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야짤작가-118화 (118/125)

〈 118화 〉 118, 데샤앗

* * *

가끔씩 사람들이 생각하길, 보통 스트리머나 유튜버들은 개꿀 직업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가만히 방 안에 앉아 게임하면서 돈을 번다고, 또는 아무 능력 없이 운 좋게 뜬 사람들이라고 말이다.

글쎄··· 적어도 예한결, 그녀가 생각하기에는 이곳도 꽤나 살아남기 빡센 시장이었다.

물론 운 좋게 뜬 사람도 있긴 하겠지.

하지만 보통의 경우 뜨려면 적어도 하나 이상의 재능이 필요하기 마련이었다.

단순히 외모가 특출나거나, 아니면 사람을 자지러지게 할 수 있는 말빨을 가지고 있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개쩌는 컨텐츠를 짜낼 수 있는 참신한 머리라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예한결 같은 경우에는 3번째였다.

외모도 평범하고, 말빨도 그럭저럭인 그녀가 뜰 수 있었던 이유는 특출난 콘텐츠 짜기 능력 덕분이었다.

그렇기에 평균 시청자 수 2000명, 유튜브 구독자 수 50만 명에 달하는 중소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거겠지.

아무튼 그런 이유로 그녀는 방송계도 살기 어려운 곳이라고 생각하는 인간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 어려움의 논리에 따라, 현재 머리를 싸매는 중이었다.

“끄으응···.”

예한결, 사실 그녀는 요즘 슬럼프를 겪고 있었다.

딱히 방송인 본인에 의한 슬럼프는 아니다. 갑자기 번아웃이 왔다든지, 방송에 회의감이 들었다든지 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문제라기보단, 방송 그 자체의 슬럼프라고 보는 게 맞겠지.

요즘 방송 성적이 꽤나 저조한 탓이었다. 평균 시청자 수는 물론, 유튜브 조회수까지 열심히 떡락하고 있었다.

이유도 어렴풋이나마 짐작이 갔다.

매번 흥미가 갈 만한 컨텐츠를 가져왔던 자신이, 요즘엔 허구헌날 게임 영상이나 쳐 올리고 있으니 조회수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뭔가 흥미가 생길만한 걸 가져와야 하는데···.”

아쉽게도 요즘엔 그런 게 잘 안 보였다.

그녀는 많고 많은 컨텐츠 중에서도, 보통 게스트를 모셔와 함께 대화를 하는 컨텐츠를 주로 하는 편이었다.

약간의 사교성은 필요할지 몰라도, 그건 특출난 말빨이나 전문적인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건 보통 게스트가 충족해 주니 말이다.

그런데, 요즘엔 그 게스트란 인물이 잘 보이지가 않으니··· 통탄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하, 어쩌겠어 찾아봐야지.”

물론,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는 법이었다.

쓸만한 게스트가 보이지 않는다면, 스스로 찾아봐야겠지. 그게 자신의 생존 방법 아니었나.

실제로 그녀는 흥미가 돋을만한 인물을 찾는 안목이 좋은 편이었다.

아무래도 어그로를 끌어야 하는 유튜브를 몇 년간 이용하다 보니, 자연스레 얻게 된 능력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게스트 조사를 위해 다시 인터넷을 키기 시작했다.

게스트를 찾는 방법은 별거 없었다.

그저 흥미로운 인물이 나올 때까지, 정보의 바다를 유랑할 뿐···.

언제 끝날지, 찾을 수는 있는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운이 좋으면 빨리 벗어나는 거고, 그게 아니라면 며칠 밤을 새워도 나갈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엔 운이 좋았다.

커뮤니티를 돌아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곧장 재밌어 보이는 글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

인기글에 올라온 지 며칠도 지나지 않은, 따끈따끈한 게시글.

[옆동네 감옥에서 웬 미친놈이 출몰함 ㅋㅋㅋ](182)

왜인지 댓글이 꽤나 쌓여 있는 글이었다. 거기에 더해 제목에 붙어있는 미친‘놈’이라는 단어까지.

그 덕분에 그녀는 홀린 듯이 그 게시글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처음 들어가자 보인 것은 웬 야시시한 그림들이었다.

남녀가 교접하고 있는 그림, 단체적으로 난교를 하고 있는 그림, 또는 알몸의 남성이 피 칠갑을 한 채 어떤 여성을 강간하고 있는 그림까지.

일단 규제를 피하기 위해 중요 부위에 새까만 김이 붙어 있긴 했지만, 어쨌든 야한 그림인 것은 변함이 없었다.

심지어 그림의 상황 또한 상당히 거칠고 하드하기까지 하니.

‘오, 오우야···.’

그녀가 당황을 하기에는 충분했다.

비록 지금은 근심에 쌓여 있다고는 하나, 그녀 또한 분명한 ‘여자’였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야한 그림을 보면 그녀 또한 흥미가 갈 수밖에 없었다.

“크흐흠···.”

그녀는 괜히 헛기침을 하며 스크롤을 아래로 내렸다.

직업이 방송인이라 그런가, 저런 혼잣말이나 의성어도 입 밖으로 내는 그녀였다.

그렇게 스크롤을 내린 그녀는 아주 놀라운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아니, 남자라고?”

방금 그 꼴리는 그림을 그린 인간이 무려 ‘남자’라는 것이다.

심지어 그 아래쪽엔, 이 작가의 실제 몸이라면서 사진 한 장이 동봉되어 있는 상태였다.

‘ hala ’이라 써진 메모지를 들고 있는, 반팔 반바지를 입은 한 남성의 몸이 보였다.

적당히 넓은 어깨와, 새하얀 피부, 브이넥 너머로 얼핏 보이는 쇄골까지.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잡힌 몸이었다.

‘오.’

한 마디로 말해 꼴리는 몸이다.

최상위권이라 말하기는 애매하지만, 페도새끼들 빼고는 그 누구라도 호감을 줄 수 있을 법한 몸매.

입은 옷들이 꽤나 후줄근해서 그런가, 아니면 피부가 새하얘서 그런가.

얼굴이 안 보임에도 불구하고 묘한 퇴폐미가 흘러나오는 기분이었다.

덕분에 그녀는 더욱 흥미를 가진 채 스크롤을 내렸다.

그 아래에 있는 내용들도 재밌는 것들뿐이었다.

“푸흡, 이건 또 뭐야.”

이 작가가 써내린 듯한 댓글과 게시글들이 보인다.

이른바, ‘이새끼 어록 모음’으로 정리되어 있는 사진들이었다.

누군가와 말싸움을 하거나, 최대한 비굴함을 가장하며 구걸하는 듯한 글을 올리는 등.

실물 사진의 분위기와는 전혀 맞지 않은 거칠고 추잡한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

저런 야짤을 그리는 게 남성이라는 것도 신기한데, 거기에 더해 거침없는 입담과 어딘가 나사 하나 빠진 모습.

고작 게시물 하나를 보았을 뿐인데, 그가 누구인지 벌써부터 관심이 생기고 있었다.

그걸 본 그녀의 안목 센서가 서서히 켜지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건 된다.’

이건 충분히 어그로를 끌 수 있을만한 주제다.

일단 방송에만 나오게 할 수 있으면 떡락해버린 방송 성적도 어떻게든 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확신을 얻은 그녀는 곧바로 hala 작가를 찾아 연락했고.

그리하여 지금에 이른다.

*

[hala: 그러니까... 제가 그쪽 방송에 출연해 줬으면 한다는 거죠?]

나는 상대방이 했던 말을 다시 한번 되물었다.

지금 자기 방송이 망하고 있다느니, 재료가 고갈 나고 있다느니 뭔가 말이 많았던 것 같긴 한데.

결국 목적을 얘기하자면 저게 다였다.

자신의 방송에 출연해달라.

[예한결TV: 넵! 아 물론 얼굴을 보여달라고 부탁하거나 할 생각은 없습니다ㅎㅎ 따로 페이도 챙겨드릴 예정이고요]

거기까지 물은 적은 없었지만, 어쨌든 도움 되는 정보였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속으로 잠시 중얼거렸다.

‘방송 출연이라···.’

솔직히 말하면, 그냥 얼떨떨한 기분밖에 안 들었다.

험난한 도시 한복판에서 살아남기도 빡센 내게, 방송이란 말 그대로 생각도 해보지 않은 일이었으니.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리 나쁘지 않은 제안이기도 했다.

비록 내가 말주변이 좀 없는 편이긴 하지만···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저런 경험도 한 번 겪어봐야 하지 않겠나.

그리고 솔직히 재밌어 보이기도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바로 수락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hala: 흠, 저 혼자 결정하기에는 살짝 큰 사안이라. 쉽게 결정하기는 어렵네요]

이제는 나도 엄연히 대기업과 계약한 웹툰 작가.

그리고 웹툰 작가도 엄격하게 보면 공인(?人)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수많은 대중들에게 자신의 결과물을 보여주고, 또 평가받는 건 맞으니.

작품 밖의 행동 하나, 말 하나 잘못했다가는 바로 도마 위로 올라갈 수도 있다.

그러니 적어도 허락은 맡아야겠지.

[예한결TV: 아 ㅠㅠ]

[hala: 너무 걱정은 마세요. 담당자 님이랑 한 번 얘기해 보겠습니다]

[예한결TV: 네 알겠습니다! 긍정적인 답변 기대하고 있을게요 ㅎㅎ]

그렇게 나는 허락을 맡기 위해 곧장 송하라 양에게 문자를 보냈다.

비록 지금이 퇴근 시간이긴 하지만, 그녀라면 분명 봐 줄 것이다.

[이세원: 님]

[송하라: ? 왜 그러시나요]

[이세원: 제가 방금 인방 출연 제의를 받았는데 나가도 되나 해서요]

[송하라: ????]

[송하라: 아니 어쩌다가]

나는 잠시 그녀에게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을 했다.

대충 예한결이란 인간이 찾아왔다는 것과, 나를 좋게 봤다는 것, 그래서 방송에 게스트로 출연해 달라는 것까지.

꽤나 간단명료한 설명이었기에 그녀는 빠르게 납득할 수 있었다.

[송하라: ㄷㄷ 신기하네요]

[이세원: 네 그래서 저 한 번 나가보고 싶은데 나가도 되나요?]

[송하라: 흠.. 너무 뜻밖의 제의인데 잠깐 생각을..]

[이세원: 데샤아앗!]

[송하라: 아니; 일단 같이 토의는 해봐야 할 거 아니에요]

[이세원: 데샤아아아악!!!!]

[송하라: ;;]

[송하라: 나가세요;]

“히히.”

역시 우리 편집자님이야. 이런 데서는 유도리 있게 일을 처리해 주신다니까.

아무튼 나는 송하라 양의 관대한 마음 덕분에 쉽게 허락을 구해낼 수 있었다. 아무튼.

그렇게 나는 허락받았다는 사실을 곧장 예한결TV한테 알려주었다.

문자를 몇 초 되지 않아 올라오는 답장.

[예한결TV: 오!!]

[예한결TV: 감사합니다 ㅎㅎ 그럼 언제 쯤에 만날 까요?]

그 뒤로는 잠시 시간 협상과, 가서 어떤 일을 하는지에 대한 얘기를 했다.

시간은 대충 5일 정도 후, 그리고 방송의 구체적인 내용은 가서 설명해 준다는 모양이다.

그래도 방송할 때 따로 어려운 건 시키지 않는다는 모양이니, 그냥 마음 편히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대화를 마친 후 나는 잠시 천장을 바라보았다.

천장이란 새하얗고 깔끔해서, 혼자 생각을 정리하기엔 안성맞춤이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5일 뒤라···.’

나름 기대가 되고 있었다.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