트라고 할 만했다.

아마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있어도, 분명 쳐다봤으리라.

‘진짜 일부러 그러는건지···.’

아니면 그냥 무방비한 건지.

어쨌든 자신은 눈요기를 할 수 있었으니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그런 걸 생각하고 있자, 어느덧 자신이 살고 있는 건물이 보였다.

그녀는 차에서 내린 후, 대충 잘 준비를 마친 다음에 침대 위에 누웠다.

반쯤 충동적으로 마련한 식사 자리도 충분히 즐겼으니, 이제는 슬슬 꿈나라로 빠져들 차례.

자신은 내일도 출근이란 걸 해야하니 일찍 잠자리에 들 수밖에 없었다.

물론, 눕자마자 바로 잠들지는 않았다.

그녀 또한 현대인이었고, 현대인이라면 잠자리 위에서 핸드폰 좀 해줘야 하는 게 국룰이었으니.

마침 오늘 그가 방송에 참여하면서, 커뮤니티에서 볼 것도 많아진 참이었다.

여러모로 충격적인 방송이긴 했으니, 몇몇 게시물은 인기글에도 올랐겠지.

그렇게 그녀는 잠시 게시물들을 보면서 개인적인 시간을 가졌다.

‘오늘 예한결 방송 레전드였다’ 나 ‘이 새끼 존나 호감이다’등의 게시물을 보며 피식 웃는다.

전부 Hala작가와 관련된 이야기였다.

비록, 시간이 꽤 지나면서 불씨가 많이 사그라들긴 했지만. 그 잔재는 충분히 남아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인간이, 이렇게 알려져서 좋아해주는 걸 보니. 자신또한 기뻐지는 기분.

그렇게 한참을 인터넷의 바다를 유랑하고 있을 때였다.

문득 그녀의 두 눈에, 유독 독특한 게시물 하나가 들어온다.

[hala작가 꼬긁 모먼트ㅋㅋㅋㅋ.gif]

“···뭣?”

그 제목부터가 도저히 무시할 수가 없는 정말 개쩌는 어그로.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서 의문이 빗발쳤다.

꼬긁? 혹시 내가 알고 있는 그 단어가 맞나?

아니 그전에, 그런 귀한 장면이 있었다고? 자신이 방송을 보고 있을 때는 본 적 없는 장면 같은데.

그렇게 의문을 가지던 그녀는 이내 홀리듯이 게시물에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나온 것은 오늘의 방송영상이 담긴 gif 사진.

그래픽 파일 안에서는 예한결이란 인간이 한창 S 바이러스라는 작품을 소개해 주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시청자들의 시선이 캠이 아닌, 방송 화면에 몰려있을 시간.

그런 찰나에 이세원이 손이 움직였다.

마치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최대한 빠르게 불편한 부분을 제거하겠다는 듯 바지춤으로 향하는 그의 손.

그러고는 사타구니 쪽 근처의 옷가지를 잡고는 티 안 나게 잡아당겼다.

그제서야 그는 편해졌다는 듯이 다시 손을 내릴 수 있었다.

고작 그뿐인 영상.

3초 남짓 한 시간 동안, 그저 사타구니 쪽 바지춤을 정리한 것뿐인 영상.

만약 이 시청자가 아니었다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고 그대로 넘어갈 수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결국 이 행위는 누군가에게 들켜버렸고, 그 가치를 인정받아 영상 확대까지 당한 채 박제되어 있었다.

고작 3초 남짓 한 시간 만에 이뤄진 행위였지만, 사람들을 자극하기엔 충분한 것이다.

[엌ㅋㅋㅋㅋㅋ 이게 뭐냐 ㅋㅋㅋ]

[확실히... 그.. 남자는 아래쪽이 툭 튀어나와 있으니까 거슬릴만 하지..ㅋㅋ]

[몰래 했는데 이런 건 좀 지켜줘라 시발 ㅋㅋㅋㅋ]

[ ㅜㅑ ㅜㅑ]

[꽤나 튼실한가 보네요ㅎㅎ 저렇게 위치 바꾸는 것 보면 ㅎㅎ]

“큼흠···.”

송하라는 아무도 없지만 헛기침을 했다. 괜스레 얼굴이 빨개지는 기분이었다.

확대된 gif 사진은 고작 3초 남짓밖에 안 됐지만, 충분히 가치 있는 3초였다.

품이 큰 면바지라, 중요 부위의 윤곽이 안 보인 게 다행이면서도 아쉬울 따름이다.

과연 저 면바지 안쪽에는 얼만한 크기의 몽둥이가 숨어져 있을까.

무척이나 궁금한 주제였다. 상상만 해도 아래쪽이 간질거리고, 젖으려는듯한 기분···.

“···에이, 잠이나 자자.”

그러나 번뇌에 빠지려던 그녀는, 가까스로 이성을 되찾고 잠자리에 누울 수 있었다.

내일도 출근해야 하는데, 괜히 지금 이 시간에 ‘나쁜 물’을 빼버리면 내일이 힘들 수 있으니까.

그녀에게 그 정도 자제력은 있는 법이었다.

‘아 씨, 계속 생각나네···.’

물론, 저번의 배 사진처럼 자꾸 머릿속에서 아른거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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