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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야짤작가-105화 (105/125)

〈 105화 〉 105, 만남 전

* * *

“건배!”

시간이 흘러 이틀 후 저녁.

이세원은 성아린, 이은별과 함께 가벼운 축하 자리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아직 정식 연재가 확정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연재 제의를 받은 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일이니까.

그가 직접 초대한 것이다.

까앙­!

공중에서 맥주캔이 부딪치며 청명한 소리를 낸다. 노란색의 액체가 잠시 공중에 떴다가, 아래로 후두둑 떨어졌다.

현재 그들이 있는 곳은 이세원의 자취방이었다. 밖은 덥기도 하고, 굳이 술집을 가서 먹기에는 너무 오버스럽고 하니, 그냥 집안에서 먹기로 한 것이다.

덕분에 작은 식탁 위에는 치킨과 과자 등의 음식들이 어지럽게 놓여있는 상태였다.

치킨과 맥주, 이것은 섹스와 동급인 정도다.

“와··· 근데 아직도 신기하네. 진짜 그쪽에서 연락 온 거야?”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치킨을 뜯고있자, 성아린이 입을 열었다.

얼굴에는 감탄과, 놀라움 등의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제가 아는 사람 중에 이렇게 계약 제의를 받는 사람이 있다는 게 아직도 신기했다.

분명 며칠 전까지는 그림을 좀 잘 그리는 평범한 대학생 1이었는데··· 갑자기 사람의 지위가 팍 올라간 느낌이었다.

그렇게 잠시 그를 바라보고 있자, 이세원이 맥주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기분이 좋은 건지, 입가에는 실실 웃음이 지어져 있는 게 보인다.

“히히, 그렇다니까. 갑자기 채팅창으로 연락 주더라. 설마 그 정도로 큰 곳에서 컨택을 보내줄 줄은 몰랐는데··· 기분 좋네.”

“축하해. 근데··· 사람이 좀 멀어 보인다.”

“뭘, 멀어 보여. 나도 아직 얼떨떨한데.”

그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겸손을 떨었다.

계약 제의를 받은지 벌써 이틀이 지났지만, 아직도까지도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가끔 헷갈리는 그였다.

고작 문자만으로 현실을 자각하기에는 일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그래도 잠에 들기 전에 몇 번 볼을 꼬집어 봤었는데, 아픈 거 보니 현실인 것 같긴 하다.

“아, 그러고 보니 대답은 하셨어요? 연재하겠다고.”

그렇게 뒷머리를 긁적이고 있자 이번엔 이은별이 입을 열었다. 그녀는 손에 든 감자칩을 열심히 먹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그녀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응, 채팅으로 했어.”

대답은 어제 막 문자로 수락하겠다고 보낸 참이었다. 그게 사기가 아닌 것도 알았고, 계약 제의가 온 곳이 하꼬 플랫폼이 아닌 것도 알았으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다행히 답장은 금방 왔고, 간단한 설명을 들은 뒤 긍정적으로 대화를 마친 상태였다.

그런 식으로 대충 설명을 마치자 이은별이 작게 감탄을 흘렸다.

“와, 대단하네. 진짜 축하해요. 솔직히 가끔, 진짜 아아아주~ 가끔 대단하다 느낄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진짜 대단해졌네요.”

“야 씨, 칭찬을 할 거면 제대로 하던가.”

얘는 대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 가끔씩 그런 게 궁금해지는 그였다.

그래도 칭찬인 건 맞아서 이세원은 피식 웃었다.

“뭐, 암튼 고맙다.”

“헤, 뭘요.”

그렇게 평소처럼 웃고 떠들던 와중, 이은별은 문득 궁금한 게 생겼다.

“그러면 일단 계약하려면 서로 만나겠네요?”

그녀는 아직 계약이란 걸 해본 적이 없지만, 보통 이런 커다란 계약에는 대면이 뒤따른다는 건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서로 얼굴을 봐야지 신뢰도도 좀 생기고, 계약 얘기도 상세히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최근에는 전자계약 서니 뭐니, 여러 방안이 나오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현실에서 얼굴 마주 보고 하는 게 대부분일 것이다.

그리고 이은별은, 거기에 약간의 걱정이 있었다.

“응, 만나겠지. 대충 며칠 뒤에 카페에서 보기로 했어.”

과연 예상이 맞는지 그가 맥주캔을 들어 올리며 대답했다. 걱정하나 없이 태연한 모습이었다.

은별은 다시 한번 물었다.

“그러면, 그··· 상대방은 오빠가 남자라는 거 알고 있어요?“

“음, 아니? 아마 모를걸?”

“···으흠.”

은별은 속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긴, 그렇겠지.

애초에 그런 그림을 그리는 게 ‘남자’라고는 웬만해선 상상도 못할 일이고, 그도 굳이 자신의 성별을 말하고 다니는 사람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높은 확률로 상대방에게도 말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은별은 그게 걱정이었다.

“흐음···.”

솔직히 말하자면, 이세원은 상당한 희소성이 있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성격은 털털하고, 야한 걸 꽤나 밝히는 데다가, 그렇다고 외모에 모난 구석이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얼굴이 살짝 사나워보이긴 하지만··· 그것도 충분히 매력포인트로 작용할 수 있는 정도.

이성으로서의 매력은 충분히 있는 셈이었다.

그러니 만약, 혹시 만약에 말이다.

상대방이 그를 만나고 호감을 품게 된다면? 그래서 막 따먹으려고 한다거나 그런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고 불안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아니, 사실 그것 말고도 불안한 건 하나 더 있었다.

‘불안해···.’

바로 이 인간 자체가 불안감이었다.

그녀는 잠시 그를 쳐다보았다. 장난기 섞인 얼굴로 실실 웃는 그가 보인다.

“큭큭, 만났을 때가 기대되네.”

왜 굳이 만날 상대에게 성별을 밝히지 않았는지도 대충 예상된다.

아마 상대를 놀래 주고 싶다는 게 주된 이유겠지.

이상하게 그는 이런 데에서 장난기를 발휘하는 편이었다.

그걸로 상대방의 심리를 장악하여 분위길 주도하는 데에 이상하게 재능이 있었다.

사실, 이 인간이 따먹히는 것보다. 그가 먼저 나서서 따먹는 장면이 더 쉽게 그려지는 수준.

마침, 이번에 컨택메일을 보낸 사람도 원래는 커미션 의뢰를 주고받던 사이였다고 하던데···.

그걸로 어떤 식으로든 심리적 압박을 가해서, 먼저 침대로 자빠뜨릴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어딘가 레퍼런스가 많이 비슷하다.

자신도 그런 식으로 당했었으니 말이다.

이은별은 문득, 자신의 옆에 앉은 성아린을 쳐다보았다.

미심쩍은 얼굴로 이세원을 쳐다보는 그녀가 눈 안에 들어온다. 이은별은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다가 서로 눈이 마주치기도 했다.

순간, 이유 모를 동질감을 느낀 그녀들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언니도 같은 생각 중이었구나···.’

이 인간이 믿음직스럽지 못하다는걸.

하여간 성욕이 너무 강해도 문제였다.

그래도 은별은 우선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뭐, 어때.’

애초에 작정하고 따먹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그냥 계약 얘기를 나누러 가는 것뿐인데.

설마, 별일이야 있겠는가. 심지어 상대방의 얼굴조차 아직 모르는 상태였다.

그러니 일단은 좋은 일을 축하해 주자. 아까 축하한다는 말은 정말로 진심이었다.

아무렴, 자신이 좋아하던 인물 중 하나가 인정받았다는 것인데, 안 기쁠 리가 있겠는가.

다행히 그녀는 남의 성공을 질투하는 그런 종류의 인간은 아니었다.

“······.”

그래도 이대로 있을 수는 없는 법. 조금이라도 그의 성욕을 줄이면 오발탄이 튀어나가는 것도 줄일 수 있으리라.

마침, 치킨도 거의 다 먹었겠다. 그녀들은 슬슬 거사를 준비하기로 했다.

탁자 위에서 일어나며 슬슬 시동을 건다.

“그럼 슬슬···.”

“흠, 누구부터 씻을까요?”

그때 이세원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응? 씻어? 갑자기 왜?”

“어··· 하려는 거 아니었어요? 그것 때문에 부른 거고.”

“아니, 오늘은 그냥 술 마시려고 부른 건데. 오늘은 딱히 할 생각 없었어.”

“······??”

순간 두여 성진은 경악했다.

“네?!”

“잠깐 뭐라고?!”

이런 세상에, 그가 먼저 섹스를 거부하는 일이 있다니!

“잠깐 오빠 진심이에요? 섹스 안 해요?”

“세원아, 혹시 어디 아파? 여름 감기가 그렇게 독하다는데.”

이은별이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이세원을 쳐다보고, 성아린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의 이마를 짚었다.

다행히 열은 나지 않았다.

“어, 어? 갑자기 왜 그래···.”

그가 당혹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그녀들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경우는 생전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요구하면 자기가 요구했지, 이렇게 거절하는 경우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처음 보는 그의 리액션에 당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분명 몸에 무슨 문제가 생겼거나, 정신에 치명적인 장애가 생긴 것이 분명하다.

“혹시 전립선암에 걸렸다던가··· 갑자기 급성 우울증이 도졌다던가······.”

“아니, 뭔 미친 소리야!”

“그러면 왜 안 한다는 거예요? 무슨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두 여성이 걱정 섞인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 눈빛이, 아주 사람 하나 정도는 그냥 꿰뚫을 수 있을 것 같은 수준이었다.

대답을 듣기 전까지는 계속 저 상태일 거 같은 느낌이다. 미친, 야스 한 번 안 한다고 저런 눈빛을 받을 줄이야.

결국 그는 어쩔 수 없이 말문을 열 수 밖에 없었다.

“그···.”

그녀들의 시선이 그에게 향한다.

“그으···.”

세원은 창피하다는 듯 고개를 돌리고는, 고개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두 명은 살짝 힘들어서······.”

“···아.”

나름대로 납득할 수 있는 이유였다.

*

‘참 나, 도대체 나를 어떡해 생각하는 거야···.’

시간이 흘러 며칠 후, 문득 그 때의 일을 생각한 이세원은 어이없음에 속으로 투덜거렸다.

야스 한 번 거절했다고, 어디 심각한 병에 걸린 사람 취급하다니.

도대체 그 두 명의 심상에는 내가 어떤 느낌으로 자리 잡아 있는 건가··· 덕분에 깊이 고민해 볼 수 있는 날이었다.

‘그래도 공과 사는 구분할 줄 안다고.’

어째서 그런 걱정스러운 눈길로 쳐다봤는지, 따로 말은 안 했지만 이유는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오랜만에 만들어진 새로운 만남이다. 그녀들과의 인맥과는 전혀 상관없는, 새로운 인연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혹시 무슨 해프닝이 생기는 건 아닐까, 걱정하는 거겠지.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암, 내가 무슨 좆잡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짐승새끼도 아니고.

단순히 계약서를 사인하는 자리에 무슨 일이 벌어지겠는가. 그리고 애초에 상대방의 얼굴조차 아직 모르는 상태였다.

그리고 그 사람 커미션 신청하는 게 약간 이상한 쪽이라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아무튼 그런 이유로 별생각이 없는 나였다.

[qwer1: 어디에요?]

그렇게 커피를 쪽쪽 빨면서 기다리자 핸드폰에 띠링 문자가 왔다.

오늘은 qwer1을 만나는 날이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서 어느덧 그렇게 되었다.

덕분에 나는 지금, 오후의 어느 카페에서 홀로 앉아 있는 중이었다.

나는 상대방에게 답장을 보냈다.

[hala: 카페 안에 도착해 있어요. 도착하시면 연락하세요.]

[qwer1: 알겠어요]

qwer1과 답장을 하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공과 사는 구분한다 했지만, 그래도 사람의 생김새는 궁금한 법이다.

익명성 뒤의 사람을 생각하는 것은 그것 자체로도 즐거운 일이었으니까.

정말 편집자처럼 말끔하게 생겼을 수도 있고, 번듯한 사회인답게 중년의 아지매가 올 수도 있다.

아니, 채팅창에서 말하는 꼬라지를 생각해 보면 은근히 젊을 수도 있겠지···.

그렇게 생각을 이어나갈 때였다.

[qwer1: 저 지금 들어가요~]

딸랑­

카페 문에 달린 종이 울리며 한 여자가 들어온다.

허리 근처에서 흔들리는 웨이브 진 머리카락, 화려함을 더하듯 상의에 걸친 여름용 코트.

발바닥에 신은 은근히 불편해 보이는 하이힐까지.

윤기나는 브라운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어딘가 귀티가 나는 여자였다.

분위기만 보면 이런 조촐한 카페가 아니라 어디 강남 시내에 있어야만 할 것 같은 모습.

걸어들어오는 모습이 마치 무슨 모델이 런웨이라도 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속으로 잠시 감탄을 흘렸다.

‘워우···.’

뭐야 저게.

저게 qwer1이라고?

내 상상이랑 너무 다른 게 튀어나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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