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야짤작가-111화 (111/125)

〈 111화 〉 111, 고기

* * *

고풍스러운 느낌이 나는 어느 고깃집 안.

송하라는 그곳에서 열심히 긴장감을 누그러뜨리는 중이었다.

“후우­ 하아···.”

한차례 심호흡을 반복할 때마다 조마조마해 하고 있던 심장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물론 그래봤자 약간일 뿐이었지만··· 그래도 가만히 얼타고 있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렇다. 그녀는 현재진행형으로 긴장 중이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영업직 일을 하면서부터 만난 사람만 해도 100은 가뿐히 넘을 텐데.

고작 계약자 한 명 만나서 밥 먹는 것에 이렇게 심력을 소모할 줄이야.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지금 밥먹게 되는 사람이 이성이라는 것을 말이다.

‘설득’이라는 과정에 너무 매몰되어 있어서, 같이 밥 먹게 되는 걸 너무 가볍게 넘겼었던 그녀였다.

‘아, 왜 이러지.’

그리고 송하라는 자신이 긴장하고 있다는 게 잘 적응이 안 됐다.

원래 그녀는 작가가 신작품을 연재하게 되면, 미팅을 목적으로 자주 밥을 사주는 편이다.

그러는 편이 서로 대화하기도 편하고, 작가들의 의욕도 북돋아줄 수 있었으니까.

아마 자신이 밥을 사준 작가 수만 해도 서른은 가뿐히 넘길 것이었다.

횟수로만 치면 백 번도 당연히 넘길 테고.

아무튼 그런 이유로 그리 친하지 않은 사람과 식사를 같이 하는 건, 나름 익숙한 그녀였다.

그럼에도 긴장하는 건 역시, 상대가 상대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은 무려 ‘남자’였다.

그것도 그냥 남자가 아니라 와꾸가 상당히 사납게 생긴 남자.

무릇, 얼굴이란 사람의 첫인상을 결정하기 마련이다. 이 사람의 성격이 어떠할지, 까칠할지 부드러울지.

사람들은 대부분 사람의 첫인상을 보고 그런 걸 재단하는 편이었다.

그런 만큼, 이세원의 와꾸는 사람에게 거리감을 느끼게 하기 충분했다.

혹시라도 말실수를 했다가, 다짜고짜 욕을 처먹는 건 아닐까··· 괜스레 걱정되는 것이다.

거기에 더불어서, 그녀는 이렇다 할 이성 경험조차 없었다.

대학생활을 스킵하고 곧바로 회사생활을 시작했었으니.

심지어 그 회사도 남성은 거의 없는 극단적인 ‘여초’회사다. 아무래도 야한 걸 주로 다루는 회사다보니 ‘남자’가 적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심호흡을 반복하던 그녀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채팅에선 안 이랬는데.’

내심 예전 관계가 더 그리워지는 그녀였다.

얼굴을 몰랐을 적에는 마치 장난치듯 대화를 자주 했었다. 자신도 그런 사이가 편했고, 상대도 잘 받아주는 편이었으니까.

이상한 야짤들을 보고 개꼴린다고 말할 수 있던 것도 모두 편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얼굴을 안 지금은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채팅처럼 편하게 대했다가 “이 씨발련이 인터넷이랑 현실이랑 구분도 못하냐?”같은 소리를 들으면 어떻게 하는가.

······하도 긴장했더니 별의별 망상이 다 나왔다.

‘후, 진정하자.’

아무튼, 그녀는 여전히 심호흡을 하며 기다렸다.

그냥 밥을 먹으면서 앞으로의 일을 설명해 주는 것 뿐이다. 고작 그 뿐인 일에 굳이 긴장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리고 이번에는 음식점도 특히 좋은 곳으로 예약해둔 상태였다.

벽을 가득 매운 고동색의 목재 벽지가 보인다. 바닥에는 웬 꽃이 그려진 대리석이 깔려있는 상태였다.

확실히 고급스러운 느낌이 들면서 한식집의 분위기가 나는 곳이다.

이곳은 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어느 소고기집 안이었다. 1인당 식사가격이 5만원을 웃도는, 나름 고급에 속하는 식당.

좋다. 이 정도면 충분히 대접한 것이리라.

준비는 일단 완벽했다.

딸랑­

그렇게 기다리고 있자, 문득 문 쪽에서 종소리가 울렸다.

문이 열리면서 한 사람이 들어온다. 이세원이었다.

그가 도착하자 송하라는 무심코 그를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검은색 머리의 검은 눈, 세상 자체에 불만이 있다는 듯 날카롭게 새겨진 두 눈이 보였다.

그 아래에 쌓인 다크서클은 마치 사람 자체에 퇴폐미를 부여하는 것 같았다.

잘 웃지도, 잘 슬퍼하지도 않을 것 같은 차가운 분위기다. 그러나, 그 분위기에는 확실한 매력이 있었다.

꿀꺽.

송하라는 침을 한 번 삼켰다. 역시 긴장이 되긴 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 슬슬 그가 이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몇 번 두리번대더니 이쪽을 찾은 모양이었다.

테이블에 도착한 그가 가볍게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네요.”

“아, 네 오랜만입니다. 먼 길 오느라 힘들었을 텐데 감사해요.”

“아뇨, 뭐 불렀는데 와야죠.”

그러고는 태연하게 자리에 앉았다. 그의 눈이 주변을 잠시 두리번거렸다.

아무래도 내부 풍경에 호기심이 드는 모양이었다.

송하라는 우선 예전에 작가들과 대화했을 때의 기억을 되살려 말문을 열었다.

“우선, 웹툰 데뷔 축하드려요. 부담이 상당했을 텐데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러고는 메뉴판에 있는 한우를 시켰다. 빨간색과 하얀색이 조화롭게 섞인 소고기의 사진이 보인다.

다행히 시킨지 얼마 되지 않아 한우는 금방 대령되었다.

“그··· 음, 고기는 좋아하죠?”

“당연하죠.”

치이익!

송하라는 불판 위에 고기를 올리며 생각했다.

‘어색하다.’

일단 여태껏 쌓아왔던 사회경험으로 말을 이어가고 있긴 한데, 어색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뭐, 이제 두 번째 만난 사람과 어떻게 편히 대화할 수 있겠냐마는··· 그래도 어색함이 꽤나 불편한 그녀였다.

어쨌든 대화를 이어나가긴 했다.

웹툰 게시되면서 작품은 확인해 보셨는지, 다음 화는 잘 진행중인지 등등.

“······.”

“······.”

가끔 어떻게 대해야 할지 조심스러워서, 그게 침묵으로 이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바로 질문을 하면서 그 침묵이 길게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렇게 있자 어느덧 불판 위에 올렸던 소고기가 다 익은 게 보였다.

그녀는 먼저 이세원에게 고기를 한 점 건네주었다. 먼저 맛 보라는 의미였다.

접시에 올라간 고기를 집어먹은 그가 감탄을 흘렸다.

“오···.”

얼굴에서 만족스러움이 느껴진다.

다행히 마음에 든 모양이다. 좋다.

이제 “맛있네요”같은 가벼운 리액션만 나와도 자신은 한 결 편해질 수 있을 것이다.

아무렴, 무려 한우까지 써 줬는데 그 정도는 나와야지.

하지만, 곧이어 그의 입에서 나온 건 좀 더 격한 리액션이었다.

“이거 섹스네요.”

“···네?”

너무 격한 리액션이라 순간 그녀의 머리가 멈출 정도.

인생에서 이제 두 번 마주친 이성이, 자신의 앞에서 섹스를 외치고 있다.

주변에 다시 침묵이 감돌았다. 다만 이번엔 어색함에서 비롯된 침묵이 아니라, 당황에서 비롯된 침묵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세원이 다시 입을 열었다.

“와 씨, 입안에서 고기가 혀랑 섹스 중인 기분이에요.”

“······.”

와꾸와는 전혀 안 어울리는 천박한 발언에, 송하라는 순간 얼탱이를 잃었다.

*

처음 식당에 들어왔을 때,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냥 흔한 고깃집인 줄 알았던 식당이, 알고 보니 고급진 한우전문점이었기 때문이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고풍스러운 분위기에 순간 압도당하는 기분이었다.

대저 한우란 어떤 존재인가. 서민음식의 최고존엄, 치킨님보다 최소 몸값이 두 배는 비싼 존재다.

명백히 서민음식을 벗어난, 부르주아의 상징 같은 음식이란 것이다.

그걸 상대방은 나에게 대접해 주고 있었다. 세상에 무료 한우라니.

덕분에 상대방에 대한 무한한 감동이 치솟아 오르는 중이었다.

‘크흡!’

과연 그렇게 한 입 집어먹은 한우는 과연 한우라 불릴만했다.

입안에서 들어온 고기가 마치 아이스크림처럼 사르르 녹는다.

고기 안에서 튀어나오는 육즙과 미각이 응집된 혀가 서로 격렬하게 섹스 중이었다.

과연 누가 먼저 가버리는가··· 아쉽게도 먼저 가버리는 것은 나의 혀였다.

상류층의 거근에 내 혀는 앙앙대며 가버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건 도게자 박아야 한다.’

아무렴, 한 끼에 5만 원 이상짜리 고기를 대접해 주는데 도게자 박을만하지.

여기가 프라이빗 룸 같은 개인실이 아니라 아쉬웠다. 그랬다면 절 한 번 거하게 해주는 건데.

“크흠, 마, 맛있다니 다행이네요.”

그렇게 감상평을 말해주자 그녀가 애써 대답했다.

표정에 당황이 가득 담겨있었다.

하긴, 눈앞에서 혀가 고기랑 섹스 중이라는 정신 나간 소리를 들으면 당황할 만하지.

“네, 역시 비싼 값을 하네요.”

그래도 후회하지는 않았다. 한 번쯤은 공기를 풀어주긴 해야 했으니까.

나는 상대방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냥 편하게 대하셔도 돼요.”

“···?”

순간 상대방의 눈이 나를 향한다.

“네?”

“조심 안 하고 편하게 대해도 된다고요. 채팅에서 나눈 대화가 있는데 뭘 그렇게 긴장하고 있어요.”

솔직히 상대방이 어색해 해서 그런지, 덩달아 나까지 어색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다짜고짜 긴장 풀라는 말해봤자 통하지도 않을 테고.

그러니까 나 먼저 내려놓은 것이었다. 내가 먼저 얼빠진 소리를 하면 상대방도 긴장을 좀 풀겠지.

다행히 이런 내 전략이 통했던 건지, 상대방이 조금씩 표정을 바꿨다.

당황에서 잠시 놀라움으로 갔다가.

이내 입가에 피식 자그마한 미소를 짓는다.

“알았어요. 배려해 줘서 고마워요.”

한 결 편해진 얼굴이었다. 덕분에 사방에 무겁게 깔려있었던 어색한 공기가 조금은 풀어진다.

다행이었다. 식사값으로 5만 원이나 내는 사람이 불편해하고 있었다면 내 마음도 편치 못했을 테니까.

이제 좀 더 여유로운 대화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다시 이야기할게요. 데뷔 축하드려요. 어제 조회수 확인해 보니까 상당히 처참하던데.”

“네, 감사합니다. 편하게 대하라고 했더니 바로 비수를 처박아 버리는군요. 뭐, 좋습니다. 그래서 광고는 언제 넣어주시나요?”

“아, 걱정 마세요. 오늘 다 설명해 드릴 테니까···.”

다행히 이후에 오가는 대화는 좀 더 편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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