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화 〉 85, 작품 고로시
* * *
요즘의 내 일상을 정리하자면, 그야말로 무난하다고 할 수 있으리라.
처음 이곳에 떨어지면서 느꼈었던 혼란은 어느새 사라졌고, 나도 이제는 이곳에 어느정도 적응되었다.
한낮의 꿈처럼 사라졌었던 나의 팩시브와 핀박스 그림들도, 이제는 어느새 최소한의 기반은 만들어둔 상태다.
현재 팩시브에는 자그마치 열 장이 넘는 그림들이 즐비해 있고, 핀박스의 금태양 만화도 거의 10화를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내 인지도도 이제는 적당히 올라간 상태였으니··· 요즘은 정말 안정적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월세를 못 내서 시무라 아줌마한테 따먹힐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섹스를 하고 싶으면 언제든 할 수 있는 섹스 파트너가 있다.
당장 그저께도 아린이와 한바탕 야스를 하고 왔으니.
그야말로 안정적이고 행복한 나날들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러한 결과물들을 서울 한복판에서 이뤄낸 나 자신이 자랑스럽게까지 느껴지기도 했다.
덕분에 내 입가에도 웃음이 지어지는 날이 많아지고 있었다.
그래서 언제까지고 이런 평범한 일상이 계속되면 좋을 텐데······.
아무래도 세상은 내가 잘 되는 꼴을 보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화창하고 날씨 좋은 어느 여름날의 점심에.
나는 뜬금없이 고로시를 당하고 있었다.
“이런 개새끼가!”
쾅!!
나는 욕지거리를 날리면서 책상을 후려쳤다.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타블렛 펜이 잠시 공중위를 거닐다 떨어진다.
그 옆에 있던 액정타블렛또한 충격파에 의해 잠시 온몸을 떨었다.
섬세한 기계들에게는 별로 안 좋은 행동이겠으나, 나는 지금 그딴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감히 어떤 시팔련이 내 작품을 고로시 했기 때문이다.
나는 덜덜 떨리는 눈으로 모니터를 쳐다보았다.
+
[이 새끼 작품 문제점 알려준다 ㅋㅋㅋㅋ]
안녕 딸쟁이들아. 오늘 알려줄 건 ‘hala’라는 작가년의 금태양 만화라는 작품임.
핀박스에서 연재하는 건데, 그런 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고.
중요한 건 이 인간의 작품이 존나 문제투성이라는 거다.
그래서 지금부터 그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따져볼 생각임.
우선 첫 번째로.......
......
...
.
+
그곳에는 한 게시물이 명멸하고 있었다. 나의 작품을 대상으로 한 비판 가득한 리뷰글··· 평화로운 오후에 타르탈로스에 올라온 장문의 게시글이었다.
어느새 타르탈로스는 내가 bc 급으로 자주 드나드는 커뮤니티가 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내 돈벌이인 야짤을 주로 다루는 곳이기도 하고, 이곳도 은근 재밌는 녀석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꽤나 자주 게이짤이 올라와서 내 눈을 테러하기는 하지만··· 그 정도는 이제 피할 수 있는 요령이 생겨 있었다.
그래서 여느 때와 같이 커뮤니티에 들어와 열심히 헛짓거리를 할 생각이었는데··· 설마 저딴 걸 보게 될 줄이야.
심지어 더 개빡치는 건, 저 장문의 비판글이 무려 추천을 먹어서 개념글에도 등록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마우스 잡은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 이익···!”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이 빌어먹을 개추 창녀 새끼들!
조금만 게시물을 정성 들여 써도 추천을 걸레마냥 뿌려주니, 저딴 쓰레기 글이 인기글에 가는 것 아닌가!
자기들 애액처럼 추천을 뿌려대는 모습이 말 그야말로 창녀나 다름이 없었다!
수십 명의 공감을 받은 고로시 때문인지 내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나는 얼른 찬물을 떠와서 한 모금 마신 후, 비판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래도 차가운 것이 몸 안으로 들어가니 정신이 조금 침착해지는 기분이었다.
‘하, 그래 무슨 글인지 살펴나 보자.’
과연 어떤 똥 같은 글을 적었을지 일단은 읽어보기라도 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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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첫 번째로, 금태양이 너무 띠껍다.
작가년이 마조인 건 알겠는데, 그걸 제외해도 애가 너무 경박하고 천박함.
아니 상식적으로, 어느 미친 남자가 지하철에서 역치한을 해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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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건 과거에 봤던 망가를 내 식대로 각색한 것뿐이다!
따질 거면 나 대신 그 인간한테 따져야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애초에 딸딸이 치러 찾아온 만화에서 누가 개연성을 따지는가. 뭐든지 꼴리고 재밌기만 하면 장땡인 일이었다.
순박한 시골처녀가 단 몇 시간 만에 암캐로 전락하는 곳이 히토비속 세상이다. 오로지 꼴림을 위해, 엘리트 우등생이 희대의 대탕녀가 되는 곳이 망가 속 세상이란 말이다.
그런 곳에서 상식을 따지다니, 그러니 녀석의 비판 의견은 하등 쓸모없는 활자 덩어리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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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꼴리기라도 했으면 이런 말도 안 해
그런데 문제는 얘가 그림체만 좋지 그리 꼴리는 편이 아니라는 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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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윽···!”
녀석의 말에, 나는 침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사실 녀석도 야망가에서 개연성 운운하는 게 별 쓸모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내 작품이 꼴리지 않다는 문제를 말하는 것이다.
뭘까, 도대체 뭐가 문제였는가.
머릿속에서 불안감이 한층 가중되었다. 참으로 고맙게도 녀석은 뭐가 문제였는지 아래쪽에 확실하게 써놓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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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금태양이라는 캐릭터 자체는 확실히 꼴리고 좋은데, 이상하게 떡씬을 쓸 때마다 주 포커싱이 여자 캐릭터 쪽으로 맞추어져 있음.
내가 보고 싶은 건 분명 금태양의 몸인데 별 관심도 없는 여캐 알몸이 자꾸 나와;
+
“아니······.”
그걸 보고, 나는 반박할 말을 잃어버렸다.
저것만큼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금태양의 알몸을 그리기 싫다는 이유로 주로 여캐들의 알몸을 자주 그리기는 했다.
저번에도 말했듯,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성 취향에 대한 스펙트럼이 넓은 편이었다.
무려 다큐멘터리까지 찾아가며 찾은 내용이다.
그렇기에 이 정도는 괜찮을 줄 알고 있었다.
어찌 되었든 상황만 꼴리게 만들면 봐준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녀석은 아무래도 그게 마음에 안 들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정성들여서 고로시를 날리는 것이고.
그 뒤로도 녀석의 비판은 계속되었다. 주로 여캐가 너무 많이 나온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금태양은 하나뿐인데, 새로운 히로인들은 매 편 주구장창 나온다든지. 이상하게 금태양 알몸보다 여캐 알몸이 자주 나온다든지.
금태양 표정은 썩소 하나뿐인데, 여자애들 표정 묘사는 온 힘을 다해 그린다든지 등등.
그것 이외에도 금태양만 너무 봐서 질린다는 등, 스토리가 별로 의미 없다는 등의 비판도 있었다.
꽤나 쌓인 게 많았는지 그거에 대한 비판은 스크롤 저 아래로까지 이어졌다.
나는 스크롤을 쭉쭉 내려서 아래에 달린 댓글들을 확인해 보았다.
[증오로 가득해: 개추 ㅋㅋㅋㅋ]
[쇼고타추: 순 팩트뿐이네 ㅋㅋ]
[암갈비쥐: ㄹㅇ ㅋㅋ 인간적으로 이 작가 여캐 너무 열심히 그려요.. 무슨 레즈도 아니고]
모두들 글쓴이의 말에 공감한다는 듯한 댓글들.
여태껏 홍보하면서 쌓았던 인지도가 현재는 부메랑이 되어 나를 공격하고 있었다.
댓글들 중에는 내가 기억하고 있던 닉네임도 몇 명 보여서 더욱 심장을 아프게 했다.
그녀들도 결국 말만 안 했을 뿐 어느 정도의 불만은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마를 짚었다.
“아······.”
언제나 그렇듯, 비판이란 아픈 일이었다.
내가 아무리 무지성으로 그림을 그렸다 한들, 거기엔 몇날며칠의 노고가 들어있었다.
결국 내가 쌓아놓은 그림들은, 내가 어떤식으로든 피땀흘려 만들어놓은 결과물들이었다.
그게 이렇게 비판을 당하다니··· 슬플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있을 수는 없어!’
그렇게 침울해 있길 잠시, 나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키보드를 잡았다.
저것은 나의 밥줄이었다. 비판 글 때문에 밥줄이 흔들리는 걸 볼 수는 없었다!
그러니 직접 나서서 따질 생각이었다.
[hala: 뭐예요?]
[ㄴ 작가레즈 왔농 ㅋㅋㅋㅋ]
[ㄴ 님 궁금한 게 있는데... 진짜 레즈에요?]
[ㄴ 마조레즈 조합; 진짜 어지럽네 ㅋㅋ]
답글에 여러 개소리들이 달렸지만 일단은 무시했다. 그것보다는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필요했으니.
[hala: 남의 작품 이렇게 고로시 해도 됩니까?]
[ㄴ 무슨 문제라도 있음?]
다행히 작성자는 빠르게 내게 답장을 날려주었다. 아무래도 상대도 지금까지 꾸준히 알람들을 확인한 모양.
과연 이런 비판글을 적을 정도로 할 일 없는 새끼라 그런가, 반응도 빨랐다.
[hala: 뭐가 문제긴요. 싹 다 문제지 ^^ㅣ발]
그때부터는 잠시 키보드 배틀이 이어졌다.
남의 작품을 이렇게 공개적으로 고로시해도 되냐는 나와, 고객으로서 정당한 ‘클레임’을 건 것인데 무슨 문제가 있냐는 새끼 하나.
가히 세계 제일의 병신배틀이 아닐 수 없었다.
모두가 논리로 완벽히 무장하여 상대방을 무너뜨리고자 했다.
타닥! 타닥! 한동안 방 안에서는 키보드 타이핑 소리만 울려 퍼졌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 결과는······.
“으아아아!”
······나의 패배였다.
이미 민심은 저 작성자의 비판글에 동조되어 있었기에, 나 혼자 따져봤자 어찌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미 시작부터 져버렸던 싸움.
덕분에 몇 명한테 다구리 맞던 나는 그대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울분을 참으며 댓글 하나를 남겼다.
[hala: 너 나중에 두고 보자 씨발아]
[ㄴ 허억! 넘모 무섭당 ㅎㅋㅎㅋㅎㅋ]
[ㄴ 잘 가라 마조레즈야ㅋㅋ]
[ㄴ 작가님.. 추해요...]
탁!
그 이후 나는 신경질적으로 컴퓨터를 꺼버렸다. 더 이상 봤다가는 열불이 나서 쓰러질 거 같았기 때문이다.
얼굴 마주 보면 말도 제대로 못 걸 것 같은 새끼들이··· 나를 마조 레즈라고 놀리고 있었다.
물론 남자인 나는 마조도 아니었고, 레즈는 더더욱 아니었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진짜 얼공 마렵네.’
얼굴 공개하면 지금 놀리는 저 녀석들 머리를 조아리게 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입도 뻥긋 못하게 모조리 도륙 낼 수 있을 텐데.
··· 물론 얼굴 공개를 할 생각은 없었다. 지금도 이렇게 관심을 받는데, 진짜 얼굴을 공개하면 신상이라도 털릴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
비록 야짤을 그리긴 한다만, 나는 TV에 나오는 연애인들처럼 강심장이 아니었다.
“··· 후우.”
결국 한참을 씩씩 거리던 나는, 이내 화를 삭이며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적막한 방 안이 내 시야에 보인다. 바깥에서 불어온 바람이 청량감을 안겨주었다.
덕분에 조금은 냉정히 생각할 수 있었다.
‘··· 그래 다 맞는 말이긴 해.’
솔직히 말하면, 내 금태양 만화가 흔들리고 있었다는 것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예전부터 호불호가 갈린다고 꾸준히 언급하기도 했고, 애초부터 오래 갈 소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금태양이라는 캐릭터성은 좋으나, 너무 자극적이다 보니 도리어 빨리 질리는 경우가 많았다.
스토리도, 애초에 이곳에 적응할 겸 대충 써놓은 것이다 보니 빈약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니 어쩌면 이러한 결말은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러한 결말이 너무 빨리 찾아와서 정신을 못 차릴 뿐···.
그렇게 잠시 우울함에 빠져있었던 나는, 이내 생각을 달리하기로 했다.
제정신을 차리겠다는 듯 두 볼을 짝짝 두들겼다.
‘차라리 잘 됐어.’
고작 이런 일에 매몰되어서 계속 번민(??)에 빠져있을 생각은 없다.
죽은 자식 부랄 만지는 거 아니라 했으니, 이참에 금태양을 내려놓는 것이다.
애초에 하나의 단편선 같은 형식으로 제작하던 만화라, 이리 갑작스럽게 놓아도 별 상관은 없었다.
그래, 하는 것이다.
예전부터 계속 생각해왔던, 그러나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아 미루고 있었던 일을.
슬슬 새 작품을 만들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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