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야짤작가-89화 (89/125)

〈 89화 〉 89, 신작 구상

* * *

“우으··· 엄청 찝찝해요······.”

한참의 공연 음란행위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 뒤에서 걷고 있던 이은별이 문득 않는 소리를 내었다.

내가 뒤를 돌아보자 무척 어정쩡한 자세로 걷고 있는 이은별이 보였다.

마치 사타구니에서 느껴지는 미끈거림을 최대한 줄여보겠다는 모습.

내가 질 안에 정액을 세 발이나 싸질렀기에 불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와, 스릴 넘쳤다 그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늘 한 야스는 무척이나 만족스러웠다. 상대방에게 긴장감을 강요하면서 야스를 한다는 게 꽤나 기분 좋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긴장 때문에 몸이 굳어서 그런 걸까 유난히 보지도 더 쪼이는 느낌이었다.

특히 마지막 세 발 때는 나조차도 조마조마했던 일이 일어났었다.

공원에서 조깅을 하고 있던 어떤 한 쌍의 커플이, 하필이면 우리가 숨어있는 벤치 쪽에 앉아버렸기 때문이다.

덕분에 우리는 성기 부분이 서로 교접된 채, 숨소리조차 최대한 줄인 상태로 나무 뒤에서 무작정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서로 적당한 자극을 느끼면서 말이다.

그때 요란하게 요동치던 이은별의 심장소리가 아직도 선명했다.

특히 그녀는 혼자만 알몸에다, 아래쪽에서 애액까지 흘리고 있었으니 느끼는 불안감이 컸을 것이다.

다행히 그들이 5분 만에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렇지, 만약 좀 더 시간이 지났다면 진짜 들켰을지도 모르리라.

그렇게 내가 태연자약하게 말하자 그녀가 불만 있는 얼굴로 말했다.

“그러니까 제가 두 번째에 그냥 모텔 가자고 했잖아요. 마지막에 제가 얼마나 쫄렸는지 아세요?”

“안 들켰으면 됐잖아. 재미도 있었고.”

그리고 이미 한발 뺀 이상 모텔 가기에는 뭔가 돈이 아까웠다. 모텔 한 번이면 대체 국밥이 몇 개인가?

못해도 7~8개는 될게 틀림없었다. 그럴 바에는 든든하게 야외야스 하는 게 낫지.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결국 후반 가서는 그녀가 더 즐겼다. 어찌 되었든 그녀도 이런 야외 플레이를 해보고 싶었다는 거다.

그녀가 피식 웃으면서 내게 물었다.

“진짜 신기하네. 아니, 뭔 남자가 먼저 밖에서 하자고 해요?”

“히히.”

“뭐··· 그래도 재밌었어요. 나중에 또 봐요.”

“그래~”

그렇게 우리는 가볍게 작별 인사를 나눈 뒤 그 자리에서 헤어졌다. 가로수 등불이 은은하게 길거리를 비춘다.

시원한 밤 바람이 내 기분을 한층 업시켜주는 것 같았다.

오늘은 꽤나 재밌게 놀았다.

로망 중 하나를 이루기도 했고, 무엇보다 재미난 소재도 하나 얻었으니 말이다.

‘이제 슬슬 일해야지.’

평소라면 섹스한 뒤라고 일하기 싫다며 별 지랄발광을 다했겠으나.

오히려 이번에는 몇 분이라도 빨리 의자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머릿속에 생겨난 생각들이 신기루처럼 사라지기 전에 어서 그림으로 구현시키고 싶었다.

어찌 되었든 나는 그림쟁이다. 한때는 웹툰 작가를 꿈꿨으며, 지금도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업으로 삼으며 살아가는 인간이었다.

그런 만큼 새로운 것을 창작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의 열망을 가지고 있는 게 당연했다.

“ㅡ후우.”

그렇게 나는 집으로 돌아와서 곧장 의자 위에 앉았다. 그러고는 컴퓨터와 타블렛을 차례대로 켰다.

“그럼··· 뭐부터 해야 할까.”

일단 저번에도 말했듯, 무언가 생각났다고 해서 하루 만에 뚝딱 만화를 만들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림 한 장을 그리는 데에는 최소한 몇 시간이 그린다. 구도를 빨리 잡았다고 해도, 선 긋기, 채색하기, 명암, 디테일들을 생각하다 보면 몇 시간이 날아가는 것은 금방이었다.

만화에는 그러한 그림이 최소한 30장 정도가 들어가야 했다. 그래야지 최소한의 스토리나 장면을 보여줄 수 있을 테니까.

그렇다 보니 하루 만에 끝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부터 당장 만화를 그릴 생각은 없었다. 일단 오늘은 캐릭터와 세계관을 비롯한 최소한의 설정과, 스토리만을 만들어둘 생각이었다.

나는 손에서 타블렛 펜을 굴렸다.

‘아까 생각한 게 좀비였지···.’

좀비란 꽤나 매력적인 소재였다. 이지 없이 무작정 달려드는 괴물들은 그 자체로 긴장감을 형성할 수 있으니.

하지만 그 녀석들을 그대로 사용할 생각은 없었다. 이건 딸 치기 위해 보러 오는 만화지 공포 스릴러는 아니니까.

적당히 각색하고 수정해서 야망가에 어울리게 바꾸는 것이다.

아무리 내가 잔인한 걸 잘 그린다고 한들, 시체 박이는 아니었으니.

피 칠갑한 여성한테 박는 것이 수요가 없다는 것쯤은, 나도 잘 알고 있었다.

자,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가······ 다행히 여기에 대해서는 생각해둔 게 있었다.

좀비의 기본적인 본능은 식욕과 파괴 욕구다.

사람을 보면 무작정 달려들어야 할 테니까, 기본적으로 저런 본능이 내재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저것을 조금 비틀어버리면 되는 일이었다.

나는 타블렛 펜을 톡톡 두드리며, 무심코 중얼거렸다.

“식욕과, 파괴욕구를 성욕으로 대체시키면 되지 않을까?”

우리의 좀비군, 좀비양들이 사람만 보면 발정 난 개새끼마냥 달려드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구멍에든 쥬지를 넣기 위해 발악하겠지.

단체 떼씹을 하는 광경도 심심찮게 볼 수 있을 것이다. 남녀역전 세상이니까 오히려 감염 안된 여자들이 감염되기 위해 달려나가는 장면을 넣을 수도 있겠지.

“오···.”

그것참, 병신 같으면서도 흥미로운 설정이 아닐 수 없었다. 일단 관심이 있든 없든 클릭 한 번쯤은 해줄 것 같았다.

어그로가 미친 수준이다. 그런 만큼 유입도 많이 늘어날 수 있었다.

“괜찮은데?”

그 뒤로도 나는 만화에 여러 가지 설정을 집어넣었다.

“감염방식은··· 애액으로 하자.”

피는 좀 잔인하니까 정액이나 뷰짓물을 감염원으로 삼거나.

“발원지는, 성인 용품 회사 어떨까?”

정력제와 미약을 혼합하다가 바이러스가 생겨났다던가.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됐는데 오히려 사람들 외모가 좀 더 뛰어나졌다거나 하는 등등.

별의별 병신 같은 설정들을 여럿 집어넣었다.

씹덕아싸 특인지, 혼자 망상을 시작하자 예상외로 세계관은 빠르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큭큭··· 골 때리네.”

만들면서 피식피식 웃음도 새어 나왔다. 내가 생각해도 이건 병맛이 맞았기 때문이다.

어디 일본 엽기동인지에서나 나올 것 같은 설정들이 지금 내 앞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다만 재미는 확실히 있을 것 같았다.

특히 아포칼립스 설정이라는 것이 무척이나 좋았다.

단순히 세계관이 어둡다고 해서 좋다는 게 아니다.

아포칼립스인 만큼 꽤나 다양한 장면을 넣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좋은 것이었다.

금태양과 달리 집단 난교를 그릴 수도 있었고, 집단 강간, 집단 역강간 같은 장면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또는, 갑자기 어떤 미친빌런이 나타나서 좀비 sm플레이 농장을 만들 수도 있겠지.

무의미한 쾌락과 사람다운 생존 사이에서 고민하는, 야한 만화 주제에 다소 묵직한 스토리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여러 인간 군상과, 여러 등장인물들이 나오는 만큼 만들어낼 수 있는 장면도 무궁무진할 게 뻔했다.

그것은 내게 무척이나 좋은 일이었다.

다양한 장면들이 많이 나오는 만큼 소비자들도 지루할 틈이 별로 없을테니까.

나는 타블렛을 톡톡 두드리면서 생각했다.

반쯤 원망과 복수심이 담겨있는 생각이었다.

‘남자들좀 많이 그려달라고 했지.’

좋아. 그려주겠다!

너희들이 원하는 ‘남자’들 정도야 트럭 한 무더기 정도로 그려줄 수 있었다. 다양한 엑스트라들도 얼마든지 넣어주겠다.

그러나 양이 많은 만큼, 가끔 불량품이 섞여들어가도 괜찮겠지.

아포칼립스인 만큼 가끔씩 전투하다가 피범벅이 된 ‘남자’좀비들도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어디 한 군데가 잘리거나 부러진 녀석들도 나올 수 있었다.

이건 감히 내 금태양 만화를 고로시한 녀석들에게 보내는 자그마한 엿이었다.

‘스토리는 비교적 간단하게···.’

어차피 이건 야망가였으니, 가장 기본적인 클리셰대로 갈 생각이었다.

아무 정보도 없던 일반인들이 갑작스럽게 좀비 사태에 휘말린다. 그리고 그로 인해 벌어지는 생존기를 그려내는 것이었다.

어차피 좀비물은 클리셰대로만 해도 평타는 치는 작품이었다.

그렇게 나는 구상을 계속했다.

“······.”

톡톡.

어느덧 적막한 방 안에서는 타블렛 액정을 두드리는 소리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가끔씩 작업에 흥미가 생기면 나오는 집중 모드였다. 이미 시간대는 12시를 훌쩍 넘어 새벽 3시가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나는 오늘 생각해놓은 설정들은 최대한 구현해놓을 생각이었다.

어차피 종강이라 늦게 자도 상관은 없었고.

‘만족스럽군.’

그렇게 세계관과, 등장인물, 기본적인 스토리까지 전부 만들었을 때는 어느덧 새벽 4시가 되어있었다.

나는 앞에 놓인 마개조된 좀비물을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치고 마치 기쁨조의 공연을 감명깊게 본 북한의 수괴님처럼 박수를 쳤다.

“브라보, 브라보!”

짝짝짝.

단칸방에서 자그마한 박수소리가 울려퍼진다. 그래도 모두가 다 자는 새벽대라 그리 크게 치진 않았다.

어쨌든,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건 된다.’

이건 분명히 뜬다고. 사람들에게 충분히 각인시킬 수 있다고.

어그로도 충분하며, 소재도 좋았고, 다양한 흥미요소와 꼴림까지 챙겼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호평이 안 나온다면 그건 세상이 잘못된 것이었다.

흡족하게 미소를 지은 나는 이내 컴퓨터를 끄고 잠자리에 누웠다.

‘그림은 내일부터 그려야지.’

오늘의 나는 알찬 하루를 보냈으니, 이제 나머지는 미래의 나에게 맡기는 것이다.

아마 다음 주쯤이면 1편 정도는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다음주가 기대되네.’

그렇게 나는 눈을 감았다.

* *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