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화 〉 83, 부탁
* * *
“그럼··· 즐거웠어요.”
“아, 예, 예··· 저희도요······.”
한바탕 소란이 끝나고, 우리는 대충 식사를 마친 후, 거리로 나왔다.
사실 내가 돌발행동을 했을 때쯤엔 어느정도 식사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고, 이미 공기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어색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만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마 이런 분위기에서 서로 더 놀기는 무리겠지.
뭐 됐다. 어차피 나는 성아린의 친구들에게 얼굴을 비추러 나온 것뿐이고, 그 목적은 충분히 이뤘으니.
기만질도 충분히 해주었겠다. 여기서 헤어지는 게 깔끔했다.
그렇게 나는 강수진과 작별 인사를 나눈 후, 잠시 그녀의 뒤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야, 너는 나중에 밥 사라.”
“무조건 사라 시발. 비싼 걸로.”
“아니, 뭔 소리야······. 아! 아야! 야 때리지 마!”
그곳에선 성아린이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열심히 이지메를 당하고 있었다.
가해자는 최예은과 권서희였는데, 등을 때리는 손바닥에 감정이 담겨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참 보기 좋은 광경이구나. 역시 좋은 친구들을 두었어.
우선 저건 그냥 놔두기로 하고, 나는 잠시 강수진의 옆쪽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친구들 중에서 유난히 침울해져 있는 한 명의 여인이 보였다.
허유빈이라는 여성이었다. 그녀는 내 옆자리에서 온종일 불편해하더니 이제는 우울한 기색으로 바닥만 볼 뿐이었다.
나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보니 모쏠이라 했었나.’
그러면 저리 침울한 것도 이해는 된다. 무려 자신과 같이 버러지를 담당하고 있던 친구가 먼저 저 멀리 나아간 것이니까.
나도 고등학생 시절, 친구가 여자친구가 사귀었다고 자랑하면 괜스레 자괴감이 몰아치고는 했다.
저딴 새끼도 여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는 왜···? 같은 생각이 올라오는 것이다.
고작 자랑만 해도 이러할진대, 그녀는 실물을 소환에서 옆에서 귀를 빠는 것까지 구경했다. 여러 감정이 둘 수밖에 없었다.
‘배려가 좀 부족했군···.’
그녀에게 살짝 미안함이 들기 시작했다. 다른 애들을 놀리는 거에 맛 들여서, 정작 그녀의 마음까지는 배려 못한 것이다.
‘흠···.’
나는 잠시 그녀를 말없이 쳐다보았다. 귀여운 양 갈래머리와, 여리여리한 몸매가 보인다.
아기자기한 이목구비는 그 특유의 양 갈래머리를 더욱 각인시켰다.
얼굴만 보아도 피부에 잡티 하나 없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가슴이 좀 작은 게 흠이긴 하다만··· 그럼으로써 나오는 귀여움이란 게 있으니. 솔직히 말하면 얼마든지 내 가능존에 들어갈 수준.
객관적으로 봐도 그녀는 예쁘고 귀여운 편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무작정 따먹을 생각은 없었다.
‘아린이 친구라는게 아쉽군.’
좆을 좆대로 놀리다가는 어떻게 좆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녀가 가능존이라고는 해도 어찌 되었든 성아린의 친구였다.
괜히 잘못 건드렸다가 그녀의 친구관계가 어떻게 왜곡될지 몰랐다. 그건 조심해야지.
비록 내가 쓰레기의 범주에 속하기는 하나, 그 정도는 존중 할 수 있었다.
내가 비록 야짤쟁이라고는 해도, 좆보다 이성이 중요하다는 것쯤을 알고 있었으니.
그러니 아쉽지만 그녀와 잘 수는 없다··· 이게 나의 결론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는 해도 되겠지.’
물론 잘 수는 없다 뿐이지, 다른 것은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나는 그녀를 위로 해줄 겸 가볍게 그녀를 안아주었다.
“···읏?!”
갑작스래 내 몸이 닿자, 그녀가 깜짝 놀라 몸을 움찔한다. 몇 초 안 되서 얼굴에 홍조가 올라온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자상한 척 연기하며 입을 열었다.
“우리 유빈 씨는 꽤 예쁘장하게 생겼는데 남자친구가 없을까요?”
“자, 잠시만요···! 이게 무슨···!”
“예쁘게 생겼는데···.”
나는 잠시 동안 그녀를 안고 그대로 있었다. 다행히 강수진조차 성아린을 이지메하러 가서 딱히 보는 사람은 없었다.
다행히 허유빈은 잠시 몸을 움찔할 뿐 그대로 가만히 있어주었다.
아마 내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처음 보는 여자가 나를 갑자기 안아주는 그런 상황 아닐까? 잘생겼다 얘기해 주면서?
‘오···.’
그렇게 생각하니까 약간 꼴려오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나는 잠시 그녀의 온기를 느끼다가, 이내 떨어져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유빈 씨는 부족한 거 전혀 없으니까 자신감을 가지세요. 충분히 매력이 있으니까. 인기 일을 거예요.”
“아으··· 네···.”
내 손가락 사이사이에 그녀의 검은색 머리카락이 스친다. 허유빈은 그저 굳어버린채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머리에 열이 몰려서 조금 있으면 수증기라도 올라올 거 같았다.
그렇게 고깃집에서의 식사는 막을 내렸다.
*
물론, 막이 내렸다고 해서 그대로 집에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아직 날은 제대로 저물지도 않았고, 하루가 끝나려면 아직 한참이나 남았으니까.
그리고 아직 섹스조차 하지 못하였다.
그래 섹스다. 섹스, 섹스으.
인간의 3대 욕구 중 하나이며, 순간적인 충동만큼은 그 어떤 욕구조차 따라올 수 없는 인류 보존의 근본.
입안으로 열심히 에너지를 쌓았으니, 이제는 아랫도리로 에너지를 배출해 내야 하는 법.
그래서 나는 현재 성아린과 함께 모텔에 들어온 상황이었다.
나는 방금 막 샤워를 마친 그녀에게 물었다.
“오늘 재미있었어?”
“···마지막에 그건 너무했어.”
그녀가 뾰로통한 얼굴로 나를 보며 말했다. 그러면서 잠시 등을 보여줬는데, 아직도 빨간 자국이 조금 남아있었다.
아까 친구들에게 이지메 당한 흔적이었다. 그래도 친구들이 배려해서 주먹이나 팔꿈치로 때리지는 않았는데, 그 대신 손바닥에 힘을 실었나 보다.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녀가 물었다.
“갑자기 귀는 왜 빨아··· 깜짝 놀랐잖아.”
“참을 수 없는 충동이었어.”
“아니···.”
그녀는 잠시 뭐라 말하려다가, 이내 후우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포기한 모습이었다.
솔직히 그런 상황에서 귀를 빨지 않는다니. 그것은 부처님도 참을 수 없는 충동이었을 것이다.
과연 그녀도 그것을 이해하는지 대충 머리를 말린 후 침대 옆에 앉았다.
나는 다시 한번 물었다.
“그래도 재미는 있었잖아.”
“···그렇긴 해.”
이번엔 그녀가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재미 있었을 것이다.
친구들에게 실컷 기만도 해보고, 부러움 섞인 눈빛도 받아보았으니. 원래 자기자랑이란 재밌는 법이었다.
물론 그 덕분에 그녀의 등이 빨갛게 물들었으나··· 등가교환이라고 치면 되겠지.
뭐 어쨌든 재미있었다는 대답은 받았다.
“그래? 그러면 오늘 내가 충분히 도움이 됐다는 거네.”
“응, 맞아. 부탁 들어줘서 고마워.”
그렇다면 이제는 내 부탁을 할 차레였다.
“그러면 내 부탁도 하나 들어줘.”
“응······.”
잠시 시간이 늘어진다. 무지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성아린의 머리가 돌연 굳었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의문이 섞인 목소리였다. 얼굴에 궁금증이 잔뜩 서렸다. 평범하게 야스를 진행할 줄 알았는데, 갑자기 내가 부탁을 할 줄은 몰랐겠지.
그러나 주는 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어야 하는 법. 내가 친구들을 만나달라는 부탁을 들어주었으니, 그녀도 내 부탁을 들어주는 게 이치에 맞다. 그것이 세상 돌아가는 방법이고, 사람이 사회를 살아가는 방법이다.
“응, 그래 들어줘야지··· 무슨 부탁을 하려고?”
그녀가 내게 물었다. 목소리에 약간 불안한 기색이 섞여 있었다.
무얼, 걱정 마라. 그리 어려운 부탁이 아니다. 육체적으로 힘든 부탁도 아니었다.
다만 그녀 입장에서 부끄러울 뿐.
“오늘은 네가 주도해서 해봐.”
본래 그녀와 야스를 하면 보통은 내가 분위기를 주도하는 편이었다.
그녀의 성벽이 꽤나 수동적인 영향도 있고, 기본적으로 성격이 소심한 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보통은 그녀가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고, 내가 정상위, 후배위등을 이용해서 그녀에게 박는 형식이었다.
물론 이것도 나쁘지 않았다. 가장 평균적인 섹스 체위며 나도 그녀도 즐기는 좋은 방법이었으니.
그러나 가끔은 다른 방식도 해보고 싶었다.
그녀가 물었다.
“어···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인데? 나는 침대에서 가만히 있을 테니까. 네가 기승위로 한 번 해보라고.”
원래 이 부탁은 과거에도 한 번 해본 적이 있었다. 색다름을 추구하기 위해 그녀에게 부탁을 해본 것이다.
하지만 그때 그녀는 부끄럽다며 내 제안을 한사코 거절했었다.
성벽이 레이프에 가까워서 그런지, 그와 반대로 자신이 주도적으로 야스를 주도하는데 약간의 거부감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녀의 기승위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일이 옛날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먼저 부탁을 들어준 상태라면? 그리하여 그녀의 마음에 부채감을 안겨준 상태라면?
내가 그 부채감을 이용하여 약간의 압박을 가해도 괜찮지 않을까?
“시, 싫어.”
“아, 왜에. 내가 네 부탁도 들어줬잖아. 설마 이런 작은 것도 못 들어줘?”
"그렇지만··· 부끄럽단 말이야!”
“에이, 이미 부끄러운 건 예전에 채팅에서 보여줄만큼 보여줬는데 뭐. 설마··· 자기 부탁만 해결하고 다른 사람 부탁은 쌩까버리는 그런 염치없는 인간은 아니지 아린아? 그렇지?”
크윽! 하고 그녀가 앓는 소리를 내었다.
얼굴에 곤란한 기색이 가득하다. 내가 볼 땐 이미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상태였다. 이대로 거절해버리면 그녀는 염치없는 인간이 되어버린다.
진퇴양난(???), 사면초가((四???).
그녀는 이미 내가 부탁을 수락했을 때부터 기승위를 하게 될 운명이나 다름 없었다.
나는 비열하게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그냥 하자 아린아. 원래는 똥구멍 따려다가 만 거니까.”
“···알았어! 하면 될 거 아니야···.”
예에!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됐다. 이럼으로써 그녀의 기승위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편안하게 침대 위에 누워서, 그녀가 어색하게 왕복운동을 하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었다.
오··· 작용과 반작용, 중력과 관성의 법칙에 따라 흔들거릴 그녀의 가슴이 저절로 상상된다.
그 모습은 가히 위력적이라 상상만 해도 아랫도리가 자극될 정도였다.
나는 싱글벙글 웃으며 침대 위에 누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