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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야짤작가-123화 (123/125)

〈 123화 〉 123, 음료수

* * *

그녀의 차 설명은 운전을 하는 동안 계속해서 이어졌다.

대충 음식점까지의 거리가 20분쯤 됐었으니까. 그녀는 그동안 쉬지 않고 차에 대해 나불거린 것이다.

세상에··· 나는 아우츠인지 아우슈비츠인지 하는 차에, 그렇게나 많은 옵션이 달려있는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아가리 터는 솜씨가 예술이다. 이 정도면 자동차 판매원으로 취직해도 무난히 대성할 거 같은데.

‘차를 좋아하는구나.’

덕분에 그녀에 대해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솔직히 그다지 알고 싶었던 사실은 아니었다. 몰랐어도 괜찮을 거 같은데.

“죄송해요. 순간 흥이 나버려서 그만···. 너무 제 말만 한 것 같네요.”

그래도 자기 잘못을 알긴 아는 건지, 차에서 내리자 그녀가 쑥스러운 얼굴로 사과를 건넸다.

보통이라면 여기서 “아니요, 괜찮아요. 하하.”같은 말을 건네면서 상황을 무마시켰겠지.

적어도 그러면 분위기도 안 어색해지고, 상대방의 감정도 상하게 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가끔은 쓴소리를 해주는 사람도 있어야 하는 법이다.

이 사람··· 계속 이대로 놔두면 언젠가 큰 실수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때문에 나는 용기를 내며 말했다.

“그··· 너무 많은 재력 과시는 오히려 안 좋게 보일 수 있어요.”

솔직히 나는 그 돈 지랄하는 모습이 qwer1과 같이 친근해서 좋긴 했다만··· 다른 사람 입장에서는 모르는 일이니까.

“앗, 넵···.”

내가 그런 충고를 하자, 그녀가 침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마치 비 맞은 강아지를 연상캐 했다. 도도한 여우상의 얼굴에서도 비 맞은 개새끼의 모습이 보일 수 있구나.

이것도 처음 안 사실이다.

물론 충고만 하면 너무 어색해질 수도 있으니, 뒤에는 적절한 말을 내뱉어 주긴 했다.

“그래도 저는 재미있게 들었어요. 그래서 어느 식당으로 갈 생각인가요?”

나는 괜찮다는 말을 하며, 적당히 주제를 돌린다. 이걸로 그녀의 마음의 상처는 어느정도 치유될 수 있겠지.

캬, 나의 개쩌는 사교능력에 감탄이 다 나오는 중이었다.

“아, 크흠. 이쪽이에요. 따라오세요.”

그렇게 잠시 서있자 그녀가 기운을 차리고 나를 안내하기 시작한다.

언제나 그렇듯, 첫 시작은 험난하기만 했다.

*

“도착했어요.”

차에서 내린 후, 그녀가 안내한 곳은 넓은 어느 초밥 뷔페 안이었다.

럭셔리한 분위기에, 사방에 펼쳐진 갖가지 음식들이 보인다.

접시 위에 빼곡히 쌓인 초밥들과, 진열대 한구석에 따로 배치된 해산물 코너.

해산물 대신 다른 음식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양식 진열대까지.

나도 어느 정도는 아는 식당이었다.

대충 ‘쿠이쿠이’라고 불리는 초밥뷔페 식당이었던가?

···어디선가 실장석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이름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적당한 가격에 초밥을 원 없이 먹을 수 있는 장소였다.

옛날 세상에서도 몇 번 가본 적이 있는 장소였는데, 여기에도 있었구나.

왠지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오···.”

덕분에 나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이곳이 서민 친화적인 식당이긴 하지만, 그래도 뷔페인 만큼 자주 갈 수 있는 장소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 끼에 거의 3만 원 가까이하는 만큼,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도 거의 년 단위로 간 적이 없는 식당이었는데··· 설마 이렇게 오게 될 줄이야.

“혹시 해산물을 싫어하거나 하지는 않으시죠?”

“아유, 당연하죠.”

덕분에 송하라 씨에 대한 무한한 감사가 차오르고 있었다.

역시 우리 담당자님이야. 충성충성.

이런 식당을 데려가 준다면, 그까짓 차 얘기 정도야 한 시간까지도 들어줄 수 있다.

그 이상은 좀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우리는 적당히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흐음~.”

음식을 입안에 넣을 때마다 해산물의 풍미가 입안에 퍼진다. 새콤달콤한 밥알이 맛의 다양성을 늘려주는 건 덤이었다.

그런식으로 적당히 식사를 하고 있자, 그녀가 슬슬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방송은 어떠셨나요?”

슬슬 대화에 시동을 걸기 시작한 것이다.

계속 이상태로 밥만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역시 만남이 그리 길지 않다 보니, 현실에서는 아직 어색한 부분이 있는 우리였다.

나는 음료수로 대충 입가심을 한 후, 그녀의 질문에 대답했다.

“뭐, 재밌었던 것 같아요. 살짝 긴장되기는 했는데, 오랜만에 말도 많이 한 거 같고.”

그런 식으로 소감을 얘기하자, 송하라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신기하네요. 언젠가 인터뷰 같은 걸 할 거라고 예상을 하긴 했는데, 설마 이렇게 빨리할 줄이야···.”

“그러게요.”

나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신기하긴 했다.

먼 미래, 대작가 정도나 되어야지 인터뷰 같은 걸 할 줄 알았는데.

설마 커뮤니티 인기글 같은 걸 보고 Q&A 같은 걸 진행할 줄이야.

역시 사람 인생은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법이었다.

‘아, 그러고보니.’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자, 문득 머릿속에서 생각나는 게 하나 있었다.

생각해 보면··· 최근에 이 양반이 인터뷰라는 걸 명분 삼아 이상형이 어떻게 되냐고 물어본 적 있었지.

마침 현재 대화 주제도 인터뷰와 관련된 거였다.

만약,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며칠 전 나눴던 대화를 언급한다면 어떻게 될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장난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고보니, 인터뷰 때 이상형같은 건 안 물어봤네요.”

“푸흡­”

그리고 그 순간, 마침 음료수를 마시고 있던 송하라가 움찔했다.

컵안에 담긴 콜라가 찰랑이며 그녀의 목 넘김이 잘못되었음을 알려준다.

콜록콜록!

기침을 하면서도 애써 평정을 유지하려는 그녀가 보였다.

“하, 하하··· 그렇네요.”

그래도 역시 사회인이라 그런가. 자기 내면을 잘 숨길 줄 아는 그녀였다.

그래봤자 당황한 건 티가 났지만 말이다.

나는 여유롭게 그녀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네, 정말요. 때마침 누가 며칠 전에 예행연습을 해줘서. 그 질문만큼은 쉽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설마 물어보지 않을 줄은 몰랐어요.”

“크, 크흠. 그러게요. 그거 정말 아쉽게 되었어요.”

“난 또 갑자기 물어보길래, 어떤 인터뷰든 그런 걸 물어보는 줄 알았죠. 그런데 아니었네요? 이것 참 이제 보니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건 아닐까 몰라.”

“아, 하하···.”

그녀가 어색하게 웃으며 내 말에 맞장구쳐준다.

분명 똑바로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긴 하지만, 미묘하게 떨리고 있는 두 동공이 보였다.

마치 잘못한 걸 숨기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

사람의 감정이 가장 먼저 표현되는 곳은, 표정보다는 손과 발이다.

표정은 어찌 꾸밀 수 있어도, 손과 발까지 제어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녀 또한 태연한 척 표정을 가장하지만 갈 곳을 잃은 손짓은 숨길 수가 없었다.

컵을 자꾸 들었다 놨다 하는 게, 마치 어디 불안장애가 있는 사람같이도 보였다.

효과 확실하구먼.

장난치는 듯 물으면서도, 살짝 돌직구를 섞어 물었었다.

이로써 그녀가 저번에 물어본 ‘이상형’이, 순전히 자신의 호기심 때문이란 걸 확신할 수 있었다.

“후우···.”

그렇게 그녀의 반응을 보며 속으로 웃고 있기를 잠시.

그녀가 천천히 심호흡을 내쉬더니, 이내 차츰 진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치 설명하듯, 차분히 자신의 변명을 늘여놓았다.

“원래 인터뷰란 게 어떤 질문으로 구성하냐에 따라 천차만별로 바뀌니까요. 그··· 이상형이란 질문은 아무래도 작가님의 개성이 강하다 보니까 그런 질문이 나올 거 같다 생각했을 뿐이죠.”

“아하.”

“그러니까 저는 확률적으로 생각했을 때 가장 많이 나올 거 같은 질문을 한 번 물어봤을 뿐이에요. 그래도 인터뷰 도움은 됐지 않았나요?”

“···음, 그렇네요.”

나는 잠시 속으로 감단할 수밖에 없었다.

‘오.’

정말 뜻밖의 공격이었을 텐데, 이걸 이런 식으로 흘릴 줄이야.

변명이긴 했지만, 꽤나 그럴듯한 변명이었다. 적어도 이런 짧은 시간 안에 만들어내기 쉬운 변명은 아니었다.

역시 사람을 많이 만나본 만큼, 이런 임기응변 능력은 갖추고 있는 모양이었다.

‘솔직히 좀 더 압박할 수 있긴 한데···.’

잠시 그런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이미 상대방의 반응은 충분히 즐겼고, 여기서 더 따지고 들어가 봤자 괜히 불편하기만 할 테니 말이다.

그렇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식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덜그럭덜그럭.

다시금 식기 움직이는 소리가 테이블에 울려 퍼진다.

어딘가 고급스러운 분위기 속, 어색한 침묵이 우리를 사로잡았다.

아직 당황한 마음을 진정 중인 건지, 그녀가 새로운 주제를 던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테이블 맞은편에서 조용히 심호흡을 하는 그녀가 보였다.

“후우우···.”

아무래도 그녀는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시원한 액체를 마시는 버릇이 있는 모양이다.

그녀의 컵에 담긴 음료수가 빠른 속도로 비워지는 게 보인다.

확실히 속 안에 차가운 게 들어가면 정신도 차가워지기 마련이지. 나도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저 상태로는 아마 꽤나 오랫동안 조용히 있을 거 같은 느낌이었다.

보통 이런 상황이 되면 내가 먼저 화두를 열어야 하는데···.

‘어떡하지.’

딱히 생각나는 주제가 없었다.

그렇다고 혼자 오늘 방송 중에 있었던 일을 떠들기에는 살짝 뻘쭘하고··· 애초에 이야기를 풀어낼 만큼 내 말주변이 좋지가 않다.

그럼 어떡하지··· 그녀가 진정될 때까지, 계속 이 불편한 침묵 속에서 밥을 먹어야 하는가.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가혹했다.

그렇게 혼자 속으로 고민을 이어가고 있자, 문득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게 있었다.

‘아.’

이것도 과거의 일이었다.

이제는 몇 주 정도가 지났지만, 그래도 아직은 풀리지 않은 문제.

‘그러고 보니···.’

그러고보니 송하라 양이 내게 계약서를 건내줄 때, 커미션 신청을 하고 있었지.

그때 먼저 20만 원을 건네놓고는, 정작 커미션 내용을 말하지 않았었다.

거의 몇 주가 지났는데도 말을 안 하는 걸 보면, 까먹은 걸지도 모른다.

좋아 이야기할 주제로는 적합한 거 같았다.

“저기요, 송하라 씨.”

“?”

그렇게 나는 여전히 컵을 입에 물고 있는 그녀에게 질문을 했고.

“그러고보니 저번에 신청했던 야짤 커미션은 언제 말해줄 건가요?”

“쿠흡­”

다시 한 번 그녀가 음료수를 뿜어냈다.

‘이번엔 또 왜···.’

나는 좀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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