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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야짤작가-81화 (81/125)

〈 81화 〉 81, 와꾸

* * *

강수진.

그녀는 자신이 나름 사교성이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그러니까 어떻게 남친을 사귀고, 남사친도 주변에 많을 수 있는 거겠지.

물론 자신이 어떻게 ‘남초’과에 들어가서 남자들과의 접점이 많았던 것은 부정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 접점을 인연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것도 능력 중에 하나였다.

실제로 그녀는 나름 용모가 수려했으며, 말도 은근히 잘 하는 편이었으니.

객관적으로 봐도 그녀의 사교성이 뛰어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또한 그녀는 자랑을 좋아했다.

그리 거창한 것은 아니다. 그냥 어제 룰 게임에서 펜타킬을 했다거나, 시험을 봤는데 생각보다 잘 나왔다거나, 그제 남친과 야스를 즐겼다는 것 등등.

그런 시답잖고 사소한 자랑거리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야스가 사소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녀는 그러한 기만질을 즐겼다.

자랑이란 본래 사람의 자존감을 채워주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였으니 말이다.

상대방이 부럽다는 눈빛을 보낼 때면 가슴 깊은 곳에서 만족감이 차오르고는 했다.

물론, 이것도 계속하면 욕을 처먹을 게 분명하니 그리 자주 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저 가끔씩, 자신의 불알친구들을 만날 때나 장난 식으로 기만질을 해댈 뿐.

초중딩 때부터 알고 지내던 애들이라 편하기도 했고, 웬만하면 화도 잘 안 내는 놈들이라 그러려니 했다.

그리고 애초에 모쏠도 허유빈과 성아린을 제외하면 다들 이성경험이 있어서, 기만질을 해도 별 타격이 없는 편이었다.

언제나 한결같이 병신으로 남아주는 제 친구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속에서 안도감이 차올랐다.

그래서 언제까지고 변치 않을 줄 알았는데···.

‘설마 역으로 기만질을 당할 줄이야.’

수진은 잠시 저번 주 토요일을 떠올렸다.

그날은 충격과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허유빈과 같이 아다를 담당하고 있던 성아린이 알고 보니 후다였다는 게 밝혀졌으니.

그날 보여준 고양이 자세는 절대 초보자에게서 나올 수 없는 것이었다.

마치 순수했던 한 아이가 타락한 걸 본 느낌이랄까···.

‘뭐 원래 순수하진 않았긴 한데···.’

따지고 보면 단체 채팅방에서 항상 섹스를 외쳐대던 년이었으니 순수한 건 아니었다.

어찌 되었든 ‘남자’한테는 쑥맹이나 다름없었던 애가 아다를 땠으니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처음에는 어디 호빠 단골이라도 됐나 생각하기까지 했다.

결국에는 추궁 끝에 숨겨둔 남자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긴 했지만.

‘···애가 예쁘기는 하지.’

성격이 소심해서 그렇지 성아린은 객관적으로 봐도 가슴 크고 예쁜 편이었다.

수진은 속으로 그리 생각하며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고깃집의 6인용 테이블에 제 친구들이 앉아있는 게 보인다.

그녀들은 지금 성아린의 ‘그놈’을 두고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중이었다.

어디에서 만났는지, 얼굴은 어떻게 생겼는지, 거시기는 튼실할지 등등.

주로 하는 이야기는 의문의 그에 대한 외모 추측이었다.

혈기왕성한 20대 청년들에게 외모만큼 중요한 것은 없었으니 말이다.

“난 평범하게 생겼다에 한표.”

“난 개빻았다에 만원 건다.”

그리고 대부분의 추측들은 그가 못생겼을 것이다, 또는 평범하게 생겼을 것이다 하는 의견으로 귀결되고 있었다.

왜?

이유는 별 거 없었다.

단지 성아린 그 녀석이 반반한 남자랑 붙어있는 게 꼴보기 싫다는 것이 이유였다!

감히 자신들 몰래 남자를 만난 것도 괘씸한데 심지어 그 남자가 반반하게 생겼다?

그런 꼴을 마음 편히 볼 수 있을만큼 그녀들의 아량이 넓진 않았다.

과연 참 친구들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이러한 추측들에는 이성보다 감정이 과량 투여되어 있기는 하지만···.

솔직히 강수진조차 남자의 외모가 그냥 평범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성아린 그녀의 얼굴이 반반한 것과는 별개로 말주변만큼은 진짜 병신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잠시 예전의 일을 생각해 보았다.

‘그때는 심했지.’

예전, 계속 모쏠아다인 자신의 친구가 불쌍하여 한 번 단체 소개팅을 잡아준 적이 있었다.

굳이 ‘단체’소개팅인 이유는 둘이 만나게 했다간 어색해 죽으려 할게 눈에 훤히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려 자신까지 참전해서 녀석을 도와줬거늘··· 결국 그 날 성아린이 정확히 말을 한 게 몇 번인지 아는가?

고작 세 번이었다!

정확히 기억한다.

분명히 세 번 뿐이었다.

처음 의례적으로 하는 자기소개, 음식 의견 말하기, 마지막 작별 인사를 제외하면 그녀는 거의 리액션 봇이나 다름없는 모습을 보여줬었다.

남자 앞에만 서면 그 정도로 심각하게 굳어버리는 인간인데, 무려 잘생긴 남자와 만난다?

쉽사리 상상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적당히 평범한 남자와 만났겠거니··· 어쩌다 인연을 텄겠거니 생각하는 그녀였다.

“아니, 상식적으로 그 새끼가 남자 만나는게 말이 안 되잖아.”

“그렇긴 해.”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던 때였다.

따르릉­

종소리가 울리며 고깃집의 문이 열린 것은.

일행들의 시선이 저절로 문 쪽으로 향한다. 4쌍의 눈빛이 방금 막 들어온 성아린과, 그녀의 옆에 있는 남자를 살폈다.

그리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화창한 날씨에 맞지 않는 창백한 피부가 보인다. 세상의 빛을 흡수하는듯한 검은 머리카락이 보였다.

뚜렷한 이목구비와 그런 와중에도 빛을 잃지 않는 날카로운 눈매가 보였다.

전체적으로 차갑고 날카로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남자였다. 다가가기 힘든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 괜히 말 걸었다가 욕을 얻어먹는 건 아닐까 생각되는 남성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외모만큼은 확실히 매력을 발산하고 있어, 길가를 스쳐가다 한 번쯤은 뒤돌아보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인간이었다.

단순히 잘생겼다는 게 문제가 아니다. 그 외모에 다가가기 힘든 분위기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다.

그것만으로 그 사람의 희소성은 증가하며, 가치는 올라갈 테니.

장미꽃이 매력적인 이유는 꽃이 단순히 화려하기 때문이 아니라, 화려하면서도 옆에 수많은 가시들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인간이, 지금 그녀들의 친구 성아린과 함께 걸어들어오고 있었다.

어깨에 다정하게 손을 짚은 채, 서로 몸을 들러붙은 채로 고깃집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그녀들을 찾았는지 성아린이 손가락으로 한 쪽 테이블을 가리켰다.

그러고는 아주 자연스럽게 이곳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일행들의 동요가 커진다. 눈이 크게 떠지며, 얼굴에 경악이 서렸다.

그녀들의 예상을 완벽히 빗나간 존재가 그녀들의 옆으로 점차 다가오고 있었다.

“이분들이야?”

“으, 응. 인사해.”

이윽고 그가 말했다. 고개를 숙이며,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은 채로.

“반갑습니다. 이세원이라고 해요.”

‘··· 미친.’

강수진은 어이가 없어서 속으로 욕지거리를 날렸다.

*

사람들 사이에서 외모란 무척이나 중요한 요소다.

당연한 말이었다. 외모가 어떠냐에 따라 첫인상이 달라지며, 호감도의 차이가 벌어지니까.

우리가 굳이 현실을 놔두고 애니, 만화를 보는 이유도.

영화나 드라마에 미남미녀들이 많이 나오는 이유도.

다 그들의 와꾸가 사람들을 끌어모으기 때문이었다.

어쩔 때는 사람의 성격, 배경들을 깡그리 무시한 채 단순히 외모만으로 계급을 나누기도 하니······.

와꾸가 반반하다면 인생이 좀 더 편해진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인생 편함을 아주 직관적으로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인사를 건네자, 얼이 빠진 채 굳어있는 4명의 여성이 보였다. 4쌍의 시선이 전부 나를 꿰뚫고 있는 게 느껴졌다.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귀엽네.’

무슨 이유 때문에 굳었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고작 인사 한 번에 이정도 반응인데 기분이 안 좋을리가 없었다.

아아, 이런 게 개연성이란 말인가?

오늘따라 ‘이세원’이 고마워지는 날이었다.

고맙다 녀석, 네가 남겨둔 수분크림과 클렌징폼의 의지는 내가 계속해서 이어나가겠다.

‘일단 첫인상은 성공적으로 남겼고.’

일단 그들이 예상했던 평균치는 충분히 넘어줬으리라 생각했다.

나는 선량한 미소를 지으며 어떻게 행동할지 생각했다.

오늘은 내가 깝죽대기보다는 아린이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나온 것이었다. 그렇다면 일단은 얌전한 척하면서 상황을 파악하는 게 맞겠지.

나는 잠시 테이블 앞에 서서 아린이에게 친구들의 소개를 받았다.

차례대로 강수진, 최예은, 권서희, 허유빈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과연 끼리끼리 만난다 하던가, 그녀의 친구들도 나름 반반한 얼굴들을 하고 있는 게 보였다. 끼리끼리 만나서 그런지 다들 굳어있는 모습이긴 했지만.

뭐, 거기까지는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아, 아! 잠시만요 자리 만들어 드릴게요!”

“야야, 일어나서 이쪽으로 와. 일단 둘이 앉게 해야지.”

그 뒤로 우리는 어색하게 식탁에 앉았다. 아무래도 6인 테이블이라 그런지 3 대 3으로 나눌 수밖에 없었다.

반대편에는 최예은, 강수진, 권서희가 차례대로 앉았고.

이쪽에는 허유빈, 나, 성아린이 차례차례대로 앉는 형식이었다.

나는 자리에 앉으면서 내 옆에 있는 허유빈이라는 여성에게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반가워요.”

“아, 네, 네! 반갑··· 반갑습니다······.”

상당히 쫄아있는 상대방의 모습이었다.

“일단 고기부터 시켜야지··· 뭐 드시고 싶으신 거 있나요···?”

“저는 아무거나 상관없어요.”

그렇게 굳어있는 분위기에서 식사가 시작되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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