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화 〉 115, 갑자기?
* * *
나는 지금 기적을 목도하고 있다.
마치 예수님이 내게 은총을 내리듯, 우주적 존재께서 내게 촉수 하나를 선사하듯.
존나 개쩌는 기적이었다.
하나 그 굉장함과는 달리, 기적의 모습 자체는 단순한 숫자의 형태였다.
[총 조회수: 50,000+]
무려 조회수 오만.
“세상에···.”
단 일주일 사이에 총 조회수가 50,000으로 떡상해 있었다.
물론, 어떤 사람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아니, 다른 탑티어 작품들은 천만 조회수도 넘는다고 말하던데.
고작 50,000 정도면 적은 거 아니냐?
이건 그 작품들의 회차수를 몰라서 하는 말이었다.
기본 100만에서 1000만이 넘는 작품들은 대부분 100화를 가뿐히 넘어가는 게 보통이다.
그러니 회차가 쌓인 만큼 누적 조회수도 쌓이는 게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6화짜리에, 작품이 출시된지도 고작 2주밖에 안 흐른 상태.
그런데도 오만이라니···.
이는 곧, 회차당 조회수가 거의 일만에 육박한다는 것이다!
이제 출품된 지 2주 된 상품이 무려 1만이라니.
정말이지 개쩌는 상황일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나는 감탄했다.
‘이게 성별의 힘···?’
물론, 메인 배너에 올라간 프로모션도 무시 못 하겠지만···.
내 성별이 파급력을 만들어 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새삼 세상의 더러운 일면을 확인한 기분이다.
이렇다면 나는 왜 지금까지 그림들을 목숨 걸며 그렸단 말인가.
그냥 그 시간에 몸이나 한 번 갔다 팔면 됐을 텐데.
그럼 아주 시팔 떼 돈을 벌었을 것이다. 우리 부모님은 좀 슬퍼할지 몰라도······.
“히히.”
뭐, 아무튼 기분이 좋긴 했다.
이걸로 초반 부스트는 충분히 받은 셈이니, 이제 나만 잘하면 내 작품은 떡상할 수 있다.
벌써부터 다음 주 정산이 기대가 되고 있었다.
덕분에 의욕이 생긴 나는 곧장 책상 위에 앉았다.
바로 아까 빠꾸리를 해서 몸이 살짝 뻐근하긴 했지만, 그 정도야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스윽스윽.
타블렛 펜이 움직일 때마다 유려한 선이 뻣어나간다.
그렇게 모인 선은 그림이 되고, 만화로 이어질 것이며, 이윽고 하나의 세계관으로 완성될 것이다.
이러나저러나 나는 이 일이 좋았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하는 것이고.
아무튼 그렇게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였다.
띠링!
하는 소리가 들리며 한껏 몰입되어 있던 집중력을 깬다.
핸드폰에 문자가 왔다는 알림이었다.
그걸 본 나는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
생각해 보니 무음으로 바꿔놓는 걸 잊고 있었구나.
멍청한 녀석. 주변 환경의 확보는 작업의 기본인데.
“에휴.”
집중이 깨졌다는 것에 살짝 짜증이 나긴 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쳤다.
이미 한 번 깨진 집중을 다시 되돌릴 방법은 없었으니까.
그냥 무음으로 바꿔놓지 않은 내 잘못이니, 하고 여겨야지.
“채팅창을 폭파시키던가 해야지 원.”
나는 그렇게 투덜거리며 핸드폰을 집었다.
아직 누구에게서 온 채팅인지 확인조차 하지 않았는데, 어느새 반쯤 확신해버린 나였다.
최근에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 온 문자도 내가 만들어 둔 커미션 방에서 온 문자였다.
언젠가 내가 커미션 소통을 위해 만들어놓은 소통의 창구.
그나마 나와 대화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소통 창이었기에, 성별 공개 이후 이런 식으로 문자를 보내오는 사람이 종종 있었다.
물론, 찾아오는 문자의 90% 정도는 쓸데없는 문자였다.
[sexonbeach: 쥬지 보여줘]
바로 이런식으로 말이다.
이런 장난꾸러기들 같으니라고. 이런 귀여운 장난 한 번 치려고 내 집중력을 씹창내놓다니.
너무 귀여워서 꿀밤 한 대 정도는 갈겨주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래도 애써 보내준 문자를 무시할 순 없었기에, 일단은 키패드를 두드려 답장을 날려줬다.
[hala: 님이 먼저 뷰지 깐 사진을 보내면 생각해 주겠습니다.]
암, 남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려면 먼저 자신이 가진 걸 내보여야지.
그리고 거래한다는 것도 아니고, ‘생각해 준다’고 말했다.
누가 봐도 거절의 표현이었으니, 알아서 떨어져 나가겠지.
[sexonbeach: 와 직접 봐주기까지 하는 거임? ㅋㅋㅋㅋㅋ]
[sexonbeach: 잠시만 기달려주셈 지금 팬티 벗고 있어요]
역시 세상은 재밌는 거 같아.
내 예상대로 흘러간 적이 한 번도 없으니까.
한 번쯤은 예상대로 흘러가면 좋을 텐데 시발.
[hala: 봐주겠냐고요 시발]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상대방을 강퇴시켰다.
요즘 강퇴 기능이 아주 빛을 발하고 있다.
저런 악질들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고 있었으니 말이다.
“후···.”
이건 말하자면 성별공개의 안 좋은점이었다.
어그로를 잘 끈 덕분에 조회수는 많이 올랐지만, 그와 반대급부로 저런 관심 종자들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고 있었으니.
찾아오는 유형도 아주 가지가지였다.
[사달러: 몸 사진 얼마면 됩니까]
먼저, 나를 사이버 창놈으로 아는 유형.
[hala: 뭐요]
[사달러: 얼마 정도 주면 제게 나체사진을 주실 수 있나요]
[hala: 흠..]
솔직히 여기서는 살짝 고민하긴 했다.
이미 내 몸 자체가 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뼈저리게 느낀 상황.
그렇다면 그냥 미친 척 한 번 하고 몸 사진을 올려보는 건 어떨까?
적당히 100만 원 정도면 충분한 값어치라고 생각하는데.
‘아니··· 아니 뭔 개소리야.’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곧바로 속에서 올라오는 유혹을 뿌리쳤다.
[hala: 너 나가]
[상대방을 내보냈습니다!]
요즘 하도 주위에서 빨아주다 보니까, 자기평가가 높아진 기분이다.
애초에 그걸 제외해도 인터넷에 내 알몸사진을 왜 뿌리는가. 미친놈도 아니고.
자칫 잘못하다간, 전 세계 사람들이 내 나체를 알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위에 저런 것들은 그래도 나은 편이었다.
조금 짓궂긴 해도 딱 봐도 장난인 게 눈에 보이니까.
저 정도는 나도 얼마든지 웃으며 유쾌하게 받아줄 수 있었다.
문제는 가끔 진심 같아 보이는 애가 있다는 것이다.
[암갈비쥐: 안녕하세요 커미션 신청하러 왔는데요]
바로 이런 애들 말이다.
언뜻 보면 정상적인 커미션 신청으로 보이는 문자였다.
문제는 최근에 내가 커미션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지.
[hala: 공지 올렸는데 혹시 못 보셨나요? 최근엔 바빠져서 더 이상 커미션 신청은 안 받는다고 했는데..]
[암갈비쥐: 아 알아요. 공지는 항상 보고 있습니다 ㅎㅎ]
뭐지 그럼.
커미션을 받지 않겠다는 데 왜 신청하겠다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내게, 상대방의 입에서 나온 말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암갈비쥐: 그냥 들어주는 것만 해주셔도 돼요 ㅎㅎ.. 저는 그걸로도 충분히 만족해서..]
이런 미친.
아무래도 상대방은 자기 성욕을 말하면서 흥분하는 취향이 있는 모양이다.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말에 잠시 소름이 돋았다.
진짜 말하면서 아래쪽을 적시려고 하는 건가.
‘흠···.’
근데 생각해 보니 나한테는 손해가 아니었기에 그냥 들어주기로 했다.
뭐 이야기 듣는데 딱히 돈 드는 것도 아니고.
사람 하나의 쾌락을 위해서라면, 이 한 몸 기꺼이 봉사해 줄 수 있었다.
[암갈비쥐: 감사해요. 덕분에 한 발 뺄 수 있겠네요 ㅎㅎ]
그렇게 나는 잠시 상대방의 음습한 욕망을 들어주었다.
꽤나 참신하고 구체적인 내용이었지만··· 상대방의 인권을 존중해 굳이 얘기하지는 않겠다.
어쨌든 이런 채팅들이 많고도 많았다.
단순히 만화를 잘 보고 있다는 채팅부터, 저런 어질어질한 채팅들까지.
그 와중에 하는 말들은 은근히 또 재밌어서, 시간이 금방금방 간다는 것이다.
그렇게 한동안 이야기를 들어주다 보면, 내 2~3시간이 삭제되어 있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덕분에 내 일상이 꽤나 방해받는 중이다.
‘채팅방 제한이라도 걸어놔야겠네.’
원래 내 오픈 채팅방은 총 인원이 300명까지 수용 가능한 대규모 수용소였다.
어차피 들어올 사람도 없을 테니, 대충 설정 가능한 최대 인원까지 맞춰놓은 것이다.
하지만, 시끌벅적해진 지금은 정말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니 좀 줄일 필요가 있었다.
‘대충 10명 정도로 해야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채팅방을 수정했다.
앞으로 나와 대화하려면 좀 더 부지런해야 할 것이다.
좋아. 이제 놀 만큼 놀았고, 다시 작업을 할 차례였다.
핸드폰을 대충 침대 위에 던져둔 후, 다시 타블렛 펜을 잡는다.
그러고는 내가 방금까지 그리고 있던 그림을 보며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내가 다시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주위의 사물이 하나씩 내 시야에서 사라져갈 때였다.
띠링!
하며, 다시 알람음이 들려온다.
나는 욕지거리를 날리며 잡고 있던 타블렛 펜을 책상 위에 던졌다.
“이런 씨발!”
어떤 새끼인가!
대체 어떤 새끼이기에 겨우겨우 만든 두 번째 집중까지 깨트려 버리는가!
나는 상대방에 대한 증오를 끌어올리며 채팅을 확인해 보았다.
만약 중요하지 않은 거라면 즉시 상대방을 갈아먹어 버리겠다······.
[송하라: 안녕하세요 작가님]
[송하라: 잠시 할 얘기가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확인한 상대방은 우리의 담당자분이셨다.
덕분에 나는 끌어 올랐던 화를 다시 누그러뜨릴 수밖에 없었다.
담당자면 어쩔 수 없지.
나는 키패드를 두드려 그녀에게 물었다.
[이세원: 네, 무슨 일인가요?]
[송하라: 별 건 아니고요, 앞으로 일정을 좀 얘기해 드리려고요]
일정이라··· 대체 방구석에서 그림이나 그리는 나에게 무슨 일정이 있을까.
나는 궁금증을 가진 채 상대방의 말에 집중했다.
별거 아니라는 말과는 달리, 생각보다 내게 유익한 이야기였다.
[송하라: 우선, 작품이 생각보다 빨리 궤도에 올라서 광고가 추가로 들어갈 수도 있어요]
[이세원: 오]
이건 좋은 꽤나 좋은 소식이었다.
들어가는 광고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일이었으니.
그럴 때마다 내 작품엔 유입이 생길 것이고, 이는 곧 수익으로 연결된다. 나로서는 기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음으로 상대가 말한 일정은 꽤나 생소한 일이었다.
[이세원: 그건 좋네요]
[송하라: 예, 그리고 조만간 파티가 열릴 수도 있겠습니다.]
여기서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파티? 웬 파티?
갑자기 파티가 왜 나오는가.
[이세원: 그게 뭐죠?]
[송하라: 아, 가끔 회사에서 주최하는 파티가 있거든요. 복지 차원에서 웹툰 작가들을 한데 모아서 파티를 여는 건데···]
그 뒤로도 송하라는 설명을 계속했다.
그니까··· 쉽게 정리하자면 일종의 친목회라고 볼 수 있었다.
수고했다는 의미로 작가들을 모아서 서로 놀게 한다. 서로 직종이 같은 만큼 대화하기도 편하고 좋을 테지.
작업과 관련해서 꽤나 스트레스를 받는 작가들에게는 좋은 행사였다.
방구석에서 그림이나 그리는 우리에게, 사람 만나는 일은 손에 꼽을 테니 말이다.
‘괜찮네.’
그리고 들어보니, 이 행사에는 우리 담당자님도 참여하는 모양이었다.
작가들처럼 파티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지만. 관리 감독등, 현장에서 할 일이 있기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송하라: 아직 열리기까지는 3개월쯤 남긴 했는데.. 그래도 일단 알아두시라고 연락드렸어요. 그래야 준비하기도 편할 거 아니에요]
[이세원: 네 감사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선 속으로 조금 감탄했다.
‘확실히, 팀장이라 그런가···.’
이런 일과 관련된 일에는, 굉장히 똑 부러지게 설명을 잘 하는 그녀였다.
공과 사가 확실하다 해야하나··· 아니면 사람이 약간 사무적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인터넷의 ‘qwer1’의 모습과는 전혀 매칭이 안 되는 건 확실했다.
대체 그때의 경박하고 예의 없는 인간은 어디 갔다는 말인가?
나는 잠시 그런 생각을 하다가, 이내 채팅창을 나가려고 했다.
슬슬 할 이야기도 끝난 것 같으니까. 다시 일에 집중해야지.
하지만 그 전에 상대방이 입을 여는 게 더 빨랐다.
[송하라: 아 그러고 보니 작가님]
[이세원: ?]
마치 할 말이 있다는 모습.
나는 자세를 고쳐 앉고는 그녀의 다음말을 기다렸다.
뭐지, 일정 얘기는 대충 다 끝난 눈치였는데.
[송하라: 별건 아니고요]
[송하라: 그...]
그러고선 잠시 침묵의 시간이 이어졌다.
나는 상대방의 다음 말을 기다리며 채팅창을 확인했다.
혹시 할 이야기가 꽤나 긴 걸까, 상대방의 다음말은 꽤나 오랜 시간 올라오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윽고 올라온 상대의 말은 나를 당황시키기에 충분했다.
[송하라: 혹시 작가님은 이상형이 어떻게 되나요?]
그리 길지도 않은, 아주 담백한 문자.
그 문자를 본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갑자기 이런 걸 물어본다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