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화 〉 116, 명분
* * *
사람을 당황시키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그냥 갑자기, 그냥 대화하던 도중 뜬금없는 말을 내뱉으면 되는 일이었다.
그 말이 현재 하는 대화에서 벗어나 있을수록, 거기에 더해 대답하기 곤란한 말일수록.
사람이 느끼는 당황감은 커지는 편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논리에 따라 송하라 양이 한 뜬금없고 곤란한 질문에 꽤나 당황한 상태였다.
[송하라: 혹시 작가님은 이상형이 어떻게 되나요?]
갑자기 이상형이 어떻게 되냐니.
이런 질문을 받고 곤란해하지 않을 사람은 몇 없으리라.
질문 자체의 난해함을 떠나서, 이걸 물어본 사람의 저의까지 자동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질문이었다.
‘진짜 이건 왜 물어보는 거지?’
일단 평범한 일상 대화에서 나올 주제는 아니었다. 이성관계에서는 특히나 말이다.
물론, 상대방이 나··· 정확히는 주로 내 몸에 관심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렇게나 적극적으로 나올 줄은 몰랐다.
과연, 상대방도 이런 내 당황스러움을 아는 걸까.
질문이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녀가 다시 문자를 날렸다.
마치 미리 다음 말을 생각해둔 것처럼 빠른 속도였다.
[송하라: 아, 이상한 이유 때문은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세요]
[송하라: 그냥 혹시 모르니까 물어본 것뿐입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모르니까, 라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다시 상대방이 말을 이었다.
[송하라: 가끔씩 작가님들에게 인터뷰 요청이 올 때가 있거든요]
[송하라: 그런데 작가님은 그.. 작품 외적으로도 인지도가 있으니까 혹시 이런 질문이 올 수도 있잖아요]
[송하라: 그러니까 미리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아서 물어본 것뿐이에요]
마치 속사포처럼 올라오는 상대방의 문자들.
그 순간, 나는 상황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가슴속으로 느끼고 있던 당황이 사르르 녹아흐르는 기분이었다.
“···아하.”
여전히 곤란한 질문인 건 맞지만, 적어도 상대방의 저의가 엿보였기 때문이다.
“흐응, 그렇구나.”
나는 의미심장하게 미소 지었다.
물론, 상대방이 말한 것을 곧이곧대로 믿는 건 아니었다.
저걸 그대로 믿기에는 너무 빈틈이 뻔히 보이지 않나.
꽤나 그럴듯하게 만든 명분이긴 했지만, 그래봤자 명분은 명분일 뿐이었다.
진짜 의도를 가리기 위한, 그럴듯한 변명 말이다.
‘애초에, 그걸 당신이 왜 알아야 해.’
인터뷰?
언젠가 유명해지면 할 수도 있긴 하겠지. 실제로 유명한 작가들이 인터뷰하는 모습은 과거에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보통 그런 상황이 오면, 긴장을 풀기 위해 저런 실없는 질문도 몇 개 할 수 있는 모양이고 말이다.
하지만 그걸 굳이 그녀가 알아야 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애초에 그 정보를 알아서 어디에 쓴단 말인가? 결국 인터뷰하는 것도 나고, 말하는 것도 나일 텐데.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인터뷰를 한다는 것 자체도 너무 먼 미래였다.
또한, 현재 개하꼬인 내가 인터뷰를 할 만큼 크게 성장할지도 미지수였고.
그러니, 모든 게 불명확한 상황에서 그녀가 저런 명분을 댄다는 것은 말 그대로 어불성설(?成?)인 것이다.
아마 진짜 의도는 말 그대로 내 이상형이 궁금해서겠지.
이러나저러나, 상대방이 내게 호감이 있다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는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캬, 나의 셜록홈즈급 추리력에 감탄이 나올 지경이었다.
이 정도면 그분도 피눈물 흘리며 탐정의 자리를 물려주지 않을까?
[이세원: 네 알았어요]
물론, 기껏 엮어낸 추리를 멋대로 얘기하지는 않았다.
이런 재미난 정보는 나 혼자만 알고 있어야지. 일단 상대방이 내게 호감이 있단 걸 재확인 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키패드를 두드려 상대방에게 문자를 날렸다.
[이세원: 그런데 저는 딱히 이상형이랄게 없는데요?]
이건 진심이었다.
애초에, ‘자신의 이상형이 이렇다’라고 딱 정해두고 사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그저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취향이 머릿속에 두루뭉술하게 떠다니고 있을 뿐···.
그러니 딱히 선호하는 이상형이 없다고 말해도 틀린 말은 아닌 것이다.
이쁘면 장땡이지.
[송하라: 에이, 그래도 적당히 선호하는 취향은 있을 거 아니에요]
[이세원: 흠...]
물론, 만들어 내라면 만들 수는 있었다.
‘어떻게 할까.’
솔직히 살짝 골려줄까 하는 마음도 있긴 했으나, 그냥 솔직하게 얘기해 주기로 했다.
막상 골려주고 싶어도 딱히 생각나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톡톡, 키패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이세원: 음, 일단 가슴이 크면 좋겠네요]
암, 자고로 가슴이란 만류귀종(????)이요, 다다익선(????)이니.
크면 클수록 좋다는 게 나의 생각이었다.
···물론, 너무 크면 살짝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으나. 다행히 그 정도 크기는 현실에서 찾기 힘드니 괜찮다.
[이세원: 그리고 이야기가 잘 되면 좋겠어요]
물론 가슴이 크다고 만사 오케이인 것은 아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었고, 그런 만큼 대화는 중요한 요건이었으니.
적당히 말이 통하며, 장난을 주고받을 수 있을 정도면 충분했다.
요컨대 티키타카가 잘 됐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그 뒤로도 나는 적당히 생각나는 것들을 엮어가며 말을 이었다.
성격은 소심하든 활발하든 상관은 없다느니, 적당히 내 의견에 잘 따라줬으면 좋겠다느니.
그러면서도 자기 주관은 있으면 좋겠다느니.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나는 문득, 신기한 사실 하나를 깨달을 수 있었다.
‘···음? 근데 이거 아린이랑 은별이 아닌가?’
생각해보니 내 이상형이란 그 둘을 짬뽕시켜 만든 존재인 것이다.
둘 다 가슴도 은근 큰 편이고, 아린이는 내 억지에 잘 따라주며, 은별이와는 티키타카가 잘 된다.
나는 큰 깨달음을 얻은 현자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가.’
나는 이미 이상형을 두 명으로 분리시켜서 사귀고 있었던 것인가.
솔로몬이란 왕도 아이를 반으로 갈라 나눠가지지 못했다는데, 나는 무려 이상형이란 존재를 반씩 나눠서 가지고 있던 상태였던 것이다.
어쩌면 나는 왕이라는 작자보다 대단한 존재가 아닐까?
‘앞으로 좀 더 잘해줘야 겠군.’
나는 그런 걸 생각하며 슬슬 대화를 마치기로 했다. 이상형 얘기도 대충 다했으니까 말이다.
과연 이 정보가 그녀에게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나는 아직 그녀의 성격도 제대로 모르고, 현실에서도 그리 많은 대화를 나눠본 편은 아니니까.
[송하라: 번거로운 질문이었을 텐데 정성 들여 답변해 주셔서 고마워요]
[송하라: 좋은 밤 보내세요]
그렇게 그녀는 그 인사를 끝으로 채팅창을 나갔다.
그저 갱신되던 문자가 잠잠해졌을 뿐인데, 방 안에 짙은 적막이 깔린다.
나는 채팅창을 바라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외외네.’
상대방이 호감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하니 이렇게 적극적으로 다가올 줄은 몰랐다.
누가 봐도 나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설령, 인터뷰라는 되지도 않는 명분을 깔긴 했어도 말이다.
이러다가 나중에 고백이라도 받는 건 아닐까 몰라.
“히히.”
누군가에게 호감을 받는다는 건 꽤나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 자체로 나는 누군가에게 중요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뜻과 같았으니까.
덕분에 그녀에게 질문을 들었을 때부터, 내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가 지어져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살짝 부담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음, 근데 진짜 고백 박으면 어떡하지?’
절대 그녀가 싫다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좋지.
누가 보더라도 그녀는 무척이나 예쁜 편이었다.
오뚝하고 날카로운 코와, 도도한 눈매, 웨이브 치듯 아래로 내려오는 갈색의 머리카락까지.
유려하고 가느다란 몸매는, 마치 한 명의 모델을 보는 듯한 기분도 든다.
비록 가슴이 살짝 부족하긴 하지만··· 이것도 아린이와 비교했을 때 그런 것뿐이지 절대 작은 편은 아니었다.
아마 예전의 나였다면 고민도 하지 않고, 먼저 따먹기 위해 움직였겠지.
다만 문제는, 지금의 나는 그럴 수가 없다는 거다.
현재 나는 무려 두 명의 어여쁜 여성과 섹파를 이루고 있는 배부른 부르주아.
예전에 비해 딱히 야스에 대한 간절함도 없고, 설령 따먹고 싶어도 먼저 움직일 수 없는 몸이었다.
만약 먼저 따먹으려 했다가, 그 둘의 눈총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좆을 좆대로 놀려버렸구나. 너의 좆은 자유분방해서 존나 세상을 유랑하려 하는구나 등등.
여러 감정이 담긴 눈길로 나를 쳐다보는 두 여성의 모습이 그려졌다.
‘오우···.’
그건 나로서도, 꽤나 무서운 일이었다.
그래도 그간의 정이 있으니 심하게 화내지는 않겠지. 하지만, 실망할 수는 있는 노릇이었다.
그러니 상대가 꼴려도 무작정 따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상대방의 호감을 계속 무시하는 것도 안 될 일이었다.
‘그건 못된 일이니까.’
나 이세원.
비록 좆은 자유분방할지라도, 사람의 호의를 멋대로 무시할 만큼 냉정한 쓰레기는 아니었다.
사람에게 감정이란 중요한 법이었으니.
비록 현대 문명이 이성과, 논리로 돌아간다고 한들, 그 기저에는 감정이란 것이 깔려있었다.
그러니, 그러한 감정을 무시하는 건 문명인이 할 일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고 그 감정을 거절하기에는 내 마음이 너무 여렸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송하라 양도 한 번 따먹어 보고 싶긴 했다.
‘쓰읍, 어떡하지?’
덕분에 나는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눈앞에 보기 좋은 떡이 있다. 살짝 멀어 보이긴 하지만, 노력한다면 얼마든지 어렵지 않게 먹을 수 있는 떡이었다.
하지만 그 떡을 무턱대고 먹었다가는 탈이 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확률은 적긴 하나, 조심해야 하는 것은 맞았다.
떡은 먹고 싶고, 그렇다고 무턱대고 먹긴 애매하고.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
‘···잠깐.’
그러던 중 문득, 머릿속에 한 가지 아이디어가 스쳐 지나갔다.
마치 방금까지 까내렸던 솔로몬 왕의 지혜가 들어오듯, 개쩌는 아이디어였다.
‘내가 따먹는 게 안 된다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따먹히면 되잖아?’
떡이 멀리 있다면, 그냥 그게 다가오게 하면 된다.
마침 상대방은 나에게 호감이 있는바, 그녀가 나를 덮치게 만들면 되는 것이다.
물론 진짜 따먹히겠다는 것은 아니고··· 그러한 상황을 만들기만 하면 되었다.
이른바 명분이다.
나는 열심히 정조를 지켰는데, 상대방이 아랫입을 잘못 놀려버렸어~
그건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의 일이었다고~
이런 식으로 상황을 만들면 나를 향한 구박은 조금은 상쇄되는 것이다!
‘캬아! 나는 천재야.’
과연, 내가 생각해도 쓰레기 같으면서 혁신적인 아이디어였다.
가히 솔로몬의 재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좋아 오늘부터 나는 따먹히는 것이 목표이다.
오늘부터 나의 좌우명은 ‘따먹히고 싶다’가 될 것이다.
적어도 그와 비슷한 상황까지 가는 것이 내가 바라는 것이고, 그렇게 해서 명분을 얻어내는 일이 목적지였다.
“크흐흐···.”
그렇게 방안에선 한동안 내 사악한 웃음소리가 울려퍼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