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야짤작가-78화 (78/125)

〈 78화 〉 78, qwer1

* * *

qwer1.

정말 대충 지은 닉네임이지만, 나에게는 꽤나 크게 다가오는 이름이었다.

그도 그럴게 상대방은 나에게 무려 30만 원이나 투척해 준 큰손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당시에 신청했던 그림도 내가 죽어도 그리지 않겠다던 남캐 야짤이었다.

감히 나의 신념을 돈으로 짓밟고 물질적인 행복을 알려준 사람.

보잘것없는 금태양의 묶인 모습을 보기 위해, 통 크게 30만 원이나 쓸 수 있는 사람이라니··· 그러한 이가 신경이 안 쓰일 리가 없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로 연락한 거지?’

그때 커미션 의뢰를 끝낸 이후로 따로 연락을 주고받지 않던 상대방이었다.

나도 물주님에게 선뜻 뭐라 말 걸기 부담스럽기도 했고, 상대방도 딱히 대화를 더 이어나갈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단순한 의뢰자와 수주자의 관계.

‘qwer1’과의 거리감은 그 정도가 다였다.

그런데.

[qwer1: 근데 확실히 그림체는 좋으시네ㅋㅋ]

저 사람은 갑자기 왜 연락을 한 걸까. 그것도 그림을 올린 지 몇 분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 말이다.

순간, 내 머릿속의 있는 업무 센서가 전원을 키기 시작했다. 내 안에 숨어있던 서비스정신이 작동을 시작한다.

[qwer1: 님, 근데 계속 읽기만 하고 대답은 안할거에요?]

나는 얼른 핸드폰을 두드려 상대에게 문자를 보냈다.

[hala: 죄송해요; 잠깐 다른 일 좀 하고 있었거든요]

[hala: 그런데 무슨 일이신가요?]

그러면서 상대방에게 물었다.

이미 이은별과 한바탕 빠꾸리를 뜬 다음이라 머리가 잘 굴러가진 않았지만, 상대에게 무슨 용건이 있어서 나에게 연락했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갑자기 문자를 보냈겠지.

그리고 그 용건이란, 아마 아까 내가 올린 그림과 관련 있을 게 뻔했다. 그러니까 그림 올린 지 몇 분이 안 지나서 연락이 온 것이고 말이다.

[qwer1: 아까 말했잖아요. 저 캐릭터 몸은 왜 가렸냐고]

역시, 내 예상이 맞는지 상대방은 아까 올린 그림을 가리키고 있었다.

전에도 그랬듯 존댓말은 하고 있지만, 묘하게 띠꺼운 화법을 구사하는 상대방이었다.

나는 속으로 대답했다.

‘왜 가렸기는 시발.’

그 캐릭터의 원본이 다름 아니라 나니까 가렸지.

인터넷상에서 모르는 인간들에게 천박한 성희롱을 당하는 것은 저번 경험으로 족했다. 더이상 그라비아 아이돌이 되고 싶지 않았던 나는 내 아바타에게 친히 옷을 입혀준 것이다.

물론 상대방에게 ‘저 캐릭터가 나라서요’라고 친히 답해줄 수도 없는 법.

[hala: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가렸습니다 ㅎㅎ;]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말을 저런 것뿐이었다. 한창 은별 양과 빠꾸리를 뜨고 온 뒤라서 그런지, 그럴듯한 변명이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말하기 싫다는 티를 팍팍 내서 그런지, 상대는 굳이 더 캐묻지 않고 넘어가는 듯했다.

[qwer1: 흠.. 뭐 알았어요. 그러면 저 그림 원본은 아예 공개할 생각이 없는 거예요? 핀박스에서도?]

[hala: 아쉽지만 그렇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개쩌는 그림을 사람들에게 공개 못 한다는 건 슬프긴 하지만··· 그래도 또다시 몰카범 피해자처럼 눈치 보면서 일상을 보내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리고 애초에 그 그림은 이은별을 압박하는 데에서 제 할 일을 한 셈이었다.

이미 커미션 값 7만원을 받기도 했고, 그걸 이용해 그녀를 마음껏 놀리기까지 했으니.

솔직한 말로 가성비 값은 충분히 한 셈. 그렇기에 나는 내 아바타 그림에 별다른 미련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물론, 원작자인 내가 그렇다는 거지. 아무래도 다른 사람에게는 미련이 좀 남는 모양이었다.

[qwer1: 에이ㅋㅋ 그러지 말고 공개하는 거 어때요? 호응도 꽤나 좋았던 것 같은데]

[hala: 하하..]

“그렇긴 하지···.”

나도 내 아바타가 그렇게 반응이 좋을 줄은 몰랐다. 이 변태 같은 새끼들. ‘남자’몸이라면 아주 정신을 못 차리지.

내 스스로 ‘남자’라고 하니까 좀 게이 같기는 한데, 어쨌든 사실이 그랬다.

나는 키패드를 톡톡 두드려 상대방에게 문자를 보냈다.

[hala: 그래도 공개할 생각은 없어요. 죄송합니다.]

호응이 좋든 말든, 애초에 그것조차 감수하고 고른 선택이다. 이미 마음을 굳힌 나는 이 선택을 바꿀 생각이 없으며, 그 어떤 유혹이 오더라도 꿋꿋하게 버텨낼 생각이었다.

[qwer1: 아 그럼 이건 어때요? 굳이 공개하라고 하진 않을테니까 저한테만 원본을 보여주는 건?]

[hala: ?]

“오잉?”

모든 사람이 아닌, 한 사람에게만 보여주는 건 또 괜찮을 것 같기도?

[qwer1: 물론 맨입으로 보여달라는 건 아니고요, 소정의 보상금도 줄 생각이 있어요]

[hala: 진짜요?]

나는 나도 모르게 되물었다. 나에게 30만 원이나 바쳐주신 우리의 큰손 양반께서는, 이번에도 내게 돈을 상납할 의향이 있는 모양이었다. 고작 그림 하나 원본 보겠다고 또 돈을 바치겠다고 얘기하는 걸 보면.

뜻하지 않은 돈 소식에 순간 눈이 번쩍 뜨였으나, 그것보다 먼저 든 것은 궁금증이었다.

“아니, 어째서?”

그림 하나를 커미션 하는 것도 아니고, 고작 모자이크 하나 지우겠다고 돈을 바치겠다니. 심지어 그 모자이크 된 캐릭터의 모티브는 다름 아닌 나였다.

그림 하나 감상하겠다고 왜 그렇게까지 하는가?

이런 점이 궁금하여 물어보니 상대가 명쾌하게 대답을 해주었다.

[qwer1: 캐릭터가 꼴리게 생겼잖아요ㅋㅋ]

[qwer1: 개인적으로 나는 님이 그린 금태양인가 뭔가 보다 이번 캐릭터가 더 좋음. 금태양은 너무 자극적이게 생겼는데 이번 남캐는 적당히 수수하니 좋잖아요]

[qwer1: 한 마디로, 생긴 게 제 취향이라 마음에 들어요]

속사포처럼 이어지는 ‘qwer1’의 대답들. 상대방이 하는 말들에 나는 내 얼굴이 점차 빨개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얼굴을 감싼 채 중얼거렸다.

“먼가··· 기분이 좀 오묘하네···.”

나는 지금, 우리의 큰손 분에게 내 몸이 꼴린다고 대놓고 들은 것이다.

물론 상대방은 내 아바타를 보고 한 것이지만, 나랑 별 차이점도 캐릭터였기에 사실상 나한테 한 거나 다름이 없었다.

내 몸이 이렇게나 효율이 좋을 줄이야··· 기쁜 마음이 들면서도, 창피함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qwer1: 그래서 어때요? 5만 원 정도에 그림을 구매할 의향이 있긴 한데]

5만 원. 무려 신사임당 한 장. 짭짤달콤한 짱깨를 10개 가까이 시켜 먹을 수 있으며, 무려 치킨 두세 마리를 시켜도 될 만한 돈이었다.

평균적인 커미션 가격에 비해선 싸긴 하지만, 애초에 이미 그려놓았던 그림을 보여주는 것뿐이다.

그림판에 스케치한 모자이크만 지우면 되는데.

내가 지금 들이는 노동력에 비하면 무척이나 개쩌는 가성비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고 상대방에게 물었다. 내 마음속에 약간의 불안감이 남았기 때문이다.

[hala: ... 혹시 어디 뿌리거나 할 건 아니죠?]

[qwer1: 아ㅋㅋㅋ 당연하죠. 남들 못 보는 거 저 혼자만 볼 수 있는 특권을 얻는 건데, 제가 그 특권을 왜 버려요?]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내가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내가 고민 끝에 골랐던 모자이크 선택은 고작 5만 원에 굴복할 만큼 초라한 것이었다.

[hala: 좋아요 그럼]

[qwer1: ㅇㅋ 지금 바로 돈 보내줄게요]

우리는 그렇게 서로가 가진 것을 교환했다. 내 계좌에 사랑스러운 5만원이 들어오고, 나는 즉시 상대방에게 내 나체 아바타가 그려진 원본을 보내준다.

돈을 받고 내 나체(아바타)의 모습을 판다니···. 성을 주고 파는 게 마치 사이버 챙녀나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타락해버린 내 모습에 살짝 자괴감이 들었지만, 괜찮다 버틸만했다. 잘못된 건 나에게 이따위 야짤을 그리게 한 세상이었으니까.

고로, 잘못은 세상에 있는 것이다.

다행히, 상대방은 내가 보내준 그림이 마음에 들었는지 한동안 칭찬을 날려주었다.

[qwer1: 오ㅋㅋㅋㅋ]

[qwer1: 생각이상으로 야하게 잘 그렸네ㅋㅋ]

나보고 야하게 생겼단다. 칭찬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qwer1: 아니, 근데 그림 그리는 거마다 여자가 당하는 거네. 작가님 진짜 마조에요?]

상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마조가 아니라 내가 남자인데··· 곧이곧대로 대답할 수는 없으니 그냥 노코멘트하기로 했다.

굳이 성별을 밝힐 생각은 없었으니까 말이다.

[qwer1: 저번에 금태양도 묶어봤는데... 얘도 묶어볼까요? 어때요?]

“그건 안 돼 씨발!!”

나는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키며 외쳤다. 상상 속에서 내 아바타가 범해지려고 하고 있었다!

두껍고 질긴 로프에 손발이 꽁꽁 묶여, 반항섞인 눈매를 위로 치켜든 채 험한꼴을 당하려고 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겐 꼴릴 수 있는 상황이겠으나, 나에게는 그저 역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hala: 절대 안 됩니다]

그런 역한 장면을 내 손으로 직접 그릴 수는 없기에, 나는 상대방에게 단호하게 거절했다.

나는 나를 그리면서 쾌락을 느끼는 중증 나르시시스트 환자가 아니었으며, 은별이 같은 마조히스트는 더더욱 아니었으니.

저것은 30만 원이 아니라 100만 원을 줘도 그려주지 못했다.

[qwer1: 걱정마세요ㅋㅋ 그 정도로 원하는 건 아니니까]

그래도 다행히, 상대방은 금방 포기하는 모습이었다.

순간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번에 금태양 커미션을 30만 원까지 줘가며 어거지로 시킨 걸 보면, 누구를 구속하는데 진심인 사람인 줄 알았는데.

지금 태도를 보니 그건 또 아닌모양.

‘알다가도 모르겠군.’

잠시 의문이 들긴 했지만 일단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결국 나는 긴박의 위기에서 해방되었고, 통장에는 신사임당 한 장이 들어왔으니까.

상대도 용건을 마쳤는지 슬슬 대화를 끝낼 준비를 했다.

[qwer1: 나름 알찬 소비였어요]

[qwer1: 만화도 잘 챙겨 보고 있어요. 요즘은 살짝 휘청이는 것 같지만]

내 만화도 꾸준히 챙겨봐주는 모양. 휘청인다는 말에 나는 살짝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qwer1: 그럼 수고하세요]

[hala: 아, 네 감사합니다]

일단 그녀가 작별 인사를 하기에 나도 똑같이 답장을 날려 주었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내 머릿속에서는 금태양 만화에 대해 떠올리고 있었다.

“···음.”

사실 오늘 금태양 만화를 그리지 못한 이유 중에 저것도 있었다. 그녀의 말대로 요즘 금태양 만화는 휘청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짐작이 된다. 단순히 반복되는 스토리가 재미없어서 떠난 걸 수도 있고, 아니면 금 태양만 주구장창 보다 보니까 질려서 사라진 걸수도 있었다. 그것도 아니라면, 단순히 몰아보기 위해 금태양을 놔두고 있는 걸지도 모르지.

다만 확실한 게 있다면, 현재 금태양 만화는 최근에 하락세라는 것이다. 그것은 내 핀박스 후원계좌와, 조회수에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잠깐이지만 머릿속으로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슬슬 새 작품을 써야하나···.’

애초에 단편으로 생각하고 썼던 금태양 만화다. 장기적으로 이끌어가기에는 약간 힘든 감이 있었다.

단물도 어느 정도 빨았겠다. 슬슬 새 만화를 그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문제는 새 만화가 원한다고 뚝딱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모든 창조물들은 대부분 무에서 시작하고, 유를 만들어내려면 어느 정도의 영감과 노력이 필수적으로 들어갔으니.

그리고 지금의 나는, 역전세상의 ‘여자’들의 성욕을 만족시켜줄 영감이라는 게 거의 없는 상태였다.

아니, 애초에 금태양 만화도 억지로 짜낸 건데 여기서 어떻게 또 새로운 걸 즉석으로 짜내는가.

“아, 몰랑.”

결국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자 나는 침대에 털썩 누웠다. 금태양의 단물이 빠지고 있긴 해도, 아직 전부 다 빠진 건 아니니.

결국 그리 급한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니 나는 차분히 금태양을 연재하면서 새 작품을 생각하면 된다.

“오늘의 나는 할 일을 다했어.”

이은별과 신나는 빠꾸리를 떴고, 거기에 더해 내 몸(아바타)을 팔아서 5만원까지 벌어왔다.

이 정도면 오늘 하루는 알뜰히 살았다고 말해도 되는 것이다.

그러니 오늘은 그만 끝내고, 남은 일들은 내일의 나에게 맡기기로 했다.

아마 내일의 나도 합의했겠지. 대답이 없는걸 보니 분명 합의한 게 맞을 것이다.

“잘 준비나 하자.”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대충 유튜브를 3시간쯤 돌아다니다 잠에 들었다.

하루를 알뜰하게 보내서 그런지 잠은 쉽게 찾아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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