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화 〉 112, 파문
* * *
송하라의 긴장이 좀 풀린 이후로, 그들은 간단하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러고보니 하라 씨는 나이가 몇이세요?”
“저요? 24살입니다.”
“흠, 생각보다 젊으시네요.”
“어··· 네. 왜요, 혹시 나이 들어 보이나요?”
“아뇨, 그런 건 아니고. 팀장이라고 하길래 좀 더 많을 줄 알았죠.”
“아하, 제가 대학에 가는 대신 곧바로 입사해서 그래요.”
소고기를 놔두고 바로 일 얘기로 넘어가는 건 너무 정 없으니까, 잠시 잡담을 하거나.
“그래서, 프로모션은 선물함 알람에, 메인 배너 끝 페이지에 일주일 걸치는 게 다라는 거죠?”
“네에··· 좀 더 퍼주려고 노력은 했지만, 안타깝게도 그게 최선이었네요. 죄송합니다.”
“아뇨, 뭐···. 신입한테는 이것도 감지덕지죠.”
어떤 광고를 받게 되는지 잠시 대화를 놔누며 상사를 까는 절차를 밟기도 하는 등.
맨 처음 그녀의 우려와는 달리, 꽤나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적어도 그녀가 생각했던 것만큼 이세원의 성격이 까칠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겉모습과는 달리 꽤나 털털하고 시원시원한 이미지였지.
솔직히 이 정도면 그냥 아예 ‘여자’가 아닐까 생각이 드는 수준.
중간에는 이런 대화가 오가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작가님 다음 전개는 어떤 식으로 흘러나가요?”
이건 순전히 그녀 개인의 궁금증이었다.
실제로 작품이 궁금하기도 했고, 이후 전개를 알면 나중에 수정하기도 편해질 테니까.
현재 그의 작품 S바이러스는 총 5화까지 나와있는 상태였다.
갑자기 사회에서 날뛰는 발정 난 좀비들을 피해 생존하는 여러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다루는 이야기.
그중에서도 주인공 일행은 어찌어찌 지하철을 탈출하여, 지금은 식량을 구하기 위해 편의점에 숨어들어가 있는 상태였다.
그 편의점의 창고 안에, 정정한 여자 좀비 두 명이 있다는 것도 모른 채.
그런 흥미진진한 상황이라 궁금증이 안 갈 수가 없었다.
대체 저 좀비 두 명은 어떤 식으로 작용할 것인가. 수많은 등장인물 중 누구를 따먹으며, 누구를 발정 난 짐승새끼로 만드는가.
이는 그녀에게 상당한 관심거리었다.
과연 그는 이 작품의 원작자답게 아주 상세하게 대답해 주었다.
“아, 그건 이제 나중에 송한길이라는 남대생이 창고 문을 열 때··· 걔네들이 덮치기 시작하는데요. 그러면서 남대생은 윤간당하고, 편의점에 소란이 나서 근처에서 섹스 중이던 좀비들이 몰려듭니다. 그렇게 주인공 일행은 다시 도망치고······.”
“······.”
너무 자세해서 순간 할 말을 잃을 수준.
송하라는 그 말을 들으면서 잠시 인지부조화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 있는 남성이 아주 진지한 얼굴로 윤간이니, 섹스니 하는 단어들을 지껄이고 있다.
물론 일과 관련된 이야기라는 건 알지만··· 그럼에도 이상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니, 애초에 그런 만화를 그리는 것부터가 평범한 인간은 아니지.
‘진짜 신기하네.’
송하라는 그를 보며 생각했다.
보면 볼수록 특이한 사람이었다.
굳이 좋은 그림 실력을 놔두고 야짤을 그리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그런 음습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이런 외모 준수한 남자였다니.
어쩌면 자신은 지금 대한민국에 얼마 안 남은 희귀종을 만난 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덕분에 며칠 전에 생각했던 의념이 점차 강해지고 있었다. 4년동안 쌓아온 영업직의 직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이 작가의 신상을 팔면 분명 홍보효과가 있으리라.
그래서 슬슬 그녀는 입을 열었다.
“작가님, 진짜 얼공할 생각 없어요?”
이제부터가 본론이었다.
*
한우를 대충 학살한 후, 나는 그녀에게 설명을 들었다.
대충 내가 신상정보를 뿌려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뭐가 있는지, 이걸로 인해 내 작품에 무슨 효과가 있을지 등.
아까까지의 사소한 잡담과는 달리, 그녀는 꽤나 진지한 자세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과연, 확실히 매력적이기는 했다.
굳이 인터넷에 신상을 뿌린다는 위험을 감수할 만큼.
“그니까··· 노이즈 마케팅을 하자는 거네요?”
“뭐, 따지고 보면 그렇죠.”
일부로 나를 구설수에 오르게 해서, 작품에 낙수효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고작 얼공 하나로 구설수에 오른다는 게 좀 신기하긴 하지만··· 뭐 애초에 그런 세상이었으니까.
신기한 것도 신기한 거였지만, 기분이 좋기도 했다.
‘내 와꾸가 돈이 된다고?’
캬, 역시 인생 개 꿀 빠는 데에는 외모만 한 게 없는 모양이다.
다시 한번 ‘이세원’녀석에 대한 고마움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놈이 남겨준 수분크림은 여전히 잘 쓰고 있다.
물론 단순히 와꾸만으로 돈이 되는 것은 아니겠지.
하지만 거기에 성인 웹툰 작가라는 특이성, 그리는 작품이 하드하다는 희귀성이 합쳐져 파급력이 생긴다고 했다.
‘거기까진 생각 못 했네.’
나야 뭐 그냥 잘하는 게 그림뿐이었고, 먹고살기 위해 그림을 그린 것뿐이었으니.
그리고 애초에 원래 세상에서 나는 평범함에 범주에 속하던 인간이었기 때문에, 거기까지 생각할 수가 없었다.
물론, ‘남자’작가가 재밌는 가십거리인 건 인지하고 있었지만 그것뿐.
파급력까지는 생각 못 했던 것이다.
“그래서 어떤가요···?”
그렇게 혼자 생각하고 있자, 송하라가 재차 물었다.
“작가님 입장에서도 나쁜 제안은 아닐 거예요.”
“확실히 괜찮긴 하네요.”
진짜 괜찮긴 하다.
내가 신원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인간도 아니었고. 얼굴 노출에 거부감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예전이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웹툰 작가라는 그럴듯한 명패도 있는 상황.
신상이 파악돼서 경찰에게 잡혀갈 걱정 또한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얼굴까지 공개하는 건. 일단 보류하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했다.
“네? 어째서요?”
순간 그녀의 얼굴에 당황이 서린다.
지금까지 귀 쫑긋거리며 듣고 있었는데 갑자기 거절하겠다니까 놀랄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나에게도 명백한 이유가 있었다.
“그··· 저도 하고 싶긴 한데. 제 팬박스에 좀 성가신 그림이 하나 있어서······.”
내 아바타가 문제였다.
현재 내 아바타의 흔적은, 아직도 핀박스에 남아서 열심히 여자들의 아래쪽을 적시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내 얼굴을 공개하고, 내 핀박스에 남아있는 그림과 나를 대조한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게 뻔하다.
“아, 아하···! 그, 그렇군요.”
그제서야 그녀도 내가 뭘 가리키는지 깨달았는지,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볼이 약간 붉어져 있는 게 보인다. 아무래도 머릿속으로 ‘그 그림’을 상상한 모양이었다.
“큼, 크흠···.”
잠시 테이블에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우리들에게 ‘그 그림’은 여러모로 볼드모트같은 존재였다.
나는 나대로 내 몸을 가지고 야짤을 만들어서 창피하고, 그녀는 내 아바타를 가지고 개꼴린다, 내 취향이다 등등 지껄인 게 많았으니.
서로 언급하기가 불편한 것이다.
근처에서 흐르는 공기가 어색하다.
나는 그 와중에 속으로 한 명에 대한 증오를 불태웠다.
‘망할 이은별···!’
따지고보면 지금 이 어색한 공기를 만든 것도 이년 때문이 아닌가?
나중에 만나면 무릎 꿇고 손들고 있으라고 해야겠다.
찰나의 기분 때문에 다시 한번 그녀의 처지가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아무튼, 얼굴은 우선 놔두고 그 아래까지는 상관없긴 합니다.”
“그럼 그렇게 하죠. 오히려 숨기는 게 더 좋을 때도 있으니까···.”
그래도 그 침묵은 얼마 가지 않아서 금방 깨지게 되었다.
아직 할 얘기가 많이 남아 있었으니 말이다.
정보는 어떤 식으로 뿌릴지, 어디까지 뿌릴지 등.
우리는 한우집에서 꽤나 오래 대화를 나누었다.
*
그리하여 며칠 후.
나는 가볍게 타르탈로스를 돌아다니고 있는 중이었다. 송하라 양에게 물어보니, 밝히는 방법은 작가님 마음대로 하라더라.
그래서 나는 타르탈로스에 들어온 상태다.
야짤에 굶주린 온갖 변태 새끼들과, 나사가 하나씩 빠진 바보들이 모이는 곳.
그중에서도 특히 [야짤 감옥]은 가장 유저 수가 많은 곳이었다.
딱히 야짤을 올리지 않아도, 그림과 관련된 얘기라면 딱히 제재는 없었기에 글 리젠율도 상당한 편이었다.
이 작가의 그림이 개꼴린다고 떠들거나, 비판하거나, 어느 작가 자체의 가십거리를 뜯는 등.
또 어느 때에는, 관심이 고픈 작가가 직접 찾아와 홍보를 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는 오랜만에 이곳에 홍보를 온 참이었다.
+
[안녕하세요 신입 웹툰 작가 hala라고 합니다]
이번에 베스트툰에 작품 등록되었습니다.
(사진)
저 저 조회수 씹창난 것좀 보세요;;
여러분들의 응원이 필요합니다. 저에게 힘을 보태주십시오
작가의 마음이 아파합니다.
+
깔끔하고 간단하게 적힌 홍보 글.
내가 굳이 이런 홍보 글을 적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냥 마지막으로 이놈들의 반응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 머임?]
[벌써 등록됐구나]
그래도 나름 이곳에서 활동한 전적이 있어서 그런가, 댓글은 생각보다 빨리 달렸다.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신작 웹툰이라는 개업빨도 좀 받고 있을 테니. 관심이 가는 건 당연했다.
띠링! 띠링!
모바일 상단 바에 연신 알람 울려 퍼진다.
저런것들 하나하나가 댓글이었다.
[응원=돈 ㅋㅋ그냥 솔직하게 돈 달라고 말해라]
[왜 안 어울리게 존댓말이냐. 평소처럼 하자 레즈야]
[아 이년 작품은 마조에 레즈끼가 좀 있어서 보기 좀 그런데;;]
물론 달리는 대부분의 댓글은 쓸모없는 것들 뿐이었다.
커뮤니티 특성상, 당장 보러 가겠다느니, 응원하겠다느니 하는 댓글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놀리는 글들이 가득하지.
이 씹련들은 언제나처럼 내 작품 취향을 근거 삼아 나를 마조레즈라고 놀리고 있었다.
‘여자’가 당하는 장면이 많으니 당연히 마조히스트요, 수상할 정도로 ‘여자’가 많이 나오니 레즈비언이다.
저 마조레즈라는 멸칭은 어느새 나에 대한 별명처럼 자리 잡아 있는 상태였다.
[아니 근데 이 년, 그림체는 좋아서 꼴리기는 해 ㅎㅎ;]
[난 레즈는 존중 못해도 마조인 건 존중해 줄 수 있다]
재밌는 일이다.
나는 녀석들한테 내 신상정보를 아무것도 알려준 적이 없는데, 어느새 인터넷의 나는 ‘여자’가 되어 있었다.
당연히 야짤을 보는 사람은 ‘여자’가 많았고, 그림그리는 사람도 ‘여자’가 대부분이었기에.
당연히 나도 그 대부분에 자연스레 편입되어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사람들은 자신의 일반적인 상식 아래, 불명확한 정보를 멋대로 결정짓는 버릇이 있는 모양이다.
그렇게 기반을 다져놔야지 후에 들어오는 정보를 처리하기 편하니까.
처음부터 잘못된 지식으로 정보의 탑을 쌓는 것이다.
그 탑을 받치고 있는 땅이 틀어진 것도 모른 채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만약, 애초에 기반 자체가 틀려먹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그 위에 쌓인 정보도 흔들릴 수밖에 없겠지.
톡톡.
키패드를 두드렸다. 손가락에 닿은 감각이 오늘따라 색다르게 느껴졌다.
어쨌든, 나는 그들에게 물었다.
[hala: 궁금한 게 있는데, 난 왜 어느새 여자로 확정되어 있는 거냐?]
[ㄴ ?]
[ㄴ 그럼 우리 레즈는 네가 남자라도 된다는 말이노? ㅋㅋ]
[ㄴ레즈야.. 세상이 아무리 각박해도 네 성 정체성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그러자 빠르게 달리는 놀리는 듯한 댓글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말을 이었다.
[hala: 난 내가 여자라고 말 한 적도 없는데? 왜, 내가 남성일 수도 있잖아]
[ㄴ 그걸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있?나;;]
[ㄴ 아니 애초에 이런곳에 남자가 왜 들어오겠냐고 ㅋㅋ]
[ㄴ ㄹㅇ ㅋㅋ]
진짜 내가 남성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하는 모습.
내가 이렇게나 여자 코스프레를 잘했나··· 생각이 드는 수준이었다.
편견이라는 게 이렇게나 무섭다. 무언가 잘못됐다고는 아예 생각을 못 하게 하니까 말이다.
덕분에 내 인식이 요 모양 요꼴이다.
[hala: 나 실은 남자인데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냐]
[ㄴ 남자 이지랄 ㅋㅋㅋㅋ 맞으면 인증이라도 해보던가ㅋㅋ 고추 까봐라]
[ㄴ 인증이 없으면 뭐다?]
“오케이 이 씹련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중얼거렸다.
안 그래도 슬슬 마조레즈라는 멸칭이 좆같이 느껴지기 시작했던 참이었는데, 이참에 아주 씨팔 끝을 보는 거다.
어쩌면 나는, 굳이 송하라 양이 부추기지 않았어도 알아서 성별을 공개했지 않았을까.
이 오해를 풀어야만 한다.
[hala: 인증간다]
[ㄴ 아 ㅋㅋ 인증해보라고... 어 잠깐 뭐?]
[ㄴ ??]
그렇게 나는 핸드폰을 들고 전신거울 앞에 섰다,
자신의 옷 패션을 보기 위해서인지, ‘이세원’이 구매해 놓았던 전신거울이었다.
크기도 적당히 거대하고 통통한 게 내 몸을 살펴보기에는 안성맞춤인 물건이다.
나는 서랍에 봉인돼있던 포스트잇 하나를 꺼내, 거기에 글자 하나를 적었다.
대충 ‘ hala ’이라는 글자였다. ‘hala’는 당연히 나의 닉네임이고, 옆의 은 놈들 보고 엿이나 먹으라는 뜻이다.
찰칵!
경쾌한 셔터 음이 들리며 내 모습이 그대로 사진으로 동결된다.
반팔 반바지를 입고, 어정쩡하게 포스트잇을 든 내 슬림한 몸매가 사진에 담겨있었다.
목도 적당히 짤린 게, 내 얼굴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이런 씨발··· 내가 방구석에서 이런 사진이나 찍고 있다니. 살짝 자괴감이 들긴 했지만 괜찮다.
이거 한 번이면 기나긴 모멸과 핍박에서 벗어날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나는 타르탈로스에 사진 하나를 게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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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증했다 이 씹새끼들아]
(사진)
이제 그만 놀려 시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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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억울한 감정이 담긴, 한 남성의 몸사진 담긴 가벼운 인증글.
그렇게, 오후 1시의 활발한 점심시간에.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
[???]
[??????]
잠시 파문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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