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화 〉 79, 사진
* * *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과거의 행한 일을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이유가 뭐냐면, 과거의 나는 자신의 생각만큼 시간을 알차게 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무의식에는 기본적으로 완벽주의적 성향이 깔려져 있고, 어제의 나는 현실적으로 분명 나태할테니까.
그러니 오늘의 내가 어제의 자신을 되돌아봤을 때, 어제는 왜 저렇게 보냈는가 후회가 깔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 아니 아직 저녁시간이 한참이나 남았는데 왜 나는 유튜브를 본 거지?
아니, 이 새끼는 할 일이 산더미처럼 있는데 어제 왜 저렇게 빨리 잔 거지?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들고 있노라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자신에 대한 자괴감이 차오르고는 했다. 괜히 마음속에서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와 자기혐오가 들끓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느끼는 것은 과거의 나에 대한 자괴감과···.
분노였다.
“과거의 나 이 씨발련아!!”
나는 책상 위에 앉은 채로 과거의 나에게 외쳤다. 그런 와중에도 내 손은 쉬지 못하고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중이었다.
종강을 했기에 하릴없고 나른한 오후였다. 원래 같았으면 나도 편하게 매트리스 위에 누워 꿀같은 휴식을 취했겠으나.
아쉽게도 현재의 나는 그럴수가 없었다.
과거의 나, 이 씨팔련이 감히 나에게 제가 할 일을 짬 때렸기 때문이다!
최소한 금태양 만화 두 컷 정도라도 그리고 잘 것이지, 녀석은 지 몸 팔아서 5만월을 벌어왔다고 그저 유튜브를 쳐 봤을 뿐이었다.
덕분에 나는 나른한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땀 뻘뻘 흘려가며 연재분을 채울 수밖에 없었다.
크르르··· 저주한다 과거의 나.
‘개같은 놈 진짜.’
그래도 어찌어찌하여 내 정신력을 갈아 넣으니, 금태양 연재분을 제시간 안에 완성시킬 수는 있었다.
나는 타블렛 펜을 탁 내려놓고는 짙은 숨을 내쉬었다.
“후···.”
사람은 한계에 몰리면 신체능력이 강화된다는데 아무래도 진실인가 보다.
정신력도 따지고 보면 신체능력 중 하나니까 별다를 건 없겠지.
아무튼 나는 완성된 금태양 그림을 가지고 대충 핀박스에 올렸다.
이번화의 내용은 금태양이 새로 사귄 여대생을 모텔에서 스팽킹 하는 스토리였다. 금태양의 알파메일적 근육질 몸매와, 그와 대비되게 얼굴에 띤 3류 악역 같은 미소가 특색이라면 특색이었다.
평범한 멜돔물이었지만, 그렇기에 무난하게 딸감으로 쓸만한 그런 작품.
살짝 급하게 그런지 묘하게 인체비례도 안 맞고, 선 정리도 약간 덜 된 느낌이지만··· 이미 연재시간이 다 되었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어차피 이 정도 오류야 늘 겪는 일이고, 평범한 사람들은 알아차리기도 어려운 미세한 것들이었으니까.
그렇게 작품을 업로드한 후, 나는 매트리스에 몸을 뉘었다.
결국 이번 주도 살아남았다. 나의 핀박스 계정은 이로써 일주일의 생명을 더 연장 받은 것이다.
이번에도 유입은 꾸준히 들어오면서 내 후원계좌에 돈이 쌓이겠지.
당장 다음 화 스토리가 걱정이긴 하지만, 그것은 또 내일의 내가 생각할 것이다.
어제의 나와는 달리 오늘의 나는 진심으로 할 일을 다 했으니 내일의 나는 이해할 것이라 믿었다.
띠링!
그렇게 잠시 정신적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였다. 머리맡에 놔둔 핸드폰에서 알람이 울린다.
[뭐에요?]
확인해 보니 이은별에게 문자가 와 있었다.
[이번화 내용이 뭔가 익숙한데...]
아무래도 이번에 올린 금태양 만화를 본 모양이었다. 올린 지 1시간도 채 안 지났는데, 알림 설정이라도 해둔 건지 반응이 빠른 그녀였다.
은별이 말을 이었다.
[저거 여자가 한 포즈..어제 제가 한 자세 아니에요?]
“오.”
나는 작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바로 알아보네?”
그녀의 말이 맞았기 때문이다. 이번에 금태양과 야스를 한 히로인의 포즈는, 사실상 어제 이은별이 한 포즈와 다름이 없었다.
벽에 손을 짚은 채 풍만한 엉덩이를 내밀은 모습. 꽤나 꼴릿한 자세였으며, 어제 충분한 자료조사가 되었던 나였기의 망설임 없이 그릴 수 있었다.
나는 키패드를 두드려 그녀에게 답장을 보냈다.
[너를 위해 그렸어 어때?]
[어떠긴 뭘 어때요! 창피해 죽겠는데!!]
답장은 꽤나 빠르게 날아왔다. 느낌표가 두 개나 달린 것을 보니 창피하단 것은 진심인 모양이었다.
여기서 나는 살짝 아쉬움을 느꼈다.
나는 이번화를 보면서 되새김 자위라도 할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그녀는 꼴릿함보다 창피함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하긴, 자신이 어제 한 자세의 천박함을 생각하면 얼굴이 빨개지는 것도 이해는 할 수 있었다.
[뭐...그래도 수고했어요 잘 볼게요]
그렇게 생각하길 잠시, 그녀가 내게 조심스럽게 문자를 보냈다.
[...그보다 저희 다음에는 언제 만나요?]
[?]
그 문자를 본 나는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뭐야.’
제 나름대로 빙빙 돌려 말하려는 것 같지만, 그녀의 의도가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이게 본 목적이구나.’
왜 갑자기 이번에 올린 만화를 이야기로 문자를 보냈나 했더니.
뒤에 있는 용건을 숨기기 위해서였다. 금태양 만화로 먼저 서두를 열고, 그 뒤에 따라오는 용건을 자연스럽게 말하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는 화법이었다.
말하기 곤란하거나 창피한 화두를 꺼내기 전에, 별로 상관없는 주제를 꺼내 신경을 분산시켜 놓는 것.
나는 그녀가 마지막에 보낸 문자를 다시 한번 확인해 보았다.
다음에는 언제 만나냐··· 그 뒤에 숨어있는 속뜻은 쉽게 유추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왜, 벌써 다시 하고 싶어져서 그래?]
뭐가 하고 싶냐면, 섹스를 말하는 것이다.
본래 그녀는 만날 약속을 잡으려고 한다면 당당하게 요구하는 편이었다.
술 먹으러 가자 거나, 노래방을 갔다 오자는 등 해서 나를 꼬드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저렇게 조심스럽게 물어본다니.
평소의 그녀답지 않은 어색함이었고, 어색함에는 곧 평소와는 다른 의도가 따르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잠시 싱글벙글 웃고 있자 그녀에게서 다시 문자가 날아왔다.
[아니, 하고 싶다뇨; 뭘요;;]
[솔직하게 말하자 이미 볼 거 다 본 사이인데]
결국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답장을 날렸다.
[...네]
지금이 문자여서 참 아쉬웠다.
아마 목소리로 들었으면 은별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귀여운 녀석.’
어제의 빠꾸리가 그만큼 기분이 좋았던 모양이었다. 하긴, 자신이 원하던 상대와 취향에 맞는 야스를 했으니.
만족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겠지.
하지만 야스를 한지 하루 만에 이런 식으로 물어볼 줄이야. 운동부는 기본적으로 성욕이 왕성하다던데, 체교과인 그녀도 별반 다를 바 없는 모양이었다.
사실 야스는 어느때나 해도 환영이었지만, 나는 괜히 장난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조금 놀려볼까?’
그래서 그녀를 문자로 가볍게 놀려보기로 했다.
[진짜 발정 났네; 어떻게 한지 하루 만에 그런 걸 물어보냐?]
마치 기분 나쁘다는 듯, 공격적인 어투를 담아 문자를 보낸다.
[아ㅠㅠㅠㅠ 죄송해요ㅠㅠㅠ퓨ㅠ]
휴대폰 너머에서 당황하는 그녀의 모습이 상상되었다. 아마 저 문자를 보내면서 속으로 안절부절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음..]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이내 그녀에게 요구했다.
[정하고 싶으면 지금 가슴 까고 나한테 보내봐]
[..넹?]
[브라 벗고 나한테 네 가슴 사진 보내라고. 최대한 야하게]
[...아]
잠시 채팅창에 침묵이 감돈다.
그녀는 당황했는지 한동안 답장이 없었다. 이미 채팅 옆에 떠있는 숫자 ‘1’은 사라져 있었지만, 뭐라고 답장이 올라오지는 않는 것이다.
내 갑작스러운 요구에 당황스럽기도, 곤란하기도 하겠지.
‘흐흠.’
나는 그 찰나의 정적을 여유롭게 즐겼다.
굳이 이런 걸 시키는 이유는 별다를 게 없었다. 갑자기 그녀의 부풀어 오른 가슴을 보고 싶어졌기도 하고, 그녀가 내 말을 따름으로써 정복감이란 걸 충족시키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아아, 정복감. 이 얼마나 아름다운 단어인가.
띠링!
그렇게 몇 분을 기다리자 나에게 문자 하나가 날아왔다. 메신저 ‘이은별’이 보낸 사진이었다.
사진에는 그녀가 윗옷을 올린 채, 가슴을 보여주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예쁜 물방을 모양의 유방과 그 위의 툭 튀어나온 핑크생의 유두가 보인다.
침대 옆에는 방금 벗어던진 것 같은 헝클어진 브라가 내동댕이 쳐져 있었다.
아쉽게도 가슴을 중점으로 찍어서 그런지 얼굴은 다 나오지 않았지만, 적어도 빨갛게 물든 볼만큼은 확인할 수 있었다.
저렇게 부끄러워하고, 곤란해하면서도 내 요구를 곧바로 들어준 것이다.
웃음꽃이 필 수밖에 없었다.
하반부에서 나의 소중이가 기뻐하며 반응하는 것이 느껴졌다.
[... 됐나요?]
그렇게 잠시 사진을 감상하고 있자 다시 은별에게 문자가 왔다.
나는 뿌듯하게 웃으면서 답장을 해주었다.
[^^]
[언제든 하고 싶으면 말해^^]
[아니...그...네...ㅎㅎ]
그녀가 힘없이 답장을 날렸다. 굴욕감과 행복함, 수치심이 한데 섞여 만들어진 귀한 답장이었다.
은별은 그대로 용건을 끝냈는지 그대로 사라졌다. 그녀가 보내준 사진은 내 갤러리에 고히 저장해둘 생각이었다.
아무리 나라도 이런 사진을 뿌릴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애초에 역전 세상이라, 저런 사진은 별로 수요도 없는 편이었고. 그냥 한때의 추억으로 핸드폰에 저장해 두는 게 최고였다.
그 뒤로 나는 잠깐 동안 금태양 최신화의 반응을 살폈다. 민심 확인은 언제나 중요한 일이었으니까.
다행히 이번 편도 반응은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꼴린다, 무난하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는 모습이었다.
[그림지망: 흐음... 이번 거는 이상하게 인삐가 많네;]
···한 사람이 인체 비율을 가지고 뭐라 해서 약간 뜨끔했긴 했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이름을 보니 나와 같은 직종을 파는 사람인 거 같았으니까.
인체 삐꾸가 보였을 수도 있겠지.
그렇게 잠시 반응을 살펴보고 있자 다시금 핸드폰에서 문자 알람이 울렸다.
띠링!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요즘 연락해 주는 사람이 많군.’
이것이 인싸의 삶?
아아, 인싸인 이은별과 야스를 했으니 나도 분명 인싸나 다름이 없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문자를 확인해 보았다. 이번에는 성아린에게 문자가 와있었다.
왜인지 무척이나 오랜만인 것처럼 느껴지는 그녀였다.
[안녕, 혹시 내일 시간 돼?]
[음...시간은 되는데 왜?]
[별건 아니고... 혹시 내일 나랑 만나줄 수 있나 해서]
‘이렇게 돌직구로 물어보는군.’
과연, 만나는 시간 동안 편해져서 그런가 이런 물음에는 한결 자유로워진 그녀였다.
‘그러고 보니 못 만난 지 좀 된 거 같지···.’
오랜만에 만나는 것도 괜찮겠다 생각한 나는 그녀에게 곧바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당연히 가능하지]
그때, 다시 성아린이 문자를 보냈다.
[저.. 근데 문제가 하나 있는데 괜찮을까...?]
[?]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평소와 같이 만나는 것뿐인데 무슨 문제가 있다는 것일까?
이런 내 궁금증을 알아차리기라도 했는지 그녀가 말을 이었다.
문자에서도 느껴질 정도로 조심스럽게.
[그...내 친구들이 너를 한 번 만나보고 싶다해서...]
[응?]
네 친구들이 갑자기 나를?
아니, 무슨 인연이 있다고?
[갑자기 왜?]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