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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야짤작가-119화 (119/125)

〈 119화 〉 119, 계획

* * *

5일이란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사실 그리 긴 시간도 아니었으니까. 그냥 집에서 그림 좀 그리고, 가끔 아린이나 은별이를 만나서 놀고.

그러다 보면 5일이 삭제되는 것은 금방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5일 후.

나는 전신 거울 앞에 서서 잠시 내 복장을 체크하는 중이었다.

“흠.”

깔끔한 검은색 반팔 티와, 갈색의 면 반바지가 보인다.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무난한 복장이었다.

솔직히 오늘은 긴 바지가 마려운 날이긴 한데, 아직 날이 더워서 반바지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 무난한가···.”

잠시 이런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애초에 가서 캠방을 집중적으로 하는 것도 아닐 텐데. 그냥 대충 입고 가지 뭐.

그리고 원래 무난한 게 최고인 법이었다.

굳이 눈에 띄는 복장을 골라서 호불호를 만들기보다는, 무난한 호감을 만드는 게 낫지 않겠는가.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나는 집에 딱히 꾸밀만한 복장이 없었다.

해봤자 셔츠 정도 뿐이지.

그러니까 이 반팔 반바지 차림은 나의 최선이라는 것이다.

이딴 게 최선이라니··· 이래서 내가 아싸인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오늘은 그 방송의 게스트로 출연하는 날.

덕분에 아싸찐따인 나는 벌써부터 가슴이 쿵쿵 뛰는 중이었다.

‘좀 긴장되긴 하네···.’

본래 사람이란 처음인 것에 긴장과 두려움을 느끼기 마련이다.

처음이기에 아는 것이 없고, 그렇기에 대처법 또한 없는 상태니까.

혹시라도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닐까 괜스레 불안해지는 것이다.

혹시 내가 말실수를 하지는 않을지, 어떤 흑역사는 쓰지 않을지 말이다.

설령 그것이 허무맹랑한 상상이라 할지라도, 불안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상대가 하꼬면은 또 몰라.’

찾아보니 나름 대기업의 스트리머더라.

평균 시청자 2000명에, 유튜브는 무려 50만 명이나 하다니.

웬만한 경기장 하나는 충분히 채우고도 남을 수준이다. 긴장이 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이미 나는 상대의 부탁을 수락했고.

이미 약속 날까지 온 상황이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은 없었다.

그래도, 마냥 긴장만 되는 것은 아니었다.

‘재미는 있겠지.’

나는 피식 웃으며 방 안을 나섰다.

*

예한결, 그녀는 5일 동안 기다리고만 있지 않았다.

그녀는 스트리머였고, 그에 맞추어서 해야 할 일 또한 많았으니까.

게스트 하나 섭외했다고 마냥 장땡이 아닌 것이다.

게스트와 함께 할 여러 토크도 준비해야 했고, 흥미를 끌 만한 콘텐츠 속 콘텐츠까지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중요한 건 뭐니 뭐니 해도 광고였다.

<안녕하세요! 제="" 구독자님들!="" 제가="" 아주="" 오랜만에="" 게스트를="" 모셔왔습니다!=""/>

무릇 잔치도 소문이 나야 사람이 몰려오기 마련이니, 미리 유튜브나 스트리머 플랫폼에 공지를 올리는 것이다.

여태껏 지루하기만 했던 자기 방송에, 오랜만에 게스트가 왔다.

심지어 이번 게스트는 무려 ‘남자’인 데다가 성인 웹툰 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진 사람이다.

관심이 안 갈 수가 없을 것이다.

아마 분명 꽤나 많은 시청자 수가 몰리겠지.

아무튼 그렇게 방송 준비를 마치고, 공지를 통해 소문까지 낸 그녀가 현재 느끼는 감정은.

‘후··· 불안해.’

다름 아닌 불안감이었다.

이세원과 마찬가지로, 그녀 또한 일종의 불안감을 느끼는 중이었다.

생각해 보면 자신은 상대의 모습에 대해 아는 게 고작 사진 한 장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혹시 이상한 사람이 나타나면 어쩌나··· 괜스레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와꾸가 개 빻았기 때문에 얼굴을 올리지 않은 거면 어쩌나.

아니, 그전에 그 사진 자체가 보정이라서 몸매조차 기대 이하면 어떻게 하는가.

··· 상대방에게 실례가 되는 생각이긴 했지만, 그래도 불안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물론 자신의 주류는 캠방이 아니었고, 얼굴 캠을 깔 예정도 없긴 했지만···.

그래도 한 명의 ‘여자’로서 기대감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얼굴 캠을 안 깐다 뿐이지, 몸캠까지는 깔 생각이니.

이왕이면 잘생긴 남성이 나와줬으면 하는 바렘이었다.

띵동­!

그렇게 혼자 잡생각을 이어나가고 있자, 문득 현관문 쪽에서 초인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슬슬 약속시간이 다 되었으니, 아마 누르는 사람은 그 게스트겠지.

“네에! 나가요!”

그녀는 그렇게 외치고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문 쪽으로 갔다.

후우,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현관문을 연다.

이제는 5일 동안 상상만 했던 상대방의 정체를 확인할 차례였다.

그렇게 현관문을 열고 확인한 그녀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안녕하세요.”

무표정한 얼굴로 시크하게 인사를 건네는 상대방이 보인다.

새하얀 피부와, 그와 대비되게 눈가에 짙은 다크서클이 쌓여 있는 남성이었다.

찬란한 햇살 때문인지 살짝 찌푸려진 눈은, 마치 누군가를 째려보는 것 같기도 하다.

“워, 어, 우 워.”

전체적으로 날카롭게 생겼지만, 100중 99는 충분히 잘생겼다 할 외모.

기대 이상의 모습에 그녀는 잠시 넋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임기응변 능력이 뛰어난 스트리머답게 곧장 정신을 차리고 똑같이 인사를 날린다.

“아! 안녕하세요. 이야 인물이 훤하시네요 하하···.”

일단 외모만큼은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

물론, 걱정 하나가 줄었다고 해서 문제가 완전히 해결이 된 건 아니었다.

사실 외모는 부가적인 요소에 불과했고, 진짜 중요한 건 얼마나 대화를 잘 이끌어나갈 수 있을지였으니 말이다.

티키타카가 잘 되면 잘 될수록, 방송의 재미 또한 업되는 법이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상대방은.

“하하, 오늘 날씨가 꽤 더웠을 텐데 이렇게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뇨 뭐. 불러주셨는데 와야죠.”

“하하··· 아 혹시 목마르시진 않나요? 냉장고 안에 음료수가 있긴 한데.”

“음, 지금은 괜찮은 것 같아요.”

“하하··· 네.”

···그리 좋은 파트너는 아닌 것 같았다.

물론 만난 지도 이제 5분이 넘지 않았고, 나눈 대화도 열 마디를 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다름 아닌 상대방의 와꾸 때문이었다.

전체적으로 차가우면서도 날카로운 분위기가 느껴지는 인상이었다.

좋게 말하면 뭔가 도도해 보였고, 나쁘게 말하자면 존나 까칠하게 보이는 인상이었다.

그러니, 어찌 쉽게 대할 수가 없는 것이다.

혹시 편하게 장난이라도 쳤다가 쌀쌀한 반응이 돌아오면 어쩌나··· 그런 걸 생각하고 있다 보면 저절로 움츠려들기 마련이었다.

이세원에겐 슬프게도, 그녀 또한 외모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머릿속 한편에서는 아예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게 인터넷의 그 인간이라고?’

마치 인지부조화가 오는 기분이다.

진짜 이 인간이 인터넷에서 그리 추하게 구걸하고, 욕해대던 인간이 맞는가.

아무리 봐도 현재 보이는 외모랑 전혀 안 매칭이 안 되는데···.

‘말수도 꽤나 적으신 것 같고···.’

혹시라도 다른 대행인을 보낸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그래도 일단은 방송인답게 대화를 이어나가긴 했다.

“우선 제 소개부터 할게요. 유튜브에도 적혀있듯 예한결이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아, 이세원이라고 해요. 반갑습니다.”

이름이 이세원이었구나.

무난하다면 무난하고, 깔끔하다면 깔끔한 이름이다.

예한결은 그리 생각하며 어색한 분위기에서 말을 이었다.

“크흠, 그럼 오늘 일정부터 간결히 얘기해 드릴게요.”

“아, 넵.”

일단 오늘 방송 내용부터.

비록 실시간에, 진행자의 임기응변이 중요한 인터넷 방송 일지라도.

이렇게 게스트를 모셔왔을 땐, 기본적인 틀은 정해놓는 게 편했다.

그래야 방송도 쉽게 느슨해지지 않고, 방향성도 잘 잃지 않으니까.

“일단은··· 가볍게 소개부터 시작할 예정이에요. 공지는 했지만, 그래도 방송으로 말하는 게 더 좋으니까. 그다음엔 가볍게 인터뷰를 좀 하고···.”

물론 일정이라고 해서 막 빡빡한 느낌은 없었다.

그냥 초반엔 간단한 소개와, 몇 가지 물어보는 게 다겠지.

그리고 애초에 오늘의 중요 콘텐츠는 따로 정해 둔 상태였다.

“그리고 후반부 쯤엔··· 작가님 작품을 잠시 감상할 예정이에요.”

“아, 네··· 네?”

그리고 순간, 여태껏 가만히 고개만을 끄덕이던 그가 되물었다.

시종일관 굳어있었던 눈에 잠시 이채가 담긴다. 아무래도 방금 말은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모양이었다.

순간 예한결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 이건 너무 갔나?’

하긴, 무시하기 힘든 말이겠지. 무려 시청자들 앞에서 낭독회를 한다는 것인데.

심지어 그저 그런 만화도 아닌, 무려 성인 웹툰이다. 부담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건 빼놓을 수 없는 행사였다.

적당히 감상하면서 리액션 하기만 해도 1~2시간 잡아먹는 것은 금방일 텐데, 거기에 더해 사람들 반응까지 기대할 수 있다.

이런 개 꿀 콘텐츠를 쉽게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부터 그녀의 설득을 위한 똥꼬쇼가 펼쳐졌다.

대충 감상회를 하면 분명 시청자들 반응이 좋을 거라느니, 작가님의 작품 홍보에도 충분한 홍보가 된다느니.

나중에 방송이 잘되면 페이는 확실히 챙겨주겠다느니.

사람 분위기가 좀 까칠해 보여서 그런가, 설득하는 말은 술술 잘 나왔다.

어느 정도 말을 이어가니 그도 슬슬 납득하는 분위기였고 말이다.

그렇게 말을 이어가던 도중 그가 물었다.

“아니, 사실 그건 큰 상관은 없는데··· 애초에 방송에서 그런 거 보면 잘리지 않아요?”

“아, 그런 건 괜찮을 거예요. 감상회 할 때쯤에 따로 19방송을 걸어두면 적당히 넘어갈 수 있을 테니까.”

물론 19를 걸었다고 만사 오케이인 건 아니다.

19딱지를 믿고 방송에서 야스 같은 걸 하면 가차 없이 영정을 먹겠지.

그러나 2D에 한해서는 어느 정도는 노출을 해도 봐주는 편이었다.

그녀가 이렇게 설명을 하자, 그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야 뭐···.”

예한결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다행이다.

혹시라도 완고하게 거절하면 어떡하나 했는데. 의외로 쉽게 납득하는 모습이라서 말이다.

만약 여기서 또 거절했었다면··· 자신은 더 이상 그를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그럼··· 슬슬 들어갈까요?”

그렇게 대화를 마친 그 둘은, 슬슬 방송을 위해 방음부스로 들어갔다.

그들의 방송 시작은 어색하고 불편하기만 했다.

······사실 이런 분위기가 된다면, 보통 이세원이 먼저 나서서 풀 것이다.

그 또한 어색한 걸 싫어하는 인간이기도 했고, 자신은 입을 다물면 한없이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 줄 아는 인간이었으니.

웬만하면 먼저 나서서 분위기를 풀려고 했겠지.

하지만 그는 오늘 시종일관 굳어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굳은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와 시팔, 왜이리 본격적이냐···.’

단순히 긴장했기 때문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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