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화 〉 82, 귀
* * *
‘···어색하다.’
어색하다.
이게 허유빈이 밥을 먹으면서 처음으로 한 생각이었다.
그것도 그냥 어색한 게 아니라 무척이나 어색했다.
고깃집의 고소한 냄새속에 무거운 적막이 섞여 들어간다.
테이블에서는 달그락거리는 접시 움직이는 소리만 울려 퍼질 뿐이었다.
일단 얼굴에는 억지웃음을 만들어놓았긴 했는데, 그 누구 하나 앞장서서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성아린을 협박하여 의문의 그 남자를 불러들인 것 까지는 좋았다.
일단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 하는 궁금증은 풀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세원’이라 불린 그 남자가 자신들의 생각 이상으로 잘생겼다는 것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 남자는 잘생겼으면서도 무척이나 까칠하게 생겨먹었다. 그 까칠해 보이는 외모가 문제였다.
마치 모든 세상만사에 불만이 있는 듯한 얼굴.
사람을 째려보는 듯한 저 눈을 보고 있노라면, 자동으로 몸이 자동으로 움츠려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혹시라도 말을 잘못 꺼냈다가 따귀라도 맞으면 어떡하나··· 하는 근거 없는 두려움이 들기도 했다.
그렇기에 섣불리 입을 열 수 없는 것이다.
이미 심리적으로 잔뜩 위축되어 있는 상태였으니.
우리가 깡패 같은 사람을 보면 자동으로 쫄아버리듯, 그녀 또한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이세원이 평소에 섹스와 니알라토텝을 외치는 사람인 걸 알면 좀 편해질지도 모르겠으나··· 그 사실을 모르는 그녀는 그저 어색하기만 할 뿐이었다.
“······.”
허유빈은 잠시 곁눈질을 하여 이세원 옆에 있는 성아린을 쳐다보았다.
자신도 이 상황이 어색한지, 우물쭈물하며 굳어있는 녀석이 보였다.
이 씨팔련이 자기가 데려왔으면, 자기가 분위기를 풀어야지.
가만히 있는 저 모습이 그저 괘씸하게만 느껴졌다.
허유빈에 마음속에서 배신감과 자괴감이 동시에 몰아쳤다.
‘저, 저 기만자련···.’
솔직히 아직까지도 그녀가 이세원을 어떻게 알게됐는지 전혀 예상이 안 되었다.
소동물과 같은 성아린과 날카로운 인상의 이세원의 조합은 무척이나 안 어울렸기 때문이다.
마치 포식자와 피식자가 같이 있는 걸 보는 듯한 기분이랄까. 어울린다기보다는 이질감이 느껴지는 한 쌍이었다.
“응? 무슨 일 있나요?”
그렇게 잠시 신기하다는 얼굴로 옆쪽을 바라보고 있자, 이세원이 그걸 알아차리고는 물었다.
허유빈은 얼굴이 빨개진 채 얼른 손사래를 쳤다.
“아, 아뇨! 아무 일도 없어요 하하···.”
입가에 억지 미소를 지은 채 식은땀을 흘리는 모습은, 제3자 입장에서 보면 꽤나 웃기게 보였다.
이세원은 선량하게 웃으면서 허유빈의 오른손을 잡아주었다.
움찔, 하며 잠시 그녀의 몸이 굳는다. 남성의 가늘고 큰 손길이 자신의 손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이세원은 그런 허유빈을 보며 자상하게 말했다.
“너무 어색해하지 마세요. 저는 그냥 여러분들이랑 이야기 나누고 싶어서 온 거니까. 그러니까 편하게 말 걸으셔도 돼요."
“아··· 넵.”
허유빈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아무래도 외모로만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안 좋은 일이라고.
입가에 미소를 짓는 그의 모습은 꽤나 매력적이었다.
*
‘후, 됐네.’
옆자리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유빈을 보며, 나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척이나 불편해하는 게 눈에 훤히 보여서 말을 좀 건 것인데, 아무래도 불편함이 좀 풀리는 모습이었다.
다행이었다. 덕분에 나도 불편해 죽을 뻔했었으니까.
‘잊고 있었다···.’
나도 초면인 상대한테는 말주변이 더럽게 없어진다는 걸 말이다. 내가 입을 다물고 상대방들 또한 입을 다물자 도처에 침묵이 깔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후··· 그래서.”
그렇게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자 강수진이 입을 열었다.
방금 내가 한 행동으로 어느 정도 분위기가 풀린 모양이었다.
“아린아 말해봐. 어쩌다가 만나게 된 거야?”
궁금증 섞인 4쌍의 시선들이 성아린을 향한다.
아린은 잠시 오묘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마 말해도 되냐고 내게 허락을 구하는 거겠지. 비정상적인 만남으로 만난 우리였기에, 대답을 하는 게 곤란할 수도 있었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말해도 된다는 뜻이었다.
“···그냥. 인터넷으로 만났어. 서로 관심사가··· 응, 비슷해서 얘기하다 보니 어쩌다가.”
그 관심사란 다름 아닌 야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아무리 대답을 해준다고는 해도 그것까지 공개하기는 좀 어려울 테니.
그녀 나름의 언론 통제였다.
그녀가 대답을 마치자, 이내 반대편에 있던 최예은이 놀란 듯 소리쳤다.
“이, 인터넷이면······ 설마 트위터?!”
“야!”
빠악!
그리고 그런 그녀의 대가리를 강수진이 다급히 내리쳤다. 입 닥치라는 뜻이었다.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무래도 이쪽 세상에서도 그 새는 해로운 모양이었다. 그러니 저렇게 다급하게 입막음을 시키겠지.
강수진이 당황하며 나에게 사과를 건넸다.
“죄송합니다. 이 친구가 좀 경솔해서.”
“하하··· 괜찮아요.”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사과를 받아줬다. 고작 해로운 새 하나 말했다고 저렇게 죄송스러워 하는 걸 보면, 어지간히 내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제발 편하게 대해줘···.’
나도 그게 편하니까.
뭐, 그래도 일단 대화 자체는 무난하게 이어졌다. 한 번 물꼬를 트니 다들 한 두개씩 질문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되다 보니 어느새 테이블에는 잔잔한 말소리들이 가득 들어차기 시작했다.
“그러면 처음에는 카페에서 만난 거야?”
“아, 응.”
“커피는 뭐 시켰었어?”
“야 씨발, 그게 지금 중요한 질문이냐?”
아직은 어색하기는 하다만, 그렇다고 다시 침묵에 빠지지는 않을 정도.
어느새 고기가 테이블 위로 전달되었다. 갈비 양념이 되어 있는 돼지고기였다.
마침 굽는 방식도 숯불에 굽는 것이었기에 맛은 안 먹어봐도 맛있으리란 걸 알 수 있었다.
숯불에 굽는 돼지갈비··· 이건 섹스나 다름없다.
치이이익!
강수진이 불판 위에 고기를 얹으며 물었다.
“그러면··· 만나자 한 것도 아린이 네가 먼저 요청한 거야?”
“아, 그건 아니예요. 만나자고 한 건 제가 먼저 했어요.”
그리고 그때쯤에 내가 나서서 정정했다. 따지고 보면 그녀는 첫 만남 때 내가 남자인지도 여자인지도 몰랐을 테니.
그녀 입장에선 그냥 어쩌다보니 인연이 시작된거나 다름이 없다.
내가 이렇게 설명하자 일행들이 오묘한 시선으로 성아린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여러 감정들이 뒤섞인 눈빛이었다.
“저, 저 부러운 새끼···.”
“그냥 손 안 대고 코풀었네.”
‘···아하.’
그리고 나는 그런 모습을 보고 피식 웃음을 흘렸다. 무슨 시선인 건지는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말하자면 저들은 부러운 것이다.
내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인터넷에서 예쁜 여자가 나에게 먼저 만나자고 제안을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 만남이 어찌 이어져서 현재까지 친구로 만나고 있다. 이런 형편 좋은 이야기를 들었는데 부럽지 않을 리가 없었다.
‘기분 좋네.’
그리고 마음 한 편으로는 일종의 자존감이 채워지기도 했다. 그저 존재만으로도 특정 누군가에게 부러움을 일으킬 수 있는 존재.
그 부러움의 원인이 나란 것에서 창조되는 자존감이었다.
마치 나 자체의 가치가 올라간 한 단계 기분.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하며 호감을 느끼고 있다는 그 느낌이 안 좋을 리가 없었다.
이거 아린이의 기만질을 도와주기 위해 나온 것인데, 도리어 내가 자존감을 채우고 있었다.
나는 그 반응들을 철저히 즐기기로 했다.
그 뒤로는 뭐, 밥을 먹으면서 간단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이후 질문들은 거의 나에게 들어왔다.
어떻게 만났는지 호구조사는 했으니, 이제 관심이 나에게로 옮겨진 것이다.
나는 돼지갈비를 먹으면서 그녀들에게 가볍게 대답을 해주었다.
“그러면 나이는 어떻게 되세요?”
“스물 둘이에요. 아마 여러분들이랑 동갑이겠네요.”
“오오··· 그러면 지금은 대학 다니시겠네. 알바는 하시나요?”
“네. 알바는··· 집에서 부업 비슷한 걸 하고 있어요.”
물론 어떤 이유로 만났었는지,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등은 철저히 숨겼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이상한 그림을 그린다고 초면부터 밝힐 수는 없으니까. 다행히도 그녀들은 거기까지는 물어보지는 않는 모습이었다.
우리는 서로 불편한 사이였으니까. 숨기고 싶어 하는 것은 배려해 주는 것이었다.
고마운 일이었다.
“아, 이거 먹어 아린아. 다 익었다.”
“아니··· 아까도 먹였잖아.”
“잔말 말고 얼른.”
그러면서 나는 가끔씩 아린이의 입에 고기를 투척했다. 이게 처음에는 그냥 장난삼아 준 거였는데, 하다 보니 뭔가 중독이 되더라.
뭐랄까··· 약간 동물에게 직접 먹이를 먹여주는 기분이랄까.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면서 실실 웃는 캣맘들의 생각이 조금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물론 이럴 때마다 그녀 친구들이 오묘한 눈빛으로 쳐다보았지만··· 이미 기만질을 하기로 결정했던 나에게는 그저 즐거울 뿐이었다.
“그럼······.”
그런 식으로 잔잔하게 이야기를 하면서 밥을 먹고 있을 때였다. 내 옆에 있어서 그런지, 줄곧 가만히 있었던 허유빈이 문득 입을 열었다.
“지금 둘이 사귀고 있는 건 맞죠···?”
어딘가 낯간지러우면서도 부끄러운 질문. 그녀가 질문을 꺼내자, 순간 주변 일행들의 눈빛에 긴장한 기색이 어렸다.
어찌 보면 지금까지 한 질문 중에 가장 중요한 내용이었으니 말이다.
‘···음.’
여기서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따지고 보면 그녀와 나는 따로 사귀는 사이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냥 서로 만나면 야스를 하는 평범한 친구 관계였지.
물론 야스 친구를 평범에 범주에 쉽게 넣을 수는 없지만··· 어쨌든 그랬다.
‘그래도 사귄다 하는 게 맞겠지.’
잠시 고민하던 나는 이내 결정하고 입을 열려고 했다. 괜히 여기서 안 사귄다고 하면 상황이 더 꼬일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아린이에게 들어보길, 이미 야스를 했다는 것은 심리적 의심으로 확정된 상태나 다름이 없었다.
그렇다면 그냥 사귀고 있다고 착각하게 하는 게 더 나을 것이다.
실제로 이들도 이미 내가 성아린과 교재 중이라 반쯤 확신하고 있는 상태일 테고.
그러나 그전에 성아린이 말을 하는 게 더 빨랐다.
“음, 아니. 아직 사귀는 건 아니고···.”
나는 속으로 이마를 탁 쳤다.
이런, 설마 이걸 솔직하게 말할 줄이야.
“뭐?”
“아니, 사귀는 거 아니었어?”
그녀의 말에 일행들이 잠시 당황했다. 얼굴에 의문이 담겨 있었다.
지금 하는 행동이나, 야스까지 했다는 심리적 근거를 생각하면 딱 봐도 사귀는 느낌인데.
아니라고 하니 인지부조화가 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최예은이 깨달았다는 듯 크게 외쳤다.
“설마··· 세, 섹파?!”
“야이 미친 새끼야!”
빠악!!
강수진이 다시 한번 최예은의 머리를 내리쳤다!
얼굴에 당황이 서려있었다.
과연 평범한 ‘남자’앞에서 할 말은 아니었다. 그것도 처음 보는 ‘남자’앞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나라서 가만히 있는 거였지, 다른 사람이었다면 인상을 찌푸렸을지도 모르리라.
그래서 우선 강수진이라는 친구가 빠르게 입을 틀어막기는 했으나, 이미 친구들 사이에 퍼진 동요는 어쩔 수 없었다.
그 ‘섹파’라는 단어가 일행들의 의식을 흔들었기 때문이다.
설마? 하는 눈빛으로 아린이를 쳐다본다.
섹파가 무엇인가. 섹스 파트너라는 뜻이었다.
정신적인 유대보다는 육체적 유대를 원하는 관계.
서로간의 몸을 목적으로 만나는 친구 이상, 연인 이하의 관계.
그리고 어찌 보면, 평범한 연인보다도 더욱 만들기 어려운 존재라고 볼 수 있었다.
섹스가 어떤 의미인가?
연인들이 서로 사랑을 하여 가장 맺는 가장 아름다운 결실 중 하나다. 연애의 최종 단계이며, 스킨십의 끝판왕이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연인들의 단계를 싹 다 스킵하고, 그 중 가장 아름다운 과일만 섭취한다?
그게 쉬울 리가 없었다. 그러니 그녀들의 동요도 어찌 보면 당연했더.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그제서야 성아린도 자신이 말을 잘못 꺼냈다는 것을 알았는지 겉으로 곤란함을 내보였다.
확실히 진실대로라면, 섹파라고 해도 맞겠지.
그러나 그걸 곧이곧대로 말하면 무슨 후폭풍이 불지는 안 봐도 뻔한 일이었다.
“야, 말해봐 진짜야?”
그리고 순간 나는 여기서 내심 장난기가 일었다.
고작 질문 몇 개 대답해 주는데도 저런 반응인데, 만약 여기서 진짜 스킨십을 하면 어떻게 될까?
‘오.’
이건 못 참지.
뒤에 어떤 후폭풍이 불지는 모르겠으나, 어차피 그건 내가 감당할 게 아니었다.
나한테 돌아오는 책임이 없는데, 굳이 내가 망설여야 할 필요가 있을까?
당연히 없다.
그래서 나는 열심히 추궁을 받는 성아린의 허리를 꽈악 감싸쥐었다.
“흐읏, 자, 잠깐···!”
내가 허리를 감싸 쥐자 그녀의 입에서 옅은 신음이 흘러나온다. 내 갑작스러운 행동에 그녀들이 잠시 당황하는 게 보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제 할일을 계속했다.
남아있는 한 손으로는 그녀의 가슴을 움켜쥐고, 입으로는 그녀의 귀를 문다.
“흐윽?!”
사람의 귀는 생각이상으로 많은 감각이 밀집되어 있는 장소였다. 피부를 자극함으로서 얻을 수 있는 촉각은 물론이요, 청각은 말할것도 없으니. 그러니 만약 상대방의 민감한 반응을 얻어보고 싶다면, 귀를 자극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야, 잠깐···! 애들 있잖아···!”
가슴을 주물럭 거리면서 귓가를 자극한다.
츄릅, 츄릅.
그녀의 귓가에서 천박한 소리가 연신 울려퍼진다.
나는 이빨을 이용해서 귓볼을 깨물어 보는가 하면, 혀를 굴려 귀 근처를 핥아보기도 했다.
고작 귀를 핥는 정도의 스킨십. 하지만, 평범한 친구 사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절대로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성아린의 귀를 잠시 물고 빨다가 놔주었다.
“하아··· 하아···.”
얼굴이 살짝 빨개진 채, 거친 숨을 몰아쉬는 그녀가 보였다.
나는 휴지를 몇 개 가져가서 촉촉해진 입가를 닦았다. 음, 오늘 그녀의 귀에서는 갈비향이 날 것 같았다.
그리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
“······어.”
조용해진 주변이 보인다. 한창 불붙은 듯 시끄러웠던 테이블에는 어느덧 지독히 무거운 침묵만이 흐르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찬물을 끼얹은 듯 갑작스러운 침묵이었다.
그녀의 친구들 모두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 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얼굴에 부끄러움과 경악, 놀라움이 섞여 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들한테 작게 미소 지어주며, 이내 말했다.
“어떤 사이인지는 비밀입니다.”
때로는 말보다 행동이 효과적일 때가 있는 법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