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야짤작가-91화 (91/125)

〈 91화 〉 91, 전화

* * *

[bandark: ㅋㅋㅋㅋ이게 뭐냐]

[증오로 가득해: 도대체 뭔 약을 한 거임;]

[ts당하고싶다: 아니ㅋㅋ 근데 꼴리긴 하네;]

[암갈비쥐: 나도 저기로 들여보내줘 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

[쇼고타추: 난 5초 안에 감염되어줄 자신 있다 ㅋㅋㅋㅋ]

“···휴우.”

게시물에 달린 댓글들을 보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쿵쿵대던 심장이 조금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새로운 무언가를 사람들에게 보여줄 때는 항상 긴장되는 법이었다.

설령 내가 이걸 좋아한다고 해도 다른 사람은 어떻게 감상할지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다행히 이번에는 호평 일색이었다. 다들 어이가 없긴 해도 그래도 나름 재미있게 본 모양이었다.

‘다행이네.’

1화는 세계관의 기반을 잡느라, 정작 꼴림도를 그리 신경 쓰지를 못했었다.

물론, 사방에서 거친 야스를 해대는 감염자들이 있긴 하지만··· 그건 사실상 배경에 지나지 않은 수준.

그래서 흥미진진하기만 할 뿐, 정작 야망가의 본분인 꼴림을 충족시키지 못해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꼴리긴 했던 모양이었다.

그래야지 시발, 내가 이걸 그리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반응을 확인한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매트리스 위에 허물어지듯 누웠다.

‘···하얗게 불태웠다.’

진짜, 하얗게 불태웠다고밖에 못 말하리라.

최근 열흘은 정말이지 치열하게 살아간 것 같았다. 스토리 만들고, 등장인물 보충하고, 거기에 그림까지 그려댔으니.

혼자 그림작가와 글작가를 병행한 셈이다.

당장 저 1화에 포함된 컷 수만 60장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것도 전부 배경까지 포함된 풀컬러로!

당장 3일 전에 아린이와 한 번 만난 것을 제외하면, 거의 컴퓨터 앞에만 앉아서 타블렛만 두드려댔으니··· 저 정도 그림이 쌓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사실상 옛날 웹툰 컷 수랑 비교해도 크게 꿇리지 않는 수준. 이 정도의 퀄리티를 어디 웹툰 사이트도 아닌, 고작 핀박스에서 게시하고 있다니.

여러모로 내가 자랑스럽게 느껴지고 있었다.

나는 침대 위에 누운 채로 멍하니 생각했다.

‘이제 다음 내용 생각해놔야지···.’

S(SEX)바이러스의 스토리는 간단했다. 갑작스럽게 아포칼립스에 내던져진 등장인물들이, 여러 사건들을 겪으며 갈등하고, 생존하는 내용.

전형적인 좀비 아포칼립스인 만큼 등장인물의 퇴장 속도도 빠를 것이고, 그때마다 뉴페이스가 투입되는 속도도 빠를 것이다.

일단 주인공은 평범한 남자 대학생으로 정했다. 그래야지 내가 몰입하기도 편할 테고, 소비자들이 꼴려 하기도 편할 테니까.

이곳에서 ‘남자’의 몸은 돈이 된다. 나는 이제 그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아마 다음 화는 주인공 일행이 지하철에서 탈출하는 내용을 보여주겠지.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탈출할지, 탈출하면서 어떤 식으로 꼴릿한 상황을 그려줄지, 탈락자는 누가 될지.

연출을 고민하는 건 이제 순전히 나의 역량이었다.

그걸 생각하자 순간 머릿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생각해 보니 개빡치네.”

아니, 나는 분명 열흘을 빡세게 살아서 만화 하나를 그려 올렸는데.

왜 내게 돌아오는 건 또 다른 연재의 압박이지?

성취감을 느낄 새도 없이 당장 다음 내용을 고민하고 있어야 한다니··· 참으로 거지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자유라는 낭만은 저쪽 심연의 구렁텅이에 집어던져진지 오래였다.

끝없이 반복되는 고통이라니, 이게 연옥(??)이 아니면 무언가······.

그렇게 혼자 업무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을 때였다.

띠리리리링~

여느 때와 같이 대충 침대맡에 던져둔 핸드폰에서 돌연 전화가 울렸다.

확인해 보니 이은별에게서 전화가 오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징?’

웬일로 문자가 아니라 전화라니. 이럴 때는 보통, 문자로 다 못 담아낼 만큼 하고 싶은 말이 많다는 의미였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나. 마침 우울하려던 차에 잘 되었다 싶은 나는 냉큼 전화를 받았다.

“뭐예요?”

그리고 전화를 받자마자 질문하는 그녀의 목소리.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은별아 주어 없이 다짜고짜 뭐냐고 물어보면 내가 어떻게 대답하니.”

“아니, 만화에 그린 등장인물 말이에요!”

“응? 응.”

그녀가 말을 이었다.

“거기 마지막 컷에 조그맣게 그린 인물. 그거 세원 선배 아니에요?”

“앗.”

순간 내 얼굴이 빨개졌다. 아니, 고작 한 컷짜리에 조막만 하게 그려놓은 건데 그걸 발견한다고?

“왜, 뭐, 왜, 그게 왜.”

“아니, 갑자기 왜 당황하세요. 그냥 궁금하니까 물어보려고 전화한 거지.”

살짝 얼굴이 화끈거렸다. 마치 은밀히 시행했던 장난질을 들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일단 나는 설명을 위해 말문을 열었다.

“그냥······.”

내 아바타를 그려놓은 이유는 별게 없었다. 그냥, 벌써 1화 만에 하도 많은 사람을 그려 넣다 보니까 막컷 갈 때쯤에는 새로운 캐릭터가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냥 내 아바타를 그려 넣었을 뿐이었다. 마치 이스터에그처럼 말이다.

마침 두 번씩이나 그려본 녀석이기도 하니까, 나름 그리기도 쉬운 녀석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별 이유 없다는 소리였다.

내가 이런 식으로 설명하니 은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난 또, 오빠가 나르시시즘이라도 있어서 자기를 주인공으로 넣은 줄 알았어요.”

“··· 너는 날 어떻게 보는 거야.”

내가 처량하게 중얼거렸다.

설마, 내가 직접 나를 주인공으로 삼으려고 할까.

내가 라이엇의 지그인지, 지그재그인지 하는 놈도 아니고. 자기 모티브의 캐릭터로 자캐 딸딸이를 할 생각은 없었다.

만화 속의 주인공은 나랑은 전혀 상관이 없는 근육질의 남성이었다. 나는 따지자면 엑스트라 1이었고.

그렇게 혼자 머릿속 변명을 이어나가고 있자, 그녀가 말했다.

“왜요, 꽤 어울리긴 하는데.”

“?”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솔직히 말하면, 오빠 얼굴이 좀 음침하고 날카로운 인상이잖아요? 아, 놀리는 게 아니라 객관적으로 봤을 때요. 눈 밑에 다크서클도 짙고.”

“···그렇긴 하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게 슬펐다. 어딜 가나 항상 까칠해 보인다는 소리는 자주 듣는 나였으니까.

뭐, 지금은 그냥 특색으로 받아들였을 뿐이다.

“그렇다 보니, 오히려 저런 어두운 세계관이랑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이 들어서···.”

그녀가 말끝을 흐리며 하하 어색하게 웃었다. 아무래도 외모 이야기를 당사자 앞에서 한다는 것이 점차 창피해진 모양이었다.

그녀의 설명을 대충 다 들은 나는 뭔가 오묘한 기분을 느꼈다.

“···음.”

저게 악담인지 칭찬인지 헷갈렸기 때문이다.

저걸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내가 와꾸가 주인공으로 나와도 괜찮을 수준이라고 생각하고 기뻐해야 하는가.

아니면, 내 와꾸가 음침하고 음흉하니 아포칼립스에 딱 어울린다 받아들이고 짜증을 내야 하는가.

여러모로 애매한 답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이내 그녀에게 대답을 날려주었다.

“그렇게 말해줘도 조만간 퇴장시킬 거야.”

아무리 그래도 난 내 아바타를 가지고, 뭔 짓거리를 할 생각은 없었다.

난 내 아바타의 활약상을 보고 자위하는 인간은 아니었으니까. 그런 짓을 했다간 자괴감이 휘몰아칠지도 모른다.

작품 속에 등장한 나는 적당히 에피소드를 풀어내다가 죽여버려야지. 야스씬도 따로 안 쓸 예정이었다.

아아, 나 이세원. 작품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나조차도 죽일 수 있는 남자인 것이다.

“아··· 네···.”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녀가 아쉬운 듯 대답했다.

죽이는 건 나인데 왜 네가 안타까워하니.

“그럼···.”

그래도 어쨌든, 은별은 이것으로 용건을 끝냈는지 슬슬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

나는 그녀가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기 전에 다급히 말문을 열었다.

“아, 그러고보니 너 내일 우리집에좀 와라.”

“넹?”

그녀가 물었다.

“왜요?”

“왜긴, 왜야. 하려고 그러지.”

안 그래도 그림을 그리면서 쌓인 스트레스가 많았던 차였다. 아무래도 그리는 게 야짤이다보니 욕구도 꽤나 쌓여있는 상태고.

그러니 이왕 전화받은 김에 그녀를 집으로 불러 스트레스를 풀 생각이었다.

야스를 하다 보면 쌓인 스트레스도 저절로 풀리겠지.

“······아?”

“왜 하기 싫어?”

“아, 아뇨! 당연히 가야죠. 내일 몇 시까지 갈까요?”

“2시 어때?”

“네! 늦지 않고 갈게요!”

은별은 그렇게 활기차게 대답하고는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이쪽에서 먼저 요구해서 그런가 꽤나 뜰뜬 기색의 그녀였다.

덕분에 나는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귀여운 녀석.’

어쨌든 이걸로 오늘 할 일은 다 끝냈다.

만화를 올려서 민심이 어떤지 확인도 했고, 다음 화 스토리도 대충 구상을 마친 상태.

거기에다가 내 성욕을 풀어줄 야스파트너와 약속도 잡기까지 했다. 오늘 하루는 그야말로 알찬 하루를 보냈다고 할 수 있으리라.

“게임 좀 하다가 자야지.”

그래서 나는 오랜만에 나에게 포상을 내려줄 생각이었다. 탑에서 빌어먹을 오소리의 대가리를 쪼개는 것이다.

아아, 상상만해도 내 쌍날도끼가 울부짖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나는 몇시간 정도 게임을 하였다.

그리 만족스러운 게임은 아니었다.

오소리뿐만이 아니라 다른 찢어 죽일 녀석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구르는 벌레랑, 노란 머리 고아, 논타겟 평타충새끼 등등.

요즘 탑에는 왜 이리 원거리 새끼들이 많이 오는지, 씨팔 하면서 스트레스만 더 받은 기분이었다.

요즘 땀 내나는 상남자의 라인이 아주 숟가락들 놀이터가 되었다. 듬직한 상남자는 다 어디로 가고, 저딴 게이 같은 챔프만 남게 되었는가······ 나의 신성한 결투장이 더럽혀지는 모습에 통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에잇, 시팔.”

결국 기분이 더러워진 나는 그대로 게임을 종료하고, 그냥 웹서핑이나 하기로 했다.

그래도 사람들이 올린 뻘글을 보다 보면 기분이 좀 풀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내 착각이었나 보다.

몇 분 정도 타르탈로스를 돌아다니던 나는 한 게시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S바이러스인가 뭔가, 거기서 개 꼴리는 캐릭터들 대충 정리해옴ㅋㅋ]

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하나의 게시물.

올린지 아직 하루도 안 지났는데, 벌써부터 만화의 등장인물들을 정리해온 모양이었다.

그 정성에는 고마움을 느낄 수 있겠으나, 그걸 보는 나는 심란하기만 할 뿐이었다.

“?”

그 정리된 등장인물 중에는, 나 또한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내가 쥐좆만하게 그려놓은 걸 크게 확대까지 한 후 해상도 처리까지 해주었다.

아주 놀라운 정성이었다. 편집작업은 어디서 배웠는지 아주 깔끔하기 그지 없었다.

그 아래 댓글 창도 아주 가관이었다.

[오ㅋㅋㅋ 꼴리는 애들 많노ㅋㅋㅋ]

[저 눈 날카롭게 치켜뜬놈 얼른 따먹히는 꼴 보고싶네ㅋㅋ]

[저런 애들이 특히 신음 소리 잘 냄]

나는 욕지거리를 날렸다.

“아, 시발.”

지금이라도 수정할까. 그런 욕망이 아주 강하게 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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