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화 〉 109, 프로모션
* * *
일상은 변한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끊임없이 흐르는 시간은 언제나 우리에게 변화를 강요했고, 그러한 변화는 일상에서 가장 먼저 드러나는 편이었다.
보통 일상이 변할 때면 꽤나 많은 세월이 흘러 자연스레 변하거나, 아니면 뭔가 극적인 일이 생겨 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겠지.
그리고 나 같은 경우에는 분명 후자일 것이다.
이세계 트립 같은 아주 극적인 변화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내 인생에 변화가 생겼다고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정도.
핀박스에 공지를 올린 뒤 3주. 나는 드디어 ‘베스트툰’이라는 웹툰 사이트에 내 작품을 정식으로 게시한 상태였다.
앞으로 나는 내 통장 잔고를 확인하려면 핀박스 대신 베스트툰으로 들어가야 하리라.
이 정도면 일상에 커다란 변화지.
“흠흠~.”
첫 게시인 만큼 연재 화수는 총 5화까지 올리게 되었다. 거의 핀박스에서 가지고 있던 연재 회차 모두를 옮겨온 셈이다.
처음부터 너무 많이 올린 건 아닐까 생각이 들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느 정도 연재 화수가 쌓여 있어야지 사람도 찾아올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올린 5화는 무료 회차 3화, 유료 회차 2화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제부터 독자들은 내 만화를 보려면 월 5000원의 구독료를 내는 대신, 편당 300원의 소장료를 내야 하는 것이다.
얼핏 보면 핀박스보다 작아 보이긴 하지만, 이용자 수를 생각하면 전혀 아니었다.
접근성도 좋고,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베스트툰'쪽 작품이 유입이 더 많을 건 확실한 일이었으니까.
'어디, 몇 명이나 봤을지 볼까?'
나는 싱글벙글 웃으며 스무스하게 베스트툰 사이트로 들어갔다.
그리고 검색창에 ‘S바이러스’라는 작품을 검색하였다.
분명 나의 개 꼴리는 만화를 알아본 꼴잘알들이 조회수를 빼곡하게 채워주고 있을 게 분명하다.
아무렴, 여기 누적 조회수 최고 고점이 무려 8,000만도 넘어가는 것 같던데.
아무리 최근 개업한 신생 웹툰이라고 해도 1만은 나오지 않을까?
적어도 나는 그리 예상했다.
‘캬.’
그렇게 나는 전립선이 찌릿찌릿해지는 행복 회로를 돌리며 내 조회수를 확인했고
[총 조회수: 2000+]
“아.”
이내 실망할 수 밖에 없었다.
고작 조회수 2000.
‘아······.’
탄식이 자동으로 흘러나왔다.
풍선처럼 부풀었던 기대감이 구멍 뚫린 듯 빠진다.
확인된 조회수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처참했다.
아니 그래··· 신작품 올라간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쌓인 회차 수도 그리 많지도 않으니 조회 수가 적을 수밖에 없긴 하지.
걱정은 했던 일이다.
그래도 2000은 너무 적지 않나, 2000은··· 나름 핀박스때에는 커뮤니티 파급력도 있었는데······.
기대했던 마음이 너무 커서 그런가, 그에 따른 낙차 덕분에 상실감이 더 크게 다가왔다.
하지만 그렇게 침울해 하는 것도 잠시, 그래도 나는 외외로 빠르게 순응했다.
'그래··· 어쩔 수 없긴 하지.'
솔직히 파급력이라고 해봤자, 그냥 골 때리는 설정이라고 타로탈로스에서 잠깐 까였던 게 다였으니까 말이다.
어디 다른 sns까지 흘러나간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보니 상대적 양지인 베스트툰에서는 조용할 수밖에 없었고.
애초에 신작품이 나왔다는 걸 아예 모르는 사람도 많을 게 뻔했다.
그도 그럴게 나는 아직 제대로 된 광고도 받지 못했으니까.
메인 배너를 차지한 것도 아니고, 선물함으로 알람이 간 것도 아니다.
진짜 말 그대로 딱 게시만 한 상태. 아마 요일연재칸에도 분명 최하단에 위치해 있을 것이다.
유입이 없는 게 당연했다.
그러니,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말자. 여기가 나의 시작점이다.
조회 수는 시간이 지나다 보면 자연스럽게 쌓일 것이고, 나는 앞으로 핀박스대신 나의 작품을 키우면 되는 것이다.
‘쩝, 댓글기능이 없다는 게 아쉽네.’
그게 있었으면 반응이라도 확인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나는 마지막으로 입맛을 한 번 다시고는 사이트를 나갔다.
계속 보고 있어봤자 내 마음만 쓰라릴 것 같으니까. 그럴 바에는 다른 일이나 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결심한 나는 내 대학 사이트에 들어가 곧장 문서 하나를 제출했다.
요즘 세상이 참 좋아졌다. 굳이 얼굴 대면하면서 이런 걸 낼 필요가 없어졌으니까.
물론, 학교 가는 길이 짧아서 가는 것도 그리 힘들진 않겠으나··· 힘든 것이랑 귀찮은 건 다른 일이었다.
그렇게 내가 제출한 문서는 다름 아닌 ‘휴학서’였다.
개인적인 사유로 인해, 학교를 합법적으로 나가지 않겠다는 대학의 구원 같은 제도.
그렇다, 나는 대학을 휴학할 예정이었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제 굳이 더 다닐 필요 없으니까.’
애초에 맨 처음 다녔던 이유도 ‘이세원’ 이 씹새끼가 낸 학비가 아까워서 간 것이었으니.
못 해본 대학생활도 했겠다, 더 다닐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 말고도 다른 이유도 존재했다.
‘애초에 더 못 다니기도 하고.’
예전에는 커미션이나 짧은 만화 몇 개 그려 올리는 정도라 학업과 병행이 가능했었지.
하지만 지금은 무려 계약까지 한 어엿한 정식 작가다.
일주일에 내가 찍어내야 하는 최소 컷 수만 해도 무려 50컷이나 된다.
그 말은 곧, 나는 하루에 7장 이상의 그림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심지어 간단한 스케치만 하는 것이 아니라, 채색까지 완벽히 한 그림으로만 7장.
‘오우···.’
대충 상상만 해도 내가 갈려나갈 게 뻔히 보이는데 대학까지 다닌다?
내가 못 버틸 게 눈에 훤했다.
그럼에도 왜 굳이 ‘자퇴’가 아니고 ‘휴학’이냐?
그건 꽤나 소인배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프, 플랜 B는 필요하니까···.’
물론, 그럴일은 없겠지만.
혹시 만약에라도 내 작품이 처참하게 망할 때를 대비해 휴학을 한 것뿐이다.
어차피 휴학 후 자퇴 루트는 흔해 빠졌으니까. 자퇴를 뒤로 미뤄둔 것이었다.
“끄으으!”
그렇게 할 일을 마친 나는 가볍게 기지개를 폈다.
뿌드득, 오랫동안 앉아있던 몸이 기분 좋은 비명을 지른다. 굳어있는 몸의 근육이 서서히 풀리는 기분이었다.
이로써 오늘 확인할 것들은 전부 다 했다.
휴학서도 대충 사유 써서 제출했고, 처참한 내 작품 조회수도 확인한 상태.
이제 남은 건 컴퓨터 앞에 짱박혀서 그림만 찍어내면 되는 일이다.
그렇게 나는 잠시 스트레칭을 하다가, 이내 타블렛 펜을 들고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니, 근데 갑자기 개빡치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머리에서 순간 열이 뻗쳐서 다시 타블렛 펜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세상에, 펜을 잡은 지 몇 분도 안 돼서 다시 내동댕이치는 나의 끈기에 감탄이 절로 나오긴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생각해 보니 이건 꽤나 괘씸했기 때문이다.
‘아니, 그래서 광고 이벤트는 언제 해주는 거지?’
보통 웹툰 쪽에서는 이런 신작품이 올라가게 되면, 어떤 식으로든 광고를 해주기 마련이다.
사이트의 메인 화면에 홍보 포스터를 올려주거나, sns 광고로 웹툰을 띄워주는 식으로.
그것도 아니라면 따로 개인 알람을 보내서 신작이 나왔다고 알려주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야지 유입도 늘어나고, 독자가 독자를 끌어들이는 낙수효과도 누릴 수 있을 테니까.
그렇기에 보통은 신작품이 나오고 얼마 되지 않아 광고가 들어가는 게 대부분이다.
하지만 나는 광고는커녕 어떤 광고가 들어간다는 언질조차 받지 못한 상태였다.
물론, 아직 신작이 올라간지 며칠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 그런 걸 수도 있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미리 언질조차 주지 않는 건 너무했다.
보통은 어떠한 광고가 들어갈 거라고 미리 알려주는 게 기본 아닌가?
그래야지 나도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을 테고, 상호 간의 협의도 가능한 법이다.
하지만 상대방은 아직 연락이 없으니··· 이는 곧, 아직 결정된 광고가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부글부글, 속이 끓었다.
회사의 노예관리를 이따위로 하다니!
이래봤자 자신들 손해일뿐이다. 내가 돈을 벌어야 회사도 분배금을 알뜰살뜰하게 뜯을 것이고, 이는 곧 회사의 자본이 된다.
그 말은 곧, 내 손해는 회사의 손해와 마찬가지란 것이다.
그런데도 광고를 아직 주지 않는다니. 혹시, 회사는 마케팅의 마 자도 모르는 게 아닐까?
그렇게 혼자 지랄발광을 이어나가고 있을 무렵···.
띠링
하는 소리와 함께 핸드폰에 알람이 울렸다.
핸드폰을 들어 확인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송하라에게 연락이 와 있었다.
[송하라: 안녕하세요 작가님^^]
[송하라: 다름이 아니라, 프로모션과 관련하여 얘기드릴 게 있어 연락드렸습니다.]
[송하라: 혹시 조만간 만나 뵐 수 있을까요?]
캬.
나는 그 문자를 보고 잠시 감탄을 흘렸다.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더니, 머릿속에서 투덜댄지 얼마 되지 않아 희소식을 물어온 그녀였다.
프로모션이란, 그냥 쉽게 말해 이쪽 용어로 홍보를 뜻한다.
그 말은 즉, 회사에서 슬슬 자신에게 광고를 넣어주려 한다는 것.
덕분에 순간 개빡쳤던 마음이 서서히 풀어지기 시작한다.
물론 다 풀린 것은 아니었기에, 괜히 한 번 튕기기는 했다.
솔직히 나가기 귀찮기도 하고 말이다.
[이세원: 넵, 근데 나가는 건 좀 귀찮은데.. 혹시 전화로 설명해 주시는 건 불가능할까요?]
내가 이렇게 문자를 보내자, 문자는 놀랍도록 빠르게 왔다.
[송하라: 이야기가 조금 길어서요, 만나서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밥은 제가 살게요]
“흠.”
그럼 인정.
밥도 자신이 사겠다는데 못 나갈 것도 없지.
그 뒤로 우리는 언제 어디서 만날지 대충 정했다.
시간은 내일 오전 11시쯤에 근처 고깃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이런 만남은 빠를수록 좋으니까.
[이세원: 그럼 내일 봐요]
[송하라: 네]
그렇게 나는 대화를 마치고 슬슬 채팅창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송하라: 아 잠시만]
[송하라: 만나기 전에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괜찮나요?]
[이세원: ?]
하지만 그때였다. 상대방이 용건 있다는 뉘앙스로 나를 붙잡은 건.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와중에도 상대방의 말은 계속되었다.
[송하라: 아 아니다 그냥]
[송하라: 이건 물어보기 그렇네요. 그냥 넘어가죠]
애써 말을 꺼낸 지 몇 초도 안 지나 바로 포기하는 모습.
“뭔데.”
그 찝찝한 모습에 나는 다시 한번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그냥 물어볼 거 있으면 물어보지.
오히려 찝찝하게 끊어서 괜히 궁금증만 더 생기는 느낌이었다.
하는 수없이 나는 키패드를 톡톡 두드려 상대방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이세원: 뭔데요?]
[이세원: 물어볼 거 있으면 편히 물어보셔도 상관 없어요]
[송하라: 아뇨 괜찮습니다. 약간 조심스러운 질문 같기도 하고 ㅎㅎ;;]
“아니 그니까 뭔데 그게.”
이렇게 된 이상 들을 수밖에 없다.
하여, 나는 다시 한번 상대방을 재촉했다.
[이세원: 오히려 제가 궁금해졌으니까 그냥 말해주세요]
[이세원: 얼른]
[송하라: 아, 알았어요]
결국 상대방은 내 계속된 재촉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잠시 채팅창에 침묵이 감돈다. 아까 상대방의 타자 속도를 보면, 웬만한 건 금방 말할 수 있을 텐데.
몇 번 정도 문장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는 상대방이 머릿속에 저절로 그려졌다.
그렇게 기다리길 잠시, 이윽고 상대방이 올린 물음은 확실히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송하라: 작가님 혹시 얼굴공개 하실 생각 없으신가요?]
[이세원: ??]
“···응?”
나는 이번에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