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화 〉 120, 그라데이션
* * *
솔직히 고백하겠다.
존나 쫄린다.
“예하! 안녕하세요 여러분들~”
방송이 시작되고 나서 사람들이 봇물 터진듯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정시 방송에다가, 게시판으로 공지까지 존나게 날려댔으니 사람이 몰려오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화면 오른쪽, 한 구석에서 채팅들이 마구 올라오는 게 보였다.
별 건 아니었고 [예하] 나 [ㅇㅎ]같은 인삿말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무래도 이 방은 ‘예하’가 인삿말인 모양이었다.
사실 이딴건 좆도 상관없고, 현재 시청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게 중요했다.
500, 1000, 1500···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시청자 수가 보인다.
지금은 성장세가 좀 줄어들은 것 같지만··· 아마 방송을 하다 보면 더욱더 늘어나겠지.
심지어 지금은 화면조차 제대로 바꾸지 않은 준비화면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1500이라니.
대략 고등학교 한 학년당 인원수가 300명이라 치면, 대충 다섯 학년이나 되는 고등학교 인원들이 이 방송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다.
거의 학교 한두 개 수준이다.
‘이런 씨발 세상에···.’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속이 울렁거리는 기분이었다. 저 단순한 숫자가 마치 하나의 군집체가 일렁이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하고, 온 몸이 뻣뻣하게 굳는 느낌이었다.
사람의 시선이란 이토록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속으로 나를 자책했다.
‘왜 이러지.’
난 원래 이런 성격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본래는 좀 더 재치있고 유머러스한 말빨을 가진 채, 이번 방송에서 하하호호 즐기다가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지금 상태로는 그냥 어버버 거리다가 개찐따 소리를 듣고 방송을 마칠 기색이었다.
그렇다.
생각해보니 본인은 방구석 아싸.
이렇게 사람들이 몰린 장소에는 그리 큰 면역력이 없는 것이다.
설령 그 사람의 대부분이 시청자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후, 후우 진정하자.’
그래도 애써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다스리기는 했다.
그래도 내가 직접 나가고 싶어서 참여한 방송인데, 이렇게 쫄아있을 수는 없지.
내가 이러는 와중에도 방송은 차근차근 진행되어가고 있었다.
[예하 왜 오늘은 캠이 저런 식임?]
“아, 오늘은 제가 특별 게스트를 모셔왔기에 이렇게 설정했습니다! 그리고 사실 내 얼굴 보러온 것도 아니잖아.”
[ㅋㅋㅋ 그렇긴 해]
[그래서 그 게스트란 사람은 어디있음?]
[ㄹㅇ ㅋㅋ 얼른 데려오라고]
참고로 나는 지금 캠 밖에서 심호흡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
좀있다 소개할 때 안으로 들어오라나 뭐라나.
그래도 채팅창은 나름 잔잔한 편이었다.
5일동안 이 사람 방송을 좀 봐왔는데, 전체적으로 깨끗한 편인 듯 했다.
아무래도 초면에 어색한 게스트를 자주 불러오다보니, 억지로라도 채팅창 관리를 하는 듯 했다.
그렇게 올라오는 채팅창을 잠시 보고 있자니, 찰랑! 하며 돈 들어오는 효과음이 들려온다.
도네이션이었다.
‘증오로 가득해’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저희 동네 미친놈이 여기 나온다는데 그거 참 트루인가요?
어디선가 많이 본 닉네임이었다.
그래, 너도 따라왔구나. 예한결 양이 홍보용 공지를 날렸다던데, 아무래도 그게 타르탈로스까지 퍼진 모양이었다.
굳이 안 따라와도 되는데··· 그다지 반가운 소식은 아니다.
그와 동시에 순식간에 더러워지는 채팅창.
[ㅋㅋㅋㅋ 이 미친놈 이제는 아예 지 몸 직접 팔려고 방송까지 나오네]
ㄴ 상대방이 강퇴당했습니다!
[딴 거 다 필요없고, 얼른 쥬지 보여줘ㅠㅠ 오늘 그거 깔려고 나온 거 맞지?]
ㄴ 상대방이 강퇴당했습니다!
[지 그림처럼 오늘은 섹스하러 나온 건가요?]
ㄴ 상대방이 강퇴당했습니다!
[갑자기 채팅창 왜이럼;;]
[다들 키보드에서 손 떼!!]
맑은 물도 미꾸라지 몇 마리면 얼마든지 흙탕물로 바꿀 수 있다고 했나.
지금이 딱 그꼴이었다. 깨끗해 보이던 채팅창이 더러워지는데에는 단 몇마디면 충분했다.
“어, 어? 갑자기 채팅창이 왜이러지? 오늘따라 새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네요 하하···.”
그래도 예한결은 애써 웃으며 채팅창을 관리했다.
보이지 않는 총질이 계속해서 채팅창을 향한다. 매니저까지 동원한건지 강퇴당하는 수가 상당했다.
다행히 공개적인 처형이 몇 번 이루어지자, 채팅창이 잠시 조용해지기는 했다.
“크흠, 흠. 원래는 좀 더 있다가 소개하려고 했는데. 지금 하는 게 낫겠네요. hala작가님 들어오시죠!”
이윽고 그녀가 과장된 몸짓을 취하며 내 쪽을 향해 손을 펼친다. 들어오라는 소리였다.
나는 그 말에 따라 의자를 이끌고 캠 안으로 들어왔다.
오른쪽에 자그맣게 배치된 캠 안에, 반팔 반바지를 입은 내 모습이 비친다.
딱 목부분에서 짤린 게 마치 신화속의 듀라한을 보는 것 같았다. 실제로 이런 셋팅을 듀라한 캠이라 부르던가.
순간 1,500명에 달하는 눈이 내 몸을 시선강간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그래도 일단은 어색하게 인사를 날려주긴 했다.
“안녕하세요. 베스트툰에서 ‘S바이러스’라는 작품을 연재중인 하라 라고 합니다······.”
마치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가 방송을 향해 송출된다.
딱히 한 것도 없는데 모습이 나타나자마자, 채팅창이 시끄럽게 변하기 시작했다.
[오 ㅋㅋㅋ]
[목소리 뭐야.. 목소리 뭐야...]
[반팔 반바지 입고 온거 봐 씨발럼ㅋㅋㅋ 아주 따먹어달라고 광고를 하네 ㅋㅋ]
ㄴ 상대방이 강퇴당했습니다!
[지금 여름이에요 미친련아... 제발 밖에 좀 나가...]
[다른 건 모르겠고 한 번만 따먹어보고 싶다]
ㄴ 상대방이 강퇴당했습니다!
타르탈로스에서 온 죄수새끼들과, 기존 시청자들이 섞여 어지러운 광경을 연출한다.
그걸 본 예한결이 어색하게 내게 말했다.
“아하하, 그 작가님 생각보다 팬이 많으시네요?”
“하하···.”
나 또한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어렵사리 ‘팬’이라고 돌려 말하기는 했지만, 나에게는 정신병자 친구들이 많아보인다는 소리로밖에 안 들렸다.
동네친구들의 추태에 오히려 내가 창피해지는 기분이었다.
“그··· 죄송합니다.”
“아뇨 뭐. 채팅창도 활발해지고 좋죠. 하하···.”
지금 깨달은건데. 이 사람 생각보다 돌려까기를 잘 하는 모양이었다.
과연 사회생활을 오래해서 그런가. 좆같은 것도 좋게 포장하는 솜씨가 남다르다.
“그럼 슬슬 진행할까요?”
“아, 넵.”
그래도 채팅창이 혼란스러워져서 그런가. 이상하게 마음 한 켠이 편해지는 기분이었다.
외딴 장소에 툭 떨어진 느낌에서, 비록 바보들이라고는 해도 아군이 생긴 느낌이랄까.
본래 사람이란 뭉치고 모일수록 자신감이 높아지는 법이다.
내게는 저 바보들이 일종의 아군처럼 느껴졌다.
그럼 됐다. 일단 아는 애가 있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앞으로의 방송은 좀 더 편안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그 이후의 방송은 꽤나 무난하게 진행되었다.
사실 진행이라 해봤자 별 건 없었으니까.
그냥 간단히 소개하고, 농담하고, 물어볼 거 물어보면서 진행하다보면 시간이 가는 것은 금방이다.
이세원이 예상했던 대로 긴장은 방송이 진행되면서 차근차근 풀렸다.
쿵쿵 뛰던 심장이 차츰 조용해지고, 빳빳하게 굳어져있던 근육도 조금씩 이완된다.
'sexonbeach'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옆에 작가분이 오늘따라 조용하시네요 ㅎㅎ 인터넷에선 그만한 여포가 없으시던데 ㅎㅎ
“···하하.”
물론, 아직도 긴장중이긴 해서 평소보다 조용하긴 하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사람이 매 상황에 똑같은 텐션을 유지하냐고.
그러니 이 정도 굳어있는 건 불가항력이었다.
그래도 방송 자체는 문제없이 순항중이다.
이건 방송의 주인인 예한결조차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다행히 문제없이 흘러가네.’
솔직히 처음에는 어색하고 불편해서, 과연 방송이 스무스하게 진행될까 걱정이 되었는데.
다행히 그건 기우였나보다.
비록 조금 굳어있긴 해도, 이런 건 충실히 대답해주고 있으니까.
“그러고보니 작가님은 어쩌다가 그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가요?”
“그냥··· 유일하게 잘 하는 게 그런 거였거든요. 그러다보니 저절로 빠진 거 아닐까요?”
“그러면 그냥 평범한 그림을 그려도 됐을 텐데. 왜 하필 야한 걸···.”
“음, 제가 그런 쪽을 좀 더 잘 그려서요. 실제로 좀 더 관심있기도 하고.”
[ㅍ ㅑ ㅍ ㅑ;;]
[들었냐? 야한 거에 관심있대 ㅋㅋㅋ]
[오빠 내 몸도 꽤나 야릇한데 혹시 와서 볼 생각 없어? ㅋㅋ]
[ㄴ 야릇하긴 ㅈㄹ ㅋㅋ 살쪄서 가슴만 튀어나온 거겠지]
[아니, 오늘따라 채팅창 왜이러냐;;]
[시끄럽고 얼굴이나 보여줘]
···비록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악질들이 방송에 꽤나 많아졌긴 하지만.
저 정도는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어차피 강퇴해도 얼마 안 되서 부계정으로 돌아오는 녀석들이니까.
그래도 아직까지는 방송이 터질정도는 아니었으니, 무시하기로 했다.
“그러고보니 작가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네요! 직관한 제가 말씀드리자면, 무척이나 잘 생기셨습니다!”
[오 ㅋㅋㅋㅋ]
[립서비스 오지누]
[그러면 얼굴 보여 줘 보여주는 김에 쥬지도 까고ㅋㅋㅋ]
ㄴ 상대방이 강퇴당했습니다!
[아직 총알이 남아있었네 ㄷㄷ]
[^^7]
[^^7]
“그러게요. 작가님 혹시 얼굴 공개할 생각은 없으신지? 원하신다면 지금 당장 캠을 위쪽으로 조정해드릴 수 있는데.”
“음, 아직은 없네요. 아무래도 신상문제도 있고, 개인적으로 곤란한 부분이 있어서···.”
적어도 자신의 아바타가 기억속에 살아있는 한, 와꾸를 깔 생각은 없었다.
“그러면 나중에 공개할 생각은 있는지?”
“글쎄요. 지금 반응보면 까보고 싶기도 한데. 언젠가는 하지 않을까요?”
인터뷰는 대충 그런식으로 흘렀다.
예한결이 질문을 하면, 이세원이 적당히 말을 골라서 대답을 한다.
비록 무난할 지언정 안정성 있는 시간이 이어졌다.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다행이야.’
비록 이 사람이 방송에 악질들을 끌고 왔긴 했지만, 적어도 본체는 정상처럼 보여서.
말수가 좀 적어보이긴 해도, 현재 그녀가 보기엔 얌전하고 차분한 사람이었다.
그거면 되었다.
비교적 깨끗한 방송을 지향하는 예한결에게는, 조용한 게 오히려 좋았다.
비록 방송의 재미는 떨어질지 모르겠지만, 무엇이든 안정성이 최고인 법이었다.
그렇게 Q&A를 어느정도 이어가다보니, 어느덧 마지막 질문이 찾아와 있었다.
작가와 관련된 질문들은 거의 다 했고, 마지막은 그의 그림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주로 그의 취향과 관련된 이야기들.
“이어서 마지막이네요. 그러고보니 작가님은 좋은 그림실력에 비해, 좀 하드한 그림들을 많이그린다고 하던데··· 그 이유가 뭐죠?”
일단 하드한 그림이다, 라고 순화해서 말하기는 했는데.
까놓고 말하자면 잔인한 그림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예전에 비해 줄어들었다고는 해도 S바이러스에도 은근히 피튀기는 그림들이 많았다.
물론··· 기본 골조가 좀비물이다 보니 어느정도 잔인한 건 어쩔수 없지만.
그래도 hala라는 작가의 작품에선 수상할 정도로 디테일한 장면이 많이 나온다는 것이다.
어째서?
분명 보통의 ‘남자’들은 그런 잔인한 걸 싫어하는 걸로 아는데. 이상하게 이 남자는 그런 게 많이 나왔다.
물론, 나라의 규제를 받는 공적인 사이트다 보니까 너무 심한 건 나오지 않았지만.
맨 처음 팩시브에 데뷔할때는 그런 심한 것도 거리낌 없이 그린 모양이고 말이다.
아무튼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음···.”
그 질문을 들은 이세원은 잠시 고민하는 듯한 얼굴을 지었다.
그러더니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였다.
“그, 사실은 제가 그림을 그릴 때 은근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든요.”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본래 야릇한 여성 야짤을 주로 그리던 그가, 갑자기 웬 씹게이같은 남성짤들을 그리기 시작했다보니.
시각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피곤함을 느끼는 것이다.
그건, 조금 적응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제가 남자 작가다 보니까. 남자놈들 그릴때마다 살짝 역하기도 하고, 눈쌀 찌푸려지기도 하고···.”
천천히 말이 이어진다.
이번에는 아까전처럼 몸이 굳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저랑 달리 여러분들은 그런 그림들을 보고 좋아라 하잖아요? 뭐 남자 나체나오는 그림이나, 아래 막대기 나오는 그림이나. 아무튼 좀 야릇한 것들.”
신기한 일이었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긴장해서 말도 제대로 꺼내기 어려웠는데.
지금은 입에 기름칠이라도 한 듯 말이 술술 나오고 있었으니까.
마치 연설자가 자신이 연설할 위치를 찾은 듯, 무대 위 연극자가 연극할 장소를 찾은 듯.
제 집 안방마냥 편안한 기분이었다.
왜, 이제 와서 긴장이 풀린 걸까?
아니면 방송에 오래 참여하다보니 이제야 적응이 된 것일까?
말을 쏟아내면서도 속으로 생각하던 이세원은 곧이어 깨달을 수 있었다.
아니.
“어··· 그렇죠? 하하, 갑자기 그렇게 직설적으로 말하니 좀 어색하긴 한데···.”
“예, 그런데 저는 그게 좆같더라고요.”
이것은 분노다.
“······네?”
“좆같다고요.”
속에 쌓여서 웅덩이가 되어버린 하나의 억울함이었다.
그것이 쌓이고 쌓여, 마침내 입으로 흘러나오고 있었기에 이렇게나 말이 잘 나오는 것이었다.
제동이 걸리는 이성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 그저 감정으로 호소하는 말이었기에.
“나는 집안에서 개같은 게이짤 그리면서 고통받고 있는데, 누구는 이걸 보면서 아랫도릴 적시고 있으니 이 시버럴 것들이······.”
“어, 어···?”
말하자면 지금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건 하나의 원독(??)이오, 갈무리 되지 못한 한(?)이니.
“···아니, 내가 꼴리지 못하는 거에 너네들은 왜 꼴려하냐고. 시발.”
쉽게 말하자면 급발진이고, 그라데이션 분노였다.
그렇게 잠시동안 투덜거리듯 말하던 그는 이내 결론을 내었다.
“그래서 적당히 잘라버렸습니다.”
“······.”
“내가 느끼는 좆같음을 조금이라도 맛 보라고, 적당히 잘랐어요.”
“······.”
일반인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정신나간 논리회로에, 예한결은 잠시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동시에 깨달았다.
역시 이 인간도 정상은 아니구나, 하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