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야짤작가-104화 (104/125)

〈 104화 〉 104, 두근두근

* * *

“에엑?!?!”

나는 마치 라노벨 속에 나오는 모 히로인처럼 소리 질렀다.

세상에 시발, 내 목에서 저딴 계집애 같은 소리가 나온다는 것에 자괴감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다.

방금 그 문자는 소리를 안 지르고는 못 배기기 때문이다.

“이, 이게 뭐지 시발.”

진짜 이게 뭐지.

너무나 뜬금없는 상황에 인지부조화가 오는 기분이었다.

분명 두 눈은 똑바로 뜨고 있는데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안 되는 기분.

그래서 일단은 상황을 좀 정리해 보기로 했다.

어디 보자··· 우선 qwer1이 먼저 문자를 보냈고, 나는 그 문자를 보면서 상대방에게 똥게이 짤을 그리기 싫다고 애새끼마냥 울부짖었었다.

다행히 내 말이 통했는지 상대방은 슬슬 마음을 바꾸는 모습을 보였고, 나는 어떻게든 상대를 압박하며 원하는 걸 얻어내고자 했다.

그렇게 몇 번 대화를 주고받으니··· 다짜고짜 컨택문자가 왔다.

“진짜 뭐지?”

상황을 정리해 봐도 존나 이게 무슨 일인지 이해가 안 된다.

아니 애초에, 누가 컨택메일을 이런 채팅방에서 준단 말인가. 따로 팩시브 주소에 개인 이메일까지 적어놨었는데.

일단 나는 물어볼 것부터 물어보기로 했다.

[hala: 잠시만요. 당신 편집자였어요?]

편집자란 작가의 작품을 관리해 주는 사람을 이야기한다. 주로 흥행성 보이는 작품에 컨택을 보내거나, 작가를 관리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 이런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인간은 대개 편집자 말고는 없다.

[qwer1: 편집자라 해야할까... 뭐 비슷하긴 해요]

맞으면 맞고, 아니면 아닌 거지.

비슷하다는 건 또 뭔 소리인가.

살짝 이해가 안 됐지만, 일단 나는 조금 진정하기 위해 찬물을 떠와서 마셨다.

꿀꺽꿀꺽.

차가운 물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간다. 위장에 차가운 게 좀 들어가니 덩달아 정신도 좀 침착해지는 기분이었다.

눈을 한번 비비적대고는 다시 천천히 문자를 읽어보았다.

‘다행히, 가짜같지는 않은데···.’

메일이나 전화번호가 적혀있는 거 보면, 적어도 장난질처럼은 안 보였다.

하긴, 정신병자도 아니고, 애초에 누가 이런 정성 들인 장난을 치겠는가.

[qwer1: 어때요?]

그렇게 잠시 확인을 하고 있자 다시 상대에게서 문자가 왔다.

분명 익명성 너머라 상대방의 모습은 안 보일 텐데, 어째선지 즐거워하는 게 느껴졌다.

우선 나는 키 패드를 두드려 답장을 날려줬다.

[hala: 어떻긴요; 너무 갑작스러워서 뭔 상황인지도 감이 안 잡히는데]

진심이었다. 뭐 기쁘다, 놀랍다 이런 걸 느끼기 전에 일단 실감이 안 났다.

내 뇌가 현실을 못 따라가고 있는 기분이다. 덕분에 나는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다시 상대방이 입을 열었다.

[qwer1: 뭐, 간단하게 생각하세요. 저희 쪽에서 님의 작품을 재밌게 보고 있었고, 이번 기회에 컨택 문자를 날렸다. 이게 다입니다.]

그렇게 말하니까 간단하긴 한데··· 그래도 어안이 벙벙한 건 마찬가지였다. 이런 골 때리는 걸 정식 회사에서도 보고 있었다니.

어쩐지 약간 창피함이 몰려오는 기분이었다.

설마 여기서 대답을 해야 하는 건가? 너무 커다란 일이라 섣불리 대답하기가 망설여졌다.

그런 내 마음을 안 건지, 상대방이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qwer1: 원래는 메일로 보내주려고 했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채팅으로 보내게 되네요]

[qwer1: 그러니 너무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마세요. 천천히 생각해 보고 답장은 나중에 보내주셔도 되니까.]

과연 편집자 비스름한 사람이라 그런가, 문장에 배려가 느껴졌다.

왜 편집자 비스무리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자기가 그렇다고 하니까.

“후···.”

어쨌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지금 정하는 건 아닌 모양.

나도 이런 제의를 받는 게 처음이라 그런지 어떻게 대응할지 좀처럼 감이 안 잡혔다.

그래도 일단은 상대방에게 물어볼 게 있어 문자를 보냈다.

[hala: 네, 아 그러면 커미션 의뢰는 어떡하죠?]

뭔가 커다란 게 와서 잠시 잊을 뻔했지만, 아직 커미션 의뢰 내용이 남아 있었다.

잠깐, 그러고 보니 이 새끼는 편집자이면서도 그딴 그림들을 신청한 건가?

[qwer1: 흠, 그건 일단 뒤로 미뤄놓는 걸로 하죠. 돈은 우선 가지고 계시고. 괜찮을까요?]

[hala: 아, 네. 상관없습니다.]

일단은 그 문제는 뒤로 미루기로 했다. 안 그래도 일하기 싫었는데 저런다면 나야 좋지.

저러다가 까먹으면 꽁똔이 생길 수도 있고 말이다.

[qwer1: 그럼 긍정적인 검토 부탁드리며, 나중에 뵙겠습니다^^]

[hala: 아, 네 넵;]

그렇게 상대는 저 말을 끝으로 대화를 마쳤다.

충격적인 정체가 밝혀 저서 그런가, 은근히 상대방이 멀게 느껴졌다.

그냥 돈 많은 방구석 금수저 백수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번듯한 직장도 있고, 야망가를 보는 것도 일의 연장선이다.

번듯한 사회의 직장인이라는 것이다.

‘개 쩌는군.’

야망가를 보면서 돈을 벌다니. 어쩌면 그런 게 신의 직장이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벌떡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림을 그릴 생각은 없지만, 뭔가 찾아보고 싶은 게 생겼기 때문이다.

“베스트툰이라···.”

어디서 들어본 것 같긴 한데······.

우리나라에서 웹툰 시장은 꽤나 많이 발달한 편이다.

만화란 어디에서나 인기 있는 장르였고, 그건 우리나라 또한 다르지 않으니까.

심지어 그 접근성은 인터넷으로 넘어가면서 무척이나 간편해졌기에, 이제는 웹툰을 안 보는 사람이 더 적을 정도였다.

아마 핸드폰 쓰는 2~30대 청년들에게 웹툰 보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그렇다고 대답하리라.

그 정도로 웹툰 산업은 거대한 규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건 19금 걸린 성인 웹툰도 마찬가지다.

인류 최초의 직업이 매춘부인 만큼 성욕은 곧 돈이 되었고, 세상엔 개꼴리는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사람이 많았으니까.

물론, 메이저한 전체연령가에 비하면 소비자 수는 적긴 하겠지만, 그래도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수준.

적어도 조회 수만큼은 지금 내가 운영하고 있는 핀박스와는 천지차이일 게 뻔했다.

타닥탁.

그렇게 나는 인터넷에서 ‘베스트툰’이라는 걸 검색했다.

다행히 사이트는 화면 최상단에 바로 떠올랐다.

내심 인지도도 없는 개하꼬 플랫폼이면 어떡할까 생각했는데··· 다행히 그건 아닌 모양.

오히려 상대방이 자신만만하게 계약 제의를 건 만큼, 상당히 커다란 규모의 사이트였다.

“와 씨, 조회수봐라···.”

빨간색이 섞인 메인화면에, 연재되는 수많은 작품들이 보인다. 최소 10만에서 100만이 넘어가는 작품들.

어떤 작품 같은 경우엔 무려 1,000만이 훌쩍 넘어가는 것도 있었다.

이정도면 대형을 넘어 초대형 사이트다.

나는 속으로 내 핀박스 계정을 생각해 보았다.

‘내 구독자 수가 600명 근처였던 거 같은데···.’

세상에, 이렇게 비교하니까 진짜 존나게 커 보인다.

물론, 구독 비용이 은근히 비싸서 적을 수밖에 없긴 하지만···.

그럼에도 하늘과 땅 차이인 건 부정할 수 없었다.

내가 계약을 하면 이런 곳에서 연재를 할 수 있는 건가······.

“······.”

슬슬 실감이 오고 있었다. 자신이 얼마나 커다란 제안을 받았는지.

얼마나 거대한 곳에서 나를 영입하려는지.

두근두근.

심장이 가늘게 떨려왔다. 머릿속에서 도파민이 조금씩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몸은 가만히 있는데도 자꾸 입안에서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흐흐···.”

웹툰이라니. 그것도 무려 정식 연재라니.

무릇 그림쟁이라면 대부분 웹툰 작가의 꿈을 꾸기 마련이다.

자신이 상상해놓은 세상을 현실로 풀어내는 것은 그 자체로 즐거운 일이었으니.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부터 웹툰이란 하나의 목표로 생각해왔고, 대학 진학을 희망할 때도 웹툰 관련된 과로 가려고 했었다.

잘나가는 만화가가 돼서 살아가는 행복 회로를 돌린 적도 많았다.

하지만 입시미술을 실패하고, 그저 꿈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설마 이런 식으로 올 줄이야.

“헤헤···.”

심지어 그저 그런 회사도 아니라, 무려 1티어 급에 해당하는 회사에서 온 것이다!

‘기분 좋네.’

그게 기쁘지 않을 리 없었다.

이런 메이저급 회사라면 불공정 계약 같은 것도 없을 테지. 수익 비율도 잘은 모르겠지만 업계 표준으로 나올 것이다.

그렇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이런 기회는 무조건 잡는 게 맞다.

아직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이미 내 마음은 YES로 99% 기울어진 지 오래였다.

아마 나는 조만간 다시 연락을 넣어 계약하겠다는 문자를 보내겠지.

갑작스레 일상이 크게 뒤바뀌는듯한 기분이 들지만··· 뭐, 그게 좋은 쪽이니 상관은 없었다.

그러면 연락은 조만한 다시 하는 걸로 하고.

지금은 우선······.

‘자랑부터 해야지.’

암, 자랑질은 못 참으니까.

이런 커다란 소식은 나눌수록 더 커지는 법.

자랑질도 좀 해야 삶도 풍족해지고, 웃음도 늘어나고 그런 것이다.

그렇게 나는 계약제의 문자를 대충 캡처한 뒤 성아린과 이은별에게 보냈다.

미개한 학식충 새끼들은 이걸 보고 재밌는 반응들을 보여주리라.

채팅창에 적인 숫자 1은 금방 사라졌다.

[이세원: (사진)]

[이세원: 나 좀 개쩌는 듯]

[성아린: ???]

[성아린: 헐]

[이은별: ?? 뭐예요??]

[이은별: 주작 ㄴ]

“히히.”

그렇게 나는 한동안 그녀들의 반응을 즐겼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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