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화 〉 102, 뒷조사
* * *
단골이란 뭘까?
굳이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소비자와 친분이 쌓여, 나에게 꾸준히 찾아와 주는 사람을 뜻했다.
어느새 내가 생산해 내는 생산품에 맛들려, 주기적으로 돈을 바쳐준다.
이 험난하기 짝이 없는 세상에서 무려 고정수입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더불어, 내 생산품이 가치 있다는 일종의 자신감까지 줄 수 있다.
내 자존감뿐만이 아니라, 지갑까지 두둑이 채워주다니. 이만한 가성비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단골이란 말을 아주 좋아하는 편이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꺄아아아악!!”
qwer1에게 커미션 신청을 받은 지 무려 3주 째.
나는 모니터 앞에 주저앉아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만! 그만 신청해 시발!!”
이유는 간단했다. qwer1이 미친년이 지치지도 않고 계속 거지 같은 그림을 신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이 무려 4번째 그림이었다.
사실, 그녀가 신청했던 첫 번째 그림은 금방 끝낼 수 있었다.
뭐 사람 하나 묶는 걸 그리는 정도야 일도 아니었고, 일단 나도 하기 싫은 일은 금방 끝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난 내 정신력을 바쳐가며 최대한 빨리 그 일을 끝냈었다.
그게 끝인 줄 알고 말이다.
······아니었다.
상대방은 그림이 마음에 들었었는지, 그때부터 꾸준히 그림을 신청하기 시작했다.
물론 꾸준히라고 해봤자 1주일에 한 번 정도였지만··· 그것만으로도 내가 지치기엔 충분했다.
아무리 커미션이라고 해도 그림 하나를 그리는 데에는 최소 2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선 따고, 구도 잡고, 채색을 한 다음, 디테일을 챙기다 보면 시간이 가는 것은 금방이었다.
그동안 나는 하루 종일 녀석이 신청한 게이짤을 붙잡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심지어 돈도 많이 줘서 대충 그려줄 수도 없었다··· 그래도 돈값은 해줘야지 내 양심이 안 아프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내 정신은 날이 갈수록 피폐해지고 있었다.
자, 그럼 여기서 의문점이 하나 생긴다.
아니, 그렇게 그리기 싫었으면 그냥 깔끔하게 거절해버리면 되지 않은가?
공급자가 안 하겠다는데 상대가 어쩔 것인가.
솔직히 이 부분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해보았다.
그냥 돈을 포기하고 그 시간에 S 바이러스나 그리는 게 이득이 아닐까?
사실 이제 돈도 먹고 살 만큼 벌고 있으니 거절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20만 원이란 돈은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것이었다.
고작 커미션 한 번에 무려 평균가 3배에 가까운 돈을 벌 수 있다니.
이런 개꿀 버닝 이벤트를 놓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리고, 내 쪽에서 함부로 거절하기도 힘들었다.
저번에 한 번, 너무 하기 싫어서 커미션을 거절했던 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qwer1은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qwer1: 허억!]
[qwer1: 설마, 여기서도 거절하겠단 건가요?]
[qwer1: 이거 어떡하죠, 저는 작가님이 좋아서 굳이 큰돈을 내고 이곳까지 찾아온 건데 거절하겠다니...ㅠㅠ]
[qwer1: 그렇게 되면 저 슬퍼져서 더 이상 신청 안 할지도요..?]
무려 돈으로 협박을 시작한 것이다!
이 새끼도 자신의 가치를 잘 알고 있었다.
자신처럼 큰돈을 맡겨가며 커미션을 신청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걸 말이다!
아마 이 사람이 사라지면 내 지갑도 상당히 공허해지겠지. 개꿀 버닝 이벤트도 그녀의 말처럼 더이상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 인간은 예상이 안 가서 진짜 그럴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했다.
“크윽···.”
그러니 나는 어쩔 수 없이 녀석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의 거절로 앞으로의 관계까지 망칠 수는 없으니까.
한 번 놓치면 다신 안 찾아올 수도 있다는 게 마치 한정판 이벤트 같기도 했다.
‘이건 좋아해야 해, 말아야 해···.’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분명 지갑은 두둑해지고 있는데, 내 정신은 날이 갈수록 피폐해지고 있으니···.
아직도 눈을 감으면 수갑에 묶여있는 남캐들이 생각난다··· 거지 같은 게이짤들은 내 정신을 오염시키기에 충분했다.
“아 몰라.”
결국 나는 한동안 컴퓨터를 붙잡다가, 이내 냅다 내동댕이쳤다.
아직 채색은커녕, 선 따기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애초에 따로 기한을 정해둔 의뢰도 아니었으니, 며칠 정도는 미뤄도 되겠지.
그렇게 나는 조금 쉬자는 생각으로 침대 위에 누웠다.
포근한 침대가 혹사당했던 내 허리를 달래준다.
“후우···.”
솔직히 이대로 하루 종일 쉬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아직 할 일은 많이 남아있었다.
조금 있으면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작업을 해야 할 터.
‘아, S뭐시기도 작업해야 하는데······.’
최근 S 바이러스는 어느새 5화까지 연재되어 있는 상태였다.
다행히 커뮤니티 반응은 무척이나 좋았다.
분량도 많고, 소재도 괜찮았으며, 가지각색의 등장인물들도 많았으니.
일단 찾아올만한 희소성은 충분히 확보한 셈. 덕분에 내 핀박스의 구독자수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중이었다.
아마 여기서 qwer1이 주는 돈까지 합치면 월 200은 넘지 않을까.
이 도심 한복한에서 혼자 직장인 월급 수준으로 벌게 된 것이다.
확실히 그걸 생각하면 뿌듯하긴 하나··· 그거랑 별개로 그리기는 존나 귀찮았다.
‘···하, 하기 싫다.’
결국 거기서도 남자를 그리는 건 똑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qwer1이 신청한 커미션 그림처럼 단독 컷은 안 그려도 되긴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남캐가 잔뜩 나오는 건 맞으니 그리기 싫은 건 매한가지였다.
어째서 나는 남캐들을 그려야 하는가··· 어째서 세상은 이따구로 설계된 것인가···.
오랜만에 찾아오는 극심한 현타에 나는 쉽사리 일어나지를 못했다.
슬슬 내 직업에 회의감이 찾아오기도 했다.
‘개빡치네.’
어느 순간엔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아니, 이 정도면 솔직히 웹툰 컨텍 와줄만하지 않나?’
솔직히 분량에, 재미에, 꼴림까지 다 채웠는데.
심지어 최근에는 커뮤니티 파급성까지 붙었는데.
이 정도면 그냥 회사에서 먼저 연락이 올만하지 않나?
그럼에도 메일 하나 오지 않다니. 그 회사들의 거들먹거리는 꼴에 머리에서 열이 올랐다.
나도 정식 연재가 하고 싶다!
나도 양지로 올라가서 사람들의 돈을 뜯고 싶단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저 핀박스에 올리면서 용돈벌이나 하는 아마추어 작가 1 이었다.
세상에는 능력 좋은 사람이 너무나도 많다. 정신 연재의 길은 멀고도 험한 것이다.
‘하긴, 정식연재가 그리 쉬운게 아니지······.’
그래도 어느 정도 발광을 하니 슬슬 현실을 인정할 수가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우울에 빠져 있을 때였다.
띠링!
하며 핸드폰이 울린다.
고개를 들어 채팅을 확인해 보니 ‘그림지망’이라는 녀석에게 문자가 와있었다.
최근에 만화를 올릴 때마다 내게 감상평을 날려주는, 부담스러우면서도 고마운 친구였다.
[그림지망: 만화 잘 봤습니다]
[그림지망: 이번화도 재밌었네요. 항상 즐겁게 읽고 있어요]
별다른 내용이 없는, 담백하면서도 간단한 문자.
하지만 거기에서도 나는 작은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크흡!’
그래, 내가 이런 반응들 때문에 일을 하지.
이런 것들 하나하나가 나에게 응원의 씨앗이 된다.
덕분에 qwer1덕분에 씨게 찾아왔던 현자 타임이 조금은 나아지는 기분이었다.
좋아.
이대로 조금만 더 쉬다가 작업을 시작하는 거다.
‘일단 핸드폰 좀만 하고.’
모처럼 침대에 누웠는데, 그냥 일어나기에는 너무 정 없잖아.
그렇게 나는 잠시 자유시간을 갖기로 했다.
다만 이번에 핸드폰으로 들어간 곳은 유튜브도, 타르탈로스도 아니었다.
확실히 저 둘을 이용하면 시간은 빨리 가겠지만··· 개인적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게 있었기 때문이다.
‘진짜 어떤 사람일까.’
다름 아닌 qwer1에 관한 이야기였다.
솔직히 처음에는 그냥 돈 많은 졸부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이렇게나 자주 찾아와주니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남캐야짤을 그만 그리고 싶기도 하고···.
그래서 돌파구를 찾을 겸, 가볍게 뒷조사를 해볼 생각이다.
그리고 이번에 뒷조사를 해볼 장소는, 다름 아닌 게이짤들이 넘쳐나는 팩 시브였다.
사람의 온갖 욕망이 집약된 장소인 만큼, 상대방의 취향을 세세히 알아내기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계정을 터는 게 좋겠지.’
예전에, 이은별을 놀리기 위해 녀석의 북마크를 털은 적이 있을 것이다.
보통 사람은 익명성 앞에서 경계심이 옅어지고, 단서를 아무렇게나 흩뿌려놓는 경향이 있으니까.
그리고 그런 단서는 보통 마음에 드는 그림을 저장해놓는 북마크에 한데 집약되어 있었다.
아마 qwer1도 그렇겠지.
그러니 북마크를 털면은 그녀에 대해 모르는 걸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려면 일단 닉네임을 알아야 하는데···.’
다행히 상대방의 닉네임은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채팅방이랑 똑같이 닉네임을 설정해놨기 때문이다.
‘qwer1···.’
탁탁탁.
검색창에 닉네임을 검색하자 나오는 하나의 계정.
아무런 게시물도, 코멘트도 없는 완전한 독자의 계정이었다.
이렇게 조사하니, 마치 사생활 침해나 하는 스토커가 된 느낌이지만··· 내 궁금증은 참을 수 없었다.
나는 qwer1의 계정을 누르면서 생각했다.
‘제발 비공개가 안 되어있어야 할 텐데.’
그러면 다시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단 말이야.
나는 하늘에 계신 신 님에게 기도하며 상대방의 팔로워와 북마크를 확인해 보았다.
그리고 기대했던 그곳엔 실망밖에 없었다.
“아······.”
qwer1의 북마크는 텅 비어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팔로우 수도 깔끔한 0 이었다.
그 말은 즉, 이미 전부 비공개 해놨다는 뜻.
과연 qwer1은 익명성 안에서도 철저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나는 의아함을 느꼈다.
“뭔가 이상한데···.”
원래 비공개 설정을 아는 사람은 손에 꼽은데.
아니 설령 알더라도 그걸 굳이 이용해서 비공개 처리를 하는 사람은 더 적다.
시스템이 병신 같아서 모바일로 안 되고, PC로 접속해야 겨우 비공개 처리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공개 처리를 한 계정을 찾으려 하면 한 100개 중에 1개 있을까 말까였다.
심지어 나도 비공개 처리를 안 했는데, 그걸 했다라······.
“흠···.”
심지어 이미 나한테 커미션 신청까지 하면서 취향을 고백했을 텐데, 굳이 숨길 필요가 있을까?
‘뭔가 있나?’
슬슬 내 직감이 알리고 있었다.
뭔가 있을 것 같다고.
뭔가 숨기고 싶은 게 있기에 이렇게 가린 것이라고.
“······.”
물론 단순한 추측일 뿐이었다.
증거는 커녕 근거조차 부족한 음모론에 불과하다.
그냥 이건 내 개소리에 불과하고 qwer1이 애초부터 꼼꼼한 사람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 직감은 qwer1이 단순히 구속만 좋아하는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렴, 사람의 취향이 하나만 있는 거 아니잖아?
누구든 숨기고 싶은 성판타지가 하나씩은 있는 법이다.
그렇게 혼자 허무맹랑한 추측을 이어나가고 있을 때였다.
띠링!
핸드폰이 울리며 내게 문자가 하나 온다.
[qwer1: 안녕하세요. 그림은 잘 진행되고 있나요?]
갑자기 qwer1에게서 문자가 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