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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야짤작가-73화 (73/125)

〈 73화 〉 73, 못알아들어?

* * *

사람의 몸은, 때론 말보다 더욱 많은 것을 알려줄 때가 있다.

우리의 입은 꽤나 자주 거짓말을 내뱉게 되지만, 우리의 몸은 솔직해서 별로 거짓말을 못하기 때문이다.

입이 우리들의 의식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면, 몸은 무의식과 더욱 연관되어 있는 편이었다.

당황하면 몸이 움찔하고, 흥분하면 아래쪽이나 위쪽이 우뚝 솟게 된다.

괜히 야망가에서 “5252몸은 솔직하잖아wwwww”같은 대사가 나오는 게 아니었다.

이게 다 인체공학적 설계에서부터 튀어나온, 아주 과학적인 클리셰인 것이다.

어떻게 보면 야짤을 그리는 사람들은 인체에 아주 해박한 사람이 아닐까?

아무튼, 중요한 건 지금 이게 아니고.

중요한 건 몸은 꽤나 정직하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행동을 살펴보면 대충은 깨달을 수 있었다.

특히 상대방의 머리가 정상인 상태가 아니라면, 신체란 말 그대로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그, 그게···.”

덕분에 나는 지금 은별이 무척이나 당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앞에 있는 그녀를 보며 생각했다.

‘개쫄았네.’

아아, 그 말대로. 그녀는 꽤나 겁을 집어먹은 상태였다.

부끄러움으로 달아올랐었던 얼굴은 어느새 핏기가 싹 가셔있었고, 눈에서부터 시작했던 떨림은 어느새 몸 전체로 퍼져나갔다.

성아린도 처음 만났을 때 저 정도로 떨지는 않았는데···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을 보는 것만 같았다.

하긴, 나도 이성에게 반찬 삼았다는 것을 들켰고, 거기에 더해 상대방이 경찰서로 협박까지 한다면 겁을 먹겠지.

누구든 자신의 인생에 빨간 줄을 긋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그녀가 저렇게 무서워하는 것도 이해는 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여기서 그만둘 생각은 없었다. 그러기에는 아직 제대로 가지고 놀아보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짐짓 무표정을 유지하며 그녀에게 물었다.

“응? 어떻게 될 거 같아? 내가 볼 땐 이것도 성희롱으로 신고가 될 거 같은데.”

그 말을 하면서, 나는 속으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내 입에서 성희롱이란 말이 나오는 날이 오다니!!

과연 이런 게 역전세상인가?

어느새인가 1등 시민으로 격상된 나의 모습에 기뻐서 사정이 다 나올것 같았다.

뷰릇­!뷰릇­!

상상 속의 내가 1등 시민 정품 딱지에 정액을 휘갈겼다.

“죄, 죄송해요···.”

그렇게 혼자 정신적으로 자위하고 있자 은별이 덜덜 떨며 말했다. 시선을 못 마주치겠는지 어느새 바닥으로 떨궈진 그녀의 눈이 보였다. 나는 즐거운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차가운 어조로 물었다.

“은별아.”

“지, 진짜 잘못했···.”

“다시 한번 물을게, 나로 몇 발 뺐어?”

“······?”

그 말에 그녀가 몸을 움찔했다.

시선이 다시 한 번 나를 향했다가, 이윽고 다시 내려간다.

덜덜 떨리는 동공이 이리저리 굴러가고 있었다. 누가 봐도 대답하기 곤란하다는 모습.

하긴, 곤란한 질문이기는 하지.

물론 그렇다고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대답.”

마치 명령하듯 그녀에게 말한다.

어차피 심리적 우위는 나에게 완전히 넘어온 상황이니, 그것을 마음껏 이용할 생각이었다.

내 행동 하나하나에 상대방의 반응이 뒤바뀐다는 것은 꽤나 중독적인 쾌락이었다.

차가운 내 말에 그녀가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다섯 번······.”

“야, 거짓말하지 말고.”

“······여, 열한 번 정도 뺐어요.”

나는 무심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와.”

내가 그림을 그려준지는 이제 겨우 2주가 좀 넘어가는 걸로 기억하는데, 그 사이에 무려 11발이나 뺐다고?

즉, 이틀에 한번 꼴로는 나를 이용해 뺐다는 소리나 다름이 없었다.

“진짜 상상 이상이네.”

“···흐읏.”

화난 척을 하며 말을 이었다.

“네가 발정난 돼지 새끼랑 다를 게 뭐야. 응? 자기 성욕도 주체 못 해?”

“흐윽···! 죄송합니다···.”

내가 말을 건넬 때마다, 그녀의 얼굴이 점차 빨갛게 물들어갔다. 이제는 눈이 떨리다 못해 눈물까지 나올 것 같은 모습이었다.

“저, 정말 죄송해요···.”

‘흠.’

나는 순간, 내가 너무 세게 말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분위길 유지해 보려고 약간 강하게 말한 것뿐인데, 그녀가 상상이상으로 덜덜 떠는 것이다. 이 정도면 인간 바이브레이터가 아닐까 의심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걱정도 잠시, 나는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뭐 어때.’

어차피 그녀가 싸질렀던 욕망 글에는 [남자가 날 매도해 줬으면 좋겠다]같은 게시글도 있었다.

그러니 어떻게 보면 나는 그녀의 욕망을 충족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는 걸로 알고 있어서 즐기지는 못하는 것 같지만··· 솔직히, 그건 별로 내 알 바가 아니었다.

그렇게 잠시 은별을 노려보고 있자 그녀가 다급히 말했다.

“저··· 진짜 이, 이번 한 번만 용서해 주면 안 될까요···? 앞으론 안, 안 그럴 테니까···.”

덜덜 떨리는 입술로 어떻게든 말을 잇는 그녀가 보였다.

용기를 내서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벗어나고자 하는 모습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역시 ‘빨간줄’에 대한 위협은 무척이나 두려운 모양.

좋아하는 이성에게 경멸 받고 있다는 생각과, 자신의 이력서에 오점이 생길 수 있다는 상상. 그 두 개가 그녀의 정신머리를 구석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흐음···.”

나는 고개를 숙이며 짐짓 고민하는 척을 했다.

솔직히 말하면 슬슬 그녀가 불쌍해지던 참이라 놔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그녀의 반응이 너무 재미있었다.

‘이걸 놔줘야 해?’

이대로 끝내기에는 아쉬웠다. 지금 이 순간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장난감이었으니까.

그녀가 반응을 보여줄 때마다 내 안의 가학성이 조금씩 충족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계속 몰아붙이기에는 그녀가 진짜 울 거 같고··· 그랬다가는 솔직히 내 도덕성이 약간 아파할 것 같긴했다.

이미 반쯤은 쓰레기의 강을 건넌 것 같긴 하지만, 스윗한남인 나는 굳이 그녀를 울리고 싶지 않았으니까.

어떻게 더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면서도, 더 즐길 방법이 없나···.

그렇게 잠시 생각을 이어나가자 머릿속에 스치는 게 하나 있었다.

‘아.’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 못시킨다면, 다른 쪽으로 분출하게 하면 되지 않을까?

‘오.’

그걸 생각한 나는 속으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꽤나 괜찮은 생각같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나는 천재가 아닐까 생각하며 그녀를 보며 말했다.

마지 못해 자비를 배푼다는 듯.

“뭐, 용서 못 해줄 건 아니긴 한데······.”

“지, 진짜요?!”

내 말에 그녀가 얼굴에 화색을 띄웠다.

나는 지금,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진 그녀에게 희망에 동아줄을 건네주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다시금 정신을 차릴 수 있도록. 하나 남은 선택지를 보고 의욕을 낼 수 있도록.

이 상황을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은 그녀는 어떻게든 동아줄을 잡으려 들겠지.

“뭐··· 맨입으로 용서해주는 건 아니고.”

“괘, 괜찮아요! 뭐든지 할게요!”

그 동아줄까지 가는 길이 얼마나 험난할지는 모르고 말이다.

“정말?”

“네!”

그녀가 열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에는 결연한 각오까지 보이고 있었다. 꽤나 간절한 모습이었다.

나는 피식 웃었다. 어찌 보면 화낸 척을 한 이후 처음으로 그녀에게 보여주는 미소였다.

그 모습에 그녀가 약간 안도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나는 그녀에게 선언했다.

“좋아. 그럼 여기서 자위해봐.”

“네! 알겠······.”

움찔.

잠시 그녀의 모든 움직임이 굳는다. 덜덜 떨리던 눈동자와 안면 근육, 고개를 끄덕이려던 움직임이, 마치 시간이라도 정지한 듯 멈췄다.

“······뭐라고요?”

그녀가 물었다.

방금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게 맞는지.

“못알아들어?”

물론, 나는 얼마든지 말해줄 자신이 있었다. 열번이든, 백번이든. 그녀가 알아들을 때까지 얼마든지.

나는 다시금 표정을 지우고 위협하듯 얘기해주었다.

“자위해보라고.”

검지 손가락을 펴서 잠시 내 앞을 가르킨다.

“지금, 내 앞에서.”

그녀의 얼굴이 당혹으로 물들었다.

*

‘미친.’

은별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날렸다. 잠시나마 정차했던 동공이 다시금 갈 길을 잃고 떨리고 있었다.

‘미친, 미친.’

자신이 지금 뭘 들은거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아니, 분명 제대로 들었을 것이다. 자신의 귀는 바로 앞에서 들은 걸 못 알아들을 만큼 맛이 가지 않았으니까.

그럼에도 되물어 본 것은, 그가 했던 요구가 상상 이상으로 터무니없었기 때문이다.

저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갑자기 자위하라니···.’

이 상황에서? 그가 있는 앞에서? 옷을 다 벗고?

‘안 돼···!’

절대 안 된다! 그런 짓을 했다간 자신은 부끄러워서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그 모습을 상상하자 다시금 얼굴이 달아오르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세원은 다시 입을 열었다.

“왜, 싫어? 그러면 그냥 이대로 신고하고.”

“아뇨아뇨! 잠시만요!!”

그녀는 다급히 그를 막았다. 무슨 성격이 저리 급한지, 자신이 머리 굴릴 타임을 절대 주지 않는 그였다.

은별은 혼란스러운 머리를 애써 다스리며 물었다.

“흐우··· 그것 말고 다른 걸로는 안 되나요? 너무 창피한데···.”

“응, 안 돼.”

물론, 씨알도 먹히지 않았지만.

“야, 잘 생각해 봐. 지금 네가 반찬으로 삼는 내가, 특별히 모델로서 있어주겠다는데 싫다고?”

“그, 그건 아니지만···.”

“그럼 됐네.”

그가 명령하듯 은별에게 말했다.

“얼른 벗어.”

“······.”

차가운 시선이 그녀를 꿰뚫듯이 쳐다본다.

살벌한 분위기가 시시각각 자신을 협박해오는 듯 했다.

우우우웅.

적막한 방 안에선 한동안 냉장고 저주파 소리만 울려퍼졌다.

“···후우.”

은별은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다 포기했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알았어요···하면 되잖아요······.”

그녀는 우선 가디건부터 벗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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