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화 〉 95, 삼자대면
* * *
이번에 찾아간 술집은 단순한 포장마차 느낌의 술집이었다.
그 왜, 단순한 플라스틱 원형 테이블에 의자도 싸구려 플라스틱 의자로 세팅된 곳 있잖나.
우리가 찾아간 술집은 그런 저렴한 감성의 포차였다.
왜 굳이 이자카야도, 재즈바 느낌도, 룸도 아닌 이런 술집으로 왔느냐?
그 이유는 이런 곳에서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본적으로 이런 감성의 포차는 다른 곳보다 좀 더 왁자지껄한 느낌이 있었다.
물론, 기분 탓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좀 더 정신 산만해지는 느낌이 있는 것이다.
그런 분위기 때문에 나는 이곳을 택했다.
아무래도 처음 만날 사이이다 보니 어색할 게 뻔하고, 그렇다면 쓸 데 없이 분위기 있는 장소보다 이런 곳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어색할 거라면 차라리 소란 속에 묻어버리자.
그렇게 하면 언젠가 분위기에 취해 서로 말문을 열겠지. 그리 생각했었다.
그리 생각한 것인데······.
“······.”
“······.”
아무래도 그 어색함은 꽤나 오래갈 모양이었다.
술집에 들어온 지 5분째, 아린이와 은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서로를 그저 쳐다보기만 하고 있는 중이었다.
무려 5분 동안 말이다!
덕분에 왁자지껄한 주변의 테이블과는 달리 이곳만큼은 불편한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무거운 침묵이 주변을 짓누른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어색하다···.’
어색할 줄은 알고 있었는데, 이건 상상이상으로 어색했다. 마치 주변에 날카로운 칼날이 배회하는 기분이었다.
쿨하게 수락해주었던 아린이조차 무감정한 눈빛으로 눈싸움을 할 뿐이니.
쓰리썸은 커녕 당장이라도 파토날 각이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일단 맨 처음에 모인 것 까지는 좋았다.
서로 늦지 않게 약속시간에 도착했고, 테이블에 앉기 전에 가볍게 인사도 마쳤으니 말이다.
그 뒤로 서로 어색하게나마 대화를 나눌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그건 내 착각이었던 모양이다.
이렇게나 신경전을 버리는 걸 보면.
‘이, 이대로 있을 순 없어!’
슬슬 목이 타기 시작한 나는 그냥 내가 먼저 나서기로 했다.
일단 가볍게 메뉴를 물어보면서 말문을 트는 것이다. 그러면 일단 뭐든지 의견이 나오게 되겠지.
굳이 무거운 주제부터 갈 필요 없다. 대화의 시작은 이런 간단한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 결심한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하하, 일단 먹을 것부터 시켜야지. 뭐 먹고싶은 거 있어?”
“아뇨, 없어요.”
“그냥 아무거나 시켜. 나도 상관없으니까.”
하지만 돌아오는 건 상관없다는 차가운 대답뿐··· 덕분에 애써 시작했던 대화는 빠르게 단절되었다.
심지어 그 대답을 할 때조차 나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었다.
은별이가 차가워··· 아린이조차 나한테 매정해···.
마음속 한곳에 작은 가시가 박히는 기분이었다.
“앗··· 그, 그래···.”
결국 나는 어색하게 대답을 하며 최대한 무난한 안주를 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나는 속으로 결심했다.
술을, 술을 마시자.
그것도 아주 많이, 존나 많이.
뭐가 정답이고 뭐가 오답인지 전혀 알 수 없게끔, 아주 그냥 인사불성으로 마시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식으로든 결과가 나오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곧장 소주를 4병을 시켰다.
술자리의 시작은 그런 어색한 분위기에서 시작되었다.
*
“여기 있습니다.”
식당 알바생이 그렇게 말하며 안주를 테이블 위에 놓는다.
맨 처음 시킨 안주는 두 개였다.
약간의 얼큰함이 감도는 짬뽕탕과, 가쓰오부시가 잔뜩 올라간 오코노미야끼.
둘 다 딱히 호불호가 없으면서도 적당히 맛있는 음식들이었다.
물론, 아까도 말했듯이 무슨 안주를 시키든 은별이에겐 별 상관이 없었다.
그녀는 지금 맞은편에 앉은 상대방을 탐색하기 바빴으니 말이다.
‘···흐음’
사실 그녀도 이곳에 오면서 아린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일단 거래를 통하여 쓰리썸을 수락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상대방을 곱게 볼 수는 없는 노릇.
그렇기에 자신이 두 눈으로 확인해서 친히 ‘품평’을 해 줄 생각이었다.
별 이유는 없었다.
그냥 품평을 해서 ‘내가 쟤보단 낫겠지’라는 저열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일뿐.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저급한 욕망 중 하나였다. 사람은 그것을 이용하여 자신감을 얻는 것이다.
그렇게 이미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만난 성아린이란 여자는.
‘···예쁘네.’
자신의 생각보다 더 예쁜 외모를 하고 있었다.
마치 갈색빛이 날 것만 같은 동그란 눈과, 그 눈을 받쳐주는 귀여운 얼굴 상이 보였다.
전체적으로 아담하고 귀여운 분위기가 나는 여성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선을 내려 흉부 쪽을 쳐다보면, 그 분위기와는 맞지 않는 커다란 살덩이 두개를 볼 수 있었다.
그걸 본 은별은 속으로 감탄과 비슷한 말을 중얼거렸다.
‘와 씨, 안 무겁나···.’
자신도 분명 작은 편은 아닌데.
아니, 따지자면 평균보다 조금 더 커서 은근 거유에 속하는 편이었는데.
눈앞의 저 여자는 그런 자신보다 1.5배는 더 큰 느낌이었다.
분명 흉부가 옷에 눌려있어서 볼륨감이 줄어들었을 텐데도, 입체감은 확연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누가 봐도 확실한 거유의 수준.
뜻밖의 빈부격차에 은별은 패배감을 느껴야 했다.
그렇기에 섣불리 입을 열지 못하고 서로 탐색만 하고 있는 것이다.
둘 다 확실하게 매력인 부분이 있었기에.
각자 상대방의 어느 부분에 움츠려 들어 있어서 만들어진 기묘한 대치 상황이었다.
“여기 오코노미야끼가 맛있네···.”
그런 상황에서 오직 이세원만이 젓가락을 깨작거리고 있는 중이었다.
어떻게든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보려는 모습이었다.
자꾸 입에서 허튼소리를 해대는 것이 퍽 안쓰러워 보이기도 했지만··· 뭐, 자업자득인 부분이라 그리 불쌍하진 않았다.
‘후···.’
그래도 이런 식으로 몇 분간 대치하고 있자, 순간 이은별은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애초에 싸우러 온 것도 아니고, 일단 안면이라도 트기 위해 온 건데 말이다.
따지자 보면 저쪽도 자신이 있었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듣고 온 것이었다. 그러니 같은 피해자라고 할 수 있겠지.
아직 마음에는 안 들지만, 상대방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 가능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쓰리썸에 약간 관심이 있기도 했고.
‘큼큼.’
세상에 굳이 쓸데없는 적을 만들 필요는 없다.
그녀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슬슬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일단 제 소개부터 할게요. 이은별이라 하고요, 오빠랑은 같은 대학 선후배 사이에요.”
유창하게 나오는 자연스러운 소개말.
본래 이런 첫 만남에서는 자기소개부터 하는 게 당연하다.
최소한의 정보가 있어야, 대화를 열 수 있을 테고, 그걸로 친해질 틈이 만들어질 테니까. 인간관계는 그런 식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그녀가 먼저 말문을 열자 성아린도 뒤이어 입을 열었다.
“반가워요. 성아린이에요. 얘랑은··· 그냥 어쩌다 보니 만나게 됐어요. 근데, 선후배사이면은 그쪽이 후배인가요?”
“아, 넵. 아, 그러고 보니 선배랑 동갑이실 텐데 그냥 말 편하게 하세요.”
“아뇨아뇨, 그래도 아직 본 지도 얼마 안 됐는데···.”
“아뇨, 저도 그게 편해요.”
한 번 말문이 열리자 대화는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다행히 아린이는 ‘남자’한테만 굳어버리는 거지, ‘여자’가 상대라면 대화를 이어나갈 정도의 사교성은 있었다.
어색한 공기가 조금은 풀어지자 술자리는 자연스레 이어졌다.
“아, 그래 그럼··· 일단은 말 놓을게.”
아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가볍게 술잔을 부딪혔다.
일단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가야 대화를 더욱 쉽게 할 수 있을 테니.
짠
유리잔이 부딪치며 청명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알코올을 목안으로 넘기자 혀에서 씁쓸한 맛이 감돌았다.
“으···.”
언제 먹어도 적응되지 않는 맛이었다. 그래도 별로 걱정하지는 않았다.
다행히 성아린은 나름대로 술을 잘 마시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는 취한 상태에서의 유지력이 강했다.
왜, 가끔 있지 않은가.
술에는 은근 빨리 취하는데, 이상하게 기절하지는 않아서 술자리의 끝까지 버티는 인간.
그녀는 그런 신기한 종류의 인간이었다.
“넵, 아 그러고 보니··· 아까 어쩌다가 만났다고 했는데. 정확히 어떤 식으로 만난 거예요?”
“그게, 원래는 그냥 인터넷으로만 대화하는 사이였거든. 서로 성별도 모르고··· 그런데···.”
어쨌든, 그렇게 대화는 이어졌다.
어색하긴 하나, 숨 막히진 않을 정도로.
가끔 침묵이 찾아오기는 하나, 그게 오래 이어지지는 않게.
질문이 꼬리의 꼬리를 물고 어느새 대화의 형태가 되었다.
“아, 그러면 이 인간이 먼저 만나자 했던 거예요?"
은별이 손가락으로 이세원을 삿대질했다.
“응.”
성아린이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의 대화 내용은 어쩌다가 이세원과 인연이 시작되었는가··· 였다.
아무래도 그녀 둘의 연결고리가 이세원이었다 보니, 주제는 자연스레 저쪽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성욕에 미쳐서 먼저 연락을 돌렸다는 걸 알게 되자, 이은별이 매서운 눈초리로 이세원을 쳐다보았다.
“아니, 오빠 제정신이에요?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랜선 만남을 해요 왜.”
“허허··· 그때 쌓인 게 많아서.”
그는 어색하게 웃었다. 확실히, 아무리 요즘 세상이 좋아졌다고는 해도 랜선만남은 위험요소가 있으니까.
그녀가 화를 내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도, 변명하자면 할 게 있었다.
“아니 근데, 따지고 보면 여기 네 탓도 있어.”
“예?! 아니 제 탓이 왜 있어요 여기에?”
은별이 발작하는 모습을 보며, 그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아니··· 기껏 좋은 분위기 만들어놓고 네가 도망쳤었잖아.”
“네?”
그렇다!
아직 서로 어색한 사이였던 시절, 이은별이 굳이 야스각을 잡고 쫄아서 도망쳐 버린 것이다!
안 그래도 한창 성욕이 쌓여있던 이세원은 그대로 충동적인 선택을 해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성아린을 만나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이은별이 계기를 만들어 준 거나 다름없었다.
그가 그렇게 설명하자, 은별이 당황하며 물었다.
“아니, 잠시만. 그걸 기억하고 있었어요?”
그녀의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애써 머릿속에서 지우고 있던 쪽팔린 기억 중 하나인데, 그가 지금 다시 집어꺼내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그때 그는, 술 먹어서 기억이 안 난다고 넘어갔었다.
“당연히 기억하고 있지.”
“저번에 사과했을 때는, 기억 하나도 못하고 있었다면서요!”
“그걸 믿냐. 네가 쫄보같이 도망친 거 창피하지 않게 해주려고 거짓말한 거지.”
“아아···!”
은별이 창피하다는 듯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쫄보처럼 도망갔던 그날의 자신은 제가 생각해도 추했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한 반격에 그녀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졌다.
‘···휴.’
이세원은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작게 미소지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었다.
초반에는 진짜 어색해 뒤질 뻔 했는데, 역시 세상은 무작정 뒤지란 법은 없는 모양이었다.
봐라, 결국 시간이 지나니 어쩄든 서로 말문을 트지 않았던가.
덕분에 어색한 공기도 지금은 은근히 풀어진 상태였다.
처음 만난 두 여자의 사이도 그리 나쁘지는 않아 보였고 말이다.
좋아, 이대로 계속 가서 아무 문제 없이 지나가는 거다······.
그때였다.
그 둘의 만담을 지켜보던 아린이가 돌연 입을 연 것은.
“아, 그러면···.”
손에 들린 투명한 소주잔이 보인다. 그 안에 찰랑거리는 무채색의 알코올이 보였다.
희미하게 미소 띠어진 얼굴에서 볼이 약간 붉게 달아오른 걸 볼 수 있었다.
취한 것은 아니지만, 위장에 알코올이 적당량 들어가 텐션이 약간 오른 상태.
어쨌거나 그녀가 말을 이었다.
느릿느릿 한 제스처와, 나긋나긋한 어조로.
“잠은 내가 먼저 같이 잤겠네?”
다만 문장만큼은 묵직하게.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입가에는 여전히 미소가 담겨 있었다.
약간은 비웃음을 닮은 미소였다.
‘어?’
탕!
순간, 그의 옆에서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은별이 술잔을 들이키고는 테이블에 크게 내려놓은 것이다.
그녀가 싸늘하게 미소 지으며 말한다.
“그렇,겠네요?”
다시 한번 말한다. 싸늘한 미소였다. 미소에도 싸늘함이 담길 수 있었다.
‘어어?’
이세원은 속으로 생각했다.
‘아, 아린아?’
왜 갑자기 도발을 걸고 그러니.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