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화 〉 110, 희귀
* * *
때는 며칠 전으로 돌아간다.
탑 엔터테이먼트의 전자책 출판 부서.
그중에서도 영업팀 팀장, 송하라는 최근 생각하는 것들이 많았다.
회사의 업무야 뭐··· 그건 항상 많았으니까 그렇다 치고.
최근에 계약한 신입 작가와의 만남이 무척이나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아니, 진짜··· 생각할수록 신기하네.”
그녀는 업무 의자에 앉은 채로 중얼거렸다.
카페에서 만난 지 몇 주가 지났건만, hala라는 인간은 아직도 머릿속에서 아른거리고 있었다.
첫눈에 반했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물론 호감은 있긴 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
아마도.
아무튼 여전히 생각나는 이유는 단순히 신기했기 때문이다.
그딴 그림을 그리는 그리는 사람이 남자였다니···. 생각도 못 했던 일이라 그런가 충격이 상당했다.
알지 모르겠지만, 이세원이 그리는 그림은 꽤나 하드한 축에 속한다.
단순히 성취향의 마이너함을 떠나더라도, 일단 평범한 ‘남자’가 그릴 그림은 아니었다.
강간은 기본에, 단체 윤간, 속박, 묶어놓고 스팽킹 등등···.
심지어 아주 예전에는 팔다리가 잘린 남캐를 그려대기도 했었다.
···물론 그때는 이세원에게 여러 정신적 기제가 발동했을 때긴 하지만, 아무튼 평범한 그림은 확실하게 아니었다.
설령 평범한 여성이 그린다고 해도 정신이상자 취급받을 것 같은 그림을··· 저런 사지 멀쩡하고 정신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그려댔다고 하니, 인지부조화가 오는 것이다.
‘이딴 게 남자···?’
덕분에 이런 다소 성차별적인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만약, 맨 처음에 그가 먼저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자신은 정말로 계약자를 찾지 못하고 카페 밖으로 나갔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혼자 잡생각을 이어나가고 있을 때였다.
“팀장님.”
옆에서 부하직원이 말을 걸었다.
“팀장님?”
“어? 어어.”
그녀는 얼른 정신을 차리고 직원의 말을 기다렸다. 무엇인가, 무엇이길래 감히 팀장을 찾아오는가······.
“별 건 아니고요. 이번에 계약한 신입 작가, 슬슬 광고 넣어줄 때 되지 않았나 해서요. 며칠 후면 데뷔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아아, 맞아. 그렇지.”
그녀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고 보니 슬슬 프로모션을 넣어줄 때가 되긴 했지.
프로모션··· 그니까 쉽게 말해 홍보작업은, 모든 작품들에게 해줘야 하는 일종의 관례와도 같았다.
아무리 못난 작품이어도, 설령 작가와의 사이가 안 좋더라도.
처음 한 번 정도는 무조건 프로모션을 넣어주는 게 도리다.
그래야지 작품의 홍보도 제대로 들어갈 테고, 최소한의 유입도 땡길 수 있을 테니까.
입소문이란 것도 최소한의 독자 수가 있어야지 가능한 일이었다.
독자가 독자를 모으고, 그럼으로서 작품이 커다는 선순환을 만드려면, 최소한의 홍보는 필수적이었다.
주로 메인 페이지에 걸어주거나··· 선물함으로 알람을 보내주거나 하는 등···.
그리고 이에 있어서 송하라는 약간의 걱정을 가지고 있었다.
“줘야지. 주긴 해야 하는데···.”
딱히 주기 싫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애초에 초반에 주는 프로모션은 대부분 정해져 있고, 그건 자신의 권한으로도 못 바꾸는 일이었다.
기대작인 경우에는 메인 배너를 걸어주고, 애매한 경우엔 그저 독자들에게 핸드폰 알람과, 선물함만 보내준다.
오히려 고민하는 이유는 그 반대라고 할 수 있겠지.
좀 더 좋은 프로모션을 주고 싶긴 한데··· 자신의 권한이 애매하여 주고 싶어도 더 줄 수가 없었다.
“흠······.”
송하라는 이세원의 가치를 냉정하게 따져보았다.
나이 22세에 데뷔한 젊은 신입 웹툰 작가. 확실히 이 타이틀만 보면 일반인들의 눈에는 충분히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겠지.
하지만, 돈을 굴리고,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윗분들 입장에서는 허울만 좋은 매물일 뿐이었다.
22살의 젊음과, 경력 하나 없는 신입.
이 말은 곧 그가 미숙하다고도 판단을 할 수도 있으리라.
가능성은 충분히 있지만, 아직 장기 연재 한 번 제대로 끝내보지 못한 초짜.
그림도 분명 잘 그리고 꼴릿함이 살아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탑티어 수준의 작가들과 비빌 정도는 아니었다.
그 사람들은 완성된 작가들이고, 이세원은 아직 성장할게 많은 작가였으니까.
그러니 아직 데뷔도 안한 현재로서의 이세원은, 그냥 가능성만 좀 있는 검증 안 된 작가인 것이다.
슬프게도 현실은 생각보다 꽤나 냉혹했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그가 따로 sns 홍보를 받거나, 사이트 메인 배너에 걸릴 일은 희박했다.
아무리 자신이 어필해 봤자 메인 배너 끝 페이지에 며칠 겨우 걸치는 게 다겠지.
물론, 어머니의 ‘입김’을 사용하면 좀 달라질 수 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권력은 사용하고 싶지 않은 그녀였다.
그녀는 머리를 싸맸다.
‘으으··· 좀 더 홍보해 주고 싶긴 한데······.’
단순히 호감이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녀는 작품에 꽤나 진심인 사람이었다.
자신이 즐겨보고, 괜찮다 생각하는 작품을 다른 사람에게 추천한다. 그것 자체에 그녀는 보람을 느꼈다.
하물며, 그는 자신이 직접 컨택하고, 계약까지 직접 추진한 사람.
그런 만큼 그가 잘 되면 자신의 실적 또한 쌓이게 된다. 아무리 금수저인 그녀라도 실적은 포기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다 할 방법이 없으니···.
“와, 근데 진짜 신기하긴 하네요.”
그때 다시금 옆에 있는 직원이 입을 열었다.
아직 안 가고 뭐 하나 했더니, 자신의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이게 그 만화 작가라고요? 전혀 매칭이 안 되는데.”
그 모니터에는 현재 이세원의 프로필이 띄워져 있는 상태였다. 증명사진과, 나이, 주민등록번호 등이 적힌 프로필이 보인다.
별 건 아니고, 그냥 그녀가 띄우고 싶어서 띄웠다.
직원이 신기하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저도 이 작가님 그림 몇 개 확인해 봤는데, 되게 마이너하던데요? 좀 거칠기도 하고, 일단 평범한 남성이 그릴 그림은 아니던데··· 와 이런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는구나.”
송하라는 그 말에 적극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호기심이 갈 수밖에 없지.
야짤을 그리는 ‘남자’도 희귀한 편인데, 그걸 직업으로 삼는 인간이 있다?
심지어 그리는 그림도 샤방샤방한 느낌이 아니라, 상당히 하드하고 거친 느낌의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여러모로 존나게 휘귀한 인간이라는 것이다.
‘어? 잠깐 희소성?’
그러다가 문득, 머릿속에 어떤 아이디어가 스쳤다. 답답했던 머릿속이 한결 개운해지는 기분이었다.
작품 자체로서의 홍보가 더 이상 힘들다면, 작품 외적으로 흥미를 이끌어내면 되지 않을까?
사람들은 보통 희귀한 것에 호기심이 향하는 법이다.
대상이 희귀할수록, 희소성이 높아질수록 그것에 대한 관심도 똑같이 증가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분명 성별을 공개하면, 거기에 더해 얼굴까지 공개할 수 있다면 충분한 화제성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리라.
‘오.’
생각하면 할수록 괜찮은 생각같았다.
요즘 유튜브 덕분에 작품 외적으로 유명한 작가도 몇 명 있지 않은가.
그 덕분에 오히려 자신의 작품보다 더욱 유명해진 작가들도 있었다.
이미 선례가 있는데 그도 충분히 가능성은 있는 것이다.
좋다. 괜찮은 거 같다.
그렇게 아이디어를 채택한 그녀는 그대로 이세원에게 연락하려고 했다.
그녀의 고급스러운 핸드폰이 그대로 손아귀에 잡힌다.
“앗.”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이내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분명 이익은 있다.
다만 문제는, 결국 실물을 공개하는 것도 그의 의지라는 것이다.
과연 그가 이 제안을 받아들일지 걱정이 되었다.
‘혹시, 실례되는 짓은 아닐지···.’
혹시 물어보는 것만으로도 그의 신경을 건드리는 것은 아닐까. 내심 불안감이 생기는 그녀였다.
생각해 보면, 그는 따로 인터넷에서 자신이 남성이란 걸 티 낸 적이 없었다.
만약 그랬다면 꽤나 재밌는 광경을 볼 수 있었을텐데도.
그는 꿋꿋하게 마조레즈라는 조롱을 당하면서 견뎠다.
그러니 혹시, 자신의 신상이 공개되는 것을 꺼리는 건 아닌지 생각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필연적인 잡음이 생길 수도 있고.
‘끄응···.’
덕분에 그녀는 다시 핸드폰을 집어넣을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 보면 아직 상대방의 성격도 모르는데, 다짜고짜 저런 무리한 제안을 걸기에는 부담이 갔다.
그녀의 핸드폰이 책상 위에서 오랫동안 맴돌았다.
‘아니, 그래도 한 번 권해볼 만한 거 같은데···.’
‘어떻게 이익을 잘 설명하면 되지 않을까···.’
그녀는 그 뒤로도 권해볼까 말까 오랜 고민을 반복했다.
한 번도 권해보지 않고 넘어가기에는, 그 희소성이 너무 아까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며칠 후.
“에잇, 몰라.”
갈등의 갈등을 반복하던 그녀는 그냥 될 대로 돼라 하고 보냈다.
[송하라: 작가님 혹시 얼굴 공개할 생각 없어요?]
*
[이세원: 네, 생각 없는데요?]
일단 그렇게 말했다.
상대도 나름 용기 내서 한 말 같긴 한데, 너무 갑작스러워가지고.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이 없던 건 사실이기도 하고.’
딱히 좋다, 싫다.
이런 게 아니라 진짜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이다.
아니, 프로모션 얘기하는데 갑자기 얼공 얘기가 왜 나오지?
내가 무슨 개쩌는 버츄얼 스트리머인 것도 아니고.
방구석에서 고추나 벅벅 긁으며 야짤이나 생산해 내는 작가일 뿐인데.
물론, ‘남자’작가라는 거에서 어떤 반응을 얻을 수 있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광고와의 연관성까지는 유추해 내지 못한 나였다.
[송하라: 앗, 넵. 네... 죄송합니다]
물론, 갑자기 쭈글쭈글해지려는 상대방이 보여서 얼른 다음 말을 잇기는 했다.
[이세원: 뭐 실례되는 말 한 것도 아닌데 뭐가 죄송해요]
[이세원: 그것보다 혹시 무슨 이유인지 들을 수 있을까요?]
갑자기 이런 제안을 한 이유가 뭔지.
어떤 생각이 근거가 되어 얼공이라는 결론이 나왔는지.
나는 궁금하여 물었고, 그랬더니 상대방은 어차피 내일 만나니까 천천히 설명해주겠다고 했다.
“결국 나와야 한다는 거구나.”
그리하여 내일.
나는 지금 어느 고깃집 앞에 도착해 있는 상태였다.
웹툰 데뷔 축하 기념, 프로모션 설명할 겸, 얼공 제안 이유 들을 겸으로, 그녀가 사주는 고기였다.
식사 자리 한 번에 이유가 꽤나 많이 붙어 있었다.
‘최소한 대화거리 부족할 일은 없겠군.’
나는 피식 웃었다.
이제야 두 번 만나는 거긴 한데, 채팅창에서부터 대화하던 사이라 그런지 딱히 긴장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뭐 상대방은 어떻게 느낄지 몰라도.
그렇게 나는 천천히 음식점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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