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화 〉 97, 철학
* * *
“후··· 살았다.”
콰르르르!
화장실 칸 너머에서 변기 내려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한바탕의 난리를 치르고 난 후,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와 씨, 정말이지 큰일 날 뻔했다.
하필 변기칸에 사람이 있어가지고 밖에서 몇 분씩이나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배가 얼마나 요동쳤는지··· 마치 몇 분이 영겁같이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시간은 상대적이란 걸 여기서 느끼게 되는구나. 역시 아인슈타인은 옳았다.
그래도 인고의 기다림 끝에 뽑아낸 똥은 아주 마음에 들었다.
다른 사람의 정신 건강을 위해 굳이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아주 건강하고 혈색 좋은 똥이었다.
그래서 사진이라도 찍어서 보존하고 싶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혐오스러워서 참았다.
“······.”
일단 오해 마라. 나는 대변 같은 거에 흥분하는 그런 이상한 취향은 없으니까.
나의 취향은 지극히 평범하며, 스캇같은 마이너 한 페티쉬는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다만 똥에 대해 약간의 철학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개인적으로 똥에는 인생이 담겨 있다 생각한다.
마치 인생처럼 하나의 순환이 담겨 있는 것이다.
한 마리의 초식동물이 풀을 뜯어 먹고 똥을 싸고.
그 똥 싼 자리에 생생한 식물이 자라나며.
그 식물을 먹는 초식동물이 육식동물한테 먹히고.
그 육식동물은 다시 대지에 영양분을 흩뿌려 식물을 자라나게 한다.
이토록 세상은 도는 것이다.
고작 똥 하나에 자연의 대순환 구조와, 약육강식의 이치가 담겨 있었다.
말하자면 똥은 삼라만상(????)이 담긴 하나의 세상이요, 그 세상이 순환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볼 수 있었다.
이러할 진데, 방금 내가 싼 대변을 하나의 인생이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지 않을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 방금 나는 똥을 싼 것이 아니다.
인생을 싼 것이다.
‘아쉽구나···.’
이러한 철학을 같이 토론할 동료가 없다는 것이, 무척이나 아쉽게 느껴졌다.
두 여성진에게 말을 해볼까 싶지만··· 그랬다가는 정신병자를 보듯 쳐다볼 게 뻔하니.
일단 참기로 했다.
“···후.”
자, 그럼 이제 더러운 이야기는 충분히 했으니.
나는 슬슬 씻고 자리로 돌아가기로 했다. 안 그래도 화장실 칸을 기다리느라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다.
그동안 그녀 둘이 얼마나 어색해 하고 있을지 감도 안 잡혔다.
아마 서로 말도 안 하고 불편하게 핸드폰 보는 척이나 하고 있지 않을까.
‘걱정이네.’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뭐, 사이가 안 좋을 수 있다고는 예상했었다. 다만 그게 현실로 이루어지니 슬플 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사람 간의 관계라는 게 그리 간단한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다 보면 서로 친해질 수도 있겠지··· 그렇게 생각할 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잡생각을 하며 문을 열고 다시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응?”
그리고 신기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서로 견제를 넣던 둘이, 즐거운 얼굴로 떠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화장실을 갔다 오기 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친해지는 게 너무 빠른데?
며칠은 커녕 몇 십분만에 친해져버렸다.
아무리 사람 간의 관계라는 게 간단하지 않다고는 해도, 이건 너무 복잡하지 않은가.
도대체 내가 볼일을 보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감도 안 잡혔다.
“아, 오빠 오셨어요?”
“왜 이렇게 늦게 왔어.”
“하하···.”
그래도 일단은 자리에 가서 앉았다. 당황했다고 계속 서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내가 어색하게 다가가자 그 둘은 밝은 얼굴로 나를 반겨주었다. 아까의 분위기와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었다.
“무슨 이야기하고 있었어?”
그래도 일단은 그 분위기에 편승하기로 했다.
굳이 여기에 의문을 표해서 공기를 다시 어색하게 바꿀 필요는 없었으니 말이다.
“너가 먹태를 왜 시켰나 하고 얘기하고 있었어.”
“오빠, 먹태가 맛있긴 한데 첫 안주로는 좀 별로인 거 아세요? 배 좀 불렀을 때 먹어야지.”
“야 씨, 너희가 시켰었는데 안 먹은 거잖아.”
지들이 캣파하느라 오코노미야끼 안 먹어놓고 왜 나한테 지랄이야.
“아, 맞넹.”
“그래도 음식 하나 더 시켜요. 사실 제가 아직 배가 고파서··· 아, 이번 계산은 제가 할게요.”
“됐어. 시키고 싶은 거 시켜. 돈은 내가 낼 테니까.”
그래도 서로 쓸데없는 잡담을 해서 그런지 별로 어색함은 없었다.
역시 불편한 침묵을 없애는 데에는 이런 쓸데없는 잡담이 최고였다.
나는 속으로 다시 한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네.’
그래도 서로 분위기를 풀려고 애쓰는 모양이었다.
여전히 어색하긴 하나, 내 말을 들어준 건지 서로 싸우지 않으려 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거면 되었다. 일단 내 말을 들어서 갈등을 피해준다는 것 자체가 무척이나 기뻤다.
그 뒤로 우리는 가볍게 술자리를 가졌다.
솔직히 음식을 덜먹었다 뿐이지, 이미 위장의 반절 정도는 알코올로 가득 차 있었기에 분위기는 빠르게 무르익었다.
···그렇게 열심히 떠들고 마시다 보니 어느새 슬슬 일어날 때가 되어 있었다.
“흠··· 그럼 슬슬 갈까.”
나는 음식이 텅 빈 테이블을 보며 말했다.
이 정도면 즐겁게 놀았다. 중간에 잠시 사이가 험악해질 뻔했지만, 그것도 조기에 진압되었고 스무스하게 술자리를 마칠 수 있었다.
쓰리썸을 못 한다는 게 살짝··· 아니 좀 많이 아쉽기는 했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만족할만 하다.
그렇게 나는 슬슬 계산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때였다.
“아, 잠깐.”
아린이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내 소매를 잡은 건.
“이대로 헤어지려는 거야?”
“응? 응, 그래야지.”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이은별이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그, 셋이서 안 해도 돼요?"
“응?”
갑자기 왜 소매를 잡나했더니, 이걸 물어보려 했구나.
나는 잠시 그녀를 쳐다보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긴 한데.”
“안 하고 싶어요? 전화했을땐 그렇게 방방 뛰더니.”
그녀가 다시 물었다. 왜인지 진지함이 담긴 얼굴이었다.
나는 살짝 어색하게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음, 하고싶긴 한데···.”
그러곤 그 둘을 바라보며 물었다.
“너네가 불편하지 않아?”
그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비록 겉으로는 화기애애해 보이긴 해도, 아직은 서로 어색한 점이 많다는걸.
서로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은 보이지만, 그런 만큼 서먹서먹한 부분이 많을 게 당연했다.
아무렴, 오늘 처음 만났는데 바로 절친처럼 친하게 지낼 수도 없는 법이니까.
당연한 거리감이었다.
그러니 그런 상황에서 억지로 쓰리썸을 강요할 수는 없었다.
안 그래도 서먹한 사이에서 서로 나체를 공유하면 서로 부끄러워 죽을 게 뻔하니까.
그래서 그 부분을 배려하기 위해 기꺼이 3P를 포기한 것이건만···.
“나는 상관없는데?”
“응?”
그때 성아린이 말했다. 평소보다 붉게 상기된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술에 취해서인지, 아니면 진짜로 괜찮은 것인지 꽤나 평온한 얼굴이었다. 그녀가 입을 열자, 연이어 옆에 앉아있던 이은별도 입을 열었다.
“저도 상관없어요 오빠.”
“어?”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진짜로?”
“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약간하고 싶기도 하고.”
큰 결심을 먹고 포기했던 쓰리썸이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
가장 걱정이던 두 여성이 먼저 나서서 자신은 상관없다고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울컥!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감동이 차올랐다. 아랫도리에 달린 소중이가 이건 야스각이라고 소리높여 외치고 있었다!
원래 기대 안 하고 있던 걸 되찾았을 때의 감동은 배가 되는 법. 잠깐이지만 눈가에서 눈물이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크흡!”
나는 눈물을 삼키며 두 여성을 와락 안았다. 순간 당황하는 두 여성의 모습이 보였다.
이렇게까지 말해주는데 내가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굳이 여기서 귀찮게 한 번 튕기지는 않았다.
나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알았어. 그럼 가자.”
기회는 되도록 왔을 때 잡아야 하는 법.
아쉽지만 여기서 거절할 정도로 내 성욕은 약하지가 않은 모양이었다.
그렇게 나는 대충 계산을 마치고 근처에 있는 모텔을 찾기 시작했다.
역시 시내라서 그런가, 아니면 술집 근처라서 그런가 모텔은 금방 눈에 들어왔다.
나는 모텔로 들어가면서 잠시 고개를 돌려 뒤를 쳐다보았다.
역시 긴장되기는 하는지, 잔뜩 굳은 얼굴로 천천히 따라들어오는 여성이 보였다.
일단 술이 들어가긴 했지만 그래도 긴장이 되긴 하는 모양이었다.
저 어색함은 내가 풀어줘야겠지.
그래도 둘 다 연결고리가 있는 내가 열심히 노력해 주는 게 맞다.
나는 싱글벙글 웃었다.
‘캬.’
와 쓰리썸!
와 3P!
한 번 포기했었던 남자의 로망이 다시 한번 찾아오고 있었다.
심지어 저번과는 달리 이번에는 코앞까지 다가온 상황이었다.
앞으로 몇 분 뒤.
몇 분 뒤면 나는 두 명의 여성과 질펀한 야스를 하게 된다.
양손에 어여쁜 꽃을 쥔 채 남자의 로망 중 하나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 상황이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리고, 마음 한 편으로는 불안감도 조금 있었다.
그리 커다란 문제는 아니다.
다만, 내 지식이 좀 부족할 뿐.
‘3P는 어떻게 하는 거징?’
잘못하면 누구 한 명이 서운해 할 수도 있다는데, 대체 누구부터 박아야 할까.
여러모로 불안거리가 많은 날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