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화 〉 113, 사진
* * *
딸깍.
+
[자 우선은 정리해 보자]
그러니까... 그 hala라는 작가가 알고 보니 남자라는 거지?
핀박스에서 별 해괴한 그림을 그려대는 그 작가가
예전에는 웬 팔잘린 혐오스런 그림을 그려대기도 했고, 지금도 상당히 좆같은 걸 그리는 그 마조레즈 작가가
가끔씩 여기 놀러 와서 욕이나 시원하게 갈기고 가는 그 미친련이
알고 보니 남자라는 거지?
에이 설마 ㅋㅋ
구라도 정도껏 해야지 ㅋㅋㅋㅋㅋ
너무 심하게 치면 재미없어 ㅋㅋ
+
[ㄹㅇ ㅋㅋ]
[그딴 게 어떻게 남자냐고 ㅋㅋㅋ]
[그 사진 100% 주작임 대충 인터넷에서 사진 하나 뽀려온 거겠지]
[ㄴ 내가 그거 구글링 해봤는데 아무것도 안 나오던데? 그리고 손에 든 메모지는 어케 설명하려고]
[ㄴ 합성 한 거겠지]
[ㄴ 합성은 ^^발, 아니 애초에 저 사진이 안 나온다니까? 어디서 가져온 게 아니라 그냥 저게 원본이라고]
딸깍.
+
[저거 정체 딱 알았다 ㅋㅋ]
알고 보니 지 남친한테 저렇게 좀 찍어달라고 시킨 거임 ㅋㅋ
캬 이 미친련, 어떻게든 갤 불타오르게 하려고 별 발악을 다하네
다른 사람은 다 속여도 나는 못 속인다!
+
[남친 있다는 게 더 빡치는데?]
[ㄴ 아 생각해 보니 그렇넹]
[ㄴ 몸매 보니까 은근 ㅅㅌㅊ같은데 그게 더 빡침 ㄹㅇ]
[근데 얘 갑자기 몸 공개는 왜 한 거냐?]
[ㄴ 너네들이 하도 놀려대서 빡쳤대잖아 그래서 성별 공개 한 거고]
[ㄴ ㅇㅎ]
딸깍.
+
[아니 근데 님들 이사진 존나 꼴리지 않음?]
이 음탕한 놈, 자연스럽게 반팔 반바지 입고 있는 거 봐라ㅋㅋㅋ
아주 그냥 유혹하려고 작정을 했네 ㅋㅋ
저 툭 튀어나온 힘줄이랑, 목 사이로 보이는 쇄골 좀 봐봐
하.. 진짜 내 앞에 있으면 잘못했다고 엉엉 울 때까지 따먹었을텐데ㅋㅋ 다행인 줄 알아라
+
[좀 꼴리긴 해 ㅎㅎ;;]
[너 그거 성희롱이야 미친련아]
[멀리 안 나간다. 조만간 경찰서에서 봅시다]
[가서 얼굴 어떻게 생겼는지 후기나 들려줘라]
“······.”
딸깍.
나는 거기까지 보고 마우스를 그냥 놓아버렸다.
하도 오랜 시간 커뮤니티를 돌아다녀서 그런가. 두 눈이 다 아프다.
심연에 너무 오랫동안 머물러 있어서 그런지, 정신까지 혼미해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한 손으로 내 미간을 짚었다.
“어지럽네······.”
그야말로 어지럽다고 밖에 말할 수 없으리라.
설마 이 정도까지 반응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말이다.
현재 나에 대한 떡밥은 벌건 대낮을 넘어 저녁까지 불타고 있는 상태였다.
이 년들은 질리지도 않는지 쉴 새 없이 나에 대한 정보를 떠들어댔다.
가끔씩 보면, 어떻게든 내 신상정보를 찾기 위해 인터넷을 뒤적거리는 녀석도 있었다.
저래봤자 나오는 건 별로 없을텐데. 나 뿐만 아니라 ‘이세원’조차 그리 sns를 즐겨하는 편은 아니었으니.
이 정도면 차라리 얼굴 공개를 하지 않은 게 다행인 수준이었다.
만약 그렇게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상상만 해도 참담한 일이 벌어졌을 게 뻔하다.
우선 내 핀박스에 올라가 있는 내 아바타에 대한 그림은 전부 지워버린 상태였다.
계속 놔둬봤자 어그로만 끌릴 뿐이니. 자연스레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히길 바랄 뿐이다.
다행히 내 몸 사진 하나 봤다고 거기까지 유추해 내는 사람은 없었다.
하긴, 거기까지 생각해 내면 미친놈이지.
그래도 무작정 내 정체에 관한 얘기만 떠드는 것은 아니었다.
+
[뭔데 쟤 그림이 그렇게 심함?]
링크 들어가기 귀찮아서 딱히 본 적은 없는데
+
[살짝 호들갑이 섞여있긴 해. 근데 평범한 숫놈이 그릴 그림은 아닌 듯;]
[ㄴ 숫놈이 뭐야. 너 단어 선택 왜 그따위야 시발련아]
[ㄴ 왜 화났어; 갑자기 왜 그래;;]
[ㅋㅋㅋ 궁금하네 확인해 보고 와야겠다]
[얘 웹툰 보고 왔는데 은근 재밌더라]
다행히 이런 글도 간간이 올라오는 중이었다.
처음 목적이었던 낙수효과도 확실히 받고 있는 셈.
덕분에 내 핀박스와 웹툰의 조회수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중이었다.
아직 제대로 확인은 못해봤지만, 분명 지금도 유입들이 들어오고 있는 중이리라.
그건 분명 기쁜 일이었다.
우웅우웅!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핸드폰은 연신 울려댔다.
사실 저건, 내가 언급하기 한참 전부터 열심히 울려대고 있는 중이었다.
만약 핸드폰이 놓여 있는 곳이 책상 위가 아니라 누군가의 뷰지였다면, 갔어도 적어도 3번은 가버렸으리라.
주로 오는 알람들은 대부분 누군가가 보낸 채팅들이었다.
성아린과 이은별이 보낸 것부터, 예전에 열어둔 커미션 채팅방에서 온 문자들까지.
그런 것들이 대략 백 개 넘게 쌓여있었다.
지금까지는 커뮤니티 보느라 여유가 없어서 확인 못하고 있었는데··· 이제 슬슬 확인할 때가 된 거 같았다.
일단 성아린과 이은별이 보낸 문자에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둘 모두 갑자기 성별 공개는 왜 했냐고, 궁금해서 물어보는 문자들이었다.
나의 작품을 위해 나의 몸을 팔았다. 이게 낙수효과가 오지더라 하는 등의 내용을 대충 보냈다.
이 정도면 이유로서는 충분하리라.
그 다음에는 커미션 오픈채팅방을 확인했다.
감옥에서 빠져나온 변태들이, 이제는 내가 열어놓은 채팅방에서 난리 블루스를 추고 있었다.
솔직히 무시할까도 생각했긴 했는데, 몇 가지 익숙한 닉네임들이 보며 몇 개 정도는 답해주기로 했다.
[그림 지망: 뭐예요?]
[그림 지망: 아니 작가님 남자였어요?]
우선은 그림지망.
[hala: 네]
그래도 얘는 적당히 대답해주니 알아서 사라지더라.
그냥 놀랍다 신기하다 등의 반응만 보여줬을 뿐··· 차분한 성격에 맞게 꽤나 점잖은 반응이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지.
[암갈비쥐: 아니]
[암갈비쥐: 작가님 남자셨어요?]
[hala: ㅔ]
[암갈비쥐: 세상에...]
[암갈비쥐: 저... 혹시 저한테 욕 한 번만 해주실 수 있나요?]
[hala: 아니, 뭔;; 그게 뭔 개소리세요 미친련아]
[암갈비쥐: 하아.. 하.. 좋아요 조금만 더 해주세요 ㅎㅎ]
[hala: 너 이 시팔 나가]
[상대방을 내보냈습니다!]
“하······.”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오랜만에 강퇴 기능을 써보는 것 같았다.
그래 저딴 년이 내 구독자였지··· 잠시 잊고 있었는데 말이다.
살짝 자괴감이 몰아치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애써 정신을 차리고는 다른 채팅창을 살펴보았다.
[증오로 가득해: 사랑에 빠졌습니다]
[hala: 누구한테요]
[증오로 가득해: 당신한테]
[hala: 님은 제 얼굴도 모르고 나이도 모를 텐데요?]
[증오로 가득해: 그건 고작 일부일 뿐이에요. 혹시 얼마를 주면 당신의 쥬지 사진을 얻을 수 있을까요?]
[hala: 그거 성희롱이에요 미친사람아]
[상대방을 내보냈습니다!]
어지럽다.
증오로 가득했던 사람이 갑자기 사랑을 외치고 있었다.
고작 적당한 사진 하나 보낸 것뿐인데 사랑까지 외치다니··· 상대방의 놀라운 변화에 감탄이 다 나올 지경이었다.
그 뒤로도 나는 여러 채팅들을 확인해 보았다.
진짜 마조 레즈가 아니었냐느니,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그림을 그렸냐느니, 방금 그 사진으로 한발 뺐는데 다른 사진은 없냐느니 등등.
···물론 농담이겠지만, 마지막 말은 아무리 나라도 조금 소름이 돋았다.
진심으로 신고할까 말까 살짝 고민할 정도였다.
감옥이 현재진행형으로 불타고 있어서 그런가, 광기에 들어찬 사람들이 꽤나 많았다.
대체 나 같은 놈이 뭐라고 이렇게나 관심을 쏟아주는지··· 부담감이 느껴질 정도다.
뭐 그래도···.
‘기분은 좀 좋네.’
나는 피식 미소 지었다.
이 말만큼은 진심이었다.
*
+
[감옥 탄압합니다]
죄수 새끼들이 조금 풀어주니까 한도 끝도 없이 날뛰네요
님들 이러다가 진짜 현실 죄수 될 수 있습니다;
저 인간이 너그러우니까 일단은 넘어가는 거지, 이러다가 언제 한 번 고소당할 수도 있어요
그러니 조금 과열된 분위기 좀 시킬 겸 감옥 탄압 좀 하겠습니다
게시글 몇 개는 삭제시킬 거고요, 몇몇 놈들은 대가리 식히라고 차단 좀 박아놓겠습니다
그럼 이만
+
[착한 탄압 ㅇㅈ합니다]
[“그럼 이만” 존나 쿨해 존나 멋있어]
[좀 과열돼있긴 했어 ㄹㅇ]
[남미새 새끼들 ㅋㅋ 남자 한 명 인증했다고 어떻게든 눈에 띄려고 존나 나대네. 니들이 그러니까 항상 욕을 처먹는 거야]
[ㄴ 아니 근데 신기하긴 하잖아 ㅎㅎ;]
“···휴우.”
탄압을 한다는 관리자의 게시글을 본 후.
송하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안 그래도 슬슬 그 사람 기분은 괜찮을까, 걱정하고 있던 참이었는데.
관리자가 적절하게 제재한 것 같았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
솔직히 그녀는 그가 인스타 같은 곳에 가서 인증을 할 줄 알았다.
현실 사진을 올리기에는 거기만큼 편한 곳이 없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설마 타르탈로스같은 음지에 가서 인증을 해버릴 줄이야.
확실히 살짝 과격한 방식이기는 하지만, 효과만큼은 분명하게 있었다.
그러니까 대낮에 불타올랐던 주제가 밤 늦게까지 이어졌던 거겠지.
그만큼 무미건조했던 감옥의 죄수들에게, 이세원의 인증은 신선하고 충격적인 것이었다.
‘이걸로 유입은 확실히 땡겼겠네.’
송하라는 살짝 웃음을 지었다. 적어도 처음에 목표로 했던 홍보는 확실히 한 것 같았다.
그녀는 그 뒤로도 잠시 야짤 감옥을 계속 돌아다녔다.
이미 한 번 관리자가 나서서 불을 꺼트린 상태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직 아쉬움을 가진 유저들이 남아있는 불씨를 태우기 위해 열심히 장작을 가져오고 있는 중이었다.
송하라도 그런 유저 중에 하나였다.
비록 장작을 직접 가져오지는 않지만, 아직 남은 불씨를 계속해서 볼 생각은 있었다.
현재 떠들고 있는 주제는 hala의 행적이었다.
아까는 그가 그린 그림들을 가져와서 떠들어대더니, 이제는 그가 인터넷에 남긴 발자취를 찾아보려는 모양이었다.
마조레즈라는 인식이 박살 난 만큼, 새롭게 정보를 모아 재정의할 필요가 있었다.
“큭큭··· 아니, 진짜 웃기네.”
그리고 그렇게 모인 흔적들은 은근 재밌는 게 많았다.
일단 사람의 성격부터가 약간 거칠고, 뒤가 없어서 그런가. 인터넷에서도 비슷했다.
저번에 작품을 고로시한 상대와 말싸움을 한 걸 가져오거나, 생활고에 시달릴 때 인터넷에 올린 구걸 글들을 가져오는 등.
···살짝 사생활 침해하는 느낌이 들어 양심에 찔렸지만.
애초에 비공개 처리를 안 한 그의 잘못이다.
그녀는 그리 생각하기로 했다.
중간에는 이런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
[야 그러고 보니 얘가 예전에 조공 짤이라고 올린 것도 얘 아니냐?]
(사진)
이것도 구글링 해보면 딱히 나오는 사람 없던데, 알고 보니 얘가 직접 찍은 거 아님?
묘하게 체형도 비슷한 거 같고..ㅋㅋ
이 정도면 합리적 의심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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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생각해 보니 그런 거 같기도? ㅋㅋㅋ]
[에이 설마 자기를 조공짤로 바치는 미친놈이 있을까... 어?]
[걔는 진짜 그럴 거 같기도 해;]
“큼, 크흠···.”
송하라는 그 게시물을 보고 잠시 헛기침을 했다.
그 사진 안에서는 한 남성이 자신의 배를 노출하고 있었다.
한 쪽 손으로는 카메라를 들고, 나머지 한 쪽 손으로는 자신의 상의를 올린다.
아래쪽에 입은 바지는 아슬아슬하게 골반 쪽에 걸쳐 남사스러움을 강화시키는 중이었다.
햇빛을 잘 받지 않아선지 새하얗고 매끄러운 피부가 보였다.
그가 인증용으로 올린 사진과는 달리, 이건 대놓고 꼴리라고 올린듯한 사진이었다.
‘에이, 아니겠지···.’
아무리 그 사람이 ‘여자’같다고는 해도, 설마 이런 사진까지 손수 찍어서 올렸을까 의심이 드는 그녀였다.
“흠흠···.”
그래도 일단 그 사진을 저장해놓기는 했다. 그냥 두기에는 아까우니까.
결코 이상한 사심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그런 거였다.
그 혹시 모를 상황이란 게 뭔지는 몰라도.
그렇게 그녀는 조금 더 타르탈로스를 돌아다니다가 그대로 침대 위에 누웠다.
내일도 출근이었기에 빠르게 자야 할 필요가 있었다.
‘아 씨, 자꾸 생각나네···.’
머리속에서 자꾸만 그 복부 사진이 아른거린 건 덤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