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화 〉 117, 이건 또 신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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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계획을 정했다고 해서 다짜고짜 행동을 개시하지는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양심에 찔리니까 말이다.
저번에도 말했듯, 현재의 나는 언제나 야스를 할 수 있는 배부른 부르주아인 상태.
그러니 굳이 내가 먼저 나서서 그녀를 유혹할 필요는 없었다.
그냥 상대가 먼저 대시하면 좋고, 아니면 아쉬울 뿐인 거지.
태도를 정했다 뿐이지, 내 행동 패턴이 극단적으로 바뀌거나 하지는 않았다.
‘솔직히 살짝 무섭기도 하고···.’
이건 송하라 양의 성적 취향 얘기였다.
내가 알고 지내는 두 여자들과는 달리, 송하라 양의 취향은 나와는 꽤나 멀었다.
나는 당하는 취향도 없고, 묶이고 싶은 욕망도 없었으니까.
그러니 혹시라도 같이 잤을 때, 나를 묶으려고 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들 수밖에 없었다.
물론, 처음 잘 때부터 그런 짓을 하려고 들까, 생각이 들긴 했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다.
‘망할, 왜 하필 묶는 걸 좋아해서는···.’
좀 평범한 취향이라면 좋을 텐데 말이다. 대체 어쩌다 저런 걸 좋아하게 됐는지.
나로서는 조금 슬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일단은 놔둔다.
어차피 시간은 많고, 기회도 많을 테니.
기다림의 미학에 따라, 지금은 내 할 일만 충실히 하고 있으면 될 뿐이었다.
“끄으으···! 드디어 끝났다.”
그리하여 며칠 후, 늦은 저녁.
드디어 S 바이러스 7화를 끝마친 나는 가볍게 기지개를 폈다.
오랫동안 앉아있어서 그런지, 굳어있었던 몸이 비명을 지른다.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내 몸에 시원함을 선사하는 것 같았다.
이번 일주일은 정말이지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았다.
일단은 성별 공개를 했으며··· 그로 인해 별의별 인간들에게 어그로가 끌렸고, 덕분에 바라지도 않던 인기글에까지 박제될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원래 목적이었던 작품의 떡상까지 완벽히 성공했으니.
그야말로 알찬 일주일을 보냈다고 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이건 내 작품상으로도 똑같이 적용되는 말이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번 7화의 내용이 꽤나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일단 등장인물들이 편의점을 탈출하면서 제법 많이 탈락했으며, 개인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까지 희생시켰기 때문이다.
무려 다수의 등장인물과, 애정캐까지 제물로 바쳤다.
그로 인해서 나오는 뽕 맛과, 하이라이트 부분은 분명 소비자들에게 재미를 선사하기엔 충분하리라.
모르긴 몰라도, 아마 이번 화가 올라갔을 때는 제법 추천이 많이 달릴 느낌이었다.
[이세원: 7화 원고 보냈습니다]
[송하라: 네, 수고하셨어요^^]
그렇게 나는 송하라 양의 이메일로 원고를 보낸 다음 컴퓨터를 껐다.
이로써 오늘 할 일은 모두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7화도 조만간 업로드될 것이고, 다음 화까지 올리기에는 아직 충분한 시간이 남아있었으니.
나는 한껏 자유를 만끽하며 쉬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자유.
캬, 이 얼마나 아름다운 울림이란 말인가.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혼자만의 개인 시간을 가질 수 있다니.
시간 조정을 제멋대로 할 수 있다는 게 작가의 몇 안 되는 장점이었다.
자 그러니 이제···.
‘···뭐 하지?’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단 자유시간이 생기긴 했는데, 막상 생기고 나니 딱히 할 게 없었다.
생각해 보니 본인은 방구석 아싸. 딱히 취미생활이라곤 만들고 살지 않는 존재인 것이다.
물론 이 시간을 이용해서 오랜만에 게임이나, 평소처럼 타르탈로스를 돌아다닐 수도 있겠으나··· 오늘은 별로 그러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쓰읍, 은별이나 아린이 부르기도 애매한데.’
걔네들을 불러서 야스 한 따까리 조지고 싶은 마음이 있긴 했으나, 시간이 너무 애매했다.
게다가 최근엔 그녀들도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슬슬 대학교가 개강하면서, 그녀들 또한 다시 학식충으로 변모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슬슬 그녀들도 돈이 쪼들리는지, 다시 알바를 시작한 모양이었다.
아마 지금 이 시간쯤이면 방안에 누워 내일 수업을 준비하고 있겠지······.
솔직히 우리 집 거리도 그리 가까운 편이 아닌데, 굳이 피곤하게 부르고 싶진 않았다.
결국 나는 오늘 야스를 한 따까리 조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결국 여긴가.’
그렇게 돌고 돌아 내가 들어간 곳은, 내가 열어둔 커미션 채팅방 안이었다.
최근 며칠간은 타르탈로스보다 이곳을 많이 들어가는 것 같았다.
언제나 한결같은 병신들이긴 해도, 말하는 것만큼은 꽤나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녀석들이 떠드는 꼴을 넋 놓고 보고 있다 보면, 시간이 삭제되는 것은 금방이었다.
오늘도 여기 좀 보다가 대충 새벽 4시쯤에 잠에 들겠지.
좋아. 완벽한 플랜이다.
그렇게 나는 이성이 아랫도리에 달린 녀석들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sexonbeach: 제발 쥬지 보여줘ㅠㅠ]
일단 오늘도 찾아오는 변태년 하나.
요즘 이 친구는 꽤나 자주 보는 것 같았다. 시간 날 때마다 찾아와서, 내게 쥬지를 보여달라고 요청하고 있으니.
이 정도면 장난이 아니라 진심이 아닐까 생각되는 수준.
[sexonbeach: 솔직히 말해봐요. 얼마면 보여줄 수 있습니까? 최대 10만 원까지는 보내드릴 수 있습니다]
[hala: 님이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내가 시팔 창년도 아니고 과연 10만 원에 쥬지를 깔까요?]
[sexonbeach: ㅎㅎ; 꾸준히 부탁하다 보면 보여주지 않을까요? 그리고 창년이 아니라 남창이라 해야죠]
그래, 너도 10만 원이 적다는 건 아는구나. 그 와중에 단어 지적해주는 꼴을 보니 아주 꿀밤이 마려웠다.
나는 키패드를 두드려 말을 이었다.
[hala: 애초에 님 이거 성희롱이에요. 나중에 경찰서에 잡혀가고 싶음?]
[sexonbeach: 저도 선을 지키고 싶은데 님이 신고를 안 하잖아요]
음, 그렇긴 한데···.
[sexonbeach: 솔직히 말해보세요. 님도 즐기고 있는 거 아님? ㅋㅋ]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정답이었기 때문이다.
[hala: ㅋㅋㅋ]
[상대방을 내보냈습니다!]
때문에 나는 정답의 의미로 오늘도 상대방에게 강퇴를 선사해줬다.
이래서 눈치 빠른 꼬맹이는 싫다니까.
내가 굳이 성희롱을 당하면서까지 이곳을 자주보는 이유는 별게 아니었다.
이곳은 따지자면, 일종의 자존감 충전기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결국 저런 성희롱 같은 말들도 결국엔 내게 호감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성욕을 호감이랑 한데 묶기에는 다소 문제가 있어 보이나··· 어쨌든 내게는 기분이 좋은 것이다.
거친 말들에 면역이 있는 내게, 이만큼 자존감 충전하면서 놀기 좋은 장소는 없었다.
과연 이런 게 후빨이란 건가.
아무튼 그렇게 나는 채팅방들을 전전하며 변태들이 하는 개소리를 들어주었다.
남의 음담패설을 이렇게나 들어주다니. 마치 남의 정기를 빨아들이는 서큐버스가 된 기분이었다.
아니, 나 같은 경우에는 인큐버스인가?
슬프게도 나의 유흥은 빠르게 끝이 나버렸는데, 저번 일을 겪으면서 채팅방 인원수를 10명으로 제한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중 세 개는 레이프 합법화, 글러먹은나, qwer1이 명예의 전당을 차지해 버렸기 때문에, 실질적인 방은 7개밖에 없었다.
7개의 방을 잠시 확인하고 정리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씁, 좀 아쉽긴 한데.’
뭐 됐다.
이미 충분히 즐기기도 했고, 남은 시간은 대충 게임이나 몇 판 때리지 뭐.
그렇게 생각하며 채팅방을 슬슬 나가려 할 때였다.
띠링!
하며 채팅방에 새로운 문자가 올라온다. 이번에 온 문자는 여태껏 보던 녀석들이 아닌 새로 들어온 인물이었다.
[예한결TV: 앗, 됐다!]
[예한결TV: 와아 드디어 들어왔네]
마치 들어온 걸 기뻐하기라도 하는 듯 혼잣말로 떠드는 그녀.
나는 그녀의 닉네임을 보고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일단 예한결이 본명인 것 까지는 알겠다. 그러나 뒤쪽에 TV라는 문자는 왜 붙어 있는가.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주로 방송하는 사람들에게 자주 붙던 용어로 아는데······.
내가 이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상대방에게 다시 문자가 날아왔다.
[예한결TV: 안녕하세요 작가님! 스트리머 예한결이라고 합니다.]
[예한결TV: 작가님께 제의하고 싶은 게 있어 이렇게 연락드립니다.]
과연 예상이 맞았는지, 상대방은 자신이 유튜버라 소개했다.
이건 또 신선한 타입이다. 지금까지 이방에 들어오는 놈들은 죄다 변태들 뿐이었는데.
이렇게나 예의 차리며 말을 거는 사람은 이 인간이 처음이었다.
순간 궁금증이 동한 나는 곧장 그 채팅방으로 들어갔다.
[hala: 네 무슨 일인가요?]
[예한결TV: 앗! 아직 안 자고 있었군요 ㅎㅎ]
[hala: ㅎㅎ 좀 늦게 자는 편이라]
일단은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나 이세원. 다짜고짜 음담패설을 날리는 새끼들에겐 욕부터 날려주지만, 예의를 아는 이들에겐 똑같이 예의를 차릴 줄 아는 인간이다.
아무튼 나는 문자를 날렸다.
[hala: 그래서.. 제의라니,무슨 제의를 말하는 건가요?]
[예한결TV: 아 별건 아니고 제가 스트리머라 했잖아요]
상대방이 말을 잇는다.
[예한결TV: 다름이 아니라, 저희 방송에 게스트로 출연해 주셨으면 합니다!]
“오오?”
나는 의문 섞인 감탄을 날렸다.
뭔가, 뭔가가 일어나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