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화 〉 106, 편견
* * *
흔히 하는 편견이라는 게 있다.
사회에서 쌓인 데이터, 혹은 개인의 주관적인 생각이 섞여 만들어진 편향된 견해.
충분한 근거도 없이 사람을 재단하고 판단할 때, 우리는 그걸 편견이라 불렀다.
내 눈이 날카로운 걸 보고, 성격이 지랄맞을 거라 오판을 하듯.
또는 공대 남자들을 보고, 모두들 체크무늬 옷을 입고 다닐 거라 오해를 하듯.
편견이란 생각보다 우리 생활에서 잘 나타나는 편이었다.
그리고 나도 이런 편견이란 걸 가지고 있는 편이었다.
아니, 애초에 뇌의 상식과 관념에 의해 편견이 만들어지는거라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리 대단한 편견은 아니다.
그냥 간단한··· 직업에 관련한 편견이었다.
흔히, 작가들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전원 배불뚝이에 머리카락이 빠져 있을 것이다.
아니면, 정치인들은 전부 책상 아래에 비서 하나씩은 끼고 있는 부패한 족속들일 것이다 등등.
이런 간단하면서도 편협한 시각들뿐이었다.
마찬가지로 편집자에 관한 편견도 비슷했다.
주로 사람을 만나고, 설득하고 계약을 하며, 주기적으로 연락을 자주 해야 하는 직업인만큼.
대부분 서글서글하고 편안한 인상이 아닐까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야지 사람의 경계심을 빠르게 누그러뜨리고, 편안한 상태로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을 테니까.
당연히 이번에 나오는 사람도 비슷하게 생기지 않았을까··· 하고 오판하고 있던 중이었다.
하지만 눈앞에 나타난 저 qwer1이란 사람은.
내 편견 섞인 외모와는 완전히 동떨어져 있었다.
서글서글한 느낌보다는, 어딘가 도도한 느낌이 나는··· 약간, 뱀과 여우를 반반씩 섞어놓은 듯한 외모였다.
“워······.”
뭐랄까, 인싸같다 해야 하나···.
심지어 인싸도 이은별같은 명랑하고 밝은 학식충 인싸가 아니라.
번듯한 사회의 직장인으로서, 사람들을 주무르는 느낌이나는 그런 도도하면서도 권위있는 인싸느낌이었다.
덕분에 나는 살짝 움츠려들 수밖에 없었다. 아무렴, 인싸를 봤는데 움츠려들지 않는 아싸가 있을까.
벌써부터 어색함이 물씬 피어올랐다.
그렇게 잠시 상대방을 바라보고 있자 그녀가 다시 문자를 보냈다.
[qwer1: 저 도착했는데 어디에 계세요?]
일단 카페 안으로 들어왔는데, 내가 어디에 있는지는 아직 못 찾은 모양.
그래도 문자 덕분에 정신을 차린 나는 잠시 핸드폰을 들어 상대방에게 답장했다.
[hala: 지금 당신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사람이 접니다]
굳이 옷차림을 설명하기보단 이게 낫겠지. 시선이란 생각보다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종류였으니 말이다.
그러자 상대방이 천천히 카페안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황갈색을 닮은 듯한 눈동자가 왼쪽에서부터 천천히 돌아간다.
그러던 중 나와 두 눈이 마주치기도 했다. 서로의 동공이 마주치자 그녀가 살짝 움찔하는게 보였다.
‘이제 찾아오겠네.’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커피를 홀짝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qwer1의 눈이 다시 돌아가며 카페안을 마저 훑었다.
그렇게 전체를 둘러본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다시 나에게 물었다.
[qwer1: 어디예요? 안 보이는데?]
“···응?”
나도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뭐라는 거야.”
아까 눈까지 마주쳐놓고 뭘 못 찾겠다는 건가.
나는 다시 문자를 보냈다.
[hala: 지금 카페에서 두리번거리고 있는 분이 당신 아닌가요?]
[qwer1: 맞는데요]
[hala: 그 사람을 쳐다보는 사람이 접니다]
그러자 상대방은 다시 카페 안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카페 안은 상당히 넓었다.
시내 중앙에 위치해 있는 카페기도 하고, 지금이 오후 4시쯤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기도 했다.
그래서 내 주변에는 미팅 온 직장인, 수다 떨러 온 학생들로 가득한 상태였다.
그래도, 사람 하나 찾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텐데···.
[qwer1: 아니; 장난치지 마시고 얼른 알려주세요]
상대방은 이번에도 못 찾았다.
분명 이번에는 카페도 두어 번 훑어본 거 같은데.
나랑 눈도 두세 번쯤 마주친 거 같은데.
상대방은 아무것도 못 봤다는 듯, 얼른 시선을 회피하고는 다시 주변을 둘러볼 뿐이었다.
‘응?’
그제서야 나는 슬슬 위화감을 눈치챌 수 있었다.
‘···설마 나라고 아예 예상을 못하는 건가?’
그렇다!
내가 상대방을 만나기도 전에 서글서글한 인상일 거라는 편견에 빠졌듯, 상대방도 비슷한 편견에 빠진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그런 야시시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여자’가 많을 테니까.
통계적으로 봐도, 이쪽의 상식에서 봐도 그런 야짤을 그리는 ‘남자’는 상당히 희귀한 편이었다.
덕분에 상대방도 자연스레 자신을 쳐다보는 ‘여자’를 찾게 되었고, 나는 자연스레 범위에서 빠진 것이다.
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거 생각해 보니까, 대화하기도 전에 굳이 쫄아있을 이유는 없어 보였다.
[qwer1: 빨리요. 저 슬슬 뻘쭘해지려고 합니다;]
[hala: 거기 있어요 그냥. 제가 그쪽한테 갈게요]
나는 그냥 자리에서 일어나기로 했다. 저렇게 있다가는 하루 종일 못 찾을 것 같았으니.
드르륵.
나무로 된 의자가 밀리며 작은 소리가 울려 퍼진다.
물론, 그 정도 소음은 카페의 음악에 묻혀 금방 사라질 뿐이었으나··· 한 명의 시선을 이끌어내는 충분했다.
여태껏 카페를 두리번거리던 상대방의 눈이 나를 향한다. 상대방의 날카로운 눈동자가 잠시 크게 떠졌다.
“어, 어?”
여태껏 여유롭던 상대방의 얼굴에 놀라움이 깃들었다.
터벅터벅, 걸어갈 때마다 상대의 당황한 듯한 얼굴이 좀 더 확연하게 보였다.
그렇게 다가간 나는 피식 웃으며 그녀에게 놀리듯 말했다.
“아니, 왜 이렇게 못 찾으세요?”
도도한 얼굴에 맞지 않는 얼빠진 표정이었다.
*
“후··· 아니 깜짝 놀랐네. 작가님 남자였어요?”
“넹.”
가벼운 대면식이 끝난 후, 우리는 곧장 자리에 가서 앉았다.
계속 일어나 있기도 애매하니까, 내가 재빨리 자리로 데려온 것이다.
자리에 앉아서 정신이 좀 돌아온 걸까. qwer1은 재빨리 커진 동공을 수습하고 있었다.
평정을 되찾고 있는 것이다.
“아니, 남자였으면 미리 말을 해주던가. 덕분에 한참 찾았잖아요.”
“뭐, 어차피 만날 사이인데 굳이 말해줄 필요 없잖아요.”
그리고
라고 말하며 나는 말을 이었다.
“미리 말해주면 재미없기도 하고.”
“······.”
순간 상대방이 나를 쳐다보았다. 도도해 보이는 눈매에 어이없음이라는 감정이 한층 떠올랐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그저 실실 웃을 뿐이었다.
“성격은, 인터넷에서랑 비슷한 것 같긴 한데······.”
그녀가 그렇게 말하며 커피로 목마름을 축였다. 쫍쫍, 빨대가 움직일 때마다 컵 안에 든 블랙커피가 서서히 줄어든다.
저 쓰기만 한걸 어떻게 저리 잘 마시는지··· 카라멜 마끼아또를 시켰던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저런 게 사회인이란 말인가.
나는 상대방의 그런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외외네···.’
블랙커피가 의외란게 아니라, 상대방 자체가 의외였다.
사실 커미션 신청하는 꼬라지로 봐선, 약간 정신에 문제 있는 음습한 처자일 줄 알았는데.
실제로 본 qwer1은 꽤나 깔끔하고 품위있어 보이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역시, 익명성 안의 모습으로 현실의 모습을 재단하는 건 아무 쓸모 없구나.
하긴, 성아린도, 이은별도 내 생각이랑 전혀 달랐었으니 말이다.
“······.”
“······.”
잠시, 자리에서 침묵이 감돌았다. 어색함이 주변에서 은은하게 맴돌고 있었다.
커미션 내용으로 나온 거라면 내가 먼저 입을 열 텐데··· 그런 것도 아니라 뭐라 말을 걸기 애매했다.
문득, 성아린 양과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났다.
그때는 걔가 내 어색함까지 모두 흡수해가서 편하게 입을 열 수 있었는데, 지금은 양자 모두 어색함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결국엔 나도 누군가에겐 상대적 아싸인 것이다.
‘그립다 아린아···.’
그렇게 혼자 잡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우선, 저 먼저 소개할게요.”
상대가 고개를 숙이며 말한다.
도도한 얼굴에 은은한 미소가 맺혔다.
“반가워요. 저는 탑 엔터테이먼트에서 일하고 있는 팀장, 송하라라고 해요. 잘 부탁드려요.”
“아, 아 넵.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어색하게 고개를 숙이며 상대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qwer1의 이름은 송하라였구나. 겉모습과 은근히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나는 고개를 들며 생각했다.
솔직히 지금 내가 가장 많이 느끼는 감정은 다름 아닌 실망이었다.
‘막 엄청 당황하지는 않네···.’
솔직히 좀 더 당황할 줄은 알았는데 말이다.
성아린같이 개쫄은 반응을 기대하고 있었던 나였다. 물론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좀 더 어버버하거나, 행동이라도 어색하게 변할 줄 알았는데.
역시 엄연한 사회인이라 그런가, 송하라란 인간은 스무스하게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었다.
‘힝···.’
“그래도 이렇게 만나니까 반갑네요. 뭐 오시면서 불편한 건 없었나요?”
물론 내가 시무룩하든 말든 대화는 천천히 이어졌다. 그리 의미 있는 내용은 아니었다.
오늘 덥지는 않았었냐. 오는 거리가 멀지는 않았었냐. 그쪽도 바쁘실 텐데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하다 등.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오가는 형식적인 말들뿐이었다.
이런 대화라도 오가야지 긴장이 풀릴 테니까 말이다.
까탈스러워 보이는 얼굴과는 다르게 은근히 친절한 그녀였다. 전형적인 사회인의 화법이었다.
그렇게 대화하던 도중, 나는 문득 궁금한 게 생겼다.
“아, 그러고보니.”
그래서 나는 무례를 무릅쓰고 상대방에게 물었다.
“그전에 채팅으로 대화하실 때 편집자 비스름한 거라고 했던데··· 그건 무슨 뜻인가요?”
지금 모습을 보면 그냥 편집자 느낌 그 자체였다.
하지만 상대가 ‘비스무리’하다고 직접 언급했으니 뭔가 다른 게 좀 있을 터. 나는 이게 꽤나 궁금했다.
내가 이렇게 묻자 상대가 오묘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 그게 사실은···.”
그러고는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제가 회사 주주의 딸이어서요.”
“···네?”
설명을 계속했다.
들어보길, 그녀는 엔터테이먼트 대주주의 딸이고.
현재는 사회경험을 할 겸, 지금 이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은근히 적성에 맞아서 지금은 팀장 자리까지 올라간 게 지금이었다.
그니까 말하자면, 편집자이긴 하지만 실질적인 권력은 그보다 위인것이다.
그걸 들은 나는 작게 감탄을 흘렸다.
“오······.”
그러고는 생각했다.
‘금수저였군.’
어쩐지, 들어올 때부터 부티가 좀 나더라니. 애초부터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자제인 것이다.
하긴, 그림 하나에 30만 원씩이나 투자하는 사람이 일반인 일리가 없지.
태어났을 때부터 인생 이지 모드로 시작했다는 것에, 살짝 배알이 꼴리긴 했으나.
그래도 일단 형식상 웃으며 리액션을 해줬다.
“대단하시네요.”
“뭘요. 제가 노력해서 번 것도 아닌데.”
“아뇨, 돈이 그리 궁하지도 않을 텐데. 꾸준히 일을 하고 계신다는 거잖아요. 그 성실함은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약간 똥꼬 빨아주는 듯한 말이긴 했으나, 이건 진심이었다.
내 머릿속에서 금수저라고 하면 허구한 날 놀고먹는 애들이 대부분이었으니.
이렇게 더운 날에 나와서 열심히 일을 하는 걸 보면 충분히 본받을만 했다.
“···고마워요.”
내가 이렇게 말하자, 잠시 상대방의 얼굴에 은은한 미소가 맺혔다. 다행히 내가 한 말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캬, 스윗한남 이세원. 여자랑 자주 붙어있다 보니 점수 따는 법을 무의식적으로 아는 모양이었다.
근데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음, 근데 금수저란걸 굳이 밝힐 필요가 있었나?’
맨 처음 채팅창에서 편집자라고 밝혔어도, 어차피 하는 일은 비슷하니까 그냥 대충 넘어갔을 텐데.
상대방은 굳이 ‘비스무리’라는 단어를 붙여서 뭔가 다르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생각해보니 금수저라 밝힐 때도 뭔가 의기양양한 표정이었던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무렵.
“아, 그럼 슬슬 다시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요? 아 그전에···.”
상대방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면서 정말 자연스럽게 테이블 위에 팔을 올린다.
그러고는 손목 위에 부착되어 있던 시계를 풀어 테이블에 잘 보이게 놓았다.
그렇게 확인한 시계는 은색으로 치장된 고급스러운 롤X스 시계.
일상생활에는 쓸 데가 없는··· 가장 싼 것조차 200만 원 가까이하는 사치품의 대명사인 물건이었다.
“아~ 시계가 무거워서 그런가. 팔이 조금 저리네요.”
마치 이것 좀 보라는 듯. 어색하게 자기 어필을 하는 그녀.
“······.”
나는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왜 돈 자랑하는 남자들을 여자들이 꼴불견이라 했는지.
조금은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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